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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
박 완 서
처음부터 팬티만 입고 잔 것은 아니었다. 몸에 꼭 끼는 슬립이 그녀가 사철 입고 자는 잠옷이었다. 그녀는 닭살도 아니고 살집에 탄력이 없어질 만큼 늙지도 않았건만 남편은 맨살보다도 얇고 매끄러운 화학섬유를 통해 그녀의 몸뚱이를 만지기를 더 좋아했다.
초저녁부터 무덥더니 꿈속에서도 뙤약볕 속을 걷고 있었다. 온몸을 단근질해대는 뙤약볕은 실로 느낌일 뿐,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늘을 기대할 수 없는 침침한 뙤약볕 속을 그녀는 처형(處刑)에 순종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한결같이 걸었다.
문득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가 그 비현실적인 뙤약볕에 균열을 일으킬 만하면 암담한 열기는 괴물처럼 그녀의 목줄기를 눌러 못다 한 소리가 온몸에 괴로운 경련으로 파문지게 했다. 이건 필시 악몽일 거라는 깨달음과, 악몽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예리한 비명밖에 없다는 생각은 어렴풋하면서도 확신에 찬 거였지만 몸 안에 가득 찬 소리를 밀어낼 힘은 번번이 미진해서 그녀는 헛되이 허우적댔다. 웬일인지 발밑마저 눅진눅진해지면서 걸음은 점점 더 지지부진하고 고통스러워졌다. 어느 틈에 더욱 농밀해진 열기가 눅진눅진해진 아스팔트와 야합해서 콜타르처럼 끈끈한 용액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기진한 것처럼, 절망한 것처럼 천천히 넘어졌고 지글지글 끓는 콜타르가 인화(引火)처럼 삽시간에 그녀의 몸에 옮겨붙었다.
“아이 뜨거, 아이 뜨거, 미치겠네.”
그녀는 펄쩍펄쩍 뛸 듯이 몸을 뒤채며 일어나 앉아서 옷처럼 뒤감겨 끈적거리는 콜타르를 벗겨냈다. 발밑에 흘러내린 콜타르는 꺼멓지 않고 희끄무레했다. 꿈속하고 별로 다르지 않은 침침한 어스름 속에서 그게 나일론 슬립이라는 걸 알아보면서 그녀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잠결에 슬립은 벗어버렸지만 온몸이 진이라도 날 것처럼 끈끈했고, 젖무덤 사이론 땀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머리맡을 더듬어 선풍기를 미풍으로 틀고 어림짐작으로 타이머를 한 시간쯤 뒤로 맞춰놓았다. 선풍기 바람이 시냇물처럼 쾌적하게 살갗을 휘감으며 할랑댔다.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었다. 남편은 돌아와. 있지 않았다. 불을 켜고 몇 시쯤 됐는지 알아볼까 하다가 꿈 없는 단잠의 예감 때문에 네 활개를 펴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나일론이나 콜타르나 근본은 그게 그걸걸. 마지막 의식으로 이렇게 가물대다가 그녀는 추락하듯이 곧장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잤는지 신경질적인 초인종 소리 때문에 그녀는 깰 새도 없이 곧장 일어섰다. 비틀대며 방을 나와 마루를 가로지르는 동안도 초인종은 멈추지 않고 울렸다. 남편은 따로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늦을 때는 한두 번 눌러봐서 반응이 없으면 혼자서 따고 들어와서 슬며시 옆자리로 파고들었다. 그럴 땐 그녀는 으레 술냄새 때문에 깨어났고 아이고 미워, 술 좀 작작해요, 하면서 아프지 않을 만큼 꼬집어주곤 돌아누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계속해 방정맞게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가 평소의 남편답지 않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했다. 그녀는 잠 속을 유영(遊泳)하듯이 부드럽게 허우적대며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현관불을 켜고 문에 달린 두 개의 견고한 방범용 쇠붙이를 비틀고 문을 열었다.
두 집의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는 계단 위의 좁은 공간은 며칠 째 전구가 나간 채여서 어두웠다. 현관문을 열자 안에서 쏟아져나간 빛과 바깥 어둠이 대각선으로 갈라놓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계단 맨 위 난간에 고꾸라질 듯이 삐딱하게 기대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 남자가 비틀대며 그러나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대각선의 한쪽 어둠 속에 가렸던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벌거벗은 젖가슴으로 쏟아져내렸다. 자기가 겨우 손수건을 대각선으로 접은 것만한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있다는 것과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란 걸 인식하기는 거의 동시였다. 그 남자가 남편이 아니란 건 인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물감이었다. 이물감은 속속들이 섬뜩했다. 살의에 가까운 전율과 함께 그녀는 그녀의 가슴에 코를 박으려는 찰나의 남자를 힘껏 뒤로 밀었다. 남자는 허깨비처럼 힘없이 뒤로 비틀거리는가 했더니 발을 헛디디면서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현관문을 힘주어 닫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쾅 하는 울림과 함께 남자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져 맨 밑 양회바닥에 머리를 찧는 소리를 분명히 들은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꼭꼭 걸어잠근 현관문에 찰싹 등을 기댔다. 두려움에 짓눌린 그녀는 마치 책갈피에 끼워놓은 단풍잎이나 들꽃처럼 퇴색하고 부피 없어 보였다. 그녀의 가슴은 울렁거리지 않았다.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청각만이 과민하게 살아서 현관문 닫히는 쾅 소리에 섞여서 사라진 쾅 소리하곤 다른 소리를 가려내서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더라? 반복해서 듣는 사이에 그 소리는 자꾸만 커졌다. 마침내 그것은 뻥 하고 고막을 찢도록 엄청난 소리가 되면서 남자의 두개골이 파열하는 소리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자는 죽었을 것이다. 내가 그 남자를 죽였다. 그녀의 추리가 틀림없다는 걸 뒷받침해주듯이 문 밖은 마냥 고요했다. 추리가 마침내 더 이상의 나쁜 상태를 생각할 여지가 없을 만큼 극한에 이르자 그녀는 되레 쉽사리 정상으로 돌아왔다. 안방으로 돌아가려다 말고 부엌에 들러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 병 꺼내 따서 일부러 벌컥벌컥 소리가 나게 마셨다. 목이 타서가 아니라 부엌방에서 잠든 시어머니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망령이 난 시어머니는 여간 곤하게 잠든 때 아니면 누가 무얼 먹는 기척에 귀가 비상하게 밝았다. 그녀는 일부러 병따개 유리컵 따위를 소리내어 부딪치면서 “조년, 조 앙큼한 년이 시에미 몰래 군입정질하는 것 좀 봐. 아이고 배고파, 아이고 속 쓰려. 시에미는 배곯아 죽건 말건 제년 입만 아는 이 몹쓸 년아, 네년이 그 죄 안 받을 줄 알구?” 하는 악담이 새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부엌방에선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꼭 죽은 사람처럼 꼼짝 않고 숨소리조차 잦아든 것처럼 보이는 게 시어머니가 어쩌다 깊이 잠들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곤히 자고 난 시어머니는 한결 해맑아져서 “저승에 갔다 온 것만치나 잤쟈아?” 하고 어눌하게 묻곤 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다. 그 남자와 나는 생판 모르는 사이다. 따라서 원한관계가 있을 리 없다. 그 남자는 술에 곤드레가 되어 있었다. 술에 안 취했어도 조금만 정신 놓고 있으면 동이나 입구를 헷갈리기 십상인 게 아파트 단지의 구조다. 실족사가 아니라고 우길 만한 반증도 증인도 없다. 따라서 그는 실족사다.
그녀는 이렇게 한밤에 일어난 사건을 감쪽같이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결에 벗어던진 슬립을 주워입을까 하다가 께적지근해서 새걸로 갈아입었다.
“모든 게 감쪽같거든.”
그녀는 일부러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으로 쏟아져내리던 이물감마저 감쪽같다고 자기를 속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이물감은 엄청나고도 생생했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녀를 거쳐간 그 이물감을 감쪽같이 없었던 것으로 하고 살아갈 일을.
수술 후 잘못해서 뱃속에 넣고 꿰맨 핀셋이나 가위처럼 그 이물감은 그녀의 몸 속에 끝끝내 남하서 문득문득 무슨 변괴를 부리고 해를 끼칠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루의 괘종시계가 땡 하고 한 번 울렸다. 그 시계는 한시에도 한 번 울리지만 삼십분에도 한 번씩 울렸다. 지금 한시일 수도 열한시도 열두시 반일 수도 있었다. 물론 새벽 세시나 네시 반일 수도 있었다. 이물감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려고 그녀는 잠결에 냄새만 맡아도 편안해지는 남편에 대해서만 생각하려 들었다. 그러나 칠 년 동안이나 같이 산 남편의 얼굴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은 체취마저도 순수하지 않았다. 그의 냄새에는 체취보다는 담배와 술냄새가 더 많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담배와 술만으로 그의 냄새를 만들 수는 없다. 그의 냄새는 체취와 담배와 술을 배합해서 된 것이고 비율은 그만의 독특한 것이다. 나는 그 비율을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즉각 정확하게 알 수 있거든, 그녀는 이렇게 구차하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창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앞 동의 불빛이 대여섯 개 남아 있었다. 입구가 다섯 개 달린 오층 아파트니까 한 층에 열 가구가 다섯 겹으로 포개 사는 걸로 계산하면 오십 가구가 된다. 열 집에 하나꼴로 수험생이 있는 걸까? 아니면 새벽밥을 짓는 불빛일까? 새벽밥을 짓는 불빛이라면 곧 날이 밝아오련만. 그럴 리는 없지. 남편이 외박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칠 년 동안에 단 한 번의 외박도 없었을까. 그녀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남편에게 끈끈한 연민을 느꼈고 그녀만이 아는 남편의 냄새가 그리워서 목이 탔다.
어느 틈에 앞 동의 불빛이 네 개로 줄었다. 그러면 그렇지, 새벽이 아니라 오밤중일 거야.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서린 어둠의 부피만 가지곤 도저히 오밤중인지 첫새벽 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아, 여름밤은 짧거든. 그녀는 의미 없는 탄식을 하며 다음 시계 소리를 놓칠까봐 귀를 곤두세웠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은 채 무릎 위에 뺨을 포개고 엎드렸다. 옅은 꿈속에서 문 밖의 남자를 빛과 어둠으로 양분했던 사선을 따라 톱질하는 꿈을 꾸었다. 끔찍한 꿈이었다. 그녀는 문 밖의 남자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별안간 어깨를 들먹이며 울기 시작했다. 찝찔한 눈물이 그녀의 입귀로 흘러들었다. 정화(淨化)의 쾌감 같은 게 그녀의 울음을 마냥 끌게 했다. 눈물이 마르고 울음소리마저 잉잉대는 곤충의 날갯짓처럼 허공에 맴돌 때, 그녀는 분명히 자신의 것이 아닌 어떤 울음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무엇에 찔린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단박 울음을 그쳤다.
“그 아이가 또 내쫓겼군. 이번엔 안 돌봐줄 테야. 그 돼먹지 않은 것들을 고발을 해서라도 버릇을 가르쳐놓아야지,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아파트에서 부부싸움할 때마다 아이를 내모는 몰상식한 것들을 그냥 놓아둘 줄 알구.”
이렇게 중얼대며 분연히 일어난 그녀는 곧장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신바람으로 긴 머리와 옷자락이 깃털처럼 나부끼는 결 느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그녀의 자기도취일 뿐 나일론 슬립은 피부처럼 그녀 몸에 밀착돼 있었고, 머리는 땀에 절어 볼과 목덜미에 보기 싫게 엉겨붙어있었다.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문 밖의 고요가 찬물처럼 섬뜩하게 끼쳐왔다. 아이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부부싸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밤중에 깨어 있는 사람은 그녀 혼자뿐이라는 듯이 사위가 고르게 고즈넉했다. 그녀는 배반감으로 쓰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다시 잠자리로 돌아왔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다시 창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창가에 마냥 붙어 앉아 밖을 내다보는 청승맞은 버릇은 작년 겨울부터였다.
추위가 며칠째 유난히 극성을 부릴 때였는데 현관문을 마주 보고 있는 앞집 부부가 초저녁부터 악을 쓰고 기물을 부수는 등 시끄럽게 싸우더니 밤이 깊어도 수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사이로 둔 앞집이란 비록 현관문은 제일 가까운 사이라지만 등을 맞대고 있는 옆집끼리 수돗물 트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과는 다르게, 소리로서는 서로 무관한 사이였는데 그렇게 시끄러운 걸 보니 대단히 열렬한 싸움인 것 같았다.
“몰상식한 것들 같으니라구.”
잠을 설친 남편도 이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나 앉아 애꿏은 담배만 태워댔다. 그러나 그녀는 이웃의 열전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채 흥미진진했다. 옆집 여편네가 평소의 그 새침이 뚝뚝 드는 교양은 어디에다 접어두었는지, 째지는 소리로 넋두리를 하기도 하고, 어디를 얻어맞았는지 원색적인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 게 남편 말짝으로 몰상식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것도 고소했고,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는 덮어놓고 통쾌했다. 잘한다, 잘해. 이왕 붙은 김에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는 거야.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아낌없는 응원까지 보냈다.
“당신 취미가 아주 저속하군 그래.”
남편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런 그녀를 못마땅해 했다.
“안됐군요. 몰상식한 이웃에다, 저속한 아내에다. 그렇지만 난 고상한 사람 별로 겁나지 않아요.”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편은 짜증스러운 김에 한 말을 그녀가 뼈 있게 받는 게 약간 의아한 듯 이렇게 되물었다.
“심심파적하고 남의 부부싸움 구경처럼 재미있고 신바람 나는 것도 없거든요.”
“알았소. 실컷 즐겨요. 이러다가 우리까지 싸우겠소.”
남편은 쉽사리 언쟁을 포기했다. 그녀는 속으로 문득 우리에게 과연 싸울 기운이 남아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싸울 기운이 마치 삶의 기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게 안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은 그녀를 맥 빠지게 했다. 남편은 그녀에게 늘 정중하고 관대했지만 그녀도 가끔 남편에게 무시당했다거나 미움받는다고 느꼈다. 그런 느낌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그녀는 때때로 그녀 역시 남편을 무시하거나 미워하는 걸로 앙갚음을 할 것 같은 은밀한 쾌감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남편이 그녀에게, 또는 크가 살고 있는 삶 전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까짓 거 알 필요도 없어. 이렇게 스스로 상한 자존심을 다독거리는 건 실은 앙갚음보다 더 나쁜 짓인지도 몰랐다. 남의 부부싸움에 대한 그녀의 흥미에는 질투도 꽤 섞여 있음직했다. 앞집의 부부싸움이 목숨에 관계되는 불상사를 연상시킬 만큼 극렬해졌다.
“여보, 가서 뜯어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안절부절을 못하는 걸 남편은 “내버려둬” 란 차디찬 말로 가로막았다. 어른들의 악다구니 소리에 불에 덴 것처럼 다급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합세했다. 네댓 살쯤 돼 보이는 그 집 아이를 그녀도 알고 있었다. 건강하고 씩씩한 그 애녀석은 부모들보다는 붙임성이 있어서 그녀를 만나면 싱긋 웃기도 하고 시키지도 않은 말을 붙이기도 했다. 귀여워만 해주면 마냥 휘감기고 기어오를 소지가 충분한 애녀석이어서 쌀쌀맞게 군 것은 오히려 그녀 쪽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들의 싸움 소리가 스위치를 끈 음향기기처럼 감쪽같이 멎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바로 문 밖에서 들렸다. 아이는 간간이 숨이 멎을 듯이 자지러졌다가는 다시 격렬한 울음을 토해냈다. 아마 밖으로 내쫓긴 모양이었다.
“쯧쯧, 저러다 자식 잡겠네.”
아이가 제 집구석이 아닌 양쪽 집 공유의 공간에서 울고 있다는 걸로 그녀는 앞집 부부싸움을 대안의 불처럼 편안히 즐길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것에 의해 의식의 한 자락을 잡힌 것처럼 거북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관자놀이에 그렇게 굵은 힘줄이 있다는 걸 그녀는 처음 알았고, 남편이 곧 그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발한 행동으로 옮겨갈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남편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건 그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저 몰상식한 것들을 그냥…….”
남편이 마침내 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녀가 겁에 질린 큰 눈에 눈물을 글썽 이며 남편에게 매달렸다.
“여보, 어쩌려고 그래요? 내비둡시다, 제발. 부부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지 않아요? 내비둡시다.”
“그까짓 부부싸움을 상관하려는 게 아냐, 애새끼지.”
남편의 온몸에 가시처럼 돋아난 살기에 질려 그녀는 지켜볼 밖에 없었다. 그때도 두 집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는 좁은 공간엔 전구가 나가 있어서 아이는 마치 암실 속 같은 데서 울고 있었다. 남편은 다짜고짜 아이의 덜미를 왁살스립게 잡더니 앞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당신들 부부싸움의 희생물로 삼지 말아요.”
살기등등한 태도에 비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도 상식적인 훈계여서 그녀도 하마터면 픽 웃을 뻔했다. 앞집은 방마다 불이 켜져 있었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난장판이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싸움 끝에 아내가 먼저 집을 뛰쳐나갔고 남편이 뒤를 쫓은 모양이다. 아이가 그녀에게 휘감기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얘야, 울지 말고 네 방에서 코오 자고 있을래, 그럼 곧 엄마랑 아빠랑 돌아오실 거야.”
그러나 아이는 한사코 그녀에게 매달렸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졸지에 없어진 일보다 빈집을 지키는 일이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아이의 몸은 밖에서 울고 있었던 깐으론 따뜻했다. 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남편의 눈치를 안 보겠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우선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갑시다. 마냥 밖에서 울릴 수도 없고 빈집에 놓아둘 수도 없잖아요.”
남편의 말없음을 동의로 받아들이고 그녀는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는 순순히 따라왔지만 울음을 그치진 않았다. 그쳤다간 울고, 울다간 그치곤 했다. 남편은 불쾌한 기색으로 베개를 들고 딴 방으로 건너가버렸다. 아이의 부모는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을 간신히 멈추게 하는 방법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창 밖을 내다보면서 저어기 엄마 온다, 저어기 엄마 온다고 거짓말을 시키는 짓밖에 없었다. 아이의 몸은 실하고 따뜻했고 귓바퀴는 섬세했다. 그녀는 그 귓바퀴에 입을 대고 저어기 엄마 온다를 속삭일 때마다 그 말 말고 아이의 혼을 홈빡 빼앗을 마술의 언어를 쏟아부을 수 있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밖은 오밤중이었다. 그때도 앞 동의 불빛이 너댓 개쯤 남아 있었던가? 사람의 그림자가 끊긴 깜깜한 어둠을 아이는 용케도 저어기 엄마 온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줄기차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의 무게에 다리가 저려 자주 고쳐앉았다. 아이의 눈은 어듬을 꿰뚫듯이 초롱초롱해졌다. 겨울밤은 마냥 길었다. 어둠에 조금씩 조금씩 젖빛이 섞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말을 했다. 목쉰소리였지만 또렷했다.
“아침이야.”
아이가 줄기차게 기다린 건 엄마가 아니라 아침이었을까? 그녀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를 힘주어 안았다.
“아이고, 똑똑도 해라. 그래, 이제 아침이 되려나보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아침은 초록빛이야.”
“초록빛?”
그녀는 아이의 엉뚱한 대답에 소리내어 웃었다. 아무리 보아도 새벽빛 속에 초록빛이 섞여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아이가 알고 있는 초록빛이 어떤 것인지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밖의 어둠에 변화가 왔다는 걸 아이는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고 그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날이 밝자 아이의 엄마가 마치 맡겨놓은 물건 찾아가듯이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를 데려갔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두 집 사이는 더 가까워지지도 더 멀어지지도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만날 적마다 그녀에게 붙임성있게 굴었지만 그녀는 쌀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일이 있고 나서부터 그녀는 잠을 설친 새벽녘이면 창가에서 마치 시험관 속의 화학변화를 웅시하듯이 주의 깊고 면밀하게 어둠 속을 스미는 새벽빛을 응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새벽빛 속에서 어떡하든 한 줄기의 초록빛을 가려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지금도 그녀가 창가에 쭈그리고 앉아 기다리는 건 남편이 아니라 아이가 명 명한 초록빛 새벽인지도 몰랐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아득해졌다. 그녀는 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성급하게 현관으로 뛰쳐나가진 않았다. 그녀는 그 소리가 문 밖이 아니라 아주 먼 곳, 그녀가 거쳐온 기나긴 무명(無明)의 시간의 회랑 저 끄트머리, 그 아득한 소실점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그건 이미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메마르고 갈라진 마음으로 골고루 스미는 습기 같은 거였다.
그녀는 칠 년 전에 딱 한 번 아기를 낳은 적이 있었다. 아기는 삼 주일밖에 못 살고 죽었고, 그 삼 주일 동안을 아기는 밤이나 낮이나 몸을 활처럼 빳빳이 뒤로 휘고 울기만 했다. 아기가 그 삼 주일 동안에 겪은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삼 주일의 짧은 생애에다 칠십 팔십을 살아도 못다 할 인생고를 담은 신의 실수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녀는 그런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용서는 신의 몫이고 인간의 몫은 기도였다. 그 삼 주일 동안에도 기도를 했으니 말이다. 기도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남편이었다. 그들의 첫아이가 뇌성마비이고 살 가망이 거의 없지만, 살아도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가망은 전혀 없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출근하는 남편만이라도 눈을 붙여야겠기에 각방을 쓰고 있었는데 아침에 깨우려고 방문을 열어보면 남편은 벌써 옷을 단정히 챙겨입고 방바닥에 꿇어앉아, 자고 난 간이침대에 두 팔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모아쥔 두 손에 이마를 살짝 대고 눈을 지그시 감은 남편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고뇌와 간절한 희구가 그녀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그녀는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걸 먼저 발견한 남편에게 감동했다. 왜 신의 기적을 믿고 기도할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그녀도 아기를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과학의 신도일 뿐 기적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아기가 사람 노릇 하게 해주십사고 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신의 마음에 사무치도록 간절한 기도를 올릴 수 있을 적은 번번이 아기의 생명을 하루빨리 거둬주십사고 빌 때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기도를 통해 남편의 기도까지도 들여다본 것처럼 느꼈다. 남편의 그 아름다운 기도 역시 아기의 죽음을 위한 거였다고 그녀는 단정했다. 그녀가 아기 엄마였던 삼 주일 동안의 고통이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것은 지겨운 울음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가 기도를 통해 감쪽같이 아기를 모살(謀殺)한 혐의 때문이었다. 그때 그 둘의 기도 중에서도 압귄은 마침내 아기가 숨을 거두고 나서였다. 그들은 눈물을 한없이 흘리면서 아기의 목숨이 평안을 얻은 것을 감사했다. 감사가 눈물과 함께 온몸을 적시고 범람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또한 기쁨이기도 했다. 그들은 아기의 울음소리로부터 놓여난 걸 그렇게 마음껏 기뻐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오랜만에 단잠을 실컷 잤고, 다시는 기도 같은 거 할 필요가 없었다.
“왜 여직껏 안 자고 있어?”
새벽녘에 비로소 선선해진 한 가닥의 바람처럼 남편은 소리 없이 스며들어와 전깃불을 켰다.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남편의 그런 행동에 그녀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남편은 고단해 보였고 이마에 헝클어진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게 분장처럼 선명 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실컷 자고 일어난걸요. 몇 시예요'”
“글쎄…….”
남편은 양말만 벗어던지고 벌렁 누웠다.
“당신 날 사랑해요'”
그녀는 불쑥 이렇게 묻고 열쩍게 웃었다.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외박하는 거 봤어? 이렇게 꼬박꼬박 기어 들어오잖아.”
그게 남편의 대답이었다. 그럼 사랑이란 귀소(歸巢)하고 같은 건가?
“불 끌까요?”
“아냐 잠깐…….”
남편이 남방셔츠를 풀어헤치고 가슴을 드러냈다. 목에서 가슴 한복판으로 남색 끈에 달린 금메달이 늘어져 있었다.
“웬 거예요'”
“기술상이라나.”
“어디서 주는 건데요?”
“대단찮은 거야. 우리 그룹에서 산하의 연구소나 개발부의 업적을 심사해서 주는 회장상이니까.”
“그만하면 대단하죠. 순금일까?”
“뭐얼, 메끼겠지.”
“것도 모르고 받았어요. 아이 시시해. 부상은요?”
“상금이 꽤 됐는데 혼자 먹을 수 있는 게 아냐. 팀의 업적이니까. 몇 군데 돌면서 풀어 멕였지.”
“여직껏요?”
“그래도 아직도 좀 남았을 거야. 그건 당신 몫이야. 이 메달도.”
남편이 메달을 풀어놓았다. 메달엔 그룹 마크인 들입다 달리고 있는 사나이가 양각돼 있었다.
“한 돈쯤 되겠는데, 순금일까?”
“그걸 팔아먹을 일은 아마 안 생길 테니 순금이거니 하구려. 그렇게 순금이 좋으면 말야.”
남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마흔도 안 돼 머리가 세다니. 남편은 그가 밖에서 종사하고 있는 반도체 기술 개발이란 것에 대해 ‘머리가 셀 노릇’ 이란 정도 이상을 말해준 적이 없었다.
“당신이 한 일이 대단한 일인가요?”
“대단하긴, 외국에 비해 십 년 넘어 뒤떨어진 기술 격차를 한 오 년쯤으로 줄인 정도지 뭐.”
“어떤 일인데요?”
남편이 말없이 머리맡의 성냥갑을 끌어 당겼다. 담배를 피우려는 줄 알았더니 성냥개비를 잘게 토막내서 다시 가늘게 가르더니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말했다.
“요만한 부피 속에 서울시보다 조금 작은 도시가 안고 있는 도로망 통신망을 수많은 회로로 압축해 집어넣는다면 무슨 소린지 알겠지?”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초극미(超極微)한 세계에 대한 경탄보다도 불가해한 것에 대한 이물감이 오한처럼 기분 나쁘게 그녀를 엄습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잠결에 문을 열어준 낯선 남자의 얼굴이 그녀의 벌거벗은 몸으로 쏟아져내려올 때의 이물감을 싱싱하게 되살려내면서 진저리를 쳤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이야길 털어놓고 싶었다.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그 작은 사건은 잘잘못을 가릴 만한 일도 못 된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위무받고 싶었다. 그녀는 그녀가 경험한 한밤의 이상한 이물감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질 사건이 아니라 집요하게 눌러붙어 번식할 세균성의 화근처럼 느꼈기 때문에 누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해주길 바랐다.
“여보, 자지 말고 얘기 좀 해요.”
그녀는 남편에게 몸을 밀착시키면서 콧소리를 냈다. 남편의 손길이 나일론 슬립 위로 그녀의 가슴을 익숙하게 더듬자 그녀는 그의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그의 취기를 가늠했다. 밤새도록 마신 깐으론 그의 냄새 속에 알콜 농도는 진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밀어내고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오늘은 안 되겠어. 그놈의 게 떨어졌거든.”
‘그놈의 게’ 란 남편이 피임을 위해 쓰는 기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의 아이가 죽은 후 그들은 다시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말로 그러자고 약속한 바는 없지만 이심전심의 묵계처럼 돼 있었다. 그들의 사랑의 행위가 만들어낸 최초의 작품이 뇌성마비였다는 걸로 그들은 그 행위의 생산성을 저주했고, 철저히 배제하려 들었다. 그들은 그 점 마음이 딱 들어맞는 부부였다. 그들은 그 아기를 잃은 후 한 번도 ˙그놈의 것’ 을 사용하지 않고 몸을 섞은 적이 없었다. 그녀의 몸의 리듬이 ‘그놈의 것’ 없이도 생산성이 없는 시기에도 그들은 ‘그놈의 것’ 의 사용의 중단을 고려하지 않을 만큼 철저했다.
돌아누운 남편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곧 코 고는 소리를 냈다. 남편의 착각이 억울했지만 해명할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오랜 세월 의심할 여지 없이 편안하게 길들어온 남편의 냄새에 의해서라도 그 기분 나쁜 이물감을 희석해보려는 듯이 남편의 등에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나 남편의 착각이 억울한 나머지 여직껏 되풀이해온 부부간의 그 일조차 무수한 착오의 반복이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름날은 서둘러 밝았다. 단지 내 녹지대의 푸르름이 아침 해에 싱그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의 눈이 본 초록색이란 어둠에 묻힌 저 초목과 잔디의 푸르름이 아니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때는 겨울이었는걸. 그녀는 아이의 눈이 본 초록색이 사실적인 빛깔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도 간간이 그런 궁금증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그 애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엄습하는 새롭고도 감미로운 그리움은 그녀 자신에게도 비밀이었다.
부엌으로 나온 그녀는 먼저 부엌방의 기척부터 살폈다. 밤사이에 시어머니가 죽어 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매일매일 새롭고도 독한 쾌감을 동반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쾌감을 너무 오래 탐닉하길 삼가고 찬 우유를 한 컵 받쳐들고 방문을 열었다. 시어머니가 희고 단단한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었다. 틀니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건강함에 그녀는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우유로 시어머니를 달래면서 요 위에 깐, 호청으로 싼 비닐을 걷어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방에 요강이 있건만 노망난 노인은 오줌을 싸기도 하고 누다가 흘리기도 해서 방에선 늘 진한 지린내가 났다. 노인의 망령은 그뿐이 아니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윗도리만 입고 하체는 벌거벗고 살았다. 기저귀라도 채워서 흉한 부분만이라도 가려주려 해도 막무가낵였다. 워낙 고령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막내아들 하나만 남고, 여러 자녀가 이민을 가기도 하고 먼저 세상을 뜨기도 하는 바람에 받은 충격으로 망령기가 생긴 건 벌써 오래 전부터였다. 그러나 남부끄러운 데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드러내 보이려는 해괴한 망령은 아파트로 이사를 오자마자부터였다. 시어머니가 여러 자녀를 낳고 기르고 떠나보내고 잃고 한 낡은 기와집을 팔고 이사를 할 때까지 그녀는 조금도 시어머니의 간섭을 받지 않았다. 노인에겐 이미 그런 일을 간섭할 권리가 없었지만, 환경의 변화가 아무런 충격이 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망가져 있었다. 그러나 이삿짐을 다 부리고 나서 나중에 택시로 모셔온 노인은 아파트를 쳐다보고는 너무 큰 집을 샀다고 놀랐고, 그 큰 집을 통째로 다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소동을 부렸다.
“싫다, 난 싫다. 내가 왜 영감이 물려준 버젓한 내 집을 두고 이 아래위 줄행랑 같은 셋집에 드냐, 들길. 아이고 망했구나 망했어,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 집안이 망해도 분수가 있지. 늙게 온째 셋집도 아니고, 줄행랑에 세를 들다니.”
이렇게 넋두리를 하면서 아랫도리를 홀랑 벗길래 심술을 그렇게 부리는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노인의 기억에서 기와집의 추억이 말끔히 사라지고 나서도 아랫도리를 벗는 망령은 나아지지 않았다. 벗은 아랫도리 때문에 그녀는 남편과 시어머니 사이를 철저히 차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도 가끔 시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까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시험 삼아 모자를 대면시킬 수도 없었다. 누구만 보면 더욱 치부를 활짝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해괴한 망령을 부리기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자여서 말동무가 돼드리기도 하고 연시를 손수 숟갈로 파서 입에 넣어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해괴한 망령 때문에 시어머니는 아들의 효성은 물론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오로지 그녀 하나만을 상대 했다. 그녀마저도 대인관계라기보다는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하는 담벼락일 수도 있었다. 수치감이 제거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치부는 음습하고 쓸쓸했다. 그녀는 그곳을 대할 적마다 남편이 그곳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데 혐오감과 굴욕스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그런 느낌이 매일매일 자신의 내부에 쌓여가고 있다는 결 참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가 그곳을 허구한 날 드러내놓고 사는 건 아들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악랄한 능멸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아아, 그녀는 시어머니 방에서의 아침의 일과를 치르면서 그 모든 굴욕감을 이렇게 신음했다. 그 굴욕감은 그녀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자신에 대한 일말의 호감마저도 잠식할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아침시중만으로도 그녀는 기진맥진했다. 호청을 빨아 널고 나니까 남편이 일어났다. 남편은 그녀가 그 일로 얼마나 신경과 체력을 소모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거의 시중을 시키지 않았다. 남방셔츠를 다려놓지 않아 후줄근해도 말이 없었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에도 해장국 한번 꿇여달라지 않았다. 몸보신을 바칠 나이도 됐건만 그 흔해빠진 당근즙이나 들깨차 한번 얻어먹은 적이 없었다. 아침엔 손수 찬 우유를 꺼내 마시고 날달걀을 깨뜨려 먹 으면 그만이었다.
남편을 내보낸 후 겨우겨우 집 안을 쓸고 닦으면서 그녀는 자신의 소갈머리 속에도 네모반듯한 집 안 구석구석에도 살 기운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느꼈다. 체력이 아닌 살 기운의 고갈을 느낀다는 것은 절망과도 통했다. 낯이 되어 더위가 기승스러워지자 시어머니는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엉금엉금 마루로 기어나왔다. 그걸 못 하게 하면 온종일 그치지도 않고, “사람 살리우, 사람 좀 살리우, 저년이 날 쪄 죽이네, 이 동네는 사람들도 안 사나” 하고 악을 쓰기 때문에 못 본 척하는 게 수였다. 시어머니는 마루에 깔아놓은 화문석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빨간 새 무늬를 신기한 듯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감도는 얼굴이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작고 무구하고 무심해 보였다. 아침에 머리를 빗겨서 뒤로 묶어 리본을 만든, 케이크 상자를 장식했던 분홍색 끈도 잘 어울렸다. 그러나 벌거벗은 배는 주글주글 몇 겹의 굵은 주름과 수많은 작은 균열로 푹 꺼지고 늘어진 게, 마치 함부로 도굴하고 메워버린 무덤 자국 같았다. 저 배가 한때 쉴새없이 자식을 배고 기르느라 풍만하게 부풀었을 생명감이 넘치는 고장이었다는 걸 누가 알까? 그녀는 자기만이라도 그것을 알아줘야 할 것 같았고, 그곳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속을 거쳐간 생명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시어머니의 적나라한 노구(老軀)에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시어머니의 문 앞에서 되풀이한 살의에 대해 구차한 변명 이나마 하고 싶어졌다. 내가 정작 죽이고 싶었던 것은 저 분이 아니라 저분의 노망, 아니 저분의 이물감이었어. 그녀는 시어머니의 노구를 향한 연민보다 훨씬 진한 연민을 시어머니가 아파트를 처음 보고 느꼈을 그 엄청나고 고독한 이물감에 대해 느꼈다. 실상 그것은 그녀의 자위의 한 방법 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위로받지 못한 이물감이라고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간밤의 충격을 그렇게라도 해서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해가 설핏할 무렵 이었다. 그녀는 찬거리를 사려고 시장 쪽으로 가면서 무심히 지나친 어린이 놀이터로 황급히 되돌아왔다. 아이 우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느꼈고 앞집 아이가 어딘지 몹시 다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파트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서 서늘해진 놀이터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이에 열중해 간간이 즐거운 환성을 지르는 아이는 있었지만 우는 아이는 없었다. 그녀는 괜히 허전해하면서 아이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역시 앞집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를 보면서 바람을 쐬고 있던 여자들이 느닷없이 킬킬대며 허리를 잡았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뭬 어떻게 돼. 생각나는 건 여자의 젖가슴밖에 없다는 걸 더 족쳐봤댔자지 뭐.”
“정작 그 아랜 못 봤대?”
“몰라, 봤으면 봤다고 실토를 하겠어? 그 여자 젖가슴 한번 댓방 크더란 소리도 술김에 해서 안걸.”
“어떤 여잘까? 어느 동에 사는 누굴까?”
“아무리 한여름이지만 벌거벗고 자는 여자면 알조 아냐? 나가는 여자 아니면 쎄컨드겠지?”
“참, 우리 아파트에 쎄컨드 많이 산다고 소문이 자자해. 풍기문란해서 어쩐다지?”
“뭘 어떡해? 각자 제 남편만 안 뺏기게 잘 단속하면 그만이지.”
“어쭈, 자신이 만만한데.”
“가끔 술이 과해 동 호수까지 헷갈려서 탈이지, 우리집 그이 그런 문제는 깨끗하잖아.”
그녀는 한참 만에 겨우 슈퍼마켓을 가는 길이었다는 걸 생각해내고 그곳을 물러났다. 화단엔 여름꽃이 한창이었다. 장미, 분꽃, 맨드라미, 기생초, 도라지꽃, 백일홍…… 파란 모자를 쓴 관리 아저씨가 물뿌리개를 단 호스로 꽃밭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관리 아저씨가 꽃을 좋아하는 동 앞엔 꽃밭이 그렇게 잘됐다.
“아저씨 수고하세요.”
그녀는 천천히 꽃밭 앞을 지나며 관리 아저씨한테 눈웃음쳤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직도 수다를 떨고 있는 놀이터의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앞집 아이의 손목을 잡고 꽃밭을 거닐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갖가지 꽃 이름과 그 정확한 빛깔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또 아이가 초록빛이라고 말하기 위해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에 뽀뽀도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꽃밭을 지나자 자기가 왜 그렇게 허황한 생각에 도취했었을까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허황한 생각은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이기도 하여서 없었던 것으로 돌이키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날 밤에도 그녀는 남편에게 그녀가 경험하고 간직한 그 기분 나쁜 이물감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피곤한 남편은 그 말이 하고 싶어 몸이 단 그녀의 태도를 또 잘못 착각하고 ‘그놈의 것’ 을 아직도 못 준비했단 핑계를 대고 돌아누웠다. 그녀는 그렇게 거듭 당하는 남편의 착각이 야속했지만 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조바심은 다음날 아침까지 남아 있어서 그녀의 태도를 매우 불안하게 했다. 남편은 또 무슨 착각을 했는지 오늘은 ‘그놈의 것’ 을 꼭 사가지고 오마고 일방적인 약속을 하고 출근했다. 며칠 그러는 동안 그녀의 이물감에 대한 혐오감은 날로 심해져서 혼자서 헛구역질이 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끌고 나서야 남편은 드디어 ‘그놈의 것’ 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얼큰히 취한 남편은 늦어진 채무에 대한 변명처럼 이렇게 말했다.
“암만 해도 맨정신으로 그놈의 것을 사긴 좀 뭣해서…….”
칠 년 동안 충분히 타성화된 애무 끝에 드디어 그놈의 것으로 견고한 무장을 한 그의 뿌리를 그녀가 받아들여야 할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그놈의 것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똑똑히 바라보았다. 엉뚱하게도 요 며칠 동안 그녀에게 그 기분 나쁜 이물감을 일으킨 것의 정체가 바로 ‘그놈의 것’ 이었던 것처럼 그녀 내부에 앙금처럼 침전됐던 혐오감이 아우성치며 들고 일어나 극대화되는 걸 느꼈다.
“잠깐만, 여보 잠깐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 일을 늦춰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다급하게 부르짖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남편도 잠깐만, 여보 잠깐만 하면서 표정이 별안간 부드럽고 아늑해졌다.
“여보 들어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잖아.”
남편이 이렇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 밖은 아니었다. 그들은 동시에 아주 멀리서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행복한 공감이었다. 아이는 그들이 같이 걸어온 아득한 시간의 회랑 저 끄트머리쯤에서 울고 있었다. 거기서 남편을 만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더욱 뜻밖인 건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남편의 아름답고 싱그러운 미소였다. 비록 흰머리가 섞인 머리칼이 몇 가닥 늘어졌을망정 이마도 소년처럼 반듯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남편에게서 그렇게 풍부하고 부드러운 정감을 느껴보기도 처음이었다. 마치 비로드에 싸인 것처럼 안락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이제야말로 망설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정직해져야겠다. 그녀는 자신 있게 남편의 뿌리가 입고 있는 그 흉측한 이 물질을 벗겨냈다.
정욕보다도 훨씬 집요하고 세찬, 생명에의 갈구가 그녀를 무자비하게 비틀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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