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린 개인전, 지석철 작가의 그림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대놓고 “사진 아니에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묘사력은 뛰어나다. 인도·헝가리·페루·이집트·그리스· 모로코·포르투갈·핀란드 등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풍경이 등장하지 않는다. 허허로운 바다나 들판이 우리 내면의 쓸쓸한 정서를 자극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고단하고 쓸쓸한 우리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사람들이 쓸쓸한 장면 앞에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듯 느끼는 이유는 뭘까? 누구나 마음속에 쓸쓸함을 한 자락씩 품고 살기 때문일까? 어느 그림에서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의자가 등장한다. 의자들이 그를 대신해 풍경과 마주한다. 의자는 또한 우리를 화면으로 끌어들여 풍경과 마주하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홍익대 회화과 교수인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여행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평면과 입체 넘나들며 독특한 작품 세계 구축
“교수도 조직사회의 일원이란 점에서는 회사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돌파구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죠. 물론 제자들에게 좋은 교수이자 선배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제 본업은 작가입니다. 제가 작가로서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고요. 방학이나 아트 페어 참가 등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났고, 그때 제 마음을 움직인 풍경들이 작품이 되었죠. 멍하게 다닐 때도 머리로는 풍경 속에 의자를 집어넣어 계속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직접 촬영한 풍경사진과 의자사진을 합성한 후 인화해보면서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치밀하게 옮겨놓았다. 개인전에 나온 22점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루 네댓 시간씩 치열한 노동의 결과다. 그의 작품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에게 그는 “의도적으로 외로움을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시간, 기억 그리고 존재_감포, 한국, Oil on Canvas, 77.6×104cm, 2013 |
“고등학교 때까지 마산에서 살았습니다. 망망한 바다가 제 정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유년시절에 느꼈던 정취가 평생 지속되면서 작품에 작용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노래방에서 발라드를 불러도 사람들이 ‘굉장히 사연이 많은가 보다’ 지레짐작하더라고요.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제 밑바탕에 있는 정서와 현대적인 표현법이 만나면서 저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의 1세대 극사실주의 화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가 홍익대 미대에 다녔던 1970년대는 추상미술인 단색화가 휩쓸던 시대였다. 어릴 때부터 “기막히게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으며 화가의 꿈을 키우던 학생들은 어려운 개념으로 가득 찬 추상미술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형상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들은 추상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물을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극사실주의를 주창했다.
1978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반작용’은 인조가죽 소파 등받이의 단추 부분을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팽팽하게 당겨진 단추 부분과 세밀한 주름 묘사가 탁월하다. 레자크지에 색연필로 칠한 후 테레핀유를 문질러 소파의 질감까지 살렸다. 여기저기 뜯겨나간 허름한 인조소파. 너무나 일상적인 물건을 확대해서 극단적으로 세밀하게 보여주니 새로운 시각충격이었다. 소파의 결까지 찬찬히 보게 하면서 여러 느낌과 생각을 자아낸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사람의 피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고, 그 시대 사회상에 대한 은유로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생생하게 묘사된 당기고 밀치는 힘 사이 팽팽한 긴장감은 압박과 저항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반작용’이라는 제목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반작용(Reaction), Color pencil and turpentine on paper with canvas, 145.5×97.1cm, 1978 |
“대학교 4학년,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습관적으로 찾던 홍대 앞 유정다방에서 적당히 낡은 소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클로즈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팽팽하게 당겨진 단추를 보고 단순히 ‘반작용’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했죠.”
한국의 극사실주의 회화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과 자주 비교되었다. 하지만 그는 “추상미술에 반발해 형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한국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 작품과 그의 작품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이퍼리얼리즘이 사진 표면과 같은 매끈한 화면을 강조한 반면, 그의 ‘반작용’은 소파의 질감까지 본떠 오브제적인 요소까지 보인다.
“제가 질감에 집중했던 것을 보면 단색화에서 물성을 중시했던 스승의 영향을 은연중 받았나 봐요. 주관을 극도로 배제한 하이퍼리얼리즘과 달리 제게 극사실은 메시지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의자에 현대인의 자아와 고독을 투영
부재의 기억-부다페스트, 헝가리(The Memory of Nonexistence-Budapest, Hungary)_ Oil on canvas, 78×101.6cm, 2014 |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의자는 1982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국대표로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했던 그는 배나무 가지로 손바닥 크기의 의자 300개를 만들어갔다. 전시 벽면은 텅 비워놓은 채 전시장 바닥에 미니의자를 길게 늘어놓았다. 관람객들은 연극무대를 보듯 흥미로워했다.
“뭔가 신선하고 동양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1978년에는 소파의 등받이 부분을 확대했다면 그때는 의자를 축소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충격을 주려고 했죠. 130개국 참가작가 중 ‘10인의 작가’에 뽑혀 북유럽 순회전시에도 참여했습니다.”
의자는 이후 그의 설치작품뿐 아니라 회화에도 항상 등장했다. 누군가에게 앉을 자리, 휴식을 제공해주는 의자. 빈 의자는 거기 앉았던 사람이 떠났음을 암시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고적한 느낌을 자아낸다. 방석도 등받이도 없이 뼈대만 앙상한 그의 의자는 특히 각박한 생활에 시들시들 메말라버린 현대인의 초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생명을 지녔던 나뭇가지로 만들었기에 그 느낌이 더하다. 최근 작품에서 그의 의자는 세계를 유랑하고 있다. 의자는 인도 고아소년이 바닷가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올려다보고, 캄보디아 메콩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소년과 함께 배에 오르고,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바라보고, 처연한 표정의 모로코 여성과 마주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날-아테네, 그리스( Unusual Day-Athens, Greece)_ 130×90cm, Oil on canvas, 2015 |
“내가 영화감독이 된 듯 의자를 세계 곳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의자는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제 심상을 표현하는 배우이자 저 자신입니다. 계속 소재를 바꾸어가며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하나의 테마를 끈질기게 심화-발전시키는 작가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지요. 의자라는 테마 하나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회화・판화・설치・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시도했고, 아직도 무궁무진 끌어낼 게 많아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물꼬를 터놓는 의미에서도 여러 매체에 도전했지요.”
처음 배나무 가지로 300개의 의자를 만들었던 그는 그중 ‘표정 좋은’ 20개를 뽑아 손바닥 크기의 청동 조각들로 만들었다. 그의 의자는 홀로 놓여 있을 때, 나란히 늘어서 있을 때, 또 무더기로 쌓여 있을 때 각기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쌓여 있는 의자는 익명화된 군중을 연상시킨다. 1996년 전시 때에는 청동 미니의자 1000개가 경운기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는 “수십만 개의 의자가 헬리콥터에서 쏟아져 내리는 설치작품을 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묵시론적인 광경이 아닐까? 최근에는 출발점으로 돌아가 소파 등받이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100호 넘는 레자크지를 구하지 못했어요. 더 크게 그리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죠. 그 한을 풀고 싶어 300호, 500호로 다시 그리고 있어요.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된 화면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거예요. 자신 있어요. 2년 반 지나면 대학을 정년퇴임하는데, 너무 기다려져요.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직 건드려보지 못한 게 영상입니다. 제가 연출자가 되어 이제까지 의자의 경험을 하나로 집약한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평면이든 입체든 영상이든 지석철의 감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누구 흉내 내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게 제 자신감의 원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