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은) 백관을 시찰하고 규찰하였다. 여왕은 평소에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 그날이 이르자 사람들이 비로소 그(왕이 미리 낌새를 알아챈) 세 가지 일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첫째는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안 것이고, 둘째는 핀 모란꽃에 향기가 없을 것을 안 것이며, 셋째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군사가 일어날 것을 안 것이다.(셋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어느 겨울날 영묘사의 옥문지(玉門池)에 수많은 개구리가 모여들어 사나흘 동안 울어대니, 나라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다. 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정예 병사 2,000명을 거느리고 속히 서쪽 교외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을 찾아보라 하였다. 그곳에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기습하여 모두 죽이라고 했다.
두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보니 부산(富山) 아래에 과연 여근곡(女根谷)이 있었고, 백제 군사 500명이 수풀이 우거진 곳에 숨어 있으므로 이들을 기습하여 모두 쳐 죽였다. 아울러 그들의 장수인 우소(亐召)를 처단하였다.
알천(閼川)이 그 연유를 묻자 왕이 대답하였다.
“개구리가 성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병사(군대)의 형상이다. 옥문(玉門)이란 곧 여자의 음부(여근)를 말한다. 여근은 색이 하얀데, 하얀색은 서방(西方)을 뜻하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다. 또한 남근(男根)은 여근(女根)에 들어가면 (힘이 빠져) 반드시 죽는 법이다. 이 때문에 적을 쉽게 잡을 수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이에 여러 신하가 모두 왕의 지혜에 감복하였다.
(선덕여왕 말년에) 희덕(熈德, 선덕여왕)이 여왕으로서 왕위에 있으니, 비담(毗曇) 등이 여왕을 폐위하고자 하였다. 군사를 일으켜 명활성에 진을 치고 열흘이 지나도록 대치가 풀리지 않았다. 밤에 커다란 별이 월성(궁궐)에 떨어지니, 비담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별이 떨어진 곳에는 반드시 피를 흘린다고 했다. 이는 여왕이 패하여 피를 흘릴 징조다.”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함성을 지르니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왕은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김유신(金庾信)이 백마를 이끌고 별이 떨어진 곳에 가서 제사를 지내며 주문을 외웠다. “천도(天道)는 양(陽)은 굳세고 음(陰)은 부드러우니 순응하면 부드러워지고, 인도(人道)는 임금은 존엄하고 신하는 비천한 법입니다.
경솔하게 대처하면 곧 큰 난리가 날 것이나, 선을 선이라 하고 악을 악이라 하신다면 (귀신도) 신령스러운 일을 지어낼 것입니다.”라 하였다. 또 (김유신이) 말하기를, “길흉(吉凶)은 정해진 것이 없고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에서) 붉은 가마귀의 변괴가 있었어도 노나라는 망했고, 상서로운 기린을 얻었어도 공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덕이 요사스러움을 이기면 재앙과 이변은 두려워할 것이 못 됩니다. 청하옵건대 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김유신은) 인형을 만들어 불을 안긴 뒤, 풍연(연)에 실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마치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북쪽 길에 소문을 퍼뜨리기를,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하니, 적군(비담의 반군)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김유신이) 여러 장수를 독려하여 진격하니, 비담 등이 과연 패하여 도망치다 모두 처형당했다.
(앞서)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가 당나라에 조공하는 길을 끊으려고 모의하자, 여왕(선덕여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청하여 구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나라 태종은 신라 사신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부인을 임금으로 삼았기에 이웃 나라들이 가볍게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내가 황실의 종친 한 사람을 보내 너희 나라의 왕으로 삼아주랴?” 하니, 사신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여왕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직접 짠 비단을 바치니, 당 태종이 금포(비단 도포)와 채색 비단을 하사하였다.
진덕여왕(眞德女王)
성(姓)은 김씨(金氏)요, 이름은 승만(勝曼)이다. 진평왕(眞平王)의 어머니 쪽 동생인 국반(國飯)의 딸이며, 어머니는 박씨(朴氏) 만천아(滿天阿)이다.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20년 정미년(서기 647년)에 왕위에 올랐고, 6년 동안 재위하였다.
○ (신라 역사에서) 이때까지를 '중고(中古)'라 하고 진골(眞骨)이라 부르며, '상대(上代)'라고 부른다.
○ 여왕의 체격(身骨)은 키가 7척(尺)이었고, 손을 내리면 무릎을 넘었다. 처음 왕위에 올라 연호를 태화(太和)로 고쳤다.
○ 여왕이 조정을 다스릴 때, 원전(元殿)에서 백관(모든 신하)의 하례를 받았다.
*선덕여왕만 해석하고, 다른 책이나 보라는 의도인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