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옷
정연국
산다고 다 사는 게 아니고 죽는다고
다 죽는 건 아니네 꽃이 져야 씨가 여물 듯
죽어야 사는 게 이름 없는 풀꽃만은
아니네 카추사 덤 아닌 덤으로 받은
아니 녹는 눈깔사탕 한 알 입에 악물고
무지개 풍선에 실리어 바람 찬 월가
빌딩숲을 날다 거침없이 바람 잔 0시
모니터를 횅하니 가로지르는 바람
없는 길 잘 든 너 섬 술 고픈
골목길로 베레모에 입마개를 눈귀까지
뒤집어쓰고 카키바지 주머니에 양손
권총을 찔러 넣은 채 살아서 죽은
맨발의 개미귀신들 귀가는 아득히
아리수를 건너는데 아직도
매듭 엉킨 빌딩 문은 하릴없이
옴시롱 감시롱 열렸다 닫히고
무지개 풍선이 고속지하철 환풍구에 걸리니
삼백억 발 심장이 거푸 폭발해도
거믄 태양의 뒤켠에서 모니터로
꽃뱀이 죈 똬리를 죄어 잔뜩
풀 먹인 카키 옷을 껴입고
바람 잦은 바람은 갈대에
갈대는 기대어 비바람 눈보라에도
갈대는 갈대를 보듬고 복사꽃 볼로
젖어 사는 너 섬 무릎과 무릎으로
흐르는 널 바큇살에 바다가
갈라지고 하늘이 부르트는데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이름 없는
풀꽃의 높푸른 말씀 걸
월가 빌딩숲 불 꺼진 바람벽은
숨 막히게 간절히 침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