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 레스토랑 컨설턴트(전 베스트레스토랑 발행인)
출처 : 주간조선 (2003.11.20. 1779호)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그 화려함 뒤엔…
서울 청담동은 우리나라의 고급 식당 문화를 선도하는 동네다. 이런 청담동의 식당들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화제 중의 하나가 “요즘 어디가 제일 잘 나가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담동에는 어느 시점에나 소위 제일 잘 나간다고 하는 식당이 있고, 그 잘 나간다고 하는 식당은 마치 방송의 인기 가요 순위같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요즘 그 식당이 뜬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엊그젠데, 벌써 “거기는 한물갔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식당의 판도가 조석(朝夕)으로 바뀌니 청담동에서 식당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기적으로야 흑자를 내는 식당들이 있겠지만 소위 본전을 뽑고도 꾸준하게 돈을 버는 식당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수십억 원을 쏟아붓고도 1년도 안돼 문을 닫는 식당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청담동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식당들이 문을 연다. 왜 굳이 청담동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그럴 듯한 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하나는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전략적인 목적으로 청담동에 식당을 내는 경우다. 향후 일류 백화점의 식당가 등 다른 곳에 식당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든가, 또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청담동의 식당이 전체 레스토랑 비즈니스의 쇼케이스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청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식당 사업의 홍보나 마케팅에 좋은 발판이 되어줄 뿐 아니라, 청담동에서 성공한 레스토랑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면 사업 전체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청담동에서 성공한 식당’과 ‘대학로에서 성공한 식당’은 그 평가와 대우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레스토랑 컨설턴트나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식당 주인의 야심과 도전이다.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최고의 동네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한다. 청담동에서의 성공은 이름 앞에 ‘일류’ 딱지를 덤으로 얻게 된다. 매스컴이나 업계의 주목을 받으며 돈도 벌고 폼도 잡을 수 있으니 욕심을 낼 만하다. ‘이루겠다’는 야심과 의욕 앞에 흘러간 식당들의 실패담은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허세와 거품’이 청담동의 힘?
허영심과 체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동기다. 청담동의 초창기 전성시대에 비해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허세와 거품은 청담동을 지탱하는 힘이다. 모임에 가서 명함을 내밀더라도 청담동의 식당 주인들은 쭈뼛쭈뼛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학교 동창을 만나도 당당하게 청담동에서 레스토랑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할 수 있다.
그래서 청담동에서 식당을 하는 사람들은 천만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절대로 남대문 시장에서 국밥 장사를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다.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청담동에 식당을 오픈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청담동이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식당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청담동 식당 주인들 중에는 유난히 ‘뉘 집’의 아들, 딸, 며느리가 많다.
청담동에서 돈을 버는 식당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여기에도 눈에 보이는 이유들이 있다. 청담동에서 식당을 열려면 다른 동네보다 두세 배 많은 돈이 들어간다. 우선 임대료(-->임차료)가 비싸다. 또한 ‘고급’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이 사람 저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열어두다보면 불안해져 처음의 계획은 간 데 없고 결국 돈을 쏟아붓게 된다. 인테리어를 맡은 사람들도 실리나 완공 후의 평판을 생각해 이왕이면 고급으로 몰아붙일 테고 어지간한 경험과 주관을 가진 식당 주인이 아니라면 돈주머니를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맛 좋은 일부만 살아남아
돈을 많이 들였어도 쉽게 만회만 할 수 있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청담동에서 이게 쉽지 않다.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청담동을 찾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식이나 서비스가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흥분해서 분노의 비평을 쏟아내기 일쑤고, 쉽게 지루해하며 늘 새로운 것을 찾아헤맨다.
3~4년은 꾸준히 장사가 돼야 투자금도 회수하고 돈 좀 벌었다는 소리를 할 텐데 청담동에서 새로 오픈한 식당의 20~30%는 1년도 안돼서 이미 파장 분위기를 맞는다. 오히려 ‘반짝’하는 분위기의 식당일수록 그 생명이 짧다. 그래도 청담동에서 오랫동안 남아 돈을 버는 식당들을 보면 음식의 주제가 명확하고, 맛으로 승부하는 식당들이다. 중국집 ‘연경’과 ‘On The Rock’, 고깃집 ‘무등산’ ‘박대감네’ ‘무궁화’ 등이 그렇고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나비니’ ‘본뽀스토’가 그렇다.
청담동의 식당가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 과잉의 시장이다. 청담동의 먹고 마시는 시장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해주는 선도 그룹은 5000명 정도라고 얘기한다. 이들은 청담동에 새로운 식당이나 카페가 문을 열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소위 ‘물’을 형성하는 그룹이다.
청담동에서는 식당이 새로 문을 열고 이들이 들락거리며 바람을 잡아주는 기간을 보통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로 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들이 또 다른 식당을 찾아 떠나면 보다 대중적인 그룹이 그들의 뒤를 잇지만 그들도 만명을 넘지 않는다는 예측이다. 청담동을 찾아 밥을 먹는 사람들 수에 비해서 식당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높은 음식 가격과 청담족들의 눈꼴사나운 허세가 동네 분위기를 배타적으로 만들어 편하게 청담동을 찾게 되지 않는 것이다.
청담동에서 식당을 내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 물론 어떤 종류의 식당이냐, 크기는 몇 평으로 할 것이냐, 청담동에서도 어디에 낼 것이냐,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래도 미루어 감을 잡을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일단 1층에 임대(-->임차)평수 100평의 식당을 한번 생각해보자.
1. 권리금 ; 천차만별이다. 신축 건물의 경우 권리금이 없는 곳도 있지만 인테리어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기존에 식당이나 카페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2억~3억원 정도의 권리금을 지불해야 한다.
2. 임대료(-->임차료) ; 평당 1층은 월 1,000만~1,500만원, 2층은 500만~1,000만원, 지하는 500만~800만원 수준이다. 1층 100평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10억~15억원 정도의 전세금이 필요하다. 물론 일부는 보증금으로 하고 일부는 월 1.5% 정도의 이율로 계산해서 월세로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실내장식비 ; 일반적으로 청담동 식당의 인테리어 비용은 평당 500만~1000만원이 든다. 따라서 임대(-->임차)평수가 100평이면 실제로는 70평 정도가 나오므로 임대(-->임차)평수 100평 식당의 인테리어 비용은 3억5,000만~7억원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4. 주방 설비 및 집기 ; 식당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주방 설비는 2,000만~2,500만원, 식탁이나 식기 등의 집기류는 3,000만~4,000만원 정도가 예상된다.
5. 기타 ; 그 밖에도 종업원(-->직원) 유니폼, 테이블보, 장식용 액세서리, 꽃 등의 기타 비용도 2,000만~3,00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
*기본 지출만 한 달에 2,477만원
세세한 비용은 무시하고 위의 항목만을 따져보아도 청담동에서 1층에 임대(-->임차)평수 100평 규모의 식당을 내려면 임대(-->임차)보증금을 전액 지급한다는 전제하에 적게는 16억원, 많게는 25억7,000만원 정도의 목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임대(-->임차)보증금을 전액 지급하는 경우는 드물고 일정 금액을 임대(-->임차)보증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월세로 처리한다.
*적게 잡아 16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전제로 손익계산을 따져보기로 하자.
1. 인테리어 및 주방설비 감가상각비(3억7,000만원 기준) ; 식당의 감가상각비는 동네에 따라 다르지만 트렌드가 자주 변하는 청담동의 경우 감가상각 기간을 보통 3년으로 잡는다. 3억7,000만원의 인테리어 비용이 들었다면 매월 1,027만원 정도를 인테리어 감가상각비로 보면 된다.
2. 집기류 감가상각비(5,000만원 기준) ; 집기류의 감가상각 기간을 넉넉하게 잡아 1년으로 보자. 이 또한 매월 450만원 정도는 계상해야 한다.
3. 권리금과 임대(-->임차)보증금에 대한 이자(또는 기회비용) ; 차후에 권리금은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권리금(2억원 기준)과 임대(-->임차)보증금(10억원 기준)에 대한 이자율을 연 10%로 계산하면 합계금액 12억원에 대해서 계상해야 하는 매월 이자는 1,000만원이다.
위의 세 가지 항목만 따져보더라도 매월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2,477만원 정도다.
이 식당에서 매일 400만원씩의 매상을 올려 월매출이 1억2,000만원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예상되는 경비는 다음과 같다. 인건비 2,500만원, 식재료비 4,800만원(매출의 40%), 전기, 수도, 가스, 세탁, 주차장 이용료, 직원 식대 등 기타 비용이 2,000만원 정도 들어간다.
대략적으로 계산을 해도 월매출이 1억2,000만원일 때 9,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된다. 대략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면 월 감가상각비 2,477만원을 뽑으며 손해보지 않고 본전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청담동에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매월 1억2,000만원의 매출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는 매일 100명 정도의 손님이 찾아와 4만원 어치를 먹어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청담동에서 3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이렇게 꾸준히 손님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된다고 해도 본전이니 말이다. 수익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지금같이 돈을 쏟아부어 청담동에 식당을 내는 일은 헛짓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