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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더 건강하십시오
책상마다 ‘야생화’라고 쓰여진 2023년 꼬마달력이 놓여 있었다.
큰스님은 선원 입구에서부터 범철스님과 함께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범철스님이 차를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대가들이 엄청 많이 나와서 설쳐. 거기서 각자의 실력이 다 드러나는 거야.”
하면서 최근에 듣고 계시는 차 유튜버들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열거하셨다.
그중에 짧게 짧게 올리면서도 제일 이론적으로 밝은 사람의 유튜브를 알려주셨는데 갑자기 생각나신 듯이 “얼그레이가 무슨 뜻인지 아나?” 하고 물으셨다.
그냥 홍차 종류인 줄 알았는데 얼은 백작이고 그레이는 사람 이름이어서, 그레이라는 백작이 좋아한 가향 홍차를 얼그레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하셨다.
얼그레이로부터 시작한 홍차 이야기가 우유를 타는 홍차 버터를 타는 홍차 티벳 홍차까지 이어졌다. 요즘 큰스님은 다시 보이차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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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스님이 무송스님의 가사를 지어오셨다는데 무송스님 역시 작은 달력을 가져오셨다.
“우리꺼 말고 책상에 하나씩 돌렸나?” 하고 큰스님이 물으셨다. 대중 수 만큼 가져오셔서 돌렸다고 다른 스님이 알려주셔서 ‘이런 것도 돌릴 줄 안다’하고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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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도 아시는 스님이 선방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세필로 사경하신 금강경을 학무거사님이 가져오셨다. 200부를 복사해서 전통방식의 책으로 묶었다고 했다. 큰스님이 글씨가 좋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중에서 불(佛)자는 특별히 큽니다. 일부러 크게 쓴다 하시더라고요.”
하고 학무거사님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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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지남도 있잖아. 그거 해인사에다 천 권 보시한다.”
스님들의 인사가 뜸할 때 큰스님께서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17일에 해인사 화엄경완독법회에 가신다고 했다. 작은 책으로 만들어서 2권까지 나온 ‘야곰야곰 증도가’는 계속 진행할지 여쭤보았다.
“힘닿는 데까지 천천히 하더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보시하겠다고 하시는 분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요?”
“그렇게 하다가 말 수는 없잖아. 걱정하지 마. 보시금 내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내가 하지.” 하셨다.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난 후에 서울에 계신 세 분의 보살님이 힘을 합쳐 <야곰야곰 증도가 깨달음의 노래 3>을 출판하시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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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절을 옮겼습니다.”
하고 대구 능화사 스님이 오셔서 인사하셨다. 이천 명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주신 분으로 기억하고 있던 스님이다. 절을 옮기고 여러 가지 정비를 하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번에 천일기도를 하면서 불사를 하시는데 새로운 절은 화엄도량으로 구상 중이라고 하셨다.
“그동안 유튜브하고 불교티비 강의 늘 듣고 있습니다.”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四十九
[平等因果中 辨因]
普賢行品 第三十六
요즘 내가 유튜브 방송을 열심히 하는 편인데 가끔 또 예고 없이 빠지기도 한다. 오늘도 빠지면서 예고를 못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는 대면 법회의 반대는 비대면 법회가 아니라고 한다. 대면 법회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고 외면 법회가 맞는다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나도 3년 가까이 유튜브로 법회를 하고 있다.
지금 용학스님은 유튜브에서 강원에서 강의하는 것 이상으로, 하고 싶은 판서 다 하고, 제공하고 싶은 자료 다 제공하면서 법회를 하는데 아주 들을 만하다.
나는 그렇게는 못해도 그래도 여기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같이 참여해서 이름이 한 번씩 등장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스님들은 좀 열심히 들어와서 인사말이라도 남기기 바란다. ‘화엄경’ 한 마디만 써도 좋고, 합장만 한 번 해도 좋고, 이름이 한 번 이렇게 등장하면 힘이 된다. 여기서 평소에 쓰는 불명이 좋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불명, 속명보다는 여기서 쓰는 불명을 쓰면 아주 좋다. 그리고 ‘문수경전연구회 대방광불화엄경’ 이렇게 쓰면 더욱 반가울 것이다. 그렇게 좀 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별거 아닌데 아주 힘이 된다.
앞으로는 전 세계 교육이 전부 그렇게 될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많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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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튜브를 통해서 공부를 아주 많이 한다. 아까 범철스님하고도 이야기 조금 했지만, 차에 대한 공부도 또 요즘 새롭게 하고 있다. 그전에 몰랐던 것을 다른 공부 하는 여가에 공부하기도 하고, 엔카 공부도 한다. 엔카도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다. 일어를 겸해서 엔카까지 일거양득으로 강의를 기가 막히게 해 준다. 그런 공부 등등 공부하려면 영어 중국어는 두말할 나위 없고, 논어 맹자는 말할 것도 없고,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은 수두룩 뻑쩍 하게 그 안에서 강의를 한다.
이제 전부 그리로 흘러가는 시대다.
내가 3년 전에 여기 부산 불교 연합회 스님들이 오면 막 그냥 침을 튀겨 가면서 ‘유튜브 방송을 하라’고 하였다. 그때 그 기운을 받아서 유튜브 방송을 하는 분들도 여기 몇이 있다.
조금 귀찮더라도 스님들은 유튜브 방송을 해야 한다. 자주는 못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하면 좋다.
실시간 방송 같은 것은 아주 간단하다. 자기가 녹음했던 것을 올리는 것은 편집해서 올리기 때문에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야 된다. 그런데 실시간 방송은 그냥 자기가 예습만 조금 해서 신도들에게 법회 하듯이 하면 되고, 강의하듯이 하면 된다.
유튜브에서 공부하기도 좋고, 강의 연습하기도 좋고, 법회 연습하기도 좋고 여러 가지로 좋다. 누가 잘못한다고 지적하지도 않는다.
조회수가 몇 만, 몇 백만, 몇 천만 몇 억, 몇 억쯤 떴다 하면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거기서 스타가 갈려진다. 요즘 거의 그런 시대가 됐다.
우리 스님들은 사람 인(人)변에 일찍 증(曾)자 중 승(僧)자를 쓰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간다고 하면서 한걸음 뒤쳐진 것 같다.
항상 앞서가야 된다. 그래야 신도들을 교화한다.
남을 교화하려면 한 걸음 앞서가야 한다.
요즘은 너무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따라가려니까 다리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아등바등 쫓아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쫓아가고 있다.
한 삼사십 분 밖에 안 하지만 유튜브 화엄경 강의에 스님들이 모두 동참해서 실명을 그렇게 올려주니까 너무 힘이 되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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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부는 214쪽(민족사刊 제3권) 제일 밑 하단에 다섯째 줄부터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품이 보현행품이다. 앞에는 ‘진심을 내면 백만 가지 장애가 일어난다’는 내용이 나왔다. 청량스님께서는 ‘백만 가지도 오히려 부족한 표현이다’ 이런 말씀을 했다는 것을 전번에도 말씀을 드렸다.
옛날 우리 대중처소에서는 ‘발우대에 똥을 싸도 화내지 마라’ 그런 소리도 들었다.
니까야 아함부 경전 같은 데서는 ‘몸을 토막토막 내도 화내지 마라’ 이런 표현도 있다.
몸을 토막토막 내는데 화 안 낼 사람이 누가 있겠나 하지만 그 정도로 화내는 것이 무섭다는 뜻이다. 뜻으로서 새겨야 된다.
일기진심수사신(一起瞋心受蛇身) 한 번 진심을 일으키면 뱀의 몸을 받는다고 하는 금강산 돈도암의 홍도비구의 설화를 잘 알지 않는가?
그런 글자만이라도 딱 써 붙여 놓고, 늘 자신을 관리해도 큰 덕이 될 것 같다.
그런 이야기도 그렇고 참 이 부분은 책장을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몇 날 며칠이고 음미하고 천착을 해야 할 내용이다.
三. 瞋心對治의 甚妙法
1. 十種法
是故로 諸菩薩摩訶薩이 欲疾滿足諸菩薩行인댄 應勤修十種法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心不棄捨一切衆生하며 於諸菩薩에 生如來想하며 永不誹謗一切佛法하며 知諸國土가 無有窮盡하며 於菩薩行에 深生信樂하며 不捨平等虛空法界菩提之心하며 觀察菩提하야 入如來力하며 精勤修習無礙辯才하며 敎化衆生호대 無有疲厭하며 住一切世界호대 心無所着이 是爲十이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모든 보살의 행을 빨리 만족하려거든 응당 열 가지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마음에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음과, 여러 보살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는 것과, 일체 불법을 영원히 비방하지 않음과, 모든 국토가 다하지 않음을 아는 일과, 보살의 행(行)에 믿고 좋아함을 내는 일과, 평등한 허공 법계와 같은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과, 보리를 관찰하여 여래의 힘에 들어감과, 걸림 없는 변재를 부지런히 익힘과, 중생 교화에 고달픔이 없음과, 일체 세계에 머무르되 마음에 집착이 없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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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대치(瞋心對治)의 심묘법(甚妙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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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과목 이름이 그렇다. 진심을 대치하는 데 아주 깊고 미묘한 법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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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법(十種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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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법을 일단 이야기하고 있다. 열 가지 법, 내가 그 단락에 별을 세 개 쳤다. 보면 볼수록 좋은 내용들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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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是故)로 : 그런 까닭에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욕질만족제보살행(欲疾滿足諸菩薩行)인댄 : 모든 보살행을 빨리 만족하고자 하려면.
우리가 ‘보살행, 보살행’ 하는데 그 보살행을 얼른 성취하고 싶다, 얼른 내가 잘 실천하고 싶다면
응근수십종법(應勤修十種法)이니 : 응당히 열 가지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된다.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인가.
소위심불기사일체중생(所謂心不棄捨一切衆生)하며 : 소위 일체 중생을 마음으로 버리지 말라. 중생하면 우리하고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라고 하면 제일 가깝다. 사람을 버리지 말라. 또는 생명, 일체 사람과 일체 생명들을 절대 마음으로부터 버리려고 하지 말라. 버리면 안 된다.
똑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똑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느냐, 사람을 버릴 수 있느냐, 사람을 외면할 수 있느냐, 그런 뜻이다.
그것을 안 하면 진심(瞋心)을 대치하는 길이 된다. 그다음에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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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살(於諸菩薩)에 : 어제보살에
생여래상(生如來想)하며 : 생여래상하라. 모든 사람에게 여래라고 하는 생각을 내라. 얼마나 좋은 말인가?
전부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체는 전부 부처님이다 하는 생각을 내라.
내가 이 구절을 보고 ‘아 이렇게만 생각하면 누구에게 화를 내겠는가?’ 하였다.
우리가 화낸다는 것이 전부 사람에게 화를 낸다. 그것도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낸다. 평소에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런 화낼 일이 없지만 어쩌다 삐끗하면 그만 아수라가 되고 아귀가 된다.
평소에 속으로 ‘아 저 사람 저래 봬도 저게 속으로는 여래인데, 저게 부처님인데, 부처님과 같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저 부처님이 걸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훈련을 쌓아야 모든 사람에게 ‘저 사람이 여래’라고 하는 생각을 낼 수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낼 것이며
영불비방일체불법(永不誹謗一切佛法)하며 : 영원히 일체 불법을 비방하지 마라. 부처님 법하면 어떤 법이 됐든지 그 나름대로 아주 옹졸한 소승법이 될지라도 그 나름대로 적용할 곳이 있고 해당되는 근기가 있다. 그러니까 내 근기에 안 맞다고 해서 그것을 비방하면 안 된다.
‘아 저건 보살행도 아니고 자기 안녕만을 위한 가르침이다’ 그렇더라도 비방은 하지 말아야 된다. 영불비방일체불법하며
지제국토(知諸國土)가 : 모든 국토가
무유궁진(無有窮盡)하며 : 다함이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라. 일체 세상이 전부 다함이 없다. 끝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화엄경에서는 쌔고 쌨는데 요즘 천문학, 천문에 관한 과학이 아주 발달하고 또 망원경이 아주 발달해서 얼마나 은하계를 꿰뚫어 알고 있는지 모른다. 몇 억 광년 저 너머에 있는 은하계까지 다 보고 거기에 별이 몇 개 있고 은하군이 또 은하수만치 있으며 그다음엔 은하단 이런 식으로 다 발견해 나간다.
해운대에 모래가 많다고 하지만 해운대의 모래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많은 것이 이 우주의 별들의 세계다. 그 별들의 세계가 얼마나 크냐? 이 지구의 몇백 배, 몇천 배 되는 세계다. 이제는 그런 것이 환히 밝혀졌다.
무유궁진하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이 우주가 넓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 내가 왜소해진다. 사람이 겸손해진다. 세상이 넓고 사람은 많다. 별별 근기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알면 내 자신이 겸손해지는 것이다. 겸손해진 사람이 화낼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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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살행(於菩薩行)에 : 어보살행에
심생신락(深生信樂)하며 : 심생신락이라. 보살행에 믿는 마음을 낸다.
남을 배려하고 남을 받들고 봉사하고 뭔가 숨어서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생색도 안 낸다. 자기 자랑도 잘 안 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믿는 마음들을 깊이 내야 한다. 보살행에 대해서 깊이 믿음을 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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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평등허공법계보리지심(不捨平等虛空法界菩提之心)하며 : 허공법계와 평등한 보리의 마음, 깨달음의 마음 이것이 무슨 마음인가? 우리들의 마음이다. 부처님의 마음이고 보리심이다. 보리심이라고 하는 것이 곧 불심이다. 그대로 사람이다. 따로 있는 마음이 아니다. 아주 완전히 사람 사람이 가지고 현재 쓰고 있는 그 마음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망각하지 마라. 불사(不捨) 버리지 마라.
그 위대한 존재, 태양보다도 더 밝은 우리 마음, 달보다도 더 서늘한 우리 마음이다.
화엄경의 뒤쪽으로 넘어가면 우리 마음에 대해서 120가지 비유가 나온다. 어떤 데는 수미산과 같다고 한다. 우리 마음은 수미산과 같다. 우리 마음은 수청주(水淸珠) 흐린 물을 맑히는 구슬과 같다고도 한다. 흙탕물이 일어서 도저히 그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정도로 구정물인데도 구슬 하나만 딱 넣으면 그 순간부터는 살살살살 물이 맑아지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가진 우리들의 마음이다. 또 바다와 같다고도 한다. 마음이 바다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태양과 같다는 소리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싶다. 왜냐? 태양은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데 제일 큰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생명의 근원이다. 그런 마음, 허공법계와 같은 평등한 보리심을 버리지 말라. 망각하지 말라.
관찰보리(觀察菩提)하야 : 보리를, 깨달음의 경계를 관찰해서
입여래력(入如來力)하며 : 여래의 힘에 들어가며, 깨달은 부처님이 보리를 이루었다.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보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나무도 멀쩡한 나무를 보리수라고 하고, 보리수나무 열매를 보리자(菩提子)라고 하고, 전부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가 두고두고 공부해야 할 숙제가 ‘보리’라고 하는 낱말 하나다. 그것을 관찰해서 여래의 힘에 들어갈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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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수습무애변재(精勤修習無礙辯才)하며 : 걸림이 없는 변재를 부지런히 닦고 닦을 것이며
교화중생(敎化衆生)호대 : 중생을 교화하되
무유피염(無有疲厭)하며 : 피곤해하거나 싫증을 내거나 하지 말며, 사람들을 돕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어떻게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되게 만들고, 정직하게 만들고 하는 것이 교화중생이다. 그런데 사실 열심히 하다가 지칠 때도 많다. 그렇더라도 지치지 말고 싫증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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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체세계(住一切世界)호대 : 일체 세계에 머물되 어디든지 가서 가르쳐야 한다. 전부 가서 가르쳐라.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심무소착(心無所着)이 :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어야 한다.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십종법, 아주 좋은 내용들이다. 참 좋은 내용 열 가지만 이렇게 뽑아 놓았다.
2. 十種淸淨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安住此十法已에 則能具足十種淸淨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通達甚深法淸淨과 親近善知識淸淨과 護持諸佛法淸淨과 了達虛空界淸淨과 深入法界淸淨과 觀察無邊心淸淨과 與一切菩薩同善根淸淨과 不着諸劫淸淨과 觀察三世淸淨과 修行一切諸佛法淸淨이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머무르면 곧 능히 열 가지 청정함을 구족하게 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통달하는 청정과, 선지식을 친근하는 청정과, 부처님 법을 보호하는 청정과, 허공계를 분명히 아는 청정과, 법계에 깊이 들어가는 청정과, 그지없는 마음을 관찰하는 청정과, 일체 보살과 착한 뿌리가 같은 청정과, 모든 겁에 집착하지 않는 청정과, 세 세상을 관찰하는 청정과, 일체 모든 불법을 수행하는 청정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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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청정(十種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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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십종청정인데 이 청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그런데 아직도 딱 떨어지는 번역이 안 되고 찾지 못했다. 경우 따라서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이것이 딱 떨어지는 표현이 될까?’ 나는 늘 그 생각이다. 청정에 대한 번역을 ‘뛰어나다 훌륭하다 아주 좋다’ 여러 가지로 갖다 대도 성에 썩 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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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안주차십법이(安住此十法已)에 : 이 열 가지 법에 안주하고 나서
즉능구족십종청정(則能具足十種淸淨)이니 : 곧바로 능히 십종 청정을 구족하게 된다.
열 가지 청정함을 구족하게 된다.
청정, 아주 훌륭함, 뛰어남, 아주 잘됨, 어떤 말을 갖다 대도 이 청정이라는 말을 대신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통달심심법청정(所謂通達甚深法淸淨)과 :소위 통달심심법청정과 심심법 매우 깊은 법을 통달하는 청정, 뛰어남과.
그러니까 이런 구절에서 ‘심심법을 통달했을 때 그것을 뭐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나?’ 이렇게 역으로 해석해 봐야 된다. 역으로 그것을 뭐라고 하는가? 아주 깊고 깊은 법을 잘 통달했다. 화엄경을 잘 통달했다. 그것이 청정이다.
심심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화엄경이다. 화엄경을 잘 아는 청정, 어떤 경우의 어떤 경문이라도 척척 해석하고 척척 현실하고 딱 맞게 해석할 줄 안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겠는가? 청정이라는 낱말은 아주 부족하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청정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했다.
청정이라는 말이 다른 데서는 ‘텅 비었다, 공하다’는 뜻으로 쓰일 때가 있지만 여기는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친근선지식청정(親近善知識淸淨)과 : 친근선지식청정과 선지식을 친견하는 청정, 지금 우리가 선지식을 친견하고 있다. 화엄경이 최고의 선지식이다. 나는 자나깨나 선지식이라는 말이 나오면 무조건 화엄경이라고 한다. 선지식을 절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옛날 같으면 우리가 존경할 만한 선지식, 훌륭한 선지식이 사실 많았다. 그런데 말세가 되어서 그런가, 도대체 성에 차는 선지식을 볼 수가 없었다. ‘좀 괜찮은가’ 하고 한참 모시고 뜯어보다 보면 또 실망을 하고, 또 실망을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선지식이라고 할 것이 아니다. 결국은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 대승경전, 이런 것을 선지식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엄경 화엄경’ 자나깨나 화엄경 노래를 한다. 화엄경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 일이, 곧 청정한 일이다. 청정이다.
여기서 공부하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은 청정 상태에 머물러 있다.
화엄경을 친근하고 있고 선지식을 친근하고 있으니까 청정 상태에 있다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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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제불법청정(護持諸佛法淸淨)과 : 모든 불법을 보호해 가진다. 전통 순수 불법을 우리가 공부를 하고 전통적인 순수 불법을 보호하고 그것을 잘 지키고 그것을 잘 우리가 알려고 하고 그것을 자꾸 현대적으로 풀어서 서로 권하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는 운동을 해야 된다. 나혼자 힘으로는 좀 어렵다.
그래도 여기 공부하러 오시는 스님들은 이 순수 불교, 전통 불교에 대한 맛과 믿음을 느끼고 환희심을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오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 나는 평소에도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호지제불법이다. 그것이 불법을 호지하는 것, 보호해서 지키는 일, 가지는 일이다. 이것을 열심히 해야 된다.
순수한 불법이 자꾸 변색이 되어가니까 그것도 문제다. 불법 불법하면서도 불법이 자꾸 변색이 되어가고, 현대화 한다고 하고 현대인들에게 현대인의 적성에 맞춰야 된다고 하다 보니 자꾸 변색이 되어간다.
거기에 대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엉뚱한 데로 자꾸 뻗어 나가는 나무처럼 불법도 엉뚱한 데로 뻗어 나가는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순수 불교, 전통 불교 이것을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 범주 안에서 자꾸 불교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순수 불교를 지키는 일, 호지하는 일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불법을 호지하는 청정이 참 청정한 일이다.
요달허공계청정(了達虛空界淸淨)과 : 허공계를 다 요달하는, 환히 꿰뚫어 아는 청정과
심입법계청정(深入法界淸淨)과 : 법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청정과
관찰무변심청정(觀察無邊心淸淨)과 : 가없는 마음을 관찰하는 청정과, 마음의 상태를 우리가 그 나름대로 안다고는 하는데 사실은 마음의 그 범위가 도대체 얼마까지인지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조그맣게 이해할 수도 있고, 아주 드넓게 이해할 수도 있다.
내가 요즘 유튜브에서 제일 많이 보는 것이 우주 과학이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 그다음에 건강에 관한 것, 자기 계발에 관한 것, 이런 것들을 주로 많이 본다.
이 우주 과학에 대한 것을 우리가 자꾸 공부하다 보니까 정말 우주는 너무너무 드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서 태양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8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것이 빛의 속도이고 광속이라고 한다.
8시간 아니면 8년, 80년을 빛의 속도로 달려서 백 년, 천 년, 심지어 몇억 광년 저 멀리에까지도 온갖 별들이 있다. 심지어 우리 지구처럼 사람이 살기 좋은 조건을 가진 별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증명을 못하고 거기에 가지를 못하느냐? 지금 인공위성을 가지고는 그러한 속도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가 필요한가?
그때 내가 사용하는 말이 염속, 심속이다. 마음 심(心)자 속도라는 속(速)자 광속이 문제가 아니다. 광속보다 억만 배 빠른 심속 그것을 또 다른 말로 하면 생각 염(念)자 속도라는 속(速)자 염속이라고 한다.
갈매기 조나단이 나오는 소설에 그런 말, 염속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그것을 더욱 깊이 이야기하는데 말하자면 염속을 가지고 달릴 수 있는 위성을 만들면 간단하다는 것이다. 염속으로 순식간에 갈 수 있는 것, 언젠가는 그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타고 심화해 버린다면 몇 억 광년 저 멀리까지도 갈 수가 있다.
인공위성을 마음화해 버리면 그것이 마음과 똑같아져 버린다. 그 이론은 아주 딱 정비가 되어 있다.
‘위성을 마음화해 버린다. 생각화해 버린다’ 예를 들어서 이 책이 지금 책하고 생각이 따로 놀지 않는가? 이것을 생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 그 위성은 마음의 속도하고 똑같이 갈 수가 있다. 마음 속도를 가지고 몇억 광년 저 멀리에 있는 별나라에 갈 수가 있다. 거기 가서 사람도 만나고 거기 생활상도 찍어서 가지고 오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길이 결국은 열릴 것이다. 그러한 말을 나는 가끔 한다.
허공계를 요달하고 법계에 깊이 들어가고 무변심을 관찰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다. 청정의 경지다. 그러니까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청정을 어떻게 우리말로 표현이 제대로 안되는 것이다. 성이 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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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일체보살동선근청정(與一切菩薩同善根淸淨)과 : 일체보살로 더불어 선근을 같이 한다. 모든 보살처럼, 지장보살 관음보살처럼 선행을 함께 하는 그들의 선행과 똑같이 하는 훌륭함, 청정, 뛰어남 그랬다.
일체보살로 더불어 선근을 같이 하는 청정과, 관세음보살하고 똑같이 선행을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청정이라고 표현했다. 그 청정이라는 말을 우리 말로 뭘로 바꿔야 성에 찰까? 적절한 표현이 될까?
불찰제겁청정(不着諸劫淸淨)과 : 모든 시간에 집착하지 아니하는 청정과
관찰삼세청정(觀察三世淸淨)과 : 과거 현재 미래를 관찰하는 청정과
수행일체제불법청정(修行一切諸佛法淸淨)이 : 수행일체제불법청정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시위십이라. 일체 제불법을 수행하는 불법이라는 불법은 다 내가 수행하는 일 그것을 또 청정이라고 표현했다.
여기는 열 가지 청정을 이야기했는데 청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도 못한다. 뒤에 곧 입(入)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청정이라는 말은 자주 만나면서도 우리말로 우리에게 썩 들어서는 말이 생각이 안 나니 참 그것도 문제다.
3. 十種廣大智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十法已에 則具足十種廣大智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一切衆生心行智와 知一切衆生業報智와 知一切佛法智와 知一切佛法深密理趣智와 知一切陀羅尼門智와 知一切文字辯才智와 知一切衆生語言音聲辭辯善巧智와 於一切世界中普現其身智와 於一切衆會中普現影像智와 於一切受生處中具一切智智가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 법에 머무르면 열 가지 광대한 지혜를 구족하게 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마음과 행을 아는 지혜와, 일체 중생의 업보(業報)를 아는 지혜와, 일체 부처님 법을 아는 지혜와, 일체 불법의 깊고 비밀한 이치를 아는 지혜와, 일체 다라니문을 아는 지혜와, 일체 문자와 변재를 아는 지혜와, 일체 중생의 말과 음성과 말 잘하는 방편을 아는 지혜와, 일체 세계에 두루 몸을 나타내는 지혜와, 여럿이 모인 모든 회중에 영상을 나타내는 지혜와, 모든 태어나는 곳에서 일체 지혜의 지혜를 갖추는 지혜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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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광대지(十種廣大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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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광대한 지혜를 구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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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주차십법이(住此十法已)에 : 이 열 가지 법에 머물고 남에
즉구족십종광대지(則具足十種廣大智)니 : 곧 열 가지 광대한 지혜를 구족하게 되나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인가.
소위지일체중생심행지(所謂知一切衆生心行智)와 : 소위 일체 중생 심행을 아는 지혜와, 모든 중생들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를 욕을 하는지 칭찬을 하는지, 지금 책은 펴놓고 앉아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그런 것들을 환히 아는 지혜 다. 처음에 그 이야기다. 일체 중생 심행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 움직임이다. 마음 움직임이 심행이지 않는가. 그런 심행을 아는 지혜와
지일체중생업보지(知一切衆生業報智)와 : 일체 중생의 업보,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을 환히 아는 것이다.
사실 이것도 미루어서 생각하면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짐작을 한다.
공부하러 열심히 오시는 분이야 늘 공부할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그래도 마음에 있으니까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이렇게 온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것도 일종의 업보아닌가. 좋은 업보, 선업보다. 그런 지혜와
지일체불법지(知一切佛法智)와 : 일체 불법을 아는 지혜와
지일체불법심밀이취지(知一切佛法深密理趣智)와: 일체 불법 가운데도 아주 깊은 이치가 있다. 아주 깊고 깊은 이치, 아주 까다로운 것, 대승기신론이라고 할까 해심밀경이라고 할까 유식쪽으로 나가면 아주 까다로운 이치가 많다. 그것이 심밀이취다. 그런 것까지도 환히 아는 지혜와
지일체다라니문지(知一切陀羅尼門智)와 : 일체 다라니문을 아는 지혜와
지일체문자변재지(知一切文字辯才智)와 : 일체 문자 변재를 아는 지혜와
지일체중생어언음성변선교지(知一切衆生語言音聲辭辯善巧智)와 : 일체 중생의 언어, 음성, 사변의 선교, 사변의 뛰어남을 아는 지혜.
세계에는 수백 개의 언어가 있지만 한 열 가지만 알아도 좋다. 그 정도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머지않아 또, 지금도 어지간히 팔 구십프로는 개발이 되었다. 예를 들어서 외국산 약 같은 것, 음식물이라든지 이런 것도 수중에 들어올 수가 있는데 설명서가 영어로 되고 일어로 되고 한 것을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이 요즘 핸드폰에 있다. 그것을 딱 찍으면 금방 번역이 다 된다. 거의 90프로는 번역이 된다. 신기하다. 영어 일어 같은 것으로 주로 많이 활용을 하는데 통역사 없이도 번역이 되는 그런 좋은 프로그램을 공짜로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약 같은 것을 구했는데 그 약이 뭐라고 설명되었는지 모르겠거든 그런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정확하게 번역해 준다. 그런 것을 아는 지혜와
어일체세계중보현기신지(於一切世界中普現其身智)와 : 일체 세계 가운데 그 몸을 널리 나타내는 지혜와
어일체중생회중보현영상지(於一切衆會中普現影像智)와 : 일체 중회 중에 대중모임 가운데서 영상을 그림자처럼 널리 나타내는 지혜와
어일체수생처중구일체지지(於一切受生處中具一切智智)가 : 일체 내가 몸을 받아서 태어나는 곳 가운데서 일체지혜를 갖추는 것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다. 어디에 태어나든지 간에 거기에 필요한 지혜를 다 갖추게 되는 지혜, 이런 훌륭한 지혜도 결국은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4. 十種普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住此十智已에 則得入十種普入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世界가 入一毛道하고 一毛道가 入一切世界와 一切衆生身이 入一身하고 一身이 入一切衆生身과 不可說劫이 入一念하고 一念이 入不可說劫과 一切佛法이 入一法하고 一法이 入一切佛法과 不可說處가 入一處하고 一處가 入不可說處와 不可說根이 入一根하고 一根이 入不可說根과 一切根이 入非根하고 非根이 入一切根과 一切想이 入一想하고 一想이 入一切想과 一切言音이 入一言音하고 一言音이 入一切言音과 一切三世가 入一世하고 一世가 入一切三世가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열 가지의 지혜에 머무르면 열 가지의 두루 들어감에 들어가게 되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세계가 한 터럭만 한 데 들어가고 한 터럭만 한 것이 일체 세계에 들어가며, 일체 중생의 몸이 한 몸에 들어가고 한 몸이 일체 중생의 몸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겁이 한 생각에 들어가고 한 생각이 말할 수 없는 겁에 들어가며, 일체 부처님 법이 한 법에 들어가고 한 법이 일체 부처님 법에 들어가며, 말할 수 없는 처소가 한 처소에 들어가고 한 처소가 말할 수 없는 처소에 들어가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근(根)이 한 근에 들어가고 한 근이 말할 수 없는 근에 들어가며, 모든 근이 근 아닌 데 들어가고 근 아닌 것이 모든 근에 들어가며, 일체 생각이 한 생각에 들어가고 한 생각이 일체 생각에 들어가며, 일체 음성이 한 음성에 들어가고 한 음성이 일체 음성에 들어가며, 일체 세 세상이 한 세상에 들어가고 한 세상이 일체 세 세상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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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종보입(十種普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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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널리 들어간다.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들어가지 않는 데가 없다. 어디에 함께 하지 않는 데가 없다. 이것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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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주차십지이(住此十智已)에 : 이 십지에 머물고 남에 열 가지 지혜에 머물고 나면
즉득입십종보입(則得入十種普入)이니 : 곧 얻는다. 십종보입, 열 가지 널리 들어가는 데 들어감이니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일체세계(所謂一切世界)가 : 소위 일체세계가
입일모도(入一毛道)하고 : 터럭 끝 하나에 들어가고
일모도(一毛道)가 : 한 터럭이, 일모도가
입일체세계(入一切世界)와 : 일체 세계에 들어감과
일체중생신(一切衆生身)이 : 일체 중생신이
입일신(入一身)하고 : 한 몸에 들어가고
일신(一身)이 : 한 몸이
입일체중생신(入一切衆生身)과 : 일체 중생신에 들어감과, 이것이 전부 마음의 작용이다. 내 마음이 스며들지 않고 인식되어지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상황도 다 내 마음이 전부 스며들어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어디에 가든지 오든지 하나가 다(多)고 다가 하나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하는 것도 전부 우리 마음의 작용으로 가능한 일이다. 내 마음이 스며들지 않고 인식 되어지는 어떤 상황, 어떤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화엄경은 그것을 근본 바탕에 깔고 있다. 사사무애(事事無碍)도 그것을 근거로 해서 이야기가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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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설겁(不可說劫)이 : 불가설겁이
입일념(入一念)하고 : 한순간에 들어가고
일념(一念)이 : 일념이
입불가설겁(入不可說劫)과 : 불가설겁에 들어가고
일체불법(一切佛法)이 : 일체 불법이
입일법(入一法)하고 : 일법에 들어가고
일법(一法)이 : 일법이
입일체불법(入一切佛法)과 : 일체 불법에 들어감과
불가설처(不可說處)가 : 가히 말로 다할 수 없는 처소가
입일처(入一處)하고 : 한 처소에 들어가고
일처(一處)가 : 한 처소가
입불가설처(入不可說處)와 : 불가설처에 들어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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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설근(不可說根)이 ; 불가설 근이
입일근(入一根)하고 : 한 근에 들어가고
일근(一根)이 : 한 근이
입불가설근(入不可說根)과 : 불가설근에 들어감과
일체근(一切根)이 : 일체근이
입비근(入非根)하고 : 비근에 들어가고
비근(非根)이 : 비근이
입일체근(入一切根)과 : 일체근에 들어감과
일체상(一切想)이 : 일체상이
입일상(入一想)하고 : 일상에 들어가고
일상(一想)이 : 일상이
입일체상(入一切想)과 : 일체상에 들어감과
일체언음(一切言音)이 : 일체 언음이
입일언음(入一言音)하고 : 한 언음에 들어가고
일언음(一言音)이 : 한 언음이
입일체언음(入一切言音)과 : 일체의 언음에 들어감과
일체삼세(一切三世)가 : 일체삼세가
입일세(入一世)하고 : 일세에 들어가고,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다.
일세(一世)가 : 일세가
입일체삼세(入一切三世)가 : 일체삼세에 들어가는 것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이 된다.
화엄경은 인간이 최대한의 지혜를 발휘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이치를 다 표현해냈다. 그래서 앞에 심밀이취(深密理趣) 그런 말을 했는데 아주 깊고 깊은 이치가 다 표현되어 있는 것이 화엄경이다.
강원에서도 화엄경이 마지막이어서 화엄반 하면 알아준다.
우리 문수경전연구회에서는 지금 이 화엄경을 무려 십 년이 넘게 파고 있다. 이렇게 공부해야 된다. 이렇게 천착을 하면서 해야 되는 것이다. 요는 돌아가서 얼마나 예습 복습을 하는지가 문제다.
내가 아까 어떤 스님들에게 ‘스님들 도반들하고 그렇게 같이 공부하면 논강을 하느냐?’ 그것을 물었다.
논강이 참 중요하다. 서로 아는 견해가 다르니까 ‘나는 이렇게 본다, 너는 어떻게 보느냐?’ 그래서 서로 막 따지기도 하고 논의도 하면 의견 교환도 되고 소견도 넓어진다.
공부하는 데 논강이 참 중요하다. 강원의 경반에 올라오면 전부 논강에서 공부가 다 된다. 강사스님에게 특별히 배우는 것은 없다. 별로 안 배운다. 어떤 때는 1시간 강의 들으면서 강사스님이 한 마디도 안 떼고 ‘오늘 끝’ 하고 일어나는 수도 있다. 전부 학인들이 논강을 다 해서 거기서 이야기가 다 됐으니 굳이 강사가 왈가왈부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런 공부 제도가 옛날에 나란다 불교대학, 여러분들 왕년에 많이 살던 덴데, 나란다 불교대학이라고 하도 오래되어서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다 그렇게 공부하고 살았다.
인도에 가면 나란다 불교대학이 있다.
우리나라 스님들도 많이 가서 공부한 기록이 있고, 중국스님들도 공부한 기록을 해 놓았다. 책에다가 한자로 낙서를 써놓았다.
나는 책의 가장자리에 낙서를 잘해 놓는다.
옛날에도 그 경전에 낙서를 하나 해서 ‘신라 아무개’ 라고 써놓고 ‘중국의 아무개’라고 써 놓은 것이 역사적으로 기록에 남았다. 그래서 ‘어떤 스님이 여기 와서 공부하고 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거기에 가서 낙서를 안 해 놔서 그렇지 전생에 다 가서 공부한 것이다. 나란다 불교대학이라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학, 최고의 대학에 학생 숫자는 좀 많은가?
그 옛날 터를 다 가보시기는 했을 줄로 믿는다.
거기에 가면 ‘야, 여기에 내가 왕년에 와서 공부했다’ 하는 생각에 젖어 숙연해진다.
인도성지순례에서 제일 감동적인 데가 사실은 나란다 불교대학 터다. 이제 불교 성지순례 갈 철이 됐다. 이 계절부터 많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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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제목의 말은 김경훈 피디가 큰스님께 인사하면서 한 말이고, 마가스님과 함께 오신 스님들에게 큰스님께서 '논강을 하는가?' 하고 물어보신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야곰야곰 증도가 깨달음의 노래 3>은 1월에 준비해서 2월달부터 계속 이어질 것이고요....제가 큰스님께 여쭤본 것은 바로 전에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된다'는 말씀까지 들은 김에 여쭤본 것이예요. '첫권은 산수연 기념으로 두 번째 권은 전문이 나왔으니 됐지 않아?' 하실 줄 알았습니다. 지난 달에 제가 '이번달에 안 하고요 천천히 하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린 것에 '그래 급하지 않아' 하셨기는 하지만요. 이번에 책을 내실 세 분 보살님들을 대표하신 보살님들께도 여쭤보니 다음에 도 또 책을 내고 싶어하는 분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실례일 것 같지만 혹시 안내가 될까 싶어서 염화실지 앞에 적어 놓았습니다. 새로운 한 해 좀 더 깊이 있게 부처님과 불교와 만나는 인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천천히 입법계품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염화실지 표지 53선지식이 다 끝나면 다시 선재동자의 구법여행 첫 장면 부터 시작할 거거든요^^ 스포일러~
🙏🙏🙏
대방광불화엄경_()()()
고맙습니다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水淸珠,,,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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