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교수이자 광주 비엔날레 예술 감독, 한국 미술계의 촉망받던 신정아씨의 학력이 위조되었다는 사실 이후로, 학력 위조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신정아씨 사건이 터지자마자 인기 영어강사인 이지영씨도 거짓 학력을 시인했고, 김천과학대 교수인 이창하씨 역시 학력 위조임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공연계의 '큰손'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역시 학력이 위조되었음이 드러났고, 강남의 유명 학원 역시 학력이 위조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라는 생각부터,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한 교육열의 결과가 과연 이것이었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가? 학력 위조라는 큰 거짓말은 아니더라도, 수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했으나 안했다고 하고, 안했으나 했다고 한다.
거짓말의 심리는 무엇일까? 거짓말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으나, 여기서는 Rogers라는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Rogers는 말하길 사람은 태어날 때에 자신만의 독특한 자기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각자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한다면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독특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독특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모습으로 살려는 것을 자기실현 경향성(self-actualization tendency)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실현 경향성을 따라서 스스로 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을 살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우리의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아이라고 하고,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 해야 칭찬을 해준다. 나이가 들면 일정한 직장에서 돈을 벌어야 하며, 또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인정을 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태어나면서 축구 선수의 기질을 타고난 아이에게 공부를 조건으로 제시한다면, 평생 여행을 다니면서 탐험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직장과 결혼을 요구한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사실 이러한 불행한 일도 본인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겠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사람들은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우리 사회가 제시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려고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능력이 있거나 재능을 타고 났다면, 크게 문제는 안된다. 그런데 자신이 타고난 것과 전혀 다른 조건을 충족시키려고 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신의 목표와 이상은 높은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 바로 내적인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와 경험의 불일치라고 한다. 이 불일치는 마음의 불편감과 불안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은 이 불편감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노력하는 것이다. 높은 이상을 현실 수준으로 좀 낮추거나, 혹은 현실에서 많은 노력을 해서 이상에 도달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면 잘못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왜곡(distortion)과 부인(denial)이 그것이다. 여기서 왜곡이 바로 거짓말인 것이다.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졸업한 적이 없는 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는 식이다. 자신의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자신의 왜곡에 다른 사람까지 동조하여, 자신을 대할 때 자신이 왜곡해 놓은 현실대로 대한다면 불일치와 불편감을 사라지는 것이고, 이상과 현실은 이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것이 더 발전되면 자신 만의 세상에서 살게 되는 망상(illusion)이 되는 것이다. 만약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으면 평생 왜곡된 현실에서 살게 되지만, 언제나 모든 사람이 왜곡된 현실을 인정하지는 않기에 거짓말은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심리적으로 조금이라도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왜곡, 즉 거짓말을 인정하고 사죄를 구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 왜곡이 심하고,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또 다른 왜곡(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왜곡이 절대 왜곡이 아니라는 부인(denial)을 한다. 자기와 경험의 불일치가 끔찍하여 왜곡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다시 불일치를 경험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지영씨나 이창하씨의 경우에는 오히려 건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학력 위조를 인정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자세이다.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주변 사람의 인식 때문에 힘들어하겠지만, 이제는 정말 자기와 경험의 일치를 통하여 편안함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신정아씨의 경우에는 자신의 왜곡을 인정하지 않고, 또 다른 왜곡을 하고, 부인을 사용했다. 자신의 왜곡을 버리기 싫은 것이다. 당장의 심리적 불편감과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겠으나, 신정아씨가 망상 환자가 아니라면 그 마음은 상당히 괴로울 것이다. 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왜곡이 진짜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지도 않다.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성공과 인정의 조건으로 학력을 제시하고 있다. 실력보다는 학력이 중요하기에,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서 이상적인 자기를 학력으로 잡아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학력을 얻을 수 없어서 인정받고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을 왜곡한 것이다.
남을 속이고 사회를 속인 당사자들은 큰 잘못을 범했다. 하지만 이보다 이들에게 인정과 성공의 조건으로 학력을 제시하는 우리의 사회가 바로 일차적 원인 제공자가 아닐까? 모두가 잘못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일정한 기준과 틀을 가지고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모두가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즉 학력이나 외모 등 일정한 기준을 성공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사회에서는 제2의 신정아가 계속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