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의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위치한 채석강은 선켐프라이대에 화강암, 편마암을 기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만권의 책을 쌓은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퇴적예술의 걸작이라 할만큼 경관이 빼어나며, 다른 퇴적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가 많고, 퇴적된 과정들이 절벽에 입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어 학술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당라의 시인 이태백이 배 타고 술 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빛 모습에 반하여 물에 뛰어 들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다.
해안절벽 앞에는 먼 바다에서부터 깎여들어온 암반이 넓다랗게 펼쳐져 있어 해안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오랜 세월과 바닷물의 걸작품인 퇴적암 절벽
전북 부안군 산내면 격포리 해안. 퇴적암이 빚어내는 절경은 부산 태종대와 해남 우항리 등 우리나라 해안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이 곳 해안의 채석강은 이름 만큼이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수천만년 동안 바닷물에 깎이고 남은 바위절벽 면을 이루고 있는 자갈, 모래 등의 켜(층리)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이 많기 때문이다.
채석강의 절벽과 해수면 부근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져 얇은 책을 연상케 하는 반면, 위는 층리가 다소 두껍게 나타나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얇은 역암층이 관찰된다. 반면 퇴적암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은 큰 바위들이 끼어있는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 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으며,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라는게 전승수 교수(전남대 지질학)의 분석이다.
한편 격포항 방파제에는 채석강 절벽의 사암 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다른 퇴적암 절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는 입체적인 구조로 봐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 채석강은 미국의 그랜드케니언 등 규모가 큰 퇴적암층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퇴적구조가 많이 발견돼 바위절벽이 드러나는 길이는 길지 않지만 학술적으로는 세계적인 보존가치가 있는 퇴적암 관광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적벽강, 수성당, 금구원조각공원, 곰소항, 왕포수로, 변산온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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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
적벽강은 채석강과 연이은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북쪽 용두산을 돌아 펼쳐지는 약 2km의 해안 절벽을 말한다. 적벽강이 붉은색을 띠는 것은 역암과 황토가 그대로 뒤범벅 된채로 퇴적 산화되어 이루어진 것이며 이 역시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노닐었다는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좋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붉은색의 절벽이 석양을 받아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석양무렵의경관이 볼 만하다. 천연기념물 123호인 후박나무 군락 및 서해 수호신의 사당인 수성당을 거느리고 있다.
수성당
변산반도에서 가장 불거져 나온 격포에는 또한 서해를 다스린다는 수성할머니가 사는 수성당이 있다. 수성할머니는 일명 '개양할미'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서해바다를 돌보는 수호신이다. 딸 아홉중에 여덟을 우리나라 각 도에 시집 보내고(또는 칠산 바다 각 섬에 보내 당산을 지키게 하고) 막내딸을 데리고 수성당에 사는데, 키가 몹시 커서 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다니며 물을 다스려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막아 준다고 한다. 격포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초사흘에, 지난 해에 궂은 일 안당하고 생기복덕한 제줄을 뽑아 수성당에 삼색 실과와 술, 포 등을 차려놓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 풍어와 무사고를 빈다.
금구원조각공원
바닷가의 여행중에 조각가의 개인공원을 들러보는 것도 이색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금구원조각공원은 독학으로 조각을 배워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작가 김오성씨의 작업공간이자 야외전시장으로 2만 여평의 울타리 하나없는 야산 언덕에 대나무숲과 조각이 어우러진 공원이다. 작가의 혼이 담긴 30여 점의 작품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 곳에서는 별자리를 연구하는 천문대가 있어 체험관광을 할 수 있는 관광명소로도 알려져 있는데 입장료는 없으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 조각공원은 곳은 격포에 이를즈음 마포마을을 지나 왼쪽 도로로 약 2.5km 지점인 변산면 도청리에 위치하고 있다.
곰소항
곰소항은 부안해안 남쪽 관문으로 어패류가 골고루 나는 어항이다. 근해 청정지역에서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고 대규모 젓갈단지도 조성되어 있다. 또한 항구 북쪽에는 89ha에 이르는 넓은 천일염전이 펼쳐진다. 반 듯반듯하게 정리된 염전과 소복하게 쌓인 소금더미, 검은판자로 지은 소금창고 등이 도시인들에게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곰소젓갈
변산반도 및 위도 근해에서 잡히는 수산물을 원료로 만든 곰소 젓갈은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고 특유의 비법으로 6개월 이상 삭혀 그 맛이 뛰어나다. 또한 곰소 염전에서 생산된 순수한 천일염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한층 명성이 높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곰소 젓갈은 황석어젓, 갈치속젓, 새우젓, 꽃게젓, 오징어젓, 창란젓, 명란젓, 어리굴젓,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조기젓 등 그 종류도 20여가지가 넘으며 젓마늘, 젓깻잎, 젓고추 등의 부산물도 낸다, 그래서 곰소항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젓갈 판매장들은 주말과 휴일이면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빈다.
왕포수로
왕포는 전북 부안군 진서면 운호리가 그 소재지로 변산해수욕장과 곰소만 사이에 있다. 왕포낚시의 장점이라면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민물낚시터로는 약 4만평에 이르는 왕포수로가 있어 이미 단골꾼이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바닷가여서 현지인들이 민물낚시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손때가 묻지 않은 곳.
변산온천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 위치한 전국 유일의 바다온천인 변산온천은 유황성분이 다량 함유된 무색투명의 부드러운 물로써 피로회복, 고혈압, 신경통에 좋다고 한다. 온천내에 40여 개의 객실과 사우나탕, 식당 등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주변에 새만금 전시장 등이 있다. | |
직소폭포, 와룡소와 가마소, 중계계곡, 월명암과 낙조대, 우금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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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소폭포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경관이다. 폭포의 높이는 약 30m 이며 여러 골의 물이 하나로 합쳐져 깍아지를 듯한 절벽 아래로 백옥같은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깊고 둥근 소를 이룬다. 이 둥근 소를 실상용추라고 하며, 이 실상용추에서 흐른 물은 다시 제 2, 3의 폭포를 이루며 흘러 분옥담, 선녀탕 등의 경관을 이루는데 이를 봉래구곡이라고 한다.
와룡소와 가마소
용각봉과 남옥녀봉에서 발원하여 수운암에 이르는 약 9km의 계곡이다. 기암괴석, 천연단애의 용과 폭포의 소가 잘 이루어져 있다. 주위에 태고림과 천총봉, 장군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어 경관이 일품이다.
중계계곡
중계계곡은 변산중의 명산인 옥녀봉, 성인봉, 쌍선봉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직소폭포에서 중계리까지 약 10km에 이르는 골짜기를 말한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와 철쭉, 해를 가리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흐르는 백옥같이 맑은 물, 산을 붉게 태우는 가을 단풍과 겨울의 설경 등 사계절의 비경이 펼쳐져 내변산 제일의 승지로 꼽힌다.
월명암·낙조대
변산사무소 소재지인 지서리에서 월명암까지의 거리는 약 5km, 운산리를 지나 쌍선봉(해발488m)을 향해 숲길을 헤치며 산등성이를 오르면 월명암이다. 월명암은 신라 제 31대 신문왕(681~691)때 부설선사가 창건했으나, 조선말기 의병의 본거지가 되어 불에 탄 것을 1914년 중고선사에 의해 재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월명암 뒤의 산을 20여분 오르면 바위 봉우리인 낙조대가 있다. 변산의 낙조는 바로 이 곳 낙조대에서 보아야 더 운치가 있다.
우금산성
개암사 뒤 산길로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우금바위에 닿는다. 옛적 변한의 유민들이 우진암이라 불렀던 바위인데, 소정방이 김유신을 만난 곳이라 하여 우금암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우금바위를 기점으로 하여 남쪽과 동쪽으로 모두 3km 가량의 성벽이 완전하게 남아있다. 의자왕 20년(660)에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백제유민들은 각지에서 줄기찬 흥복투쟁을 벌였는데, 특히 임존성(지금의 충청남도 예산)과 주류성이 양대 근거지로써 그 주류성이 바로 우금산성이라는 말이 있다. 또한 우금바위에는 세 개의 굴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굴이 원효대사의 수도처였다고 하여 원효방이라고도 불린다. 우금산성은 보물 제 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