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래킹 출발은 오후3시에 한다고하니,
그 전까지는 이곳, 따리고성을 구석구석 돌기위해 아침일찍
동이 트기전 침대에서 쑥 빠져나와 옷을주섬주섬입고 테라스로나왔다.
아직 한참 어두웠다. 게다가 추웠다.
물론 북경보다 훨씬, 조금 과장해서 2배는 더 따뜻한 아침이지만 목을 휘어감는 차가운 공기 때문에
다시 방으로들어가 두툼한 목도리를 둘러매고나왔다
추위를 잘타는 편이기도하고, 다른 신체부위는 몰라도 목은 꼭 따뜻해야지만 하는 나였다.
새벽녘의 하늘을 바라봤다.
동요처럼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였다.
문득, 2년전,4년전, 두 번에 걸쳐간 내몽고여행이 생각난다.
푸른 초원, 그리고 내몽고인들 전통움막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였다,
마침 그날, 캠프파이어가열려서 움막에 묵는 여행자들이 삼삼오오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되었는데,
공기가너무좋고, 마음이들떠 잠깐 목을 하늘로향해 젖히니 더더욱 아름다운 장관이 내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마치, 문방구에서 파는, 방천장에붙이는 형광 스티커처럼,
하늘을 가득 메우는, 영롱하고 밝게 비추는 별들을, 어둠을 이겨내는 빛 이었다.
계속 보고있자니 목도아파왔지만, 무엇보다 별들이 쏟아져버릴것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곳의 새벽녘하늘의 별, 내몽고만큼 많고 빛나진않지만
어째뜬 너무 아름답고 아름답기만 하다.
아직 만으로18살인 소녀(?)의 심금을 짠울리면서 ‘낭만적이야..’라는 말이 내 입을 통해 작게 신음하듯 새어내온다.
고요한 주변분위기 때문인지 괜시리 분위기를 잡아보고싶었다.
마침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작게 노래를 불렀다.
내입에서나오는건 대중가요도아니요, 팝송도 아닌 찬양(ccm)이였다.
사실, 익숙한곳을 떠나 낯선곳에와 의존할것도 없는 완전독립인 상태에서는,
보이지않는 버팀목이지만, 주님은 그 무엇보다 든든한 존재였다.
(실제로 여행내내 성경을 아주 많이 읽었고, mp3밧데리가 앵꼬가나도록 ccm만 반복해서들었다)
여행을 많이, 자주하다보니 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감사함’이다.
게스트하우스는, 태양열로 물을 데운다고해서, 이른 아침에는 따뜻한물이 안나온단다.
어쩔수없이 찬물로 세수를하고 거울을보니 입술이 보래졌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니, 역시 조용하고 사람이라곤 나와 몇몇 현지인들 밖에 없었다.
좌판대도 열지않았고, 슈퍼도 열지않았다. 옷가게도 열지않았고, 기념품을파는 선물가게도 꽁꽁 문이 닫혀있었다.
길을따라 쭈욱 내려가니 양인가(洋人街)라는 글씨가 씌여진 큰 대로가 나온다.
그 십자대로를 따라 우회전해서 쭈~욱 더 올라가면 따리고성 문이 나온다.
정적으로 가득한 이른 아침의 따리
마음이 평온해진다.
쭉 올라가서 빨리 구경하고 더 넓은 세상이란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기다렸다.
그렇게 20분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왔다 갔다하면서 가게문이 열리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나와주길 기다렸다.
해가 동쪽에서 서서히뜨더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나와 가게문을 열어제낀다.
저기 저 멀지않은 거리에선 깃발부대들의 움직임도 보인다. 곧 심하게 붐빌것 같은 예상이 들었다.
뚜벅뚜벅 걸어올라갔다.
작은 시냇물이 양옆으로 흐르는, 그리고 전통악기들을 파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삘릴리이-한 피리연주들,
그저 좋기만하다.
약간 가다보니, 왠 구석(?)진 곳에 한 할머니가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계셨다.
다가갔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를 보신 할머니는 빙긋 웃어주신다!
잠깐 외람된얘기를 꺼내보겠다.
난 참 어릴때부터 호기심이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뭐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일단 부딪히고보는 성격이였다.
고로, 참 많은 실수도 저질렀고 가끔 부모님께 야단을 맞기도했지만,
어째뜬 내 머리와 마음속에 가득한 '물음표'를 제거했으니 마음은 훨씬 시원하기만 했던것같다.
어째뜬,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나는 물었다.
"할머니, 이게 뭐에요?"
할머니는 사투리투성이인 알아듣지 못하는 한마디를 던지셨다.
사투리를 못알아들어 벙~쪄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선 다시금 표준어로,
" 야크젖을 구워서 그 위에 해바라기씨와 달콤한 조청같은걸 발라먹는거란다. "
' 너무 신기하게 생겼어! '
" 할머니, 하나 주세요, 얼마에요? "
" 하나에 3元씩 주고파는데~ 오늘 하루 첫손님아까씨한테는 2元만 받을께! "
2元을 꺼내 주름이자글자글한 할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할머니는 인사를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의 구수한 발음이좋았다.
늘 사투리를 해오셨을텐데, 날위해 표준어를 또박또박해주시는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도 너무 좋았다.
조금 걷다보니 왠 골목에 사람들이 다른곳보다 더 많이 붐벼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였다.
내가 산것은 바로 이것!
밀가루 반죽을 살짝 구워서, 안에 매운것과 달콤한것을 넣고 요우티아오도 함께껴서 파는것이다.
쿤밍 민족촌에서 한번 사먹고 뿅간 경험을 바탕으로 바로 달려가 사버렸다.
내심, 뇌리를 스치는 생각
' 여행와서 먹기는 참 잘 먹네, 먹을복이 있긴있나봐.. 그나저나 살찌면...............'
참 별것도 다 걱정한다. 북경에돌아가선 먹고싶어도 먹지못하는데 말이다!
다시 천천히 올라갔다.
해는 이미 다 떠서 나왔고 그만큼 내가 오랫동안 (아주 느린걸음으로)걸었다는걸 증명했다.
사람들도 꽤 많이 붐볐고, 뜨겁고 강한 햇살덕분에 목도리를 목에서 풀렀다.
먹자골목이 나왔다!
그리고 기념품가게도나왔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갖가지 기념품들이 즐비했다.
살 마음은 별로없었지만 그렇게 나열해두니 또 사고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따리고성문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걸어오는데 장장 한시간반을 소유했다.
(실제 거리로는 500m도 안된다.)
구경할것도 많고, 앞서 말햇듯이 호기심도 많은 나는
여느 한 가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이 문을 지나 안쪽엔 서늘한 그늘이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바로 내이름이다!
순간 기분이 좋아져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서,
디카속에 담았다.
잠깐, 나의 이름에대한 일화를 짧게나마 소개해보겠다.
사실 어렸을땐 내 이름에 대한 감정은 '싫어!'였다.
친구들이 미국에있는 '자유의여신상'이라며 별명을 짓기도했었고,
왠지 친구들은 여자답고 이쁜이름과는 달리, 뭔가 묵직하면서도 흔하지않는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서였나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달라져,
급기야는 아빠께 감사하기까지했다.
이런이름을 지어주셔서.
중국에 와서, 중국현지인학교에 들어갔을때였다.
그 학교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고, 언니와 함께 동시에 들어간 나는 전학한 그 날에 바로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이름때문! (물론외국인이라는 이유는 배제하고)
내이름은 흔하지않고 특이한 '자유'였고
언니의 이름은 흔하지만 내이름과 붙여놓으면 또 특이해지는 '민주'였다.
즉, '민주,자유' .
그 이후로, 역사시간,정치시간만되면 간혹가다 언니와내이름이 나오곤했는데,
그 때만되면 친구들이 재밌다는 듯이 '민주,자유. 참 신기하다니까'라는 말을 하곤했었다.
이름이 특이한 덕분에, 사람들이 잘 기억할수도 있었고,
내 성격에 등비(?)되는 이름이 나는 참으로 좋았다.
어딜가나 내이름을 밝히고, 언니이름까지 함께 일러주면 늘듣는 소리가있다
' 아빠가 혹시.... ? '
아, 짧게 한다는 소리가 너무 길어진듯하다.
어째뜬, 북경에서 4300여km를 달려온 처음온 곳에서 나의 이름 두글자를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글씨로 (밑에써있는 글귀는 더욱마음에들었다) 씌여있으니
특별히 기념할 만도 하였다.
다시금 한껏 벅찬 가슴을안고 구경을 나갔다.
만년설산과 푸르른하늘이 멋드러지게 조합된 풍경,
그리고 웅장하고 멋있는 따리고성문...
사진으로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광경이었다.
깃발부대에 휩쓸려(?) 사진을 제대로찍자는 것도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북문까지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다보니 옆으로 빠져있는 골목은 왜그렇게 한산한건지.
역시 사람들은 큰 대로만 좋아하나보다.
작은 골목으로 빠져들어가 마구 휘저어 다니며 요리조리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골목에 또 골목이 있어 들어가보니,
현지인들의 아침시장이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디카와 캠코더를 꺼내자,
그곳의 대장(?)인듯한, 한 할아버지께서
사진은안된다면서 손을 휘저으시길래 바로 가방에 넣었다.
사람들의 인심과, 현지인들의 진정한 삶을 엿볼수있는 아침시장이였는데,
몰래찍자니 아무래도 양심에찔려서 눈으로만 즐겼다.)
아무도 없는 작은 골목이다.
북적거리는, 깃발부대로 붐비는 곳을 빠져나와
작은 골목에 들어서니 숨통이 트이는것 같았다.
또 구석에선, 아침식사가 한창이다!
무슨 아침은 11시까지 준비한담..? 점심일까..?
바로, 차가운냉면( 쿤밍민족촌에서 먹었던것이다)
근데, 만드는 제조법이 약간 달랐다.
시큼한걸 넣기도하고, 중국의 강한향신료야채인 씨앙차이까지 넣었다.
사지도않는데, 사진을찍자니 미안해서
"사진..찍어도되요?"
라고 아주 소심하게 물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 가게아줌마의 험상궂은 인상때문일까.)
생각과는 달리, 아줌마는 "그럼 그럼 되고말고! " (씽~씽~ 요우션머뿌크어이더?)
라고 말씀해주셔서, 찰칵찰칵, 디카에 담아보았다.
길을따라 조금더 깊숙히 내려가니,
북경에서도 볼수있는 마라탕가게가나왔다.
내가 이 가게를 또 찍은 이유는,
물을 끓이는 냄비옆에 작은 a4용지가 붙어있었는데,
한국어로 '마라탕, 아주맛있어요! 대5원, 소3원' 이라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어딜가나 한국인이라는 소리는 틀린말이 아닌가보다.
나같이 구석구석 헤치는 사람이 또 있었나 보구나.
그렇게 따리고성의 아침풍경을 마음껏보고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시간은 1시를 조금 넘어서고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서바로보이는 문이 바로 내가 묵었던 방이고,
그 앞 테라스에서 별을 구경했다)
다시 돌아오니
어제 숙소에 묵었던 사람들 몇은 보이지않고,
몇은 1층에서 점심을 드시고계셨다.
트래킹 출발까진 아직 2시간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어서,
1층에 비치된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햇살좋은 벤치로 나와앉아 한장한장 넘기며 책을읽어내려갔다.
.
책을 덮고 1층 홀로 달려가, 전화를 쓸수 있냐고 물었다.
깜빡했다!!
북경에 전화를 한번도 안한것이다.
후다닥 집번호를 눌러서, 통화음이 울리고 마음이 설렌다.
"여보세요"
"이모~!! 저 자유에요~"
"어이구~ 어~우리 아가~ 잘 도착했니..전화가없어서 걱정하고있었어"
정겨운 이모목소리가 전화선너머 들려오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모는 밥잘먹고, 차조심하고 , 남자조심(?)하라면서 자주전화하라는 말과함께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마음이 나사풀리듯, 완전히 풀어져서는 피곤함을 느끼게되었다.
책을 다시 꽂아놓고, 잠깐 낮잠을 청하기로했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일어나서 그런건지..
잠깐의 오수(午睡)로, 체력을보충하고 트래킹을 나서면 안성맞춤일꺼란 생각이였다.
아직까지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북경에서 쿤밍까지 오는 이틀의 기차이동속에서는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기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혼자하는 여행이 외롭지않았다면, 말도안되는 거겠지?
이 여행의 종지부를 찍을 즈음에는
몇번정도의 외로움을 느낄테고,
심지어는 그 외로움이 눈물샘까지 자극하여
눈에서 눈물이 고여버리는 상황이 올찌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상황이 바뀌니 사람도 바뀌는것 같다.
자유여행은 처음이 아니지만,
혼자하는(그것도 배낭여행)여행은 처음인지라,
조금의 걱정과 근심이 없지않았던것은 아니였다.
그치만 그 걱정과 근심이 정말 현실로 나타날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은 집어치운지 이미 오래다.
어짜피 나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고,
늘 감사할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니까!
어째뜬, 이곳은 너무 좋고 아름답고 ...
말로는 형용할수없는 곳이다.
기회가된다면, 언니도 , 아빠엄마,원이랑도
한번씩 더 오고싶은 곳이다.
다음에 올때는 지금 이 날들을 다시 추억하겠지,
그 추억속에 지금 이순간의 나도 재현되겠지,
이 여행을 통해서 조금더 강해지고, 어른스러워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님이 함께 동행하시니, 모든것이 만사형통(혹은 그리아니하실찌라도)
언제나 감사하고 겸손하는 내가 되었으면좋겠다!
아 , 이제 그만쓰고 누워야지.
앞으로 몇시간뒤면트래킹을 떠난다! 그저 좋기만하구만 우히히히!
- 2월14일 여행일기에서 발췌
*NG부분* (앞으로, 따리를 여행할계획이신분들 보세요^*^)
생각보다 아침햇살이 무지 뜨거웠던 걸로 기억한다.
챙이 둥글고 넓직한 모자를 가지고갔으면 얼굴을 모두가려,
덜 탔을 찌도 몰랐을텐데 캡모자만 가지고가는바람에
푹 눌러쓰자니 시야를 가리기만했고, 살짝 얹히기만하자니 쓴것만도 못했다.
캡모자보다는 벙거지모자를 가져가는것이 좋을듯하다!
+추가
여행기를 쓰고나서, 많은분들의 관심어린 쪽지를 받았습니다.
고등학생이라는, 게다가 고3, 여자라는 키워드로 저를 소개하니,
남다른관심이 제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아직, 어리고 한참 어린저는
짧은 한마디 칭찬에도 귀가 팔랑팔랑되어버립니다!
그치만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겠지요,
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 쑥쓰럽지만... 궁금하시다는 분들을위해
과감히 공개해볼께요! 사실 안경을쓰지만, 이사진은 자기전에 찍은사진이라
안경을 벗었네요 하하..
저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솔직히 저의 나이또래는 외모에 한창 관심있을나인데,
(이 글을 보실 저희 아버지가 ↑ 이 말을 보시면 많이 좋아하시리라 믿습니다.히히)
겉쌍커풀이 아닌 속쌍커풀이란 사실에 한때는 아빠를 원망아닌 원망(?)을 하곤했지만,
거울을볼때 저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일때는 한없이 좋기만합니다.
보고싶은 아버지얼굴을 내 얼굴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죠!
엄마를 닮은점은 성격밖에 없군요..아쉽게도(ㅋㅋㅋ)
부족하고 서툴고 모난투성이지만
끝까지 여행기를 봐주시면서,
그 곳, 그 현장, 그 순간에 있는 느낌은 받으셨음 하는작은 바램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출처 : 중국여행 동호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