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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1
논술의 맥 ......................................................... 엘리트 글쓰기 논술 교실 / 다음카페 eea
학문(學問)에 대하여 - 베이컨
학문은 즐거움과 장식 (裝飾)과 능력(能力)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 주로 즐거움으로서의 학문의 효용(效用)은 혼자 한거(閑居)[1]할 때 나타나고, 장식으로서의 그것은 담화(談話)를 할 때 나타나며, 능력으로서의 효용은 일에 대한 판단과 처리에서 나타난다. 일에 숙달한 사람도 일을 하나하나 잘 처리하고, 개별적(個別的)인 부분을 잘 판단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에 대한 전반적(全般的)인 계획(計劃), 구상(構想), 정리(整理)에 있어서는 학문 있는 사람이 제일 낫다.
학문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태만 (怠慢)이다. 그것을 지나치게 장식으로 쓰는 것은 허세(虛勢)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학문적인 법칙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학자들의 버릇이다.
학문은 사람의 천품 (天稟)을 완성시키지만, 사람의 경험(經驗)에 의하여 학문 자체도 완성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의 천부(天賦)의 능력은 마치 천연 그대로의 식물과 같아서 학문으로 전지(剪枝)[2]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 학문도 사람의 경험에 의하여 제한되지 않으면 그 제시(提示)하는 방향이 너무 막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輕蔑)하고 단순한 사람은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利用)한다. 곧 학문의 용도(用途)는 학문 자체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학문을 떠난 학문을 초월(超越)한 관찰로써 얻어지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지혜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반대하거나 논박 (論駁)[3]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또는 믿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혹은 담화나 논의의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독서하지 말라. 오직 재량(裁量)[4]하고 고찰(考察)하기 위하여 독서하라. 어떤 책은 그 맛을 볼 것이고, 어떤 책은 그 내용을 삼켜 버릴 것이고, 어떤 소수(小數)의 책은 씹어서 소화할 것이다. 이는 곧, 어떤 책은 다만 그 몇 부분만을 읽고, 어떤 소수의 책은 정성껏 주의해서 통독(通讀)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책은 또 대리(代理)로 하여금 읽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발췌한 것을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수롭지 않은 내용, 저급한 종류의 책에 한한 이야기다. 이 밖의 경우, 개요(槪要)만을 추출(抽出)한 책은 마치 보통의 증류수와 같아서 무미건조한 것이다.
독서는 충실한 사람을 만들고 , 담화는 재치 있는 사람을 만들고, 문필(文筆)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그러므로, 글을 적게 쓰는 사람은 기억력이 강해야 하고, 담화를 별로 않는 사람은 임기응변(臨機應變)의 재치가 있어야 하고, 독서를 적게 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보일 만한 간교(奸巧)한 꾀가 있어야 한다.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하고 , 시(詩)는 지혜롭게 하며, 수학은 치밀하게 하고, 자연 과학은 심원하게 하며 윤리학은 중후(重厚)하게 하고, 논리학과 수사학(修辭學)은 담론(談論)에 능하게 된다.
학문은 발전하여 인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학문으로 제거할 수 없는, 지능의 장해(障害)란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육체의 질병에 대하여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적합한 운동이 있는 것과 같다. 예컨대, 투구(投球)는 결석병(結石病)에 좋고, 사격은 폐(肺)와 가슴에 좋으며, 가벼운 보행은 위에 좋고, 승마는 머리에 좋은 것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 누구나 만일 머리가 산만하면 수학을 배우게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실제로 수학을 풀 때 머리가 조금이라도 헛갈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식별력(識別力)이 없고 차이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스콜라 철학자(哲學者)들을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머리털 하나라도 잘라 보려고 하는 치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를 제시할 능력이 불충분하다면, 법(法)의 판례(判例)를 연구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모든 정신적 결함(缺陷)에는 거기에 알맞은 각각의 특수한 요법이 있는 것이다.
베이컨 - 영국의 철학자 ·정치가. 런던 출생.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 특히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이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임스 1세 치하에서는 사법장관과 기타 요직을 지내 ‘벨럼의 남작’, 이어서 ‘오르반즈의 자작’이 되었다. 1613년에 검찰총장, 18년에 대법관 등 날로 권세가 높아갔으나, 수뢰(收賂)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정계에서 실각된 후 만년을 실의 속에 보내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냉정하면서도 유연한 지성을 가진 현실파 인물이었으며, 근세 초기의 사상가답게 그 역시 천동설을 신봉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하여 반대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전통적인 구(舊)사상의 영향하에 있던 사상가였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의도는 스콜라 철학의 불비·결함을 비판하고 새로운 경험론적 방법을 발견·제창하려는 데 있었다. 즉, 그는 우주 일체의 활동의 원인을, 특히 우리들 인간이 자유롭게 지배하고 명령할 수 있는 원인을 규명하려고 힘썼으며, 그러기 위해서 인류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지적 재산의 일람표를 작성하여 거기에 무엇이 결핍되었고 무엇을 보충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저서 《학문의 진보》에서 말하였지만, 처음에 《학문의 대혁신》 전 6부의 집필을 구상하여 그 계획을 대규모로 전개하려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간행된 것은 3부뿐이었고, 특히 제1부의 《학문의 진보:The Advancement of Learning》(1605)와 제2부의 《신기관(新機關:Novum Organum)》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서 《오르가논》에 대항하는 것)(20)이 중요하다.
그는 기억·상상·이성이라는 인간의 정신능력 구분에 따라서 학문을 역사·시학·철학으로 구분하였고, 다시 철학을 신학과 자연철학으로 나누었는데, 그의 최대의 관심과 공헌은 자연철학 분야에 있었고 과학방법론·귀납법 등의 논리 제창에 있었다.
그는 우선 인간 지성의 도리의 접근을 방해하는 편견으로서 4종의 이도라(idora:우상 또는 환영)를 지적하였는데, 그것은 ① 종족의 우상, ② 동굴의 우상, ③ 시장의 우상, ④ 극장의 우상 등이다. ①은 인류라는 종족에 대한 보편적인 선입관이고, ②는 개인적 편견으로서, 마치 동굴 속에 있듯이 자연의 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를 비유한 것이며, ③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 기인하는 것으로, 시장에서 있지도 않은 풍설이 나도는 것과 같은 것이며, ④는 논증의 잘못된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학설과 체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으로서, 마치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가공의 이야기에 비유되는 것과 같은 것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편견을 일소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삼단논법은 지식의 확장에 소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험과 관찰에 기본을 둔 귀납적 방법을 중시하였다.
즉, 그것만이 다수의 사례를 모아서 표나 목록을 만들어 사상(事象)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베이컨이 말한 본질은 여전히 중세적 ‘형상(形相)’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자연법칙의 의미도 명확하지 못하며, 수학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자연 속의 보편적 법칙을 양적 관계로서 파악하는 수단을 동반하고 있지 않은 점에서 그 이론이 매우 불충분하였지만, 근대과학의 방법의 중요한 일면을 강조한 것만은 틀림없다. 바꾸어 말하면, 베이컨에 있어 ‘형상’의 탐구는 형이상학이었지만, 그 형이상학의 응용부문은 미신적 마술과 구별된 ‘자연적 마술’이었다. 여기에 르네상스적 마술이 근대과학의 공학적 기술로 전신(轉身)하려 한 전환점이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이 지향하는 것은 그와 같은 새로운 마술, 즉 발명·발견을 뜻하는 대로 성취시킬 수 있는 기계공학적 마술의 달성이었는데, 그는 이것을 《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1627)라는 미완성의 유토피아 이야기에서 항공기·잠수함·인공의 비·합성금속 등의 과학적 발명을 실현하고 있는 이상국의 꿈을 묘사하여 나타냈다. 이와 같이, 과학의 진보에 장대한 꿈을 싣고 과학연구의 방법을 제창하였지만, 그 방법을 실제로 이루는 데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 중에서 구현된 방법의 정신, 즉 미래를 예견한 광대한 전망적 정신과 그 지적 전망에 의하여 ‘인류의 왕국’을 확대하여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달성하려고 한 그의 장대한 포부는 그 후에 영국뿐만 아니라 널리 전 유럽의 근대철학에서 그를 선각자 속에 자리잡게 하였다. 베이컨의 실천철학은 그의 문필의 재능을 보인 《수필집》(1597)에서 비체계적으로 논술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기적 충동 외에 사랑이라는 지고(至高)한 덕으로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후자에 의한 실천적 활동의 중요성을 역설한 점에서 그 후 영국 고유의 사회적·실천적·공리주의적 윤리의 방향을 시사하였다. 저서에, 《학문의 권위와 진보》(1622) 《숲과 숲》(27) 등이 있다.
[1] 한거 : 한가하게 살아감
[2] 전지(剪枝) : 가위로 가지를 자름
[3] 논박(論駁) : 잘못된 것을 공격하여 말함.
[4] 재량(裁量) : 짐작하여 헤아림
수필 읽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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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靑春禮讚) - 민태원
청춘 !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람의 풀이 돋고,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1]의 새가 운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인간은 사막이다 .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하여도, 보이는 것은 모래뿐인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 남는 것은 영락(零落)[2]과 부패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만홍(千紫萬紅)[3]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상 ! 우리의 청춘이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이상! 이것이야말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크고 작고 간에 이상이 있으므로 용감하고 굳세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석가 (釋迦)는 무엇을 위하여 설산(雪山)에서 고행을 하였으며, 예수는 무엇을 위하여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공자(孔子)는 무엇을 위하여 천하를 철환(撤還)[4]하였는가? 밥을 위하여서, 옷을 위하여서, 미인을 구하기 위하여서 그리하였는가? 아니다. 그들은 커다란 이상, 곧 만천하의 대중을 품에 안고, 그들에게 밝은 길을 찾아주며, 그들을 행복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으로 인도하겠다는 커다란 이상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지 아니한 목숨을 사는가시피 살았으며, 그들의 그림자는 천고에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현저하여 일월과 같은 예가 되려니와 그와 같지 못하다 할지라도 창공에 반짝이는 뭇 별과 같이, 산야에 피어나는 군영(群英)과 같이 이상은 실로 인간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라 할지니, 인생에 가치를 주는 원질(原質)이 되는 것이다.
이상 !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5]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6]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보라 , 청춘을!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 (幼少年)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대다 . 우리는 이 황금시대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 위하여, 이 황금시대를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하여, 힘차게 노래하며 힘차게 약동하자!
(閔泰瑗/1894~1935)
소설가 . 언론인. 호 우보(牛步), 부춘산인(富春山人). 충남 서산 출신.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과(政經科) 졸업. 초기 신소설기(新小說期)와 현대소설기에 걸쳐 작품활동을 하였다. 《동아일보》 사회부장, 《조선일보》 《중외일보(中外日報)》 편집국장을 역임, 1918년 《레미제라블》을 《애사(哀史)》라는 제목으로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연재하였다. 작품으로는 《부평초(浮萍草)》 《소녀》 《갑신정변과 김옥균》 등이 있다.
[1] 열락 : 기쁨
[2] 영락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 세력이나 살림이 보잘 것 없이 찌부러짐
[3] 천자만홍 : 울긋불긋한 여러 가지 꽃의 빛깔 또는 꽃
[4] 철환(撤還) : 철환천하(撤還天下)의 준말, 수레를 타고 온 세상을 돌아다님.
[5] 점염(點染) : 어떤 것에 물들음.
[6] 착목 : 눈길이 가는 곳(목표)
수필 읽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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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필 - 피천득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1).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몹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2).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3).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4).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5).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6).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微笑)를 띄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가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材料)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좋은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個性)과 그 때의 심정(心情)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7)'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또 수필은 플롯이나 플라이맥스를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필자(筆者)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 문학8)은, 그 차가 방향(芳香)을 가지지 아니할 때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이다. 소설가나 극작가(劇作家)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性格)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 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다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10부의 1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주제 : 수필의 본질과 특성
▶감상 : 이 글은 수필의 특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문(수필)으로 시종일관 비유를 통해 수필의 특성, 주제, 형식, 수필을 쓰는 태도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자는 결국 수필을 쓰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자신의 생활 때문이라고 반성하며 글을 끝맺고 있다.
1) 수필은 청자 연적에서 받는 느낌처럼 고결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지닌다.
2) 수필은 담담하고 그윽하며 한가로운 여유가 있으며, 반면 산뜻한 감성과 기지가 있다.
3) 수필은 삶의 여유(한가로움)를 가지고 사색하는 기분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4) 수필은 깨끗하고 우아한 멋을 보여 주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5) 수필은 진주처럼 우아하고 윤기가 있고 은은한 글이다.
6) 수필은 담백한 가운데 유머와 위트(기지와 해학)를 통해 그윽한 미감(美感)을 주는 것이다.
7) 수필은 작자의 심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다.
8) 한가로이 앉아서, 그 향기와 맛을 음미하면서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감상하며 읽게 되는 문학.
수필 읽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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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思索)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장서(藏書)의 효용도 의문스러우며, 수량은 보잘 것 없어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지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이 끌어모아도 스스로 사색해 낸 지식이 아니면 그 가치는 의심스러우며, 양으로는 보잘 것 없어도 몇 번이고 골똘히 사색해 낸 지식이라면 그 가치는 훨씬 크다.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을 하고, 하나의 진리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여러 가지 지식이나 진리와 결합시키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 수속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지식이 완전한 의미로 획득되고, 그 짓?을 자유로이 구사(驅使)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철저히 사색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아는 것은 이미 사색해 낸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책을 읽고 학문을 익힐 수는 있지만, 사색하는 일은 원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사색한다는 것은 마치 불이 공기의 유통에 따라 꺼지지 않고 타오르듯이 보존될 필요가 있다.
이 관심은 순전히 객관적인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후자는 주로 우리들이 객관적인 문제에 부닥쳤을 때 생기지만 전자는 단지 천성적(天性的)으로 사색하는 일이 호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사색한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 가운데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스스로 하는 사색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 사이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두뇌의 차이가 있고, 이 차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사색하는 데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읽어서 소화하는 데 능한 것이다. 이러한 선천적인 차이는 스스로 사색하느냐, 또는 독서에 의하느냐에 따라 더욱 그 차가 심해진다.
독서는 우리가 순간적으로 갖고 있는 정신의 방향이나 기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거나 성질이 다른 사상을 마치 도장을 찍듯이 강제로 정신에 찍어 준다. 이 때 정신은 외부로부터 어느 때는 이것을, 또 어느 때는 저것은 ― 이러한 것에 대해 자신은 전혀 아무런 충동도 흥미도 갖고 있지 않더라도 ― 생각하도록 ― 사색하도록 심한 강제를 받는 셈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색하는 정신은 엄밀한 의미로 말하면 외계(外界) 또는 어떤 경고(警告)에 의해서 속박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독서하는 정신과는 달리 자신의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독서의 경우와 같이 어떤 특정한 사상이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것은 그 사람의 천성과 그때의 기분에 맞는 것을 사색하기 위한 소재(素材)와 기회를 제공할 따름이다 ― 그러므로 다독(多讀)은 정신의 탄력성을 몽땅 잃게 한다. 오랫동안 용수철에 무거운 짐을 매달아 놓아두면 그 탄력성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턱대고 아무것이나 닥치는대로 읽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사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가 우둔하고 고상한 정신을 갖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의 학문을 쌓아감에 따라 점점 이 경향이 강해지고, 그들의 저작(著作)이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것도 이 안이한 길을 걷기 때문이다. 그들은 푸우프가 이미 말한 대로이다.
영원히 읽고 있을 뿐 읽혀진 적은 없었다. 학자란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사상가나 철학자는 인류의 눈을 뜨게 하고 그 전진을 촉진시키는 자로서 범(汎)세계적인 책을 직접 읽은 사람을 말한다.
본래 자기의 근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을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얻은 남의 사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나 남이 벗어 버린 헌옷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정신 속에 불타고 있는 사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사상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봄에 만발한 꽃과 화석(化石)이 되어 버린 태고(太古)의 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는 타인에게 사상을 유도해 내는 임무를 맡긴다. 대부분의 책은 그 지도를 받는 사람 앞에, 얼마나 많은 미로(迷路)가 있는가, 그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타고난 재질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 다시 말해서 자발적으로 올바르게 사색하는 사람은 올바른 길을 발견하는 나침반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서는 다만 자기의 사상의 샘이 고갈되었을 때에만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부득이 독서를 하는 경우를 곧잘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책을 읽을 목적으로 생생한 자기의 사상을 추방한다면, 그것은 성스러운 정신에 대한 반역이다. 그러한 죄인은 '식물도감'을 보고 동화판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넓은 자연으로부터 도피한 사람과 비슷하다.
이따금 우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애써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을 정리하여 겨우 만들어낸 진리나 견해가 우연히 수중에 들어온 책 속에 그대로 씌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여 획득한 것은 단지 읽어서 안 거에 비해 백 배나 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하여 비로소 그 진리는 우리들 사상의 전 체계 속에 없어선 안 될 구성 부분으로 또 유기적인 구성요소로 편입되어, 그 체계와 완전하게 긴밀하게 결합되어 그 근거와 결론이 모두 이해되며, 우리의 모든 사고방식의 색조 색채 그리고 특징을 띠게 된다. 또한 필요하다고 느낄 때 때맞추어 나타나기 때문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여 두 번 다시 사라져 버리는 일이 없다. 다음과 같은 시구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이러한 사실을 규명해 주고 있다.
그대가 그대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소유하려면 그것을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즉,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은 우선 자기의 학설을 세우고, 그런 뒤에 그것을 보충하는 다른 사람의 학설을 배우는데, 이것도 자기 학설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서적 철학자는 다른 사람의 권위있는 학설에서 출발하여 다른 사람의 학설을 책 속에서 수집하여 하나의 체계를 만든다. 그 결과, 이 사상 체계는 마구 끌어모은 재료로 만든 생명없는 자동인형과 같은 것이 되는데, 그것에 비하면 자기 자신의 사색으로 만든 체계는, 이를테면 갓 태어난 산 인간과 비슷하다. 그 태어난 방식이 산 인간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외계의 자극을 받아 임신한 정신에서 오랜 회임(懷妊) 기간을 거쳐 태어난 것이다.
단지 남에게 배워서 얻은 진리는 우리에게 부착되어 있을 뿐, 그것은 마치 의수(義手) 의족(義足) 의치(義齒), 아니면 초로 만든 코, 다른 살을 이용하여 졍형수술한 코 같은 것이지만, 스스로 사색하여 얻은 진리는 산 수족과 같은 것으로, 그것만이 정말로 우리 자신의 것이다. 사상가와 단순한 학자의 차이도 여기서 유래한다. 따라서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의 정신적 작품은 정확한 빛과 그림자의 배합, 부드러운 색조, 색채의 완전한 조화로 생생하게 약동하는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이지만, 이에 반하여 단순한 학자의 저작은 색채도 풍부하고 잘 배열되어 있지만, 조화가 결여된 무의미한 팔레트와 같은 것이다.
독서는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독서를 계속해 가면 다른 사람의 사상이 강하게 흘러 들어온다. 그런데 빈틈이 없을 만큼 완전한 체계에까지 가지 않더라도 언제나 정리된 사상을 스스로 창조하려고 하는 사색에 있어서 이처럼 해로운 것은 또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사사은 하나하나가 모두 남의 정신에서 싹튼 것이며, 다른 체계에 속하고 다른 색채를 띠고 있어서 스스로의 사색과 지식, 식견과 확신과 하나의 총체를 이루도록 합류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창세기의 비밀로서 나를 생각하게 하는 언어에 혼란을 일으켜 그런 것을 쌍아 넣은 정신으로부터 통찰력을 모두 빼앗아 버리고 유기적 조직의 대부분을 파괴해 버린다.
이런 상태는 많은 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상식이나 옳은 판단, 실천상의 분별에서 무식자들에게 뒤떨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학문은 없어도 경험이나 대화, 얼마 안되는 독서로 얻은 하찮은 지식을 언제나 자기의 생각으로 삼아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일을, 규모는 광범위하지만 과학적인 사상가도 행하고 있다. 물론 사상가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며,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있지만, 그 정신은 강력하여 이 모든 것을 동화하고 잘 다루어 자기의 사상체계에 병합시킬 수 있다. 즉 끊임없이 시계(視界)를 넓히면서도 유기적인 조직을 잃지 않는 장대한 통찰력에 의하여 그 재료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사상가 자신의 사색은 파이프 오르간의 기초 저음처럼 모든 음의 사이를 누비며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결코 다른 음에 의해 지워지는 일이 없다. 그런데 단지 박식하기만 한 사람은 모든 음색의 음악 파편이 서로 난립하여 기초 저음은 들을 수 없게 된다.
독서로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책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여행 안내서를 몇 권 읽고서 어느 지방에 정통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이런 사람은 많은 것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해 정리된 지식, 즉 명확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는 반대로 사색으로 일생을 보낸 사람은 문제의 고장을 진정한 의미로 알 수 있으며, 그 지방의 사정에 대해서도 정리된 지식을 가질 수 있고, 또한 내집처럼 정통할 수가 있다.
평범한 서적 철학자와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역사가와 목격자의 관계와 같다. 사색하는 사람은 사물에 대해서 직접 파악한 바를 말한다.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 사색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사상가들 간에는 근본적 공통점이 있다. 그 차이는 단지 입장이 다른 데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입장이 다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오직 객관적으로 파악한 것 이외에는 말로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든 여러 가지 명제(命題)가 역설적인 것처럼 생각되어 늘 주저하면서 대중에게 공포하였는데, 후에 똑같은 명제가 위대한 고인(古人)들의 저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일이 가끔 있다.
이에 반하여 여러 사람의 말과 의견, 나아가서는 그것에 타인이 가한 반론 따위를 보고하는 것이 서적 철학자의 일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비교하고 고찰하고 비판하여 사물의 진리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이 점에서 그는 비판적 방법을 무기로 삼는 역사가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라이프니쯔가 한때나마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었던 시대가 있었느냐 하는 따위의 연구를 시도하게 된다. 호소사가(好事家)를 위해 이런 종류의 명백한 실례로 헤르바르트의 <도덕 및 자연법의 분석적 해명>과 <자유에 대한 서한>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 자신에게 부과한 많은 노력을 알면 누구든지 깜짝 놀랄 것이다
. 왜냐하면 그는 단지 사물 그 자체를 안중에 둘 생각이라면 조금만 스스로 생각하면 곧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색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생각하는 일은 그렇지 못하다. 즉 사상과 인간은 같은 것으로서, 임의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외적 동기와 내적 기분, 긴장이 잘 합쳐져 조화를 이루면 자연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좀처럼 이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개인적 이해문제를 생각해 보면 해명이 된다. 무언가 그와 같은 사건으로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 멋대로 시간을 택하여, 앉아서 여러 가지 이유를 숙고하고 이제는 결심이 설 것인가 하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각이 좀처럼 집중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빗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억지로 생각해 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런 기분이 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뜻하지 않게 되풀이하여 생각하는 데 적합한 기분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다른 시기에 다른 기분으로 문제를 생각하면 그 사건에 다른 빛을 던져 주기도 한다. 이렇게 성과는 나무의 열매가 성숙하는 것처럼 점차적으로 성숙한다. 왜냐하면 사색이란 단번에 가능한 것이 아니고 단계적으로 나누어 할 필요가 잇다. 이렇게 하면 이전에 지나쳐 버린 것을 알게 되고, 사태를 확실하게 직시할 수 있으며 문제도 훨씬 수월해 보이고 혐오감도 사라지게 된다.
이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역시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독서에 이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독서는 정신에 생각하는 재료를 보급해 주긴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스스로 생각하는 대용품으로 언제나 우리가 가는 행방과는 달리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생각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많이 읽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이 대용품에 길이 들어 생각하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이 닦아 준 길을 잊어버려, 그 발자취를 다듬을 분 자기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멀어져 간다면 아무 일도 안 되기 때문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책을 읽는 데에 정신이 팔려 현실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것은 독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롤 스스로 생각하는 동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실존하고 있는 것은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색하는 정신에게는 자연스러운 대상이며, 아주 쉽게 정신을 자극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스스로 사색하는 사람과 서적 철학자는 이미 말하는 솜씨만으로도 쉽게 식별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즉 사상가의 특징은 진지하고 직접적 근원적이며 그 사상이나 표현, 모든 것에 독창성이 있다. 그러나 서적 철학자는 모든 것이 재탕이며, 개념도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 옮기는 것이고 잡동사니를 사 모은 꼴이며, 복사한 것에 다시 복사한 것처럼 희미하고 확실하지 못하다. 그리고 틀에 박힌 진부한 문구와 당세에 통용되는 유행어로 된 문체는 자기들 스스로 주조(鑄造)한 화폐가 없어서 외국 화폐만을 통용하고 있는 작은 나라와 비슷하다.
쇼펜하우어 - 독일의 철학자
염세사상의 대표자로 불린다. 단치히 출생. 은행가와 여류작가인 부모 덕택에 평생 생활에 걱정 없이 지냈다. 1793년 단치히가 프로이센에 병합되자 자유도시 함부르크로 이사하였고, 1803년에는 유럽 주유의 대여행을 떠났다. 1805년 그를 상인으로 만들려던 아버지가 죽자, 고타의 고등학교를 거쳐 1809년부터는 괴팅겐대학에서 철학과 자연과학을 배우고, G.E.슐체의 강의를 들었다. 이어 11년에는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J.G.피히테와 F.E.D.슐라이어마허를 청강하였으며,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의 네 가지 근원에 관하여 : 邦er die Vierfache Wurzel des Stazes vom Zureichenden Grunde》(13)로 예나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 때를 전후한 사교가인 모친 요한나와의 불화·대립은 유명한데, 이로 인해 햄릿과 같은 고뇌에 빠졌고, 그의 독특한 여성혐오, 여성멸시의 한 씨앗이 싹텄다. 바이마르에서 살면서 J.W.괴테와 친교를 맺었고, 그에게서 자극을 받아 색채론(色彩論)을 연구하여 《시각과 색채에 대하여 : 邦er das Sehen und Farben》(16)를 저술하였다. 또한 동양학자 F.마이어와의 교우(交友)로 인도고전에도 눈을 뗬다. 드레스덴으로 옮겨 4년간의 노작인 저서 《의지와 표상(表象)으로서의 세계 :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19)를 발표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20년에 베를린대학 강사가 되었으나, G.W.F.헤겔의 압도적 명성에 밀려 이듬해 사직하고, 22∼23년의 이탈리아 여행 후 31년에는 당시 유행한 콜레라를 피해서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옮겨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의 철학은 Ⅰ.칸트의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피히테, F.W.J.셸링, 헤겔 등의 관념론적 철학자를 공격하였으나, 그 근본적 사상이나 체계의 구성은 같은 ‘독일 관념론’에 속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론(論) 및 인도의 베다철학의 영향을 받아 염세관을 사상의 기조로 한다. 즉, 그는 칸트와 같이 인간의 인식의 대상으로서 눈앞에 전개되는 세계는 시간, 공간, 카테고리(category), 특히 인과율(因果律)이라는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의 형식으로 구성된 표상일 뿐,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계 전체는 우리들의 표상이며 세계의 존재는 주관에 의존한다. 세계의 내적 본질은 ‘의지’이며, 이것이 곧 물(物) 자체로서, 현상은 이 원적(原的) 의지가 시간, 공간인 개체화(個體化)의 원리(principium individuationis)에 의하여 한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물 자체를 인식불가능으로 한 칸트와는 달리, 그는 표상으로서의 현상세계(現象世界) 배후에서 그것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는 물 자체를 의지로써 단적으로 인식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의 원인인 이 의지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형이상학설을 배경으로 할 때, 인간생존의 문제는 이 의지에서 출발하여 인과적 연쇄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삶은 끊임없는 욕구의 계속이며, 따라서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로부터 해탈(解脫)하는 데는 무욕구의 상태, 즉 이 의지가 부정되고 형상세계가 무로 돌아가는 것[열반(涅槃)]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그는 이와 같이, 엄격한 금욕을 바탕으로 한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해탈과 정적(靜寂)의 획득을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로서 제시하였고, 또한 그렇게 하여 자아의 고통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 즉 동고(同苦:Mitleid)를 최고의 덕이자 윤리의 근본원리로 보았던 것이다. 그의 철학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염세관의 사조(思潮)에 영합하여 크게 보급되었는데, 의지의 형이상학으로서는 F.W.니체의 권력의지에 근거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의 사상으로 계승되어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밖에도 W.R.바그너의 음악, K.R.E.하르트만, P.도이센의 철학을 비롯한 여러 예술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참고 사항>
1) 포우프 : Pope, Alexander(1688∼1744). 영국의 시인.
2) 라이프니쯔 : 독일의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
3) 헤르바르트 : Herbart, Joh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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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의식이란 무엇인가 - 이삼열
역사란, 연대기(年代記)나 일지(日誌)와는 다르다. 역사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역사(geschichte, history)라는 말에는 이야기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있었던 사실들 가운데 의미 있는 시간들을 골라서 연결시킨 이야기를 말한다. 이야기에는 반드시 줄거리가 있다. 무엇을 줄거리로 삼을 것이냐 하는 것도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 수백 년 전이나 수천 년 전의 중세나 고대의 역사를 쓴다고 할 때, 누구를 주체로 하여 무엇을 줄거리로 잡느냐 하는 의식에 따라서 그 역사의 모양과 이야기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듣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에 우리의 고대사를 정리한 사가(史家)들이 주체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민족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료1)나 사실들을 무시했거나, 의도적으로 빼놓고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반성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아프리카 신생국에서 온 어느 유학생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어렸을 때 국민 학교에서 배운 역사에 의하면, 아프리카 대륙의 역사는19세기 중엽에 영국의 선교사 리빙스턴(Livingestone)이 건너와 선교한 때부터 시작이 된다고 한다. 그 전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부족과 문화·종교를 이루고 살아왔는가 하는 역사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역사는 아프리카인의 역사를 영국인이 이야기해 주는 역사이다. 말하자면, 남이 들려 주는 나의 이야기이다.
역사 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보아야 한다는 말은 실천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본다는 말이다. 역사는 아마도 이런 의지를 가질 때라야 바로 줄거리가 잡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적 사건들이나 사실들은 잘 연결이 되지 않고 혼돈과 무질서만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면서 이를 종교 개혁이라든지 시민 혁명이라든지 반동 정권이라든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미 어떤 역사적 실천 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개화기니 암흑기니 정체기니 하는 나름대로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도, 우리는 어떤 가치 판단과 실천 의식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시대를 분단 시대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우리 역사가 통일된 역사이어야 하겠다는 실천 의식과 의도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우리의 눈과 의식은 과거에만 향해 있지 않고 현재를 보면서 동시에 미래를 내다 보고 있다. 미래가 없다면 아마 과거를 돌이켜보는 역사적 안목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프리드리히 술레겔(Friedrich Schlegel)은 '역사가란 뒤를 돌이켜 보는 예언자2)'라고 표현했다. 역사 의식은 철저히 있어 온 과거의 사실, 그리고 오늘의 객관적 현실에 근거하면서 미래를 향한 실천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3)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부단히 만나고 대화를 함으로써만이 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진다고 할 때, 우리는 주체 의식이나 실천 의식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체적인 실천 의식을 가지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도 하고, 혁명을 일으키기도 하며, 저항 운동이나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일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때로는 질서와 안정을 지키려는 세력과 저항과 변혁을 일으키는 세력들이 모두 역사 의식을 내세우며, 주체적인 실천 의식을 강조하는 경우들도 흔히 있다.
같은 시대 속에 살면서도 같은 역사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를 실천 의식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쪽에서는 평등주의나 사회주의를 실천 의식으로 내세우는 경우에 우리는 어떤 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 의식인가를 알아 내기가 곤란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올바른 역사 의식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아야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의식은 아무에 의해서나 남용(濫用)될 수 있고, 또 악용(惡用)될 소지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역사 속에는 세상을 더 나쁘게 변화시키고, 개선(改善)이 아닌 개악(改惡) 시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윤리 의식(倫理意識)과 비판 의식(批判意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본다. 역사 의식이 아무리 시대 의식이나 주체 의식, 실천 의식을 지녔다고 해도 윤리적인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면, 우리는 이것을 올바른 역사 의식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역사 의식이 남의 자유를 짓밟고, 타 민족을 침략하게 되면 윤리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바른 역사 의식이 될 수 없다.
역사 의식을 강조하면서 추진했던 근대화 운동, 대약진 운동들이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린 채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수단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올바른 역사 의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또한 올바른 역사 의식은 항상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목표와 수단을 가진 실천 의식인가를 반성해 보며 검토해 보는 비판 의식을 수반해야 한다. 역사 의식은, 더군다나 주체 의식과 실천 의식을 강조한 나머지, 지나치게 편협하고 주관적인4) 가치 평가에 얽매이게 되기 쉽다. 이 점에서는 역사 의식이나 혹은 역사 의식을 강조하는 역사주의가 허위 의식(虛僞意識)이나 잘못된 이데올로기5)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하겠다. 포퍼는 이를 '역사주의의 빈곤'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실증적인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이기적 목적에 이용되기 쉬운, 주관적인 인식이 되기 쉽다고 포퍼는 경고했다.
▶주제 : 올바른 역사 의식의 형성을 위해 수반되어야 할 조건
(역사 의식은 윤리 의식과 비판 의식이 필요하다.)
▶내용 : 역사 의식은 과거와 현재를 토대로 미래를 향한 실천 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체 의식과 실천 의식만으로 형성된 역사 의식은 아무에 의해서나 남용될 수 있고 악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 의식의 형성에는 윤리 의식과 비판 의식이 필요하다.
1) 역사 연구의 자료.
2) 역사가는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예언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3) 예) 이육사〈광야〉, 까마득한 날에 ∼
4) 독선적인(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5) 사고 방식(사상,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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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
"우주의 전체 에너지 양은 일정하고, 전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려고 한다." 이것이 뜻하는 의미는 에너지를 생성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우주에서의 시간의 시작으로부터 종말에까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다. 제1법칙은 에너지의 보존 법칙이다. 에너지는 형태가 변할 수 있을 뿐이지 만들어지거나 없어지거나 할 수는 없다. 유명한 과학 평론가인 아시모프는 아주 간단한 예를 들었다. "일정량의 열을 일로 바꾼다고 상상해 보라. 그때 열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거나 또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되었을 따름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자동차 엔진을 생각하여 보자. '가솔린 엔진이 한 일과 거기에서 발생된 열과 그리고 배기 가스의 에너지를 합한 것'과 같다. 다시 강조하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에너지를 창조해 낸 적이 없으며, 또한 앞으로도 절대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에너지를 한 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 변환시키는 일이다. 모든 사물이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이러한 변환은 당연한 것이다. 물질의 형태와 모양 그리고 움직임 등은 에너지의 농도나 변화 등의 다양한 실체화에 불과하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열역학 제1법칙뿐이라면, 에너지를 한정 없이 쓴다고 하더라도 에너지는 바닥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일이 그렇지 않음은 우리 모두 익히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석탄을 태운다고 할 때, 그 연소 과정에서 에너지 총량에는 변화가 없으나 에너지는 탄산가스와 그 밖의 배기 기체로 변하여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에너지의 손실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다시는 그 석탄을 태워서 또 앞서와 같은 일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열역학 제2법칙에서 주어진다. 에너지가 어느 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변환될 때에는 반드시 모종의 불리한 상황이 부과된다는 것을 이 법칙은 천명한다. 그 상황이란 미래에 어떤 일을 하는데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이 손실됨을 뜻한다. 이것에 대한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이다.
에너지가 일로 변환되려면 반드시 에너지 농도의 차이가 있는 부분들이 계(界)에 존재해야 한다. 높은 농도로부터 낮은 농도로 에너지가 옮겨 갈 때마다 다음 번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 양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댐 위의 물이 호수로 떨어지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물이 높은 곳으로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동안 물은 전기를 일으키거나 수차를 돌리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바닥에 떨어져 버린 물은 더 이상 일을 수행할 수 없다. 바닥의 물은 아주 작은 물레방아조차도 돌릴 수 없다. 이들 두 상태를 가리켜 '사용 가능한 에너지' 그리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상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엔트로피의 증가는 이러한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를 뜻한다.
이제까지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논의는 에너지가 사용 가능한 상태로부터 사용 불가능한 상태로 변형되거나 또는 높은 농도로부터 낮은 농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루었다. 그런데 가장 심오한 방식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고찰할 수 있는 길이 또 있다. 고립된 계에서의 모든 에너지가 질서 있는 상태로부터 무질서한 상태로 에너지가 옮겨간다고 표현하는 것도 엔트로피 법칙의 서술이다. 에너지 농도가 가장 높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최대인 상태가 최소의 엔트로피 상태이며 또한 가장 질서 있는 상태이다. 반면에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완전히 분산되고 흩어져 있는 상태는 최대의 엔트로피 상태이며 최고로 무질서한 상태이다.
수필 읽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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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 피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 (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1]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로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시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 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1]영양(令孃) : 남의 집 딸에 대한 높임말 영애(令愛)라고도 함.
수필 읽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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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론(志操論)-변절자(變節者)를 위하여 - 조지훈
지조란 것은 순일 (純一)[1]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2]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3]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4]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5]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6]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慨歎)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驚醒)[7]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 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 민복(國利民福)[8]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9]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10]과 명리(名利)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 정치인(職業政治人)보다 지사적(志士的) 품격(品格)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衷情)[11]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공정(廉潔公正)[12]청백강의(淸白剛毅)[13]한 지사 정치(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14]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와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淫婦的)[15] 환락의 탐혹(耽惑)[16]빠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 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鰥夫)[17]가 사랑하는 옛짝을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18]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19]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의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제는 일찌감치 집어 던지고 시세(時勢)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口腹)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名利)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 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태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正道)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는 것은 분반(噴飯)[20]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것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自尊) 자시(自恃)[21]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22]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申丹齋)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 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 (韓龍雲)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談)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野黨)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23]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박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여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 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 때의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 (狹義)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 전선(野黨戰線)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의 치욕에 김상헌(金尙憲)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崔鳴吉)은 다시 민족 정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瀋陽)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 (士)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朴重陽), 문명기(文明琦)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24] 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日帝) 말기 말살되는 국어(國語)의 명맥(命脈)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의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 모음,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학회'가 국민총력연맹 조선어학회지부(國民總力聯盟 朝鮮語學會支部)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 이런 의미에서 좌옹(佐翁), 고우(古愚), 육당(六堂), 춘원(春園)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對日協力)의 이름은 그 변신(變身)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은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땜누에 이분들은 반민 특위(反民特委)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 것도 못하고 누명만 쓸 바에야 무위(無爲)한 채로 민족 정기(民族正氣)의 사표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이 있다 .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나 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 연산주(燕山主)의 황음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려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도 나중에는 화간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은가.
만근 (輓近)[25] 30년에 우리 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또 친구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책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同軌)[26]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율(律)[27]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났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는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쫓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 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잇거니와 ,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 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히[28] 깨우치라. 한일합방(韓日合邦) 때 자결(自決)한 지사 시인(志士詩人) 황매천(黃梅泉)은 정탈(定奪)[29]이 매운 분으로 '매천필하 무완인(梅泉筆下無完人)[30]'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 야록(梅泉野錄)에 보면, 민 충정공(閔忠正公)과 이용익(李容翊) 두 분의 초년 행적(初年行蹟)을 헐뜯는 곳이 있다. 우늘에 누가 민충정공과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기리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히 밀려오는 망국 (亡國)의 탁류(濁流) ― 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李完用)은 나라를 팔아 먹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少忍飢) [31]." 이 말에는 뼈 아픈 고사(故事)가 있다. 광해군의 난정(亂政)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 (淸談)으로 소일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赤貧)이 여세(如洗)라[32],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를 위하여 점심에는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찢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사실 얘기를 하고 초연이 하는 말이 가난이 죄[33]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서며 ,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反正) 때 몰리어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 (刑場)으로 가는데, 길가 숲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永訣)하였다.
그 때 그 친구의 말이 , 자네가 세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한 줄 이미 알고 방문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 밥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는 것은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 "소인기 소인기 소인기(少忍飢少忍飢少忍飢)하라"고 .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 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 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면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 (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도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34]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趙芝薰/1920.12.3~1968.5.17)
시인 . 본명 동탁(東卓). 경북 영양(英陽) 출생.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惠化專門)을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古風衣裳)》《승무(僧舞)》, 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데뷔했다.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하여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한 시풍으로 기대를 모았고, 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과 함께 46년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리게 되었다. 52년에 시집 《풀잎 단장(斷章)》, 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을 간행했으나 자유당 정권 말기에는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어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유명한 《지조론(志操論)》은 이 무렵에 쓰인 것들이다. 62년 고려대학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그 방대한 기획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서울 남산에 조지훈 시비(詩碑)가 있다.
[1] 순일(純一) : 온전한 하나의
[2] 확집(確執) : 자기의 주장을 고집함
[3] 위의(威儀) : 위엄 있는 태도나 차림
[4] 명리(名利) : 명예와 이익
[5] 일조 : 하루 아침에
[6] 곤고(困苦) : 힘들고 어려움.
[7] 경성(驚醒) : 타일러 일깨움.
[8] 국리민복(國利民福) : 나라와 국민을 이롭고 복되게 함
[9] 정상 : 정치 상인
[10] 구복 : 먹고 마심
[11] 충정(衷情) : 진심으로 우러나는 참된 정
[12] 염결공정(廉結公正) : 성풍이 맑고 깨끗하며 공정함.
[13] 청백강의(淸白剛毅) : 성품이 깨끗하고 뜻이 굳으며 씩씩함
[14] 타매(唾罵) : 침을 뱉듯 마구 꾸짖음
[15] 음부적 : 음탕한 계집과 같은
[16] 탐혹 : 어떤 사물에 빠져 정신이 흐려짐
[17] 환부 : 홀아비
[18] 속현(續絃) : 끊어진 현을 다시 이음. 아내를 여읜 뒤 재취함을 이르는 말
[19] 본능고 : 본능을 억제하는 고통
[20] 분반(噴飯) : 입에 있던 밥을 내뿜음. 참지 못하고 웃음을 이르는 말.
[21] 자시(自恃) :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믿음.
[22] 기벽 : 기이한 취미나 버릇으로 남과 구별되는 짓
[23] 교지(狡智) : 간사한 재주와 지혜.
[24] 타기(唾棄) : 더러워 침을 뱉는 것처럼 버림
[25] 만근(輓近) : 근래에, 최근에
[26] 동궤 : 동일한 궤도
[27] 률 : 다스림
[28] 번연(飜然)히 : 모르던 것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는 모양.
[29] 정탈 : 임금의 재결, 신하들이 올린 논의나 계책 가운데 임금이 가부를 결정하여 그 중 한 가지만 택함
[30] 매천필하무완인 : 매천의 붓끝 아래 완전한 사람이 없다. 매천의 날카로운 비평과 지조를 말함
[31] 소인기(少忍飢)하라 : 굶주림을 조금만 더 참으라.
[32] 적빈이 여세(如洗)라 : 너무나 가난하여 물로 씻어낸 것처럼 아무 것도 없다
[33] 가난이 죄 : 가난하여 생기는 좋지 않은 일
[34] 자임(自任) : 스스로 맡은 바. 임무.
수필 읽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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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로피 문명 - 장회익
1864년 독일의 물리학자 클로우지우스는 그의 저서 <역학적 열이론(力學的熱理論)>에 최초로 그 수학적 정의와 함께 '엔트로피'라는 용어를 도입하였다. 그런데 아마도 자연 과학 분야를 통틀어 보더라도 이 '엔트로피' 개념만큼이나 난해하고 심오한 개념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이 개념은 날이 갈수록 그의미가 심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제는 자연 과학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서 정보 이론, 지식 이론의 기본 개념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 엔트로피 개념의 도입과 그 의미의 확대
그러면 엔트로피란 어떠한 의미를 가진 개념인가? 우선 물리학에서 이해되는 개략적인 의미를 소개하면, 엔트로피란 대체로 어떤 대상계(系)1)가 가지는 '무질서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자연계에서 발견하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는 자연계의 모든 변화가 항상 무질서의 정도가 적은 상태에서 무질서의 정도가 큰 상태 쪽으로만 발생하며 그 반대 방향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흔히 열역학 제2법칙이라 불리는 이 기본 원리는 이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즉 고립된 계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화는 오직 그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발생한다.2) / 엔트로피의 개념
이제 이러한 상황을 에너지의 유용성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일정량의 에너지를 지닌 어떤 계가 있다고 할 때, 만일 이 계가 어느 정도 정돈된 상태3), 즉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에 있다고 하면 이 계는 좀더 무질서한 상태, 즉 엔트로피가 큰 상태로 변화하려는 경향을 지니게 되며, 우리는 이 변화 과정을 이용하여 그 에너지의 일부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계가 최대 한도의 무질서한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으면 더 이상의 아무런 거시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그 속에 함축된 에너지를 이끌어 내어 활용할 아무런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에너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계가 지닌 엔트로피가 얼마인가 하는 점이다. / 엔트로피와 에너지의 유용성
그런데 이 엔트로피라고 하는 것은 그 양이 많을수록 소망스럽지 않은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다. 마치 부채(負債)가 많으면 많을수록 소망스럽지 않은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엔트로피에 마이너스(-) 부호를 붙인 새로운 개념을 정의한다면 이것은 그 양이 많을수록 소망스러운 적극적인 의미의 개념이 될 것이다. 단지 이 때에 '네거티브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라는 용어가 너무 길어서 불편을 주어,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단축시켜 '네겐트로피(negentropy)'라고 명명하기도 하나 역시 좀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기왕에 단축시키는 김에 좀더 압축시켜 '네트로피'라고 부른다면 훨씬 더 간편할 듯하다. / 엔트로피라는 신개념의 도입
이제 '네트로피'를 '엔트로피'의 반대 부호를 가진 양으로 정의한다면 고립된 계 내에서 이것은 항상 감소만 있을 뿐 증가할 수는 없는 매우 소중한 양이 된다. 특히 이 네트로피의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서는 금세기의 뛰어난 물리학자 슈레딩거의 말 한 마디로 충분하리라고 생각된다. 슈레딩거는 그의 유명한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물이란 결국 네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4)라고 규정하고 있다. / 네트로피 개념의 중요성
그러면 이 네트로피를 증가시킬 방법은 없을까? 네트로피는 엔트로피의 반대 의미를 가지므로 계가 지닌 질서의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만일 어떤 귀신 같은 요물이 하나 있어서 이 계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운동 하나하나를 감지할 수 있다면, 이것이 단순히 분자 세계에서 적절한 교통 정리만 해 줌으로써 그 '질서'를 향상시킬 수 있고, 따라서 계의 네트로피를 증가시킬 수 있다.
이 요물은 흔히 '맥스웰의 요물'5)이라 불리는데, 이 요물이 이러한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는 오직 분자들의 운동에 대한 '정보'와 '네트로피' 사이에는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1948년에 미국의 통신 공학자 새논(Claude Shannon)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다가 정보라는 것이 바로 네트로피와 똑같은 수학적 표현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 발견은 객관적 사물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되는 '질서'라는 개념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속하는 '정보'라는 개념이 사실상 동일한 하나의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의미 심장한 내용을 지닌다.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하여 내일의 문명에 대한 하나의 암시를 얻게 된다. 우리가 만일 오늘의 문명을 '에너지 문명6)'이라고 부른다면 내일의 문명은 마땅히 '네트로피 문명'7)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힘과 변화를 상징하는 '에너지 문명'이 오늘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혜와 조화를 상징하는 '네트로피 문명'은 분명히 좀더 밝은 내일을 우리에게 약속해 준다. / 네트로피 문명 지향이 갖는 의미
▶주제 : 네트로피 문명의 건설
▶해설 : 이 글은 자연 과학에서 엔트로피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후 날이 갈수록 그 의미가 심화·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한 다음, 기존의 엔트로피 개념과 새롭게 등장한 네트로피라는 용어의 개념을 이해시키고자 한 설명문이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무질서의 질서'을 뜻하는 엔트로피 대신에 그 개념의 부정적 성격을 긍정 표현으로 바꾼 개념인 네트로피라는 용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내일의 문명은 지혜와 조화를 상징하는 '네트로피 문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일정한 상호 작용을 하거나 상호 관련이 있는 물체의 집합체.
2) 엔트로피의 증가는 에너지의 감소 또는 무질서의 정도 증가를 의미한다.
3) 엔트로피가 적은 상태.
4) 네트로피가 없으면 생명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
5) 분자들을 질서 있게 재배치하는 힘을 의미한다. (고립된 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네트로피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 즉 엔트로피를 감소 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6)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
7) 조화롭고 절제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