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잊기로 해요 (2002. 10. 18 바람새에서 펌
10여 년 전, 레코드 가게를 했을 때의 기억이다.
내가 했던 가게는 '오래된 음악 전문점'이라는 걸 강조했었고 위치도 10대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어서 장사가 영 신통치 않았었다.
난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라서, 수입이 변변치 않았으니 출근하면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고 마땅한 버스 노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3키로가 넘는 거리를 주로 걸어 다녔다.
가게 주변에는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많았는데-(그 직원들 음악 통 안 들어요.ㅎㅎㅎ)어느 날부터 증권회사 다니는 젊은이가 가게를 뻔질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린데다가 관심이라고는 오로지 여자애들한테 밖에는 없는 듯이 행동해서 내가 생각하던 '남자'의 범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에 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내 도시락을 뺏어 먹고 대신 근처의 식당에서 매운탕을 시켜 주는 것에 대해서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가 했던 말 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나이든 여자들은 징그럽다. 택시만 타려하고 밥을 먹어도 꼭 양식집에만 가자고 한다. 그런데 어린 여자애들은 버스를 태워도 군소리가 없고 쫄면만 사줘도 감지덕지 한다- 뭐 대충 그런 요지의 말도 있었다.
나이든 여자들 만나는데 택시 타고 다니기가 불편했던지 어느 날 그가 드디어 차를 샀다고 내게 자랑을 하면서 테이프를 부탁했다.
그는 자기가 산 차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하면서 차종이 <엑셀 BMW>라고 했고, 관심 분야가 아니면 거의 무식하기까지 한 나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난 사실 그때까지 자가용을 가진 부르조아를 애인으로 사귀어 본 적이 없었으니 차종에 관한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큰 차가 비싼 차라는 상식도 없어서 역시 근처의 은행에 다니던 어떤 남자가 자기 차가 상사의 차보다 커서 회사에 타고 오기가 눈치 보여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말조차 이해를 못했다.
차가 크면 기름 값이 많이 든다는 것도 몰랐으니 왜 그가 단지 큰 차라는 이유만으로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가게에 자주 오시던 분이 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CD와 테이프를 이것저것 권하면서 그렇게 좋은 차를 샀는데 최소한 이 정도는 들어야하지 않겠냐며 열심히 매상을 올려주었다. 난 좋은 차라고 하는 말에 얼른 아는 체를 하느라고 " 아~ <엑셀 BMW>군요!"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난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반응을 살피지 않았는데 지금 표현으로 얼마나 썰렁했을까 싶다.
아무튼 그렇게 나로 하여금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로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던 그 젊은이는 날마다 와서, 하루는"20대 초반의 아가씨가 들으면 뿅 가는 음악"을, 그 뒷날이면 또 "20대 후반의 아가씨가 듣고 뿅 갈 음악"을 찾아서 권하는 대로 몽땅 사들고 가곤 했다.
난 뭐 저런 바람둥이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큰 손님이라 친절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려고 할 때쯤에 들른 그가 시골에서 어머니가 오기로 해서 터미널에 마중가야 하니까 가는 길에 집에 태워 주겠다고 해서 드디어 그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엑셀 BMW>를 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타자마자 발밑에 뭐가 걸리적거리는 게 있어 보니, 바로 양산이었다.
내가 그걸 발견하고 깔깔거리며 그에게 건네주자 그는 어머니에게 들킬 뻔 했다며 그걸 나보고 가지라고 한다.
난 차라리 모자를 쓰고 다니면 다녔지 양산은 잘 안 쓴다고 했지만, 곧 어머니가 타실 텐데 버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그의 간곡한 권유에 할 수없이 그걸 받아서 나중에 비올 때 아마 우산으로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자주 가게에 들락거리던 그가 어느날 서울로 전근을 가기로 했다고 작별 인사를 하러 와서는 사귀던 여자들에게 들려줄 이별노래를 테이프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난 < 이젠 잊기로 해요>를 A면 첫번 째로 김완선, B면 첫번 째로 이장희 걸 넣고 그 외 여러 이별 노래를 섞어서 만들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
그는 서울에서 간간히 전화를 해서 내 안부를 물었고 내가 결혼하고 난 2년 후쯤 자기도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내가 두 번 째 아이를 낳고 나서 더 이상 수입도 없이 폼만 잡고 앉았을 팔자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과감히 레코드 가게를 정리하고 그래도 한 번 해봐서 만만한 카페를 다시 시작했을 때 어디서 알았는지 그가 가게를 찾아 왔다.
그리고 그 뒤로도 가끔 광주 올 일이 있어 왔다며 가게에 들렀고 전화도 해 주었다.
엊그제 토요일도 그가 친구와 함께 가게에 왔다.
난 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가 차에 대해 한 농담을 그대로 받아 들였던 나의 무식함을 고백했고 그 또한 너무나 재미있어하며 한 가지 비밀을 공개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좋아했었고 그걸 그의 친구들도 다 알았었다고 한다.
나만 몰랐었던 셈이다.
사실 그는 바람둥이라는 걸 빼면 꽤 그럴싸한 남자라서, 역시 바람둥이라는 걸 빼면 나무랄 것이 없는 내 후배에게 소개도 시켰을 정도로 난 그에게 사심이 없었다.
( 바람둥이라는 건 다른 장점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큰 결점이기도 하다.)
이제 아줌마 아저씨가 돼서 십년 만에 들은 사랑고백...
또래의 여자들도 징그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하던 그가 훨씬 더 연상인 내게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마땅히 자랑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다 한다. ㅎㅎㅎ
|
첫댓글여하간에 나팔님 입담도 알아줘야 한다니까근데..녹음해 줬다는 그노래 '이젠 잊기로 해요'가 이수만씨에게 준 학무님의 노래란 것은 알고 있었어요 음이곳 어디엔가 있는데..내가 찾아 들려줘야겠당 나도 그노래 참 했거든요
이 노래는 이장희님의 곡인데요. 아마 별들의 고향에 삽입됐을 거에요. 나중에 김완선이 리메이크해서 불렀고요. 학무님의 곡 이젠 잊기로 해요도 너무나 좋더군요...^^
바로 아래 대령해 놓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