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적벽(赤壁)
임병식 rbs1144@daum.net
일전에 화순지방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내가 소속해 있는 지역문학단체회원들과 함께한 동행이었다. 마침 화순적벽과 인접한 곳에 있는 고인돌 유적지도 돌아본다기에 출발 때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사실 적벽구경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여 년 전에 퇴임한 직장 옛 동료들과 함께 들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상수도 보호를 위해 철저히 통제를 하는 바람에 가까이는 가보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보고 돌아왔다. 더구나 고인돌 유적지는 일정에도 잡혀있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도 되고 눈에 담아올 것이 많지 않을까.
우선 마음에 드는 것은 새 집행부가 출범하고 첫 번째 문학기행인데, 준비를 철저히 한 점이다.사전답사를 하고 세밀한 일정조정과 음식준비, 의미 있는 이벤트 행사도 마련했다. 그것은 문학기행 행사인 만큼 7,8명씩 그룹으로 나누어 4행시를 지은 것이다.
이날 사실 나는 문학기행에 나서기는 다소 무리였다. 전일에 무릎을 다쳤는데 여간 통증이 엄습한 게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서 통증 완화제인 스트로이제 주사를 맞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따라 나선 건 확인할 것이 있어서였다. 직접 눈으로 어떤 실체를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그건 다른 것이 아니다.
나는 외람되게도 기존에 구축되어 있는 수석의 분류명칭에다 나름대로 하나를 더 추가한 바가 있다. 그것은 절벽경. 이전에는 산수경석의 명칭은 단봉형과 쌍봉형, 그리고 원산경과 평원석, 섬형과 토파형, 폭포석이 거의 다였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있는 수석 중에 절벽경이 보이는 것을 연출해 보니 색다른 맛이 있었다. 전면이 단애가 있고 그 외에 약간의 첩경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것을 분류하는 항목으로 넣으면 어떨까.
그것은 예전에 먼발치서나마 보았던 화순적벽이 영감을 주었다. 지금은 이것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1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뭍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내고 있다. 이것은 바로 볼만 한데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충분이 그 축소경인 것을 수석으로 대접할 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갖추어야 할 조건을 생각해 보았다. 그냥 밋밋한 절벽보다는 그것을 보완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거기에는 그런 것이 있을까. 그 적벽에 일정한 경을 품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먼저 찾아간 곳은 노루목적벽이었다. 이곳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는 3개 이상의 절벽경을 볼 수 있다. 먼저 타고 간 대형버스를 입구에 세워두고 20인승 봉고차로 갈아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입도 되지 않거니와 좁은 비포장 길에다 굴곡이 심해 위험구간이 너무 많았다.
드디어 마주한 전망대. 눈앞에 펼쳐진 선경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위로는 산세에 따라 나무들이 우거졌고 아래에는 절벽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데, 그 밑에는 흰 모래밭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연 승경이요 절경이라 할 만 했다.
맨 처음 이곳의 알아본 이는 기묘사화 때 귀양 온 최산두(崔山斗)선생이다. 그는 이곳에서 14년간 귀양생활을 하가가 해배가 되었는데도 계속 유배지를 떠나지 않고 눌러 살았다.
그다음 코스로 들른 곳은 '勿染亭'이란 현판 글씨가 선명하고 김삿갓 선생의 조형물과 시비가 대여섯 개가 세워져 있어 풍미를 더 하였다.
물염정이라는 문구는 예스로운 맛을 풍겼다. 이것은 이 정자의 주인공은 조선 명종 때 사람으로 예조정랑과 구례. 풍기군수를 지낸 송정순 선생이다. 물염(勿染)은 바로 그분의 아호. 세상의 어느 하나 물들지 않고 티끌하나 속됨이 없이 살겠다는 뜻으로 그 안에는 네 가지가 담겼다고 한다. 첫째, 산수의 즐거움과 풍류를 즐기되 미혹함에 빠지지 않고, 둘째, 혼탁한 시류에 물들지 않고, 셋째, 화려한 복식을 멀리하며, 넷째, 청렴한 생활을 하겠다는 다짐이란다. 새겨보면 얼마나 자기 절제와 당당한 품위를 담고 있는 말인가.
한편, 김삿갓은 화순을 사랑하고 적벽을 아낀 나머지 유랑걸식을 하면서도 세 번이나 이곳을 들렸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종명도 여기서 했다고 한다. 그 초장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그가 적벽을 다녀간 흔적은 보이는데, 이곳의 풍광을 읊은 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無等山高 /松下在 /赤壁江深/ 砂上流 ’즉, '무등산이 높다하되 소나무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하되 모래위로 흐른다.'라는 시구만 보일 뿐이다.
와서 구경하고 즐긴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이곳을 보고 시 한수가 없는 건 아쉬움이 컸다. 물염정에서 이루어 진 이벤트 행사는 내가 조장을 맡은 팀이 장원을 하게 되어 기분을 한껏 올려주었다.
귀로에서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확순 고인돌 군도 보게 되어 뜻 깊은 문학기행이 되었다. 그것을 보면서 무엇을 남긴다는 것.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의미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사람은 백년을 살지 못하지만 , 남긴 유적은 찬란하게 빛나니 세상의 오묘한 이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2022)
첫댓글 문하기행 다녀오신 보람을 뵐수있어서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잘보고 오시고 멋진수필 남기시니 감사합니다.
사무국장을 맡아 고생많았습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여 참여한 회원들이 칭찬을 많이 하더군요.
두 곳은 꼭 가보고 싶었는데 다녀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데 화순 다녀오셨군요
저는 아직 적벽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수석 사랑은 화순 적벽도 절벽경으로 변화시키신 듯합니다 무릎 보호에 신경을 쓰셔야겠습니다
용감하게 감행을 하긴 했는데, 다리가 아파서 아래까지는 내려가 보지 못했습니다.
화순적벽을 보면서 '적벽경'이 수석용어로 자라잡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런 풍광을 염두에 두고 이름을 붙였으니까요.
적벽과 고인돌 군락지 탐방은 많은 영감을 주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현대수필 2022년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