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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거는 내가 비유를 들어서 마음을 말한 것이고 사실은 부처님의 깨달음, 보리수나무 밑에서 정각을 이뤘다. 『화엄경』 첫 구절에 시성정각(始成正覺)하시니 비로소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해서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해가지고 쭈욱 설명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가 여기까지. 앞으로 남은 게 얼마나 많습니까? 『화엄경』
그동안 그 받은 『화엄경』들 그 열심히 읽고 계시죠? 내가 『화엄경』을 좋아해가지고 스님들에게 가르치고, 신도님들에게 가르치고 그래도 성이 안 차서 또 강설 책을 내 가지고 공부하기 좋도록 해서 그냥 막 나눠주잖습니까? 다 여러분들의 그 동참해 준 그런 그 덕택으로 마음 놓고 그렇게 법공양을 합니다.
법공양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제 여러분들은 매달 한 권씩 돌아가니까 아직도 3년 남짓 남았어요. 3년 5개월이 남았어. 계산 다 하고 있어요. 제가. 근데 책 완간은 언제냐? 내년 3월이야. 내년 3월이면 완간이 딱 돼. 그러면 여기 법당에다 탁 쌓아놓을 거라. 그래도 여러분들 주지는 않아. 그거는. 그거는 여러분들 한 달에 한 권씩 돌아가는 게 있는데 뭐할라고 미리 줘. 그래 이제 계획이 그렇게 돼있어요.
그래가지고 되면은 그걸가지고 힘닿는 데까지 그 또 받을만한 분들에게까지 그냥 막 법공양을 올릴려고 그게 이제 제 소원이고 저가 하는 사업이라. 그리고 불사고, 최후의 불사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루하루 세월가는게 아주 재미가 있어요. 내년 3월이면 책이 착 나와가지고 81권이 착 세트로 나와가지고 딱 법당에 촥 차려지고 또 필요한데 막 보내고, 대학 도서관에 보내고 스님들에게 큰 절마다 다 보내고 하는 거 그런걸 나는 꿈을 꾸고 있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보낼 데 생각나는 대로 이름 적고
그런 일들이 전부가 뭐라고?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작은 씨앗 하나에서 발전한 일입니다. 그거 다 깨달음 속에서 풀어낸 거요. 사실은. 전부가 깨달음. 이 『화엄경』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체 팔만대장경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그 위대한 씨앗에서부터 풀어져 나오는 그런 일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그 삼매의 자재, 불보살들의 깨달음의 세계에서의 그 삼매가 자유자재한 것은 그러니까 그 불보살들은 우리 몸에 들어왔다가 또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고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걸림없이 돌아다니는지도 몰라. 우리 모르게. 그 조심하고 살아야 돼. 불보살들이 선정을 통해서 들어왔을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하곤 다릅니다. 전혀 걱정할 게 없어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그 생각을 가지고 상상한다 하더라도 그 세계는 못 미쳐요. 그 세계는 못 미칩니다. 그 불보살들의 세계는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 시대에 사는 그 어떤 기사같은 것을 통해서 아주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그 사람들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요. 보통 우리 같은 범인들은 상상도 못 할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 상상도 못 할.
우리는 외국어 한 개를 그 하나쯤 이제 끝낼려고 평생 씨름을 해도 늘 기초에 머물러 있는데, 보통 5개 국어, 6개 국어를 식은 죽 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상상이 안되잖습니까? 1개국어 남의 나라 말 하나 터득할려고 평생을 씨름해도 내 입문서, 기초서 그것만 가지고 노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그런데 5개국어, 6개국어 식은 죽 먹듯이 공부하는 것 같지 않게 해 버려. 그런 사람들 많아.
성철스님만 하더라도, 성철스님만 하더라도 일어 알지, 중국어 알지, 영어 알지, 범어 알지 그 보통 좀 뛰어나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요 우리 일반인들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가진 지식은, 그 분이 가진 지식은 온갖 과학이라든가. 불교는 말할 것도 없고 유교, 도교는 말할 것도 없고 온갖 현대과학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무불통지(無不通知)여. 모르는 게 없어. 무슨 능력으로, 무슨 머리로 저렇게까지 아는가 싶을 정도거든요.
그 그런 것들이 다 따지고 보면은 한 마음에서부터 그렇게 이제 풀어내서 사는 사람이고 이제 우리도 그런 씨앗은 다 가지고 있어요.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걸 이제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 하는 그것만 남았을 뿐입니다.
여기 이제 삼매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해놓고 그다음에 이제 비유를 들어요.
12. 譬喩
(1) 譬喩不可能
一切如來咸共說하사대 衆生業報難思議며
諸龍變化佛自在와 菩薩神力亦難思니
欲以譬喩而顯示인댄 終無有喩能喩此어니와
譬喩不可能
비유(譬喩)로써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첫 구절은 그래요.
一切如來咸共說하사대 衆生業報難思議며
모든 여래(如來)가 모두 다 같이 말씀하시는데, 중생(衆生)의 업보(業報)가 불가사의해.
한 마음이 불가사의한 반면에 부처님의 능력도 불가사의하고 보살의 능력도 불가사의하고 우리 중생들의 업보가 또 불가사의해. 그 하루종일 좀 목석처럼 가만히 있으면은 덜 지을 텐데, 목석은 아니니까 불보살이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업을 짓는 반면에 우리 중생들은 그 나름대로 자기 아는 만치 자기 능력이 미치는 만치 온갖 생각 다 하고 온갖 행동 다 하고, 그게 이제 중생의 업보가 되는 거여.
그래 참 불가사의합니다. 난사의(難思議)라고 하는 게 불가사의하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이상은 업보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낱낱이 업보여. 낱낱이 업보를 짓는데, 그래도 우리가 『화엄경』 공부하는 이 업보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청정하고 훌륭한 그런 업보입니다.
그 이제 『화엄경』 공부에 이렇게 공을 들여놓으면은 지가 어디 가겠어요? 다음생에도 『화엄경』 공부하는 인연이 돼.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이치를 안 이상은 한 시간이라도 좋은 업을 쌓야 돼요. 한 시간이라도, 그게 남의 것이 아니고 전부 내가 지은 것이고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나에게 돌아올 거요. 그러니까 한 시간이라도 좋은 업을 짓고 좋은 말을 하고 신구의 삼업을 통해서 뭐 『화엄경』 쓰고 읽고 하면은 그보다 더 좋은 업은 없습니다. 그렇게 아시면 되요.
諸龍變化佛自在와 菩薩神力亦難思니
모든 용들이 변화(變化)를 일으키는 것 그리고 부처님이 자유자재한 것 그리고 보살의 신통력도 또한 난사(難思)라. 난사의(難思議) 그 말이죠. 불가사의하다.
그렇죠. 근데 맨 먼저 중생업보를 이야기해놨어. 뭐니 뭐니 해도 중생이 주인이야. 이 세상엔 중생이 주인이라구요. 중생 아니면 부처님도, 보살도 할 일이 없어. 그러니까 용 이야기했고 부처님 자재(自在)를 이야기 했고 보살의 신통, 신통력을 이야기한 거요.
중생과 용과 부처님과 보살들이 이게 동급이라. 업력이 불가사의하다고 하는 건 똑같애. 그들도 한 마음이고 우리도 한 마음이니까. 그러니까 그건 동급이야. 그다음에 이제 그렇게 해놓고
지자비유해(智者譬喩解)라 그랬어요.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안다. 그 말입니다.
欲以譬喩而顯示인댄 終無有喩能喩此어니와
비유로써 나타내 보임을 보이고자 할진댄, 마침내 비유로써 능(能)히 비유할 수 없다 그 말이여. 비유로써 능히 비유할 수 없다. 이것을 비유할 수가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불보살의 경계 또 중생의 업력의 경계 아무리 비유해 봐야 그건 끝내 비유로써 다 비유할 수 없다. 비유는 비유일 뿐이야. 사실하고는 거리가 많아요. 그러나 할 수 없이 이제 비유를 쓸 수밖에 없지.
그래 이제 눈 어두운 사람에게 “태양, 태양”하는데. “태양이 어떻게 생겼냐?”하니까 비유로써 무슨 뭐 큰 그 다라이 같다. 뭐 큰 세숫대야 같다. 이렇게 해서 이제 만져준다던지 그거 안 맞잖아요. 얼토당토 안잖아. 그렇지만 그걸 비유로 들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요.
그건 이제 너무 극단적인 비유이지마는
(2) 智者譬喩解
然諸智慧聰達人은 因於譬故解其義니라
然諸智慧聰達人은 因於譬故解其義니라
그러나 모든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그 비유를 인(因)해서 그 뜻을 이해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서 이해한다 이 말이여. 비유를 들어주면은 이해하는 거요. 뭐와 같다 이러면 그냥 총명한 사람은 이제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총명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비유를 아무리 잘 들어도 이해 못 하는 경우 있어요.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니까. 그래서 아주 근접한, 아주 가까운 비유도 있어요. 가까운 비유도 있지마는 그거 가지고 또 사실은 아니거든요.
(3) 聲聞의 神通譬喩
聲聞心住八解脫하야 所有變現皆自在라
能以一身現多身하고 復以多身爲一身하며
於虛空中入火定하고 行住坐臥悉在空하며
身上出水身下火와 身上出火身下水를
如是皆於一念中에 種種自在無邊量하니
彼不具足大慈悲하야 不爲衆生求佛道호대
尙能現此難思事어든 况大饒益自在力가
聲聞의 神通譬喩
그다음에 이제 성문(聲聞)의 신통비유(神通譬喩)라. 여기 이제 비유에 대해서 쭉 아주 상당히 길게 나옵니다.
聲聞心住八解脫하야
성문(聲聞)들은 마음이 팔해탈(八解脫)에 머물러서. 여덟 가지 해탈에 머물러서
所有變現皆自在라
있는 바 변화를 타나태는 것이 다 자유자재하다 그랬어요.
그러면 이제 성문들의 능력이라. 성문이 갖는 능력 팔해탈, 여덟 가지 이제 해탈은 뭔고 하니? 첫째는 마음속에 있는 어떤 그 사물, 빛깔, 모양에 대한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 바깥 대상의 어떤 빛깔이나 모양에 대해서 부정관(不淨觀) 옳지 않다 하는 생각을, 청정하지 못하다는 그런 관(觀)을 닦는 거요. 그러니까 마음 속에 있는 그런 어떤 그 경계, 대상을 버릴려고 부정관을 닦는 거.
그다음에 이제 마음 속에 색깔이나 모양에 대한 생각은 없지만 고 한 단계 높아진 거죠. 없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부정관을 닦는다. 없는 상태를 계속 확실하게 없도록 하기 위해서 부정관 그 청정할 정(淨)자입니다. 부정하다고 하는 그 정자요. 부정관을 닦는다. 부정하다. 대상은 무조건 부정하다. 깨끗하지 못하다. 좋은 거 아니다. 이렇게 이제 그 관을 닦는 게 소승들 관이니까. 보살은 이런 관 안 해요. 성문이나 이런 소승들, 소승불교에서는 하죠.
그다음에 또 부정관을 버리고 바깥 대상의 빛깔이나 모양에 대하여 청정한 방면을 주시하여도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 그 상태를 몸으로 완전히 체득하여 안주한다 그랬어요. 좀 점점 이제 그 관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는 형상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허공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간다. 또 한 단계가 더 높아져요. 이 소승들이 그 관법은요 이렇게 까다롭고 아주 그 힘만 들고 그래요. 보살행은 무조건 뭐 할 수 있으면 뭐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간단해요. 사실은. 그러나 실천하기는 더 어렵죠. 이 사람들보다 실천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다음에 다섯 번째는 허공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을 버리고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간다. 그랬어요. 허공은 무한하지. 그러나 거기서 또 한 단계 또 마음으로 돌아와 가지고 마음이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거. 예의주시하는 거.
그다음에 여섯 번째는 이제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을 또 버려버리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간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그렇게 이제 또 한 단계 더 높아지는 거죠.
그다음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시하는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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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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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일체 팔만대장경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작은 씨앗에서부터 풀어져 나왔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서 이해한다.
이 무서운 더위에도 녹화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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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과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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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