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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頭五詠 (2) 麗春 杜甫
麗春 (別種) 罌粟 양귀비(楊貴妃)
百草競春華, (백초경춘화) -온갖 풀들이 봄꽃 피우기를 겨루었지만,
厲春應最勝. (여춘응최승) -麗春이 가장 우월하였으니 이는 응당 그렇다 치고.
少須顏色好, (소수안색호) -나이 어리고 그에 따라서 姿色이 뛰어나 좋아하였고,
多漫枝條剩. (다만지조잉) -사랑을 지나치게 받아 제멋대로 자라니 긴 줄기 너무 넘쳤네.
紛紛桃李枝, (분분도리지)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것이 桃의 가지요 李의 가지들이고,
處處總能移. (처처총능이) -여기저기에서 능히 바꿔버릴 수 있는 조짐들 꽉 들어차 버렸네.
如何此貴重?(여하차귀중) -일이 이러하거늘 어찌하여 귀비만 소중하게 여긴 것인가?
卻怕有人知. (각파유인지) -두렵고 부끄러운 줄을 그는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네
<註釋>
麗春-(2)花名. 唐 杜甫《江头五咏·丽春》:“百草竞春华,丽春应最胜.”《广群芳谱·花谱二五·丽春》:
“丽春,罌粟别种也. 丛生柔干,多叶有刺,根苗止一类而具数色…颇堪娱目,草花中妙品也.”
楊貴妃-《旧唐书·后妃传上·玄宗杨贵妃》:“ 玄宗 杨贵妃 …… (아래 <參考1>글 참조)
春華-(1).春天的花。《汉书·叙传上》:“虽驰辩如涛波,摛藻如春华,犹无益於殿最.”
厲春-‘麗春’의 잘못 표기가 아닌가 한다. (위 ‘麗春’ 자료에 근거함). 따라서 여기서는 ‘麗春’으로
고쳐서 풀이를 하겠다.
顏色-(5) [good looks]∶女子的姿色, 回眸一笑百媚生,六宫粉黛无颜色。——唐· 白居易《长恨歌》
多-2.[동사] 초과하다. 늘어나다. 많아지다. 多个朋友多条路。 친구가 많아지면 방법도 많아진다.
漫-4. 没有限制,没有约束,随意:散~。~谈。~话。~步。~不经心。~骂(乱骂)。
~~(时间或空间没有边际,如“~~长夜”)。~游。
條-2. 泛称条形的东西:일반적인 긴 막대모양, ~子。面~儿。便(biàn)~儿。金~。铁~。
移-2. 改变,变动:~居。~易。~情(变易人的情志). ~动。潜~默化。
貴-양귀비
<參考 1>
楊貴妃(문화어: 아편 꽃)는 양귀비과의 한 해살이 꽃이다. 앵속(罌粟)이라고도 한다. 아편을 만드는
데에 쓰며, 농작물로 재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마약법에 의해 아편양귀비의 소지가 금지되어 있다.
양귀비의 씨는 빵, 베이글 등에 쓰이고, 씨를 기름으로 짜내서 쓰기도 한다. 씨에는 마약 성분이
거의 들어있지 않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0세기경 수메르인들의 공예품에서 양귀비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양귀비에서 아편을 추출하는 법은 고대 그리스인도 알고 있었는데, ‘오피움’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인들이 붙인 말이며, 이것이 중국인들에 의해 ‘아편’으로 음역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당 현종의 왕비였던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비길 만큼 아름다운 꽃이라 해서 ‘양귀비’로
이름 지어졌다. -네이버에서 ‘앵속’으로 검색-
罌粟이 ‘楊貴妃’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은 그 꽃의 아름다움도 있겠으나 ‘아편’의 害毒이 마치
楊貴妃로 인해서 唐 玄宗이 자신과 나라를 망친 것과 같기 때문인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杜 詩人이 이 詩를 지으면서 ‘麗春’은 玄宗의 ‘楊貴妃’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作詩한 것으로 보고
詩 풀이도 그리 하겠다는 것을 밝혀 둔다.
<參考 2>
唐 6代 玄宗은 736년 사랑하던 무혜비(武惠妃)을 잃고 失意에 빠져있었으니, 宮에는 후궁과 아리따운
궁녀들이 3천 명이나 있었으나 누구 한 사람 玄宗의 눈에 들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의 아들
이모의 妃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당시 56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또 제 중신들이
반대하는 것을 뿌리치고 그녀를 불러들여 자신의 곁에 두었다. 바로 이 여인이 楊玉環으로 당시
22세에 불과 했다. 5년 후 745년에 楊玉環을 貴妃로 정식 책봉하니 바로 이가 楊貴妃인 것이다.
玄宗은 楊貴妃에 푹 빠져 政事를 돌보지 않았으며, 모든 政務를 李林甫에게 맡기니 이들에 의하여
폭정이 일삼아지게 되었으며, 楊貴妃는 자신의 친인척들을 요직에 들게 하였으니, 세 언니를
玄宗에게 소개하여 玄宗은 이들에게 각기 韓國夫人, 秦國夫人, 虢國(괵국)夫人에 봉하게 하였고,
6촌 오빠 楊소를 요직에 들게 하고는 國忠이라는 이름까지 下賜 받게 하게하니, 楊國忠이
승승장구하여 정사를 농단 황폐화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개괄적으로 엮어 본 玄宗과
楊貴妃의 만남의 대강이다.
그렇게 국정이 황폐화 되다보니 드디어 755년에 북쪽 燕 지방의 지방관인 安祿山이 楊國忠을
토벌한다는 구실을 삼아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安史의 亂으로서, 반군이 파죽지세로 장안으로
몰려와 장안이 함락하게 되니 현종은 급히 서쪽을 향해 피신을 가게 되었고, 장안에서 100여리
떨어진 마외역(馬嵬驛)에 도착했을 때에 수행하던 병사들이 모든 것이 楊國忠 때문이라고 하면서
楊國忠의 목을 베고, 玄宗을 가로 막으면서 楊貴妃를 죽여야 한다고 하니, 玄宗도 할 수 없이
楊貴妃를 목매어 죽이는 것을 허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양귀비는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현종은 그를 못 잊어 참아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슬퍼하였다고 한다.
<解說>
위 <參考1>에서 밝혔지만 ‘麗春’을 唐 玄宗의 ‘楊貴妃’를 뜻하는 것으로 하여 풀이를 하겠다는 것을
前提로 둔다.
이 詩는 杜 詩人이 罌粟의 일종인 꽃 이름 ‘麗春’이 ‘楊貴妃’로도 불리는 것을 두고, 唐 玄宗의
楊貴妃를 주제로 하여 作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句-<參考 2>에서 설명했듯이 玄宗의 武惠妃가 죽자 현종이 실의에 빠져있어도 여러 후궁이나 궁녀
아무도 현종의 눈에 들지 못 했음을 말하는 것이고,
2句-玄宗이 楊貴妃를 취하게 된 일련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들어 양옥환이 양귀비가 된 것을 말한
것이고,
3句-양귀비의 나이가 어리고 자색 또한 뛰어나 현종이 총애하게 되었음을 말한 것이고,
4句-왕의 총애가 지나치니 양귀비가 제멋대로 행동하였고, 楊國忠의 국정농단을 말한 것이라 본다.
5句-‘挑李’란 楊國忠과 李林甫를 지칭하는 것으로, 현종이 楊貴妃에 빠져 국정이 권신인 李林甫와
楊貴妃의 6촌 오빠인 楊忠國에 의하여 전횡되고 있어서 그 폐해가 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6句-唐 조정에서 주변 지역을 다스리려고 둔 절도사가 힘이 커져 조정에 항거할 기세를 말한 것으로,
절도사는 당나라 때 변경을 수비하던 군대의 최고 수장을 말하는 데, 당황조가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열세에 놓이는 바람에 이전에 도호부가 설치된 곳보다 상당히 후퇴한 지역에
변경번진들이 설치되었는데 번진의 최고 수장은 절도사로 천보 원년[742]에는 변경에
10절도사가 설치되었다.
한편 개원 25년[737]에는 직업적 용병제도가 실시되었다. 사실 이러한 용병제는 당 조정에
강력한 재정적 압박으로 다가왔으며 변경에 주둔한 절도사의 권한은 오랜 주둔의 결과 점점
강해졌다. 당 조정 내부의 부패도 이런 절도사의 성장에 한 역할을 하였는데 현종 당시의
절도사 임명 원칙은 장성 밖은 무인, 안은 문신이었으나 이림보가 재상직을 맡던 19년간
[734~752]에 상황이 바뀌어서 과거 출신의 관료가 대병을 거느리는 절도사가 되는 것을 꺼려
대신 중앙에 영향이 없는 무관이나 이민족을 장성 내 번진으로 임명했고 이것이 안록산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절도사는 710년 하서 절도사가 설치된 것이 시초이며,
현종 때까지 10개가 설치되었다. 절도사는 민정과 군사 및 재정의 3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권력을
배경으로 당 황조에 반항하기에 이르렀다. -네이버에서 玄宗으로 검색-
7句-<參考2>에서 밝혔듯이 安史의 亂으로 쫓겨 마외역(馬嵬驛)에 도착했을 때에 병사들의 강력한
요구로 楊貴妃를 마지못해 죽이게 하고는 슬퍼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려 슬피 운
현종을 두고 말한 것이고, 이러한 것은 훗날 많은 시인묵객들에 의해 詠詩가 나오기도 한다.
8句-그런 현종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杜 詩人은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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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셨습니다.厲는麗로 바로잡았습니다.영물시의 풀이는 사물(정향,여춘)그 자체로하고 비유나 함축적인 의미는(양귀비,현종) 해설이나 상석에서 하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어떠신지요?
저 하나 때문에 선생님께서 자료를 찾으시느라 긴 시간을 보내신 것같아 죄송스런 마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丁香, 麗春 두편의 풀이하신 것을 감상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같은 名詩라도
그를 바라보는 각도의 수준에서 풀이와 맛이 천양지차임을 절감하였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은 가능한 고쳐보기는 하겠는데 자신이 없습니다.
글을 다 써고 올리려는데 날아가 버려 완성하는데 늦어졌습니다.검색해서 유익한 글들은 그냥 지나치면 언제 다시 보기 어렵고 다른 분들을 위해 모셔 옵니다.저 또한 공부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