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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군 군북면은 어떤 곳인가?
1950년 6월, 25 전쟁 개전 초기 낙동강 방어선이 형성된 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서 팔공산-보현산을 지나 장사해수욕장을
잇는 동부 산악지형은 국군이 담당하였고 왜관에서 함안-마산 진동리까지 미군 25사단이 목숨으로 방어했다
경북 칠곡군에는 가산과 유학산, 328 고지, 숲데미산이 대표적이었다면, 경남 함안군에는 661고지(상데미산), 방어산, 여항산과 서북산이 대표적으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661고지 그리고 여항산 전투:1950년 8월 들어 인민군 6사단은 주공격대상인 마산을 에워싸고 파상공세를 폈다.
이에 맞서 8월 14일 미 제25사단은 가야읍 서북쪽에 있는 십이당산(삼봉산)에서부터 남쪽으로 여항산·필봉·서북산·야반산
옥녀봉을 잇는 능선에다 진지를 구축하고 반격에 나섰다. 이 고지들은 마산을 사수하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십이당산(삼봉산~마륜산 270고지),의상대 뒷산인 661고지(미군은 전투산이라 부름),여항산,서북산,야반산,옥녀봉 등
함안지방 남서쪽 산악지대에서 주로 인민군과 미군간에 교전이 있었다.
전투가 가장 치열한 지역은 함안군 군북면 661 고지(상데미산)와 서북산 일대. 남하하는 인민군에겐 낙동강 돌파 교두보이고
아군에겐 낙동강 방어 보루여서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전략 요충지다.
하루에도 몇 번 고지의 주인이 바뀐 이 전투는 9월 하순까지 계속되었고
661 고지 전투는 19번 뺏고 뺏긴 전투 지역으로 피아간 5천 명 사상한 곳이다.
지금은 39사단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십이당산에서 66고지까지 마루금 산행은 불가한 곳
오늘 걷게되는 석교천은 함안군 군북면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데 6,25 격전지 중 아주 치열했던 방어산, 오봉산, 661고지,
미봉산을 품고 있으며, 가장 젊은 시절에 화려한 꽃잎처럼 사라져 간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백이산과 숙제봉이 있는데 조선 초기 세조 때 생육신(김시습, 조려, 이맹전, 원호, 성담수, 남효온)의 한분인 조려(趙旅)의
충절을, 중국 상나라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國) 왕자 백이, 숙제 형제가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
죽었다는데서 유래를 찾는다.
우리가 잘 아는 낚시의 신이라 불리는 강태공과 백이, 숙제 형제는 동시대의 인물이며 중국의 수양산은 충절과 절의의 상징이 되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아직도 설왕설래하는 중이다.
그리고 함안 군북면은 함안 수박의 최초 재배지로 알려져 있고 함안 수박은 국내 1등 수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제 충절과 호국의 땅 군북면으로 가볼까요
새벽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보니 경남 함안땅에 비소식이 없다.
가보자 함안으로
함안은 옛날 아라 가야국 땅이었으며, 6,25 전쟁 때 나라를 지킨 강력한 방어와 전투의 함안이다.
자가용으로 함안땅 군북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일기예보는 어찌 된 건가
군북면 사무소 앞에 주차하고 택시로 낙동정맥 오곡재에 도착한다.
군북면 택시가사님이 이곳까지 픽업 해주셨구요
현 위치에서 보는 전투산은 661고지이고
저짜 아래 미군이 북한군을 방어한 데서 유래한 방어산이 보이는군요
라인 따라 아주 치열하게 대한민국을 방어한 곳이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데
낙남정맥 마루금에 서서 준희 선배님과 죽천님께 인사드립니다.
아주 오래전에 제가 붙여둔 것 같아서 회수하는데
이제 별로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떨어진 나뭇잎보다 더 보기 흉합니다.
지나간 경로20km
음!~ 여기서 시작하는 석교천
나무들이 빼곡하니 시작부터 아주 걸판지게 반긴다
어디 한번 잘 놀다 가볼까나 하고 머리부터 들이밀고
첫 시작은 빼곡하게 시작하였고
작은 자갈돌이 길게 이어지는데 매우 미끄러워 자빠지고 넘어지길
무한 반복하는데 이런 건 반복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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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할 곳도 없고
오늘은 정면 승부를 하는데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들고
이 정도야 어디 가던 흔한 풍경이니 하며
피아간 19번이나 뺏고 뺏긴 661고지가 고개를 내밀고
저곳은 하루에도 몇 번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데 661고지 전투가 9월 하순까지 계속되다 결국 아군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쌍방 간에 수천 명이 넘는 목숨을 잃은 곳이다.
낙남정맥길에 갈길이 급하겠지만 여항산 가기 전에 꼭 한번 들러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물은 겨우 겨우 흐르고
계곡이지만
첫 번째 임도가 나타나고
잡목대신 비에 젖은 미끄러운 돌이 기다린다.
산에서 길이란
수많은 동물들이 이동하기 편리한 산정의 능선길을 이용하지만
대신에 천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다.
목적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능선길이 다니기 쉽고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걸 동물은 직감적으로 안다.
그 길에는 빼곡한 잡목속보다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을 알기에 최단 거리의 길을 이용한다
오늘 이 길은 짐승으로써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 아니며 짐승이 가끔 물 찾아 내려오는 길이며
물의 여정이 담긴 물길이다.
에너지와 음이온이 가득 나오는 계곡에서
그동안 걸었던 물길은 187번째이며 거리는 1만 1천 km
하천 하나에 평균 거리는 50km
하나 걸을 때마다 지역 역사 배움 하나씩 잡고 걸음 하는데
남은 하천들은 대부분 평균 거리가 20km 내외다.
쓰러진 나무들도 보이고
내려온 곳
내려온 곳
무슨 길인가
폭은 대략 1미터 정도이고 길게 이어진다.
계곡옆에서 만난 아기 산삼인데 내 것이 아니기에 그냥 두고 내려오며
누군가의 눈동자를 본다면 내가 마지막 눈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한마디 해주고 내갈길 간다.
나도폭포인데 길이가 꽤 길다.
수량이 많다면 볼만할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크고
가지런하게 쌓아 올린 돌축대가 보이고
좌, 우로는 온통 잡목과 가시덩굴이고
가운데 보이는 곳으로 잡목 속으로 7미터 가량 물과 함께 기어야 하는 곳
잡목 동굴을
빠져나오면 넓은 바위가 나온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은 언제나 좋고 음이온이 팍팍 나온다.
661고지 전투산에서 이어지는 능선길인데 한때 전사 자료를 찾기 위해 몇 번 지나 본 능선
전투산과 가야 할 하천길과 콩밭들
피바위에는 오곡마을의 아름다운 처녀가 달 밝은 밤에 아주 잘생긴 총각과 정신줄 놓고 데이트를 즐기는데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니 어라!~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게 총각이 아닌 천년 묵은 구렁이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야 구랭이 비키라! 며 총각을 밀쳤고
총각으로 변한 구랭이는 처녀를 강간하려 들어 놓지 않았다
둘은 머리채 잡고 "니도 죽고 나도 죽자"며
같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는 그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대부분 귀문둔갑하는 짐승들은 인간에게 잘 보이려 하는데
이곳에 살던 구랭이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산촌마을 콩밭들로 들어와 하천 따라가며 마을이 형성되고, 논이 만들어지고, 산길 따라 밭이 만들어지죠
마을에서 빠져나올 무렵에 만나는 하나하나 쌓아 만든 돌 축대가 정겹고
비 오는 날
하천으로는 수량이 없는 편이고 겨우 흐르는 정도의 수준이다
군북 얼음굴 입구에서
얼음굴은 식당 안쪽에 자리하는데 주인장분께서 엄청 친절하셨고
여름에 식당에 자리 잡고 막걸리 한잔 하면 무척 시원할 것 같다.
얼음굴은 사촌마을에 자리한다
오봉산 정상 북쪽에서 이어지는 쇠단산이 있으며
쇠단산은 쇠가 많이 나다보니 일제 강점기때 엄청난 량의 쇠를 캐갔다는 굴이다.
철대문이 있어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전체 길이는 200-300미터 정도이며
밖에서도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한낮이 건만 이곳은 12,7도를 가리킨다.
아주 시원하다 못해 추을 정도이다.
식당과 얼음굴
식당 한편을 지키고 있는 커피 자판기는 동전 없이도 꺼내올 수 있고
주인장의 배려가 이렇게 따뜻한 차 한잔 나눌 정도로 착하게 보인다.
오곡리(烏谷里) 마을의 지명은 신라말기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통영으로 가는 길에
먼 길을 오느라 피로가 겹치고 배도 고프고 오곡마을 뒷산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선생앞에 앉더니 닭다리를 주고 날아갔고
어머니를 그걸 드시고 힘을 내서 통영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마을이다.
저 멀리 군북 기차역이 보이고
보리밭과 그 너머 숙제봉과 백이산 방향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나오는 백이와 숙제 형제 이야기
행실을 깨끗하게 했음에도 굶어 죽은 두 형제 이야기
주나라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은나라(상나라) 주왕을 정벌한 이유는 주왕의 폭정에서 비롯된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백이와 숙제는 신하로써 군주를 친 무왕이 아주 잘못되었다며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라며 이꼴 저꼴 보기 싫다며 수양산에 고사리 뜯으러 갔다
주왕과 절세미인 달기가 무왕의 죽고 어느 날이던가 수양산에서 열심히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살던 두 형제 앞에 나타난이가 있었으니
"이것 보슈 주나라가 싫다며 떠난 두 분께서 어찌 주나라땅에서 자라는 고사리를 뜯어먹는가"라며 책망하자
한때는 고죽국의 왕자로써 임금 자리를 서로 양보하고 나라를 떠난 백이과 숙제 형제는 그 길로 곡기를 끊고 죽어 버렸다.
가족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권력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조선시대의 충신이셨던 매죽헌 성삼문 선생께서는 "수양산을 바라보며"라는 시에서
"백이와 숙제를 한탄한다
차라리 굶어 죽을지언정 그땅에서 나는 고사리를 캐 먹었다는 말인가.
비록 풀(고사리)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누구의 땅에서 생겨난 것이냐!~"
그냥 굶어 죽어라 이런 뜻인 것 같다.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지만 의로운 선비는 이름에 목숨을 건다는데
그래서 이로운 이는 일찍 세상을 하직하는 듯
함안 조 씨분들 사당
굵은 향나무와 은행나무가 입구를 지키고 있고 함안조 씨 제실 ,
사당인데 제사 기능보다 공부하는 제실이라고 한다.
함안조 씨 집안에는 생육신의 한분인 조려 선생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신 충의공 조종을 배출한 걸출한 집안인 데다
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재 선생 역시 함안조 씨 집안이다.
가는 길에 효성그룹 창업자인 만우 조홍재 생가에 들러
이분은 1926년 6월 10일 독립만세 운동 주모자 중 한 분 이셨죠
기둥으로 쓴 나무로 봐서는 오래된 집은 아닌듯하고 관리를 하시는 아저씨 한분이 집안을 관리하고 계신다.
담벼락에 기대선 지게와 농기구
이제는 일한곳이 없어 무한 쉬고 있는 중이다.
읽어 보시고
군북면에 들러
비는 소나기 수준이건만 옷은 이미 다 버린 상태라 오랜만에 흠뻑 젖으며 걸음 한다.
마트에 들러 우산을 사오기 보다 시원한 얼음과자 두개 사들고 나와
군북 독립운동 기념탑 앞을 지나며 1919년 3월 20일 5천 명의 군중이 분연이 일어나 독립만세 운동을 하시다가
장렬하게 산화하신 52인의 열사, 의사 지사님들의 영령을 모신곳이다.
숙연한 마음에 잠시 묵념하고
나주나씨(羅州羅氏) 부사공파 함안문중의 도산서원
시조분께서는 중국 은나라 백익의 후예로써 한나라 초에 나씨가 되었다는 그런 내용이다.
석교천
상류에는 하천 속으로 자갈이 좀 보이더니 아래로 내려오면서
물속 풍경은 보이지 않고
하천 3840개 중 하나인 석교천
그늘 없는 제방이건만 맑은 날에는 얼반 죽을 것 같은 길이 이어진다.
한여름에 이런 길은 숨이 막힐 지경으로 산속에서 푹푹 찌는듯한 더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던가 한여름에 이곳 함안천 걷다가 진짜 골로 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비가 오니 우산도 필요 없고 축축한 배낭에 , 몸을 하늘에 맡겨 보는 그저 즐겁기만 한길이다.
저짜 멀리 남강이 흐르는 곳 일 텐데
비가 오니 운치도 있고 시원해서 좋다.
한여름에는 "우산이 뭐지"라는 생각을 해보는 길도 좋을 듯
괘방산이나 제산령에서 흘러온 모로천이 합류를 하고
하천은 온통 풀밭이다.
축축한 풀밭 사이로 지날 때 느낌이 너무 좋고
길인가 싶지만 가보면 그게 길이다.
사람은 다니지 않았을 곳
짐승이라면 풀밭을 자유롭게 다녔을 길
좋은 길에서 이런 길을 만나 걸을 때는
스스로 잘 풀릴 것 같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고
어느 시점에서 한계를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하천길
멀리 그 너머로 경남 의령의 자굴과 한우 방향인 듯 보인다.
흐릿한 물속 풍경은 서해로 흐르는 어느 하천 물속 풍경인데
서해로 흐르는 하천을 걸을 때면 "왜 죄다 이 모양 이 꼴인지"라며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든다
끝나기 10분 전
아침에 예약해 둔 택시는 어디서 뭘 하시는지 연락이 안 되고
하는 수 없이 자율 방범대 분들께 군북면 택시 한 대 수소문하니 10분 뒤에 오신다며
커피 한잔하고 가라고 하신다
잠시 이야기 나누다가
석교천이 남강에 만나는 곳이며
아주 잘생긴 미남교가 코앞이다.
다리 건너가면 함안군 법수면 방향이고 이쪽으로는 군북면 월촌리 방향
물 흐르는 데로 가만두면 좋으련만 또 무슨 공사를 하시는지
멀리 남덕유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한 남강이 함양, 산청, 진주, 의령을 거쳐 이곳 함안에 도착했는데
남강은 경남에서 발원하여
경상남도땅만 오롯이 적히며 낙동강에 합류한다.
비가 오면 더 좋은 계절에 남강이 흐르는 곳에서 마감하고
10분 전에 예약해 둔 택시를 기다린다.
백세청풍(百世淸風)
서산(西山)
어산등림일 漁相登臨日 -어계 선조 산 오르신 날
계산 청부청 溪山淸復淸 - 시내와 산 맑고 깨끗하구나
후세수불앙 後生誰不仰 -후손 누군들 우러러보지 않으리
백세수풍성 百世樹風聲 - 백세토록 맑고 곧은 그 기풍을
후손 조삼규 고
청암
잠시 집으로 가는길에 찾아본 백세청풍 바위
함안 조 씨의 중시조로 모시는 생육신의 한 사람 어계 조려 선생을 뜻하며
백세청풍(百世淸風)은 변하지 않은 선비의 절개를 뜻하는 그런 내용이다.
다음 하천은 멀리 강경천으로...
첫댓글 아기 산삼은 방장님의 배려로 잘자라겠지요
수없이 많은 물길 잘정리하시고요 함안에 보리밭 정겹내요
수고하셨습니다
유튜브에서 오래 전 방송했던 6.25관련 영상 중 포항, 기계 탈환 작전, 비학산 전투 관련 영상을 보았는데, 살아 남은 학도병, 수도사단 노병들이 현장을 답사하면서 먼저 간 전우들에게 술 한잔 올리면서 목이 메여 말씀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고 숙연해 졌습니다. 저는 일행들과 히히덕 거리면서 비학산을 올랐는데, 이제 전투와 관련된 산을 오를 때는 먼저 산화하신 분들의 그때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면서 산행하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3구 산삼은 아직 아기로군요.
만달이나 두루부치 정도는 되어야 관심을 가질려나요 ㅎㅎ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잡목이 우거진 이번 글을 보니 그저께 산행이 생각납니다.
지난날 방장님이 추천해주신 어류산을 다녀왔는데
아마도 방장님이 다녀가신 그때보다 갑절은 더 우거진
가시덩굴과 잡목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호기심에 다니러 갔다가
평생 추억을 안고 왔네요 ㅎㅎ
글 사진 잘보고 갑니다.^^
빼곡해서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안보이는데...
그곳을 뚫고 물길을 찾아 들어가는 담대함~
여름철 어지간한 등로길도 우거져
욕 한바가지쯤 나오는데
저런 길을 걸으면 어떨런지...
아기 산삼의 사랑스러운 모습이며
스토리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진들 잘 보며
근데 고운 최치원 선생한테
까마귀가 닭다리를 주고 날아갔다는 이야기에
제 생각엔 혹시 너무 무거워서 흘리고 간건 아닐까~ㅎㅎㅎ
숙제봉과 백이산은 어쩐지 한번 가보고 싶어지며
그곳에 가면 고사리 찾아봐질듯 합니다^^
방장님.... 질퍽질퍽 비오는데
석교천 물길 걷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