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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8월 18일 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을 섬겼지만,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약탈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판관들을 세우셨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판관기의 말씀입니다. 2,11-19
그 무렵 11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알들을 섬겨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12 그들은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저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민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고 경배하여, 주님의 화를 돋우었다.
13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
14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겨 버리시고 약탈당하게 하셨다.
또한 그들을 주위의 원수들에게 팔아넘기셨으므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에게 맞설 수 없었다.
15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들이 싸우러 나갈 때마다 주님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심한 곤경에 빠졌다.
16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17 그런데도 그들은 저희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다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걸어온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다.
그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18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판관들을 세우실 때마다
그 판관과 함께 계시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억압하는 자들과 학대하는 자들 앞에서 터져 나오는 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그들을 가엾이 여기셨기 때문이다.
19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완악한 행실과 길을 버리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이번 주간에 독서로 판관기를 읽습니다. 구약 성경은 오경과 예언서와 성문서로 나뉘고, 예언서는 다시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나뉩니다. 전기 예언서에서 여호수아기 다음이 판관기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열두 지파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그리는 판관기는 시기상 이집트 해방부터 가나안 땅 정착을 거쳐 왕정 출현까지를 다룹니다. 판관기의 신학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개별 판관들 시대의 전통과 그들에 관한 전설과 자료로만 구성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집니다. 곧 ‘죄-벌-회개-구원’의 논리 구조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 같은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에 빠지고, 이는 하느님의 ‘징벌’을 불러옵니다. 어려움에 놓인 이스라엘의 ‘회개’는 판관으로 표현된 ‘구원자’의 파견을 부릅니다.
이는 왕정이 나타날 때까지 이스라엘 전체에 적용된 기본적 신학입니다. 그렇지만 판관기는 어떠한 역사적 연대도 직접적이거나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단순한 역사의 기록으로 볼 수 없지만, 판관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다른 사료와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관기가 전하는 전통들은 기원전 1200년에서 1020년 사이에 있던 것으로 짐작될 뿐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주인공들은 흠 없는 인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도덕한 모습이나 당시의 현실은 독자에게 충격과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판관들의 인간적으로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에서 하느님 백성에게 주님의 영을 받는 임금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다양한 은사와 주님의 영을 충분히 받게 될 기름부음받은이로서, 곧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구약의 메시아를 향한 기대는 마침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김상우 바오로 신부)
청빈 서약에도 불구하고 전혀 가난하지 않음을 가슴치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복음서를 읽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권고 말씀이 너무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너무 가혹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착한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나름 재물을 많이 축척하신 분들 중에 부자 청년처럼 실망하고 계시는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 전후 맥락을 살펴볼 때, 너무 슬퍼하거나 실망하지 않으셔도 될 듯 싶습니다. 울며 가슴치면서 예수님이나 교회 공동체를 떠나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만일 배우자와 여러 명의 성장기 자녀들,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계신 가장께서, 예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즉각적 행동으로 옮긴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본인이야 가장으로서의 힘겨운 십자가나 속세의 질긴 인연들 훌훌 털어버리고, 한 마리 어여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 버리면 마음이 홀가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게 될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겠습니다.
가장으로서 그보다 더 무책임한 모습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복음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며, 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나 품위를 저버리는 악덕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한 가정의 가장은 정직하고 양심적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재물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시대 앞에서,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안정적 재정 확보를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한 그리스도인 가장으로서 취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과도함’ ‘지나침’에 있습니다. 뭐든 적당해야 합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재물에 목숨을 걸며, 재물을 하느님 위치로 격상시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그토록 애써 쌓아 올린 재물이라는 탑에 깔려 제 명도 못 챙기는 사람 참 많습니다.
평생 한눈 한번 안 팔고 기를 쓰고 쌓아 올린 천문학적 액수의 재물을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억울해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는 사람들, 한 마디로 열심히 죽쒀서 개주는 사람들 참 많이 봤습니다.
넉넉해졌다면 주변도 한 번씩 돌아보면 좋겠습니까? 재물의 결핍으로 인해 하루하루, 아슬아슬, 삶과 죽음의 기로를 넘나드는 이웃들을 위해 관대히 나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자세야말로 제자됨의 모습이고, 완전한 자 되는 지름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고 외치며, 돈을 자신의 인생 여정 안에서 최고로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던 지닌 삶을 가슴 치며, 늦었지만 돈보다 더 가치있는 대상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다른 무엇에 앞서 좋으신 주님과 신앙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사람은 이미 완전한 자 되는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인생사와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주변 환경을 찬찬히 한번 살펴볼 일입니다. 과연 돈보다 더 우위에 있는 대상, 돈과는 비교가 안 되는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한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대상들을 찾아내고, 그 대상들에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더 깊이 사랑하는 노력, 그것이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황금만능주의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한 유다 청년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참으로 듣기 거북한 쓴소리를 건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말고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내 자리에서 주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 수녀회들을 방문해보면, 아프리카보다 더 혹독한 대한민국의 여름을 에어컨 없이 구식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며 살아가시는 수녀님들이 참 많습니다. 청빈 서원을 했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고, 너무나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도 크게 가슴 치며 오늘 우리의 청빈 생활을 진지하게 점검하고 성찰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작년에 마사지 의자를 한 대 마련했습니다. 뉴욕에 있을 때 유용하게 사용했습니다. 피곤할 때 그 의자에 앉아 몸의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전원은 잘 들어오는데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되는가 싶다가 안 되고,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는 전원 문제라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수리 기사에게 했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문제는 겉이 아니라 ‘리모컨의 선’즉 보이지 않는 접촉 불량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삶도, 신앙도, 때로는 ‘전원이 들어오는지’만 확인하듯 겉만 살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계명을 지킨다고 말하지만, 정작 내 마음 깊은 곳의 ‘접촉 불량’은 외면합니다. 고장 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면서, 문제는 늘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저는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미사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십계명을 잘 지킨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전원은 잘 들어오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 깊은 곳, 내면의 리모컨은 고장 난 채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연결이 끊긴 채, 형식적인 신앙을 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겉은 온전해 보이지만 내면은 단절된, 그런 상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도 그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율법을 잘 지켜온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겉모습 넘어, 마음속 진짜 문제를 꿰뚫어 보셨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오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재산 포기를 넘어, 청년의 내면에 있는 집착과 두려움을 직면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다 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신앙 리모컨은 하느님께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슬퍼하며 떠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접촉 불량’의 상태로 살아갑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려놓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하지만 믿지 않고, 미사는 오지만 변화는 거부합니다. 겉으로는 전원이 켜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느님과 연결된 마음의 리모컨은 고장 난 채일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백성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나라를 잃고 유배의 삶을 살게 되었을 때, 그들은 외세의 침략 탓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말합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신앙의 불성실 때문입니다.” 참된 회복은 언제나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은 겉모습의 개선이나 노력 이전에, 마음 깊은 곳에서의 진실한 회개와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종종 외부의 조건들 때문이 아닙니다. 나이, 건강, 가족, 상황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려놓을 용기, 따를 결단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라.” 하느님을 따르는 일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신앙의 리모컨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하느님과의 연결이 살아 있는가?” “혹시 겉모습만 남아 있고, 내면은 이미 단절된 상태는 아닌가?” 오늘 하루,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하느님과 깊은 만남, 진실한 대화, 내려놓음에서 시작되는 믿음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말하지 못한 고통과 두려움을 들으시고, 치유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기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고백하고 맡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님,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천일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의 영혼이 진심으로 당신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을 향하는 믿음을 살게 하소서.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 슬퍼하며 떠나는 부자 청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단 하나의 길>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8,21)
믿음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불신하는
벗에게
믿음이 되는 것
희망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절망하는
벗에게
희망이 되는 것
사랑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미워하는
벗에게
사랑이 되는 것
기쁨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슬퍼하는
벗에게
기쁨이 되는 것
살림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죽어가는
벗에게
살림이 되는 것
오늘의 성인
성 라우로 (Lauru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석공,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라우루스
성 플로로 (Florus)
활동년도 : +2세기
신분 : 석공,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플로루스, 플로리도, 플로리두스
그리스 전승에 의하면 성 플로루스(Florus), 성 라우루스(또는 라우로), 성 프로쿨루스(Proculus)와 성 막시무스(Maximus)는 일리리아(Illyria)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들이었다. 성 플로루스와 성 라우루스는 세인들의 말에 의하면 쌍둥이 형제였고, 성 프로쿨루스와 성 막시무스는 그들의 고용인으로 석공 교사였다. 그들은 이교도 신전 공사를 하던 중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는 이교 신상들을 끌어내리고 그리스도교 예배용 건물을 짓는데 사용함으로써 고발되었다. 결국 그들은 모두 리키니우스 황제에 의해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성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Alberto Hurtado Cruchaga)
신분 : 신부
활동연도 : 1901-1952년
같은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후르타도
성 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Albertus Hurtado Cruchaga, 또는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는 1901년 1월 22일 칠레(Chile) 중부에 위치한 비냐델마르(Vina del Mar)에서 태어났다. 우르타도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다 팔아야 했다. 그래서 우르타도와 그의 형제들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우르타도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된다는 것과 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받는 자애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산티아고(Santiago)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성모회(the Sodality of Our Lady)의 회원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유익을 증진시키며, 매 주일 오후마다 가장 불쌍한 이웃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17년 중등교육을 마친 후 우르타도는 예수회에 들어가기를 소망했지만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오후와 저녁에 일을 해서 가족들을 돌보면서도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병행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매 주일마다 그들을 방문하였다. 병역 의무로 인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의무를 완수한 후 1923년 초에 학위를 취득하였다.
우르타도는 1923년 8월 14일 치얀(Chillan)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하였다. 1925년에 그는 아르헨티나(Argentina)의 코르도바(Cordoba)로 가서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1927년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에스파냐(Espana)로 갔다. 그러나 1931년 에스파냐에서 예수회의 활동이 금지되자 벨기에(Belgium)의 루뱅(Louvain)으로 가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1933년 8월 24일 루뱅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35년에는 교육학과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벨기에의 드롱겐(Drongen)에서 종신서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거치는 제3수련기를 마친 후 1936년 1월 칠레로 돌아왔다. 그는 산티아고에서 성 이냐시오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그리고 가톨릭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성모회의 지도를 맡았고, 회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였다. 우르타도 신부는 자주 피정 지도와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적 지도를 담당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젊은이들이 사제성소에 응답하였다. 또한 그는 평신도들을 양성하기 위한 탁월한 방법에 대해 기고하기도 했다. 1941년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칠레는 가톨릭 국가인가?”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산티아고 대교구의 가톨릭 청년운동 지도신부가 되었고, 이어 전국적인 가톨릭 청년운동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직무를 창의성과 헌신과 희생으로써 수행하였다.
1944년 10월, 피정 지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난한 사람들, 특히 산티아고의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집 없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도록 호소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그의 요청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이 우르타도 신부에 의해 제안되어 집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가정과도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자선 활동의 한 형태로 잘 알려진 ‘그리스도의 가정’(El Hogar de Cristo)의 시작이었다.
그는 은인들의 도움과 헌신적인 평신도들의 열성적인 협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첫 번째 ‘가정’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여성들과 남성들을 위한 가정도 문을 열었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가정’에서 따뜻한 가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정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새로운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즉 어떤 가정은 사회 복귀를 돕는 센터를, 다른 가정은 직업학교를 겸하는 식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에서 영감을 받아 그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다.
1945년 그는 ‘소년의 집’(Boys Town) 운동을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숙고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6년은 그리스도의 가정 안에서 다양한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존속시키며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데 헌신한 시기였다. 1947년 그는 교회의 사회교리를 반영한 조합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칠레 노동조합연합(the Chilean Trade Union Association)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47년과 1950년 사이에 노동조합과 사회적 인문주의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세 권의 중요한 책들을 저술하였다. 1951년에는 예수회가 정기적으로 교회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전언’(Mensaje, Message)을 창간하였다.
그는 췌장암에 걸려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주 “주님, 저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백히 증거하기 위해 사용한 성 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 신부는 1952년 8월 18일 산티아고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예수회의 제3수련기 이후 칠레로 돌아와서 선종할 때까지 15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이룩하였다. 그의 사도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사랑은 가난하고 버려진 어린이들을 위한 위대한 사랑과 평신도들의 양성을 위한 계몽적 열정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사회 정의의 역동적 이해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1994년 10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5년 10월 2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헬레나 (Helen)
신분 : 황후
활동지역 :
활동연도: 250?-330년
같은이름 : 헤레나, 헬렌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Helena)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의 드레파눔(Drepanum)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270년경에 로마(Roma)의 장군인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를 만났는데, 그녀의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둘은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콘스탄티누스가 태어났다.
293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 중 한 명인 막시미아누스 황제 휘하에서 카이사르(Caesar)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헬레나와 이혼하고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붓딸인 테오도라(Theodora)와 결혼하였다.
306년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콘스탄티누스의 휘하 군인들이 그를 황제로 선포하였고, 312년 10월 12일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하고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후 그는 그의 어머니인 헬레나에게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칭호를 드렸다.
헬레나가 언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밀라노(Milano) 칙령을 반포하게 하여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투옥된 모든 신자들을 석방하였다.
그녀는 이때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든 일을 도우면서 수많은 성당을 짓고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 후 아들이 동서 로마제국 모두를 장악한 뒤에 만년에 접어든 헬레나는 326년경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성지에 오래 머물면서 골고타 언덕에 주님 무덤 성당(성묘 성당)을 세웠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의 상징은 십자가이며, 이콘에서 십자형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인은 오직 헬레나뿐이다.
그녀는 330년 8월 18일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Izmit)인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사망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안장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함께 5월 21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