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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 제왕의 첩]
1. 사냥터 – D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푸른 숲의 전경.
수풀 사이로 보이는 노루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뭔가 눈치 채고 솟아올라 달리기 시작하는 노루.
쏜살같이 노루를 쫒는 말 위의 성원대군. 노루가 지친 듯 속도가 줄자 활을 겨누고.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성원대군의 손등에 난 화상 흉터.
당겨진 활시위 너머로 성원대군의 매서운 눈초리가 노루를 쫓는다.
마침내 탕- 하고 시위를 떠난 성원대군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는데.
이 때 반대쪽에서 휘리릭- 날아오는 화살이 먼저 노루의 목을 관통한다. 이어 성원대군의 화살이 박힌다.
2. 숲 속 – D
노루 위에 걸터앉아 숨통을 끊는 권유. 우르르 달려가 권유를 에워싸는 성원대군의 수하들.
권유, 수하들을 힐긋 보더니 성원대군의 화살을 뽑아 바닥에 던진다.
수하1 : (화살을 주워들며) 감히 이 화살이 누구 건 줄 알고. 치도곤을 치기 전에 당장 물러서라.
권유 :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땅에서 돌을 몇 개 집어 들며) 어디 뺏어 보던가.
수하 하나가 몽둥이를 들고 접근하자 재빠르게 돌멩이를 날리는 권유. 얼굴을 감싸며 쓰러지는 수하1.
수하들, 권유를 향해 칼을 치켜들고 몰려든다.
땅에 박아놓은 정글도를 들고 일어서는 권유. 권유의 다부져 보이는 모습에 주춤하는 수하들.
멀리서 권유를 겨누는 활시위가 팽팽해진다.
뒤에서 말을 타고 오다가, 권유를 향해 화살을 겨누던 성원대군의 활.
화연 : (작은 무두칼을 뽑으며) 어째 오늘은 좀 조용히 넘어가나 했네.
뒤늦게 뒤쪽 숲에서 나와 권유 뒤로 가서 서는 화연.
성원대군의 시선이 머리를 질근 묶고 움직이는 모습의 화연으로 이동한다.
다시 시작되는 권유, 화연과 그 둘을 반쯤 포위한 성원의 수하들과의 경합.
이리저리 화연까지 방어해주는 권유의 몸놀림이 바쁘다.
성원대군의 활을 겨눈 눈에 화연의 동작 하나하나가 시야에 들어오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부시기만 하다.
활을 내려놓으며 말을 멈춘다. 보면,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성원대군.
성원대군(소리) : 멈춰라.
권유가 성원대군을 삐딱하게 올려본다.
권유 : 지체는 높으신데 눈은 영 나쁜가보군. 보면 모르겠소. 노루가 누구 화살을 먼저 받았는지.
성원대군 : 노루는 한 마린데 주인은 둘이구나. (웃으며 권유를 보며) 값은 후하게 쳐줄테니 내게 넘겨라.
화연 : 뭘 그리 귀한 거라고, 임자 있는 걸 그리도 갖고 싶소?
그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성원대군의 눈에는 화연의 모습만이 꽉 차있다.
3. 신 참판 집 - N
대청마루에 사냥해온 고기로 요리해온 독상을 마주하고 앉은 성원대군과 신 참판.
마당에는 돌팔매에 부상당한 성원대군의 몇몇 수하들이 치료를 받고 있고, 몇몇은 수북한 고기들 요리에 술이 거해있다.
집사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이면 격노하는 신 참판.
신 참판 : 권유가 안 보인다니?! 내, 이놈을 당장 끌어다 다리를 꺾어 놓아야..
성원대군 : 그만두십시오. 마침 댁이 가깝다하여 들른 것이지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여움 푸시고 잔을 드시지요.
아드님도 같이 한 잔하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신 참판 : 그 놈은 아들이 아닙니다. 소직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어 데리고 있습니다만..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을 고정하는 성원대군.
신 참판이 고개를 돌리면 화연과 금옥이 안주를 들고 들어온다.
안주를 금옥에게 올려 보내고 댓돌 옆에 멈춰서는 화연.
신 참판 : 제 여식 화연입니다. 변방으로만 돌다보니 예법에 어두워서.. 어서 인사 올리지 못하고.
다소곳이 목례를 하는 화연. 무심코, 술잔을 들고 있는 성원대군의 흉터를 물끄러미 본다.
시선을 느낀 성원대군이 당황하여 흉터 난 손을 슬쩍 소매 자락으로 감춘다.
무심한 듯, 애처롭다는 듯, 복잡한 마음을 담아 보는 화연의 시선에 당황하는 성원대군.
집안 문틈 한 쪽 불만 가득 이런 사랑채를 보고 있는 권유.
4. 안채 - N
안채로 들어서는 화연. 어두운 나무 그늘에서 누군가 화연을 낚아챈다.
화연 : (권유의 헤드락을 가볍게 풀어 역공격하며) 꼼짝 말고 숨어 있으라니까.
권유 : (화연의 공격을 방어하며) 내가 뭘 잘못했는데?
화연 : 대군하고 얼굴 마주쳐 봤자 좋은 일 하나 없잖아.
권유 : 대군? 그런 줄 알았으면 거기서 한 방 쥐어박는 건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재빨리 나무 그늘로 몸을 피하는 두 사람.
술상을 돌보느라 안주를 들어 나르는 화연의 몸종 금옥, 몰래 안주를 집어먹으며 주위를 살핀다.
나무 뒤에서 화연과 몸을 밀착시키고 있던 권유, 못 견디겠다는 듯 화연의 입술을 찾아 입을 맞춘다.
어쩔 수 없어 안겨있던 화연, 금옥이 지나가자 냅다 권유의 급소를 걷어찬다.
급소를 잡고 그대로 주저앉는 권유.
권유 : (엄살을 섞어서) 어디 서방님 물건을...
화연 : 급제할 때까진 안 된다고 했지.
권유에게 눈을 흘기며 안으로 총총히 들어가는 화연.
나무를 잡고 간신히 일어서면서도 그런 화연이 밉지 않은지 미소 짓는 권유.
권유 : (화연의 뒤통수에 대고) 이번 무과 급제하면 아버님께 말씀드린다.
누가 들으면 어쩌냐는 듯 놀라서 돌아보는 화연. 조용히 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런 권유의 모습이 싫지 않은지 미소 짓는 화연.
5. 대비전 - D
대비(소리) : 요즘 들어 네 글 읽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구나.
대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성원대군.
감정이 담겨있진 않지만 단호한 표정을 한 대비의 얼굴.
대비 : 사냥에만 정신이 빠져 밖으로만 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
성원대군 : (당황하여 조심스럽게) 공부와 사냥을 같이 하는 것은 문약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반 사대부 집안에서도...
대비 : 내가 지금 몰라서 묻는 것이냐. 자하문 밖 신 참판 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는 이유가 무엇이냐?
사냥은 핑계고 그 집 여식 때문이 아니더냐.
성원대군 : 어마마마께서 어찌 그것을...
대비 : (어르듯 태도를 바꿔) 너 같은 이복형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궐에서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모르느냐?!
다시는 꼬투리 잡힐 일 하지 마라.
성원대군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는 대비의 얼굴.
CUT OUT-
대비를 보고 앉은 왕. 대비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고 한눈에도 무척 쇠약해 보인다.
왕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는 대비가 경대를 보며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대비 : 이렇게 매일 문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 : 아침, 저녁으로 자전께 문안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대비 : 여전히 자전이라고 하시는군요. 꼭 제가 딴 맘이라도 품을까 감시하시는 것 같아 심히 불편합니다.
왕 : 감시라니요?
대비 : 아직 후사도 없으시고 후궁도 들이지 않으시니, 제가 딴 맘을 품어 전하께 권하지 않는다고들 한답니다.
왕 : 먼저 간 사람에게 미안해서 그런 것이지 다른 뜻이 있어서는 아니옵니다.
대비 : 허나, 아무리 계모라 해도 어머니 역할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제 입장도 헤아려 주시지요.
왕 : ..그럼, 자전께서 계비 자리를 알아봐주십시오.
비로소 눈을 들어 왕을 바라보는 대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다.
대비 : 가례도감을 설치해서 단자를 받으라하지요.
6. 신 참판의 집 - N
불이 다 꺼져있는 신 참판의 집. 누군가 쿵쿵 문을 두드린다.
불이 하나씩 켜지더니.
집사(소리) : 뉘시오?
집사가 문을 열어보면 말을 잡은 듯, 기댄 듯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이 서있다.
등불을 비춰보니 성원대군임을 알고 넙죽 인사하는 집사.
하인들을 앞세운 신 참판이 나온다.
신 참판 : 아니, 대군.
성원대군 : 따님 좀 뵙고 싶습니다.
신 참판 : 밤이 깊었으니 날이 밝은 후에 보시는 게..
성원대군 : 왜 그러셨습니까?
신 참판 : 무슨 말씀이신지...?
성원대군 : 꼭 그리 하셔야 했습니까?
신 참판 : 거참, 저도 난감합니다.
성원대군 :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저하고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신 참판 : 그거야.. (난처한 듯 주위를 살피며)
성원대군 :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어떻게,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신 참판 : (부축해서 가며)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난감한 신 참판. 성원대군을 붙잡고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대문 밖으로 나와 주변 이목을 경계하고 문을 닫는 집사.
하인 하나가 성원대군의 말을 살살 이끌고 조심스레 어디론가 사라진다.
7. 궁궐 욕실 - N
화연 옆에서 겹겹이 둘러 싼 궁녀들이 옷을 하나씩 벗겨 낸다.
멍하니 몸을 내맡긴 화연의 몸을 인형을 씻기듯 곳곳을 수건으로 닦는 김상궁과 나인들.
화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잠시 마음을 고른 화연, 상궁들에게.
화연 : 이리 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김상궁 : 목욕에도 절차와 법도가 있습니다.
화연 : 내 몸 하나 마음대로 못한단 말입니까.
슬픔이 어린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측은한 마음에 조용히 물러나주는 김상궁과 나인들.
목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화연.
욕실 밖에서 안을 바라보다 벽에 기대어 슬픈 표정을 한 성원대군, 주먹을 부르르 떤다.
대비(소리) : 이제 왕의 후궁이니 잊어라. 힘이 없으면 그렇게 뺏기는 거다. 뺏기지 않으려면 힘을 가져야 한다.
화연의 떨어진 눈물이 욕조 안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타이틀 <후궁 - 제왕의 첩>
8. 침전 – D
어의가 앙상한 왕의 손목을 잡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전보다 병색이 완연해진 왕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며 머리맡에 앉은 어린 왕자(5세)를 바라본다.
어두운 얼굴로 그런 왕을 지켜보는 화연. 제법 중전으로서의 갖춰진 모습이다.
이 때,
대전내시(소리) : 전하, 성원대군 들었사옵니다.
힘겹게 기대앉은 왕 앞에 앉은 초췌한 모습의 성원대군, 화연 쪽을 보지 않으려 애쓰는데.
왕 : 통 볼 수가 없더니.. 아우는 어딜 그리 다니셨는가.
성원대군 : 특별한 거처 없이 두루 다녔습니다. 전하 옥체가 수척하시어, 민망하옵니다.
왕 : 며칠 불편하더니 아우를 보니 한결 낫다. (부러운 듯, 뭔가를 떠올리듯) 궐 밖은 어떻던가.
성원대군 : ..날이 좋아 보리가 잘 여물고 춘태가 풍어이옵니다. 전하의 백성들이 꽃을 따서 술을 담그고..
화연의 붉은 치맛자락이 시야에 들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성원대군.
성원대군 : ..매화꽃 아래서.. 장가를 들었나이다..
희미하게 떨리는 입술을 깨문다. 조심스레 바라본 화연의 얼굴은 성원을 모르는 듯, 차갑게, 멀게만 느껴진다.
9. 중궁전 - E
어두운 후원에 활짝 핀 매화가 석양을 받아 빛난다.
큰 창을 열어놓고 어색하게 마주앉은 성원대군과 화연.
성원대군, 소매 안쪽에서 은갑을 슬쩍 꺼내 본다.
화연 : 대군께서 궁 밖으로 떠도시니 대비마마의 걱정이 크시옵니다.
성원대군 : (화연의 눈치를 보며 은갑을 다시 소매 속에 넣고는) ..제가 궐에 있는 것이 중전마마와 조카에게
짐이 될 지도 모릅니다.
성원대군이 은갑을 만지작거리며 선뜻 꺼내놓지 못하는데.
그런 움직임에 시선이 가는 화연.
화연 : 짐이라니요. 전하께서 저리 반기시는데. (성원대군의 손을 바라보며 무심히) 상처가 많이 옅어지셨습니다.
성원대군 : (잠시 멈칫하고 이내 자기 손을 보고는) ..심기 불편하신데, 눈치 없이 너무 오래 앉아있었습니다.
일어나 슬쩍 은갑을 서안 옆으로 밀어놓고 일어난다.
화연, 은갑을 열어보면 섬세한 은세공에 피어나는 꽃봉오리 모양으로 반짝거리는 투명한 금강석과
찰랑거리는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한 쌍의 뒤꽂이.
은갑을 닫고 문틈으로 멀어지는 성원대군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흔들리는 화연의 눈동자.
탁 탁 -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10. 숲 속 (회상) - D
목검으로 합을 맞추며 대련하고 있는 화연과 권유.
조금씩 갈매나무 쪽으로 밀리는 화연. 그러다 넘어지면서 갈매나무를 부여잡는다.
화연 : 아얏!!
권유(소리) : 거 봐, 조심하랬잖아!
나무 밑에 화연을 앉히고 손가락의 피를 빨아내는 권유.
피- 입술을 내밀면서도 그런 권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화연의 눈길.
옷에 있던 띠를 풀어 화연의 손가락에 동여매주는 권유.
권유 : 이건 갈매나무야.
화연 : 갈매나무?
권유 : 가지 끝이 점점 뾰족한 가시로 변하거든. 거기다 이 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어.
화연 : 그래? 그럼 이건?
권유 : 열매가 있으니 암그루겠지. 나도 아직 숫그루는 보지 못했어.
화연 : (입을 삐죽거리며) 하여간 모르는 게 없다니깐.
권유 : (웃으며) 너도 누구도 믿지 말고 스스로를 지켜야 해. 네가 지금은 비록 꽃처럼 연약한 아녀자라 할지라도
이 갈매나무처럼 가시를 품고 있어야해.
화연 : 나한테는 네가 있잖아.
그런 화연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권유.
11. 중궁전 후원 - D
회한에 찬 눈길로 고개를 돌리는 화연.
햇빛을 받으며 날아다니는 흰 나비 한 쌍을 쫓는 왕자를 따라 시선을 돌리면 사방이 녹색 물결이다.
눈이 부신 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그 옆에서 혼자 들뜬 금옥.
금옥 : 그럼 숫그루는 어디 있데요?
화연 : 글쎄다.. 죽지 않았다면.. 어디 깊은 산속에서 눈을 맞으며 봄이 오길 기다리고 있겠지..
촉촉해진 눈으로 저 멀리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화연.
12. 빈청 (중신들의 회의소) - D
빈청 앞에서 누군가의 귓속말을 듣는 윤종호. 30대 후반 가량의 젊고 다부진 모습이다.
빈청에서 들려오는 중신들의 논쟁 소리.
윤종호, 안쪽을 흘깃 보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빈청으로 들어간다.
신 참판 : 전하의 몸이 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전하를 시해하려고 한 겁니다!
윤기견 : 시해라니요? 말을 삼가십시오. 전하께선 원체 기력이 쇠약하지 않으십니까.
윤종호 : (들어와 앉으며) 자, 다들 그러지들 마시고 어의의 말씀을 좀 들어 봅시다.
어의 : (윤종호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워낙 종기 때문에 기력이 약해지신데다 음식을 잘못 드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임 : 음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신 참판 : 그렇다면 수라간 상궁을 문초해서 어떤 연유인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고원익 : 참으로 딱하십니다. 그런 것은 전하께서 일어나시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윤임 : 그게 무슨 가당찮은 소린가! 진실을 밝혀내 바른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야.
김사령 : (윤종호에게 눈짓을 보내며) 할 수 없지요. 좌상께서 그리 말씀 하시니..
초조해 보이는 신 참판이나 윤임에 비해 냉정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윤종호.
신 참판(소리) : 뭐라? 수라간 상궁이 어디 있는지 아는 자가 없다니?
13. 수라간 - D
당황한 신 참판이 수라간 상궁을 찾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윤종호.
신 참판, 대전 수라일지의 중간 부분이 예리하게 찢겨진 것을 발견한다.
윤종호가 밖에서 의금부 군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며 품 안에 일지를 숨긴다.
14. 복도 - N
큰일이 난 듯 종종걸음을 재촉하며 복도를 오고가는 내시들과 상궁들.
어떤 행차 신호에 갑자기 분주한 걸음들을 일제히 멈추며 바닥에 납작이 엎드리는 내시와 상궁들.
대단한 위세로, 트여진 복도를 지나 왕의 침전으로 가는 대비와 성원대군, 윤종호, 윤기견, 김사령, 고원익.
그 뒤를 따르는 박상궁 외 궁녀들과 내시들.
복도 끝 침전 문 앞에 꿇어 앉아 있는 윤임과 신 참판.
15. 침전 - N
침전 안 왕의 머리맡에 승전색이 앉아 있고
초췌한 얼굴의 화연이 왕의 머리를 받치고 입에 약을 떠 넣지만
의식이 혼미한 왕. 약의 태반을 삼키지 못하고 흘린다.
어의 옆에 앉아 있다가 꾸벅꾸벅 조는 어린 왕자.
대전내시(소리) : 전하, 대비마마 납시옵니다.
이 때,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더니 결국 피를 토하는 왕. 왕을 안고 있던 화연의 손바닥이 피로 흥건하게 젖는다.
화연 : (파르르 질리며) 전하!!
침전 밖 윤임과 신 참판, 문을 막듯이 대비 일행 앞에 꿇어 엎드린다.
윤임 : 마마, 주상전하의 용태가 심히 위급하시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비 :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난 주상의 어미입니다. 비키세요.
미동도 하지 않는 윤임과 신 참판 일행.
침전 안 대비의 목소리를 듣고 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는 화연.
침전 밖
대비 : 아픈 아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경들의 저의가 무엇이오? 주상의 병세가 어느 정도인지 봐야겠소.
침전 안에서 들리는 화연의 목소리.
화연(소리)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 전하께선 옥체를 보중하셔야합니다.
그 소리에 매서운 눈길로 문 안쪽을 노려보는 대비.
대비 : 중전은 지금 내가 주상의 안정을 방해하고 있단 말이요?
침전 안 이 때, 왕이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땀을 닦아주는 화연.
왕이 눈을 떠 왕자를 보며 뭔가 웅얼거리지만 입술 끝에서만 맴돌고.
어의 : (약방내시를 보고) 어서 보화탕을 가져오게 어서.
서둘러 나가는 약방이 연 문틈으로, 병상을 내려다보고 선 대비와 그의 일행들이 보인다.
차가운 얼굴로 화연을 내려다보고 있는 대비.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대비의 시선을 받아치는 화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차갑게 얽힌다.
승전색 김자원, 고개를 숙인 채 힐끗 살피면 대비의 뒤에 의기양양하게 서 있는 윤종호.
성원대군, 걱정스런 얼굴로 침전을 바라본다.
문이 닫히고.
화연 : (다급해져서는 어의에게) 숨을 못 쉬시는 게 아닙니까. 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보세요.
어의, 마지못해 왕의 정수리 혈 자리에 침을 꼽으려 하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보다 못해 어의에게서 침을 뺏어 혈 자리에 대는 화연.
어의 : (어쩔 수 없다는 듯 약간 옮겨 자리를 잡아주며) 거긴 혈락이라 급소입니다.
화연, 마른침을 삼키며 과감하게 침을 놓는다. 잘못되면 큰일이라는 듯 눈을 질끈 감아 외면하는 어의.
화연이 왕의 정수리에 침을 꽂으면 숨이 넘어가다 다시 숨을 쉬는 왕. 안도의 숨을 쉬는 어의.
이 때, 장지문 밖에서
윤임, 신 참판(소리) : 전하, 후사를 결정해주시옵소서.
왕이 힘들게 눈을 뜨고 화연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뭐라고 얘기하려다 혀가 굳어 오는지 그대로 숨을 거둔다.
화연 : 저, 전하?!... 전하!!
왕의 코앞에 솜을 대 보는 어의, 고개를 젓는다.
오열하는 화연. 차마 승하한 옥체는 손대지 못한 채, 옷깃을 부여잡고 있는 손이 움직이지도, 떨어지지도 못한 채,
넘어가는 울음에 숨이 차온다.
주변에선 내시와 상궁들이 초혼을 위해 화연을 떼어내려 하지만,
화연의 옷깃을 부여잡은 손이, 가슴을 쥐어뜯는 몸짓이 움직이지 못한다.
침전 밖 복도 밖에선 차갑게 침전을 바라보던 대비가 휙 하니 돌아서 가고, 그 일행들이 대비를 따라서 성큼성큼 멀어진다.
대비일행이 사라지고 난 자리 홀로 서있는 성원대군이 침전을 향해 절을 하고 몸을 일으킨다.
성원대군의 표정이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앞날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도 복잡하게 어둡다.
황급히 열리는 침전 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내시와 상궁들,
엎드린 신료들과 성원대군을 피하며 옮기는 바쁘디 바쁜 걸음들로 복도는 분주하게 메워진다.
16. 침전 지붕 - M
지붕 위에 올라 왕이 입고 있던 침소복을 흔들며 ‘상위복(上位復)’을 외치는 승전색.
17. 대비전 내 욕실 - N
붉은 베일이 쳐지고 곳곳에 향초가 밝혀진 욕실 안.
박상궁이 목욕을 거드는 가운데 우아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 대비.
윤종호가 욕실로 들어선다.
인기척을 느꼈지만 대비는 천천히 일어나고 나신이 드러난다.
물방울이 흐르는 대비의 등. 처녀의 피부처럼 매끈하고 윤기가 흐른다.
욕조 앞에 쳐진 발 너머 윤종호가 무릎을 꿇고 있다.
대비 : 박상궁은 물러나 있거라.
대비에게 가운을 걸쳐주고, 조용히 뒷걸음질 쳐 나가는 박상궁.
대비는 욕실 한 켠에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
대비 : 수고 했네. 자네 공이 크네.
윤종호 : 대군께서 강건하시고 대비께선 덕이 높으시니 나라에 복이 옵니다. 허나, 왕손과 중전이 아직 살아 있고
부원군 또한 변방에서 뼈가 굳은 무관 출신으로 공이 많고 따르는 자가 많으니..
대비 : 계집과 어린 아이 하나 어쩌지 못하겠는가. 부원군과 좌상만 없어지면 어차피 견뎌내지 못할 게야.
이리로 들어오시게. 물이 아직 뜨겁네.
욕망이 가득 찬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윤종호. 드리워져 있는 발을 걷어 대비에게로 다가간다.
일어나 윤종호의 허리를 감는 대비의 손. 대비의 가운이 흘러내린다.
18. 신 참판의 집 - N
‘쿵쿵쿵!’ 대문을 두드리는 손.
권유 : 부원군 대감 계시오?
집사 : 대감마님께서는 출타중이신데, 누구시오?
권유 : 날세, 권유.
집사 : 아니, 자네가 웬일인가?
집사가 빗장을 내리면, ‘빠지직!’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대문.
횃불을 든 병졸들이 들이닥친다. 그 뒤로 권유를 앞세우고 여유 있게 안으로 들어오는 윤종호.
소리를 듣고, 사랑방 안채에서 나오는 윤임과 신료들.
윤임 : 무슨 소란이냐!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마당으로 내려온 윤임 무리의 주위를 에워싸는 병졸들.
윤종호가 의금군 한 가운데서 한발 나서며.
윤종호 : 반정을 모의한 대역 죄인들이니라!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잡아들여라.
윤임 : 반정이라니?! 윤종호, 네 이 노옴! 네 놈이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
옆에 있던 병졸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뺏어 들고 윤임을 내려치는 윤종호.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윤임을 보고 차가운 미소로 내뱉는다.
윤종호 : 이제 그 하늘이 바뀌었습니다.
19. 중궁전 - N
상복으로 갈아입은 초췌한 화연과 품에 안긴 왕자.
신 참판 : 대비가 손을 쓰기 전에 움직이셔야 합니다.
화연 : (초조한 얼굴로) 허나 왕자는 겨우 다섯 살이고, 후계 임명권은 대비마마께 있질 않사옵니까.
신 참판 : 그러니 더더욱 이러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다간 마마와 왕자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품 안에서 수라간 일지를 꺼내서 화연에게 건네며) 주상전하께서 급환이 있으신 날을 전후해 기록이 없어졌습니다.
화연 : (일지를 훑어보며 안색이 변하는) 어, 어찌 이런..
신 참판 : 일지를 기록한 수라간 상궁도 사라졌습니다. 밖으로 빼돌릴 시간이 없었으니 분명 궐 안 어딘가에 있을 겝니다.
화연 : 궐 안이오?!...
신 참판 : 수라간 상궁을 찾아서 선왕께서 시해되셨다는 걸 입증해야지요. 증거만 찾으면 세력을 규합할 수 있을 겁니다.
수라간 일지를 들고 뚫어지게 보는 화연.
이 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재빨리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는 신 참판.
횃불을 들고 몰려드는 의금부 군사들.
김상궁 : 무슨 일이오?
의금부 : 군사 부원군 신OO은 나와서 오라를 받으시오!!
화연 : (놀라 신 참판을 보며) 아버님!
의금부 군사의 목소리에 일지를 바라보는 신 참판. 다급한 상황에 일지를 집어 보료 밑에 숨기는 화연.
의금부 군사(소리) : 반정을 꾀한 죄로 부원군을 체포하란 대비마마의 명이오.
문을 벌컥 열고나서는 화연.
화연 :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큰 소리를 내느냐?! 썩 물러가라!!
화연이 의금부 군사들을 막아선 사이 창문을 넘어 달아나는 신 참판. 나무를 타고 담을 넘는다.
의금부 군사(소리) : 저쪽이다.
신 참판이 달아나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의금부 군사들.
그 모습을 망연자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화연. 품에 파고드는 어린 왕자를 끌어안는다.
20. 침전 - D
궁녀들의 도움으로 겹겹이 즉위식 복장을 갖추는 성원대군.
형식적인 옷들을 빡빡하게 착용하는 절차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이리저리 치장으로, 서서 혹사당하는 건 신경도 안 쓰이는 듯, 성원대군의 얼굴은 무겁기만 하다.
침전 안 한 켠에 앉아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대비.
복식을 돕던 나인들이 다음 차례의 예복을 준비하려 잠시 침전 한쪽으로 간 사이, 문을 살짝 열어보는 성원대군.
저 멀리 근정전 앞의 즉위식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 악사들의 풍악소리들이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침전 앞에서 서열 순으로 서서 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종친들과, 그 속의 화연.
종친들 : (열린 문으로 성원이 보이자) 전하!
화연만 도드라져 보인다. 그런 화연과 눈이 마주치는 성원대군.
원망이 섞인 듯 걱정이 많은 듯, 마음이 심란하기만 한 화연의 모습을 보다 못해 눈을 돌리면
천진하기만한 조카의 모습이 보이고, 무거운 마음에 다시 문을 닫는다.
틈으로 넘어 들어오던 햇빛, 소음들이 다시 사라진다.
나인 수명이 소중히 들고 오는 곤룡포(면복)가 위엄 있게 펴지며 성원에게 입혀진다.
대비 : (흐뭇하게 왕을 바라보며) 이 붉은 색은 홍화꽃잎을 잿물에 넣어 빼낸 것이다. 수 백 번을 담가 색을 내야
이렇듯 피처럼 붉고 고운 빛깔이 나오지. 주위의 모든 색을 빨아들여 더욱 그 존재감을 발하는, 임금의 색이니라.
21. 내반원 앞 마당 - D
파루의 종소리가 웅장하게 울리며 수 백 명의 내시들 앞에서 아침 조회를 하는 내시감 김자원.
내시감 김자원 : 우리의 본분은 정사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전하와 왕실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궁궐의 법도와 풍속을 유지시키며 궁궐의 일상이 돌아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우리의 모든 것이 오직 전하와 왕실을 위해 존재하느니 너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야.
수라간에서 아침 식사를 감독하는 상선.
왕실 서고에서 책들을 고르는 대전 섭리들.
궁궐 곳곳과 후원을 쓸고 닦는 상원들.
이 때, 지나가던 궁녀 무봉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 상원1.
22. 내시부 훈련장 - D
갑주를 차려 입은 수 십 여 명의 근위내시들.
내시감 김자원의 수하 도수1을 선봉으로 언월도와 단봉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무예를 선보인다.
왕을 호위하는 교육을 받는 내시들. 승전색을 왕으로 삼고 둘러싸 훈련을 받는다.
근위내시들이 몽둥이를 들고 승전색을 후려친다.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승전색을 보호하는 내시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권유.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는 약방내시와 내시감 김자원.
권유가 승전색을 보호하며 간간히 발을 날려 급소를 공격한다.
약방내시 : (내시감 김자원에게) 저 아인 누군가?
내시감 김자원 : 이번에 윤종호 대감의 천거로 온 아이네.
약방내시 : 윤종호라.. (장난스럽게 툭 치며 피식 웃는다) 저놈이 이제 대전 실세구만, 조심하시게.
내시감 김자원 : (무뚝뚝하게) 무슨 소린가?
약방내시 : 아, 내시감이 되더니 능청만 늘었나. 자네도 지금은 쌀독에 앉은 쥐지만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신세.
오래도록 잘 붙어 있으려면 저런 녀석들을 잘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내시감 김자원 : 허험! 밥그릇 걱정을 다 하시고 자네도 늙었나 보네.
약방내시 : 밥그릇보다 중한 게 어디 있는가. 내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꼈네. 자네만 믿으니 앞으로도 잘 좀 부탁허이~
못 들은 척, 끄응- 고개를 돌리는 내시감 김자원.
몽둥이를 휘두르는 무사를 제압하고 몸을 날리는 권유. 권유의 다부진 주먹이 다른 무사의 턱에 내리 꽂히며-
23. 화연의 처소 – E
초조하게 방안을 서성이는 화연.
금옥 : (초라한 방을 정리하며 투덜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마마를 이런 곳에 모시다니..
금옥의 말은 무시하고 답답한 듯 털썩 앉아 머리를 괴는 화연.
화연 : 어떻게든 수라간 상궁을 찾아야 한다.
금옥 :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저, 마마.. 아, 아니, 그게..
머뭇거리는 금옥을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는 화연.
화연 : 혹 알고 있는 게 있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금옥 : 그게 저.. 혹 죽지 않았다면..
24. 복도 – N
금옥(소리) : 일전에 내시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는데, 대비전 하층 복도를 지나
매우 바쁘게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
화연이 무수리의 상복을 입고 등장한다. 그런 화연을 따라가서 어느 방에 들어서면,
25. 행주방 – N
금옥(소리) : 행주방을 통하시면, 그 아래 지하로 가는 통로가 있다고 하옵니다.
방 한 쪽에는 상복들이 주욱 걸려있고, 바쁘게 궁복을 만들고 있는 궁녀들.
화연이 보면, 한 쪽에는 나인이 바닥에 흩어져있는 보푸라기들을 쓸고 있다.
쓸려 모아지는 방구석 바닥 틈으로 떨어지는 보푸라기들을 따라가면,
26. 밀궁 – N
금옥(소리) : 거기는 빛도 들지 않는데 하루 종일 눈이 내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대비전의 군사들 외에는 알아서도 안 되고, 알 수도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래층 천정 틈을 통해 흩날려 떨어지고 있는 보푸라기들.
천정 틈 한쪽으로부터 새어 떨어지며 날리는 보푸라기가 마치 눈처럼 내리는 곳. 밀궁이다.
노파(소리) : 네 이 년!!
놀란 얼굴로 얼어붙는 화연. 마른 침을 삼키며 천천히 돌아보면,
어둠 속 노파 하나가 귀신처럼 속곳 바람으로 서 있다.
노파 : 네 년은 선왕의 후궁에게 문후도 드리지 않고 뭐 하는 게냐?
화연, 서슬 퍼런 눈으로 노려보는 노파와 눈이 마주치며 당황하는데, 마마님! 하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린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재빨리 통로 옆으로 몸을 숨기는 화연.
노파 : 주안상을 마련하라고 한 게 언젠데 이러고 있어. 주상전하께서 오실 텐데, 다들 이렇게 굼떠서야..
화연이 숨어서 보면 허둥지둥 달려오는 간수1.
간수1 : 아이구, 마마, 내실에 계시지 왜 나오셨습니까?
(혼자 중얼거리는 노파를 이끌며) 자, 자, 얼른 가서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으세요.
노파가 사라지고 안도하는 사이,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횃불이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따라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는 화연. 그 위로.
대비(소리) : 감히 네 연놈이 궁궐의 법도를 어지럽히느냐!
환한 횃불 아래 각종 고문 기구가 널린 넓은 토굴.
내창군의 호위를 받으며 형틀에 묶인 궁녀 무봉과 상원1을 호령하는 박상궁.
소복 차림의 무봉,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겁에 질린 얼굴로 울먹인다.
대비의 서슬 퍼런 모습.
대비 : 왕실을 능멸한 죄를 두고두고 곱씹어 보게 해주어라.
박상궁(소리) : 패악 무도한 내시 놈의 남은 남근까지 모조리 자르고, 저 년은 자궁을 들어내, 음부를 꿰매어
지엄한 궁궐의 법도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어라.
끌려 나가는 상원1을 보며 있는 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울부짖는 무봉.
간수들이 몽둥이로 무봉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피를 토하며 기절하는 무봉의 치마 아래가 검붉은 피로 물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매섭게 돌아서는 대비.
그 뒤를 내창군들이 따라 나서고 피투성이가 된 채 질질 끌려 토굴을 끌려 나가는 무봉.
검붉은 핏자국만이 가득한 토굴 안.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진정시키는 화연. 주위를 살피자 통로 사이사이로 창살이 쳐진 작은 감옥들이 보이고.
귀신같은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담긴 돼지죽을 퍼 먹는 여자들.
미친 듯 괴성을 지르거나 창살에 붙어 히죽거리는 여자들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벽에 바짝 붙어 주위를 살피며 수라간 상궁을 찾는 화연. 맨 안 쪽 방에 갇힌 수라간 상궁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화연을 보고 흠칫 놀라는 수라간 상궁,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화연 : 날세! 진정하게!
수라간 상궁 : 마, 마마? (창살로 달려가 붙들고) 마마, 제, 제발 절 꺼내 주십시오.. 전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마마..
화연 : (일지를 품에서 꺼내며) 진정하고 이걸 보게. 자네가 적은 게 맞는가?
수라간 상궁 : (일지를 확인하며) 네, 마마. 그런데, 여기...
화연 : 그 날 전하께서 뭘 드셨는지 기억하겠는가?
수라간 상궁 : 그날은 주상전하께서 대비전에서 점심수라를 드셨습니다.
화연 : 대비전에서?
27. 대비전 - D
독상을 마주하고 있는 대비와 왕. 식사를 하면서 수저만 끼적거리는 왕을 주시하는 대비.
수라간 상궁(소리) : 급하게 대비전에서 부르셨다면서 저희는 식사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대비 : 왜요?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왕 : 그게 아니라, 체기가 있는 것 같아서...
대비 : 근래에 식사를 잘 못 하신다기에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드시는 척이라도 하셔야 제 면이 서지 않겠습니까?
수저를 들고 힘겹게 한 술 뜨려다 다시 내려놓는 왕.
대비 : (얼굴에 미소가 싹 사라지며) 왜요? 독이라도 들었을까봐 못 드시겠습니까?
놀라서 대비를 바라보는 왕.
왕 : 마마...
대비 : 전하께서 음식을 못 먹고 쇠약해지는 게 제가 독을 써서라고들 떠들어댄다지요?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는 왕. 부들부들 떨면서 억지로 수저를 들어 음식을 뜬다.
수라간 상궁(목소리) : 그러곤 밤새 설사를 하셔서...
28. 화연의 처소 - N
애기 나인부터 죽 늘어선 궁녀들. 그 사이로 댓돌 위에 놓인 왕의 신이 보인다.
서안 위의 손가락을 튕기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방 안을 훑어보는 왕.
슬쩍 서안 위의 책들도 들춰보고. 장지문 밖의 눈치를 보며 반닫이의 문도 슬쩍 열어보고.
보료 옆에 놓인 경대도 슬쩍 열고 안을 살피는 왕.
보료를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 찰나, 화연이 들어온다.
화연 : 이리 누추한 곳까지 어찌 납시었사옵니까.
왕 : 마마께서 이쪽으로 옮기시고 한 번도 찾아뵙질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간의 일로 상심이 크실 테지만.. 이젠 제가, 마마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화연이 냉랭한 태도로 말이 없자 왕은 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애쓰는데.
왕 : ...이 야심한 시각에 수행하는 이도 없이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화연 : (잠시 왕을 바라보더니) 아비가 역모 죄로 갇혀있는데 어찌 편히 앉아만 있겠습니까.
왕 : (낯빛이 변해) 소, 송구하옵니다. 그 동안 상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부원군의 일은 제가 살필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화연 : 아닙니다. 전하께 폐가 될 순 없지요.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왕 :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며) 오, 오래 비어있던 전각이라.. 얼마나 불편하십니까. 흐흠, 밖에 아무도 없느냐?
방문이 열리며 문밖에 꿇어앉은 권유의 모습이 보인다.
내시감 김자원 : 부르셨사옵니까.
왕 : 대전상궁에게 일러 마마의 세간을 격에 맞추도록 해라.
내시감 김자원 : 그는 내명부 소관으로 이미 대비마마께서 결정하신 일이옵니다. 전하.
왕 : (화연의 눈치를 보며 민망해하는) 무어라?! 내명부 소관?
몸을 돌려 내시감을 보다가 문 뒤의 권유를 발견하는 화연. 권유를 본다.
고개를 숙이고 꿇어앉은 권유를 보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화연.
천천히 고개를 드는 권유, 화연과 눈이 마주친다. 그대로 얼어붙는 화연.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침착하게 다시 고개를 숙이는 권유.
고개를 조아린 권유를 보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화연.
29. 폐 사찰 (회상) - N
비가 내리는 호젓한 폐 사찰 대청에 앉아 비에 젖은 화연을 안아주는 권유.
권유 : 입궁을 안했으니 평생 도망 다녀야 할 거야.
화연 : 나 혼자선 아무데도 안갈 거야.
권유 :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화연 : (권유를 자기 품에 안으며) 그저 함께 있으면 돼.
권유, 화연에게 입을 맞추며 대답을 대신한다. 입을 맞추고 서로의 몸을 더듬고 끌어안는다.
빗속에서 서로의 옷을 벗기며 부둥켜안는 권유와 화연.
권유 화연의 옷고름을 풀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잠시 막는 화연.
교차하는 시선 속에 이내 곧바로 막았던 손을 내리고 뜨겁게 키스를 하며 서로에게 파고든다.
스르르 화연의 옷고름이 풀린다.
30. 화연의 처소 - D
생각에 잠겨있는 화연의 얼굴을 지나가는 자개장을 나르는 내시들.
수레에 가득 실어 온 화려한 가구들과 소품들이 처소 앞마당에 줄을 서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집주인이라도 된 마냥 여기저기 지시를 하며 들떠있는 금옥.
가구를 나르는 나인들을 피해 대청마루 한쪽에서 정원만 바라보는 화연. 가구엔 전혀 관심도 없다.
이런 모습을 담장너머 멀리서 바라보는 왕.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31. 정전 - D
왕 뒤에 발을 치고 앉아 있는 대비. 국정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윤기견 : 낙동강의 치수공사가 인근 지류의 물길을 해치어 삼도 농민들의 작황 피해가 극심하옵니다.
또한, 장마까지 겹치어 유실된 가옥이 320여 호이며, 실종, 압사된 자들도 200여명에 달하옵니다.
대비 : 삼도에 긴요한 공물을 제외하고는 감하여주고,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에게 명하여 군사를 풀어
통탄에 빠진 백성을 돕고, 각별히 돌보도록 하라.
불경같이 들려오는 국정논의가 무심히 흐르고 있고, 화연 생각인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왕.
윤종호 : 다음은, 이번 즉위식을 축하하기 위해 각도에서 올라온 사면자 명단입니다.
초점 없이 꿇어앉은 신료들을 바라보고 있던 왕의 눈에 생기가 쫑긋 살아난다.
내시감 김자원이 왕을 지나 대비에게 서류를 가져다 올리면, 서류의 내용을 설명하는 윤종호.
윤종호에게 시선이 멈추는 왕.
윤종호 : 존, 비속을 살해한 자나 대역 죄인을 제외하고 형을 감한 사람이 한양에서 280명, 경기도에서 137명..
윤종호에게 고정되어있던 왕의 시선. 다시 주위로 시선을 돌리며.
왕 : 그대들에겐 내가 보이는가.
의아해하며 왕을 바라보는 중신들.
왕 : 어째서 내겐 장계를 올리지 않는가 말이다!
윤종호 : 그건, 전하께서 정사에 대한 경험을 쌓으시는 동안 대비마마께서..
왕 : (말을 자르며) 도승지는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정사에 대한 경험이 쌓인다 보는가?
굳어지는 윤종호의 얼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드는 대비.
대비 : 앞으로는 주상도 사안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장계를 따로 준비하세요. 계속하세요.
왕 : 명단에 부원군도 있는가?
윤종호, 발 뒤의 대비를 본다. 일그러지는 대비의 얼굴.
윤종호 : 전하, 부원군은 그 혐의가 대역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면될 수 없습니다.
왕 : 선왕의 장인이요, 선왕의 외삼촌이다. 이번에 함께 사면토록 하라.
윤종호 : (지지 않고) 하오나 이미 허백겸이나 장윤창이 좌상과 부원군이 주모자라고 자백했나이다.
게다가 반정을 꾀한 연판장도 있사옵니다.
왕 : 내게 보여라. 내가 부원군의 글을 안다.
다들 왕의 언사에 헛기침을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중신들.
슬쩍 곁눈질로 왕을 보는 윤종호의 싸늘한 시선.
대비 : (감정을 다스리며)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형조에서 다시 논하세요. (장계를 닫는다)
불쾌한 감정을 애써 숨기려는 듯 헛기침을 하는 왕.
32. 침전 - D
왕의 따귀를 후려치는 대비. 감정을 삼키며 어금니를 굳게 무는 왕.
대비 :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누굴 위해 그것들을 숙청하는 줄 모른단 말이냐?!
왕 : 부원군은 신망이 높아 따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가뜩이나 흉흉할 때 이 일로 민심이 떠날까 걱정..
대비 : 듣기 싫다! 계운궁에 갔다더니, 제 아비를 풀어달라고 하더냐?
왕 : 저를, 감시하셨습니까? 아무리 수렴청정 중이셔도 전 이 나라의 임금입니다.
대비 : 아직 멀었다. 사사로운 감정을 편전에서 들먹이고도 네가 진정 왕이라고 생각하느냐?
(태도를 추스르고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잊었느냐? 지금 싹을 자르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당할 수 있어!
왕 : (사정하듯이) 제발!.. 이제 그 얘긴 제발 그만 하십시오!
대비 : (왕의 소매를 확 걷어 올리며) 네 처소가 불에 타 모두 죽을 뻔 했다. 이 어미는 그 일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왕 : (애처롭게 혼잣말처럼) 제 상처가 얼마나 옅어졌는지는 알기나 하십니까.
대비 : 또 쓸데없는 소리! 그러니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궐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네 것이지만
단 한 명, 절대 손대선 안 되는 여자가 있다는 걸 모르느냐.
왕 :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십니까? 어마마마의 분부대로 다 하지 않았습니까. 형수로 맞으라 해서 형수로 맞았고,
왕이 되라 해서 왕이 되었습니다. 대체 소신이 뭘 더 어쩌길 바라십니까?
대비 : (한동안 말없이 왕을 노려보더니) 게 아무도 없느냐? 계운궁에 수행했던 내시들을 모조리 끌어내라.
33. 침전 - D
침전 앞
마당 세찬 비 속, 나무에 매달려 근위내시들의 몽둥이질을 당하는 수행내시들, 그 속에 권유도 있다.
고통으로 애걸하는 다른 내시들에 반해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참아내는 권유.
내시감 김자원이 이들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가혹한 매질에 기절하여 축 늘어지는 권유.
침전 안
비명 소리를 들으며 입을 다물고 미동도 하지 않고 분을 억누르는 왕.
대비 : 아무리 쫒아도 벌이 떠나지 못한다면 결국엔 꽃을 꺾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대비.
왕 : (목이 타는 듯 거친 쇳소리로) 마실 걸 다오.
찬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왕. 물 사발을 집어 던진다.
34. 폐사찰 (회상) – N
절정을 향해가는 권유의 얼굴위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그대로 허물어지는 권유. 화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몰아쉬는데 번개가 번쩍인다.
거세지는 비. 물이 새는 폐사찰 지붕 들보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35. 권유의 방 - N
권유 얼굴위로 떨어지는 물방울.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면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 그림자.
권유의 얼굴을 쓰다듬는 화연의 손길.
권유 : (그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화, 화연?
열 때문에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는 권유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화연. 화연의 얼굴이 흐릿하게 사라지며.
36. 폐사찰 (회상) - N
갑자기 번개가 번쩍 치는데 권유의 얼굴 뒤로 보이는 신 참판의 얼굴.
다시 눈을 뜨면 신 참판의 수하들에게 잡혀 꿇려져 있는 권유. 신 참판에게 맞은 머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말 위에 올라 그 모습을 보는 신 참판.
신 참판 : (분에 차서) 감히 네 놈이 어찌 이런 짓을...
권유 : (문득) ..화연이, 화연이는?
신 참판 : 네 놈이 그 아일 왜 찾느냐!
권유 : 화연이, 화연이 어딨습니까!
신 참판 : 스스로 입궁을 결정했다.
권유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 참판 : 미련한 놈! 어찌 네 따위가 감히 사대부의 여식을 넘본단 말이냐?
부르르 입술을 떠는 권유.
신 참판 : 모두 내 잘못이다. 지난 날 일을 가상히 여겨 곁에 두었거늘 내가 호랑이 새끼를 거두었구나.
은혜를 이리 앙갚음하다니..
권유 : (분노에 차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어르신 아니오?!
신 참판 : (잠시 권유를 노려보다가 수하들에게) 죽여라!
권유 : 화연이, 화연인 어떻게 한 거야. 화연아, 화연아!
신 참판을 노려보는 권유의 분노에 찬 시선. 권유의 절규가 밤 숲 하늘에 울린다.
37. 권유의 방 - N
헉- 하고 놀라서 몸을 일으키는 권유, 온몸에 식은땀에 젖어있다.
어둠에 잠긴 텅 빈 방 안. 이마의 땀을 닦으며 옆을 보면, 세수 대야에 수건이 담겨있다.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보면, 어둠 속에 보이는 형체.
권유 : 화, 화연?..
화연 : (목으로 울음을 삼키며) 네가.. 죽은 줄 알았어.. 아니, 매일, 매 순간.. 네가 살아있기만을 기도했어..
권유 : ...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내는 화연. 눈시울을 닦으며 권유 앞에 다가앉는다.
화연 : (권유를 어루만지고 손을 잡으며) 이렇게 살아 있으니 그걸로 다행이다.
권유 : (화연의 손길을 가만히 뿌리치며) 권유는.. 그 때 죽고 없습니다..
화연 : (기대하던 반응과 달라 어리둥절한 마음에) 권유야..
권유 : 그만, 나가 주십시오.
화연 : 권유야, 대체 무슨 소리야. 제발, 나 좀 도와줘.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어.
전하께서 시해됐다는 증거를 찾았어...
권유 : 소인이.. 윤종호 대감의 수하인 걸 모르십니까?
화연 : !!!....
권유 : (화연을 차갑게 바라보며) ...
화연 : (황망한 시선으로)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궐 안에서 내 편은 너 하나뿐인데.. 권유야, 네, 네가 어떻게..
권유 : 이제 와서 제가 뭘 도울 수 있답니까. 그 자리까지 앉았으면서 뭘 더 바라십니까. 살고 싶다면, 혼자서라도 도망치십시오.
이번에도 혼자, 그때처럼 혼자.. 도망치십시오.
울음인지 웃음인지 일그러진 미소를 흘리며 화연을 보는 권유.
그런 권유를 눈시울이 붉어진 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는 화연.
38. 중궁전 - N
약방내시가 중전과 합방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왕 옆에 약을 받쳐 들고 서 있다.
대비가 들어와 눈짓을 하면 왕에게 약을 가져다 내미는 약방내시.
검은 탕재를 보며 낮은 한숨을 쉬는 왕은 마지못해 약을 받아 마신다.
입직 상궁들이 중전을 데리고 들어와 겉옷을 벗기고 곁방으로 간다.
곁방에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창호지 없이 창살만 있는 들창이 있다.
창살을 등지고 앉는 내시감 김자원과 입직 내시.
대비가 곁방으로 들어가 앉으면 한 쪽으로 비켜서는 입직 상궁들.
멀리서 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면, 박상궁이 들어와 촛불을 켠다.
대비 : 합궁하십시오.
왕의 침상 앞에서 돌아앉아 옷을 벗는 중전.
내관 : 전하, 중전마마의 왼편으로 누우시지요.
내키지 않은 얼굴로 중전의 옆에 눕는 왕.
내관 : 전하, 심장이 왼쪽으로 오게 전측위로 누우십시오.
옆으로 돌아눕는 왕. 나름 색기를 담은 눈으로 그런 왕을 바라보는 중전.
내관(소리) : 먼저 전하께서 중전마마의 아랫입술을 핥고 빠시며 그 침을 삼키셔야 하옵니다.
왕이 망설이자, 먼저 다가오는 중전.
왕, 지그시 중전의 입술을 깨문다.
내관(소리) : 중전 마마의 아랫배의 단전을 살살 문지르다가 더 깊이 들어가 쓰다듬고 유방이 부풀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이를 손으로 쥐면 손바닥에 가득 차야만 하옵니다.
중전의 얼굴을 외면하며 시키는 대로 마지못해 움직이는 왕. 왕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몸을 뒤트는 중전.
왕의 콧등에 진땀이 맺힌다.
내관 : 전하, 연동심을 시작하시옵소서.
내키지 않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중전 몸 위로 올라가는 왕.
내관 : 중전 마마께서는 주상 전하의 허리를 양 손으로 안고 옥경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중전 : (왕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전하, 신첩은 되었으니 집어넣어 보십시오.
식은땀을 흘리는 왕. 힐끗 옆을 보면, 곁방 창으로 대비의 실루엣이 보인다.
내관 : 용번식을 거하십시오.
다리를 벌리고 중전의 몸 안으로 진퇴를 반복하는 왕.
이마에 땀방울이 배고 볼이 발그레해진 중전과 달리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움직이기만 하는 왕.
내관 : 다음은 호보식이옵니다.
중전을 엎드리게 하고 뒤에서 다시 삽입을 시도하는 왕.
찡그린 얼굴로 중전의 가슴을 움켜쥐는 왕. 중전의 숨결이 거칠어진다.
중전의 머리채를 거칠게 뒤로 당긴 채 삽입을 반복하는 왕. 왕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며 신음이 높아진다.
대비 : 아직 아니됩니다.
내관 : 야반 후 생기시에 사정을 하셔야만 왕자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왕, 몸을 떨며 그대로 사정한다. 중전에게서 떨어져 털썩 누워버리는 왕.
허공을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왕의 허탈한 모습.
39. 궁궐 후원 정자 - N
어느새 비가 그쳐 호젓한 밤공기를 가르는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곳곳에 불이 밝혀진 드넓은 궁궐의 모습이 드러난다.
야밤, 박상궁을 비롯한 궁녀들이 등불을 밝힌 채 늘어서 있고
노동에 가까운 섹스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홀로 정자에 앉아 있는 왕의 뒷모습.
박상궁 : 이제 그만 침소로 드시지요.
박상궁의 말에도 그저 앉아만 있는 왕.
박상궁, 왕의 시선을 쫓아가면 궁궐 구석의 화연의 처소에 가 멎고.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화연의 처소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왕.
박상궁 : 전하, 대비마마께서 아시면 ...
왕 : (혼잣말하듯) 궁이 이리 크고 넓은 줄.. 내 미처 몰랐구나.
낮은 한숨을 쉬며 돌아서려는데 처소로 들어가는 화연의 모습이 보인다.
의미심장하게 화연을 바라보는 왕. 촉촉한 왕의 눈빛에서 묻어나는 짙은 그리움..
40. 침전 안 - D
멍하니 앉아 아침 수라를 먹고 있는 왕. 박상궁이 들어와 왕 앞에 조아린다.
왕 : 계운궁엔 별 일 없다던가?
박상궁 : 예. 무탈하시다 하옵니다.
왕 : 조석으로 마마를 문안하고, 혹여 불편하신 게 없는지 살피도록 하여라.
수라상을 물리는 궁녀들. 이 때,
내시감 김자원(소리) : 무슨 짓이냐?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왕.
권유(소리) : 전하께선 종기가 있으셔서 곶감이 든 수정과를 드시면 안 됩니다.
문이 열리고 수라상이 나가는 사이로 실랑이하는 권유와 내시감 김자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왕.
-CUT OUT
왕 : 충영이라고? 내게 종기가 있는지 어떻게 알았느냐?
권유 : 등을 기대실 때 마다 주춤거리시는 것과 옥색을 보고 알았사옵니다.
왕 : 그래, 종기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느냐.
권유 : 무릇 혈기는 몸이 더우면 운행하고 차면 중지되어 종기가 발생하니 평상시에도 날 것과 찬 것은 멀리해야 이롭습니다.
왕, 낯이 익은지 유심히 권유를 살핀다. 가만히 머리를 조아리는 권유.
왕 : 밖에 내시감 있는가? (내시감 김자원이 들자) 이 아이가 마음에 드니 승전색으로 삼아 왕명을 출납케 하겠다.
내시감 김자원 : (난감해하며) 전하, 승전색이 되려면 대전내시로 16년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대전내시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에게 어찌...
왕 : 뭐라? 과인이 수하에 있는 내시 하나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느냐?
곤란한 얼굴이 되는 내시감 김자원.
왕 : (내시감 김자원을 노려보며) 왜, 내시감도 대비마마 말이 아니면 안 듣겠단 건가.
내시감 김자원 : (움찔하다) ..분부 받들겠나이다.
읍하고 조용히 침전을 나오는 내시감 김자원.
41. 의금부 앞 - N
의금부를 지키고 서 있는 군사들. 곳곳에 밝혀진 화로에서 불꽃이 이글거린다.
서있는 옥사정 안쪽으로 고통과 슬픔의 신음이 어른소리, 아이소리 뭉개어져 새어나오고 있다.
금옥을 앞세우고 장옷을 걸친 모습으로 나타나는 화연.
금옥과 안면이 있는 것 같은 옥사정이 나와서 화연 쪽을 슬쩍 보더니
옥사정 : (금옥에게 고개를 저어 보이며) 아무도 면회가 안 된다네.
금옥 : 그래도 마마께서 와 계신데.. (엽전 꾸러미를 슬쩍 건네며) 얼굴만이라도 뵐 수 없을까요?
옥사정 : (금옥이 주는 엽전 꾸러미를 도로 밀어내며) 잘못하면 내 목이 달아난대도. 미안하이.
화연 : (장옷을 내리고 옥사정 앞으로 다가가) 부친이 연로하셔서 그러니 이거라도 좀 넣어줄 수 없겠나? 미음이네.
선왕후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머리를 조아리며 찬합을 받는 옥사정.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권유.
42. 감옥 - N
신 참판 일당의 식솔들까지 모두 잡혀와, 모진 고문으로 거동도 못하는 만신창이들이 복도까지 차있는 감옥 통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이 피떡이 되어있는 죄수들을 잡동사니 치워내듯 치워내며 복도를 지나치는 발. 권유다.
권유가 감옥 안으로 들어와 칼을 쓰고 앉아 있는 신 참판을 본다.
손발까지 채워진 큰 칼과 추에, 고문으로 피폐된 신 참판이 인기척을 느끼면서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앞에 서서 찬합을 내려놓는 권유.
권유 : 따님이 보내셨습니다.
그제야 힘없이 고개를 드는 신 참판.
권유, 수저를 들어 미음을 한술 떠서 신 참판 입에 넣어주려고 한다.
신 참판이 미음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벌리면 그 앞에 주르륵 흘려버리는 권유.
신 참판 : (그제야 권유를 쳐다보고 놀라서) 넌! 네 놈이 어떻게 여기..?
수저로 미음이 든 그릇을 휘휘 저어보다가 그대로 신 참판 앞에 주르르 쏟는 권유.
죽 그릇 속에 든 비단에 적은 편지를 꺼낸다.
권유 :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셨습니다.
신 참판 : (권유 손에 든 편지를 보며 다급하게) 그 앤, 아무 잘못도 없네, 그 앤..
권유 : <수라간 상궁을 찾아 그 날 일의 진상을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 알려 주시면...>
권유, 편지를 소매 속에 넣고 천천히 일어난다.
권유를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려고 하지만 쇠스랑에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신 참판.
신 참판 : 이보게. 나는 내 죄로 죽네만 그 애는...
권유 : 그 때 차라리 죽여주셨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호랑이 새끼가 금세 자란다는 걸 잊으셨나 봅니다.
권유가 나가자 옥문이 절그럭거리며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신 참판의 절망에 찬 절규. 그 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움켜쥐는 권유.
43. 내반원 - N
혼자서 중얼거리며 장기를 두고 있는 약방내시 곁에 술병을 내려놓고 앉는 내시감 김자원.
그 뒤를 따라 들어와 서는 도수1.
약방내시 : 장 받아라, 요 놈아! 오호! 외통수렸다! 음, 그렇게 나온다면.. (힐끗 보며) 언 발에 오줌이라도 눴나?
인상 참, 똥 씹은 얼굴일세.
내시감 김자원, 말없이 술병을 들고 마신다.
내시감 김자원 : 장기는 잘 되는가.
약방내시 : (장기 알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장이요, 멍이요 하는데 잘 되고 말고는... 왜, 궐 안이 뒤숭숭한가?
내시감 김자원 : (한숨을 내쉬며) 궐 생활 30년에 손바닥 보듯 훤하건만, 아직도 뭐가 옳고 뭐가 그른 것인지 잘 모르겠네.
약방내시 : 자네도 참.. 아, 안방에선 시어미 말이 옳고 부엌에선 며느리 말이 옳은 법이지.
내시감 김자원이 들고 있는 술병을 빼앗아 입으로 가져가는 약방내시. 크- 입맛을 다시더니,
약방내시 : 내 궁에 들어올 적 양물을 잘라 단지에 넣을 때 궐 밖의 이치 또한 같이 넣어 봉했다네. 예선,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권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네. (가만, 스스로의 말에 감탄한 듯) 캬- 제법이지 않은가?
내시감 김자원 : (허탈하게 웃으며) 그래, 제법일세. ..자넨 내시가 안 되었으면 뭐가 되고 싶었나.
약방내시 : 뜬금없이 별 소릴.. 아, 나야 뭐 지금이라도 새끼들 낳고 오순도순..
그만 두세. 죽기 전에야 어디 궐 밖으로 몸 성히 나가겠나.
장기판을 밀어놓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는 약방내시.
매서운 눈으로 서 있는 도수1과 눈이 마주치자 컥- 사래가 들리며 술을 게워낸다.
약방내시 : 야, 이 눔아! 눈깔 빠지겠다. 이보게, 저 눔 좀 어떻게 해 보시게! 난 영 쟤 얼굴이 맘에 안 들어..
피식 웃으며 장기판으로 고개를 돌리는 내시감 김자원. 커다란 붉은 색 王 자 말이 눈에 들어온다.
44. 의금부 - N
주위를 살피며 의금부로 다가오는 화연.
허나, 산송장들로 미어터지는 지옥 같던 그 곳이 텅 비어있다. 지키는 사람조차 없는 스산한 분위기의 의금부.
화연이 당황스러워하는 이 때, 불 꺼진 감옥 안에서 나타나는 그림자. 놀라 보면, 권유다.
권유 : 마마께서 이 늦은 밤에 어인 일이신지요? (소매에서 편지를 꺼내 보이며) 이것 때문이십니까?
마마 덕에 애꿎은 수라간 상궁만 일찍 죽었습니다.
화연 : 뭐라구?
권유 : 결국, 아침이면 죄인들은 참형될 터인데 이리 애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두 군기시로 옮겼습니다.
(아주 공손하지만 차갑게...) 수라간 일지는 소인이 태우고 없습니다.
한 때의 정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자꾸 이러시면 마마께서도 무사치 못하실 겝니다.
차갑게 변한 권유를 소름 끼치듯 바라보는 화연.
45. 화연의 처소 - N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서는 화연. 황급히 보료 밑을 뒤져보면, 수라간 일지가 없다.
설마 했는데 믿음이 무너지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르르 떨며 입술을 깨무는 화연.
붉은 실핏줄이 도드라지는 화연의 눈동자에 눈물이 일렁인다. 손톱이 으스러지도록 꼭 쥔 주먹이 핏기 없이 떨고만 있다.
46. 후원 - N
근심어린 얼굴로 후원을 산책하는 왕과 말없이 그를 수행하는 박상궁. 왕의 걸음이 화연의 처소로 향하는 걸 눈치 챈다.
박상궁 : (멀리 화연 처소에 켜진 불빛을 보며) 전하, 시간이 늦었습니다.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돌리는 왕. 걸음을 옮기다 말고 화연 처소 쪽을 그리운 눈길로 본다.
그런 왕을 권유가 말없이 바라본다.
47. 침전 앞 - N
왕자를 앞세우고 침전 앞에 무릎 꿇고 앉은 화연. 왕자가 칭얼거리며 매달리는데도 돌바닥에 떼어 놓는다.
왕, 침전으로 들어오다 화연을 발견하고 놀라서 달려간다.
왕 : 마마,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화연 :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주먹을 꼭 쥐는) 이 어린 것과 신첩이.. 선왕을 따라 죽지 못해
늙은 아비가 죽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우리 모자를 먼저 죽여주십시오!!
왕 : 부원군이 죽다니요?
화연 : 어서 죽여주십시오. 지아비를 잃고 아비까지 참형을 당하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을 이고 살아가겠습니까.
부서질 듯이 연약해 보이는 화연, 입술을 깨물며 울먹인다.
왕이 화연의 어깨를 끌어안으려다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울먹이는 화연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화연 : 주상 전하, 저희 모자를 궐 밖으로 내치셔도 좋으니 부디, 부디 아비만은 살려주소서!
애써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만히 화연의 손을 잡는 왕.
왕 : 어찌 그런 망극한 말씀을 하십니까. (흐트러진 화연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너무 심려 마십시오.
부원군의 일은 제가 살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마마를, 마마를 지켜드리겠습니다.
글썽이는 화연의 눈을 보며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왕.
애써 화연을 일으키는 왕을 차가운 눈길로 보는 권유.
48. 대비전 - D
대비는 보료 위에 앉아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 앞에서 조아리는 왕.
왕 : 아무리 대역죄를 지었다하나 참형에 처하심은 너무 과하십니다.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대비 : 이미 조당에서 의논된 일이요.
왕 : 부원군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어마마마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계운궁을 찾지 말라면 찾지 않겠고…….
대비 : (더 이상 할 말 없다는 듯 돌아앉으며) 역당을 참하여 훗날의 경계로 삼고자하는 중신들의 충정입니다.
그 일은 더 말하지 마세요.
왕 : (발끈하여) 누구 말씀입니까. 한 자리씩 차지한 그 잘난 외가 친지들 말씀이십니까.
(벌떡 일어나 대비를 노려보다가) 형님께서 우리 모자를 죽이지 않아 형수님이 이 고초를 겪는 겁니까.
대비 : (화가 치밀어) 말을 삼가시오 주상!
왕 : 대체 소자가 이 나라의 왕이긴 한 것입니까?! 이번 일만큼은, 어마마마 맘대로 아니 될 것입니다.
(휙 돌아서 권유에게) 어서 달려가 형의 집행을 멈추게 해라.
대비 : 주상!!
내시감 김자원 : (다급하게) 전하, 대비마마의 명을 번복하심은..
왕 : (내시감 김자원의 말을 자르며) 어서 가라!
뒤도 안돌아보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왕. 자리에서 물러나는 권유, 눈빛이 달라진다.
49. 군기시 앞 - D
말을 달려가는 권유.
윤임과 신 참판, 그 수하들과 식솔들이 군기시 앞에 죽 꿇어져 있다.
참형 당하는 걸 구경하려고 모여 있는 군중을 향해 판결문을 읽는 윤종호.
윤종호 : 죄인 신00는 교지를 받들라! 죄인 신00와 그 무리는 신하됨에 있어 반정을 모의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했으니
그 죄를 물어 국법 대명률에 의거 대역죄인의 삼족을 멸하고, 그 일당을 참형에 처해
만백성에게 나라의 본보기로 삼을 것을 만세에 알리노라! 형을 집행하라!
참형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면, 칼을 들고 형장에 들어서는 망나니들.
북이 울리면 뒤에 서 있던 군졸들 가리개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씌우려고 하는데
형형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 거부하는 신 참판. 구경꾼들을 둘러보다 권유를 본다.
말 위에서 차갑게 마주 보는 권유. 무심히 바라볼 뿐 멈추지 않는다.
문득, 하늘을 보는 신 참판. 파란 하늘에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며 형장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윤임과 신 참판 일행의 목을 친다.
사방으로 튀는 붉고 더운 피! 윤종호의 얼굴로 피가 튄다.
50. 화연 처소 - D
화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옷고름이 뜯기도록 가슴을 치며 오열한다.
황급히 화연의 처소로 오는 왕과 그 뒤를 따르는 내시감 김자원, 궁녀들.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김상궁, 왕을 막아서며.
왕 : (들어가려 하며) 드릴 말씀이 있다 하질 않았느냐! 비켜서라!
김상궁을 밀치고 문에 손을 대는 왕, 안에서 들려오는 화연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순간, 멈칫 손이 떨리는 왕.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문에 머리를 기댄다.
방안에 앉아 미동도 없이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화연. 굳은 표정, 앙다문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빨갛게 충혈 된 눈가에서 흐르는 굵은 눈물.
흐느끼는 화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왕.
내시감 김자원 : (조용히 다가와) 전하,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충혈 된 눈으로 몇 번 문에 손을 댔다가 차마 열지 못하고 허탈하게 돌아서는 왕.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화연의 모습.
51. 정전 - D
화연을 폐비시키자는 윤종호과 중신들의 목소리가 정전에 가득하다.
발 뒤에 대비가 앉아 있다. 비어있는 용상이 맘에 걸리는 대비.
윤종호 : 좌상과 부원군이 누굴 위해 반정을 꾀했겠습니까. 선왕후를 서인으로 삼아 그 자식과 함께 궐에서 내쳐야합니다.
윤기견 : 대비마마. 선왕후를 벌하시어 훗날의 탈을 미리 막게 하소서.
내시감 김자원 들어와 대비 옆으로 가서 속삭이면
대비 : 주상은 오늘도 안 오시는 모양이오.
중신들 웅성거리더니
중신들 : 대비마마, 마마께서 용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대비 : (계속된 요청에 짜증난 듯) 나한테 용단, 용단할 것이 아니라 주상을 설득할 근거를 찾아오세요! 이만 물러들 가세요.
난감해하는 중신들 사이에서
윤기견 : (윤종호에게) 침전으로 가서 고하세.
52. 침전 - D
침전 안
웃옷을 광인처럼 풀어 헤친 채, 낮부터 혼자 술을 마시는 왕.
침전 밖
침전 앞에 꿇어 엎드려 선왕후를 폐서인으로 삼아 궐에서 내쳐야 한다고 시위하는 관료들.
윤기견 : 반역의 무리들이 선왕후와 내통한 것이 분명한데도 선왕후를 궐내에 두시는 것은
종묘사직을 심히 위태롭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물어 서인으로 삼아 궐에서 내쳐야합니다.
중신들 : (한목소리로) 전하! 서인으로 삼아 궐에서 내치시옵소서.
침전 안
왕이 밖에서 시위하는 신하들 목소리에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왕 : 윤기견을 들이라.
CUT OUT-
거푸 몇 잔을 마시던 왕이 술잔을 윤기견에게 건넨다.
술잔을 건네받아 들고만 있는 윤기견. 술잔만 잡은 채 왕에게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는다.
왕 : (윤기견을 빤히 노려보더니) 왜 날 못 보는가?
윤기견 : 전하께서 의대를 어지러이 하고 계시니 차마 마주 뵙기 민망하옵니다.
윤기견을 내려 보는 왕의 얼굴이 점차 차가워지며, 냉소가 번진다.
왕 : 경은 이게 민망한가? 내 눈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빤한 속내를 내보이는 경이 더 민망하다.
불편한 심기로 고개를 숙인 채 술잔 만 보이고 있는 윤기견.
왕 : 내 하나 묻겠다. 군왕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윤기견 : 인으로써 덕을 베푸는 것입니다.
왕 : 그러면 인의 시작은 무엇이라고 했소?
윤기견 : 측은지심이옵니다.
왕 : 지아비를 잃은 여인을 내모는 것이 측은지심인가. 그게 군자의 도리냔 말이다! 다시는 이 문제를 논하지 말라.
윤기견 : 허나 전하, 소신들을 다 죽이시더라도 종묘사직을 생각하소서. 아무리 선왕후라 해도 역적의 수괴를...
왕 : (낮지만 단호하게) 닥쳐라! 증거도 없이 그 일가를 다 죽여 놓고 이젠 역적의 수괴라?
늙은 놈이 대비마마의 수렴청정이 언제까지 갈 줄 알고 날 이리 기망하는가!
파랗게 질리는 윤기견.
왕 : 죽여 달라? 당장 무리들을 끌고 돌아가지 않으면 네놈 원대로 해주마. 썩 물러가라!
53. 뒷간 - N
고고한 달빛이 흐르는 가운데, 제법 번듯하게 선 궁인들의 뒷간이 보이고.
약방내시,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 중이다.
이 때 옆 칸의 문이 열리는 소리. 누군가 부스스 옷을 내리고 앉으며 끄응- 하고 길게 소리를 낸다.
약방내시 : (씩 웃으며) 오셨나?
내시감 김자원(소리) : (헛기침하며) 어허, 별 데서 다 아는 체를 하는구나.
약방내시 : (짚단을 구기며) 40년 지기끼리 내외하긴.
내시감 김자원(소리) : 어허! 똥간에서까지 우정을 나누고 싶진 않으이.
씩 웃다 갑자기 인상을 쓰며 힘을 주는 약방내시. 잠시 후, 한결 편안한 얼굴로,
약방내시 : ...아무래도 폐서인이 되겠지?
내시감 김자원(소리) : 말조심하시게.
약방내시 : 말이 폐서인이지, 대비마마가 보통 지독하신 분인가? 궁 밖으로 쫓겨나면야 그나마 다행이지
혹여 밀궁으로 끌려가면.. 으히구.. (몸서리친다) 자네도 몸조심..
이 때, 갑자기 뒷간 문을 확 여는 내시감 김자원.
약방내시 : (황급히 놀라 옷 춤을 끌어올리며) 아이고 깜짝이야.
내시감 김자원 :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소릴 하는 겐가?
약방내시 : 뒷간에서 듣긴 누가 들어! 그리고 뭐 내가 없는 소릴 했나. 에이, 성질머리 하고는.
이 사람아, 나오던 놈이 도로 다 들어갔네.
혀를 끌끌 차며 밖으로 나오는 약방내시.
뒷간의 다른 칸에 앉아 무거운 얼굴로 그 소리를 듣는 권유.
54. 군기시 - N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걷는 권유.
장대 끝에 반정을 꾀한 역적이란 글과 함께 걸려 있는 윤임과 신 참판 일행의 머리. 신 참판의 머리 옆 피 묻은 옥관자가 보인다.
권유, 장대를 타고 흘러내려 굳어진 핏자국을 한참 동안 노려본다.
권유 : 참, 보기 좋습니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입가와 달리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있다.
55. 화연 처소 - N
넋을 잃고 앉아있는 화연. 그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금옥.
이 때, 장지문 밖으로 등불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장지에 비치는 화연의 그림자를 망연히 바라보는 왕. 술을 마셔 얼굴이 불콰하다.
권유와 내시, 박상궁과 궁녀들이 그 행차를 따른다.
돌아서려다 용기를 내어 성큼 들어서자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던 어린 궁녀가 황망히 일어나는데 그대로 밀고 들어가는 왕.
상석에 앉은 왕을 충혈된 눈으로 차갑게 보는 화연.
화연 : (금옥이 나가려 하자) 게 앉거라. (왕을 보지 않은 채)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밝은 날 다시 오시지요.
주춤거리며 앉는 금옥.
왕 : 편찮으시다면서요.
화연 : 아비 목을 저잣거리에 걸어놓고 편안하겠습니까?
왕 : 그래서 날 피하십니까? 조정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십니까?
화연 : (냉정하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절 쫓아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이 전하께서 제 처소에 드신 걸 알면
얼마나 더 헐뜯겠습니까. 그러니 다시는 절 찾지 마세요.
차가운 얼굴로 돌아앉는 화연 입을 다물고 왕을 외면한다.
왕 : 어찌 그리 매정하십니까! 제가 왜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왜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다 다시 고개를 든다) 왜, 왜 절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그러나 여전히 고개를 돌리며 왕을 보지 않는 화연.
왕 : 차라리 화를 내십시오! 조카의 자리를 빼앗고 부원군을 죽음으로 몬 비열한 왕이라고, 그렇게 밉다고 소리치십시오!
여전히 냉랭한 태도로 돌아앉아 있는 화연.
왕, 격정에 찬 눈빛으로 화연을 보다 박차고 일어난다. 나가려다 뒤돌아서 금옥을 노려본다.
그런 왕을 보는 화연. 왕과 눈이 마주친다.
왕이 화연의 시선을 외면하며 다시 금옥을 바라본다.
왕 : 네 이름이 무엇이냐?
금옥 : (놀라서) 예? 예, 그, 금옥이라.. 하옵니다. 전하.
화연 : (왕을 외면하며) 왜요, 침전에라도 들이시렵니까?
왕의 애증어린 뜨거운 눈길과 화연의 차가운 시선이 짧은 순간 허공에서 얽힌다.
왕 : (매서운 표정으로 외면하는 화연을 보며) 못할 것도 없지요.
휙 돌아서 나가는 왕. 대동한 내시와 궁녀들이 금옥을 데리고 따라 나간다.
굳은 얼굴로 미동도 않는 화연.
모두가 가버리고 난 자리 행차를 따라가지 않고, 마당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는 권유.
화연 : ..바라던 대로 되었으니 이제 시원하니?
권유의 눈빛이 흔들린다.
화연 : ..그렇게 복수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
권유 : ...
화연 : 난 네가 나 때문에 궐로 들어온 거라고 믿었어.
권유 : ...
화연 : (한 순간에 무너지듯 흐느끼며) 권유야, 제발.. 이제 난, 난 어쩌면 좋으니..
권유 :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했습니다. 연꽃은 비록 더럽고 탁한 물에 살지만,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지요..
권유 화연의 열려진 방 안에 무언가를 스윽 밀어 놓고는 나간다. 군기시에 걸려있던 신 참판의 옥관자다.
56. 침전 - N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보는 금옥을 세워 둔 채 술잔을 기울이는 왕.
왕 : 부원군 일 때문에 날 많이 원망하시느냐?
금옥 : (화들짝 놀라) 그저 상심이 크신지라 잘 드시지도 못하고.. 얼마나 속이 썩으실까 싶어서..
금옥의 얘기를 들으며 계속 술을 마셔대던 왕.
왕 : 계속해 보아라. 마마께서는 침전에 드실 때에 어떤 모습이시냐.
금옥 : 예?? 예, 그게.. 마마께서는.. 당의를 갈아입으신 뒤, 비녀를 풀어 머리를 내리시고.. 흰색 침소복에..
손짓으로 다가앉으라고 명하는 왕. 금옥, 주춤거리며 술상 옆에 앉는다.
왕 : 그 옷은 누가 벗겨드리느냐.
금옥 : 소, 소인이옵니다.
왕 : 어떻게 벗겨드리느냐.
금옥 : 그, 그게.. 옷고름을 풀어..
왕, 마른 침을 삼키며 금옥의 옷고름을 푼다. 당황하며 손으로 막는 금옥.
왕, 가만히 금옥의 손을 밀쳐낸다.
왕 : 목욕도 네가 시켜드리느냐? 어떻게 시켜드리느냐?
금옥 : 조, 좋은 향이 나는 오지탕에 당귀, 천궁, 백작약 같은 약재를 넣어 내린 물에 몸을 담그시고..
금옥의 속옷을 모두 벗기는 왕. 금옥의 목을 어루만진다. 금옥의 얼굴에 화연의 얼굴이 겹치면서.
왕 : 계속해 보아라. 어디부터 씻어드리느냐.
금옥의 나신을 손으로 훑는 왕.
금옥 : 고운 천으로 팔을 닦고..
- 화연의 하얀 팔위로 물이 쏟아진다.
금옥 : 어깨와 가슴을..
- 화연의 부드러운 어깨선을 따라 움직이는 하얀 천. 가슴의 굴곡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면.
금옥의 가슴 위로 술을 붓고 혀로 핥는 왕.
왕 : 부드럽더냐?
금옥 : ..예, 몹시 희고.. 헉.. 부드럽습니..
금옥이 말을 멈추고 가는 신음 소리를 내면 왕, 금옥의 가슴을 손으로 거칠게 쥐며.
왕 : 계속해 보거라! 어서!
금옥 : 마, 마마께서 일어나시면 다리와 그 사이를..
- 수증기 가득한 사이로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화연의 물기 어린 뒤태.
금옥을 거칠게 바닥에 쓰러뜨리는 왕. 거친 신음소리를 내며 금옥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 화연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물. 부드럽게 눈을 감고 젖은 머리를 쓰다듬는 화연.
절정에 이르는 왕의 일그러진 얼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탈한 얼굴로 바닥에 몸을 누인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왕, 눈가가 젖으며 화연의 얼굴을 떠올린다.
옆으로 돌아누운 왕의 눈가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57. 화연 처소 - N
잠든 왕자에게 부채질을 해주는 화연. 왕자가 잠결에 칭얼거리자 안고 달래준다.
서안에 놓여있는 아버지의 옥관자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권유(소리) :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 했습니다. 연꽃은 비록 더럽고 탁한 물에 살지만,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지요..
결연해 지는 화연의 표정 끝, 무엇인가가 생각난 듯, 장롱을 뒤져 은갑을 찾아낸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듯 한 은갑을 열면 예전 성원대군시절 중전인 화연에게 수줍게 건네주었던 뒤꽂이가 들어있다.
인서트 뜨거운 태양 아래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는데.
58. 금옥 처소 - D
왕의 승은을 입고 지위가 상승하게 된 금옥. 기대에 가득 차서 대전 상궁을 따라 새로운 방에 들어간다.
대전 상궁 : 앞으로 쓰실 방입니다. 주상전하의 승은을 입었다 하나 아직 첩지를 받으신 것은 아니니 몸가짐을 조심하시고
함부로 방을 나가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금옥 : (자동 반사적으로) 네. 마마님.. 아, 알겠네.
문 옆에 서 있는 두 명의 나인을 보더니 금옥에게 소개하는 대전 상궁.
대전 상궁 : 이 아이들이 돌봐드릴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대전 상궁이 밖으로 나가자 긴장이 풀리는 금옥.
나인 : 뭐 필요하신 게 있으신지요.
금옥 : (약간 거드름을 피우며) 됐네, 그만 나가들 보게.
궁녀들이 나가면 믿기지 않는 것처럼 새 방에 있는 가구를 만져보고 열어보고 하다가 경대를 보자,
금옥 : (배우가 연기하듯이 이런 저런 목소리로) 그만 나가들 보게. 그만 나가들 보게. (예쁜 표정을 지어보이며
목소리를 바꿔가며) 전하, 전하, 주상전하,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단 보료를 매만지다 벌렁 드러누우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린다.
59. 대비전 - D
박상궁의 부채 바람을 맞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차를 음미하는 대비. 그 앞에 앉은 윤종호.
대비 : 뭐라? 사가에서 데려 온 몸종을?
박상궁 : 그러하옵니다.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끌끌 차는 대비.
윤종호 : 전하께서 경연도 번번이 핑계를 대시고 조례에도 참석을 안 하시니.. 마마께서 폐서인 문제에 대해 결단하셔 주옵소서.
대비 : (눈을 뜨고) 계운궁를 꼭 폐위시켜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윤종호 : 예?
대비 : 양 날개가 잘린 계운궁이 불의의 사고를 만난들 누가 진상을 밝히려 들겠습니까?
윤종호, 놀란 얼굴로 박상궁을 힐끗 쳐다본다.
대비 : (찻잔을 내려놓으며) 저 사람은 신경 쓰지 마세요. 바람 잘 날 없는 궁에서만 30년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박상궁. 입가에 미소를 짓는 대비.
대비 : 저 사람의 귀가 왜 한 쪽뿐인지 아십니까?
의아한 듯 슬쩍 박상궁을 보는 윤종호.
대비 :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인서트 희미하게 초가 밝혀진 대비전.
서슬 퍼런 얼굴로 외면하고 있는 대비와 고개를 조아린 박상궁. 말없이 천에 싼 뭔가를 서안 위로 내민다.
대비, 박상궁을 보다 부채로 천을 젖히면 피투성이가 된 한 쪽 귀!
대비가 박상궁을 보면, 천천히 고개를 든다. 피가 말라붙은 자리에 귀 한 쪽이 없다!!
섬뜩한 얼굴이 되는 윤종호.
대비 : (차가운 미소로 박상궁을 보며) 현명한 사람입니다. 물 흐르듯 살아야 한다는 세상 이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윤종호 : (그제야 대비의 말뜻을 알아듣고 미소 지으며) 알겠사옵니다. 분부대로 준비합지요.
60. 화연 처소 - D
간결하지만 정성을 다한 듯 보이는 음식들이 차려진 화연의 처소.
자신이 고른 세간으로 장식 된 방을 보며 기분이 좀 풀린 얼굴로 상석에 앉아 있는 왕.
한껏 꾸민 화연, 평소와 달리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조아린다.
화연 : 전하께서 저 때문에 얼마나 큰 곤란을 겪으시는지 알지 못하여 감히 성심을 어지럽혔나이다.
왕 : (전에 없이 다정한 화연을 보며 들떠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아, 아닙니다. 사실, 부원군 일 때문에 저도 편치 않았습니다.
화연 : (눈물을 글썽이며) 신첩이나 어린 조카가 전하께 무슨 해가 된다고 그리 독하게 하시는지..
눈시울이 젖는 듯 고개를 돌리는 화연.
왕 : (안타까운) 마마..
화연 : (눈물을 훔치며) 송구하옵니다.
왕 : (초라한 듯 고개를 떨구며) 부원군 일은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화연 : 신첩이 어찌 전하를 탓하겠습니까.
왕 : 제가 군왕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가 봅니다.
화연 :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시옵니까? (안타깝다는 듯이) 승하하신 선왕께서 강상을 아는 이는 전하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왕 : (민망한 듯 헛기침하며) ..
화연 : (왕의 눈치를 빠르게 살피며) 그런 분을 두고 수렴청정이라니.. 이 나라 종사가 선비를 길러 왔사온데
어째서 아무도 그런 주청을 하지 않는지.
왕, 무안함에 술잔을 들다 은근한 시선으로 화연을 쳐다본다.
화연 : 대비께서 섭정 중이시니 전하께서 큰 뜻을 펼치려 하셔도 여의치 않음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저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이옵니다.
화연의 시선에 술을 들이키는 왕.
왕의 목젖으로 술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는 화연.
61. 화연 처소 앞마당 - D
궁녀와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왕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권유.
이 때,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처소로 들어오는 금옥, 권유를 발견하고 보란 듯이 미소를 짓는다.
금옥을 보자 깍듯이 예를 갖추는 권유.
금옥 : 세상 참 요지경이네.. 세상에 저 같은 종년은 왕의 후궁이 되고 도련님은 내시가 되다니.. 재밌지 않습니까.
금옥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권유가 막아선다.
권유 : 주상전하께서 와 계십니다.
불쾌한 듯 권유를 노려보는 금옥, 갑자기 말투를 확 바꿔서,
금옥 : 승전색이 되셨다면서요. 전하께서 제 처소도 좀 찾으시도록 도와주시지요. 궐 밖에서 맺은 인연은 인연이 아닌가?
권유 : 입궁하면서 궐 밖에서의 일은 이미 다 잊었습니다.
금옥 : 뭐, 날 도와줘야 나도 옛일을 가슴 속에만 묻어두지.
권유 : 지금 자리도 과하신 것 같은데. 혀를 잘못 놀려 화를 자초하는 일이 없게 하시지요.
권유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 치자 더욱 분한 마음이 드는 금옥.
62. 화연 처소 - D
화연 처소에 있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만져보는 금옥.
금옥 : 사람 맘이 참 간사하더이다. 아래 있을 땐 못 올라가지 싶더니 위에 오르니 또 내려가기 싫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화연, 금옥의 달라진 어투며 모습에 코웃음을 친다.
금옥 : (못마땅한 듯 눈을 흘기며) 전하의 승은까지 입고 보니, 이젠 제가 중전까지 되지 말란 법이 있나 싶고..
김상궁 : 어느 안전이라고, 말을 삼가십시오.
금옥 : (갑자기 날카롭게) 누구더러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야. (돌연 태도를 바꿔) 제가 전하의 총애를 받게 되면 누굴 돕겠습니까?
설마 마마께 해 될 일을 하겠습니까?
화연 :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당연히 그럴 테지. 그래, 뭘 도와주면 좋겠나?
금옥 : 전하의 눈에 들려면 좀 꾸며야 하니 패물을 좀 주세요.
화연 : 네가 더 잘 알 터이니, 알아서 가져가거라.
63. 궐 일각 - D
권유가 다가오면 권유를 데리고 어둑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윤종호.
불안한 시선의 권유 얼굴 위로 흐르는 대사.
윤종호 : 계운궁에 다녀왔다고?
왕과 자신의 동선을 속속들이 아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권유.
윤종호 : 자네 독에 대해서 좀 아나?
권유 : 심마니와 지낼 때 바곳을 따러 다녀 본 적이 있습니다.
검은 색 주머니에서 천으로 말아 놓은 것을 꺼내는 윤종호. 뭔지 알아보고 인상이 찌푸려지는 권유.
권유 : 궐내에서 그런 물건을 지니고 계시면..
윤종호 : 큰일 나지. 허나, 모르는 자가 보면 돌멩이일 뿐이야. 자네, 이걸로 어떻게 비상을 만드는지 아나?
권유 : 태우지요.
비석을 천으로 싸고 주머니에 넣어서 권유에게 건네는 윤종호.
윤종호 : 만들어두게. 그 모자가 스스로 안 나간다면, 궐 밖으로 나가는 법은 하나밖에 없지.
불안해지는 권유.
64. 궁궐 안 마사지실 - E
우아하게 누워서 마사지를 받고 있는 금옥.
부름을 받고 찾아온 승전색, 야들야들해 보이는 금옥의 목덜미와 어깨의 드러난 살결을 지긋이 쳐다본다.
금옥 : 자네가 전하의 잠자리를 거래한다지?
승전색 :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제가요? 제가 감히..
펄쩍 뛰는 승전색의 모습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금옥.
금옥 :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승전색에게 내밀며) 내 이번 삼일이 달거리 날이니 전하를 내 처소로 모셔주게.
혹시 아는가? 왕자라도 잉태하게 되면 자네가 다음 내시감이 될지?
반지의 가치를 가늠해보더니 주위 눈치를 보며 안주머니에 챙겨 넣는 승전색.
65. 중궁전 - N
방안에 앉아 왕을 기다리고 있는 대비와 중전.
대비 : 중전이 왕자를 생산하여 후사가 결정되면 어디 암자라도 하나 지어놓고 기도나 하며 살아야겠소.
중전 : 마마께 왕손을 안겨드리지 못하니 소인의 불효이옵니다.
문 밖에서 대비에게 고하는 권유.
권유 : 전하께서 두통 때문에 오늘은 합방하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대비 : 오늘이 4년만의 길일이라는 걸 알렸는데도 그리 하시더냐?
권유 : 그러하옵니다. 마마.
대비 :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가자. 아들이 아프다니 내 직접 가봐야겠다.
권유, 당황해 한다.
66. 침전 - N
술을 마시고 있는 왕. 술상 앞에는 왕자(화연의 아들)가 앉아 있다. 왕자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왕.
왕 : 네 군왕의 근본을 공부했느냐.
왕자 :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며) ...
왕 : 허허, 나한테는 괜찮다. 이야기해보아라.
왕자 : (조심스럽게) 예, 전하. 명明, 찰(察), 통(通) 이옵니다.
왕 : 옳지. 그렇다면 명이란 무슨 뜻이냐?
왕자 : 명은 밝은 눈과 귀를 말하는 것으로 눈은 멀리 밝게 내다보는 것이옵고,
귀는 멀리 백성들의 민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이옵니다.
뜻도 모르면서 또렷하게 대답하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왕.
왕 : (상으로 과자를 주며) 옳지. 그래 고사도 아느냐?
왕자 : 춘추 전국시대 제환공이 관중에게...
왕자가 더듬거리는 사이 눈치 보던 승전색이 끼어든다.
승전색 : 전하, 약이 식사옵니다.
왕자의 답을 기다리던 왕, 한숨을 내쉬며
왕 : 난 임금이 아니라 그저 씨돼지에 불과한가 보다.
승전색 : 무슨 당치않은 말씀이십니까? 나라의 후사를 잇는 일이 어찌 가볍겠사옵니까?
왕 : 시끄럽다. 너나 마셔라.
난감해하는 승전색. 곤란한 표정의 약방내시.
왕 : (왕자를 보며) 내가 아니라 네가 왕이 되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구나.
이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들이닥치는 대비. 방안을 보고 무서운 기세로 다가온다.
왕이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하자 분한 듯 왕의 뺨을 철썩 때린다.
대비가 무서운 왕자는 벌떡 일어나 대비 뒤에 따라 들어온 권유 뒤로 숨는다. 난감한 권유.
김상궁이 눈치껏 아이를 안고 나간다.
이젠 대비에게 뺨을 맞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의 왕.
대비 : 지금이 어느 땐데. 이, 이런...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온단 표정의 대비.
왕 : (천천히 뺨을 부비며 싸늘하게) 소신 더 이상 어마마마의 아들만이 아닌 이 나라의 왕입니다.
대비 : 용상에 앉았다고 다 왕인 줄 아느냐? 경연은 참석하지도 않고...
왕 : 어디 기회를 주셔야 뭘 해도 해보지 않겠습니까? 모든 결정권은 어마마마 손에 쥐고 계시면서
저더러 이젠 허수아비 노릇까지 하라시는 겁니까?
대비 : 후사가 정해지고 정권이 안정되면 말하지 않아도 물러날 것이거늘.
왕 : 그게 언젭니까?
대비 : 뭐라?
왕 : 차라리 어마마마께서 용상에 앉지 그러셨습니까? 이젠 어마마마 앞에서 합방하는 것도 지겹고 신물이 납니다!!
왕의 기세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대비.
왕 : 어차피 저야 씨만 뿌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꼭 중전이어야 한단 법도 없죠.
모처럼 길일이라니 후궁들에게도 기회를 주죠.
후궁 이름이 적힌 말들이 늘어져 있는 판에서 말 하나를 쓰러뜨리는 왕.
왕 : 누구냐?
승전색 : (말판에 있는 다른 말들을 슬쩍 쓰러뜨리며) 승은상궁 금옥이옵니다.
왕 : 가자.
67. 금옥의 처소 - N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써 치장한 모습의 금옥.
그런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뭔가에 골몰한 채 연거푸 술을 마시는 왕. 문득, 초조한 듯 앉아있는 금옥의 가채 머리를 본다.
왕 : (머리의 뒤꽂이를 보며) 이게, 왜 네게 있느냐?
금옥 : (당황해서) 저, 전하, 그, 그건..
무서운 얼굴로 금옥의 뺨을 후려치는 왕.
왕 : 왜 네가 이걸 가지고 있냐고 묻지 않느냐?!!
애써 변명하려 하지만 얼어붙은 듯 말을 하지 못하는 금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왕.
금옥 : (황급히 문을 나서는 왕의 소매를 붙잡으며) 저, 전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금옥을 뿌리치고 나가려다 돌아보는 왕.
금옥, 문 앞에 서 있는 권유와 눈이 마주친다.
금옥 : (입술을 꼭 깨물며) 전하께서 꼭 아셔야 할 일이옵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권유.
68. 화연 처소 - N
상궁이 왕의 행차를 고할 틈도 없이 왕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왕 : (금옥에게 뺏은 뒤꽂이를 보이며 차갑게) 이게 왜 다른 사람 손에 있습니까?
화연 : (뒤꽂이를 보더니 알았다는 듯) 노여움을 가라앉히시고, 앉으시지요.
왕 : 제 맘을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제가 그렇게 싫으십니까? 제가 그 내시 놈만도 못하단 말씀입니까?
내시란 말에 핏기가 싹 가시는 화연.
왕 : (싸늘하게) 끌고 와라.
내시들에게 붙들려오는 권유를 보고 사색이 되는 화연.
왕 : 어쩐지 낯이 익다 했습니다. 마마와 함께 사냥하던 바로 그 놈이 아닙니까? 그런 놈을 내시로 꾸며 끌어들이시다니요. 어찌..
화연 : (굳은 얼굴로) 말씀을 삼가시지요.
왕 : (분을 이기지 못하는) 설명해 보십시오! 어찌 저 놈이 이곳에 있는지를!
화연 : 제 집에서 부리던 자이긴 하나 일전에 대전내시가 됐다고 인사를 와서야 궐에 있는 줄을 알았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고 침착하려 애쓰는 권유.
왕 : 저더러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질투에 부들부들 떨며) 저 놈이 마마를 보던 눈빛을 기억합니다. 분명 마마와 저 놈은..
(옛날이 생각난 듯 분노가 폭발하며) 달수도 못 채우고 나온 조카는 대체 누구 씨입니까? 형님 자식이 맞긴 한 겁니까?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드는 권유, 그 표정을 숨기려고 이내 고개를 숙인다.
왕, 분에 못 이겨 방 안의 화병을 던진다. 구석에 가서 산산조각 나는 화병.
왕 : 저 놈을 벗겨라. 고자인 걸 이 자리에서 확인해봐야겠다.
화연 : 전하! 신첩을 이렇게까지 모욕하셔야 겠습니까?
왕 : 벗기라니까!!
권유 : 전하, 어찌 이런 흉물스러운 물건을 보시겠다고 하십니까?
권유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치는 왕. 꼼짝 않고 앉아 그들을 차갑게 바라보는 화연.
옆에 있는 내시가 주춤거리자 자기 손으로 권유의 바지를 확 끌어 내리는 왕.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권유의 얼굴.
갑자기 찬물이라고 끼얹은 것 같은 방 분위기.
자기 눈으로 확인하자 갑자기 제 정신이 든 것처럼 술이 확 깨는 왕.
화연 :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차가운 화연의 목소리에 자기가 실수한 걸 알아차린 왕.
권유도 자길 붙잡고 있는 내시들을 뿌리치고 바지를 올리며 밖으로 나간다.
CUT OUT-
촛불만 일렁이는 조용한 방안에 덩그러니 남은 화연과 왕.
왕, 차가운 얼굴로 돌아앉아 미동도 않는 화연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왕 : (화연의 손을 잡고) 마마, 그리도 모르십니까?
화연 : (슬픈 눈빛으로) 신첩이 진정 모른다고 여기십니까? 대비께서 저리 서슬 퍼런 두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데..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단호하게) 진정 왕의 자리에 오르시거든 그 때, 다시 오십시오.
왕 : (화연을 와락 안는 왕) 왕이 되겠습니다. 반드시 왕이 되겠습니다.
그런 왕을 화연이 뿌리치려고 하자 더 세게 안는 왕.
화연 : 놔 주십시오. 이,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화연, 왕을 밀어내려 한다.
호흡이 가빠지는 왕. 자기도 모르게 화연의 옷고름을 거칠게 풀어헤친다.
화연의 옷을 벗기며 화연의 얼굴과 목덜미에 코를 박고 체취를 맡는 왕의 애절한 모습.
화연의 치마끈을 푸르고 가슴을 찾아 쥔다. 몸을 이리 저리 돌려보며 반항하는 화연.
왕 : (거칠게 치마 단을 걷어 올리며 울먹이듯) 손을 거두지 마십시오, 제발..
화연 : 전하, 이러시면.. 아..
왕 : 저 좀 보십시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오죽하면 제가 이리도..
화연의 귀를 핥는 왕. 몸이 뜨거워지며 숨이 가빠오는 화연.
왕에게 잡혀있는 옷을 벗으며 몸을 비틀어 달아나려는 화연.
왕 : 대비마마건 뭐건 그런 거 상관없습니다! 나는, 나는 왕이 되지 않으면 영영 당신을 못 보게 될 것 같아 두려워서 이 노릇인데,
왜 마마까지 절 힘들게 하십니까.
화연을 다시 부둥켜안고 밀어붙이는 왕, 화연의 양 손을 잡은 채 거친 호흡을 몰아쉰다.
애써 밀어내려는 화연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왕.
왕 : (거친 호흡으로) 당신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어.
왕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며 격정적인 입맞춤을 한다.
왕을 뿌리치려는 반항 또한 거세지는 화연. 벗어나려는 화연의 몸짓에 문틈이 벌어진다.
문틈 밖 무릎 꿇고 있는 권유가 보인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황량한 눈빛.
다시 왕에게 끌려 방 어둠속으로 멀어지는 화연의 모습이 권유의 눈에 보인다.
한껏 달아오른 왕, 황급히 화연의 치마를 찢으면 그 사이로 드러나는 우윳빛 허벅지와 엉덩이의 부드러운 곡선!
다리 사이에 왕이 손을 집어넣자 낮은 신음 소리를 내는 화연. 그런 화연을 더 세게 안는 왕.
미친 듯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왕을 보는 화연.
비 소리 천둥소리가 들린다.
69. 폐사찰 (회상) - N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화연과 권유. 소름이 돋은 화연의 살갗 위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권유의 몸짓이 강렬해져 간다.
눈을 감고, 끝을 향해가는 권유에게 녹아드는 화연. 목이 뒤로 젖혀지며 낮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거세지는 비에 번쩍거리는 번개. 폐사찰 허름한 창호문 밖의 신 참판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70. 산길 (회상) – N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화연, 몸을 비틀어 신 참판의 수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며
화연 : 아버지, 권유는요? 네? 권유는 어디 있어요?
신 참판 : ...
화연 : 설마 죽이라고 하셨어요?
신 참판 : 지놈이 재촉한 명이다.
화연 : (놀라서) 안돼요, 아버지! 제가 도망치자고 했어요. 권유 잘못이 아니에요.
신 참판 : 미련한 것. 첩지를 받고도 입궁하지 않으면 너와 우리 가문이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느냐.
화연 : 권유를 살려주세요. 제가 궐에 들어갈게요.
신 참판 : 이미 늦었다.
화연 : (결연한) 권유가 죽으면 저도 죽어요.
신 참판 : (수하들에게) 뭐하느냐.
울며 버티는 화연을 억지로 가마 안으로 밀어 넣는 수하들. 무거운 표정의 신 참판.
신 참판 : 그 놈 다시는 사내구실을 못하도록 만들어라.
가마 밖을 내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화연. 번개가 번쩍 내리친다.
71. 화연 처소 - M
처소 밖 새벽을 알리는 파루가 멀리서 들려온다.
창백한 얼굴로 처소 밖에서 권유가 무릎을 꿇고 있다. 허벅지를 쥐어뜯으며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는 권유.
권유 :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왜 얘기하지 않았어?
화연(소리) : 말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권유 : (눈물을 글썽이며) 나한테만은, 얘기만 해주었어도...
화연(소리) : ..너까지 위험하게 할 순 없었어.
아픈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입술을 깨무는 권유.
처소 안 화연이 밤새 잠을 못 이루었는지 매무새는 흐트러져있고 눈은 퀭하니 충혈되어 있다.
은장도를 손에 쥐고 주춤거리는 화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권유(소리) : 떠나자.
화연 : 떠나면?
권유(소리) : 여기서 이런 꼴을 당하느니 다 버리고 우리, 이제라도 함께 떠나자.
화연 : ..궐 밖으로 나가면 그 땐 모두 죽어. 아이까지 위험하게 할 순 없어. 누가 뭐래도 선왕의 왕자야. 마지막 희망이라고.
권유(소리) : 그 희망 때문에 죽어.
화연 :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킬 거야. 이제 다시 누구도 잃을 수 없어.
처소 밖 눈물만 흘리는 권유.
권유 : 내가,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
화연(소리) : 나한테, 갈매나무처럼 가시를 품으라고 했던 말, 기억해?
처소 안 화연, 차가운 눈으로 장지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72. 관덕정 - D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기는 왕. 얼마나 되었는지 머리띠가 땀으로 흥건하고, 손은 이미 피가 나는듯하다.
주변의 무사들은 걱정이 된 눈빛으로 보고 있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과녁 주변은 어지러이 꽂힌 화살들이 가득하고. 화살을 주우려 하지만 바로 또 날아오는 화살에 무사들도 활을 줍지 못한다.
내시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하, 벌써 삼십순째 이시옵니다. 옥체를...
듣지도 안고 활을 당기는 왕.
권유 : 찾아계시옵니까 전하.
쳐다도 보지 않고 활을 쏜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생각난 듯이 갑자기 권유에게 활을 건넨다. 받아드는 권유.
왕 : 쏴라.
권유 : 소인, 감히 전하의 활을 들겠나이까.
왕 : 오랜만에 네 솜씨 좀 보자. (화살을 건내던 무사에게) 화살을 주어라.
무사에게 화살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사선에 서는 권유. 망설이다가 쏘려고 하는데,
왕 : 권유야!
활을 당기던 권유의 손이 미끄러지며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활을 다시 왕에게 바치는 권유.
왕 : (화살을 매기며) 신분을 숨기고 궐에 들어온 이유가 뭐냐?
권유 : (조아리며) 고자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내시가 된 것뿐이옵니다.
왕 : 고자 놈이 왕후께 연정을 품었더냐?
활시위를 당긴다.
권유 : (조아리며) 연정이라니 당치 않으시옵니다.
왕 : (화살을 매기며) 계운궁에 가봐야겠구나. 내 어제 큰 결례를 범했으니 오늘 마마를 봬야겠다.
권유 : (차가운 얼굴로 침착하게) 그보다, 대비마마께서 자리보존하고 계신다 하는데 문안이라도...
팽팽해진 활시위가 권유 쪽으로 돌아간다.. 권유 쪽으로 향한 화살 끝이 불안하다.
조아린 권유의 들지 못하는 얼굴에 땀이 맺힌다. 애써 침착함을 찾아가는 권유.
권유 : 지금쯤이면 대비마마께서 간밤의 일을 다 들으셨을 텐데 혹시 선왕후께서 곤란해지실까 하여..
여전히 선왕후에게 신경 쓰는 것 같은 권유가 맘에 걸리는 왕.
다시 과녁으로 몸을 돌려 화살을 쏴버리는 왕.
왕 : 네가 계운궁으로 가서 마마께 내 뜻을 전하도록 하라.
다시 활을 드는 왕. 활시위를 당긴다.
73. 화연 처소 - D
갑자기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금옥, 얼굴에 난 시퍼런 멍자국.
금옥 : (화연에게 빌려갔던 패물을 내던지며) 전하를 어떻게 속였는지 모르지만 마마의 과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전하뿐이겠습니까? 궐내에 분란을 만들지 마시고 자진해서 나가세요.
화연 : 궁 안의 모든 여인네들이 주상전하의 승은을 염원하며 살다 죽는데 전하께서 언제까지 너를 찾으실 것 같으냐?
금옥 : (화연의 말에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살기를 띠고) 좋은 말로 체면을 살려드리려 했는데 이러시면 저도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권유놈과 눈이 맞아 도망갔을 때 참판께서 어찌 아셨을지 여태 모르시나 봅니다.
화연 : (문득 놀라 보면) ..!
금옥 : 왕자라고 어디 무사할 것 같으십니까!
김상궁 : 무엄하다! 천한 것이 어디서 감히.. 썩 나가거라!
금옥 : 뭐야? 감히, 승은도 받아보지 못한 주제에...
화연 : (성큼 다가가 금옥의 뺨을 세게 때리며) 어리석은 것!
숨을 씩씩거리는 금옥, 분한지 눈에 핏발을 세우며 화연에게 달려든다.
그 사이를 막아서며, 달려드는 금옥을 화연에게서 떼어내 밀어버리는 김상궁.
넘어지는 금옥이 방 옆으로 넘어진다.
금옥 : 이년들, 어디 무사할까 보자.
방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금옥.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화연.
74. 대비전 - D
이마에 흰 천을 감고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대비. 옆에 있는 경대에 초췌해진 얼굴을 비춰보며 한층 지친 목소리로.
대비 : 대감께서는 알지 않습니까. 왕위를 물려받게 해 주기 위해 내가 뭘 했는지.
윤종호 : 원래 효성 깊고 명민하시니 전하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대비의 손을 잡는다)
대비 : 이제 수렴청정을 거두겠습니다. 자식과 불화하느니 그편이 낫겠습니다.
윤종호 : (더 다가앉으며) 마마, 계운궁과 그의 자식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성심을 굳게 하셔야 합니다.
마마께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지키고 계신지 소인이 잘 압니다. 대의를 위해 조금만 더 견뎌 주소서.
75. 대비전 밖 - D
대비 전으로 다가오고 있는 왕.
76. 대비전 안 - D
두통이 나는지 머리를 잡고 기댄 대비.
윤종호 : 때를 기다려 처결하려 했으나 일이 급해졌사옵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대비 : 알고 있습니다. 어제 밤 주상이 한 일은 천륜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야할 겁니다.
윤종호 : 예 마마. 그럼 이제 결단을 내려주소서.
77. 대비전 밖 - D
대비(소리) : 없애십시오!
문에 귀를 대고 안에서 들리는 얘기를 듣다 놀라는 왕. 인상을 찌푸린다.
입에 손가락을 대서 옆에 있는 궁녀들에게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왕.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아무 소리 못하는 궁녀들.
두 사람의 밀담을 밖에서 조용히 귀 기울여 들으며 싸늘해지는 왕.
78. 화연 처소 - D
권유 : 아직도 의심하는 게 분명합니다.
화연 : 그럴 수도 있겠지.
권유 : 계속 이렇게 지낼 순 없습니다.
화연 : (냉정하게) 왕자를 살리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야.
말없이 권유를 뚫어져라 보는 화연.
79. 화연 처소 – N
어느새 어두워져 장지문 밖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방안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두 그림자가 다가선다.
화연의 처소로 이어지는 대문 뒤에서 노여운 얼굴로 뚫어지게 그림자를 바라보는 왕.
박상궁 : 전하, 이러시면..
왕 : 다들 물러가라 하지 않았느냐!!
박상궁과 호위 무사들, 말없이 뒷걸음질 쳐 물러선다.
화연인 듯한 그림자가 일어나자 내관 복장의 그림자가 다가가 화연의 옷을 벗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옷가지의 그림자.
왕, 고통스러운 얼굴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며 옆의 나뭇가지를 쥐어뜯는다.
눈시울이 젖으며 빨갛게 충혈되는 왕의 눈동자.
장지문 밖으로 뒤엉킨 두 그림자가 보이자 왕의 눈에선 불꽃이 튀고.
왕, 뒤에 떨어져 서 있던 호위무사들에게로 달려가 칼을 빼앗는다.
무사 : 저, 전하!!
미친 듯이 처소로 달려가는 왕. 거칠게 방문을 열어젖히고 뛰어들어 그림자에게 칼을 내리친다.
속옷 차림으로 놀라 쳐다보는 화연과 비명을 지르며 스치는 칼을 피해 옆으로 쓰러지는 궁녀.
화연 : (벌떡 일어나며) 전하!!
쓰러진 궁녀의 팔에서 피가 흐른다. 왕을 위해 단장하던 중인 듯 경대와 화려한 의복이 바닥에 놓여있고.
칼을 떨어뜨리며 당황하는 왕.
화연 : 전하, 왜 이러십니까.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둘러보다 병풍 뒤와 옷장 안을 마구 열어젖히지만 권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왕.
박상궁이 달려와 왕을 밖으로 모시고 나간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어지러운 지 이마를 짚고 비틀거린다.
말없이 왕을 부축하는 박상궁. 호위무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왕 : (주위를 살피며) 권유, 권유는 어디 있느냐. 아니 양 내시를 불러라! 어서!
박상궁 : 전하, 고정하시고 침전으로 드시지요.
가슴이 찢어지듯 답답한 표정으로 얼굴을 움켜쥐는 왕. 지친 듯 연(輦)에 오르러 가려는데,
댓돌 앞에 권유가 말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당황스럽게 보는 왕. 고개 숙인 권유. 그 앞으로 휙 하니 가버리는 왕.
80. 아궁이 - N
담장을 타고 탐스럽게 핀 능소화. 그 담을 따라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권유.
아궁이에서 불씨를 찾아내서는 수라간 일지와 예전 화연의 편지를 태워버린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총총하게 별이 뜬 검은 하늘. 타들어가는 일지와 편지가 아스라이 사그라든다.
무심히 바라보던 권유. 소매 안에서 윤종호에게서 받은 검은 주머니를 꺼내 손에 쥔 채 한동안 만지작거린다.
주머니를 열어 비석의 절반을 태우는 권유. 타는 모습을 보는 권유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81. 복도 - D
탕기를 직접 들고 왕의 침전으로 조심스레 가는 약방내시.
82. 침전 - D
무료한 표정으로 팔걸이에 기대어 있는 왕.
내시감 김자원, 고개를 들면 약방내시가 약을 들고 들어온다.
왕 : 이제 그런 약은 먹지 않겠다.
약방내시 : (곤란한 듯) 하오나 전하, 대비마마께서 그날그날 약을 드셨는지 직접 확인하시는지라..
왕 : (무심하게) 그럼 네가 먹어라.
침전에 들어서는 권유.
약방내시 : 예? 저희는 양기를 누르느라 마늘이 들어간 김치도 먹지 않는데 이런 약을 마시라 하시면..?
왕 : (의외라는 듯이) 오호, 고자에게도 성욕이 있느냐?
약방내시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발기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욕이 없는 것은 아니옵니다.
약방내시의 말에 갑자기 권유를 바라보는 왕. 권유, 서늘한 왕의 시선에 마른 침을 삼킨다.
왕 : 충영아, 네가 마셔라.
표정이 굳는 권유, 주춤거리자
왕 : 왜? 못 마시겠느냐? 네 놈도 성욕이 일까 걱정이냐?
권유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왕. 식은땀이 흐르는 권유.
왕 : (비꼬는 듯 심술궂게) 네놈은 뿌리 채 없으니 걱정할 것도 없겠구나. 마셔라.
주춤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오는 권유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런 권유를 매섭게 보는 왕.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약사발을 드는 권유.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 왕, 몸을 바로 일으키고 권유를 뚫어져라 본다.
약사발을 들고 다시 왕을 바라보는 권유, 왕과 눈이 마주치는데. 턱짓으로 마시라는 시늉을 하는 왕.
권유의 목덜미에 땀이 흐른다. 검은 탕재에 비치는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눈을 감는 권유.
화연(소리) : 우릴 위해.. 죽어줄 수 있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약을 입으로 가져가는 권유. 한 모금 두 모금.. 손이 떨려온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약을 울컥하며, 결국 탕기를 떨어뜨리는 권유. 피를 토하며 배를 잡고 쓰러진다.
그 모습을 보며 벌떡 일어나는 왕과 파랗게 질리는 약방내시.
약방내시 : 이, 이럴 리가.. 어, 어떻게..
왕 : (약방내시의 멱살을 잡으며) 누구냐? 누가 시킨 짓이냐?
내시감 김자원 : 저,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약방내시 : (사색이 되어) 소, 소인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다, 다른 날과 똑같이 어의에게 약재를 받아서 다렸을 뿐..
왕 : 이놈을 끌고 가고 어의를 추포하라! 내 직접 국문할 것이니, 이놈은 살려라. 이놈에게 들을 말이 있다.
이 일을 발설하는 자는 누구든 목을 벨 것이다!!
약방내시와 눈이 마주치는 내시감 김자원.
왕, 쓰러진 권유를 노려본다.
83. 의금부 - D
한쪽 방에서는 권유에게 해독을 위해 전신에 침을 놓는 의원들.
권유는 온 몸을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생사에 고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간히 신음소리만 겨우 내고 있다.
다른 방에선, 정신을 잃고 형틀에 묶여 있는 어의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물!
어의 : (울먹이며) 살려 주소서, 전하. 소인은 정말 모르는 일이옵니다.
왕 : 증거를 보여라.
어의, 놀라 검은 비상 주머니와 왕을 번갈아 쳐다보면.
왕 : 이게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게 네 방에서 나왔다.
어의 : 소, 소인은 모, 모르는..
왕 : (눈에 살기를 띠며 얼굴을 바싹 들이대는) 대비께서 날 없애라시더냐?
어의 :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 당치않으십니다, 전하.
왕 : (코웃음 치며) 그렇겠지. (주위를 훑어보다 다시 어의를 노려보며) 그럼 약재는 누가 관리하느냐? 그건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하얗게 질리는 어의의 입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왕.
벽에 축 쳐져 매달려 있던 약방내시가 정신을 들고 어의를 바라본다.
어의 : (어쩔 수 없는지 흐느끼면서) 유, 윤종호 대감께서..
약방내시, 그 소리에 고개를 푹 떨어뜨린다. 왕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84. 화연 처소 – D
화연에게 큰 절을 올리는 김상궁. 왕자는 외출채비가 입혀진 채 김상궁의 손을 잡고 있다.
김상궁 : 반드시 왕자님을 안전하게 모셔오겠습니다.
김상궁의 절에 맞절하는 화연. 화연에게 달려와 매달리는 왕자.
왕자 : (울음을 터트리며) 어마마마, 가기 싫습니다.
화연 : (왕자를 잡으며) 그치지 못할까. 너는 이 나라의 왕자다.
김상궁 : 마마, 곧 다시 뵙게 될 것이니 염려놓으십시오.
훌쩍거리는 왕자를 데리고 나가는 김상궁.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는 화연의 모습.
85. 의금부 – D
주위를 살피며 감옥 안으로 들어오는 내시감 김자원. 낮은 신음을 내며 몸을 뒤척이는 권유.
내시감 김자원, 어의에게 다가가서 맥을 짚어 보면 이미 죽어 있다. 낮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는다.
이어 온 몸에 피칠 갑을 한 약방내시가 벽에 매달려 있는 걸 보고 다가간다.
축 처진 머리를 받쳐주면 정신이 드는 것 같은 약방내시.
약방내시 : (타는 목소리로) 물, 물 좀..
내시감 김자원,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 소매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물통에 적신다.
물 묻은 천을 약방내시의 입에 대 주는 김자원. 목이 타는지 천에 묻은 물을 빠는 약방내시.
약방내시 : 더..
내시감 김자원 : (물을 더 축여주며) 정신이 드는가?
약방내시 : (희미한 미소까지 띠며) 우박 맞은 호박잎 꼴이지? 몰골이 흉할 거야..
내시감 김자원 : (아픈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만하면 봐 줄만 하이.
약방내시 : (어의를 가리키며) 저 양반은?
내시감 김자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약방내시 : 저 양반.. 윤 대감 이름을 불었네. 곧 궐 안에 피바람이 불게야. 그러니.. 날 먼저 보내주시게.
내시감 김자원 : 그게 무슨 소린가?
약방내시 : 권력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러나. 주상전하도 이 사건을 이용해 해결하고 싶은 게 있을 테지.
내시감 김자원 : 허나..
약방내시 : 아무리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미소 지으며) 더 이상 누추하게 살기 싫으이.
내시감 김자원 : 난 못하네.
약방내시 : 염라대왕 할애비라도 내 목숨을 구할 순 없네. 혹여 왕이 자네 이름을 원하면 어쩌겠나?
갑자기 약방내시를 묶고 있던 족쇄를 끄르는 내시감 김자원.
약방내시 :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내시감 김자원 : 자넬 궐 밖으로 내보내주겠네.
약방내시 : 소용없는 짓이야. 난 이미 지쳤네..
내시감 김자원 : 내가 다 알아서 한다질 않나.
내시감 김자원, 약방내시를 부축할 만한 지팡이를 찾느라 주위를 살핀다.
그런 내시감 김자원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약방내시.
내시감 김자원, 지팡이를 찾아 돌아서는데 목에 칼을 댄 약방내시를 본다.
약방내시 :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마웠네, 친구.. 먼저 가서 미안하이.
순간, 미련 없이 목을 긋고 고꾸라지는 약방내시.
내시감 김자원이 황급히 달려가 쓰러지는 약방내시를 안고 솟구치는 피를 막으며 울먹인다.
내시감 김자원 : 아, 안 되네.. 안 돼.. 게, 아무도, 아무도 없느냐!
주위를 둘러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내시감 김자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내시감 김자원을 바라보는 약방내시. 그런 약방내시의 입가에서 서서히 미소가 사라진다.
내시감 김자원 : 저, 정신 차리게! 이보게, 필운이!
어느 순간, 약방내시의 눈동자에 희미한 광채가 돌더니 이내 사라지고.
내시감 김자원의 품에서 약방내시의 팔이 힘없이 떨어진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얼굴이 되는 내시감 김자원. 서서히 뺨이 실룩이며 일그러진다.
검버섯이 핀 쭈글쭈글한 손으로 죽은 친구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약방내시의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마르고 거뭇한 얼굴 위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애처롭게 약방내시를 안고 얼굴을 부비다 폭발하듯 어깨를 뜰썩이며 오열한다.
한없이 흐느끼는 내시감 김자원의 모습에서.
86. 대비전 – D
굳은 얼굴로 눈을 내리깔고 있는 대비.
대비 : 추호의 거짓도 없으렷다.
금옥 :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대비 : 밖에 승전색 있느냐?
대비전 승전색 : 네, 마마.
대비 : (금옥을 보며) 죽여라.
금옥 : (놀라서) 예? 왜, 절.. 마마, 살려 주십시오. 마마! 마마!
안 끌려가려고 발악하는 금옥을 대비에게서 떼어 내서 밖으로 끌고 나가는 승전색과 내창군.
대비 : (서슬 퍼런 눈으로 입술을 부르르 떨며) 내시 놈의 씨를 왕의 후사로 속였다? 씨 도둑질로 중전자리를 꿰차?
이런 발칙한 년!!
꼭 쥔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는 대비.
87. 화연의 처소 - D
물건들이 정리된 화연 처소의 문이 활짝 열린 채, 궁녀들이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내창군들이 앞마당에 죽 늘어선 가운데 왕후전 나인들 한쪽에 모여서서 훌쩍거리고 있다.
승전색 : 마마를 모시라는 대비마마의 지엄하신 분부가 계셨습니다.
올 것이 왔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화연.
88. 침전 - D
깊은 생각에 잠긴 왕의 모습. 그 위로,
대전내시(소리) : 전하, 내시감 들었사옵니다.
고개를 들고 문을 바라보는 왕.
89. 대비전 - D
대비 : 윤대감, 어서 대전으로 갑시다. 내, 이번에야말로 그 년의 발칙한 짓을 만천하에 밝히고 말테요.
노기 가득한 얼굴로 윤종호와 대비전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대비전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금군들.
대비 : 이놈들이,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드나드는 게냐?!
대비에게 간단하게 예를 갖추고 윤종호 주위를 에워싸는 금군들.
윤종호 : 아니, 뭣들 하는 게냐?
금군대장 이봉수 : 윤종호 대감을 역모 죄로 체포하라는 어명이시오.
대비 : 헛! 역모?! 당치않다. 썩 물러가거라!
금군대장 이봉수 : 송구하오나, 마마. 당장 하옥시키라는 어명이 있으셨습니다.
대비 : 어명?!
기세등등한 분노로 걸어 나오는 대비.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금군들.
대비 : (금군대장 이봉수에게) 자네를 그 자리에 앉힌 것이 누군데 감히 내게 칼을 겨누느냐!
금군대장 이봉수의 칼끝이 흔들린다.
대비 : 감히 내게 칼을 겨눈다?! 헛!
대전 쪽을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는 대비의 모습에서.
90. 밀궁 – D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고요히 앉아있는 화연.
91. 정전 – D
촛불도 켜 있지 않은 텅 빈 정전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대비. 금군들이 칼을 겨누고는 있지만 아무도 그 걸음을 막지 못한다.
문 앞에서 멈춰선 금군들을 뒤로한 채 정전으로 들어오는 대비. 뒤를 따르는 박상궁과 상궁들.
대비 : (분노한) 주상! 주상 어디 계시오?! (서슬 퍼런 낯으로 주위를 살피며) 예 있다는 걸 알고 왔소! 어서 나오시오!
대비의 목소리가 텅 빈 정전에 울려 퍼진다.
뭔가 불길한 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대비. 자꾸만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등을 들고 사방을 살피다 용상 뒤의 발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는 박상궁.
대비 :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내려오세요!
왕 : 그 아래선 제 얼굴이 안보이니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굴 보는지 모를 테고 전 이렇게 한 눈에 모든 게 보이니..
어마마마가 이 자리에 연연하시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대비 : 연연하다니? 대체 무슨 연유로 윤 대감을 하옥하라 명하신 겝니까?
조용히 용상으로 와서 앉는 왕. 그의 뒤 좌우로 일월오악도에 그려진 해와 달이 왕을 감싸고 있는 듯 보인다.
이 때, 등촉 내시가 들어와 대전의 곳곳에 불을 밝힌다. 차례로 대전이 밝아오면.
왕, 그윽한 눈빛으로 대비를 바라본다.
왕 : 제가 보낸 군사를 물리셨다지요?
대비 : (노하여 근엄하게) 대체 어미에게 무슨 짓이요!
왕 : 어명을 따르지 않는 군사들이라.. 제가 허수아비 왕이 맞긴 맞나 봅니다.
대비, 차가운 눈으로 왕을 노려본다.
왕 : (상궁과 내시들에게) 너희들은 모두 나가 있거라. (우르르 나가는 걸 지켜본 뒤) 보셨지요? 한 마디에 벌벌 떨고
우왕좌왕 하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위세고 권력입니까? (차가운 미소로 천천히 용상의 팔걸이를 툭툭 치며)
그래, 이 자리가 얼마나 좋으면 멀쩡한 아들을 사지를 잘라 허수아비로 만드시더니 이젠 없애려고 하십니까?!
대비 :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오?
왕 : (몸을 내밀고 부드러운 소리로) ..어머님이 제게 독을 먹이라 하셨습니까?
대비 : (의아한) 주상..
왕 : 어의가 벌써 실토했습니다. 정녕 윤종호와 모의하여 소신을 죽이려 하신 겝니까?
대비 : 뭐라?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왕 : 그렇죠? 윤종호가, 대비마마의 수족인 바로 그 윤종호가 혼자 그런 짓을 저질렀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대비 :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이건 모함이다!! 계운궁의 짓이 틀림없어. 내, 그년을 당장!
왕 : (대단한 발견을 한 듯 기뻐하며) 오호, 그렇군요. 약에 독을 타서 뒤집어씌운다? 저도 죽이고 선왕후 모자까지 죽이면
이 빈 자리에 누굴 앉히시려고 그러셨습니까?
대비 : 무슨 소리냐! 나나 윤대감이나 지금껏 주상을 보위에 앉히기 위해 살아왔는데!
왕 : 제발! 한 번만이라도 솔직하실 수 없습니까?
대비 : 계운궁이 어떤 계집인 줄 아느냐?! 선왕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왕 : 벌써 잊으셨습니까! OO왕후께서도 출산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대비 : 그 이후로 약을 썼다. 지금의 왕자가 태어났을 때, 의심스러웠지만..
왕 : (설마 하는) 형님께.. 독을 쓰셨습니까?
잠시 동안 왕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대비. 피하지 않고 보는 왕.
허공에서 얽히는 두 사람의 애증의 눈빛!
대비 : 내가 누굴 위해서 그리했겠느냐!
왕 : (주먹을 쥐고 용상을 내리치며) 누가! 누가 그런 짓을 하라고 했습니까! 대체 누굴 위해, 누굴 위해 그러셨단 말입니까!
제가 언제, 왕이 되고 싶다고 하더이까? (부들부들 떨며 울먹이듯) 왜 마음대로 절 왕위에 올려놓고
이제 어머님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십니까.
대비 : 이 어밀 못 믿겠다니? (눈을 부릅뜨고 두 팔을 버리며) 날 봐라! 네 어미다!
고립무원의 궐 안에서 핏덩이 같은 널 안고 지금껏 버텨온, 어미란 말이다!
왕 : (다시 정색하여) 어디 대면해봅시다. 그럼 곧 사실을 알게 되겠지요. 밖에 아무도 없느냐! 윤종호와 권유를 대령하라!
대비 : 그리는 아니 될 것이오!
왕 : 그리 될 것입니다!!
용상에 앉아 대비를 내려다보는 왕과 서서 그런 왕을 노려보는 대비의 팽팽한 시선.
대비 : 정녕 나를 거역할 셈인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대비를 쏘아보는 왕.
92. 밀궁 - D
내창군을 앞세우고 밀궁으로 들어서는 윤종호. 윤종호의 얼굴 위로 일렁이는 횃불의 그림자!
윤종호 : 계운궁을 찾아 처단하라!
우르르 흩어지는 내창군들.
화연, 군사들이 흩어지는 발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우르르 몰려드는 횃불들의 그림자가 보이고.
화연이 문 앞으로 나서서 일어나 감옥 앞으로 다가오는 윤종호를 노려본다.
윤종호 : (내창군들에게) 끌어내라!
감옥 밖으로 끌려 나오는 화연.
윤종호, 화연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목에 칼을 겨눈다.
윤종호 : 참으로 오래 버티셨소이다.
말없이 매섭게 쏘아보는 화연을 향해 칼을 치켜드는 윤종호.
이 때, 밀궁 입구로부터 들려오는 비명 소리!
윤종호,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양 팔을 잡은 내창군을 가격하는 화연. 쓰러진 군사의 칼을 빼앗아 윤종호에게 겨눈다. 그 위로,
내시감 김자원(소리) : 역적의 무리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소탕하라!
도수1을 위시한 수십 명의 근위내시들이 밀궁 안으로 들이닥치고 한바탕 칼바람이 몰아친다.
미로 안으로 내창군들을 몰아넣고 뚫고 들어가는 근위내시들.
쨍- 하고 허공에서 얽히는 칼날과 언월도!
창끝으로 상대의 급소 여러 곳을 가격하는 내시감 김자원.
피를 쏟으며 앞으로 쓰러지는 내창군을 찌르고 동시에 뒤에서 공격하는 적을 가격한다.
내창군들, 흩어지며 차례로 쓰러진다.
한편에서는, 근위내시들의 칼을 힘 있게 받아 치는 윤종호. 점차 화연 쪽으로 다가간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화연에게 내려치는 윤종호의 칼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쳐 내는 또 다른 칼.
칼을 떨어뜨리고 놀라 쳐다보는 윤종호. 보면,
정리가 되어가는 밀궁 안, 칼을 들고 조용히 다가오는 내시감 김자원의 모습에서.
93. 정전 - D
대전 문이 거칠게 열리며 근위내시들에게 둘러싸여 정전 안으로 끌려 들어오는 윤종호.
대비 : 유, 윤대감?..
그 뒤로 포박에 묶인 권유와 함께 들어오는 내시감 김자원을 보고 표정이 굳는 대비.
내시감 김자원 : 내시감 김자원, 어명 받들어 죄인들을 대령했나이다.
대비 : (동공이 부르르 떨리며) 저, 저 놈이..
긴장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대비와 윤종호. 근위내시들이 왕 앞에 권유와 윤종호를 꿇어앉힌다.
대비 : ..대체 어쩔 셈이오?
천천히 용상을 내려와 권유 앞에 서는 왕.
왕 : 어의가 사실을 자백했다. 그의 처소에서 증좌도 찾았느니라.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권유.
왕 : 어의가 지목한 배후가 누구일 것 같으냐.
권유 : 소인이.. 어찌 그것을 알겠사옵니까.
왕 : 네 입으로 직접 말해라. 약재에 독을 넣은 것이 누구냐.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윤종호.
왕 : 왜 말하지 못하느냐?!
권유 : 소인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소인이 그 탕제를 마시지 않았사옵니까.
왕 : 그럼 과인이 탕제를 마시라 할 때, 네가 주춤거린 이유를 물어보랴? 너는 독이 든 것을 알고 있던 게 아니더냐?
대비 : 주상, 그만하시오!!
왕 : (대비에게) 소자가 지금 이 내시 놈에게 묻고 있질 않습니까.
(권유에게) 분명 너는 알고 있었다!! 탕제에 독이 든 것을 어찌 알았느냐!!
초조하게 권유를 바라보는 윤종호. 그런 윤종호를 안타깝게 보는 대비.
대비 : 주, 주상, 이 모든 것이 계운궁의 모함이니라! 당장 계운궁을 끌어다 주리를 틀어 죄를 자복하게 해야 할 것이야!
왕 : 선왕후께서 무슨 연유로요? 어머님이 윤종호에게 말씀하시는 걸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으니 이제 진실을 말씀해 주시죠.
대비 : (무슨 일인 줄 알겠다는 듯이 해명하려고 다급하게) 그, 그건.. (입술을 깨물며) 네가 아니라 왕자와 계운궁을 말함이었다.
왕 : 도대체 마마를 왜?!
대비 : 계운궁이 어떤 계집인 줄 아느냐? 저 내시 놈과 붙어 종묘사직을 능멸하고 왕실을 욕보인 발칙한 년,
능지처참을 해도 모자랄 대역 죄인이니라!! 헤픈 계집이 너까지 홀리려 한 것이다!
왕 : 그만! 그만 두세요!
무서운 눈빛으로 왕을 쏘아보는 대비. 이 때,
화연(소리) : 맞습니다!
모두 돌아보면, 지쳤으나 굳건한 얼굴로 화연이 들어온다.
왕자를 안은 김상궁과 상궁들이 뒤를 따르고 밖에 있던 박상궁과 내시들도 따라 들어온다.
화연 : 제가 죄인입니다! 선왕의 왕자를 생산한 것도 죄고, 살아있는 것도 죕니다!
화연, 김상궁에게 왕자를 받아 앞세우고 왕 앞에 무릎을 꿇는다.
화연 : 하오나 전하 저 자가 누구이옵니까? 제 아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윤대감의 수하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핏발 선 눈으로) 세상에 어떤 자식이 제 부모를 죽인 원수와 내통한단 말입니까.
대비 : 저 내시 놈과 한통속이 분명하다. 네 년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 눈물을 흘리느냐!
화연 : 이 어린 것이 뭘 알고 뭘 할 줄 안다고 제가 감히 주상전하의 자리를 탐하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허나, 파렴치한을 몰린 채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왕이 권유의 앞에 다가가 서릿발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본다.
왕 : 네 입으로 진실을 고하렷다. 약재에 독을 타라 시킨 것이 정녕 누구더냐?
권유 : (눈빛이 흔들리며) ..
날 선 긴장감 속에 모든 이의 시선이 권유에게로 향한다.
고개를 들고 젖은 눈으로 화연을 바라보는 권유. 권유를 보는 화연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는 권유. 곧 이어 눈을 뜨고는,
권유 : 대비마마께서 소인에게 비상을 만들라 하셨나이다. 그것을 윤대감께서 전하의 탕재에..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정전의 분위기.
대비 : 아, 아니다! 사실이 아니다!
윤종호 : (사색이 되어) 전하, 이건 명백한 모함이옵니다!!
왕 : 닥쳐라!!
무서운 눈으로 대비를 바라본다.
대비 : 아, 아들아, 내가, 내가 널 얼마나 지극히 아끼는데.. 저런 거짓말을 믿어선 안 된다.
갑자기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흔드는 왕.
왕 : 왜 그러셨습니까! 이 아들을 죽일 만큼 왕의 자리가 그리도 중하셨습니까. 말을 해보십시오! 도대체 왜!
기둥에 대고 대비를 끌어올리자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숨이 막혀오는 대비.
목이 조여 오자 숨을 쉴 수 없어 왕의 손을 떼 보려고 붙잡는 대비. 잘 손질된 대비의 손톱이 왕의 화상 흔적에 박혀 피가 맺힌다.
괴성을 지르며 대비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왕. 핏발이 선 그의 눈에 가득한 살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왕의 힘에 꼼짝 할 수 없는 대비. 대비에 대한 애증이 들끓는 눈으로 대비를 누르는 왕.
박상궁 : 전하! 대비마마께서 숨을..
갑자기 정신이 드는지 대비를 떨어뜨리는 왕. 쓰러지는 대비를 끌어안는 박상궁.
왕은 패닉 상태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린다.
숨을 헐떡거리며 간질 환자처럼 손발을 바들바들 떠는 대비의 가슴을 세게 누르는 박상궁.
박상궁의 도움으로 겨우 숨쉬기 시작하는 대비를 바라보던 왕. 결심이라도 한 듯 옆에 있는 근위내시에게
왕 : 대비마마를 처소에 모시고 출입을 금하라! 누구든 대비전과 연락을 취하려는 자는 극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겨우 숨을 돌이키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대비에게 다가가는 근위내시들.
정전을 나가버리는 왕의 뒤를 왕자의 손을 잡고 뒤따르는 화연. 가다 말고 돌아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권유를 바라본다.
94. 의금부 앞 - D
처형장으로 가기 위해 건차에 실리는 권유. 모든 걸 포기한 듯 침착한 권유의 모습.
둘러선 군사들 틈으로 왕자의 손을 잡고 나타나는 화연. 모두들 주위로 물러난다.
권유, 비로소 그리움에 가득한 눈빛으로 화려하게 차려 입은 화연을 바라본다.
권유의 건차가 행보를 멈추면 다가가는 화연과 왕자.
권유, 엉금엉금 기어 쇠사슬에 묶인 손으로 수레 살을 잡는다.
가만히 권유의 손을 어루만지는 화연.
화연 : 약조를 지켜주어 고맙구나. 이 은혜는 꼭 기억하마.
화연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권유, 회한에 가득 찬 눈으로 화연과 왕자를 번갈아 바라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권유를 보는 천진한 왕자의 모습.
권유 : ..우리 아이를.. 잘 지켜줘..
화연 : 우리.. 아이?
어느새 표정이 바뀐 채, 권유의 귓가에 속삭인다.
화연 : 왕잔.. 누구의 아이도 아니야.
얼어붙는 권유의 눈동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화연을 본다.
화연 : 바로 내 아이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화연. 수많은 문을 지나 궁 안으로 끝도 없이 멀어져가는 화연.
그 모습을 끝까지 보던 권유. 돌아오는 표정이 무겁게 앞을 응시한다. 쓸쓸한 듯한 표정이 점차 편안해지며...
95. 침전 - N
일렁이는 촛불을 물끄러미 무언가를 바라보는 왕의 눈동자, 촉촉하게 젖는데.
눈앞에서 문이 스르륵 열리며, 침전 안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불빛이 들어오는 화연 얼굴로 쏟아진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왕, 안으로 들어오는 화연을 바라본다.
화연, 말없이 왕을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화연을 와락 끌어안는다.
왕 : 이제 다 됐습니까. 이젠 받아 주시겠습니까!
대답 대신 왕에게 키스하는 화연. 거칠게 화연의 품을 파고드는 왕.
호흡이 거칠어지며 화연의 옷을 내리는 왕, 화연의 입술을 찾는다.
눈을 감고 왕의 입술을 받아들이는 화연. 다시 눈뜬 표정이 알 수가 없다.
바닥에 흩어지는 두 사람의 옷.
왕이 확, 화연 머리의 뒤꽂이를 빼자, 틀어 올린 화연의 머리가 그녀의 어깨 위로 흘러내린다.
서둘러 화연의 몸을 훑어가는 왕. 화연을 깊이 끌어안자, 화연 낮은 신음 소리를 낸다.
더 깊게 더 깊게 몸이 으스러져라 화연을 안는 왕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화연의 슬픈 얼굴이 왕을 바라본다.
바닥에 떨어진 뒤꽂이를 더듬어 찾는 화연의 손. 뒤꽂이를 찾아 움켜쥔 화연의 손이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이 보인다.
호흡이 가빠지며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닫는 왕. 화연이 왕의 목을 끌어안고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왕, 화연의 입술을 깊게 받아들인다. 절정에 다다른 듯, 왕의 입술에서 길고 낮은 탄식이 흘러나오고.
순간, 눈을 번쩍 뜨는 왕. 눈의 흰자위가 뒤집어지며 컥- 하는 비명을 지른다.
마치 예전 선왕의 혈을 짚었듯, 왕의 정수리 혈락에 뒤꽂이가 꽂혀있다.
왕 : (분노와 경악에 찬) 왜.. 어찌..
울컥 피를 토하는 왕. 왕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피 묻은 뒤꽂이를 든 화연의 나신. 아름답다.
화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화연을 향해 손을 뻗치는 왕. 안겨 있어도 멀어만 보이는 화연이 아련하다.
왕 : (눈물이 맺히며) 이제 다 되었다고.. 원하는 걸 다 얻었다고 생각..
입술이 부르르 떨리며 또 한 번 피를 쏟는 왕.
왕을 무릎에 눕혀 앉고는 눈을 바라보는 화연. 눈에 눈물이 고인다.
비명을 듣고 방문이 왈칵 열린다. 놀란 눈으로 안을 바라보는 궁녀들, 주춤거리며 안으로 들어온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박상궁. 놀랐지만 이내 침착해지는 박상궁의 표정. 왕의 목에 손을 대어본다.
시선을 돌려 부들부들 떨며 문간에 모여 보고 있는 궁녀들에게 눈빛으로 경고한다.
이내 앉아있는 화연의 어깨에 옷을 걸쳐준다.
96. 욕실 - N
처음 궁궐에 왔을 때처럼 궁녀들에 의해 목욕재계하는 화연.
화려한 꽃잎을 띄운 욕조의 수증기가 사방을 에워싸고. 그 짙은 수증기 속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는 화연.
궁녀가 더운 물을 화연의 머리에 쏟는다.
인서트 미소 지으며 권유 쪽으로 몸을 날려 등을 마주 대고 서던 화연의 얼굴.
상대의 공격에 머리를 묶고 있던 금박이 수놓인 붉은 끈이 풀어지며, 햇살에 빛나며 긴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화연.
- 잠시 눈을 감고 물줄기를 느끼는 화연.
화연의 시선에 들어오는 건 긴장된 표정을 한 권유의 얼굴. 그리고 날아가는 붉은 끈.
어디선가 흰 나비 한 쌍이 느리게 날아다니면
- 화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97. 밀궁 - N
곤령포라도 만드는지 붉은 눈이 내리는 밀궁 안. 이어 간수들에 의해 밀궁으로 끌려 들어가는 대비의 뒷모습.
강하게 저항하는 대비를 양쪽에서 잡고 감옥 안으로 집어넣으며 자물쇠를 채우는 간수.
대비 : 내가 누군지 몰라 이러느냐? 당장 이 문 열지 못할까?
간수 : 조용히 하십시오. 마마께서 오신 걸 알면 가만있지 않을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간수의 말에 주위를 살펴보는 대비. 주위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는, 자기가 가뒀던 선왕의 후궁들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난다.
여전히 붉은 눈이 내리는 밀궁 안의 모습에서 천천히 밖으로 빠지면.
98. 침전 지붕 - M
지붕 위에 올라 왕의 옷을 흔들며 ‘상위복(上位復)’을 외치는 새로운 승전색.
인서트 소복소복 눈이 내려 온통 하얀 풍경의 궁궐.
99. 정전 - 새벽
내시와 상궁들이 서열대로 줄지어 서 있다. 나인들의 맨 앞자리에 서 있는 박상궁, 김상궁 그리고 김자원.
정전으로 들어와 발안에 왕자를 데리고 앉은 화연. 그리고 화연이 수놓은 금박의 용무늬가 새겨진 곤룡포를 입고 앉은 어린 왕.
화연 : 닷새 동안은 궐문을 닫고 모든 사무를 중지할 것입니다.
나이 어리지만 왕자가 왕위를 이을 것이니 즉위식을 성복에 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하십시오.
내시와 상궁들 : (내시와 상궁들 부복하며) 명대로 거행하겠사옵니다.
카메라 빠지면서 엔딩 크레딧 올라간다. The End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