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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九月, 趙卒不得食四十六日, 皆內陰相殺食. 來攻秦壘, 欲出. 爲四隊, 四五復之, 不能出. 其將軍趙括出銳卒自搏戰, 秦軍射殺趙括. 括軍敗, 卒四十萬人降武安君. 武安君計曰:「前秦已拔上黨, 上黨民不樂爲秦而歸趙. 趙卒反覆. 非盡殺之, 恐爲亂.」 乃挾詐而盡阬殺之, 遺其小者二百四十人歸趙. 前後斬首虜四十五萬人. 趙人大震.
9月에 이르러, 趙 군사가 먹지 못한지가 46일이 되자, 모두 안에서 몰래 서로 잡아먹었다. 진나라 성벽을 공격하고 벗어나고자 4隊를 만들어, 4∼5번 반복하여 공격하였으나, 탈출 할 수가 없었다. 將軍 趙括이 정예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스스로 肉薄戰을 하였으나, 秦軍이 趙括을 射殺하였다. 趙括의 軍은 敗하고, 卒 40萬명이 武安君에게 항복하였다. 武安君은 생각하기를 曰:「前에 秦은 이미 上黨을 함락한 일이 있다. 上黨의 백성들은 秦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고 趙에 돌아갔다. 趙의 士卒들은 마음을 뒤집기 때문에 그들을 다 죽이지 않으면 아마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마침내 간사한 계책으로 모두 구덩이에 넣어 죽였다. 어린아이 240명만 남겨 趙에 돌려보냈다. 前後참수되고 포로 된 자가 4십5만 명이었다. 趙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四十八年十月, 秦復定上黨郡.(33) 秦分軍爲二:王齕攻皮牢,(34) 拔之;司馬梗定太原.(35) 韓、趙恐, 使蘇代厚幣說秦相應侯曰:「武安君禽馬服子乎?」曰:「然.」 又曰:「即圍邯鄲乎?」曰:「然.」 「趙亡則秦王王矣, 武安君爲三公. 武安君所爲秦戰勝攻取者七十餘城, 南定鄢、郢、漢中,(36) 北禽趙括之軍, 雖周、召、呂望之功不益於此矣. 今趙亡, 秦王王, 則武安君必爲三公, 君能爲之下乎?雖無欲爲之下, 固不得已矣. 秦嘗攻韓, 圍邢丘,(37) 困上黨, 上黨之民皆反爲趙, 天下不樂爲秦民之日久矣. 今亡趙, 北地入燕, 東地入齊, 南地入韓、魏, 則君之所得民亡幾何人.(38) 故不如因而割之,(39) 無以爲武安君功也.」 於是應侯言於秦王曰:「秦兵勞, 請許韓、趙之割地以和, 且休士卒.」 王聽之, 割韓垣雍、(40)趙六城以和. 正月, 皆罷兵. 武安君聞之, 由是與應侯有隙.
48年 10月, 秦은 다시 上黨郡을 평정하였다. 秦은 군대를 나누어 2대로 만들고:王齕은 皮牢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司馬梗은 太原을 평정하자. 韓과 趙가 두려워하며, 蘇代를 시켜 두터운 예로 秦의 정승 應侯를 설득하였다.:「武安君은 馬服의 아들을 사로 잡았습니까?」曰:「그렇소.」 또 曰:「곧 邯鄲을 포위하려 하십니까?」曰:「그렇소.」 「趙가 망하면 秦王은 王者가 되고, 武安君은 三公이 될 것입니다. 武安君이 秦을 위해 싸워 이겨 성을 취한 것이 70餘城이고, 南으로 鄢과 郢과 漢中을 평정하였으며, 北으로는 趙括의 軍을 포로로 하였으며, 비록 周公과 召公과 呂望의 功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趙가 망하고, 秦王이 王者가 되면 武安君은 반드시 三公이될것이고, 그대는 그의 아래가 되지 않겠습니까? 비록 그의 아래가 되지 않고자 하여도 이미 어찌 하지 못할 것입니다. 秦은 일찍이 韓을 공격하여 邢丘를 포위하고, 上黨을 곤란하게 하였으나, 上黨의 백성은 모두 趙를 위해 배반하였습니다, 天下는 秦의 백성이 되기를 즐거워하지 않은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趙가 망하면, 北의 땅은 燕에 들어가고, 東의 땅은 齊에 들어가며, 南의 땅은 韓、魏에 들어가면, 그대가 얻는 바의 백성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나누어 받고 무안군의 공으로 삼지 않도록 하는 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에 應侯가 秦王에게 말하기를:「秦의 군사는 피로해졌으니, 韓과 趙의 땅을 나누어 받고 화해하여 士卒들을 쉬게 할 것을 청하니, 허락하소서.」하자, 王이 듣고, 한나라의 垣과 雍과 趙의 6城을 바치고 화해하였다. 正月, 모든 전쟁을 중지 하였다. 武安君이 듣고, 이로 말미암아 應侯와 틈이 벌어졌다.
(33) 索隱秦前攻趙已破上黨, 今迴兵復定其郡, 其餘城猶屬趙也.
索隱: 秦은 前에 趙를 공격하여 이미 上黨을 함락하였었는데, 이번에 다시 그군을 평정하였다. 그 나머지 성은 아직 趙에 속해있다.
(34) 正義故城在絳州龍門縣西一里.
正義 옛 城은 絳州 龍門縣 西쪽 1里에 있다.
(35) 正義太原, 趙地, 秦定取也.
正義: 太原은 趙 땅이고, 秦이 평정하고 취하였다.
(36) 正義鄢在襄州率道縣南九里. 郢在荊州江陵縣東六里. 漢中, 今梁州之地.
正義 鄢은 襄州 率道縣 南 9里에 있고, 郢은 荊州 江陵縣 東 6里있으며. 漢中은 지금 梁州 땅이다.
(37) 集解徐廣曰:「平皋有邢丘.」 正義邢丘, 今懷州武德縣東南二十里平皋縣城是也.
集解徐廣曰:「平皋에 邢丘가 있다.」 正義: 邢丘는 지금 懷州 武德縣 東南 20里 平皋縣 城이 이곳이다.
(38) 集解徐廣曰:「亡音無也.」
集解徐廣曰:「亡은 無로 읽는다.」
(39) 正義因白起之攻, 割取韓、趙之地.
正義: 白起의 공격으로 인하여, 割取韓과 趙의 땅을 나누어 취하였다.
(40) 集解徐廣曰:「卷縣有垣雍城.」 正義釋地名云:「卷縣은 所理垣雍城.」 按:今在鄭州原武縣西北七里也.
集解徐廣曰:「卷縣은 垣·雍城에 있다.」 正義: 釋地名云:「卷縣은 垣雍城에서 다스렸다.」 按:지금 鄭州 原武縣 西北 7里에 있다.
其九月, 秦復發兵, 使五大夫王陵攻趙邯鄲. 是時武安君病, 不任行.(41) 四十九年正月, 陵攻邯鄲, 少利, 秦益發兵佐陵. 陵兵亡五校. 武安君病愈, 秦王欲使武安君代陵將. 武安君言曰:「邯鄲實未易攻也. 且諸侯救日至, 彼諸侯怨秦之日久矣. 今秦雖破長平軍, 而秦卒死者過半, 國內空. 遠絕河山而爭人國都, 趙應其內, 諸侯攻其外, 破秦軍必矣. 不可.」 秦王自命, 不行;乃使應侯請之, 武安君終辭不肯行, 遂稱病.
그해 9月, 秦은 다시 發兵하여, 五大夫 王陵을 시켜 趙의 邯鄲을 공격하였다. 이때 武安君은 병으로 임무를 수행 할 수 없었다, 49年 正月, 王陵이 邯鄲을 공격하였으나, 利로움이 적자, 秦은 군사를 더욱 발병하여 王陵을 도왔으나. 王陵의 군사는 5명의 장교를 잃었다. 武安君의 병이 쾌유하자, 秦王이 武安君으로 하여금 王陵을 대신하여 將帥로 삼고자 하였다. 武安君이 말하였다.:「邯鄲은 實로 공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諸侯의 구원이 날로 도착할 것이고, 저 諸侯들은 秦을 원만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秦이 비록 長平의 軍을 쳐부수었다고는 하나, 秦의 士卒로 죽은 자가 過半이고, 國內는 비었으며. 멀리 산하를 넘어 다른 나라의 국도에서 싸우려하고 있습니다. 趙가 그 안에서 호응하고, 諸侯들이 그 밖에서 공격한다면, 秦의 軍은 반드시 깨질 것이니. 불가 합니다.」 秦王이 직접 명하였으나 가지 않았다.;마침내 應侯를 시켜 가기를 청하였지만, 武安君은 끝내 사양하고 가지 않고서 드디어 병이라 핑계하였다.
(41) 正義任, 入針反, 堪也.
正義: 任은 入과 針의 反切音이고, 堪이다.
秦王使王齕代陵將, 八九月圍邯鄲, 不能拔. 楚使春申君及魏公子將兵數十萬攻秦軍, 秦軍多失亡. 武安君言曰:「秦不聽臣計, 今如何矣!」秦王聞之, 怒, 彊起武安君, 武安君遂稱病篤. 應侯請之, 不起. 於是免武安君爲士伍, 遷之陰密. 武安君病, 未能行. 居三月, 諸侯攻秦軍急, 秦軍數卻, 使者日至. 秦王乃使人遣白起, 不得留咸陽中. 武安君既行, 出咸陽西門十里, 至杜郵. 秦昭王與應侯群臣議曰:「白起之遷, 其意尚怏怏不服, 有餘言.」 秦王乃使使者賜之劍, 自裁. 武安君引劍將自剄, 曰:「我何罪于天而至此哉?」良久, 曰:「我固當死. 長平之戰, 趙卒降者數十萬人, 我詐而盡阬之, 是足以死.」 遂自殺. 武安君之死也, 以秦昭王五十年十一月. 死而非其罪, 秦人憐之, 鄉邑皆祭祀焉.
秦王이 王齕로 하여금 王陵을 대신하여 將軍이 되게 하고는, 8∼9달 동안 邯鄲을 포위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楚가 春申君과 魏公子에게 군사 數 10萬을 이끌고 秦軍을 공격하게 하자, 秦軍은 많은 손실을 입었다. 武安君 이 말하였다.:「秦이 臣의 計策을 듣지 않고 지금 어떤가 말이다!」秦王이 듣고, 怒하여 억지로 武安君을 나가게 하자, 武安君은 드디어 병이 위독하다고 말하였다. 應侯가 가기를 청하였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武安君을 면직시키고 사졸의 대오에 편입하고 陰密로 옮기게 하였다. 武安君이 病이라하고, 가지 않고 머문 지가 3달, 諸侯들이 秦軍을 急히 공격하자, 秦軍은 자주 물러났고, 使者는 날마다 이르렀다. 秦王은 마침내 사람을 白起에게 보내어 咸陽에서 머무르지 못하게 하였다. 武安君이 이미 떠나, 咸陽 西門 10里 밖의 杜郵에 도착하였을 무렵에 秦 昭王과 應侯와 여러 臣下가 의논하여 말하였다.:「白起는 옮겨 가면서도 그 생각은 오히려 원망하며 복종하지 않고 원망하는 말이 있다.」 秦王은 마침내 使者를 시켜 劍을 내려, 자결하게 하였다. 武安君이 劍을 끌어당기며 자결하려고 하면서 말하기를:「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어 여기에 이르렀는가?」하면서, 한참을 지나 말하기를:「나는 본래 죽어야 마땅하다. 長平의 싸움에서 趙나라의 군사로 항복한 자 수십만 명을 나는 속여서 모두 생매장하여 죽였으니, 이것으로도 죽기에 족하다.」하고서, 드디어 自殺하였다. 武安君이 죽은 것은 秦 昭王 50年 11月이었다. 죽었으나 죽을죄가 아니었기에 秦나라 사람들이 그를 가련히 여겨, 鄉邑에서 모두 그의 祭祀를 지냈다.
(42) 正義彊, 其兩反.
正義: 彊은 其와 兩의 反切音이다.
(43) 集解徐廣曰:「屬安定.」 正義故城在涇州鶉觚縣, 城西即古陰密國, 密康公國也.
集解徐廣曰:「安定에 속한다.」 正義: 옛 城이 涇州 鶉觚縣에 있고, 城 西쪽은 곧 옛 陰密國이며, 密康公國이다.
(44) 索隱按:故咸陽城在渭北. 杜郵, 今在咸陽城中. 正義說文云「郵, 境上行舍」, 道路所經過. 今咸陽縣城, 本秦之郵也, 在雍州西北三十五里.
索隱按:옛 咸陽城은 渭水 北에 있고. 杜郵는 지금 咸陽城 안에 있다. 正義說文云「郵는 경계상의 행려(객사)이다」, 道路가 經過하는 곳이고. 지금 咸陽縣 城이며, 본래 秦의 郵이다, 雍州 西北 35里에 있다.
(45) 集解何晏曰:「白起之降趙卒, 詐而阬其四十萬, 豈徒酷暴之謂乎!後亦難以重得志矣. 向使眾人皆豫知降之必死, 則張虛捲猶可畏也, 況於四十萬被堅執銳哉!天下見降秦之將頭顱似山, 歸秦之眾骸積成丘, 則後日之戰, 死當死耳, 何眾肯服, 何城肯下乎?是爲雖能裁四十萬之命而適足以彊天下之戰, 欲以要一朝之功而乃更堅諸侯之守, 故兵進而自伐其勢, 軍勝而還喪其計. 何者?設使趙眾復合, 馬服更生, 則後日之戰必非前日之對也, 況今皆使天下爲後日乎!其所以終不敢復加兵於邯鄲者, 非但憂平原君之補袒, 患諸侯之捄至也, 徒諱之而不言耳. 若不悟而不諱, 則毋所以遠智也, 可謂善戰而拙勝. 長平之事, 秦民之十五以上者皆荷戟而向趙矣, 秦王又親自賜民爵於河內. 夫以秦之彊, 而十五以上死傷過半者, 此爲破趙之功小, 傷秦之敗大, 又何以稱奇哉!若後之役戍不豫其論者, 則秦眾多矣, 降者可致也;必不可致者, 本自當戰殺, 不當受降詐也. 戰殺雖難, 降殺雖易, 然降殺之爲害, 禍大於劇戰也.」 索隱捲音拳. 袒音濁莧反, 字亦作「綻」. 捄音救.
集解何晏曰:「白起가 항복한 趙나라 군사를 속여서 40만 군사를 구덩이에 묻어 죽였으니, 어찌 다만 가혹하고 포악하다고만 말하겠는가!後에 또한 뜻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난번 사람들이 항복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허풍을 쳐도 두려워하였을 것을 하물며 40만이 견고한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병기를 들고 있지 않았는가!天下는 진나라에 항복하면 두개골이 산같이 쌓이고 진에 귀의하면 해골이 언덕을 이루는 것을 보았으니, 後日의 싸움에서는 죽으면 죽었지 어찌 항복할 것이며 어찌 성을 함락할 수 있겠는가? 이는 비록 40만의 생명을 능히 처리하였으나, 마침내는 천하의 전쟁에서 강해지도록 만들어져 하루아침의 공을 이루려다가 오히려 다시 제후들의 견고한 지킴 때문에 군사가 진격하였으나 스스로 그 세를 꺾은 것이고, 軍은 勝利하였으나, 도리어 계책은 잃어버렸으니, 어째서인가? 가령 조나라 군사가 다시 모이고 馬服이 다시 살아난다면, 後日의 戰爭에는 반드시 전날의 대비는 아닐 것인데, 하물며 지금 모두 天下로 하여금 後日의 싸움처럼 하게한단 말인가! 끝내 邯鄲에 다시 군사를 더 증원하지 못하였던 것은, 非但 平原君의 보좌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諸侯들의 捄援이 이르기 때문에 그것을 꺼리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만약 깨닫지도 못하고 꺼리지도 않았다면 멀리 내다보는 지혜도 없었을 것이고, 잘 싸웠으나 졸렬한 승리였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長平의 일은 秦나라 백성으로 15세 이상인자는 모두 창을 잡고 趙로 향하였으니, 秦王 또한 직접 河內에서 백성들에게 작을 내렸던 것이다. 秦의 彊함은 15세 이상으로 죽고 부상을 당한 자가 過半이었으니, 이는 조를 쳐부순 공은 적고, 秦이 상처가나서 어그러짐은 큰데, 또 어찌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뒤에 전쟁을 하는 자가 이 논리를 예단하지 못하면 秦의 군사를 많게 하는 것이고, 항복한자를 받아들이면 된다할 것이나; 반드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니, 본래 싸움에서 죽이는 것은 마땅하고, 항복을 거짓으로 하는 자는 마땅히 받아들일 수는 없다. 싸움에서 죽이는 것은 비록 어렵고, 항복한 자를 죽이는 것은 쉬우나, 항복한 자를 죽이는 것이 害가 됨은 禍가 지독한 싸움보다 크다.」 索隱 捲은 拳으로 읽는다. 袒은 濁과 莧의 反切音, 글자는 또한 「綻」으로 쓴다. 捄는 救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