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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19 심판의 복음(마태복음25장1-13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5장 1절에서 13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25장]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약이 오히려 쉬울줄 알았는데, 한번에 한장씩밖에 못 나가니까 저도 속도감이 떨어졌어요. 좀더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신약이 사실은 더 영적이고, 더 수준높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은 그저 읽으면 대강 알만한데, 신약은 꼭 생각을 해봐야 되는 그런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열처녀 비유는 익숙한 내용이죠.
그런데 익숙하기는 한데, 그 동안 우리는 과잉 해석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쉬운 얘기를 너무 과잉해석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게 들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비유가 열처녀 얘기가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당장 우리에게는 어려워요.
우리가 왜 등을 들고 나가냐?
우리는 한번도 신랑을 맞이하러 나갈 때 등을 들고 나가본 적이 없잖아요.
한국 신랑은 낮에 오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신랑은 저녁에 오니까 그렇습니다.
참 거 좀 일찍 오지 그래. 신부 속을 태운다고 일부러 자꾸 질질 끌다가 저녁에 오니까 그래요.
그래서 혼인잔치를 하루종일 기다리고 저녁때에 춤을 추면서 신랑이 올 때까지 춤을 추다가 지쳐요. 나중에는..
어떤 처녀들은 잠잔다는데, 여기 자는 것은 얼마나 신랑이 늦게 오는지.. 슬기로운 처녀도 다 자요. 그렇죠?
다 졸며 잘새라..
이것은 예수님이 뭘 이야기하고 싶으냐 하면, 예수님 재림을 두고 하는 말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예수님 재림이 상당히 더디다, 사람들 보기에 상당히 더디다는 것을 여기 암시를 하고 있어요.
빨리 오는 게 아니야.
사실 이런 것을 예사로 생각했던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 마치 성령이 강림하듯이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할 때, 몇 날은 7일이죠.
그런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빨리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마태가 예수님 승천하신 후에 30년, 20년 이상 지난 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말씀을 했다는 거야.
빨리 온다고 하지 않고 더디온다고 한 거야.
더디온다고 했으니까 더디와도 문제가 안 되는 거죠.
몇날이 못 되어 오시는 성령처럼 그렇게 오시는 것 같으면 안 오시면 난리나는 거죠. ‘이게 무슨 부도난 것이다. 거짓말이다.’ 이렇게 할텐데, 마태가 이런 말씀을 여기 쓰는 것은 신랑이 더디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는 의도가 여기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 때는 열처녀가 맞이하러 나가는데,
‘슬기있는 자’는 의역인데, 슬기있는 자라는 말이 헬라어 원문으로 원어로 하면 ‘재갈먹이다’ 이런 뜻이예요.
어떻게 이해 됩니까?
재갈먹이다 라는 것은 우리 말로는 슬기있는 자라고 했는데, 어떻게 입에 재갈 먹이는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이죠?
대개 이런 게 있습니다.
입에 자갈 먹이지 않고 말을 잘꾸 해대는 사람은 생각없이 떠드는 사람이 많아요.
생각 할 시간도 없이 계속 떠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예요.
그래서 슬기로운 사람은 항상 말하면서 설쳐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떠드는 시간에 좀 더 살펴보고 준비한다는 뜻에서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번역했는데,
여러분 입을 좀 닫아야 슬기로워집니다.
자꾸 떠드는 사람들은 슬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입을 닫는다는 것은 듣는다는 거죠.
여러분 떠드는 사람은 잘 안 듣습니다.
말을 계속하면 ‘아니고 아니고’ 하면서 계속 상대방 말을 가로막고 말을 자꾸 할려는 사람들은 잘 안 들어요.
잘 안 듣는 사람들은 슬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참 슬기로울려면 입을 닫아야 돼요.
입을 닫고 생각을 많이 하고..
한참 더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생각해보면 생각할 바가 있어요.
그런데 미련한 자는 생각보다는 행동과 말이 앞서 버리고 덤벙대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미련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등을 가지고 있는데,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면 뭐 합니까?
배터리 없는 후레쉬지..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괜히 짐이야.
반드시 등을 가질려면 기름도 있어야 돼요.
여기 이런 것을 가지고 과잉 해석은 어떻게 하느냐?
‘천국은 마치’ 할 때 이게 비유야.
비유를 풀면 원관념이 나와야 되거든요.
비유에서 또 비유로 나가는 사람이 있어요.
기름은 또 뭐냐?
어떤 사람은 기름은 믿음이다. 기름은 성령이다. 이렇게 해가지고 반대방향으로 다시 그런 것 많이 해요. 설교를 보면..
예수님께서 목자시고 우리가 양이라 할 때, 우리와 예수님 사이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끝난건데, 그것을 다시 ‘양은 첫째..’ 하고 양으로 나가요.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다’ 할 때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죽잖아요. 열매도 못 맺고.. 그러면 끝난 얘긴데,
또 ‘포도나무는 첫째..’ 하면서 포도나무가 넝쿨을 타고 올라가요.
그래가지고 본래 말하고자 했던 뜻을 벗어나는 거예요.
제가 이것을 잘못된 과잉해석이라고 하는데, 여기 결론적 교훈이 뭐냐 하면,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다 줄을 그으세요.
슬기로운 자나 미련한 자나 밤이 깊어지면 다 좁니다.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줄을 그으세요.
이게 답이죠.
예비하였던 자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갔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예비하고 준비하고 있으라.
사람이 잠 안 잘 수가 없죠.
그런데 잠을 자도 ‘신랑이로다’ 하면 그 때는 예비가 안 돼.
어떤 사람은 못된 생각을 해가지고 ‘목사님 세상을 좀 즐기다가 예수님 오시기 바로 직전에 그 때 회개하고 믿으면 안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안 믿는 것보다는 낫겠는데..
문제는 그렇게 까불고 살다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자기 개인 종말이 오는 수가 있어요.
그렇잖아요? 그런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신앙을 갖게 되면, 참 열심히 살아도 충성할 수 있는 기회가 짧아서 애가 타야 될텐데..
농땡이 피우고 세상 좀 즐기다가 이것 뭐.. 세상에 즐길게 있는 모양인데, 나는 없어..
여러분 내놔봐요. 세상에서 뭘 해보고 싶어요?
이미 한 것만 해도 너무 안 했어요?
베드로가 그런 것은 다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너무 많이 했어.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즐길게 있는가 싶어도 없습니다. 가서 보면 다 허무해요.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서 우리 삶 전체가 미리 준비해야지..
여러분 건성으로 교회 왔다갔다 하다가 죽기 직전에 성경 제대로 한번 읽어보고 가겠다. 그렇게 안 됩니다.
나이가 들면 읽어지지도 않고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아요.
한살이라도 젊어서 공부해야지..
..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있는 것과 앞으로 예비하라. 예비하고 깨어있으라.
두마디로 끝나는 거예요.
이야기 다 하고 결론적 교훈은 예비하고 깨어 있으라.
..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결론은 그렇죠?
밤이 깊어서 오는데, 몇시쯤에 오는지 알지 못하니까 항상 깨어 있으면 좋겠고, 혹시 잠을 자더라도 준비를 하고..
기본 믿음을 가지고 잠들어야 돼죠.
지난번에 별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했는데, 마지막때에 사람들이 다 졸며 잡니다.
앞으로 물질주의 향락주의 세속주의 이런 것이 팽배해지면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적인 잠에 물질주의 잠에 취하고 향락주의에 취하고 이렇게 될텐데, 그래도 기본 믿음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 땅에 별이 떨어지는 충격에 깨어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별이 떨어지거나 달이 떨어지거나 기본적으로 믿음이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깨어나도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그 때는 준비가 안 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항상 미리 미리 준비해야 돼요.
그 다음에, 두 번째 비유가 14절 이후인데,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거기 줄을 그으세요.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반드시 따질 것은 따집니다.
제가 나중에 한번 시간나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따지는지 살펴볼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계산에 상당히 밝아요. 정확하게 따집니다.
회계한다는 거예요. 회계..
어물쩡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따질 것은 따지고 짚고 넘어가요.
여러분 대충 믿어서 어정쩡하게 하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하나님은 철저한 분이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레위인들을 하나님께 레위인들 중에서 바쳐진 것은 각 사람들이 장자를 하나님께 바친 것은 대신해서 바쳤다는거야.
그래서 세어보니까 레위인수가 장자 수보다 작은 거야.
그러니까 숫자가 230명 더 차이가 나요.
레위인들을 하나님 받은 것처럼 너희 장자 다 받을 것을 내가 레위인 대신 받았으니까 계산해봐라.
계산해가지고 너희 장자수가 더 많잖아.
그래서 더 받아야 되는데, 레위인 다 받아도 모자라.
몇명은 돈으로 계산처럼 가져와.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굉장히 하나님께서 회계에 밝은 분이예요.
그래서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거기 줄을 그으세요.
‘착하고 충성된 종..’ 악하고 충성되면 안 되겠죠.
성품으로는 착하고, 행위는 충성되게..
존재와 성품이 함께 다 나타나야 돼요.
..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하고 달랑 한개 내놨어요.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착하고 충성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여러분 우리 모두가 예수 믿는 사람이 살인하고 무슨 간음하고 도적질하고 담을 넘고 밤이슬 맞고 그런 것은 안 하지만, 어떤 죄에 걸릴 수 있느냐 하면 교만하고 게으른 죄에 다 걸릴 수 있어요.
무슨 일 조금하고 교만하거나, 안 하고 태만하고 게으른 것은 누구든지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게 최종 심판 판결문이야.
..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하나님도 그렇게 할 수 있죠?
하나님이야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 있죠.
밀가루 한 사발을 가지고 엘리야가 과부집에 가서 3년이나 먹어도 그렇게 거둘 수 있는 거죠.
오병이어도 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이 비유는 다른 것 아니죠.
여러분 사람들마다 타고 난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에서 큰 일 작은 일 많은 일 여러 가지 맡은 사람 몇가지 맡은 사람 이렇게 있는데, 하나도 노력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여러분 똑같이 적어도 시간 같은 것은 대개 똑같이 받는 거죠.
하루에 24시간씩..
그 다음에 한달 30일 똑같고 다 같아요. 같은데, 인생의 길이가 70년 살았다 할지라도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야. 능력에 따라서 자세에 따라서..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맨날 심판 없는 복음만 들었어요.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그저 심판 없는 복음만 받았는데, 마태복음을 보면 놀랍게도 마태복음은 심판의 복음이야.
오늘 설교 제목이 ‘심판의 복음’이예요. 심판이 있는 복음이야.
심판이 있는 복음을 듣고는 준비를 잘 한 사람은 그 심판에 상을 받고 복을 받겠지만, 심판의 복음이기 때문에 준비를 안 하거나 준비를 잘못하면 책망도 있고 매도 맞는다고 해요. 매도..
우리가 마태복음을 특별히 그렇게 보는 것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태복음은 특히 그 점을 더 많이 말하고 있는데,
첫째, 우리가 맨 앞에서 볼 때 집을 반석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이 있었고,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이 큰 차이가 나는 거죠.
그 다음에, 천국은 마치 어부가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데, 바닷가로 끌고 가서 좋은 물고기는 통에 담고 몹쓸 물고기는 내버린다.
그 다음에, 알곡과 쭉정이,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 이게 전부 심판이죠.
그 다음에, 지난번에 본 대로 예복을 입은 자와 예복을 입지 않은 자..
그 다음에, 오늘 본대로 기름을 미리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와 미련하여서 준비도 안 하고 자는 사람..
그 다음에, 오늘 두 번째 본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 가서 남겼는데, 한 달란트를 받아서 달랑 묻어두었다가 본전만 가지고 온 사람..
그 다음에, 나중에 다시 볼 비유는 사랑과 긍휼이 없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31절이죠.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복 받을 자들’입니다. 앞으로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이 사람들을 위해서 예비한 나라가 있어요. 천국이죠.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래서,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게 심판의 복음이죠.
우리는 그저 예수 믿는다고 그냥 예배당 다닌다고 세례받았다고 그러면 어떻게 살든지 도덕적으로 문제 없을 것이다. 자꾸 이런 이상한 복음을 들었어요.
마태복음을 잘못 들은 거야.
마태복음은 심판의 복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의인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아주 인정도 사정도 피도 눈물도 없이 아주 냉혹하게 굳어버린 이기주의에 빠져버린 그래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고 그게 사두개인들이고 그게 율법학자들이고 서기관들이고 그 당시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다분히 그렇습니다.
대형교회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제 앞자리쯤에 앉는 분 중에 말을 못하고 귀를 못 듣는 사람이 있었어요.
귀를 못 들으니까 말을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분이 공부시간에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눈으로 글을 읽어서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강의시간에 앉아 있어요.
못 들으면서도 앉아 있어.
흑판에 쓰는 것 보고 책을 읽고 하는데, 누군가가 그 분의 노트를 펴보다가 이분이 어떻게 쓰는가 싶어서 보니까 노트에 한켠에 보니까 시가 이런 저런 시가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그 시를 읽어보고 충격을 받아가지고 싸움 싸움을 해가지고 빼앗다시피 해가지고 그분의 시 노트를 빼앗아가지고는 우리 동기생이 그 때 290명쯤 되는데, 원하는 사람들은 주문하라고 해서 복사집에서 시집을 만들었어요.
복사한 시집을 만들었는데, 제가 한번 본인의 허락을 받으면 출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읽어보는 사람마다..
귀가 안 들리지만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거예요.
말을 못하면서도 말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시로서 글로서 하는데..
그 분이 서덕석 목사님이신데, 지금 성남에 어딘가 목회를 하고 있다고 그래요.
말을 못하면서 목회를 하고 귀를 못 들으면서 목회를 하는 거야.
그런데 그 때 쓴 시로 봐서는 그분 목회 잘 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제가 오늘 그분의 시 중에 한편을 카피해 왔어요.
읽어드릴 마음이 있습니다. 괜찮겠어요?
시 제목이 ‘나는 너를 모른다.’ 하는 그런 시인데,
「나는 너를 모른다」 - 서덕석
그 때 너는 거기 없었다
내가 이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신음하고
꼴찌의 비애를 씹으며
일마다 죽을 쑤어
되는 것 하나 없이 참담했을 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너는 함께 있어주지 않았다
석달치 밀린 월급을 못 받아
생라면 한 봉지로 하루를 버티고
버스표도 없이 오도 가도 못할 때
엄동설한에 싸아 한 가스를 들이마시며
언 몸을 녹일 화덕에
갈아 넣을 19공탄 한 장 없을때
너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뿌리뽑혀
비오는 길 거리로 내어 몰리는
전쟁터 같은 철거민 촌이나
우리 손으로 세운 노동조합을 지키자며
밤새워 악을 쓰며 노래부르던
그 농성장에도
너는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내가 이 시대의 아픔을 껴안고
목청껏 외치다가
무지막지한 군화발에 채이고 얻어터지며
최루탄개스에 눈물 흘릴 때
서대문이나 안양 혹은 광주의 붉은 벽돌집에서
손때묻은 벽을 바라보며 썩는 세월
숨막히는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너는 나를 찾아 주지 않았다
빌라도의 뜰
그 엉터리 재판정에서
그들이 나를 묶어 사형을 선고하고
옷벗기고 침뱉고 욕하며 목조르고 때릴 때
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희미해진 나의 시선이
혹시나 싶어 아래를 휘둘러 보았을 때에도
너는 거기에 없었다
그런즉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
이런 시예요.
그래서 이 때가 우리 얼마나 다 데모하고 그 정말 아픔을 안고 괴로움을 안고 멸시천대 당하고 맨날 봄되면 그저 온통 서러워서 울고 최루탄 가스에 울고 이렇게 할 때, 80년대입니다. 80년대..
전두환씨가 일어나서 군화발로 짓밟고 걸핏하면 정화대상자들이 정화위원이 되어서 괜찮은 사람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을 저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하던 그런 때에요.
그럴 때에 이 시를 썼는데, 우리 홈페이지에 그분이 쓴 시를 몇편 올려놨습니다.
광주에 아들 잃어버린 어머니의 피눈물 노래하는 것.. 우리는 안 들리는데도 그분은 들리는 거야. 귀가 안 들리는데도..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무관심하고 지가 복을 못받아서 그렇겠지 한다든지, 나몰라라 한다든지 어려움 당한 사람 돌아보지 않는 그것이 예수님께 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에 이상한 복음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복음’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번영신학이라고 하는 것이 최근에 나와서 잘되고 잘되고 잘되는 이상한 복음을, 성경에 없는 복음입니다.
그런 이상한 복음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 힘겨운 사람 가난한 사람 돌아보는 것은 전혀 뭐 특별한 사람들이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마지막 비유는 심판을 하는데, 상 받을 사람들이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차지하라 했는데,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것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난적도 없다고 하니까 ‘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라고 한 거예요.
물론 여기서도 잘못된 신학이 지나쳐서 민중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이렇게 민중신학까지 가는 것도 잘못이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그랬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형상에게 잘 하는 것이 실상을 기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실상이고 우리 인간은 형상인데 실상을 존경하면 형상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성경 전체 어디를 봐도 아무리 봐도 예수님은 하나님은 역시 약한 자 편이나 가난한 자 편에 있는데, 오늘 번영신학이라는 것은 약한 자 편이 아니예요.
계속 부자 편이고 가진자 편이고 권력자 편이고 이렇게 하면 교회가 타락하는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 사람들은 그랬죠?
우리가 봤으면 예수님을 그냥 둘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벗은 것 못 봤죠..
우리 집에 왔으면 참 잘 대접했을 텐데..
이렇게 하니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사람들은 영벌에 들어간다.
분명히 심판의 복음이예요.
우리는 여태까지 심판없는 복음 그런 것만 생각했지,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라든지 의인중에서 악인을 골라낸다는 말씀이 도처에 있는데, 일부러 눈감고 설교를 안해버리는 거야.
한 절도 안 빼고 다 하다보면 다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성탄절때마다 말씀을 드립니다만 어떻게 할 수 있든지 간에 우리에게도 마음에도 그렇고 우리 가옥구조중에 방한칸쯤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아껴서 저축을 해야 돼요.
저축을 해야 우리가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나타날 때 도울 수 있는 거죠.
내가 벌어서 내가 다 쓰고 나면 우리가 남을 어떻게 도와요?
내가 아끼지 않으면 내 쓸 것도 모자라는 거죠.
열심히 일하고 아껴야 돼요.
검소하게 쓰고 그리고 남을 돕는데,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몰라가지고 못하는 게 많을 거예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참 굉장한 말씀이죠.
사실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남긴 교훈중에 마지막 교훈이예요. 이게..
이 뒤로는 십자가와 부활이지 따로 남긴 교훈이 없거든요.
그리고 맨 끄트머리에 가서 제자를 삼아서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는 지상명령이 남아 있을 뿐이고, 예수님의 최종적 교훈은 사랑과 긍휼이 없는 사람은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많이 먹고 많이 마셔봐야 비만 될 것이고 많이 마셔봐야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조금씩 덜 먹고 좀 덜 쓰고, 옷 잘 입어봐야 다 잘 입으니까 표도 안 나요. 보니까..
옷을 딴 사람은 잘 못 입으면 내가 표가 날텐데, 세상 사람들이 옷을 너무 잘 입기 때문에 잘 입어봐야 우리는 하나도 표가 안 납니다.
좀 더 검소하게 입고..
하도 요즈음은 아름다운 것도 표준도 기준도 없어요. 아무 것이나 입어도 돼요.
그러니까 경건하게 그리고 질기고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런 것을 너무 사치하게 그런 것 하지 말고 또 화장품 최고급 발라봐야 남는 게 없어요.
저녁되면 다 씻어내니까..
토깨비가 흉내를 못내.. 방금 발랐다가 씻어내니까..
영국에 어떤 여성이 화장품도 안 쓰고 세수도 안 하고 양치질도 안 하고 목욕도 샤워도 안 하고 40일을 지내봤대요.
신문에 났어요. 진짜..
그러면 건강이 나빠지는가 싶어서 검사 했는데, 하나도 안 나빠지고 피부가 더 좋아졌답니다.
단 치과가 좀 문제가 있어서 치과에 가서 치료 받았답니다.
하나도 나빠진 것이 없어요.
씻고 또 씻고 피가 나게 씻어도 암은 암대로 걸리고 병은 병대로 걸리고 그러면서..
너무 깔끔 떨지 말고.. 그래봐야 저항력만 떨어져요.
너무 깔끔을 떨어서 아무 병과 싸워보지 못하면 저항력만 떨어진다니까..
그러니까 어지간하게 하고 범사에 아낄 수 있어야 돼요.
제가 전에 옛날에 청년때에 김용기 장로님 모시고 특강을 들었는데, 비누를 남자는 한번, 여자는 세번, 그리고 치약 3mm.. 그렇게 절약을 해요.
근검 절약..
4시간 일 안 하면 밥 못먹게 하죠.
그렇지 않아도 시골에서는 아낄 수밖에 없었는데, 아껴쓰고 이렇게 하니까 조금씩 모여요.
고인이 되었습니다만 우리 집사람 같은 경우에 교회에서 받는 급료가 내가 아무리 봐도 여유가 없는데, 목회자가 되어서 19호봉이 되었는데, 한달에 70만원 받았어요.
그렇게 살면서도 저축을 했더라고..
딸 셋을 진주에 유학을 시키면서..
어떻게 살았겠어요? 그렇게 살면서도 어떻게 아껴서 저축을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저축을 하지 않으면 남을 도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근검 절약하지 않고는 남을 못 도와요.
놀랍게도 천국에 가서 보면 내가 나를 위해서 쓴 것은 전부 마이너스로 계산 될 것이고, 천국에서 회계할새. 그렇죠?
내가 나를 위해서 쓴 것은 전부 마이너스가 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나라와 및 복음과 그리고는 가난한 사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운 것만 플러스로 남을 거예요.
그래서 얼마만큼 많이 버느냐 자랑할게 아니라, 얼마만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얼마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썼느냐? 그게 아마 의인이 아니겠는가..
그게 정말 복 받은 거죠.
왜냐하면 이 세상은 짧게 가는데, 그 이후에 짧은 시간에 내신성적 가지고 심판 이후에는 영벌 아니면 영생이라니까..
우리의 짧은 일생에 우리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하면 정말 우리가 어떻게 믿었으며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없는 삶이라는 것은 성공한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아름답게 쓰지 못하고 죽었다면 비참한 거죠.
벌면서 얼마나 애를 썼겠어요? 쓰지도 못하고..
그런데 정말 땀 흘려서 열심히 근검 절약해가지고 아름답게 쓰되 가능하면 우리가 소리 안 나게 모르게 해야 돼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요만큼 해놓고 TV카메라 불러놓고 그렇게 나팔을 불어버리면 천국가서 상이 없는 거예요.
‘너는 네 영광을 땅에서 다 받아버렸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중에 하나님이 갚아 주시도록..
그렇게 해서 좋은 소문이 나야 됩니다.
여러분 서울에 가면 교회 사람들이 목사님 이름도 기억 못하고 교회 이름도 잘 모르는데, ‘감자탕 교회’라는 교회가 있어요. 들어보셨나요? 감자탕 교회..
교회 이름 참 요상하다 했는데, 세상에 이름 지을게 없어서 감자탕 교회를 지었나..
그게 아니고 교회 이름은 따로 있는데, 감자탕이라는 음식점이 있는 건물 안 쪽에 숨어서..
자기 자체 건물은 어쭙잖은 거야.
그런데 그 교회의 목사님이 대한민국의 슬픔이 있는 모든 곳에 제일 먼저 달려갑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 사건이 어떻게 났던지 그런 것 안 따지고, 어떻든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에 그 감자탕 교회 목사님과 그 교회 성도들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봉사를 하니까 소문이 났어요. 감자탕 교회라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한 때 그 최종 끝날 때까지 그 교회가 철수하지 않고 매일같이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 지역에 그 당시에 그 이후로도 소문이 났어요.
기독교는 잘 모르겠는데, 감자탕 교회는 안다는 거예요.
교회도 그렇지만 가정들도 여러분 사는 우리 성도님들이 사는 바로 그 자리가 선교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끼리만 챙기고 따지고 이렇게 하지 말고, 그 앞집 뒷집 건너집 옆집 윗층 아래층 해가지고 우리의 관심과 기도가 미치는 영역이 있으면,
그 안에 근방에 교회 안 다니는 사람 믿는 사람들이야 뭐 하나님 잘 돌아볼테니까 놔두고, 믿지 않는 사람들 어려움 당할 때 ‘믿는 집 사람 누구누구 집사 누구누구 장로님이 제일 먼저 달려왔더라’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항상..
이게 기본자세예요.
또 부자같으면 그렇게 알뜰히 안 챙겨도 되는데, 가까운 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열심히 돌봐야 돼요.
우리가 그 동안에 너무 이기주의에 개인주의에다가 아니면 성공주의 번영신학 이런 것들이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어지럽혀서, 마태복음이 정말 심판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무관심한 거예요.
어떻든 우리가 이 심판의 복음에 다 관심이 없었어요.
우리가 심판의 복음이라고 할 때, 제가 일곱가지를 얘기 했죠.
첫째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
둘째는 좋은 물고기,
셋째는 알곡과 쭉정이,
그 다음에 예복을 입은 자, 예복을 입지 않은 자..
예복을 착한 행실로 예복을 입고,
또 깨어서 기름을 준비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달란트 어떤 은사 어떤 능력 무엇을 받았든지 간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열심히 노력해가지고 또 다섯달란트 더 남겨야 돼요.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과 긍휼이 있어서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뜰히 돌아보는 사람..
그래서 계명이 그렇잖아요. 이웃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하라..
제가 제 몸이 대체로 건강하거든요.
한 10년 동안 아무 운동을 안해버려서 운동 부족으로 혈당이 좀 높아진 것 외에는 다른 것은 거의 괜찮아요.
이 나이에 병원에 가보니까 동맥경화가 없다하니까 음식 조심한 것 다 효과 있잖아요.
대체로 다 건강한 편인데, 그래도 제가 발이 조금 안 좋거나 손가락 가시 찔리면 그것 뺄려고 그저 어두운 눈 가지고 돋보기 갖다대고 하는 게 제 몸이거든..
그렇게 하면서 내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 내가 이만큼 살피고 있는가 할 때 부족한 거야.
그 동안 우리가 너무 우리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 무관심했다는 것 아닌가..
다시 한번 우리가 우리 마음을 기울여서 우리의 이웃 사랑하기를 정말 제몸같이 하는 기본 자세를 가다듬고 그렇게 되는 것은 그 다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돼요.
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앞집 뒷집에 있을 때 그 집에 무슨 아픔이 있는가 어려움이 있는가 근심이 있는가 살피고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에서는 은혜를 주실 것이고 천국에서는 칭찬과 상급이 있을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마태를 통해서 우리가 듣는 복음은 심판 없는 복음이 아니라,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또는 좋은 물고기처럼 알곡처럼 예복을 입고 혼인잔치에 들어간 손님처럼 그리고 깨어 예비하고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더 남겨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은 사람처럼 가난한 사람들 지극히 작은 사람들을 내몸같이 돌본 사람들이 사랑과 긍휼이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은 것처럼,
우리 샤론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칭찬받고 상급있는, 땅에서도 은혜와 복을 받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