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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0: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날마다 예배당에 드나드는 한 낯선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관리인이 그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로 날마다 오느냐?”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기도하러 왔지요” 관리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습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지켜보니 잠깐 들렀다 가는 것 같은데 언제 기도한단 말이오?" 노인은 송구스럽다는 듯이 주뼛대며 말했습니다. “예, 그래요. 나는 오래 기도할 줄 모른다오. 그래도 날마다 12시만 되면 어느 교회이든 꼭 들러서 ‘예수님, 나요, 나’ 하고 부르고 가지요. 잠깐 주를 바라만 보아도 주님은 나를 알아주실 것만 같다서지요.”
얼마 후 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노인이 입원한 후 투덜대던 그 병실의 환자들이 변하였습니다. 간호사가 병실을 찾아와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병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모두 어르신 덕분이라더군요. 항상 즐거우시다면서요?”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고말고. 그것은 나를 찾아오는 사람 덕분이라오. 날마다 그가 나를 기쁘게 한단 말이오” 간호사는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르신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요?” 간호사는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그를 면회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날마다 12시만 되면 그분이 와서 빙긋이 웃으시며 ‘여보게 날세, 나 예수라네’ 하지 않겠소.”
오늘 예배에 자리에 주님이 우리에게 잘 왔어,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선거판에서는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드는 것에 대해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데 아이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우길 원하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를 설명하고 계시고 그 나라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거 때마다 걱정되는 것은 지역과 세대와 남녀 차별을 두면서 나누어 편을 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편을 나누는 것입니다. 목회자 편, 평신도 편으로 말입니다. 만일 그런 목회자가 있다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삯꾼입니다. 그런 평신도가 있다면 그를 물리치고 멀리하시고 교회 밖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멀고 그들의 가르침은 거짓으로 가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두가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통치 되는 곳입니다.
오늘 저희가 섬기는 공동체는 교육부가 의논하고 당회 때에 보고한 것처럼 온 세대 예배를 드리려고 모였습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신학적인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동안 소홀하게 여겼던 아이들과 함께 부모가 예배하며 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세대 간 끊어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에 이어져 있음을 알리고 결국은 어린아이들이 미래에 예배의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 3가지를 함께 나누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예배에 자녀들과 함께하라
제가 결혼하고 개척교회를 할 때 참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젊고 철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저절로 교회는 부흥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며 또한 제가 그정도 능력이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정말 가족들과 몇 분이 함께 교회에 등록을 해서 그럭저럭 희망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열정이 부족했고 예배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도 부족했습니다.
결국 어려운 일들을 맞이하면서 저희 가족이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 예배였습니다. 그 전에는 따로 예배를 드리거나 식사 때에 기도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함께 아이들과 밤마다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기도도 시키고 그렇게 가족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은 힘이 있고 행복하며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예배를 보고 듣고 계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예배의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유아실이 좋긴 하지만 그곳에서 예배 시간의 경건함이나 거룩함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있기를 좋아하고 결국 주일학교는 부모와 자녀간에 예배의 간격을 벌어지게 해 버린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을 가르침을 중시하며 더 많은 은혜를 얻고 체계적으로 배우게 한다는 뜻에서 좋은 장점이 있지만 부모와 함께 영적으로 소통하는 귀한 시간은 빼서 버렸습니다.
그렇게 빼앗아버린 부모와의 예배의 자리는 결국 아이들의 학교에 더 치중하게 되고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예배하면 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걸 알고 다시 돌려놓으려고 하자 청년이 되어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는 그들은, 오히려 부모를 이기게 되어 역전의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어려서 어머니가 속회를 들릴 때면 어머니 옆에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삶은 계란을 먹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성도는 예배 드리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고 밖에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에 다과를 나눌 때는 불러옵니다. 그리고 먹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시겠지요. 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놀다가 먹을 때는 오라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들을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히며 찬양도 하고 설교도 듣고 헌금도 하게 하고 주기도문도 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예배의 순서가 주기도문입니다. 그래서 힘차게 따라 노래처럼 부릅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끝나면 벌떡 일어나며 ‘끝났다’ 소리칩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도 그 주기도문 시간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어려서 예배의 소중함을 배우고, 예배는 어른들의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해야 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삼상 1: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이 주인공은 사무엘입니다. 그는 정말 어려서부터 엘리 제사장에게 훈련을 받고 예배의 참여자가 되어 결국은 위대한 하나님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예배에 본이 되는 모습을 보이라
어려서 속회를 드릴 때에 어머니나 이모님들이 보여주신 모습에서 그런 줄 알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속회 마지막 주기도문을 함께 외울 때에 부엌으로 들어가서 대접할 음식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계란을 넣은 불을 켭니다. 그리고 과일을 넣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눈을 뜹니다. 그래서 훔쳐봅니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음 집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경건함을 잃지 말고, 모두가 마음을 다해 끝까지 예배를 드린 후에 그다음에 다과를 나누며 교제를 하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은 그런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아마 먹는 것이 귀할 때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수선하신 분이 계시긴 합니다. 가만히 안 있고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오래 앉아 있으면 힘들어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신자도 어린 아이들도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진심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그 모습이 미래의 우리 아이 예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마음이 먼저임을 보이며 그 마음은 모든 순서순서를 귀하게 여기고 ‘아멘’으로 응하고 화답하고 함께 하며 힘차게 찬양하고 말씀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쉽고 별거 아닌 듯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게 진정성 있는 자세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을 것이며 그를 귀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게 해 줄 것입니다.
요즘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과거 어렸을 때에 행했던 그 행동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서 생활이 별거 아니고 그냥 다 지나가면 끝이라고 여겼는데 그 행동들이 어른이 되어 잘 나가려고 할 때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려서는 공부를 잘하면 다른 것은 대충 살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성이 매우 중요한데 그 인성은 어른이 돼서 고치기 어렵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런 인성을 가진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모든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은혜에 감사하는 신실한 예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우며 그리고 학교 생활도 사회 생활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셋째 예배를 통해 마음껏 축복을 받게 하라
몽골 이용규 선교사님의 책 [내려놓음]에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2005년 봄,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몇 달 전 우리 팀의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습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 안 되면 자신의 실패이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21: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습니다. 그 축복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아이들이 나오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축복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축복하였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하는 축복을 하셨을 것입니다. 또 믿음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열매 맺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하였을 것입니다. 건강하고 또 세상을 이끌어 갈 지혜도 구하셨을지 모릅니다.
예배는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자리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구별되고 거룩하고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고 허락받는 자리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대신하여 할 수 있는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구하는 자리이며 허락받는 자리입니다. 이들이 믿음의 계승을 통해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구하고 허락받는 자리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냉랭해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도 더 이상은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들 역시 많은 부분 부모에게 더 이상 의지하거나 의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자리를 보여주고 물려주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예배의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되도록 함께 예배의 자리에 초대하고 예배의 자리에서 축복을 받게 하십시오. 그것이 부모와 우리 어른들이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크나큰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