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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마태복음 17장 22-23절 / 22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시다.
예수님은 구속주로서의 공생애 기간에서 마지막 방문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있으시는 것에서 이방인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북방 갈릴리 지방에서의 사역으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셨을 때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해 주신 때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예고하시는데, 여기에서의 예고는 두 번째 예고입니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예고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원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사형이 결의된 예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두 예고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첫 번째 예고에서 산헤드린 공회원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사형이 결의됨으로 두 번째 예고에서는 그 예수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예고하신 대로 죽임을 당한 후 제삼일에 살아날 것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예고로 시작된 예수님이 죽음의 고난을 당하실 것과 부활하실 것이 두 번째 예고에서 알려 주시고 있는 것으로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이 말씀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시게 된 배경
그러면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처음에 이어서 이번에 두 번째로 또 다시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봅니다. 두 번째 예고에서는 예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 예고를 해 주신 때는‘갈릴리에 모일 때에’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갈릴리에 다시 모이게 되었을 때에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첫 번째의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가 있은 지 엿새 후 갈릴리에 있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변화산으로 불리게 되는 산에로 갔다가 갈릴리로 다시 돌아와 그곳에 머물며 사역하신 그때를 뜻합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께서 자신에게 있을 일인 죽임을 당하는 고난과 제삼일에 살아날 부활을 거듭 예고하시기까지의 엿새 동안의 기간에 이와 관련한 중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고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지 말라는 만류를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인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짐에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얻을 생명을 주시기 죽음의 고난을 당하고 부활함으로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각 사람이 살아온 대로 심판하실 것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고 부활한 후에 하실 일을 알리심으로 무엇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는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알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3)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불리게 될 높고 한적한 산으로 올라가셔서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희어지는 모습으로 변화하시고서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심을 보게 하여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모세와 선지자의 모든 글에 예언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임을 알게 해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변화하신 모습의 황홀함에만 도취하여 이 상태에서 계속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초막 셋 채를 지어서 하나는 주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다는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이는 베드로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다른 제자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음성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준 그 음성으로(마 3:17),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서 알려주신 이스라엘이 기다려왔던 언약의 주 메시야가 예수님이시니,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루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들임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 음성을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다시 들려주신 것은“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행 3:22, 참조. 신 18:15-18)와 관련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변화산으로 이끄신 것은 그곳에서의 일에서 알게 해 주신 주님을 제자들이 따름에 있게 하실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예수께서 언약의 주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척을 받아 고난을 받을 것인데(마 17:12), 제자들에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름에 있는 믿음에 있게 하십니다(마 16:24; 17:20).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두 번째 예고 내용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두 번째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고해 주십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마 17:23).
‘인자’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그리고‘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에서‘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의‘넘겨져’는‘내어주다’,‘붙이다’,‘잡아주다’를 뜻하여 예수께서 사람들 -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곧 산헤드린 공회원인 유대인 지도자들 - 에게 사로잡혀 사형에 처할 것의 결의에 의하여 이방인(로마 정부)의 손에로 넘겨질 것을 의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가룟인 유다의 배반에 의해서 되어질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넘겨져’가 수동태로 쓰이고 있어서 이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에 의한 것으로, 예수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는 일이 하나님에 의해서 되어진 일, 즉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일인 하나님의 구속사는“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바에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품으신 뜻에 의해서 계획된 일이 실행되는 것으로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합니다만, 그러나 제삼일에 살아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두 번째 예고에 매우 근심하는 제자들
제자들이 주이신 예수님을 따름은 이 사실을 인식하고 믿음으로 가져나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심이 첫 번째 예고가 주어졌을 때는 베드로의 만류에서 보는 바인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는 것에 슬픔을 가지며 그리스도에게 기대했던 희망이 무너지며 실망이 가득 찼던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므로 큰 확신에 있으며 거듭된 예고를 들으면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는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삼일만에 살아나시게 될 일을 바라보며 그 예수께 믿음을 함께 함에 있어나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일어날 이야기를 들을 때“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에 있었습니다. 여기서‘근심하더라’에 사용된 단어는‘슬픔’(sorrow),‘고통’(pain),‘비탄‘(grief)란 뜻을 갖고 있어서 실망과 슬픔이 동반된 비통한 심정을 복합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구약에서의 희생제사에서 알려 오셨던 대속주의 죽임을 당하실 것과 그 후에 있을 일인 영광스런 부활의 소식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만, 제자들은 여기에 마음이 열려 있는 깨어 있음에 있지를 못하고 예수님의 몸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시는 것에만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첫 번째 예고에서 말씀해 주셨던 바인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함으로 사람의 일을 생각함에서 큰 실망을 갖고 슬퍼하며 비통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거듭난 예수님의 죽임과 부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깨닫지 못함에 있었는데, 마가와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묻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막 9:32; 눅 9:45).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신앙에 있어온 제자들과 교회
제자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임에 있은 것은‘악하고 패역하여 믿음이 없는 세대’여서 예수님을 거부하며 배척함에 있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서기관들 및 그들을 따르는 유대 백성들하고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거듭된 예고를 통해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갈 것인지를 점진적으로 구체화하시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예수님에게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주심으로써 성령의 권능으로 큰 확신에 있을 것이어서 그때까지 숨긴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 주신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왜 그 말씀을 자기들에게 해 주시고 있는지를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는 악하고 패역하여 믿음이 없는 세대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함에 있는 것과는 다르니, 제자들의 마음에 심긴 바 되고 머리에 기억된 바가 되어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어 마침내 때가 이르러서는 자신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다시 떠 올리고 그 뜻을 깨닫게 됨으로 큰 기쁨에 있으면서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사명을 받들어 예수님의 길을 따름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신앙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