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과 도봉산, 남한산성에서
우리는 백색 천지 속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하얀 귀신들 같았다. 눈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지
기 시작하는데 심신이 지쳤을 때 이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다. 우리는 아직도 덜 내려온 걸까
아니면 너무 아래로 내려온 걸까? 그 무엇도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없다. 왼쪽으로 돌자! 이 눈
의 상태는 불안정하여 위태로우나 우리는 그 위험정도를 헤아리지조차 못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이다.
--- 모리스 에르조그,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에서
※ 프랑스의 저명한 등반가인 모리스 에르조그가 2012.12.14. 타계하였다. 향년 93세.
▶ 산행일시 : 2012년 12월 15일(토), 구름 많음, 포근한 날씨
▶ 산행인원 : 혼자 감
▶ 산행시간 : 6시간 58분
▶ 산행거리 : 도상 21.2㎞
▶ 교 통 편 : 동서울에서 광주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가고 옴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따랐음)
06 : 37 - 하남시 천현동 마방집 앞, 산행시작
06 : 51 - 쥐봉(△128.1m)
07 : 28 - 객산(客山, △292.1m)
08 : 00 - ┣자 갈림길 안부, 막은데미고개
08 : 50 - 남한산성 봉암성, 벌봉(522m)
09 : 18 - 남한산성 북문
09 : 40 - 청량산(淸凉山, △482.6m)
10 : 00 - 남한산성 남문
10 : 38 - 광주 검단산(黔丹山, 520m)
11 : 05 - ┣자 갈림길, 용천약수
11 : 22 - 망덕산(望德山, 왕기봉, 499m)
11 : 56 - 두리봉(△457.3m)
12 : 15 - ┼자 갈림길 안부, 새오고개(새우개고개)
12 : 38 - 군두레봉(△380.0m)
12 : 47 - 군부대 철조망
13 : 13 - 276m봉
13 : 35 - 광주시 중부면 중부농협 앞, 산행종료
1. 남한산성, 봉암성에서 본성으로
▶ 쥐봉(△128.1m), 객산(客山, △292.1m), 벌봉(522m)
새벽 05시. 저절로 잠이 깬다. 어디쯤 갔을까? 빼재(秀嶺)에는 눈이 깊지나 않을까? 헤드램프
불 밝히며 백두대간 산기슭 눈밭 누빌 오지산행 회원들 면면을 생각하니 안절부절못하겠다.
고질병이다. 비록 각재천리(各在千里)이나 동참하자. 후다닥 일어나서 배낭 꾸린다. 근교 산
이라도 가자. 그래도 남한산성 주변 산 8좌다.
06시 37분 하남시 천현동 마방집 앞. 어둡다. 헤드램프 켠다. 중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지나
면 바로 왼쪽으로 ‘하남위례성 둘레길’이 시작된다. 긴 데크계단을 오른다. 고속도로 절개지
수로 건너고 산허리 돈다. 등로에 눈이 깊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건 완전히 빙판이다.
어제 내린 비가 얼어붙었다. 험로로 변했다. 자주 등로 비켜 눈밭으로 간다.
등로가 빙판이 아니었더라면 퍽 심심할 뻔했다. 가파른 오르막은 빙벽이다. 등로 살짝 벗어난
쥐봉을 들린다. 넓지 않은 헬기장 가장자리에 삼각점이 있다. 판독하기 어렵다. 평탄한 산책
길인데 더듬는다. 작년 겨울 이맘때 엄청 춥던 날 오기산악회에서 걸었던 길이다. 그때 쉬며
담소하던 곳이 저기였지. 아직까지 그 여운이 남아 있다.
왼쪽 사면은 공동묘지. 산불감시망루를 지난다. 정면에 보이는 검은 실루엣의 객산이 어엿한
준봉이다. 거북바위 나오고 거닐기 좋은 소나무 숲 오솔길이다. 천천히 아껴 걷는다. 선법사
가는 ┣자 갈림길 지나면 객산이다. 얌전히 등로 따라 북사면으로 돌아간다. ┼자 갈림길 지
능선. 오른쪽 빙벽 한 피치 오르면 객산 정상이다. 이른 아침이어서 어스름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조망이 좋다. 도봉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객산 정상의 공터는 스케이트장으로 손색이 없겠다. 걸음마다 아장아장 재기 귀찮고 아이젠
찬다. 지리산 설악산에서도 차지 않던 아이젠이다. 발밑에서 나는 얼음 뚫는 빠드득 소리가
경쾌하다. 치기(稚氣). 보는 이 없어 줄달음질 해본다. 함부로 등로 한가운데로 막 간다. ┼자
갈림길 안부인 사미고개 지나고 244m봉을 대깍 넘는다.
안부 갈림길마다 탈출로다. ┣자 갈림길 안부인 막은데미고개 지나면 벌봉까지 줄곧 오름길
이다. 새바위 쪽으로 돌아간다. 등로 비킨 전망바위에 들려 장중한 검단산 용마산을 마주한
다. 거기도 조용하다. 남한산성 본성에 이르기 전 토성 토루를 돌고 돈다. 법화사지 가는 ┣자
갈림길 지나면 곧 봉암성 암문 들어 벌봉이다.
2. 객산에서 조망
3. 객산에서 조망, 왼쪽은 도봉산, 가운데는 불암산과 수락산
4. 하남 검단산
5. 하남 검단산
6. 봉암성에서
7. 봉암성에서 연결된 본성
8. 도봉산
9. 백운대와 인수봉, 맨 왼쪽은 보현봉
▶ 청량산(淸凉山, △482.6m), 검단산(黔丹山, 520m)
이정표보다는 지도를 믿는다. 길이 많아 오히려 미로다. 자칫하면 옹성인 봉암성을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바퀴 빙 도는 수가 있다. 봉암성 옹성을 돈다는 게 나쁠 리야 없겠지만 도는 줄을
모르고 도니 쪽팔리기 쉽다. 봉암성 빠져나가면 남한산성 본성이다. ┬자 갈림길. 오른쪽은
북문, 왼쪽은 동문이다. 북문으로 가는 성곽 따른다.
성곽 옆 너른 길이 참으로 가관이다. 유리알 빙판이다. 아이젠도 미끄러질라 살금살금 걷는
다. 데크계단 길게 내리다가 주춤한 400m봉. 북문으로 가는 길은 빙판이 압권이다.
오늘은 성곽 너머 조망이 별스럽다. 그간 내 이 길을 족히 수십 번은 오고갔지만 오늘처럼 조
망이 트인 적은 기억에 없다. 북한산과 도봉산 라인이 또렷하다. 서울시내는 그야말로 홍진
(紅塵)이다. 보고 있자니 기침이 나오려는지 목이 간지럽다.
북문 지나면 성곽 주변의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나는 남한산성의 명물로 서슴지 않고 사시사
철 장관인 여기 소나무 숲을 든다. 오늘은 아니지만 특히 한겨울 눈 쌓인 소나무 숲은 어떠한
가. 마치 백로가 나무마다 깃든 환상적인 모습이다. 열주(列柱)의 아름드리 소나무 둘러보노
라면 금방 서문이다. 막걸리 좌판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성곽 너머 홍진 들여다보다 기침이 나오려고 하면 얼른 고개 돌린다. 수어장대는 들리지 않는
다. 성곽 길을 계속 붙든다. 영춘정 오르고 다시 한 등성이 오르내리면 남문이다. 남문에서 남
한산성을 빠져나가 남문 옹성으로 간다. 성남시계 도는 길이 이어진다. 남문 옹성은 허물어진
패전의 모습 그대로다. 돌 틈 잡초가 추초마냥 한층 쓸쓸하다.
군사작전도로로 내려선다. 도로는 성남시계 능선 마루금과 이웃하여 간다. 광주 검단산 정상
에 임박해서 등로는 도로다. 산 사면에 지뢰가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문을 산기슭 두른 철조망
에 걸어놓았다. 공군부대 입구 지나고 너른 헬기장이 검단산 정상이다. 아담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10. 청량산(수어장대) 가는 길에서 조망
11. 북한산과 도봉산
12. 오른쪽은 예봉산
13. 소나무 숲길
14. 청량산(수어장대) 가는 길에서
15. 청량산(수어장대) 가는 길에서
16. 청계산
17. 관악산, 오른쪽은 앞은 대모산(앞)과 구룡산
▶ 망덕산(望德山, 왕기봉, 499m), 두리봉(△457.3m), 군두레봉(△380.0m)
날이 포근하다. 눈과 얼음이 녹아 곤죽이 되었다. 마치 가도 가도 끝없는 개펄을 걷는 것 같
다. 내리막에서는 아이젠이 전혀 소용없다. 망덕산 가는 길. 오가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검
단산 내리고 황송공원 가는 ┣자 갈림길에 용천약수가 있다. 용천약수터 벽에 걸린 온도계 바
늘은 15도 근처에 있다. 봄날이다. 곳곳의 쉼터에 평벤치와 탁자를 설치했다. 요깃거리와 점
심은 행동식으로 빵을 준비했다.
보온병에 담아온 끓인 물로 타먹는 봉지커피가 오지산행 신마담의 커피 맛에 비할 바는 아니
지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망덕산 오르는 길. 안개 속이다. 주변은 대폭 농담의 수묵화
풍경이다. 그 전시장에 들어선 기분이다. 망덕산을 왼쪽으로 돌아 넘는 길이 있지만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직등한다. 예전의 ‘왕기봉’이라 새긴 오석의 정
상 표지석은 없고 그 대신 ‘망덕산’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표지석에는 표고를 500.3m라고
새겼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는 499m이다.
이제 비로소 산을 간다. 두리봉 가는 길이 인적이 없지는 않지만 오가는 등산객이 드물어 한
적하거니와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꽤 심하여 땀깨나 뺀다. 쭈욱 내려다가 곤죽이 된 눈길을
되게 오른다. 대부분의 인적은 오른쪽 사면으로 돌았다. 두리봉 정상. 삼각점은 수원 424,
1987 재설. 내림 길은 통나무 계단이다.
바닥 친 안부는 새오고개. 예전에는 교통의 요충지였나 보다. 과거 보러 가는 길이었다는 새
우개고개 안내문이 있고, 느티나무 아래 돌탑을 쌓았다. 안부 양쪽은 임도가 지난다. 군두레
봉 오르는 길도 매우 가파르다. 눈길 직등한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 오른쪽으로 돌아
갔다. 그러나 나는 직등. 잡목 붙드는 볼더링하여 오른다.
군두레봉 정상인가? 노송 옆에 뿌리 드러난 ‘靑龍峰’이라 새긴 표지석 있다. 이름 있는 봉우리
하나를 거저주웠다고 흐뭇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靑龍峰은 두새고개 지
나 솟은 262m봉을 말하는데 광지원 번천에서 맥을 놓는다. 왜 여기에 그 정상 표지석이 놓여
있을까? 그리고 군두레봉의 명칭은 아무 의미가 없을까? 왜 등산객들은 모조리 군두레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산자락 돌아 골로 갔을까?
‘靑龍峰’ 표지석 놓인 봉우리(여기도 380m봉이다)에서 150m 더 가면 두어 평 공터인 군두레
봉 정상이 나온다. 표고 △380m.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판독한다. 방향 꺾어 북진한다.
‘국가기준점’ 산행표지기가 나와 동행한다. 물에 흠뻑 젖어 철퍽철퍽한 눈이 제법 깊다. 완만
한 내림 길 지쳐 내리다가 급작스레 제동한다. 군부대 철조망이 깡통 달고 능선을 엄중히 막
고 있다.
그랬다. ‘靑龍峰’ 표지석을 군부대 철조망에 막혀 가져갈 수 없었거나 거기다 세운다한들 보
아줄 이 없는 맹산(盲山)일 터. 군두레봉을 미리 우회한 인적도 이해가 되었고, 군두레봉 이름
또한 모르긴 해도 산 둘레에 군부대가 있어서가 아닐까? 군둘레봉이 변성되지 않았을까 이
다. 잠시 동행하던 ‘국가기준점’ 산행표지기는 자취를 감췄다.
어찌할까? 체면불구하고 오전리(梧田里) 좁은목으로 내릴까? 아니다. 청룡봉이 저기인데 가
보자. 왼쪽의 비탈진 사면으로 대 트래버스 한다. 수적(獸跡) 따라간다. 수적이 머뭇거리면 나
도 머뭇거린다. 고사목을 잘못 붙들어 수 미터 미끄러지기도 한다. 슬랩에서는 철조망에 오지
끼고 돈다. 지능선을 몇 번이나 타고 넘었던가. 입에서 단내가 다 난다.
276m봉. 능선의 철조망은 안부인 두새고개에서 끝날 것 같다. 그리로는 더욱 가팔라 수적도
끊겼다. 지쳤다. 내가 졌다. 아쉽다. 청룡봉을 그만 놓아주고 군월교(君月橋)로 내리는 지능선
잡는다.
18. 서울시내, 남산, 안산, 인왕산, 북악, 형제봉, 보현봉, 백운대, 인수봉이 뚜렷하다
19. 남산
20. 왼쪽은 수락산, 가운데 멀리는 불곡산
21.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맨 왼쪽은 안양 수리산
22. 광주 검단산
23. 망덕산 가는 길
24. 망덕산 가는 길
25. 망덕산 정상
첫댓글 21km 가 넘는데 7시간에 가셨으니 시간당 3km, 엄청 빨리 진행하셨군요. 덕분에 서울 근교의 산들, 한번에 다보았습니다.......
홀로 진행하시니 무척 빨리 지나갔네요^^ 우리도 예전에는 그런 속도로 진행했었는데,,그게 언제인지^^
화! 서울도 참 멋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병풍처럼 드리운 마루금의 울퉁불퉁 멋진 근육질 자태와 운무, 배경의 은은한 쪽빛 기운마져 그 날 대덕산에서 오지팀이 마주친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네요. 말씀처럼 각재천리(各在千里)였으나, 볼 것 같이 본 것으로는 동시동존(同時同存)한 듯합니다. 수묵화가 따로 없이 완벽한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