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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세대를 호흡하라!
아래 수필은 무애(无涯) 양주동이 쓴 수필 <면학의 서>다. 이 글을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웠는데 청소년 시절에 필자는 이 글에서 큰 깨우침을 얻은 바가 있다. 특히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말을 실험해 보려고 글 한편을 백번 읽은 적도 있다.
이 수필은 어린시절 격물치지를 이루어 세상의 이치를 통찰한 무애의 정신세계와 그의 박학다식함과 호연지기를 담고 있어 문장 자체가 담대하고 시원시원하다. 필자가 이 글을 게제하는 이유는 수필가님들이 알고있는 “가르치는 투, 자랑하는 투로 글을 쓰지 말고 공감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글을 쓰라!”는 틀에 갇힌 생각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함이다.(<면학의 서> 는 보기에 따라서는 엄청 강도 높게 가르치는 투의 글일 수도 있다. 차원높은 해학이지만 깨우침이 없는 자는 전부 소오줌이고 말똥이라고 까지 했으니^^ )
가르치는 투의 문장과 자랑하는 투의 문장은 의식(=깨우침)이 확 열리지 못한 정신 수준(=꽁생원) 앞에서는 필히 반감을 가져 온다. 그러나 의식이 열린 사람이나 배움에, 앎에, 깨우침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에게는, 7년 대한의 단비 같은 소리가 된다. 이 “면학의 서” 수필의 주제가 바로 그렇다.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이란 말도 모르면서 영어를 한다는 진짜로 우수마발인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이 마지막 문장이 앞에 열거된 그의 박식함에 더하여서 "나는 아는데 너는 모르제"하고 들리는 표현일 수도 있다. 무애도 그걸 알기에 이글에다가 " 학생 제군(學生諸君)은 나의 소년 시절(少年時節)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는 문장을 집어 넣어 두고 있다. 내 글은 십이삼세 나이의 학생들을 위해서 쓴 글이지 이미 성인이 된 유식한 학자들을 위해서 쓴 글이 아니라는 안전 장치다. 그렇다고 어찌 <면학의 서>가 어린 아이용의 글이겠는가? 배우고 또한 익힘을 좋아 하면서 문장을 그렇게 삐딱하게 이해하면 한발자국도 자신의 영혼을 더 높은 곳으로 고양시키지 못한다는 무애가 남기는 또 다른 가르침이다.
문장을 씀에 있어, 박학다식함을 드러내거나, 가르치려 들거나, 감동을 주는 방식을 쓰거나, 그건 내가 본 것을 전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예수가 복음을 전할 때 쓴 수사법은 "권세 있는 자 같이 말하는 수사법"을 썼다. 그래서 복음의 문장들은 우리 영혼의 잠든 뇌수를 콱 찌른다.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태 복음 7 : 28-29).
이 방법은 아니 된다, 저 방법은 된다고, 암기식으로 외워서 고집하면, 자기 틀에 갇힌다. 작가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수사법도 오직 내가 본 것을 전하고자하는 표현의 도구일 뿐이다. 본게 없으면 전할 것도 있을게 만무한데, 방법(수사법)만 비틀고 꼰다고 문장이 되는 게 아니다.(그런 글을 쓰레기에 불과하다)
"천의무봉"
깊게 넓게 아름답게 보았으면 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휘두르라는 말이다. 골프공도 그렇게 푸른 하늘을 보고 서슴없이 휘둘러야 멀리 날아간다.
"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건방진 단 두줄의 문장이 세상을 깨웠음을, 잠든 우리의 비겁한 영혼을 일깨웠음을 기억하라!.
"무형식의 형식" 그게 수필이 가지는 최대의 장점이자 태초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던 자유성이다.
"나는 아는데 니는 모르제?"라는 말이나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는 말이나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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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학(勉學)의 서(書)
-양주동(梁柱東)
독서(讀書)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東西) 전배(前輩)들의 무수(無數)한 언급(言及)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課長)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人生三樂)에 무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追加)할 것이다. 진부(陳腐)한 인문(引文)이나 만인(萬人) 주지(周知)의 평범(平凡)한 일화(逸話)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端的)으로 나의 실감(實感) 하나를 피력(披瀝)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論語)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云云)이 대성현(大聖賢)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孔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실망)은 그 밑의 정자(程子)인가의 약간 현학적(衒學的)인 주석(註釋)에 의하여 다소 그 도(度)를 완화(緩和)하였으나 논어의 허두(虛頭)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印象)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년,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成就)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이 진리(眞理)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程氏)의 주(註)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當初) 소박(素朴)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現世)와 같은 명리(名利)와 허화(虛華)의 와중(渦中)을 될 수 있는 한 초탈(超脫)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求道)에 고요히 침잠(沈潛)하는 여유(餘裕)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백년(浮生百年),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 하물며, 난후(亂後) 수복(收復)의 구차(苟且)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 안두(三尺案頭)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一穗)의 청등(靑燈)이 의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日前) 어느 문생(門生)이 내 저서(著書)에 제자(題字)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實感)으로 서증(書贈)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持說)이다. 세상에는 실제적(實際的) 목적을 가진, 실리 실득(實利實得)을 위한 독서를 주장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實效)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養成)함이다. 선천적(先天的)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敏感)한 이야 그야말로 다생(多生)의 숙인(宿因)으로 다복(多福)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않은 행복한 족속(族屬)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現實派)에게나 이상가(理想家)에게나, 다 공통(共通)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事實)과 지식의 영역(領域)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로 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 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靈感), 경건(敬虔)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天才)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自我)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不斷)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驚異感)'에서 발원(發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周知)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代辯)하였다. 그 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天體)의 감시자(監視者)가 시계(視界) 안에 한 새 유성(遊星)의 헤엄침을 본 듯, 또는 장대(壯大)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太平洋)을 응시(凝視)하고―모든 그의 부하(部下)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定評)있는 고전(古典)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한 신서(新書)를 더 읽으라, 각인(各人)에게는 각양(各樣)의 견해(見解)와 각자(各自)의 권설(勸說)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후자(後者)는 말한다.
"생동(生動)하는 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知識人)으로서 동서(東西)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畢竟) 섭렵(涉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文化人)으로서 초현대적(超現代的)인 교양(敎養)에 일보(一步)라도 낙오(落伍)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比率)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一律)로 규정(規定)할 것은 못된다. 누구는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中庸)이 좋다고나 할까?
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對象)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博而不精)'이 그 통폐(通弊)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함'이 또한 그 약점(弱點)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畢竟) '다(多)'와 '정(精)'을 겸(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平凡)하나마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 '박(博)'과 '정(精)'은 차라리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兩者)의 개념(槪念)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초극(超克)하여야 할 것이다. 송인(宋人)의 다음 시구는 면학(勉學)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境界)이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平蕪盡處是靑山)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行人更在靑山外)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終始) 역설(力說)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汪洋)한 심충(深衷)의 바다에 도달(到達)하기 전에, 우선 기구(崎嶇), 간난(艱難), 칠전팔도(七顚八倒)의 괴로움의 협곡(峽谷)을 수없이 경과(經過)함을 요함이 무론(毋論)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探究)나 구도적(求道的)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尋常)한 학습(學習)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倍加)된다. 비근(卑近)한 일례(一例)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書籍)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初步的)인 애로(隘路)는 적으니, 학생 제군(學生諸君)은 나의 소년 시절(少年時節)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漢籍)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어다가 철야(徹夜), 종일(終日) 베껴서 읽었고, 한문(漢文)은 워낙 무사독학(無師獨學), 수학(數學)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硏眞)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率直)이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笑話一片)―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距今) 50년 전의 일이다. 영어(英語)를 독학(獨學)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日課)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new heaven and earth)'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獨學書)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三人稱單數)'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고언(古諺)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項目)만 자꾸 염독(念讀)하였으나, 종시 '의자현(義自見)'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邑內)에 들어가 보통 학교(普通學校)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新任敎員)에게 그 말뜻을 설명(說明) 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往復)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첫댓글 양주동의 호 무애는 "넓고 멀어서 끝이 없다(대 자유인)"는 뜻이다. 그는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와 '여요전주(麗謠箋注)'를 발표하고 인간 국보 제1호라 자칭했을 정도로 학문에 깊이가 있었고 정신세계에 막힘이 없었다. 필자가 들은 일화 한 토막 . 선생과 다른 학자 두 분이 방송 출연했는데 출연료가 3인 공동으로 1만 원이 나왔다. 1/3 씩 똑 같이 나눌 재간이 없어 고민 하는데 무애가 나서서 나누었다, 각 3천 원을 주고 나니 1천 원이 남는다. 무애 왈 남은 천 원은 오늘 내가 가장 말을 많이 했으니 내가 갖는다고 했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무애의 경지에 오른 호쾌한 학자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