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의 어느 하루
민병숙/글무늬문학사랑회
김포공항에서 버스만 타면 두 시간 남짓 밖에 안 걸리는 고향 집에 자주 다녀오지 못했었다. 출가외인이라는 감투를 뒤집어 쓴지도 벌써 6년여, 이제는 심적으로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지난 주 토요일,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 정도 갔었을까? 고향의 싱그러운 바람이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숨결은 내가 어렸을 적에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벚나무가 심겨진 쭉 뻗은 신작로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가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 어린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보리미 동네의 묘들 그리고 화전리 동네 방앗간의 왕왕 돌아가는 정미 기계도 여전히 건재했다. 정겨운 고향 길을 즈려밟고 가는 동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솔솔 떠올랐다.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을 한답시고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울음보를 터트렸던 일이며,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봄나물을 캐러 이 산 저 산 헤매다 길을 잃을 뻔 했던 일 등… 이런 상념에 젖어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이르렀다. 한참 농번기라 그런지 집 앞에는 농기계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엄마를 불렀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짐을 풀고 어지럽혀진 집을 치웠다. 모처럼 가족들을 위해 저녁도 지어놓았다. 오후 6시가 되서야 엄마가 들어왔다. 하루 내리 일을 한 탓일까? 엄마는 몸이 축 쳐져서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간만에 보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배시시 웃음을 머금었다.
피곤할 때는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푸욱 담그고, 때를 밀고, 잠을 곤히 자고 나면 피로가 확 풀린다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우리 저녁 먹고 목욕탕에 갈래요?”라고 말했더니 엄마도 좋다고 했다. 늦은 저녁 나절 엄마와 나는 미원(충북 청원에 있는 지명)에 하나 밖에 없는 목욕탕에 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서려는데 엄마의 수척해진 등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늘 당신 자신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엄마의 수고와 사랑에 가슴이 울컥했다.
한창 꽃다운 19살 시절, 엄마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중매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와 결혼했다. 용모가 단정하고 잘생겼던 아버지는 결혼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사람들을 만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던 사람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유희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까닭으로 엄마는 여덟이나 되는 아이들의 육아와 함께 아버지의 몫까지 짊어지고 아이들이 커 나갈 때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한마디 불평 없이 정성스레 진심을 다했던 엄마의 세월로 우리 남매는 무고하고 착하게 잘 성장했다. 그 동안 고생만 했으니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즐겁게 지내라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에 익숙해진 그 일을 지금껏 놓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일생을 고스란히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바쳐, 지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내 눈앞에 서 있다. 비록 몸은 예전보다 야위고 햇빛에 그을려 여기저기 거뭇거뭇한 주근깨와 밭고랑 같은 굵은 주름으로 볼품없지만 나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 탓인지 숨이 턱턱 막혀서 우선은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온탕에 몸을 담구었다. 힘이 빠져 숨 고르기가 버거워졌을 때 욕탕 밖으로 나왔다. 목욕탕의 열기로 얼굴이 벌겋게 되고 힘이 소진되어 기운이 없었지만 콧등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머리카락이 차지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을 때는 목욕탕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이 없었다면 엄마의 사랑을 당연한 것이라고 무심히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무던한 엄마가 항상 말없이 옆에 있어주었기에 나는 묵혀있는 결혼생활의 고단함을 풀고 위안도 받고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용기도 얻을 수 있으리라. 목욕탕에서 두 시간여의 대장정을 마치고 우리는 길을 나섰다. 밝은 달이 웃어주고 잔 별들도 빛을 내고 있었다. 엄마 팔을 힘껏 끌어안아 팔짱을 꼈다.
엄마는 애창곡 ‘홍도야 우지 마라’를 즐겁게 흥얼거렸다. 목욕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인가? 노곤함이 밀려오고 하품이 나왔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와 함께 안방 아랫목에 누워야지. 멀리서 낯익은 가로등이 환하게 우리의 길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