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문장이라고 작품마다 양념처럼 쓰지 마시고요.
순간 ‘양념’이란 단어가 피할 수 없는 화살처럼 내게로 날아와 정확하게 박힌다. 글을 쓰다 보면 자기만이 잘 쓰는 문장이나 단어가 있다. 은연중 이 글 저 글 심지어 한 작품 곳곳에 양념처럼 뿌려놓는다.
잘 살펴보면 뻔히 보이는 것을, 확인조차도 서툴러 번번이 실수하게 된다. 꼭 그 문장이나 단어가 들어가야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여겨서일까. 아니면 익숙했던 문장에 길들어 있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충격과 자극을 주는 지적이 정신을 확 깨운다.
양념은 음식을 만들 때 파 마늘, 설탕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등으로 감칠맛 나는 맛을 돋우기 위해 덧붙여 넣는 재료를 말한다. 적으면 맹숭하고 너무 과하면 강하여 입맛이 텁텁하게 되어 거슬리게 된다. 알맞게 간이 잘 밴 깊은 맛을 내는 한 한 끼의 음식에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글 역시 그렇다. 잘 엮어진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글을 쓰는 보람과 아울러 용기를 얻게 된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언니가 있어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 일이 거의 없었다. 이것저것 손재주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진즉 부엌에서는 그러지를 못했다. 신혼 때의 일이다. 의상실 경영으로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사실 음식만은 자신이 없었다. 싱크대 앞에 서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냄비를 들었다 프라이팬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익숙하지 못한 서투른 행동이 표를 냈다. 그러니 유난히 솜씨가 좋은 친정 올케언니 반찬이나 넉넉하게 베풀어주는 둘째 형님의 도움을 받았다.
시어머니와 손윗동서 세 분은 음식 솜씨가 좋았다. 그런 음식에 길든 남편의 입은 까다로웠다. 어느 날 소고깃국을 끓여 보았다. 모처럼 남편 입맛에 잘 맞는 국이었다. 맛있게 잘 끓였다는 말에 몇 끼를 줄기차게 밥상 위에 올렸다. 결국, 남편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두 끼지 질리도록 밥상에 올리느냐는 핀찬이었다. 순간 오늘 선생님이 쏜 양념이라는 말의 화살이 의식을 관통한 것처럼, 그날 남편의 타박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많이 바쁘기도 했었고 모든 것이 다 이해될 줄 알았던 신혼 때인지라 섭섭함과 서러움까지 겹쳤다. 하지만 말 없고 속 깊었던 사람이 오죽했을까. 이후로 바쁜 가운데에도 음식 만들기에 관심을 가졌다. 음식을 조리할 때 첨가하는 양념에도 차츰 익숙해져 갔다. 색다른 식자재로 특별한 반찬을 식탁 위에 올려 새로운 음식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나 보다. 남편이 밥상 앞에서 애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너희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다 보니 밖에 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어설픈 음식에 입맛이 길든 것인지, 아니면 내 노력의 대가를 위로해주는 화답인지 알 수 없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그가 인정해주는 말이라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이를테면,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식상하듯이 아무리 좋은 문장도 남발하게 되면 감동을 주는 글이 되지 못한다.
남편과 달리 내 입맛은 지극히 서민적이다. 특히 쌈을 좋아한다. 쌈에 맛깔나는 양념 된장이 보태지면 더욱 좋아한다. 여자가 음식을 먹을 때는 얌전하게 품위 있게 먹어야 하지만 쌈을 싸 먹을 때는 볼이 터질 듯 걸신스럽게 먹어야 제맛이 난다. 그러니 어찌 쌈 맛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면 날마다 먹는다고 해도 질리지 않는 식습관이 글쓰기에도 전이된 듯, 현재에 머문 글쓰기도 시나브로 습관이 된 듯하다.
삼 년 전이다. 김장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갖가지 재료로 잘 섞여진 양념을 절인 배추에 발라 한 줄기 떼어 먼저 맛을 보았다. 생각했던 맛이 전혀 아니었다. 깜빡하고 갈아놓은 마늘을 빠뜨렸다. 다시 마늘을 넣고 버무리니 그제야 원했던 맛을 내는 김치가 되었다. 간이 잘 맞고 양념이 고루 배어야 입맛을 당기는 음식처럼, 다양한 소재로 잘 엮인 글 역시 그렇다. 문장이 잘 갖추어진 작품이야말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 고춧가루나, 마늘처럼 톡 쏘는 글을 읽는 사람에게 자극을 준다. 눈물을 흘리거나 역경을 견뎌내는 용기를 주고 감동을 일게 한다. 새콤하고 소소한 참기름이나, 달콤한 설탕 같은 글은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과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 같은 양념이 빠진 글이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맥 빠진 글이 될 것은, 뻔하다. 곰탕은 끓여질수록 진국이 되듯 글도 수정할수록 진한 한 편의 글이 되리라 본다.
음식에서뿐만 아니다. 양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어떤 모임에서라도 유머나 덕담을 적재적소에 날리면서 분위기를 잘 끌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생뚱맞는 말로 분위기를 흐트러 놓는 사람이 있다. 간이 잘 맞지 않은 음식이리라. 어떤 양념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 살아가려면 양념 같은 대처 능력 또한 필요하다.
창작이란 초록 파밭과 고추밭, 마늘과 생강밭에서 수확해서 양념의 재료가 되듯, 모든 음식의 맛을 다하는 양념처럼 깊고 부드러운 글맛을 살려내야 한다. 어떤 새롭고 다양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나만의 글을 쓸 것인가. 양념이란 단어 하나로 깊은 고민에 빠진 하루다.
첫댓글 잘 섞은 양념처럼 맛갈 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