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매
(수필) (최중수)
우리 남매는 철통 호위를 받으며 따뜻한 남쪽 나라에 안착했습니다. 배곯는 인민들이 지상낙원처럼 그리던 땅입니다. 서울에서도 국가 최고지도자의 대궐이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립니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북녘땅 최고 존엄의 눈에 든 덕분이라 여깁니다. 동기는 뜻밖의 행운이라 서로 부둥켜안으며 킁킁거렸습니다. 우리 종족을 지배하던 인민도 못 살겠다고 떠나는 동토의 땅. 그곳에 자리 잡은 남매는 어렵게 삶터를 일구다가 호기를 맞았습니다.
세상사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누구나 부러워하는 황금 같은 기회도 꽃바람처럼 말없이 스쳐 보내기 일쑤지요. 분외의 영광이라 떠벌려볼 수밖에요. 북녘땅의 최고 존엄이 남녘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 줄 선물로 뽑힌 건 천운이라 믿습니다.
북녘땅에선 우리 종족을 대우해 주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인민도 몇 끼를 굶어 눈이 뒤집히면 똥오줌을 못 가리나 봅니다. 가뭄이나 수해, 기타 재난 등으로 흉년을 만나 운신을, 못하는 인민이 늘어날 때쯤이면 악몽으로 날밤을 지새우지요. 일진이 나빠 인민의 모진 손에 잘못 걸렸다 하면 몽둥이찜질을 당해 가마솥 차지가 될 수도 있으니깐요.
남매가 혹독한 한파 속을 떠나 평화로운 남쪽 나라에 터를 잡은 건 복 중에도 대복이라 생각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세상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가 제2의 고향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꿈인지 생시인지 내 주둥이로 내 살을 물어뜯어 봅니다.
남매는 남쪽 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큰집에서 여장을 풀었지요. 국민 사랑 독차지해 행운아라는 보도에 남매는 껴안고 뒹굴며 실룩거렸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남매를 알뜰살뜰 보살펴주었습니다. 남매는 은공을 반절이나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분의 과분한 호의에 두고 온 고향 산하도 시나브로 기억에서 멀어져갑니다.
남매를 돌봐주던 엄마와 아빠는 다정다감했습니다. 국사를 책임지던 아빠는 퇴근만 하시면 엄마와 함께 우리 남매를 안고 쓰다듬어주었지요. 그 정을 어이 잊겠습니까. 아무리 누워 뒹굴며 아양을 떤다 해도 받은 정엔 비할 바가 못 되겠지요. 남매는 어르고 쓰다듬던 엄마와 아빠의 과분한 정에 홀딱 반했습니다.
남매는 있는 재주 없는 재주 다 소환해 받은 사랑에 보답했지요. 엄마와 아빠는 ‘곰이야, 송강이야’를 귀찮을 정도로 불러대며 있는 정 없는 정 다 동원하였습니다. 기분이 고조된 남매는 제멋대로 꼬리를 흔들어댔지요. 꿈같은 분위기에 취해 지낸 금쪽같은 시간은 번개같이 지나갔습니다. 국민은 아빠와 마주 앉아 보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일 테지요. 한데 남매는 무슨 운으로 숙식을, 함께 하는 식솔이 되었을까요. 킁 킁 킁···.
어느 날 아빠의 맡은 직무가 끝났습니다. 남매는 엄마와 아빠 따라 거처하던 푸른 기와지붕 밑을 떠나 경남 양산이란 곳으로 이사를 왔지요. 서울집보다 못하잖게 지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복도 그리 길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수년간 정들었던 남매를 대통령기록관이란 곳으로 보냈지요.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께서 결재한 주요 문서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장소라 들었습니다. 남매는 고향도 잊은 채 온갖 재롱 다 부려가며 엄마와 아빠를 즐겁게 해드렸는데 서운하네요. 반려동물 애호가가 천삼백만 명이 넘는다는 나라의 인심치고는 좀스럽습니다.
엄마와 아빠 슬하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무리하는 게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세상인심이 다 그런가 회의가 느껴집니다. 엄마와 아빠를 철석같이 믿고 충성을 다했던 남매는 칼바람 휘몰아치는 낯선 거리로 쫓겨난 기분입니다.
남매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대통령기록관이라는 곳에서 며칠 밤을 새우다가 생병이 났습니다.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얻은 마음의 병으로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선 갈 곳 잃은 남매를 알뜰살뜰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세월 독차지했던 엄마와 아빠 품이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왔나 봅니다. 벌써 입원한 지 달포가 다가옵니다. 엄마와 아빠가 수년간 보살펴주던 정을 못 잊어 면회라도 오실까 봐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재회는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입원비만 천만 원이 넘는다니 나라에 진 신세가 과하다 싶습니다.
우리 종족이 인간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니까. 오십 배 이상 빼어난 청력에다 최소 일만 배 이상 앞선 후각으로 태어나잖아요. 이만하면 신이 준 축복 아닙니까. 재난현장이나 의료현장, 전선이나 시각장애인의 안내 임무로 뽑혀 명성을 떨쳐왔지요.
뭐 말을, 못한다고요.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과 마주 앉은 인간의 꼴을 보세요. 손짓 발짓해가며 땀 흘리는 걸 보면 코웃음이 나옵니다. 우리도 언어소통이 안 되는 인간계의 이방인처럼 꼬리를 흔들고 컹컹거리며 의태어로 대화를 시도하잖아요. 눈치 빠른 인간 절반 이상은 대충 알아듣겠지요.
북녘땅에서 우리 종족을 ‘풍산개’라 부르며 알아주듯, 남쪽 나라에서도 ‘진돗개’라며 엄지를 추켜세우네요.
하지만 그 잘난 인간은 피부 색깔 하나로 우열을 가리기도 하니 치졸하다 싶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최초의 흑인 대학 총장, 최초의 흑인 ○○○ 등으로 언론사와 방송사는 대서특필하지요. 그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겉이 검다고 속까지 검지는 않잖아요. 꼴불견이지요. 분수를 모르는 인간을 대할 때마다 남매는 ‘인간아, 인간아, 왜 사느냐.’ 하며 비아냥거리다가 끝날 수밖에요.
세상사 허무합니다. 잘나가던 남매 신세가 이리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천수를 누리다가 엄마, 아빠가 입혀주는 수의 걸친 아름다운 이별은 물 건너간 것 같습니다. 산 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천복을 누리다가 낯선 병원을 전전하는 우리 남매의 운명. 그 마지막 날이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남매가 엄마와 아빠에게 걸었던 기대는 쪽박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건강 상태가 시원찮다는 주치의의 한마디에 두고 온 북녘땅, 우리 고향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래도 남매는 삼복 중에 맞아 죽는 개 팔자보다는 낫다는 심사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오늘 밤은 무사히 넘길지 국민의 기도를 기대해봅니다. 간밤엔 재수 없는 어느 날, 낯선 동물원으로 끌려가는 악몽까지 꾸었지요. 우리 종족을 호령하는 인간의 운명은 얼마나 다를까요.
첫댓글 대구문학 193호 2024년 5/6월 호에 실린 최중수선생님의 수필입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비평적 시각으로 글을 썼네요. 이야기 자체가 여러 상징적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