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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2분 전
라스베가스의 저주(3)...불법자금 세탁기지 '카지노' |
(지난호에 이어 계속~)
머피의 법칙은 51:49 전쟁이기 때문에 세븐카드보다 훨씬 어렵다. 단 한 판에 수십 만 달러가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실수가 연속되면, 곧 패망이나 다름없다.
삽화: 이기원 작가
나머지 두 손님은 밑천을 지키기에도 바빴다.
모 주방은 보너스카드를 자주 이용하기보다 타이밍을 찾아 돈질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사린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슬쩍 베팅을 튕기는 것이다.
헌데, 공교롭게도 딜러가 던져놓은 카드 석 장 모두 3이었다. 3두 장이 떨어져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기다린 것인데, 3이 또 왔다. 다른 손님과 함께 벵커 8에 베팅했던, 유태계 미국인도 패스를 했다가 꺽 이고 말았다. 조금 불쾌했는지, 쉬어야겠다는 말을 딜러에게 건네고, 룸을 나갔다.
모 주방도 덩달아 자리를 떴다. 손님이 더 모이면,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객실로 올라왔다. 손목시계는 어느덧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밤 11시에 시작해서 꼬박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된 거다. 창 밖은 아직, 땅거미가 지지 않은 걸로 봐서 30시간을 바카라에 매달린 것이다.
칩을 금고에 넣기 전, 얼추 헤아리니까 80만 달러쯤 되는 것 같았다.
그는 담배와 커피에 찌든 뱃속이 허전해, 룸 서비스로 최고급 요리를 시켜 먹었다.
그리곤 불연 듯 K카지노로 옮겨갈까 고민했다. 돈도 지난 번 만큼 되니, 꺼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생각했다.
여기 C카지노는 좀 낯설고, 또 일전에 권총을 건넨 미국인이 머무는 터라 꺼림 직 했던 것이다. 더욱이 한국인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다. 자칫 입 소문을 타고, 모 주방이 라스베가스에서 산다는 이야기가 혹, 친구들이나 가족들 귀에 들어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창가에 기대서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망설였다.
삽화: 이기원 작가
어떻게 할까.
모 주방의 또 다른 결점은 쉽게 결정을 못한다는 거다. 무얼 하든 꼭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는 습성이 있다.
아마, 그래서 머피의 법칙에 포로가 됐는지 모른다. 이것 조금하다, 저것에 관심을 갖고, 또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갈 팡 질 팡 하는 우유부단 말이다.
하기는 결단성이 있다면, 수중에 들어온 거액을 챙겨 카지노 밖으로 무조건 튀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갑자기 수십억 원이 굴러 들오면, 노심초사 돈에 노예가 되기 십상이지만, 그는 정반대다.
돈이 손아귀에 있으면, 그 돈을 고이 간직하는 게 아니라, 이까짓 돈이 도대체 무엇인데, 날 속박하는 거냐고, 반발한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인 걸, 왜 호주머니에 넣고, 쩔쩔 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2시간을 갈등하다 드디어 결정했다. K카지노로 가기로 말이다.
1층 환전소에서 칩을 돈으로 교환해, 일단 미국본토 은행에 넣어달라고 했다. 수수료는 5%를 떼고.
C카지노는 규모가 상당히 커서 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급한 일이 생긴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 주방은 늘 위험하고, 안 되는 쪽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라스베가스의 휘황찬란한 거리를 걸으며, 바람을 쐬다 K카지노로 들어섰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듯, 또 바카라 판에 끼어든 것이다.
VIP룸엔 언제나 갑부들이 진을 치고 있다. 다만, 거기에 전통적인 미국 최 상류층은 없다. 대부분 중동 석유부호나 아시아 재력가들, 아니면 중남미 권력층들이고, 더러 갱단보스나 마약 상, 무기상들도 다녀간다. 도박판이 불법자금 세탁기지로는 제격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에게 정말 운이 없는 날 같았다.
하필이면, 지하세계를 주름잡는 거물들과 맞붙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변을 책임지는 수행비서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덩치가 산만해 카지노 경비원들조차 주눅 들게 만들었다. 정장 안쪽에 권총을 차고, 각자의 보스 뒤에 바짝 붙어 엄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쩐지, 터번 쓴 아랍인들이 안 보인다 싶었다. 모 주방은 자신도 모르게
‘젠장!’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냥 일어설까, 말까, 쩔쩔 매는데, 딜러가 카드를 돌렸다. 할 수 없이 첫 페어를 받았다. 합이 5였다.
‘빌어먹을! 어정쩡하게 이게 뭐야’
하는 속내를 꿀꺽 삼켰다.
다섯 명 다 같은 계열 같아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우선 1천 달러짜리 칩을 테이블 플레이어에 던졌다. 잠시, 기다렸다 보너스카드를 보았는데, 7이 떨어져 거꾸로 합은 2가되었다. 그냥 접어버렸다. 나머지 다섯 명은 다 벵커에 걸고, 보너스 카드를 요구했으며, 딜러는 떨리는 손으로 패를 열었는데, 합이 6이었다. 한 사람당 5% 수수료를 떼고, 950달러씩 배당해줘야 했다.
딜러가 다시 카드를 돌렸고, 플레이어는 합이 7이었다. 스탠드라고 뇌까린 모 주방은 잠시 큰 호흡을 길게 가졌다. 뱅커 패가 4로 떨어졌지만, 보너스 카드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를 이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만약, 동점을 이루면 판돈은 딜러가 모두 가져간다. 반대로 타이에 배팅했다면 8배를 배당 받는다.
다행이라면 벵커에 2가 오픈 됐다. 걱정은 걱정으로 끝나 다행이었지만, 그게 쥐약이 된 거다.
1천 달러를 그냥 털렸으면, 미련 없이 자리를 뜰 수 있었을 텐데, 2천 달러를 당긴 것이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
모리타니에서 목숨을 내 놓고, 빗발치는 총탄세례를 피해 다니는 아주 험한 꼴까지 경험한 그였지만, 이들은 무소불위 지하권력을 법에 상관없이 휘두르는 갱단 보스라 쫄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히,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이 자리에서 뒤통수를 권총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죽 걱정이 됐으면, 경호원이 모 주방 곁에 붙어 신변을 보호하고 있을까.
K카지노 측에서도 이들이 왜, 하필 자기네 영업장소에 들이닥쳐 다른 관광객들을 쫒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251번지에서부터 300번지에 이르는 쿼터를 갱단보스 다섯 명을 보호하기 위한 갱단 수 백 명이 기관총까지 메고, 장벽을 친 터라, 오가는 행인들도 피해 다니는 것이었다.
라스베가스 경찰당국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라 제발, 우리 구역에서 전쟁만 치루지 말라는 듯, 10분마다 한 대씩 페트롤카로 순찰을 강화하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기관총으로 서로 난사해대면 갱단만 다치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도 상당수 부상당할 게 빤하기 때문이다.
헌데, 그는 왜 K카지노로 걸어오면서 대로변에 즐비한 갱단을 못 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다니기에 바로 면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몰랐을까. 무턱대고 바카라 판에만 신경을 쏟고 있으니 그럴 밖에. 뿐만 아니라, 수 백 명에 달아하는 갱단들이 삼삼오오 차안에, 길모퉁이에 은신해 상대를 감시하는 중이라 눈에 잘 띠지 않았다.
삽화: 이기원 작가
아무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빌어먹을! 될 대로 돼라! 그래봐야 죽기 밖에 더 하겠냐.
모 주방은 오히려 더 침착해졌고, 다음 패를 받았다.
플레이어 합이 2 가 떨어졌지만, 낙심하기는 이르다 싶어, 태연하게 베팅을 했다. 그런데 보너스 카드가 다이아몬드 6을 밀어 준 것이다. 내심 그렇지 하며,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은 합이 8이 된 거다.
승률은 90%고, 이번 판도 긁을 수 있겠다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다른 갱단보스들도 벵커의 보너스 카드를 원했지만, 또 7로 졌다. 그러자 맨 끝에 앉은 나이든 뚱보가 투덜댔다.
“젠장! 죽 쒀서 개 주는 거, 아냐!”
“이 쌍! 웬, 단무지가 끼어들어, 장사를 망쳐! 앙!”
가운데 앉은 대머리가 큰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단무지는 일본인 즉,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VIP룸 바카라 판에서는 떠드는 걸 용납하지 않고, 딜러가 주의를 줘도 계속 난장을 치면, 게임 룸을 지키는 경호원 두 명이 제압해 끌어낸다. 그래서 웬만한 갑부들도 침묵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겨우, 두 장 또는 석 장으로 판을 운영하는데, 굳이 말을 던질 이유가 없고, 고작 입을 뗀다고 해도 스탠드, 내추럴, 패스, 보너스가 전부다.
헌데, 딜러나 경호원들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다른 손님이 없는 한가한 오후4시경, 갱단보스 다섯 명이 들어선 순간부터 떠들고, 웃으며,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K카지노 측 고위관계자도 보고를 받았으나, 그냥 내버려두라고만 했다. 건드릴 수 없는 갱단 거물들이라며, 도리어 조심하라는 주의만 주었다. 까닥하면 룸에서 총질을 하게 될지 모르는 탓이었다.
모 주방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짐작 하건데, 지하에서 자기들끼리 주고받았던, 물건대금을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차제에 돈세탁까지 해가며, 이쪽, 저쪽에 나누던 중, 그가 끼어들어 낚아가니,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머지 경호원도 딜러 곁에 서며, 경고성 몸짓을 건넸지만, 소용없었다. 대머리한테 네까짓 놈이 감히, 하는 눈총만 받았다.
딜러가 모 주방의 패를 확인하더니 합 8, 위너라고 간단하게 말하면서 칩을 그에게 밀어주었다.
그러자 나이든 뚱보가 판돈을 올리자고 제안했고, 다른 갱단보스들도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딜러는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양해를 얻은 뒤, 카지노 측 고위간부에게 전화를 했는데, 고위간부도 이미 VIP룸 바카라 판에 누가 와있는지, 보고 받은 터여서 OK를 주었다.
딜러는 모 주방에게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는데,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내내 곁에 지키고 있던 경호원의 권유를 받아들여 좋다고 했다.
최하 1천, 최고 1만으로 하자는 대머리 주장에 다른 갱단보스 모두
‘콜!’을 외쳤다.
모 주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자리를 뜨면, 십 중 팔구 갱단들이 해코지를 할 것 같아, 감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는 꼼짝없이 붙들려 자기 밑천까지 다 빨리게 될 것 같아, 전전긍긍이었다. 내심, 재수 옴 붙었다고 뇌까렸다. 후회해도 이젠 너무 늦었다. 고집스레 룸을 빠져나가면, 갱단보스 수행원들 중, 하나가 틀림없이 소음 권총으로 쏘아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임은 다시 시작됐는데, 도무지 패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아니, 카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카라 판을 십 수 년씩 드나들었어도 이렇게 큰 베팅을 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심장이 쿵쾅대고, 식은땀이 사지에 베어났다. 단, 한 판에 1만 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거다.
모 주방은 자기 앞에 쌓인 칩을 헤아려보니 1백만 달러가량 되었지만, 판세가 내리막을 타면, 백판 만에 종치는 아주 하찮은 액수였다.
백판이라고 해봐야 2시간도 채 안 된다.
도박판에서는 처음부터 올인 당할 때까지, 단 한 판도 따보지 못하고, 밀려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딜러와 경호원들, 그리고 K카지노 측은 그를 응원했고, 최대한 베려 했다. 목숨이 달린 게임이라, 더 애착을 가진 듯했다.
베팅 액수를 올린 뒤, 첫 판은 내줬다.
플레이어 카드 석 장이 모두 높은 숫자들이었다. 그 중 낮은 수가 끼면 좋았을 텐데 합이 4였던 것이다. 물론, 갱단보스들은 여전히 뱅커 보너스 카드를 요구했고, 판돈이 누구한테 가든, 상관 않는 눈치였다. 오로지 객식구에게 물리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다음 판도 패가 시원치 않아서 또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단 2분 만에 2만 달러를 까먹은 거다.
갱단보스들은 낄낄대며, 자기들만의 언어로 즐겼는데, 그 건 모 주방을 지칭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타이밍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다행히, 세 번째 플레이어판은 승산이 있었다. 안전 권은 아니지만, 두 장의 합이 6이기 때문이다. 갱단보스들이 예정된 코스인 벵커의 보너스카드를 원했는데, 합이 4+6+7=7이 된 것이다. 그들은 키득대면서 ‘저 노란 놈한테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떠벌였다.
새벽으로 접어들자, 기회가 점차 늘어나긴 했는데, 담배는 벌써 한 보루 반이나 피워 없앴고, 커피도 어느새 60잔을 마셔댔다. 이 흐름을 유지해야 더 버티고, 갱단보스들을 골탕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2시간이 흐른 뒤부터 좀처럼 좋은 패가 들어오지 않았다.
패 두 장이 계속 낮은 숫자를 가리키기는 탓이었다. 플레이어 보너스 카드를 받아도 숫자는 별 차이 없었다. 갱단보스들이 뱅커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다섯 놈이 연신 드나들며, 더 정신없게 만들었다. 장난스럽게 판을 주도하던 그들이 이제 잔머리를 굴리는 거였다. 게임은 5:1 싸움으로 변질됐고, 모 주방은 번번이 깨졌다. 오히려 보너스 카드를 요구해 따라붙어보았지만, 허탕이었다.
새날이 밝아오자 밑천은 거의 바닥에 가까웠고, 딜러가 세 번 바뀐 이후, 잇따라 판을 내주면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렵게 됐다. 1천 달러 칩 세 개만 달랑 남은 것이다.
삽화: 이기원 작가
결국, 단 9시간 만에 C카지노에서 만들어온 80만 달러를 갱단보스들에게 헌납한 꼴이었다.
상승세일 때 140만 달러까지 밑천을 늘려놨었지만, 다섯 명이 손을 맞춰 밀고, 당기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모 주방이 올 인을 선언하고, 자리를 털자 뚱보노인이 리벌버 권총을 테이블에 휙 던져놓았다. 네 선물이라며 말이다.
그가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자 다른 갱단보스 수행원이 권총을 집어 양복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너한테 꼭 필요할거라며 속삭이기까지 했다.
딜러와 경호원들은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카지노 측에서도 빛 보증을 해주고, 돈을 꿔준 작자에게 극단적인 방법을 종종 사용하기 때문이다.
객실로 올라온 모 주방은 창 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보며 몹시 허탈해했다.
전신에서 기운이 쫙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까무라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게임에 몰두할 때, 자신도 모르게 차오르는 극도의 긴장감이 한꺼번에 툭 터지면서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 아주, 단순한 숫자의 변신에 농락당했으면서도 점점 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다. 이런 허무함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화려한 머피의 법칙을 너무 과신했다고 여긴다.
양복 호주머니에서 묵직하게 숨죽인 권총이 또 총구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는 리벌버 권총의 탄창을 열어보고 피식 웃었다. 딱, 한 발만 장전돼 있었던 것이다. 네 운명이 얼마나 질긴지 실험해보라는 권유였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볼까.
삽화: 이기원 작가
탄창을 끼고 뱅그르르 돌렸다. 그리곤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으나
‘틱!’
하는 불발소리를 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치켜 떴다. 흰자위만 남을 정도였다.
맞아, 이게 제대로 걸리면,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나는 거지... 진짜 걸리나 안 걸리나 해보자.
그는 탄창을 다시 뱅그르르 돌리고는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틱!’
하는 불발이었다. 오만상을 잔뜩 찌푸렸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제기랄! 쇠 심줄인가. 그래 세상만사 삼 세 번이라지...
탄창을 뱅그르르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역시 불발이었다. 이빨로 꽉 깨물었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지경이었다.
이런, 젠장 죽는 것도 쉽지 안구만!
공황상태인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금고 속에 넣어버렸다. 재수 좋은 놈이나 써먹게 말이다.
‘휴-우!’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별빛이 겨우 사라졌다.
짐을 챙긴 모 주방은 물먹은 솜 덩어리처럼 축 처져 룸을 나섰다.
어디로 가지.
승강기에 올라 1층으로 내려갔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창녀들과 노숙자들이 앵벌이 한 푼돈으로 슬롯머신을 돌리고 있었다.
환전소에서 칩을 돈으로 바꾼 그는 그냥 지나쳐 거리로 나섰다. 상쾌한 아침공기가 폐부 깊숙이 빨려 들었다.
젠 장!
거리를 휘감고 있던 갱단들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보스들이 떠나자 함께 빠져나간 것이었다.
병신, 그 자식들 돈을 빨아먹으려고 대들다니... 흠! 어쨌든 둘 중에 하나였어. 돈을 긁고 죽느냐, 알량한 밑천 털리고 사느냐...
모 주방은 자신도 모르게 C카지노로 향하고 있었다. 당장 갈 곳이 없기도 했다. 으 슬 으 슬 춥기도 하다.
돈이 있든, 없든, 그는 추위를 탄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른다. 아마, 일상적인 생활부터 소외돼서 그런 건 아닐까. 보편 적인 사회와는 동 떨어진 일상이 뼈 속까지 스며든 냉기일 것이다. 언제나 생과 사를 넘나드는 도박판에서 도대체 무얼 찾는 걸까. 실은 아무 것도 없다. 초등학교 시절엔 재미 삼아 유사도박에 빠져 즐겁게 놀았는데, 그것이 재화투기로 변질되면서 늘 쫒기고 있다. 전혀 알 수 없는 조급증이 내재돼 있어서다.
C카지노 1층 홀 한쪽에 늘어선 슬롯머신 앞에 앉아 또 머피의 법칙을 우상 숭배한다. 숫자를 찾아서 헤매고, 1달러 코인을 연신 쑤셔 넣는다.
미술여행 DB
거의 무의식적이다. 코인 넣고, 레버를 당기고, 또 당긴다. 어쩌다 작은 베팅이 터지면 그걸 들고, 다른 슬롯머신으로 옮겨간다. 그 숫자는 운이 다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 번 터진 기계는 다시 코인을 쏟아내지 않는다는 그만의 철칙이 있어서다.
하지만, 자신이 넣은 코인보다 토해내는 액수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다른 슬롯머신을 한창 돌리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그 기계에서 잭팟을 터트리는 건 또 무엇인가. 재수가 없는 것도 있겠지만, 모 주방은 안 되는 곳만 골라 다니는데, 귀신이다. 진득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K카지노에서 남겨온 3천 달러를 그렇게 허비하는 동안 시간은 저녁이 훌쩍 넘고 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굳이 따질 필요 없는 도박판이기는 해도 말이다.
다만, 코인이 자기 손에서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어떤 게임이든, 밑천이 늘었다 줄었다는 반복해도 그 반복성에는 밑천을 조금씩 눈치 채지 못하게 갉아먹는 것이다. 결국은 빈털터리로 만든다. 특히, 도박중독자들에겐 말이다.
코인이 다 떨어진 모 주방이 막담배를 피워대며, 호주머니 이 곳 저 곳을 뒤지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돌아다보니, 지난번의 미국인이었다. 그는 쿡 웃으며 말했다.
“어제 갱단보스들이랑 붙어서 깨졌다며?”
“소문이 여기까지 났나.”
“역시, 넌 간덩이가 부었어.”
미국인은 곁에 앉으며 담배를 권했다. 아직 목숨이 붙었다는 걸 축하한다는 의미다. 모 주방은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나서,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맞아,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지.”
“걔네들 내가 잘 알고 있는데, 겁이 없는 친구들이야.”
“누가 알았나.”
“일감 하나 줄 게, 해볼래?”
“...”
먼지 밖에 안 남은 모 주방은 싫다, 좋다 할 처지가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를 잡아 일으켰다.
“세스나기 조종할 줄 알아?”
“웬만치는.”
“따라와”
C카지노를 나서자, 미국인은 주차해놓은 자동차에 그를 태웠고, 도시를 벗어나 조금 더 달렸다.
라스베가스 외곽은 모래사막인데, 그 너머에 비행기가 서 있었다.
미국인은 그 곁에 자동차를 세우고 주머니에서 1백 달러 지폐 두 뭉치를 건넸다.
“2만 달러야.”
“어디로 가는 건데?”
모 주방은 무조건 받아 넣었다. 도박중독자로 전락한 뒤부터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해온 터니 말이다. 미국인은 그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플로리다로 가면 되는데, 바다 위에 가방하나만 던져놓고 되돌아오면 돼.”
“이유는 묻지 말고 무슨 가방인지 알 필요도 없겠지?”
“돈 값어치만 해.”
미국인은 플로리다만 지도를 내줬고, 거기엔 낙하지점을 빨간색으로 표시해 뒀다.
“다만, 주의할 것은 해안선으로 절대 나가지 말고, 내륙 고속도로 우측을 따라 저공비행 해야 돼. 보조 연료통을 두 개나 달아놨으니까, 플로리다 만에서 회항하기는 충분할 거야. 고공으로 올라가면, 미 공군과 주 방위청 레이다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까 반드시 낮게 날아야 한다는 점, 기억해 둬. 바다로 나가면 해안경비대에 걸리니까 그 역시 주의를 해야 하고.”
“알았어.”
자동차에서 내린 모 주방은 키를 건네 받고, 세스나기에 올랐다.
삽화: 이기원 작가
시동을 걸고, 모래밭을 질주 했는데, 바퀴에 밀착성이 떨어져 경비행기가 이륙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한참을 내달리다 조종 칸을 최대한 잡아당기자, 겨우 뜨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동차로 뒤 쫒아 오던 미국인이 경조 등을 깜박이고, 경적을 몇 번 울려대더니, 돌아갔다. 이번에도 불법으로 일을 꾸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다. 2만 달러가 생겼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법망에 걸리면 안 좋다는 것도 알지만, 미국이야 별에 별 일이 다 벌어지는 나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뒤쪽에 놓인 검은색 가방은 크기가 꽤 컸고, 위 뚜껑에 구명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바다에 던져도 빠지지 않을 수단을 강구한 것 같았다.
그는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그리곤 미국인의 충고대로 고속도로 우측 안쪽에 붙어 날았다. 경비행기에 레이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동항법장치가 설치된 것도 아니어서, 순수 유관에 의존해 조종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최신형도 아닌 20년쯤 노후 된 기종이라 최고출력으로 조종 칸을 잡아당기자, 비행기가 자꾸 떨렸다.
‘제기랄!’
까닥하다간 추락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시속 250Km로 날면 밤에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안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빌어먹을 춥기는 우라지게 춥네.
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주, 텍사스 주 등 중남부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고속도로는 가로등이 없다. 이용차량이 드물어 절약차원에서 소등한 것 같았다. 미국은 발전소도 민간이 운영하는 터라 전기료가 무척 비싸다.
모 주방은 할 수 없이 고도를 조금 높여 날았다. 시야를 확보하고, 불빛을 찾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방향을 잃고 군사지역으로 접근했다간 큰일 난다. 대공포를 쏘아대고, 정체를 밝히라 무전이 빗발치는 탓이다. 특히, 야간에는 경계가 최고로 높고, 미확인 물체로 오인되면, 미사일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지만, 비행기를 타면 그 걸 확인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땅에서 일상을 보내는 탓에 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모르는 게 다반사다. 실은 해가 뜨고, 지는 게 아니라, 행성 지구가 항성 태양의 주위를 1년 365일 타원으로 돌면서 자전축을 중심으로 기울기 23.5‘ 때문에 어둡고, 밝아지는 것이다.
제트엔진을 단 비행기를 타고, 밤에 이륙해 다른 대륙으로 날아가면, 그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자전하는 반대쪽으로 비행 하다보면, 태양이 뜨는 걸 볼 수 있고, 비행시간이 길어지면 착륙지는 다시 밤이 되는 것이다. 또 그 역방향으로 계속 날아가면, 밤이 줄곧 이어지다, 목적지에 내릴 쯤 아침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드넓어 세스나기를 탄 지금 그런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시간을 동부와 서부로 나눠 계시한다. (다음호에서 계속~)
1990년 제1회 MBC 문학상 수상작가인 박희종 작가의 신간 '겜블러'(머피의법칙)가 출간됐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박희종(본명: 박종희)작가의 장편소설 '겜블러'(머피의법칙)는 머피의 법칙에 50년간 빠져 패가망신한 도박중독자의 이야기다. 이번에 렛츠북에서 출간한 '겜블러'는 1편이다.
#1990년 제1회 MBC 문학상 수상작가인 박희종 작가(본명: 박종희)의 신간 '겜블러'(머피의법칙)가 출간됐다. 총 4권으로 이루어진 박희종(본명: 박종희)작가의 장편소설 '겜블러'(머피의법칙)는 머피의 법칙에 50년간 빠져 패가망신한 도박중독자의 이야기다. 이번에 렛츠북에서 출간한 '겜블러'는 1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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