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고아들의 보여줄 수 없는 성적표
나는 방금 에이즈 고아, 나레쉬가 보내준 성적표를 받고 벅찬 감동에 빠져 있다.
나는 우리 에이즈 고아들에게 공부를 강조하지 않았다.
공부가 스트레스가 되어 건강을 잃을까 염려해서 이기도 하고 공부를 잘해서 보통 아이들보다 뛰어나도 취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너무 많은 고뇌와 절망, 분노에 빠져 그나마 주어진 인생을 망칠까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였고 방문할 때 마다 일기를 함께 읽었다.
뿐만 아니라 책과 노트 검사를 하였다. 그리고 희망과 꿈이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물었다.
샨띠홈 우리 아이들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저녁 또한 마찬가지로 8시 전후에 기도하는 것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이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단시킬 마음도 여러 번 가졌다. 그러나 땅의 부모님을 잃은 그들은 하나님에게 직속된 자녀이므로 내 감정과 내 멋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와 동행하게 하려면 그들이 말씀을 읽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도회를 계속하게 하였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 자고 있을 그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야 하였다.
편히 자고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기름을 부어주셔서 모두가 기도회 시간에 하늘 기쁨을 맛보길 기도하였다.
어쨌든 나는 아이들의 성적이나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아이들의 꿈과 마음에 관심을 가졌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기 꿈과 희망을 말하기를 즐거워하였다.
엠 키란은 트럭 운전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수바라유두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벵까따 라마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스프리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존 밥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라메쉬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강가 라주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나레쉬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때로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하리뿌리야는 양재 강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툴라씨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수밤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가우탐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맘비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꿈 이야기를 마치면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꿈과 희망을 이루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되어요.” 그리고 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하나님께 도와주시라고 기도해야 되어요.” 그리고 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우리가 서로 서로 도와주어야 되어요.” 그리고 또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날마다 감사해야 되어요.” 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공부와 성적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번은 샨띠홈 뜰을 거닐고 있는데 엠 키란이 주머니에서 접고 접힌 채 닳아빠진 종이를 꺼내서 보여 주었다. 펼쳐보니 성적표였다. 키란은 성적표를 받았지만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세상에는 그의 성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걸레가 된 성적표를 받아 들은 순간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성적표를 보여주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가슴을 팍! 찔렀다. 아! 부모님이 없는 고아는 성적표를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사람이 없는 거구나! 고아는 그에게 집중해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는 성적표는 고아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슬프고 외롭고 사람들의 관심에 목마른지를 말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 후로 샨띠홈에 가면 성적표를 꼭 확인하였다. 물론 강제는 아니고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아이들 것만 보았다. 그리고 무조건 칭찬을 하였다. 항상 제일 먼저 성적표를 보여주는 아이는 수바였다. 수바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성적표를 보여주었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닥터 헬렌은 라메쉬와 스프리야가 공부를 잘 한다고 항상 칭찬하였고 나 또한 그들을 칭찬하며 격려하였다. 샨띠홈 입사 초기부터 수바는 공부를 잘 하였지만 아이들과 관계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성적표를 보여주고 난 뒤 부터는 적극적이 되고 명랑해졌다. 나는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대학교에 진학하면 무조건 장학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14년에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첸나이에서 한국으로 나왔다.
그리고 8년 동안 애타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소식을 묻고 약속대로 운영비와 큰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냈다. 물론 그들이 전문학교나 직업훈련원에 들어가서 국비로 공부를 하고 있어도 아이들이 용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사이에서 존 밥이 죽고 라메쉬가 죽었다. 가우탐과 강가 라주, 어린 가야뜨리가 연락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갔다.
그 사이에 코로나팬데믹이 터졌고 아이들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닥터 헬렌이 소천하였다.
헬렌 소천 이후로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 지 조차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팬데믹 직전에 남아들의 숙소를 신축하고 코로나팬데믹 와중에 여아들의 숙소를 확장해서 리모델링하였으므로 들어가서 아이들과 함께 공동생산, 공동생활을 할 구상을 하였다. 멋진 나의 구상은 지난 10월 24일 샨띠홈에 다녀 온 뒤에 산산조각이 났다.
하나님께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게 될 때까지 끝까지 지키겠다고 아뢴 나의 기도가 무참해졌다. 참담한 마음을 여미며 돌아설 때 수바와 벵이 그들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나 또한 내 전화번호를 그들에게 주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했지만 아이들이 텔레그램으로 연결되어서 소식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동안 밀리고 몰랐던 소식을 서로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텔레그램으로 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토로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하여 매달 생일 축하잔치를 열기로 하였고 그 첫 번째가 나레쉬의 생일 축하잔치였다.
나레쉬는 내가 떠나올 때 나이가 10살이었다.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항상 수줍고 조용한 성품으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한 마디로 사랑스러운 막내 순동이었다. 그는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내곁으로 와서 슬그머니 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그의 노트와 책은 항상 깨끗하였다. 일기도 빠지지 않고 썼으나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해서 썼다. 그러나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꿈을 물으면 바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꾸물거리다가가 내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가끔 경찰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단짝 친구인 강가 라주가 경찰이 되겠다고 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서였다.
나레쉬는 공부를 못하였지만 성적표를 잘 보여주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성적표를 보여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나 그에게는 그런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다. 나는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격려하며 위로하였다. 나는 겉으로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성품이 비슷한 어린 나레쉬를 편애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어를 할 줄 모르고 나는 텔루구를 할 줄 모르므로 우리는 통역관을 통한 공적 대화 외에는 개별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였다.
그런 나레쉬가 생일잔치가 끝난 후, 텔레그램으로 나를 초청하였다. 기절초풍하는 순간이었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가 짧은 한 마디 문장에 자기의 마음을 잘 표현하였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오늘 나레쉬가 뜻밖에 성적표를 보내주었다.
너무 오랜만에 성적표를 받으니 감개가 무량하였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이들과 지낸 만 5년이 눈앞에서 아침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나레쉬는 ‘무역 실무’, ‘무역 이론’, ‘고용가능성 기술’, ‘형성 평가’에서 전부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가 속해 있는 산업연수원이 어떤 수준인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가 우리가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을 주문처럼 외운 ‘최선을 다해야 되어요.’를 삶에서 그대로 적용하며 실천하며 살았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 할렐루야! 연발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나레쉬의 성적표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표’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이들로 양육하는 것이 그들을 향한 나의 기도제목이고 희망이고 목적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레쉬가 선취를 하였으니 지금까지 샨띠홈과 그를 위해서 기도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열고 싶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우리 모든 고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로 사는 기쁨을 누리길 빌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모르는 세상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이심을 드러내는 복의 근원이 되길 빌었다. 잘 먹고 잘 살고 괜찮은 직업으로 안정되게 살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으로서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해서 이름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평화롭게 살기를 축복하였다.
나레쉬의 성적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양육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내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세우심을 보여주었다.
할렐루야!
나레쉬의 성적표는 23년 새 출발을 눈앞에 두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수시로 묻는 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일하게 하시는 것이다. 내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엎드리며 그 분의 심장 속에 그 분의 눈동자 속에 거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나머지 우리 샨띠홈 아이들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길 엎드려 기도한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길 날마다 간절히 기도한다.
2023.2.6. 월 새벽에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