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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산꾼의 계획에 따라 '국민대학교 북악관 → 북악공원지킴터 → 형제봉 → 일선사 갈림길 → 대성문 → 보국문 → 보국문 갈림길 → 대동문 갈림길 → 태고사 갈림길 → 태고사 → 태고사 갈림길 → 용학사 갈림길 → 유선대 → 부왕동암문 → 부왕동계곡 →부왕동 갈림길 → 삼천사 → 삼천사 갈림길 → 삼천리골 사슴농장 갈림길 → 진관사 → 버스정류장' 코스의 사찰을 순례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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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국립공원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6.922㎢로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나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화강암 지반이 침식되고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곳곳에 깎아지른 바위 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이루고 있다. 또한,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위치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역사 문화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 국립공원공단
2월 3주 차 목요일인 15일 안내산악회 목요 오지 팀 산행이,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와 2021년 5월 다녀온 평창의 남병산, 장암산 연계 산행이라[산행기], 그 산행에 참여하지 않고, 그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포천 가리산에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산행 하루 전 기상청 산악날씨에 따르면 가리산과 가까운 광덕산, 명지산, 연인산 등에 갑자기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해서 당일 산행이 가능한 반경 내 다른 지역은 어떤지 확인해 보니,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를 제외하고는 다 비 예보다. 고로 선택지는 서울 근교 산행이라, 멀리 갈 거 없이 집과 가까운 북한산에 오르기로 했다. 다만, 어느 코스로 오를 건지 고민하다가, 얼마 전 안내산악회 게시판을 구경하다가, 발견한 북한산 13 성문, 12 봉우리, 11 사찰을 인증하는 '북한산 챌린지 360'이라는 게 떠올랐다.
타이틀만 봐도 3번에 나눠 진행하는 인증이라는 걸 알 수 있으나, 이 안내산악회는 4번에 걸쳐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어쨌든 그 계획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처음 둘, 13 성문 중주와 12 봉우리 인증(종주)은 갈만한 산이 없을 때 또는 거의 격년으로 진행하는 산행이라, 코스도 잘 알 뿐만 아니라 굳이 지금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세 번째 11 사찰 인증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증이다. 하다못해 지리산 7암자 순례[산행기], 설악산 4암자 순례[산행기]도 다녀왔는데, 북한산 암자 순례를 떠올리지 못한 자신이 한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당장 내일 암자 순례를 해야 하는데, 코스 연구할 시간이 없어, 일단 그 안내산악회에서 계획한 그대로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날머리 등 몇 가지 변경은 있다.
포천 가리산에 가기 위해 준비한 배낭에 어쩌면 이번 겨울 마지막 산행이 될 수도 있어,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해서 가리산 배낭에 컵라면과 김치,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추가했다. 그리고 강수확률이 30% 불과하다는 기상청 산악날씨 예보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비로 변한 게 가리산이라, 북한산도 산행 중 어떻게 변할지 몰라, 만약에 대비해 우산을 넣었다. 고로 가리산행을 위해 준비한 배낭보다 많이 무거워졌다. 빠진 거라면, 북한산에서는 필요 없는, 등산로 찾기가 쉽지 않다는 가리산에 대비해 평소 가지고 다니지 않는 정글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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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에서 시작하는 산행이라, 평소 산행 날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7시 50분경 집을 나섰다. 그리고 구산역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로 연신내로 가 볼일은 본 후 국민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8시 49분경 국민대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이 국민대 졸업식이라, 정문 부근에는 꽃다발을 파는 노점상으로 정신없다. 대개 행사라면 10시에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일찍부터 자리 잡은 사람들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기 마련이다. 그런데, 추울 거로 생각하고, 평소와 같이 겹겹이 싸 입고 집을 나섰는데, 벌써 더워, 정류장 의자에 앉아,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등산화 끈을 조이는 거로 준비를 끝냈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등산화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미니 스패츠를 안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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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준비를 끝내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동한 등산 앱으로 현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103m, 북한산의 들머리치고는 꽤 높은 편이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곳이 대성문과 보국문 사이에 있는 무명봉으로 600m가 조금 넘을 거다. 산행 후 국립공원의 지도를 확인한바, 무명봉이 아니라 '성덕봉'이다. 그런데, 역시 높이는 안 나와 있으나, 출처는 모르겠지만, 구글링으로 산행기를 보면 610m, 623m 등 제 각각이다. 어쨌든 표고 차가 500m 이상이라, 그래도 꽤 높이 올라가야 한다. 물론 이후는 비록 기복은 있으나, 완만한 경사의 하산이 주라, 거의 북한산에서는 거저먹는 산행이다. 그런데, 형제봉에 꽤 올랐지만, 거의 평창동으로 하산 또는 평창동에서 올라갔다. 내 기억으로 국민대 방향은 딱 한 번 하산한 게 유일하다. 고로 국민대 ‘북악관’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이유를 모른다. 다만 그 부근에 암자가 있을 거로 추측할 뿐이다.
당연히 어떤 건물이 북악관인지 몰라, 일단 건널목을 건너 졸업식 준비로 바쁜 정문을 통과해, 경비실 직후 안내도를 향해 가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왼쪽 공학관 쪽에 '삼봉정사'라는 이정표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럼, 공학관 방향으로 가면 되는 데, '왜, 북악관일까?' 궁금해하며, 안내도를 보니, 도로에서도 보이는 가장 높은 건물이 북악관이다. 위치로 봐서는 북한산 등산로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국민대에 왔으니, 상징물로 기념으로 사진으로 남기며, 북악관을 향해 올라가자, 상징물 뒤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등산화와 옷에 묻은 먼지를 떨 수 있는 에어건이 있는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제대로 찾아왔다. 기쁜 마음으로 그 등산로로 위로 가자 곳곳에 돌의자로 만든 야외 강의장이 있다. 그리고 갈림길이다. 왼쪽은 공학관 방향으로 삼봉정사가 있다. 그리고 등산로는 직진이다.
직진해 등산로를 따라가며 보니, 왼쪽으로 철책이다. 그리고 고개를 넘어 내려가자, 위로 올라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북악관으로 내려간다. 고로 잘 못 왔다. 해서 갈림길로 돌아가 공학관 방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도 산길은 끝고, 대학 구내다. 해서 공학관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삼봉정사로 올라갔다. 당연히 서울대 자운암처럼, 삼봉정사를 지나 형제봉 방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을 거로 생각하며, 좌우를 둘러보며 가자, 대학 건물이 끝나고, 오른쪽으로 과거 등산객을 위한 매점 겸 식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있다. 그리고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철책이 입산을 막고 있다. 9시 9분 저 앞으로 삼봉정사가 보인다. 세 칸짜리 건물과 오른쪽 옆에 작은 방이 붙어 있는 구조로, 세 칸을 둘로 나눠 왼쪽은 팔상전, 오른쪽은 대웅전이고, 옆에 붙은 방은 요사다.
팔상전이나, 대웅전이나, 문이 잠겨 있어 본존불을 볼 수가 없다.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오른쪽 요사를 통과하는 건데, 그러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본존불에게 신고하는 건 포기하고 건물 왼쪽에 있는 금동불에게 인사하고, 건물 뒤로 보이는 산신각이라 생각되는 건물로 갔다. 예상대로 산신각이고, 다행히 문이 열려, 산신에게 무사 산행을 기원했다. 그리고, 등산로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으나, 철책으로 완벽하게 둘러싸, 등산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철책을 넘으면 되나, 오늘은 오지 산행이 아니라 암자 순례라 인간을 피해 다녀서는 안 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만약에 대비해 캡처해 온, 안내산악회의 계획을 확인했다. 북악관 다음이 북악공원지킴터다. 그건 대학 밖 터널 직전에 있는 거다. 그럼, 애초 거기서 시작하지, 국민대 북안관에서 시작한 이유가 뭐냐?
8시 55분경 국민대 정문으로 들어가, 등산로를 찾아 헤매다 포기하고, 9시 27분경 정문으로 나와 북악공원지킴터로 향했으니, 대략 32분가량을 국민대에서 등산로를 찾기 위해 헤매고 다녔다. 그나마 삼봉정사 산신에게 인사한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암자 순례를 하려는 등산객이 있다면 정문으로 들어가 좌회전해 공학관 방향의 삼봉정사에 들른 후 바로 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북악터널 방향으로 올라가면, 버스 종점이 있고, 그 오른쪽에 산으로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정규 등산로다. 어쨌든 9시 29분 공원지킴터를 지나, 포장도로로 형제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배낭이 무겁게 느껴져 배낭을 내려놓고, 그동안 귀차니즘에 무시하고 있던 멜빵과 관련 있는 여러 끈을 조정해 몸에 맞췄다.
끈을 조정하니, 무게감을 느낄 수 없는 배낭을 둘러메고 난 후 앞에 보이는 '출입 금지' 경고문을 매단 금줄 너머를 유심 관찰했다. 등산로다. 형세로 봐서는 포장 임도가 빙빙 도는 동안, 직진하는 지름길이라, 당연히 금즐을 넘어, 등산로로 들어갔다. 등산로가 훌륭한 건 아니나, 끊이지 않고 인적이 있다. 그 길목에는 지금은 폐허가 된, 아니 철거된 암자 터도 있다. 그 암자 터를 지나,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봤다면, 물개 바위라 부를 만한 바위가 있어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며, 주변을 관찰하며 올라가, 9시 43분경 관목 사이로 등산객이 보여, 요원이 아닌지 뜨끔했다. 다행히 요원은 아니고 등산객이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나뿐만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며, 가다 보니 그게 아니다. 정규 등산로가 바로 앞이다. 정확히는 북한산 둘레길이라 불리는 길로, 9시 45분 음지에서 탈출해 양지로 들어섰다.
앞서가는 등산객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본바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둘레길을 도는 게 목적이다. 9시 54분 북악산 갈림길을 지나, 9시 55분 형제봉 갈림길에서 예상대로 둘레길을 따라 평창동 방향으로 내려갔다. 직진하는 등산로로 형제봉을 향해 가자, 암릉이 가로막고 있다. 당연히 등산로는 바위를 우회한다. 급할 게 없는 산행이라, 쉽지 않은 암릉을 기어 올라갔다. 꽤 많이 여기를 지나갔지만, 내 기억으로 이 암릉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산행 내내 앞을 가로막는 암릉이 있으면, 우회하지 않고 다 올라, 바위 타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리고 아주 당연히 위로 향하는 산행이 계속될수록 고도가 높아져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더 올라가면 더 잘 보이나, 처음 눈에 들어왔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등산로에서 벗어난 바위 전망대로 기어올라 기록으로 남기며 갔다.
그렇게 올라가자, 오른쪽 울창하나 앙상한 숲 사이로 건물이 보인다. 암자다. 그나마 아직 새잎이 나기 전 늦겨울 초봄이라 발견한 거다. 당연히 등산로에서 벗어나 암자로 갔다. 암자의 이름을 알기 위해 주위에 어떤 정보가 있나 살펴보며 갔으나, 없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세 칸짜리 건물에 대웅전과 요사가 같이 있다. 아래 삼봉정사와 같이 대웅전 문은 잠겨 있고, 요사를 통과해야 대웅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 본존불에게 신고하는 건 포기했다. 그렇다고 산신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건물만 기록으로 남기고 암자를 떠나, 등산로로 돌아왔다. 산행 후, 지도로 그 암자를 찾아봤다. '대흥사'다! 등산로로 돌아와 갑판 계단으로 암봉에 오르자, 하산 때면 예수교 열성 신도들의 통성 기도로 시끄러운 기도발 잘 받는 전망대다. 날이 흐리고, 잔뜩 낀 미세먼지로 잘 보이지는 않으나, 건너편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와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 연세대 뒷산인 안산이다.
북악터널이 밑으로 지나는 능선 좌우의 시내 모습과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그 너머 안산의 모습을 파노라마로 남기고, 전망대에서 떠나려고 뒤로 돌아선 순간 앞 기도처로 이용하는 바위의 모습이 무언가를 닮은 듯해 유심히 살펴봤다. 바다거북이다. 확실히 보는 방향에 따라, 사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며, 그걸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앞에 있는 형제봉 중 아우봉으로 향하다가, 역시 길목 전망대에서 이번에는 북악산 방향이 아니라, 가야 하는 보현봉 방향인 비봉에서 보현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다시 길을 재촉해, 10시 23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아우봉 또한 형봉과는 달리 암봉이라, 전망대다. 역시 아래에서 찍은 것과 동일한 모습이나, 이번에는 비봉이 아닌 족두리봉에서 시작해 칼바위능선까지다. 그 앞에 버티고 있는 건 형제봉 중 형봉이다. 그 모든 걸 파노라마로 남겼다.
암봉을 내려갈수록 형봉이 가까워지더니, 그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가 여기라는 생각이 드는 곳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갔다. 그리고 우회로 갈림길에 도착한 10시 29분 등산 앱이 형봉이 가까이에 있다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늘 그랬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며 형봉으로 향해, 표지 하나 없는 정상에 10시 33분경 도착했다. 혹시 정상석은 기대도 않고, 산악회 리본이라도 있을지 구석구석 찾았으나, 없다. 다만, 과거 정성석을 설치한 흔적으로 보이는 시멘트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우봉과 달리 울창한 숲에 가린 형봉 정상이라, 기록으로 남길만한 조망은 없으나, 그냥 가기가 아쉬워 숲 사이로 보이는 아우봉의 모습을 사진을 찍은 후 정상을 떠났다. 콧노래를 부르며 암릉을 유유자적 내려가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로, 등산로 난간에 배낭을 내려놓은 여성 등산객이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있다. 뭐 그러려니 하고,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며 보니, 영불사 갈림길이다.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얼었던 땅이 녹으며, 미끄러운 진흙탕으로 변한 등산로에서 진흙이 등산화에 달라붙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정표를 떠나, 일선사로 가려고, 방향을 바꿔 발을 디디려는 순간, 그 여성 등산객이 밟지 말라고 소리친다. 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미끄러진 흔적이다. 여기서 미끄러져 대형 사고가 난 거로, 더워서 바람막이를 벗은 게 아니라, 진흙투성이라 벗은 거다. 고로 쉬고 있었던 게 아니라, 옷에 묻은 진흙을 닦고 있었다. 그 상황을 깨닫고, '아!'하고, 외치고, 거기를 우회해 오른쪽 바위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형봉의 뒷모습과 마치 이어진 능선처럼 보이는 보현봉과 주 능선, 칼바위능선을 파노라마로 남겼다. 이후 전망대를 떠나, 일선사 방향으로 가는데, 쓰러진 소나무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보여, 대단한 정성이라고 감탄하며, 그 소나무 상태를 봤다. 정성이 무색하게 누렇게 말라 죽었다. 그런데, 나는 죽든 살든 자연에 맡기라는 인간의 불개입주의에 찬성한다.
보현봉 암봉의 암릉 절벽에 올라선 일선사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며 길을 재촉해, 11시 4분 평창공원 갈림길을 통과하고, 11시 9분 일선사 갈림길에 도착했다. 우는 대성문, 좌는 일선사다. 이번 산행의 목표가 암자 순례니 당연히 좌회전해 올라갔다. 다만, 왕복이라면 굳이 배낭을 짊어지고 갈 이유가 없어 두고 다녀오는 것도 고려했으나, 아무래도 위에 갈림길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11시 12분, 포대화상이 웃고 있는 오른쪽 10여 미터에 대성문 방향 갈림길이다. 일단 포대화상이 있는 주변을 기록으로 남기고 일선사로 들어가자, 낙수 소리가 요란한데, 눈을 치우고 있던 스님이 나를 보더니 등산로가 없다고 먼저 얘기한다. 법 없이 사는 무법자들이 보현봉으로 올라가기 위해 일선사로 오는 것에 지쳐, 선수 친 거다. 보현봉은 일선사 직전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당연히 그걸 잘 아는 나야,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가 본존불에게 신고했다.
대웅전에서 나와 산신각을 찾았으나, 안 보인다. 대웅전과 약사전 사이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그 위에 건물이 있는 듯한데, 그 길목에 '등산로가 없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돌아가십시오'라는 경고문이 서 있다. 그걸 봤는데, 어떻게 올라가겠는가?! 해서, 산신각의 산신, 정확히는 산신각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대신 약사전 약사여래에게 신고하고, 일선사를 떠나기 전 쌍봉인 형제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떠나기 위해 뒤로 돌았는데, 해태상 옆 따땃한 햇볕 아래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견공이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 최고의 견생이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후 대성문을 향해 가자, 갑자기 등산로가 빙판으로 바뀐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구간은 늘 봄이 가장 늦다. 해서 몇 번 미끄러져 꽈당한 전적도 있다. 와중에 그 길목에, 아래에서 만났던 그 여성 등산객이 눈으로 등산화를 닦고 있다.
그를 지나쳐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11시 30분 쉼터에 도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던 차라 여기서 컵라면을 먹고 가는 것도 생각해 봤으나, 길목이라 위치가 좋지 않아, 으슥한 곳을 찾아 위로 갔다. 그리고 등산로 오른쪽 바위 뒤가 괜찮아 보여 바위 뒤로 갔는데, 앞면과 달리 뒷면은 앉을 만한 공간이 없어, 포기하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11시 36분 대성문이 가까이에 있다고 앱이 음성으로 알려줘, 동영상을 촬영하며 가, 11시 38분 도착했다. 대성문 앞 쉼터에는 여성 등산객이 의자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고, 봉이 온다는 소린지, 왔다는 소린지 모를 낙수 소리가 요란하다. 그 낙수를 피해 문을 지나 누각으로 올라가자, 생각과 달리 인적이 없어, 오랜만에 누각에서 준비한 컵라면과 김치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물론 중간에, 두셋의 등산객이 지나가기는 했으나, 지금까지 대성문에서 만난 가장 적은 수의 등산객이다.
배를 채웠으니, 다시 암자 순례를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다음 목표가 태고사라면 여기서 바로 행궁터 방향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선배 산꾼의 계획을 보면 우회전해 보국문으로 간다. 안내산악회와 관련된 계획이라, 까만 소 인증을 위해 보국문을 거치는 게 아닐까? 그럼, 난 갈 필요가 없으나, 일단은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해, 보국문을 향해 성벽을 따라갔다. 그런데, 성벽이 햇볕을 가려서 그런지, 가장 위험한 돌계단 빙판이다. 그나마 다행은 성벽 반대편에는 밧줄 가드가 있어 그걸 잡고 내려갈 수 있는 거다. 거기에 더해 대성문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배낭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는데, 그 주머니에 장갑이 들어 있었다. 물론 배낭에는 아이젠이 있으나, 귀차니즘이 꺼내는 걸 막았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빙판의 돌계단으로 12시 10분경 북한산 최고의 전망대 무명봉 아니 성덕봉에 도착했다.
성덕봉 정상인 바위에는 여성 등산객이 올라, 점심을 먹고 있고, 청춘의 여성 등산객 둘은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성벽에 앉아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 모두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늘 그랬듯이 반대편 성벽에 올라, 보현봉에서 삼각산에 이르는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조용히 성벽에서 내려와 보국문으로 향했다. 물론 돌계단 빙판이다. 그 길목에 삼각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전망대 주변 나무를 정리하지 않아, 나뭇가지가 조망을 방해한다. 여기를 지날 때면 이따위로 관리할 거면 전망대는 왜 만들었는지 늘 궁금해진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빙판의 돌계단으로 보국문으로 내려가자, 보국문 앞에 미니 굴삭기다. 누각이 있는 성문이야, 누각을 해체 후 재조립하는 게 이해가 되나, 암문도 그래야 하나? 이게 13이든 12든 성문 종주 때, 완전한 성문을 다 볼 수 없는 이유로, 어느 집안의 대대손손 먹거리다!
뭐 하는 짓들인지, 미니 굴삭기와 공사 자재가 행궁터로 내려가는 길을 차지하고 있고, 임시로 설치한 건지, 영구 설치인지 애매한 갑판 계단은 이용할 수 없도록 금줄로 막아 놨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미끄러지면 아래로 떨어지는 대형 사고인 미니 굴삭기 옆 빙판의 좁은 길을 조심조심 지난 후 우회전해 등산로를 봤다. 완만한 경사지만, 얼음이 녹아 물기 가득한 빙판으로 조금만 실수해도 얼음물 속을 뒹군다. 성벽을 따라 내려올 때와는 달리 잡을 것도 없다. 해서 등산로가 아니라, 옆 인적이 전혀 없는 눈을 밟고 갔다. 말인즉 등산로로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다, 그것도 한계에 달해, 지게 작대기를 구해 그걸 이용했다. 그런데, 빙판은 끝이 보이지 않고, 지게 작대기가 있음에도 미끄러워, 얼음물 속을 뒹구는 것보다는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냈다. 대신 바람막이를 벗어 넣었다. 그리고 빙판을 걷자, 이건 신세계다!
대동문 갈림길을 지나자, 눈이 녹은 물덕에 소리도 요란한 계곡이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계곡으로 들어가 라면을 먹고, 아직 마시지 못한 물을 떠 마셨다. 이후 다시 길을 재촉해 12시 50분 백운대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 삼거리에 중흥사와 태고사가 있다. 여기는 고도가 낮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라, 빙판이 아니다. 와중에 시멘트 포장도로라 아이젠은 쥐약이다. 해서 그걸 벗어 손에 들고, 먼저 태고사에 들르기 위해 좌회전했다. 백운대로 가는 급경사의 등산로로 100m가량 올라가자, 일주문 대신 차 한잔하고 가라는 플래카드가 반겨준다. 얼었던 땅이 녹아 진흙탕인 마당을 지나, 바로 대웅전으로 가, 본존불에게 신하고 하고 산신각을 찾아봤으나, 안 보인다. 대신 대웅전 옆 비석을 보호하고 있는 전각이 있어, 과거에 봤을 텐데 전혀 기억이 안 나, 무슨 비인지 가봤다. 태고사를 창건한 원중국사 탑비다.
태고사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고, 진흙탕으로 변한 마당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절에서 나와 조금 아래 작은 계곡 건너에 있는 중흥사로 갔다. 중흥사는 이제 막 터를 잡아 대웅전만 있을 때 갔던 게 마지막인데, 지금은 만세루도 우뚝 서 있다. 그 밑을 통과해 계단을 올라가자, 당연히 대웅전이라, 망설임 없이 마당을 지나 그리고 가 본존불에게 신고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산신각은 안 보이고 삼성각을 짓기 위한 시주를 받고 있다는 플래카드만 보인다. 아직 짓기 전이란 얘기다. 고로 본존불에게 신고했으면 할 일을 다 한 거라, 중흥사에서 나와, 절 입구에 두고 간 아이젠을 들고, 다음 절인 용학사를 향해 내려갔다. 결과적인 얘기나, 부왕동 암문을 지나 삼천사로 내려갈 때 아이젠이 필요할 거 같아 계속 들고 다니다가, 삼천사 직전에서 배낭에 넣었다. 배낭에 넣었다가는 막상 필요할 때 귀찮아서 꺼내지 않을 확률이 높아 서다.
1시 14분 계곡 옆 산영루의 모습을 보며, 용학사 방향으로 우회전했다. 그런데, 대웅전이든 무량수전이든 극락전이든 본존불이 거하는 전각이 안 보이는 대신, 오른쪽 암벽 아래 다양한 보살과 부처가 늘어서 있다. 주요 부처상은 비를 막기 위해 아치형 양철로 덮어놨다. 그걸 보고 당연히 전각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그중 어렸을 적, '꿀밤 맞을래? 돈 낼래?'의 부처라고 했던, 하품중생인의 아미타불에게 신고했다. 물론 산신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용학사를 떠나려는데, 왼쪽 암벽에 무언가 음각한 게 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사천왕이다. 전각만 없을 뿐이지, 갖춰야 할 부처나 보살은 다 있다. 용학사에서 볼일도 끝나, 부왕동암문으로 가기 위해 계곡 방향으로 가자, 그것도 아니다. 잠겨 있어, 본존불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조금 떨어진 곳에 대웅전이 있다.
용학사를 떠나, 1시 22분 부왕동암문 갈림길에 도착해, 징검다리로 위에서 물맛을 본 계곡을 건너려고 보니, 아직은 얼음이 두꺼운 거 같아, 징검다리를 버리고 얼음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바로 징검다리로 올라갔다.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징검다리로 계곡을 건너 위로 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거 없어 보이는 '청하동문(靑霞洞門)'이 음각된 바위 군락을 기록으로 남기다가, 다른 쪽에 '일붕기도처(一鵬祈禱處)'라고 크게 음각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를 읽어보니, '1973년'으로 시작한다. 고로 지금으로 따지면, 50년 전이나, 내 기준으로는 현대에 음각한 거라 읽을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바로 떠났다. 그리고 안내산악회 코스 계획에 있는 유선대가 어딘지 지도로 확인했다. 이 근처가 맞다. 분명 한자로 '遊仙臺'라 쓸 확률이 거의 100%다. 그럼, 신선이 놀만한 대(臺)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대신 청하동 계곡 건너로 과거에는 보지 못한 건물만 보인다.
그 건물의 위치가 부왕사 맞은편이라, 일단 부왕사에 들른 후 그 건물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1시 34분 부왕사 갈림길에 도착한 후, 좌회전해 부왕사(扶旺寺)로 올라갔다. 이정표나, 절 소개문에는 부황사(扶皇寺)로 적혀 있다. 왕(王)이 아닌 황(皇)은 일제의 잔재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부왕사 터로 올라가자, 전각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조잡하게 지어진 건물이 扶皇寺라는 명패가 붙은 부왕사로, 한 채의 건물에 법당과 요사가 같이 있다. 다행히 출입문이 달라, 법당의 문을 열고 본존불에게 신고했다. 법당의 문을 잘 닫고, 주변을 둘러보니, 법당 뒤로, 거리가 멀어 현판을 읽을 수 없는, 역시 조잡한 작은 건물이 보인다. 당연히 그리로 가며 현판을 보니, 삼성각이다. 건물은 조잡할망정 있을 건, 다 있다. 진흙이라 미끄러운 경사를 올라, 삼성각에 도착해, 문을 열고 산신에게 무사 산행을 기원했다.
끝으로 삼성각 아래에서 노적봉이 주인공처럼 보이는 삼각산과 과거 전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하는 주춧돌을 기록으로 남기고, 부왕동암문 갈림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중년의 십여 등산객이 판을 벌이고 있는 곳을 지나, 건너편 미지의 건물로 갔다. 그 미지의 건물로 향하는 길 양쪽에 늘어선 연등을 보고, 미지의 암자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나란히 붙어 있는 두 채의 조잡한 건물에 현판이 없는 게, 암자는 아니다. 대신, 왼쪽의 돌로 지운 건물의 활짝 열린 두 짝의 나무문 중 왼쪽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북한산 산신당'이다. 처음 듣는다. 해서 구글링했다. 2021년 산행기에 사진이 있다. 고로, 그동안 울창한 숲에 가려 못 보고 지나친 걸, 아직 녹색이 산을 지배하기 전이라 발견한 거다. 어쨌든 알루미늄 문을 열어봤다. 불상을 가운데 두고, 좌는 산신, 우는 족두리를 쓴 여성이다. 부처와 산신은 알겠는데, 여성은 모르겠다. 성모? 신모? 마고?
산신당에서 다시 부왕동암문 갈림길로 돌아와, 암문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급경사를 올라가자, 1시 59분 앱이 암문이 멀지 않다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그 메시지를 듣고, 늘 그랬듯이 동영상을 촬영하며 올라가, 2시 2분경 부왕동암문에 도착했다. 다음은 삼천사라, 암문을 통과해 나무 계단이 놓인 등산로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등산로 오른쪽으로 암릉이 보여 그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오른쪽 나월봉을 감상하며, 적당한 경사의 10여 미터 암릉을 내려가, 끝에서 다시 등산로로 들어섰다. 암자 순례 마감이 멀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삼천사로 향하는데, 오른쪽으로 출입 금지 경고문이 서 있는 목책이 있다. 그리고 직진 1km는 현재의 삼천사, 목책으로 막은 오른쪽 100m는 과거 삼천사라는 안내문이 목책 건너에 서 있다. 물론 처음 보는 건 아니고, 그동안은 무시하고 지나쳤으나, 오늘은 그래서는 안 될 거 같아 목책을 우회해, 과거 삼천사를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 과거 삼천사의 흔적인 석축만 기록으로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2시 34분 비봉 갈림길에 도착해 아직도 얼어 있는 삼천폭포를 사진으로 찍은 후, 주변을 기록으로 남기며 삼천사로 내려갔다. 그리고 2시 46분, 위에서 내려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삼천사 전각을 끝이 멀지 않았다는 들뜬 기분으로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도 후문으로 들어가, 마애불로 바로 가 신고했다. 본존불이 거하는 대웅전이 따로 있으나, 마애불에게 신고했으면 됐다. 이제는 산신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보니, 삼천사에 많이 왔지만, 산신을 보지는 못했다. 정확히는 산신각을 찾지 않았다. 당연히 이번에 산신각을 찾으려 여러 전각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마애불에게 신고하고 고개를 들자, 머리 위에 산령각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제일 처음 접하는 전각이 바로 산령각이다. 해서 산령각으로 올라가며 보니, 2층 건물로 아래는 나한전 위는 산령각이다. 먼저 위로 올라가 산령각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앙에 산신 상, 좌는 독성, 우는 칠성의 탱화다.
산신에게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나한전 내부를 둘러봤다. 그리고 삼천사를 떠나려다가 그래도 대웅전 본존불도 봐야 할 거 같아 대웅전으로 갔다. 정확히는 대웅보전이다. 그런데, 신자가 한참 기도 중이라 감히 방해할 수 없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신고하고 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조용히 대웅보전의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찰이었으면, 천왕문이 있을 자리에 일주문이다. 당연히 일주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야 하나, 위에서 내려오다 보니, 일주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말인즉 순서가 바뀌었다. 다음은 이번 암자 순례 마지막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관사다. 진관사로 가기 위해, 아니, 산행을 마감하기 위해서라도, 탐방센터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3시 정각 비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회전해 응봉능선으로 올라가면, 반대편 진관사로 내려갈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 응봉능선 끝을 돌아 반대편 진관사로 갈 것이냐, 여기서 응봉능선을 넘을 것이냐 선택의 기로다.
응봉능선을 넘는 게 거리가 짧고 당연히 시간도 절약된다. 그런데, 오늘 산행은 북악공원지킴터에서 대성문 구간만 내리 오르막이고, 대성문에서 성덕봉, 백운대 갈림길에서 천태사, 부왕동암문 갈림길에서 부왕동암문까지는 높지 않은 오르막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이었음에도, 일주일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지쳐서, 응봉능선으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해서 도로를 따라, 빙 돌기로 하고, 탐방센터를 향해 내려가며 혹시 길이 있나, 왼쪽의 응봉 능선을 주시했다. 아주 당연히 내려갈수록 능선의 높이는 낮아져, 힘들이지 않고 넘을 수 있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거 같은 길이 안 보여, 계곡 옆 식당 주인장에게 물어봤다. 도로를 따라 빙 돌아야 한단다. 3시 9분 삼천탐방지원센터를 지나, 3시 12분 북한산 둘레길 삼천사 입구에 도착했다. 갈림길로 좌회전해, 둘레길을 따라 진관사 입구까지 가면 된다. 통칭 삼천리골 사슴집 입구다.
둘레길로 사슴집을 지나, 진관사 계곡을 건너, 진관사를 향해 위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앱이 인증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아무것도 없는데? 해서 앱을 확인했다. ‘북한산 둘레길 은행나무숲 포토 포인트’란다. 별개 다 인증 대상이다! 그럼, 은행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위로 향해, 3시 20분 일주문을 통과하고, 3시 22분 해탈문을 지났다. 역시 진관사는 명성에 걸맞게 평일임에도 관광객과 신자로 넘쳐난다. 그들을 관찰하며 계속 위로 가, 과거에는 본 기억이 없는 마애불을 지났다. 정확히는 치매로 기억을 못 하는 것일 확률이 90% 이상이다. 끝으로 3시 25분 만세루 아래를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바로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 유리문이 열리나, 열어봤으나, 꼼짝 안 해, 왼쪽으로 가,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등산화를 벗고 있는데, 노랑머리의 외국인 여성을 동반한 청춘이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 해서 모든 절의 대웅전은 들어가도 된다고 하자, 그들도 신을 벗어 신발장에 넣는다. 그들이 신발장에 넣는 걸 보고서야 신발장이 옆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야 신고만 하고 바로 나오니, 시간 걸릴 게 없어, 따로 보관할 필요를 못 느껴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스님이 재물 정리를 끝내고 막 나가려는 중이다. 만약 밖에서 그 스님을 봤다면 정문을 열려고 시도도 하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본존불에게 신고하고 기록으로 남긴 후 나가려는 데, 대웅전 내부 모습에 감격했는지 따라 들어온 청춘이 가까운 곳에 다른 절이 있는지 묻는다. 해서 2km 정도 도로를 따라가면, 삼천사가 있고, 꼭 가보라고 얘기해 주고 대웅전을 나와, 산신각을 찾으나, 산신각은 없고, 독성각과 보물인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만 있다.
진관사 같은 절에 산신이 거하는 공간이 없다는 걸 믿을 수 없어, 여기저기 둘러봤으나, 안 보인다. 그리고 있다면, 당연히 독성각, 칠성각과 같이 있을 텐데, 전각은 두 개밖에 없다. 해서 이 글을 쓰며, 구글링했다. 산신각은 따로 없고, 독성각 오른쪽 벽에 산신도가 있다고 알려준다. 고로 독성각이 산신각을 겸하고 있다. 어째서 당시, 독성각에서 오른쪽 벽에 무언가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을까? 배가 고파 빨리 가서 하산주 마실 생각에 주의해서 보지 않은 건가? 끝으로 범종각과 응봉을 배경으로 대웅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거로 사실상의 북한산 암자 순례 1탄을 마감하고, 왔던 것의 역순으로 진관사에서 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3시 44분, 하나고 앞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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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46분 진관사 한옥마을 건너편, 하나고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기록 중이던 트랙을 종료했다. 그리고 3시 49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불광동으로 향해, 4시 8분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한, ‘삼오 순대국’이 있는 대조시장으로 향했다. 주인이 바뀐 건지, 식당을 리모델링하고 나서, 맛이 변해 한동안 가지 않았으니, 거의 2년 만인 거 같다. 4시 15분, 애매한 시간이라 모든 식당이 쉬고 있을 때, 삼오 순대국에는 너덧 식탁에 손님이 식사 중이거나, 낮술을 마시고 있는 걸 보며, 리모델링 전과 다름이 없다. 그 모습을 둘러본 후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식탁 하나에 배낭을 내려놓고, 순댓국 주문 후 정작 리모델링이 필요하나 하지 않은 화장실로 가 씻었다.
씻고 식탁으로 돌아오니, 밑반찬을 담을 수 있는 접시가 놓여 있다. 이 집의 특징이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 양념장 등이 식탁에 있고, 그걸 접시에 덜어 먹는다. 고로 반찬 더 달라고 종업원을 부를 이유가 없는 집이다. 어쨌든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 등을, 먹을 만큼 접시에 담고 있자. 주문한 순댓국이 나와 빨갱이를 추가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고, 국물 맛을 보고, 새우젓과 깍두기 국물, 양념장을 넣고, 입맛에 맞췄다. 먼저 국에 든 고기를 안주로 빨갱이를 마신 후, 밥을 넣고 먹었다. 내가 먹기에는 양이 많아, 배가 터질 거 같다. 그런데, 그 맛이 리모델링 전 거의 매주 먹던 옛날 그 맛이다. 원래 맛으로 돌아온 걸까? 너무 배가 고파 제대로 맛을 확인할 수 없는 걸까?
4시 55분경 순댓국과 반찬을 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10여 년이 넘게 싸우다가, 몇 개월 전 공사를 시작한 재개발 지역이 있다. 지금은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해 중단된 상태지만. 어쨌든 대조시장 삼거리 근처에 오자, 길 건너로 가정집을 식당으로 바꾼 현장식당이다. 그 식당을 보자, 공사가 재개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직진하는 공사장 출입문에는 커다랗게 '공사 중단'과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와중에 삼거리 건너편 부동산에는 또 다른 '재개발 동의율 70%'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삼거리 각 길목에서 보이는 하나의 풍경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의 모습일까?!
안내산악회 계획과는 약간 다른 '국민대학교 정문 → 북악관 → 삼봉정사 → 정문 → 북악공원지킴터 → 폐 절터 → 북한산 둘레길 → 형제봉 갈림길 → 대흥사 → 전망대 → 형제봉 → 영불사 갈림길 → 평창공원 갈림길 → 대성문 갈림길 → 일선사 갈림길 → 일선사/왕복 → 대성문 → 삼각산 전망대 → 보국문 → 대남문 갈림길 → 대동문 갈림길 → 청수동암문 갈림길 → 백운대 갈림길 → 태고사/왕복 → 중흥사/왕복 → 용학사 → 부왕동암문 갈림길 → 유선대 → 부왕사/왕복 → 북한산 신선당/왕복 → 부왕동암문 → 부왕동계곡 → 삼천사터/왕복 → 청수동암문 갈림길 → 삼천사 → 사모바위 갈림길 → 삼천탐방 지원센터 → 진관사 입구 갈림길 → 진관사/왕복 → 진관사 버스정류장'의 21.8km(램블러) 코스를 6시간 55분 동안 9 암자를 돌았다. 이동 6시간 49분, 휴식 6분!
※ 붉은색은 본존불에게 신고한 암자로, 대웅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
위의 삼천사 트랙에서 보듯이 총거리 21.8km에는 쉬는 동안 또는 실내에 있는 동안 GPS가 멋대로 돌아다닌 거리도 포함돼 있다. 해서 수정이 필요하다. 다년간 산행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 코스 속도는 3km/h 정도로 보인다. 이를 역산한 17.5km가 실제에 부합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짓 다 때려치우고 앱을 바꾸면 되나, 귀차니즘이 막고 있다.
흐리다는 예보와는 달리, 형제봉 이후 간간이 해가 나와 가까운 거리는 조망이 좋았다. 먼 거리는 그놈의 미세먼지 때문에 날씨와는 상관없이 꽝이다.
16도를 오가는 높은 기온이라, 높은 지대의 빙판과 언 땅도 녹기 시작해, 등산로가 한겨울보다 더 미끄러웠다. 얼었던 땅이 녹은 진흙탕에서 미끄러져 대형 사고를 당한 여성 산꾼도 있다. 아이젠 없이 버텨보려고 했으나, 보국문에서 행궁터로 향하는 빙판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예정에 없이 급조된 ‘북한산 암자 순례 1탄’ 산행이라, 암자 순례 2탄은 언제 진행할지 나도 모른다! 생각보다 빠를 수도?!
※ 북한산 암자 순례는 까만 소 '북한산 챌린지 360' 중 '11 TEMPLE TOUR'와는 무관. 다만, 거기서 영감을 얻은 건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