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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3
信天함석헌
동학은 순수한 민중의 운동
뭐 그런 게 이조 오백년 동안 많습니다. 맨 마지막에 오다가 우리나라 마지막에 동학란이라고 그럴 수가 있어. 동학란은 어찌해 실패를 했나. 동학란은 그게 순수 거의 순수히 민중의 운동 민중의 그건 어느 양반 계급에서 한 게 아니라. 동학이라고 뭐 그 천도교에 종교사상이 깊어서 된 거 아니에요. 그것도 있긴 있지만 그보다도 이 고통 가운데 있던 민중에게 살려 준다고 하는 이 바람에 거기에 여러 가지 미신도 있어요. 거기가 동학이 또 실패하게 된 원인에 하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든지 이렇게 그 깊은 데를 깨워서 의미라는 그럴라 하지를 않고 뭐 한다는 소리에, 우리가 이제 후천개벽(後天開闢) 할 것 같으면 우리가 다 한자리씩 한다고 하는 걸 가지고 선전을 하는데 역사적인 의무 의무 하긴 하지만 도의적인 그 이제 책임감에서 하다는 것보다는 그 역시 복리주의가 들어가요. 그 이 다음에 대신도 하고 뭣도 한자리하고 한다는 거 그렇게 말한 것도 그건 그때 민중이 정도가 낮으니까 지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 또 그럴 수도 있지만, 역시 그 용서할 수 없는 데예요.
그래 실패하게 되는 그 원인에 하난데 그래도 그건 순수한 국민 중에 운동이라고 우리가 그럴 수 있어요. 민중운동이라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실패 했나하면 우리나라 관군이 가서 들어 쳤지. 일본군대도 쳤지. 중국군대도 쳤지. 이게 참 재미있는 일이라고. 그때 경제 여러 가지 관계를 뭐 이렇게 이렇게 그 하긴 했지만 그 민중의 일어나는 운동을 우리나라와 일본과 중국의 세력이 다 합해서 들있다 쳐서 전부다 진압을 하고 말았다. 그게 지금 우리로서는 생각할 점이라고 그러면 직접적으로는 어쨌든지 간에 이 시대에 크게 생각을 하면 뭔고 하니 일어나는 민중의 세력과 위에 있는 소위 이때까지 오는 지배자들의 세력과 대항하는 거예요. 이 나라에 있어서나 저 나라에 있어서나 이해는 지배자의 이해는 이해가 마치 일치해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지배자에게는 민족 없다고 그래요. 권력주의자는 권력에 필요하면 러시아 놈과도 결탁 잘하고 일본 놈과도 결탁을 하고 미국 놈하고도 결탁하고 상관없어요. 누구와든지 힘을 빌려 올 수만 있으면 어느 나라와도 손을 잡아, 그러는 게 나라를 팔아먹는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조국이라는 거 없어요. 그 괜한 말이 그렇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조국이라는 말을 제일 열심히 하거든. 왜 그런고 하니 그렇게 해야 이 민중이 자기네 편으로 서겠으니까 그래요. 요런 점이 지금 참 위배되는 이놈들 양심이 없는 놈들이 민족소리는 더하지 않아요.
나라의 주체는 민중
우리 민족, 민족적인 무슨 뭐 데모크라시라고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라고 민족을 생각할 리가 있어요. 하지만 그럭해야 민중을 동요시킬 줄 아니깐 그래. 민중이 거기 속지 않게끔 돼야 하겠는데. 그런데 민중이란 참 잘 속는 물건이라고. 그런데 이제 그래서 동학란까지도 그래서 실패에요. 달라붙어서 그땐 자기네 민중이 일어나려고 하는데 일어날라 깨나려고 하는 땐데 서양의 자극을 받아 깰라 하는 땐데 이 사방에 있는 놈들이 달라붙어 가지고 엎어 버렸으니까 그러고 말았어요. 그렇지만 그게 아주 없어지나 그러면 그렇지 않아. 그래서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있었고 그러나 실패 또 실패, 갑신정변(甲申政變)하다 또 실패해요.
그런데 3·1운동을 내려오면 거기가 이제 달라진다 그 말이야. 3·1운동하면 어떻게 됐냐 그러면 일본사람이라면 물론 일본사람이라 그냥 덮어놓고 있지만 3·1운동 때 그 전과 다른 건 그전에는 소위 나서서 지도한다는 지도계급이라는 사람들이 잔뜩 자기네 이렇게 뭐라 할거야 우수 우수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나라는 우리가 맡아해야지, 그러니까 실지 나라는 선비가 하는 거고 그 아래 있는 농사하는 것, 공업하는 것, 장사하는 것들은 우리가 먹고 우리가 나라를 하기 위해서 그 먹을 것 입을 것을 만들어 내는 것들이라 그래 옛날에는 사는 댓자 나라가 사(士) 선비의 나라, 선비라는 건 칼 들고 쌈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땐 근데 그래서 서로 지사라고 하는 것 나라의 지사 계급이라고 하는 것 요샛말론 지식인이에요. 그 지사계급의 사람들의 생각이 뭐냐 하면 나라는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바로 잡아야 된다. 그랬지. 저 사람들 민중이 해야 된다는 생각은 아니했어. 그건 이날까지 역사가 그렇게 활용 그건 무리가 아니에요. 그런데 사실 나라의 주체는 누구냐 그러면 민중이야. 그런 걸 벌써 수천 년 전에 맹자는 알고 그랬기 때문에 맹자가 날마다 주장한 거 그거에요. 민중만 가지곤 나라 못합니다. 백성 보호해야 됩니다. 그래 지금과는 좀 다르지만 늘 그러는 거 민주주의적인 사상이 거기 있어요. 공자 맹자의 사상에 있어요.
그래도 그런 걸 몰라서 말이야 그저 백성들이 지배해 먹고 이러고만 해 올라와. 그런데 이때에 오면 일본사람들에게 다 빼앗기고 이러면 시대도 달라졌고 한국에 요렇게 얼마 안 되는 한줌 되는 요만큼 밖에 안 되는 요 속에 인테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바로 잡아야지” 그래서 한다는 생각이 뭐냐 그러면 밖에 나가서 중국에 가서 군대를 좀 빌린다든지 러시아한테라도 빌려서라도 일본군대를 내 몰아야지, 상해가고 뭐 만주가고 노령 간 사람들의 생각이 그거거든요. 이 민중을 가르쳐서 이렇게 해서 한다는 거 보다는 자기네가 거기 나가서 일부 특수의 생각 있는 사람들이, 지사들이 군대를 길러가지고 옆에 나라의 응원을 얻어가지고 들이쳐서 일본군대를 내몰고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찾자, 이 생각을 했는데 그게 이젠 도저히 할 수 없어졌어.
시대가 달라지고 차차 여러 가지 말할 시간도 없습니다만 그래서 이젠 2차 세계대전 이후 형편이 달라졌는데 이제 윌슨의 민족주의 얘기를 마쳐보니 그러니까 그래 한 게 민중의 이제는 자기네가 지도계급이라는 의식을 가지는 거 아니라 저 사람들이 국민이 왼통 일어서지 않는 한, 나라 웬고 하니 자기네 하려는 무기 어디 가질 수 있어요. 하나도 만여나 길은 데도 몇 살 것 가지고 도저히 못될 줄 알아. 또 외국에 부탁을 한댔자 그 나라가 군대 주지 못할 줄 알아. 그러니까 어차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는데 우리 자신이 하려면 민중전체가 해야지, 우리 요만한 것 가지고 되겠나. 무의식 리에 유의식 리에 그런 생각, 그래서 민중한테 대해서 호소했다 그 말이야.
그래 나도 어렸을 때 일이지만 뭔고 하니 그게 달라요. 뭐 그저 우리 국민이 다 일어나서 일본사람들이 있는 것이 우리 뜻이 아니라고 하는 걸 표시하기만 하면 독립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데, 민중이 아 그러자고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솔직한 민중이니까 그렇게 하면 되나보다 그런 것도 들키고 또 그리고 하난 이날까지 자기네보고 그렇게 대접해 준 일이 없어. 형편 너 농사나 하고 장사나 해서 먹을 것이나 만들어내라. 그렇게 하면 나라 일은 우리가 한다. 이런 일이지 나라를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언제 들어 본 일이 없어. 없는데 하여간 뭘로 통했는지 그 기분으로라도 자기네 나라의 주인으로 대접을 해 주는데 그 민중이 감격 안 할 수가 없어.
사람을 높이 할수록 높이 평가해줘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이 무식한 양 같은 그 무식하고 양 같은 백성이 무서워하지 않고 막 일어나서 만세 부르고, 거기 여러분 상상도 못할 거예요. 요새 사람들은 거기다 대면 아주 비겁해. 만세 부르던 사람들에 대면 비겁해, 참 비겁해요. 그런데 그런 힘이 어디서 났냐? 그러면 자기네를 어느 정도 그렇게 알아주는 그러는데서 감격한 마음도 있고 좀 우쭐이라면 우쭐하고 그러니 우리가 사람대접하는데 그만 사람을 이렇게 친구하고 개인하고 얻는다든지, 그 사람의 잘못을 깨닫게 한다든지 그럴 때 생각할 일 잘못한 것 가지고 책망만 하지 말고 또 이치로 요런걸 해라 요런걸 해라 타일러서, 그러지만 말고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이렇게 높이 할수록 높이 평가해 줘 그렇게 해줘.
간디가 그런 얘기가 있어요. 아프리카에서 만난 어떤 청년 있는데 이 청년 본래 갈 때 왜 아프리카 갔느냐하면 돈벌이 하러갔거든 여기 말하면 월남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 모양으로 딴 생각 없어. 요새 월남 돈벌이 좋다더라 그러니까 연성 돈 벌겠다고 거기를 갔는데, 간디가 거기서 그 청년을 만난 얘기가 “나이 몇 살이지” 뭐 어떻했지 암만입니다. 그러니까 “젊은이가 말이야 우리 인도를 위해서 힘써야 하지 않아.” 여기 와 인도사람들이 와있고 그런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주동을 해야겠는데 좀 힘을 쓰라고 그러니까, 그건 그 다음에 그 사람이 간디의 참 좋은 협력자가 되고 제자가 되었어요.
후에 하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을 해주는데 이때까지 자기에게 그런 말 해준 사람이 없다는 거야. 공무원 뭐 나라일 하라든지 할 수 있는 걸로 자기를 대접해 준 사람이 없는데 간디가 그런 말을 하는데 참 감격이 됐다는 거야, 그래 그 사람 간디 따라서 좋은 협력자 되지 않았어요? 이 정부가 나쁜 것은 민중이란 거는 말 안 듣는 것만 알아. 우리 하는 말은 저놈들 안 들으라지 그러니까 그게 밤낮 형사를 시켜서 따라다녀야지 그렇지 않으면 돈을 주고 매수를 해야지.
우리를 볼 때 아주 과소평가해 민중 보기를 형편이 적게 민중은 국민은 할 수 없다, 그런다든지 후진국이라 그래가지고 수백 년 동안 말 안 듣고 이러는 민중들이니까 이놈들은 그저 전쟁터로 칼을 가지고 내몰아야 된다. 그게 아주 저 사람의 생각일거에요. 그게 괘씸한 생각이라고 그런 것 가지고 이 민족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그 말이야.
대접 아무리 못났어도 그 사람에게 속에는 좋은 면이 있어요. 나 이거 좀 화가 나서 하는 말이에요. 저가 악이 오르니까 나도 화가 안 날수가 없어요. 어찌 이 민중을 그렇게 업신여기냐 그 말이야. 사람 있는 사람 속에 있는 데모크라시 할 수 있다하는 가능성을 뭐 인정을 해주지 않고 말 안 듣고 내가 우리가 안하면 5년 동안 덤벼들어 할 놈이 없을 거다. 건방진 놈들 그렇게 어떻게 남을 과소평가하는 그게 자격 없는 증거야. 남을 남의 속에 좋은 것을 못보고 나쁜 것만을 본다고 하는 거 제 속에 좋은 거 없기 때문에 남의 속에 있는 것을 좋은 것을 못 봐요.
제 속에 예술적인 마음이 없으면 남의 하는 예술적인 걸 못 봐요. 제 속에 음악에 소질이 없으면 남의 음악을 들을 줄을 몰라요. 내속에 음악이 있어야 남의 음악을 알 수가 있고 내속에 미술적인 소질이 있어야 남의 미술을 알 수가 있어. 내속에 인간성이 있어야 남의 인간성이 있어. 내속에 도덕이 있어야 남의 도덕을 알 수가 있어. 내속에 짐승 같은 권력주의만 있으면 문제가 권력적인 문제로 밖에 보이질 않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든지 강력하게 들이 조져야 될 거다.
나라는 당신들의 나라요
역사적으로 수백 년 동안을 보면 인간대접 못 받아 왔기 때문에, 그래 속에 있는 인간성이 거의 말살이 돼서 동양중에 있어서 사람으로 보면 제일 착한 사람인데 정치적으로 보면 제일 못생기지 않았어요. 왜 이꼴이야, 이꼴이야 제 모습을 상실을 하고 그럼 어떻게든지 이거 이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걸 길러줄 생각을 해야지 길러줄 생각은 안하고 그걸 자꾸 더 짓밟으니 말이야. 그 집이 몇 개 더 올라갔느니 길이 몇 자 더 나갔다느니 그건 뭐 있을는지 모르지만 어째 그것만 보고 그러는 동안 인간성이 어느 만큼 말살이 되나 정신이 얼마큼 위축이 되겠나. 그 점을 왜 보지를 않냐 그 말이야.
어느 것이 오래 갈수 있는 것이냐 그 어느 것이 가치 있는 것이냐 그런데 이제 3·1운동에서 놀라운 거는 소위 지도한다 하는 사람이 이전 모양으로 “사람은 우리가 사람이지 나라는 우리가 맡아 하는 나라지. 저 사람들은 그저 먹을걸 공급하고 그거 힘을 공급해주는 사람” 그밖에 생각 안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민중보고 “나라는 당신들의 나라요. 당신들이 밀어주지 않는 한 나라가 그럴 수 없소.” 그 대신에 당신 일어서기만 하면 일본군대도 문제없을 거야 유언비어 무언비어이지 그렇게 말해주는데 이 사람들이 그대로 바깥으로 보기에는 성공이 못됐어. 성공이 못되는데, 원체 그때에는 이 군국주의에 힘이 너무 강해 민중의 힘이 상기도 너무 약할 때니까 그것이 성공이 못돼. 못됐지만 그 일이 실팬가 그러면 그러지 않아.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제 교육열도 올라가고 한국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은 나는 3·1운동 없었더라면 정신 못 차리고 짐승노릇 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래도 그랬는 고로 우리나라 사람의 귀한 점도 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많은 청년 다 그럴 거예요. 난 그러니 그런 얘기를 한다면 우리나라의 선비가 왜 그렇게 못쓰게 당파싸움만 하게 됐나. 거기는 세조의 조약이 제일 크다 생각을 합니다. 세종이 모처럼 길러서 다 이렇게 그 옳은 도리로 길러놨는데 하루저녁에 이 자식이 나서서 그저 옳은 말하는 사람을 다 죽여 버리고 아첨하는 놈들만 들어서 높은 벼슬을 쓰는데 “세상인심 별 수 없다. 권력이 제일이지” 뭐 그랬으니 그 민심에 끼친 영향이…
그러니까 죄를 말한다면 세조이지 세조나 정인지나 뭐 그 일파 놈들의 죄악이 그 이상 갈 거 없습니다. 자기는 일대에 영화는 누렸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이 수백 년 살아가는 인심에 끼친 영향이 거 얼마나 하겠나. 그게 지금까지 내려와요.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예요. 근데 그래도 채 죽지를 않아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거기 대해 프로테스트를 하고 그래서 이래 다행히 죽지 않고 내려왔지만 그러니까 파 싸움이 자꾸 나요. 사람의 마음에 무슨 도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싸움이 없지.
도리가 없어지고 학문에는 이해관계 이해심에서 하면 바싹 안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당파싸움이 더구나 왜 심하냐 그러면 그거야 근본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나라는 대단히 어려우면서도 아주 다른 인도 같은 나라는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는 그래도 당파싸움은 그렇게 없지 않아요.
그런 것이 그게 다 남은데 뭐 후진국이 형편이 없어 상기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고 그런 나라지만 어디 상기도 산골에 가면 아마 지금도 있을 거예요. 밑구멍을 손가락으로 씻지 않아요? 그러는 데는 자기네 그 까닭이 있어. 불교계에서만 그러는 거 아니라 밥도 손으로 먹지만 손가락이 딴 손가락이에요. 같이 쓰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닦고 씻기는 물론 잘 씻지만 손가락으로 밑구멍 씻어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어요. 미국에 오갈 때 우리 옆에 있던 유학생도 손가락 그럭해야 자기 마음에 깨끗하고 좋지 종이로 닦아가지곤 안 된다는 거야.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그런데 하여간 떨어진 거는 이렇게 떨어진 나라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인도를 없이 못 여기는 건 그들이 그래도 더럽게 이렇게 우리나라처럼 이러지 않아.
우리나라 업신여김을 당하는 거는 뭔고 하니 업신여김을 당하면서 하면 4·19로 인해서 얼마나 우리 국민적인 지위가 온통 올라가지 않았어요? 5·16으로 인해서 떨어진 것만은 사실이야. 근데 이제 상도로 찍어서 이게 이대로가 된다고 그러면 국제간의 신임이 있어 이 정부 이대로 돼가고 장사는 그래도 다른 것은 아 그래 너 장사하자.
이런 것 보고 상도도 해보자고 할런지 모르지만 국민적으로 받는 존경은 떨어질 겁니다. 그건 뭐 떨어졌지 올라갈 리가 있겠나 그건 단언해. 이런 점이 우린 신중하게 생각할 점이라고. 그런데 3·1운동에 자꾸 돌아가는데 3·1운동 때 비교적 그게 좋아요. 처음엔 민중은 민중답게 되고 우리나라 역사에선 이건 아주 그게 참 획기적인 일입니다. 뭐 그거 뭐라고 아주 완전한 것 아니지만 아무것도 손에 무기를 든 거 없이 그만치 그랬다.
그래도 그것 있었으니 4·19 있었으니 그러는 거야 3·1운동 없었으면 4·19 없었을 거야요. 4·19가 있었으니까 지금도 학생들이 또 그래요. 그러니까 이번까지도 또 실패가 돼서 해먹을 대로 해먹을는지 몰라, 난 그런 점에 있어서 낙관이야 난 비관 안 해요. 두고 보자 그래. 다행히 무사하게 죽을 때까지 해먹고 죽을는지 모르지만 난 그거 당연이라 안 알고 불행이다. 인간적으로 뭐 불행하다. 살아있을 때 실패를 해보았더라면 깨닫는 게 뭐가 있을 걸 왜 못해먹었기 때문에 영 그만 죄짓고, 참 그게 지옥이지 별거 없어.
그런고로 인간적으로 보면 불쌍한 거예요. 그 사람도 실패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좀 뉘우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인간적으로 볼 때에 참 불쌍해요. 뉘우칠 기회가 없거든. 그런데 민중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주인에게는 그런데 그걸 그대로 미워해. 이 사람들이 속기를 잘해. 저 지식적으로 낮고 가난하고 그러니까 그러기에 이 민중을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대할 것이냐. 그 지식인이라는 꽤가 있어서 약아서 고걸 이용이나 해 먹을라고 그러지만 이용이나 해 먹을라고 하는 마음가지고 좋은 의미로 이용하려면 이용하는 태도 가지고는 안돼요.
예수는 우리처럼 우리 친구다
그들의 마음을 참 사가지고도 못하고 또 참 정치일도 옳게 하지도 못하고 그들을 믿어야 돼. 그들을 믿는데 그들은 믿는단 말은 무조건 그런 데로 따라 가자는 그런 건 아니야, 그런데 여기가 어려워 그런 게 좋은 제시야. 오늘 우리 예수님이 민중에 대해 어떻게 대하셨나. 군중이 호산나 호산나 예수님을 보고 부르는데 ‘야 좋아’ 왜 그런고 하니 이날까지 자기를 이렇게 믿어준 사람이 없어 그래 다른 거 아니고, 이적도 봤지만 근본 되는 걸 말하면 그럴 거예요.
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셔 세리같이 얼마나 하면 세리와 창녀라는 말을 들었겠어요. 이니가2) 도무지 계급적인 의식이 없어 이 바리새교인 제사장은 떡 앉아서, 아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은 그러지만 저 사람들 우리가 지도해 가야지 이런 그래 예수님이 “야 너 세리와 바리새교인 지금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어 가지고 하나도 하지는 않으면서 지기 어려운 짐을 지우게만 하는 놈들”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그러나 그 “행하는데 그 말은 들으라 말은 옳은 말을 해주니까” 하지만 행하는 거는 그대로 하지 말라고 하는 그저 민중하고 둘 사이에 이렇게 서로 계급의 의식을 딱 가지고 지배하지 말아라 하는 사람들이 아냐 지도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민중이 할 수 없어서 그대로 하긴 원체 그거 내놓곤 할 수가 없어. 중 가운데 딴말입니다만, 나도 말 이런 소리 들어보면 이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뭔고 하니 “너는 왜 그거 정치문제를 가지고 자꾸 관여를 하고 그러냐” 그래요. 그 소린 왜 그러냐하니 예수님은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종교가라는 건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거 아니냐?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래 그래고해. 나는 그건 생각을 좀 달리해요.
왜 그런고 하니 정치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시대가 다른 점도 있고 그때와 지금과 달라요. 다른 점도 있지만 예수님 때에는 정치가 없었어. 정치라는 거 보다도 뭐 그 사실은 제사장 바리새교인이 그거 종교만이 아니라 정치도 그 사람들이 하고 있은 거예요. 그러니까 제사장 바리새교인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했어요. 그런 거 보면 정치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했다고 그럴 수가 없지. 그러나 얼마나 하면 “야 어째서 너가 깔딱 이는 걸러먹고 이 약대를 삼키느냐, 야 이 자식들아.” 그건 딴 얘깁니다만 정치 그것도 오늘 관계도 되는 얘기에요.
근데 민중이 예수님을 다 깊이 이해한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야 호산나” 떠드는 걸 처음으로 자기네를 믿어주는 사람 보았어. 예수님의 깊은 생각을 도저히 다 알아 들었소, 그러고 하지만 그렇지만 태도를 보면 적어도 저 사람만은 높은데 앉아가지고 우리를 지배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우리처럼 우리 친구다. 우리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좋아서 그런 거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을 해,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하고 그러니까 저 사람이 메시안가 그리고 해서 이제 와하고 와서 호산나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이 그럼 어쨌나. 그걸 그대로 받았나. 여기 안 나왔습니다만 다른데 보면 억지로 가져다 임금으로 삼으려고 그랬다, 또 얼마나 했으면 바리새교인도 “야 우리 하나님은 뭐 쓸데없는데 저 사람들 다 저편이 되가는데” 그런 소리가 요 공화당 입에서 좀 나오게 됐으면 좋긴 좋겠는데, 그러면서도 이 바리새교인들 어찌 했어요.
대세가 그러니까 되가는데 악착같이 어떻게든지 예수를 죽이려고 죽어야 말지 않았어요? 민중의 대세가 그런 줄 알아요. 알지만 대세를 역행을 하면서라도 우리 권력을 지켜보자는 게 그 지배자의 심리에요. 그러기 때문에 “아 우리 괜히 믿었나? 세상이 다 저사람 따라가는 걸!” 이 큰 역사 대세를 알긴 알았어. 알긴 알았지만 지배자라는 건 뭔고 하니 대세에 거스르면서라도 자기네 집을 지켜야겠다고 그러고, 왜 그런고 하니 고것이 지배자의 심리에요.
대세 모르지 않아요. 거 왜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왜 그런고 하니 벌써 지배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저 지은 죄가 저로 하여금 거기서 심판을 해 못나가게 해요. 그걸 간단하게 말하면 뭔고 하니 “어우 이 정권 놨다가 뭐 우리 죽을라우” 그러니까 죽어도 붙들고 죽어야 한다. 그런 의식이 무언리에 있다고 그건 무슨 증거냐 그러면 이때까지 우리 한 것은 잘못이다. 그걸 스스로 증거 하는 거야. 잘한 일을 한사람 같으면 뜨거운 것 같으면 아하 불신이 오면 난 물러간다.
뭐해요, 기뻐해 그러면 내가 잘못이라면 그건 웬고하니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사사(私事) 마음으로 한 거 아니라 민중에 대해 자기가 민중에 대해 진심으로 했기 때문에 말이야 자신이 있으니까 죽은 후에도 뭐 밀어주면 하지만 믿지 않으면 물러간다. 그러고 왜 자기가 물러가도 자기를 원수로 알 사람을 없는 줄을 알아요. 프랑스에 있어 드골, 드골 욕한다고 뭐 그러지 않아요. 그건 웬고하니 사상은 우리와 다르고 그거 고집 할아버지 틀려먹긴 먹었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건 프랑스에 누구에 의해 그랬다. 그것만은 인정을 하니깐 직을 물러나서도 상관없어요. 이제 좋을는지 몰라요 편안하게 여유가 있고 말아요. 드골 위해서 참 좋은 일이야.
제 한일에 대한 심판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웬고하니 놨다간 우리 깃털 뼈다구도 못 붙어 난다. 왜 그러냐하니 자기 한일 제가 아니까 제가 남에게 뼈다귀가 못 붙어나게 했으니까 남도 나한테 뼈다귀가 못 깨닫게 할 거다. 누가 말해 보세요. 알아요.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심판한다고 그러니까 뭔고 하니 지금의 이 자리를 못 놓는 것이 그것이 곧 제 한일에 대한 심판입니다. 믿지 못하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지옥엘 가는 거 아니라 믿지 못하는 게 벌써 거기가 지옥이야. 왜 믿어야 될 줄 알면서 못 믿나 대세가 저건 민중이 시대다 그러면서도 안 돼 뭐 허락을 했다간 안 돼 내가 이완용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건 해야 된다.
참 그게 뭔고 하니 저주받은 존재라 그 말이야 그거 저도 알면서도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어. 지옥인 줄 알면서도 발락 발락 끼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는 데가 이 불쌍한 존재라 그 말이야. 그래 그게 악의 악 된 점, 악은 스스로 자기가 한데는 거기를 벗어나질 못하는 게 그게 악이에요.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못 벗어나 그런 걸 가지고 지옥이라고 제가 어떻게 못하는 고민성. 아 이렇게 결정적으로 한다고 그러지만 맘이 평안할 리 있소. 불안하지 불안하니까 발악을 하지 평안하면 발악을 하겠어요? 그런 게 인간적으로 불쌍하다 그 말이야. 그런데 불쌍만 하면 좋은데 그런 인간이면서 인간이 마음속에 평안한 마음을 못가지고 잘해서 그랬거나 못해서 그랬거나 마음에 발악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을 못하고 더 나쁜 일을 하게 돼.
마음에 발악하는 심리가 있으면 또 죽으면 어떻게 되나 죽은 다음에 죽은 다음에까지도 다른데 그것이 나쁘게 영향을 미쳐 그건 옛날 사람 말로 하면 아주 원통한 귀신이 돼가지고 무슨 작패를 한다든가 흉년이 들게도 하고 사람이 죽게도 하고 그래요 정말 난 그거 믿어요. 이제 공화당 사람들 죽으면 원통한 귀신 돼서 우리나라 더 나쁘게 무슨 작패 할 거예요. 분명해요, 지금 우리가 오늘 이 어려움 당하는 거 5백년 적어도 5백년 동안에 나쁘게 하다가 죽은 놈들이 원통해 작패해 이러는 거예요. 그중에 뭐 세조 같은 거 제일 할는지 몰라. 태종 같은 거 방원이 같은 거. 인제 예수님 민중이 이렇게 해서 오지만 예수님 자신은 민중에게다 자기 몸을 활짝 내 맡겨 믿어 믿긴 그들을 믿어주긴 주지만 그들 무조건 하자는 데로 따라 가진 않아요. 그게 그 위대한 점이라고 욕심이 하나도 없어 욕심이 있다면 그래요.
이 세상에서는 말이에요. 정치가라는 데는 비슷한 데만 되면 바짝 달라붙어요. 이용해 먹으려고. 그런데 그런 걸로 한다면 예수님은 뭐야. 지금은 벌써 무슨 말 한마디 하려면 신문기자 청해다 놓고 하지 않소? 다 이렇게 다 꾸면서 이렇게 뭐 스테이트먼트(statement) 할 건 이렇게 다 글을 지어 가지고 신문기자 일부러 오라고 해서 점심 먹여가면서 이렇게 해서는 자기 선전하지 않아요. 그런데 도무지 우리는 도무지 알지 못하는 세계고, 지금은 정치하려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안 돼요. 근데 예수님 그런 거 안하셔. 그러니까 그들이 자기를 믿는 건 알고 자기도 그들을 믿어줘 친구 노릇을 해주지만 그 말하는 데로 거하자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왜 저들이 자기의 하는 일은 몰라. 그것은 십자가 못 박는 바리새교인만 그런 게 아니라 민중들도 모르니 그러니 십자가를 져 저들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몰라. 뭘 하는 줄을 모르고 해. 그런 게 그 뭐 악한 사람 물론이지만 그 민중 무해하다고 민중조차도 그러니까. 그래서 그들이 하자 하는 대로 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참 의미 있는 그래 이 성경에 기록이 됐어.
이 일절에 호산나 일절에 그러니까 이걸 그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거냐. 그들이 부르기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복이 있으리라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으리라”3) 그래 정말 주의 이름으로 왔다고 하는 걸 알겠소? 깊은 이해 못했을 거예요. 왕이라면 왕이 뭐인지 알았겠어요?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그래도 그 입에서 나오는 그건 이담에 이 말이 옳은 말이에요. 모르기도 했지만 옳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래 옛날 시편에도 이런 말이 있다. “딸 시온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임금이 오신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아주 재미있는 건 예수님이 어찌해 그 나귀타고 그 놀음을 했을까, 그게 이제 왜 그러셨을까 임금 노릇 할 의사가 없는 것만은 분명해.
요새 이 정치가들이 신문기자를 불러놓고 스테이트먼트 한다는 그런 심리 아닌 것만은 분명해 일부러 중앙정보부 시키고 말단 공무원까지 동원시켜 가지고 어떻게든지 이 개헌 삼선 성취시키도록 하라고 그런 따위가 같지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그건 나귀는 뭐라 타고 군중들이 그 만세 속에 행진을 하셨을까? 거기가 그 왜 그러셨을까 조금 말하기 어려워요. 무슨 장난으로 하신 것도 아니고 웃음거리로 하신 것도 아니고 근데 또 정말 무슨 자기가 물론 그거 으쓱 좋아서 내심에 하신 것도 물론 아니고 그런 건 벌써 어지간히 지내가신 분인데 있을 리가 있어요?
그래 제자들도 처음엔 몰랐다가 그 다음에 오니까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 거 구약에 있는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구나, 그러니까 이걸 한 심볼로 한 상징으로 아마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건 이스라엘의 왕에게 복이 있으리라. 이게 왕이야 왕이라고 그런데 이제 그러면 나라가 뭐냐 왕이 뭐냐 정치가 뭐냐 그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요. 사람은 뭔고 하니 사람은 왕을 요구하고 있는 물건, 이 민중이라는 건 왕을 요구하고 있어요. 근데 그 왕이라는 게 옛날엔 왕이지 지금은 대통령이라고 그러는 데도 있고 아직도 왕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왕이라는 걸 요구한다 그 말이야.(녹음23, 3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