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군위읍 대북리 소재 절강 장씨 시조 장해빈(張海濱)과 그의 후손들 묘소이다.
그는 명나라 절강성 출신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 지원병으로 참가해 전공을 세운 바 있고 울산 전투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군위 대북에 정착했으며 천문지리, 복서에도 능하였다고 한다.
대북리는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입구가 좁아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지역적 특성이 있는데 이는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한다.
"입구는 좁았으나 수십 보 다음부터는 훤히 트이고 밝아졌으며 평평하고 드넓은 토지가 펼쳐졌다. 거기에는 가옥들이 있었고, 기름진 밭, 연못, 뽕나무, 대나무가 있는가 하면, 길이 교차하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진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처자와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이곳에 온 뒤로는 가히 바깥세상에 나간 적이 없다."
이같이 평화롭고 안락한 곳에 살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마도 그는 전쟁을 겪고 부상을 당해 보니 산세가 높지도 낮지도 않은 편안한 이곳을 무릉도원으로 연상하지 않았을까!
이 자리는 보기에는 허름한 자리 같아 보이나 老軀織錦形, 즉 할머니가 베를 짜는 형국의 명혈이다. '대북(큰북실)'이란 지명도 이 형국과 관련된 지명이라 추측되고, 산 북쪽 골짜기 지명 '함짓골' 도 같은 이치이다.
형국에 걸맞게 상단에 대명당 부자 터가 이곳의 首穴인데, 이곳을 비워 놓은 것은 너무 잘 되면 시기 질투도 받을 수 있으니, 미래를 보고 비워 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 후 조선에 있는 명나라 유신들을 잡아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해가 된다. 미래를 예측하여 아래에 썼다면 대단한 명사임에 틀림없다. 대구 舊 남부정류장 뒤편에 있는 두사충 선생 묘소도 이와 같은 심정으로 모신 자리일까?
아래 하단에 시조 부부 묘소와 후손들 묘소가 상하로 있다.
이곳을 간산한 몇몆 풍수가 들은 이 자리에 대하여는 평가가 없다. 산줄기가 푹 퍼져 있으니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맥은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서 아래 후손 묘소와 시조 공 묘소에 정확히 맺혔다.
우리 인체도 경혈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맥이 있고, 밑에서 부터 위로 올라가는 맥이 있듯이 자연도 같은 이치로 보면 될 것이다.
후손이 약 4천 여명 정도 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자리의 발응도 한몫 했다고 아니할 수 없다.
위성 사진
乙坐 辛向
혈처에 정확히 모신 후손 묘소
시조공 묘소
비석에도 절강을 뺐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