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교체된 지 1년 반이 넘었다. 대통령 말고는 별로 바뀐 것이 없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입법, 사법, 행정, 언론 4부를 장악하고 촘촘하게 종북세력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장악한 행정부는 어느 정도 수습단계지만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은 요지부동이다. 여당인 국민의 힘은 웰빙정당이 된 지 오래다. 대통령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문재인이 망쳐논 외교 안보는 복원됐지만 국내정치는 암울(暗鬱)하기만 하다.
내년 4월 총선이 대한민국 미래의 운명을 좌우한다. 국민의 힘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지금처럼 이재명당의
횡포로 윤대통령의 정책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레임덕과 함께 식물 대통령이 되고 만다. 국민의 힘은 이미 자정능력(自政能力)을 잃은 정당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총선을 앞두고 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의사가 환부를 도려내듯 거침없이 칼질을 한 혁신안을 발표한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현실 정치를 모르는 인위원장이 언론 플레이로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의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혁신위 제1호는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등을 사면 했다. 일일이 열거를 안 해도 이들은 윤대통령이나 당을 시도 때도 없이 언론에 비난하며 자기 정치를 해온 자들이다. 그런데 혁신위원회는 느닷없이 이들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그러자 이들은 사면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준석은 신당 창당까지 하겠다고 설쳐대고 다니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포용 정치를 꿈꾸는 인위원장은 대구까지 이준석을 찾아갔다가 되레 면박만 당하고 돌아왔다. 포용은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구할 때 이뤄지는 화해다. 인위원장은 '안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한국 속담도 모르는 모양이다. '흰 개꼬리 굴둑에 3년 넣었다가 꺼내도 흰 개꼬리'라는 속담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혁신위 제2호는 중진의원들은 지역구를 떠나 험지인 서울에서 출마하라는 것이다. 중진들은 보수의 텃밭인 영남권에 몰려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대통령의 뜻인양 뉘앙스를 풍기면서 압박하기도 한다. 국회의원 지망생들이나 국회의원들은 내년 4월 선거를 위해 그동안 지역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애경사는 기본이고 각종 행사 등 초청 1호 대상이다. 초청이 없어도 스스로 찾아다니며 공을 들이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지난 4년간 선관위 단속을 피하면서 수천 수억 원을 쓰며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갑자기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야당 강세지역인 험지에 출마하라고 하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중진의원들이 지역구를 포기하고 험지로 가면 국민의 힘이 총선에 과반 의석을 찾이 할 무슨 비책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대책 없이 몰아세우면 공연이 당에 불난 만 일으킨다.
그것도 112석에서 지역구 89석 중 당선 가능성이 높은 30여 명이 나 되는 중진들이 그 대상이다. 개도 먹는 밥그릇을 빼앗으면 주인의 손을 문다. 혁신위가 밥그릇을 빼앗으려 하는데 누가 순수하게 응할 의원들이 있겠나.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해당 행위를 일삼아온 이준석은 끓어않으면서 아무런 정치적 잘못도 없는데 중진의원이라는 이유로 내쫓으려 한다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를 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이준석이만 좋은일 시킬 수도 있다.
대통령과 당에 각을 세우고있는 이준석이 신당 창당설로 공허한 바람을 잡고 다니지만 막상 공천에서 탈락한 오갈데없는 의원들이 이준석이 이삭 줍기로 정당을 만들어 국민의힘 후보와 내전(內戰)을 벌이면 민주당 후보가 어부지리(漁夫之利)할 수 도있다. 들 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까지 다 잃을 수 도있다. 과거 선거에서 다 경험한 일들이다. 혁신위는 '교각살우(矯角殺牛.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가 죽는다는 뜻)'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혁신위는 개선안을 만들어 당에 보고 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쳐야 한다. 점령군 행세를 하면 당에 불난 만 불러온다. 정치인이 지역구를 옮기는 것은 거물급 정치인이거나 정당 지지세가 높은 지역이 아니면 위험천만이다. 선거는 지역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개발해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장에서는 어떤 후보자가 주민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지를 따지기보다는 후보자의 인지도를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후보자들은 유권자에게 다가가 이름과 얼굴을 각인시키고 손 한 번이라도 더 잡아주는 스킨십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다. 중진의원들은 이미 이런 과정을 넘어선 지역 주민들과의 유대를 쌓아 고향 지역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 현장을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혁신위원장이다 보니 참신하고 순수한 정치를 꿈꿀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란 잔인하고 냉혹한 게 정치다. 같은 당 동지라도 경쟁자가 되면 영원한 적이 되는 게 정치다. 유승민이나 홍준표가 시도 때도 없이 윤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도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권력은 아편과 같아 한번 맛을본 사람들은 권력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조선시대 역사를 보아도 무소불위의 왕이 자기 권력을 넘본다 생각되면 형제도 죽이고 자식도 죽이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고 정치의 현실이다. 혁신위가 제안하는 혁신안은 최고위 논의를 거쳐 당에서 결정할 문제다. 지역구 공천 여부도 당 공천위가 구성되면 공천위에서 결정할 사안이다. 혁신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듯 관여하는 것은 직무 범위를 벗어난 월권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혁신위를 꾸렸다는 자체만으로도 김 대표는 총선을 이끌어갈 자정능력(自政能力)이 부족함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12월 9일 정기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채비에 들어갈 것이다. 김기현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치르기에는 역부족임을 국민들도 인식하고 있다. 현 지도부는 총선을 위해 '선당후사(先黨後私)'정신으로 스스로 사퇴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새 인물로 비대위원장을 선출 총선에 대비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