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상평통보와 당백전
조선 시대에는 숙종(肅宗, 1661~1720) 때 화폐가 등장했습니다. 그 유명한 ‘상평통보(常平通寶)’입니다. 우리나라 화폐 역사상 전국에서 신뢰와 신용을 지니고 정상적으로 유통된 최초의 동전이죠. 상평통보를 만드는 틀은 나뭇가지 모양이었는데, 잎사귀처럼 똑똑 떼어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엽전(葉錢)’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런데 상평통보를 발행하면 할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무지 돈이 돌지를 않고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요? 당시 사람들이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고이 모셔 두었기 때문입니다.
쌀처럼 썩지도 않고 부피가 크지도 않으니 차곡차곡 쌓아두기에 좋았던 것이죠. 조정에서는 창고에 쌀을 저장하는 대신 상평통보를 저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입니다.
화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기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바로 유통과 저장입니다. 돈은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사용으로 순환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숙종 때 발행된 상평통보는 유통 기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저장 기능만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화폐가 돌지 않는 현상을 ‘전황(錢荒)’이라고 합니다. 돈이 말라버린다는 의미죠. 결국, 돈이 귀해지는 겁니다. 당연히 화폐 가치는 상승합니다. 전황으로 귀해진 상평통보는 한 냥으로 많은 것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대를 건너뛰어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되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당백전(當百錢)’이라는 고액 화폐를 발행합니다. ‘일당백’이라는 말을 쓰죠. 한 사람이 100명의 몫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당백전 역시 한 개의 당백전이 상평통보 100개의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경복궁 중건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자 흥선대원군은 당백전을 더 많이 발행했고, 결국 물가는 치솟고 화폐 가치는 떨어지게 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종종 들어보았을 “땡전 한 푼 없다”라는 말은 당백전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돈의 가치를 떨어뜨린 당백전의 ‘당’을 되게 발음하여 ‘땅돈’이라 부르다가 다시 ‘땡전’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아주 낮은 가치의 돈조차 없다는 뜻으로 “땡전 한 푼 없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는 화폐가 발행되면서 여러 가지 경제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상평통보를 발행했을 때는 유통과 저장의 조화가 깨지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고, 당백전을 남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거치면서 조선 시대에도 자본주의가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EBS. 지식탐험 링크.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