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역사학도님
보배드림이라는 사이트에서 자칭 5.18 전문가라는 광주녀석(아이디, 이데아)의 글을 올려봅니다.
이는 제가 소개한 역사학도님의 글에 대한 광주녀석의 반박입니다. ^^
[전사모 역사학도에게]
현재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5.18 날조물 대부분의 근원이자, 5.18 날조의 선봉이라 할 수 있는 전사모 역사학도의 아래글에 반론합니다.
전사모 역사학도의 글 제목 : 왜 우리는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
지금 5·18 단체들이 5·18광주사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으며....
(영양가없는 잡설들이므로 중략)
전두환이 광주시민 오천 명을 학살하였다는 유언비어를 미국 등 해외에 퍼뜨려...
<- 오천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보고 이야기하자.
광주사태 당시 복면 쓴 무장폭도들이 광주의 학생들이었나요? 아니었습니다.
<- 학생들만 있었던게 아니지요. 공수의 살육극에 분노하여 참가하게된 시민들도 있고, 이중에는 월남참전용사들도 있었으니
김영택 동아일보 기자 등 당시 취재기자들도 복면부대는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이었음을 감지하였으며,
<- 외신을 제외한 당시의 국내 언론들이 하나같이 보안사가 통제하는데로의 보도를 했는데, 그 김영택 기자가 감지했다는 내용 좀 봅시다. 복면부대가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임을 증명하려면 확증이 있어야지.
탈북군인들은 그들이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고 증언합니다.
<- 임천용과 같은 탈북군인들은 단 한명도 5.18 당시의 현장을 체험하지 않은 자들임. 임천용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하나같이 북한에서 그렇게 들었다가 전부인 전형적인 카더라 통신임.
그런 내용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음. 우리나라도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바로 TV나 신문에 보도가 되고, 이런 저런 전문가들이 여러 논설들을 내놓으며 나름데로의 분석을 제시함.
북한에서도 우리나라에 무슨 큰 사건이 일어나면 그네들 편할데로 남조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어쩌고 하며 입맛데로의 보도를 하고 그네들 나름데로의 분석을 내놓음.
때문에 이런 북괴의 선전내용을 가지고 당시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자가 마치 북괴의 보도가 진실 그대로인양 떠들어 데는 것은 우스운 일임.
무엇보다 임천용이 80년 당시에 몇살?
80년 신군부 비호세력들이 조작간첩사건, 도청독침사건 등을 만들어가며 북괴개입을 주장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이미 그 거짓은 다 드러났고, 이후 26년 동안 북괴개입설이 다시 거론되는 일은 잠잠했는데, 뜬금없이 2006년 년말에 5.18의 현장을 체험하지도 않았고 북한에서 당시 불과 10대 후반의 소년이었던 탈북자 임천용이가 북한에서 그렇게 들었다가 전부인 북괴특수부대개입설을 다시 들고나와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임.
저는 광주사태 당시 광주사태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박근혜 의원 학력에 기재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때 우리는 같은 학교에 재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숙사의 제 룸메이트 3명이 모두 광주시민들이었습니다.
<- 박근혜 의원과 동문이라면 서강대? 서울이네? 룸 메이트 3명이 광주 출신인 것과 서울에서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의 상관관계는?
저와 한방에 있던 광주친구들이 매일 광주를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정확한 사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직접보고 전하는 소식은 유언비어와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 당시 광주는 계엄군에 의해 모든 육로가 차단되고 통신망도 두절되었는데, 어떻게 광주를 오가고 있었다는 것임? 광주를 오가는 것도 불가능한데 그들이 직접 전했다는 소식은? 유언비어란?
광주사태 당시 대다수 광주시민들은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지. 내가 광주시민이다. 비록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전남대 인근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내 전역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고, TV에서도 광주에서 북괴의 선동에
광분하는 폭도들이 창궐하였다느니, 시민 몇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정도(실제로는 190명이 넘게 살해되고 수백명이 중상을 입었지만)의 거짓보도를 볼 수 있었고, 당시에는 데모하는 학생들이 빨갱이물이 들어서 날뛰나 보다했으며, 바
로 내가 사는 동네에 경계근무를 서는 계엄군을 보고 나는 멋진 우리국군 아저씨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도청인근에서 사업하시던 내 아버님은 5.18 기간내내 도청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히 목격하신 분이고, 넘쳐나는 시신들이 도청 앞 상무관에서 입관하는 광경들을 거의 다 목격하신분인데, 당시 아버님은 집에 오셔서는 밖
에 나가면 위험하니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 하시곤 하셨다.
내가 광주시민이고 내가 주변에서 만나는 시민들 중에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는 목격자들이 넘쳐나는데, 무슨 되도 않은 헛소리인지.
폭도들이 방송국들을 불태워 광주시민들은 방송을 시청할 수 없었으니까요.
<- 웃기고... 방송국이 방화된 것은 20일 밤으로, 위와 같이 사실과 다른 허위보도를 하는 것에 분노한 시위대가 계엄군이 점령 중이던 방송국에 불을 지른 것인데, 무슨 소설을 쓰고 앉았는지...
저는 그 이후 광주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물으면 그들 모두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의 주장은 허위이고, 만났다면 5.18 당시의 광주에 없었던 사람들이겠지. 내가 광주시민인데 무슨...
당시 유언비어는 전두환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인데, 분명한 것은 그 어느 광주시민도 광주를 킬링필드로서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전두환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한다는 소문은, 17일 심야부터 느닷없이 쳐들어와서는 시위학생들만 진압하는 것도 아닌 무고한 시민들에게까지 무차별하게 쇠곤봉을 휘둘러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대검과 총질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공수들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시민들이, 일부러 퍼트릴 필요도 없는 극도의 동요에 의해 충분히 나올 만도 한 소문임.
(영양가 없는 잡설들은 중략)
더구나 그런 이미지를 자초하기 위해 한국 군인들이 학살자로 비쳐지도록 거짓말하는 것은 정말로 넌센스입니다.
<- 나도 군대 공군 갔다왔고, 내 아버님도 육군 백마부대 출신이시며, 내 사촌형님도 5.18 당시의 공수는 아니지만 공수부대 출신이시고, 다른 사촌형은 전방 GOP 근무하셨고, 우리 집안에 군 미필자는 단 한명도 없으며, 또한 주위 선
배 중 5.18 투입부대인 담양 11공수에서 하사관 근무중인 분도 계시고, 광주시민들 중에도 5.18 당시 극악무도했던 전북금마 7공수 출신도 있음.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한국 군인들을 학살자로 비쳐지도록 하는 것이 아님. 잘못은 잘못데로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역사적 사실 그대로가 밝혀져야 하는 것임.
5.18 당시의 극악했던 7공수를 비롯한 충정작전 참가군인들은 증언하기를, 부마항쟁, 10.26, 12.12, 서울의 봄, 5.17 등의 강행군으로 심신이 극도로 피로했던 상태이며, 자신들이 이처럼 고생하는 것은 모두 다 저 빨갱이물든 대학생
놈들 때문이라는 악이 받쳐있는 상태였고, 그러한 악이 극도로 받친 상태에서 광주에 투입되다보니 도가 지난 학살극을 자행하고 만것임.
이것은 광주시민들에게도 비극이었지만, 상명하복할 수 밖에 없는 당시 투입된 공수들로서도 지울 수 없는 상처인 것임.
그리고, 역사학도씨는 5.18 사진 중 시민군 무장사진과 20사단 병력의 대민활동 사진을 대비 나열하며 극단적인 선동수법을 자주 애용하던데, 20사단 병력이나 전경들은 공수들 처럼 무자비한 학살극을 자행하지 않았음.
이것은 당시 광주에 선교사로 와있던 미국인 아놀드피터슨 목사님의 증언에서도 나오는 내용임.
(잡설 중략)
실제로 광주시민들 중에 무장폭도들의 수는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수의 무장시민군 병력도 실은 북한군이 거느리는 병력이었습니다.
<- 21일 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60명, 17일부터 이날까지 도합 73명(전경 희생자 4분을 포함하면 77명)의 희생자가 나온 직후 결성된 소위 무장시민군의 숫자는 꽤 되었지만, 다음날 22일 시민대표단이 나서 분노한 무장시민들을 설득하여 대부분 총기가 다시 회수되었으나, 소위 소수의 강경파가 27일 최후의 날까지 무장을 풀지 않았으며, 이중에는 윤상원과 같은 운동권 출신뿐만 아니라, 운동권과 전혀 관련없는 선교사 등도 있었음. 따라서 무장시민군의 수는 적었다는 말은 맞음.
그러나, 그 소수의 무장시민군이 북한군이 거느리는 병력이라고 주장하려면, 역사학도씨는 임천용이의 카더라 통신 이외에 좀 더 살득력있는 증거를 내놓아야함.
광주 망월동 5.18 민주묘지만 방문하여도 전체 희생자의 묘비와 사연들을 생생히 공부할 수 있음. 5.18 희생자 중 신원미상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희생자의 신원이 다 밝혀져 있는 상황임.
그 소수의 신원미상자를 북괴군으로 몰고 싶다면 아직 신원을 추적중이니 굳이 말리지는 않겠으나, 임천용이 처럼 600명의 북괴군이 투입됬다는 둥의 가당치도 않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려면 일찌감치 때려치길 바람.
그리고, 역사학도 당신의 대표적 역사날조가 독일인 힌츠페터 기자님의 취재필름을 방송한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 방송 일부를 편집하여, 교묘하게 시위대의 무장이 21일 이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꾸미고 있는데, 이는 방송 원본에
21일 오후 시위대가 무장하였음이 소상히 나올 뿐더러, 방송 대본에도 정확히 나와 있으므로, 더이상 그런 더러운 편집질은 두번다시 하지 말기를 경고함.
당시 유언비어도 북한에서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려 퍼뜨린 유언비어들이었습니다.
<- 어떤 유언비어? 두부처럼 잘리어진 젖가슴? 임산부 배를 갈랐다? 전라도 씨를 말리려 한다?
두부처럼 잘리어진 젖가슴? -> 5.18 희생자 중 가장 처참하게 살해된 분이 고 손옥례씨다. 21일 도청부근 수미다방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젖가슴에 대검에 의한 자상은 물론 전신이 총상과 구타에 의해 그야말로 으스러져서
임산부 배를 갈랐다? ->계엄군도 사람인데 임산부 배를 가르지는 않았다. 다만, 전남대 정문 가까이에 거주하던 임신 8개월 중이던 고 최미애씨가, 남편이 밖에 나간 뒤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밖을 서성이다가 M16 총탄에 전두부
이를 목격한 시민들이 그 끔찍한 임산부의 시신을 보고 크게 동요하며 소문이 돌다보니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는 식으로 와전되는 패닉상태까지 이른 것이다.
전라도 씨를 말리려 한다. -> 5.18 직후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190명이 넘었고 불구가 된 중상자만 수백이었을 정도로 잔혹한 학살이 자행되다보니, 극도로 동요한 시민들이 패닉상테에 이르게 되었고, 당시 11공수 대원이었던 이경남
그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연을 일일이 소개해도 책을 한권 새로 써야된다. 실제로 희생자들의 사연이 담긴 책도 출간되어 있다. 이러한 사연들은 검찰이 법의학자를 동원하여 부검한 공식자료도 있는 상태이다.
이와 같이 역사학도 당신이 유언비어라 주장한 것들은 모두 실제사실에 근거되었고, 아비규환의 패닉상태에서 전파된 것들이었다.
(씨잘데기 없는 잡설 중략)
5·18측은 온갖 악성 유언비어들을 퍼뜨렸으되 그 유언비어들의 출처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합니다.
<- 자! 그 퍼트렸다는 유언비어는 위에 말고 또 뭐?
이미 당신이 유언비어라 주장한 것들은 명백한 사실임이 버젓이 증거되고 있는데, 5.18 측이 일체 함구했다는 유언비어란?
그런데 북한자료들이 유언비어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 유언비어(?)가 밝혀졌다는 북한자료란? 말로만 떠들지 말고 좀 가져와 보길.
미국 3대 방송사 ABC, CBS, NBC가 1980년 5월 22일에 보도한 광주사태 뉴스이다. 시작후 3분 3초부터 3분 10초에서 NBC 기자는 시민군 총기 난사에 의한 시민 사망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 당시의 시신들은 M16 소총과 칼빈소총의 총탄이 뒤섞인 시신들이 많았다. 계엄군측 총기는 M16이었고, 시민군측 총기는 칼빈이었다.(당신은 칼빈이 뭔지도 몰라서 어느나라 총기냐는 무식한 소리도 하더군.)
시신들을 부검한 법의학자에 의한 부검결과를 보면 M16총탄에 이미 사망한 시신들에 칼빈소총이 다시 난사된 시신들이 많았다.
이는 추정하자면 계엄군이 살해한 시신을 시민군이 살해한 것으로 꾸미기 위해 이미 죽은 시신에 칼빈총을 다시 난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당시 미국 3대 방송사에서는 '신군부는 광주의 봉기가 공산당의 선동에 의해 일어났다고 허위보도 함으로서 봉기가 공수의 과잉진압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라고 보도하고 있으며, 이 대목은 '푸른 눈의 목격자' 방송
에도 그대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뉴스 동영상에서 미국 기자들과 인터뷰한 전남대생들은 무장시민군은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 당신이 주장한 마지막 뉴스 동영상에는 전남대생의 인터뷰가 나오지 않더군. 무엇보다 설령 인터뷰가 있다 하더라도, 광주시민들에게 무장시민군이 누군지 물어도 당연히 모르지.
당신은 당신 사는 지역의 주민들을 무작위로 지목하며 누군지 아냐고 물으면 다 알 수가 있나?
설령 무장시민군이 당신 주장대로 북괴군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증거라고는 아직도 임천용이가 북한에서 그럴게 들었단 카더라 주장말고는 아무것도 없거든?
광주시민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던 동아일보 광주 주재 김영택 기자도 복면부대는 외부에서 온 불순세력이라고 기록했으며, 탈북군인들은 그들은 북한군 특수부대였다고 증언합니다.
<- 그니까 보안사 통제하에 보도되는 당시 국내 언론 전체가 5.18이 북괴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하던 시점인데, 김영택 기자가 외부불순세력을 확증하려면 증거를 가져와야지. 김영택 기자가 보기에 외부불순세력이면 아무나 다 외부불순세력이 되는거야? 위에도 누누히 말했다시피 탈북군인들 카더라에 불과한 주장은 애초에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여기에 시민군 창군의 주체가 누구였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탈북군인들은 광주 봉기군 창군의 주체에 대하여 분명히 증언하는데, 어째서 5·18단체들은 이 질문에 대하여 여지껏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 당신 말한데로 소수의 무장시민군이라면 윤상원과 같은 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이었겠지.
5.18과 아무 관련도 없는 씨도 안먹힐 탈북군인 이야기는 작작하시기를 바라고, 5.18 단체들이 답변하지 못한 내용은?
역사학도 당신과 지만원과 전사모는 5.18 단체에서 작년에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소까지 당한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
(영양가 없는 잡설은 생략)
저는 자료와 시간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는 본래 영어 논객이며, 광주사태 자료를 영문으로 공개할 수 있습니다.
<- 그니까 좀 내놔보셔. 당신 사이트 들어가보니 죄다 비공개 게시물이더구만?
공개할 수 있습니다와 실제로 공개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거든?
광주사태의 발단은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여수로 잠시 여행을 떠난 사이 이른바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가 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몇년후 병원에서 병사하였던 것이지 광주사태 희생자가 아니었습니다.
<- 이것은 전남대 학생들이 분노한 원인 중의 하나일 뿐, 5.18 자체가 박관현 사망설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니지.
박관현 사망설은 총학생회장이던 박관현이 갑자기 종적이 사라지는 바람에, 학생들로 부터 박관현은 어디갔나? 잡혀간거 아니냐? 에서 급기야 죽은 거 아냐? 까지의 의문이 발생한 것이지.
5.18의 발단은 신군부가 서울의 봄을 잠재우고 집권하기 위한 본보기로, 최대정적인 김대중의 지지기반인 광주를 빨갱이들의 소굴로 몰아 타겟으로 잡아, 5.17군사쿠데타와 동시에 18일 새벽 광주에 7공수를 투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당신이 만약 서울의 봄마저 모른다면 감히 함부로 5.18을 농단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그런데 1년 전에도 5·18측은 5·18묘지를 방문한 주한미국대사에게까지 사기치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그 사건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와 영어로 토론하며 그분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그 글들 중 일부가 http://cafe.daum.net/518cafe/K0oD/7 에 "여수로 보낸 다음 박관현 사망설 퍼뜨려 폭동 선동"이란 제목으로 있습니다.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와 제가 토론했던 글들은 http://www.leejucheon.com/category/?cid=21020900에 훨씬 더 많이 있는데, 사실 이 글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거짓말이란 어떤 거짓말인지? 내가 영어에 무식해서 뭐라 씨부려 놨는지 잘 모르겠네. 당신이 그리도 5.18날조에 자신이 있거든 나같이 무식한 사람도 알아먹게 우리말로 좀 번역해 놓던가.
나머지 글들을 제가 인터넷에 올리지 못하고, 주한미국대사와의 영어토론마저 중단한 이유는 몰릴 대로 몰린 저의 경제적 여건 때문입니다.
<- 핑계가 궁색하네, 글쓰고 자료 올리는데 웬 경제타령? 당신 인터넷 요금도 못낼 정도로 불쌍한 처지인가?
저는 광주사태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기꺼이 공개할 용의도 있지만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워낙 그 자료들이 많아 적어도 몇달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역사학도 당신이 쓴 소설들을 퍼나르는 전사모들을 상대로 4년이나 글을 써왔지만 공개 못할 것이 없던데? 이게 말인지 막걸린지. 나는 당신 추종자들이 내 글을 피하거나 허위신고로 삭제하거나 해서 공개 못한 것은 있어도 아
직도 공개하고 싶은 글이 넘쳐나는데, 당신은 무슨 핑계가 그리 많은지?
저도 2002년까지는 광주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남들의 일이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꼭 7년 전 이맘 때 저는 시대의 증인이 되어야 할 책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자료를 모으며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나도 역사학도 당신을 필두로한 퍼나르기 전문 전사모들의 5.18 날조 소설들을 보면서 내가 안해도 누군가 하겠지라며 손 놓고 있었지만, 보다 보다 눈뜨고 못보겠어서 글쓰기 시작한게 4년이요.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시대의 증인이 되는지? 5.18의 현장은 단 한가지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당신이 모았다는 자료는 그동안에도 꽤 봤지만, 기대할 테니 경제 여건 운운하며 뻘소리 하지 말고 좀 공개해 보길. 아니 뭔 글쓰고 자료 공개하는데 돈이 든다는 것인지. 조작하는데 돈이 많이 필요한가?
진실을 알리기 위하여 자료들을 수집했지만, 그 자료들을 수집한 후에는 여건의 벽에 부딪쳐 공개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하여 제 분야의 일을 7년 동안이나 보류해야 했습니다. 소시민에게 이런 활동은 비용이 드는 활동이기에 자료 공개를 가장 잘 할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경제적 여건의 한계에 부딪친 것입니다.
<- 진실 같은 소리하고 있네. 당신이 흠모하는 전두환 각하에 대한 충성심을 알리기 위해서겠지.
나 또한 당신같은 작자들 때문에 의협심이 발동하여 벌써 4년쨰 글을 쓰고 있고, 개인적으로 시간적 물적 손해도 많이 봤지만, 돈이 들지는 않던데? 못번 돈은 있어도.
아니 당신이 자료 공개하는데 왜 돈이 드는데? 당췌 이해할 수가 없네.
저는 광주사태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각종 자료들을 영어와 한국어로 공개할 수 있습니다.
<- 그니까 말만 하지 말고 좀 공개해 보세요. 그래야 나같은 소시민은 물론 5.18 단체측에서도 뭔 반론하고 증거해줄 꺼리가 있을 거 아녀?
우리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소리는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소리임.
그러나 이 일에 드는 비용 전부를 계속 저 혼자 충당할 여건이 안됩니다.
<- 까놓고 말해서 이 짓거리로 돈 좀 벌고 싶다는 이야기구만? 전두환 가카가 돈 많은데 좀 안주던가?
만약 광주사태 30주년을 맞이하는 금년에 광주사태의 진싱이 영어와 한국어로 규명되어야 할 필요를 애국세력이 공감하면 저는 자료와 시간을 내놓으며 이 일을 하고자 합니다.
<- 참... 그따우 소리는 나도 하겠다. 5.18 단체나 기타 정치권이 만약 나와 같은 소시민의 의지를 알고 지원해 주겠다고 하면, 나 역시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다 때려치고 당신과 같은 악당들을 상대하는데 일생을 바칠 수도 있겠다.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엄청난 사건을 막는데 필요한 의견이나 정보들을 제공하며 나누어 주실 분들은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 상단에서 보시듯) 마침 저희 카페 유재덕 운영자님께서 후원계좌를 마련하여 주셨는데,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영어와 한국어로 자료 공개를 할
때 그냥 없어지는 자료가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의 이중 언어 웹사이트에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때를 대비하여 광주사태 자료와 탈북자의 5.18 증언 등 증언자료들이 영어로 인용될 수 있는 서적도 출간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범애국세력의 동참이 있을 때 저희가 유네스코(UNESCO)가 우리의 호소와 외침을 한국 국민의 호소와 외침으로 여기고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 하여간 구걸하나는... 글 내용의 3분의 1이 구걸이구만. 당신 말대로의 경제력이 동원된다면 나역시도 5.18의 진실을 수호하는데 일생을 매진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칼빈이 어느나라 총이냐며 무식한 소리 읇조리는 동영상에서 보니 나이도 상당이 있는 분이던데, 왠 구걸을 그리도 해쌌는지. 추하게스리.
카페장 역사학도 드림
<-광주시민 이데아 드림. 나는 역사학도 당신과의 끝장토론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나로도 부족하다면 5.18 단체에 협조를 구해서라도 반듯이 당신 야욕의 실체를 밝혀내겠습니다.
|
첫댓글 윗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맨위에서부터 우선 세 개만 답해 볼까요? <- 오천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보고 이야기하자. 오천명이란 숫자는 북한에서 생중계할 때 방송한 숫자였으며, 그대로 해외에 퍼졌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 초청으로 1981년 1월 방미하셨을 때도 교포들 현수막에 "전두환이 광주에서 오천 명 학살했다"라는 글자가 있었습니다. 이데아님은 1988년 광주청문회의 배경조차 모르시는가 봅니다. 그때 전두환이 100 여명 죽였다며 광주청문회 열자고 하였던 것이 아니었어요. 전두환이 오천 명 죽였다고 모두 믿고 있는 분위기에서 광주청문회가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운동권이
숫자를 2000 명으로 줄여 공식적으로 말했지만, 오천 명 주장은 계속되고 있었어요. 그때 신붇들과 운동권이 성당과 대학강당에서 그들이 조작한 5.18 비디오 보여주면서 전두환이 광주에서 오천 명 죽였다고 말해 모두 그렇게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대중이 미국을 순회하며 연설하였을 때 나중에 숫자를 줄여 말한 숫자가 2천명이었습니다. 김대중이 그렇게 연설하였기 때문에 김대중이 거짓말한 것을 모르는 미국인들은 전두환이 수천 명 학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공수의 살육극에 분노하여 참가하게된 시민들도 있고, 이중에는 월남참전용사들도 있었으니> 공수의 살육극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공수의 살육극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분명히 그 날자와 시간과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이데아님은 5월 21일 오후에 눈에 띄게 불어난 무장시민군에 대해 말하시는 것인데, 그들은 복면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복면부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거예요. 제 글에 분명한 수식어가 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 "복면 쓴" 무장폭도들이 광주의 학생들이었나요? 여기서 탈북군인들의 증언이 사실로 들어납니다. 복면부대는 5월 22일 새벽 목포에서 먼저 등장하고 그날 오후 광주에 나타났으니까요.
보배드림이라는싸이트는어디있나요?
주소좀알려주세요.
* 검색창에 한글로 "보배드림" 입력하고 엔터하시면 됩니다. ^^
중고자동차차나오던데요.
그곳게시판에는글이없던데요,
댓글 다는 중에 채팅을 받다가 댓글이 날라가 다시 달겠습니다.
<당시의 국내 언론들이 하나같이 보안사가 통제하는데로의 보도를 했는데> 미안하지만 보안사는 전혀 언론 통제를 안했습니다. 언론 통제라는 것은 없었고 계엄 하에서 언론 검열이 있었는데, 광주 언론 검열의 주채는 광주향토사단 정훈 장교였습니다. 그때 광주 계엄관 정웅 소장이 김대중 인맥이었는데, 광주향토사단 소속 정훈 장교 한 명을 보내 그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들을 어떻게 혼자 검열합니까? 그냥 가끔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것이었지요. 그 일이 5월 18일부터 시작되었는데, 5월 19일 기독교 방송국에서 초병이 (제가 북한군으로 추정하는) 폭도들에게 M-16을 탈취당하는 사건이
일어난 후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일반군인도 혼자 돌아다니다가는 그 자리에서 맞아죽는데 어떻게 정훈장교가 시내에 얼씬 거릴 수 있었겠습니까? 광주사태 동안 광주에서의 언론 검열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5월 21일 해방구가 설치된 이후로는 단 한 명의 군인도 광주에 없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우선 위에서부터 세 개만 (여기까지만) 답변을 달아드리고 이데아님이 여기 오셔서 하나하나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오천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보고 이야기하자>에 대해 댓글 하나 더 달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소천하셨을 때 김수환 추기경 생전 업적이 보도되면서 광주사태를 로마교황에게 알린 사실도 보도되었습니다. 그때 사망자를 오천 명으로 로마 교황에 알렸습니다. 오죽하면 "폭도들에게 속은 김수환 추기경"이란 제목의 글을 제가 썼었을까요. 링크 하나 드립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6110_6052.html 에서 보시면 1988년 광주청문회 때는 5.18측이 꼬리를 슬쩍 내려 그 수를 2~3천명이라고 헸습니다. <또 가장 많은 숫자는 광주현장 기록 간부들의 2~3천 명입니다.> 이거 김대중의 말입니다.
여기서 김대중이 말하는 광주현장 기록 간부란 광주사태 직후 로마 교황에게 보내졌던 "찢어진 깃폭"이란 책자입니다. 먼저 북한 방송이 오천 명이 죽었다고 말했으며, 이 유언비어 책자에서도 오천 명 사망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청문회 당시에는 그 숫자를 절반으로 줄여 2~3천명이라 했으며, 그것이 5.18측 주장이었습니다. 그때 하도 5.18사기꾼들이 그렇게 거짓말하니깐 청문회 시청자들이 모두 그렇게 속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데아님 연령이 궁금해지는데, 광주사태를 겪기는커녕 광주청문회 시청도 못하신 분이 아니신지 궁금해집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데아 녀석(30대 중후반 추정)은 여기에 오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소중한 시간 할애해 주신점... 감사드립니다.
이데아가 인용한 제 글은 이 카페에만 있습니다. 따라서 분명히 이데아는 이 카페에서 제 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http://www.bobaedream.co.kr/board/data/data_view.php?code=politic&No=44292&page=1&select=&content=&r_no=15&search_gubun=&s_pagescale=&search_day=&Answer=20 에서 "나는 끝장토론 기꺼이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고서 끝장토론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인가요?
역사학도님의 글은 제가 보배드림(자료실)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이데아가 하나 하나 반박한 것을 제가 여기 게시판에 올렸구요. 역사학도님이 기꺼이 토론에 응하겠다고 한 글을 제가 있는 게시판에 소개하였으나, 이데아는 여기에 오지 않겠다고 하였고, 되려 역사학도님이 보배드림에 와서 이데아와 끝장토론을 할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실관계입니다)
그러면 공개토론을 하는 방법이 있겠군요. 아마 저는 보배드림 가입이 불가능할 것이고 또 가입할 의향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개토론은 가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스티스님이 저의 답변과 이데아의 답변을 계속 퍼날라 주시면 되니까요.
이데아는 토론의 장소로 여기 역사학도님 카페가 탐탁치 않은가 봅니다.이데아가 활동하고 있는 보배드림(http://www.bobaedream.co.kr/board/data/politic.php)에서 토론을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역사학도님이 이데아와 "보배드림 정치사회 게시판"에서 5.18에 대한 끝장토론을 가질 의향이 있으시면, 좋은 시간에 한번 들려주세요. (여러 쟁점 중 가장 간단한 논제는 5.18이 민주화운동이다 아니다겠죠^^)
바로 위에 답변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데아가 제 글에 이미 반박을 했으며 제가 그 중 순서대로 세 개에 반박을 했으니 여기서 이어지면 좋겠네요. 이데아가 공개 토론에 응하겠다면 제가 댓글이 아닌 본글로 토론할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사이트(채팅사이트가 아닙니다^^)에서 이데아의 글 중 기초적인 것을 하나(혹은 몇개) 올려 보겠습니다.
글의 객관성, 타당성, 논거의 정당성 등을 한번 살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