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과 함께 한 산에 오르십니다. 그곳에서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며 옷도 빛과 같이 희게 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를 위해 텐트를 짓기를 원한다고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고 싶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서들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는 여정 가운데 예수님의 메시야적 직분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직접 음성으로 그 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1-8). 그곳에 머물고 싶었던 베드로와 달리 주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 오십니다. 그리고 비로소 예수님은 당신께서 구약을 완성하시고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로서 세례 요한이 왔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마음대로 그를 대했고, 인자에게도 동일하게 그렇게 임의로 대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9-13).
예수님과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이 무리들에게 이르자 한 사람이 와서 자기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그 아들은 간질로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를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신 후 그 아들은 고쳐줍니다. 제자들이 그 사람의 아들을 고쳐주지 못한 것은 믿음이 작은 까닭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셨습니다(마10:1). 그러나 제자들은 실제 상황에서 그것을 사용할 믿음이 겨자씨 만큼도 없었던 것입니다(14-20). 여기서도 예수님과 모세의 연관성이 보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돌판을 가지고 내려 왔을 때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직면했듯이, 예수님도 변화산에서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내려 오셨을 때 제자들의 불신앙에 직면합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에게 실제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번째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성전세를 받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왜 성전세를 내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가족과 측근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참 성전이시고, 성전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 세를 내실 이유가 없으시지만 세금 거두는 자들이 반감을 가지거나 곤란한 상황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낚시하여 얻은 물고기 입안에 있는 한 세겔로 성전세를 내라고 하십니다(21-27).
오늘 말씀도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으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더욱 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임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경험한 세 제자들 외에 아홉 제자들은 귀신에 잡혀 간질병(발작증세)에 걸린 소년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과 말씀에 대한 겨자씨만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약속들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작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구원, 구원의 기쁨, 죄를 이기는 능력,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힘, 기도의 응답, 수많은 약속들을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 조차도 없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한 약속이 우리의 현실이 되도록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됩시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날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