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형저 '日本 다시보고 생각한다' 제1부 한국과 일본의 차이 소개]
'모찌'와 기계떡
지금 한국에서 절구에 떡을 찧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12월 중순쯤부터 절구에 떡찧는 광경을 어디서든지 본다. 우리도 설날 떡국을 끓이기 위해 예부터 떡찧는 관습이 있어 왔다. 그러나 떡에 관한 한, 우리가 일본보다 먼저 기계화했다. 절구보다는 떡방아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라고 떡을 기계로 만들줄 모르는 건 아니다. 떡절구를 기계화한 가정용 전기 떡기계가 일본서 양산되고 있지만, 일본보다 한국의 부유층이 더 많이 갖다 쓰고 있다. 일본의 슈퍼마킷에는 진공포장된 찹쌀떡 (인절미)이 대량으로 팔려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애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인은 절구에 떡찧기를 즐겨한다 그것은 고래로부터의 관습을 버리기 싫어하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전승 의욕 때문인 것같다. 절구에 찹쌀떡을 찧어 한 줌씩 떼어서 속에 단팥을 넣고 둥글게 빚어 만드는 일본의 모찌 (餠)는 가난한 농경민족이었던 일본인들에게는 귀한 식품이었다. 그래서 모찌는 원래 사람들이 먹기 전에 신불 (神佛) 앞에 바치는 풍습이 있어 왔다. 동네사람들은 정성스레 찹쌀을 씻어 밥을 지어서는 공동으로 절구에 나누어 담고 젊은 이들은 절구공이로 번갈아 떡을 칠 때 모두들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떡이 다 되면 우선 크고 둥글게 빚어 집집마다 있는 가미다나 (神棚)나 불단 (佛壇), 또는 현관 앞에 두켜로 포개어 놓는다. 일컬어 가가미모찌 (鏡餠)라고 한다. 하나의 엄숙한 의식인 것이다. 우리도 설날에는 사람들이 먹기 전에 조상을 위한 차례상에 떡국을 올려 놓고, 시월 상달에는 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은 치례를 안 지내며, 현대인은 고사 (告祀)를 샤머니즘이라 하여 일상생활에서 멀리한 지 오래이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우리도 과히 멀지 않은 옛날에 지켜 내려오던 관습이 매우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타생과 성장과정으로부터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복잡다단한 의식을 즐겨 지키고 있다. 탄생 후 7일 째는 오시찌야 (七夜)라 해서 갓난아기 이름을 붙여주는 명명식의 날이다. 애를 낳기 전인 임신 5개월때 되는 달의 첫 술일 (戌日)에는 임부 (妊婦) 허리에 띠를 감는 차꾸다이이와이 (着帶祝) 라는 의식을 갖는다. 술일을 택하는 것은 순산. 다산으로 특징있는 개를 닮으라는 뜻이라 한다. 출생 후에는 탄생을 감사하고, 건강과 행복을 비는 미야마이리 (宮參)를 하며, 여아는 3월 3일, 남아는 5월 5일에 축하행사를 한다. 11월 15일은 시치고상 (七五三)이라 하여 3살, 5살, 7살짜리의 건강과 발육을 기원하는 행사를 하게 마련이다.
수십만 개나 되는 일본의 신사 신궁과 절들은 각기 기능별 (?)로 나뉘어진다. 순산의 신으로는 스이텐구 (水天宮), 풍작은 이나리(稻荷)신사이며, 합격기원은 유시마덴진 (湯島天神), 교통안전은 가와사키 다이시 (川崎大師), 라는 절들로 사람들이 몰린다. 정초면 유명한 곳에 수백만 명이 몰리는데 우리처럼 교회의 연보나 절의 시주돈을 봉투에 얼마를 넣을까 고민하지 않고, 새전함 (賽錢函)에 동전만 던지고 합장배례하면 된다. 다원적이고 복잡한 매스 소사이어티 (대중사화)에 알맞게 일본인들은 옛 습속을 계속 개혁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같은 뿌리를 갖는 습속이지만 일본은 이쁘게 다듬고 가꾸어 쓰고 있는데 우리는 깡그리 버린 셈이다.
우리도 한이레 (初七日), 삼칠일 (三七日) 등 매듭을 지어 어린이의 강보를 벗기거나 수수떡을 만들어 이웃에 나누는 습속이 있었다. 어린이의 생일이면 칠성각을 찾아 치성드렸고, 3월 삼질, 5월 단오를 생기 (生氣)와 유관한 날이라 하여 명절로 삼았던 것은 중국의 음양철학에서 기수 (奇數)를 양 (陽)이라 한 데서 유래된 습속이었다. 요즘 어찌다가 사모관대를 한 신랑을 보는일도 있지만, 아직은 미풍양속의 부활이라기보단 어딘지 희화적 (戱畵的)인 장난기가 있어보인다. 일본의 결혼식에선 신랑은 전통의상인 하오리 하카마 (羽織袴) 차림에 센스 (扇子) 를 들고 신부 역시 전통의상에 머리에 가쓰라 (가발)를 쓴다. 사람이 죽으면 밤샘을 한 다음 고별식과 노제 (路祭)를 지내는 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본보다 더 엄격했다. 지금 한국의 상가 (喪家)에서 삼베로 만든 거상 (喪服)이 없어진 지 오래이다. 사치와 허례를 줄이자는 뜻의 가정의례준칙은 우리 고유의 습속을 없애는 데만 공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