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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典 1:43) 전명숙(전봉준)이 고부에서 혁명을 일으킴
1 갑오(甲午 : 道紀 24, 1894)년에 태인 동골 사람 전명숙(全明淑)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동학 신도들을 모아 고부에서 난을 일으키니 온 세상이 들끓으니라.
2 일찍이 전명숙은 신묘(辛卯 : 道紀 21, 1891)년부터 3년간 서울을 오르내리며 흥선대원군을 만난 일이 있더니
3 대원군이 전명숙의 뜻을 물은즉 “제 흉중(胸中)에 품은 뜻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한 번 죽고자 하는 마음뿐이오.” 하고 대답하니라.
태인 동골 사람 전명숙(全明淑): 본명은 전봉준(全琫準), 자는 전명숙(全明叔)이다.
※ 전명숙은 기병하기 3년 전부터 흥선대원군 문하에 출입했다. 그 때 끝까지 구하는 바가 없으므로 대원군이 이상히 생각하여 그 연유를 물으니, 그는 다만 “벼슬에 뜻이 없노라.” 하며 돌아갔다. 전명숙(전봉준)이 3년간 서울에 머문 것은 서울의 군사적 형편과 정치적 허실을 조사하기 위함이었으니, 이미 오래 전부터 혁명의 뜻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천도교 창건사』>
거사를 만류하심
4 증산 상제님께서 전명숙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나 일찍부터 교분이 있으시더니
5 갑오년에 하루는 전명숙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민생을 위해서 한번 거사를 하려 하니 그대가 나를 도와주시오.” 하거늘
6 증산 상제님께서 그 전도가 이롭지 못함을 미리 아시고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 하시며
7 “성사(成事)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 하고 경계하시니라.
8 이에 전명숙이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안 된다면 나 혼자라도 하겠소.” 하고 물러가니라.
동학혁명(東學革命): 동학의 바탕에는 종교적인 요소와 농민전쟁의 요소가 동시에 깔려 있어서, 논자에 따라 달리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신년에 최수운 대신사가 상제님께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아 선포한 동학의 본래 주제는, ‘시천주 조화정(侍天主造化定)’에서 알 수 있듯이, 그 궁극적 실현이 상제님의 이땅에 강세와 상제님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출현으로 이루어진다.
혁명이란 원래 이전의 체제를 뒤집는 변혁을 뜻한다. 동학은 그 주제가 선천에서 후천으로 시명(時命)을 바꾸는 것이며, 선천 인류사의 생장 과정을 마치고 성숙과 통일의 후천 가을 대개벽기를 맞아, 천지에서 인간과 신명의 씨종자를 추리는 서신사명(西神司命)의 명(命)을 집행한다는 의미에서 ‘천도(天道)혁명의 출발점’이라 규정할 수 할 수 있다.
道典 1:44) 동학혁명의 발발
1 갑오년 정월에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악정과 토색질에 분개한 농민들이 전명숙을 두령으로 하여 배들평의 말목장터에서 봉기하니
2 고부 관아를 점령한 농민군은 억울하게 옥에 갇힌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고 원성의 근원인 만석보(萬石洑)를 헐어 버리니라.
3 이에 조정에서는 쫓겨난 조병갑의 후임으로 박원명(朴源明)을 새로이 고부 군수로 임명하거늘
4 박원명이 진심으로 선치(善治)를 베푸니 어느 정도 원성이 누그러진 백산(白山)의 농민군이 모두 해산하니라.
동학 교도 대검거령
5 한편 이른바 ‘고부민란’의 진상을 밝히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按{使)로 파견된 이용태(李容泰)는 동학 교도를 민란의 주모자로 몰아 동학 교도 대검거령을 내리니
6 고부 전역에서 군졸들이 죄없는 농민들을 구타하고 부녀자를 강음(强淫)하며 재산을 강탈하고 가옥을 불지르며
7 또 동학 교도를 조기 꿰미 엮듯 포승줄로 묶어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고 그 처자들까지 살상하니라.
8 이에 전 군민의 통분이 뼈에 사무쳐 민심은 순식간에 다시 험악해지고 장차 큰 난리가 터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부 전역을 휩쓸더라.
道典 1:45) 상제님께서 오래도록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심
1 이 때 증산 상제님께서 본댁을 떠나 계신 지 오랜지라
2 성모께서 흉흉한 시국에 아들의 안부를 알 길이 없어 노심초사하시니 유덕안이 성부의 당부로 증산 상제님을 찾아 나서니라.
3 당시는 동학군으로 의심되면 가릴 것 없이 마구 잡아죽이는 때인지라 의관을 갖추고 출발하였으나
4 고부 강신리(江新里)에 이르렀을 때 동학군들을 잡아가던 관군이 덕안을 보자 “이놈도 동학군이다.” 하며 포박하여 전주 용머리고개 임시 형장으로 끌고 가니라.
5 이 때 마침 저수지를 지나는데 끌려가던 한 사람이 “어차피 죽을 목숨 아예 여기 빠져 죽자.” 하며 물로 뛰어들거늘
6 여럿이 같이 묶여 있어 깊이 빠지지는 않는지라 나머지 사람들이 건져 내어 다시 형장으로 향하니라.
7 어느 주막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되자 덕안이 참담한 심정으로 주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만일 죽지 않으면 찾아가리니 좀 맡아 주시오.” 하고 도포를 건네니 주인이 허락하니라.
덕안을 구해 주심
8 전주 형장에 이르러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참형되고 마침내 덕안의 차례가 되었거늘
9 목이 막 베일 찰나, 갑자기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치고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칼이 들어오매 정신이 아득해지더라.
10 한참 후에 덕안이 정신을 차려 보니 밤은 깊어 사방이 캄캄한데 비바람은 그치지 않고 짙은 어둠 속에 시체들만 널브러져 있더라.
11 덕안이 손을 묶인 채 피비린내와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어두운 형장을 헤매며 시체에 걸려 넘어지기를 수차례 하다가
12 문득 먼 곳에서 비치는 불빛을 따라 지친 몸을 이끌고 가다 보니 어느새 날이 새기 시작하는지라 주위를 살펴보니 불빛은 온데간데없고 적막한 산중이더라.
13 정신을 수습하여 도포를 맡긴 주막에 찾아가니, 그곳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덕안의 행색을 보고는 “이런 놈은 잡아 넘겨야 한다.” 하며 죽인다고 달려드는데
14 주막 주인이 나서서 “이 사람은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니 손대지 마시오.” 하며 말리는지라
15 이에 덕안이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포승을 풀고 도포를 찾아 재생(再生)의 기쁨을 안고 집에 돌아오니라.
16 이 때 덕안은 호랑이가 불빛을 비춰 주어 살아난 것으로 믿고 있더니
17 그 후 어느 날 증산 상제님께서 객망리에 돌아오시어 덕안에게 말씀하시기를 “험한 시절에 위급한 일을 당하여 고생이 많았습니다. 나를 찾을 필요 없습니다.” 하고 위로하시거늘
18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난 것이 증산 상제님의 음호 덕분임을 깨달으니라.
유덕안의 손자 유탁준(兪卓濬, 1923~1994)의 증언
강신리. 당시는 고부군 벌미면(伐未面) 강신리였으나, 현재는 정읍시 태인면 궁사리(弓四里)이다.
용머리고개. 전북 전주시 서완산동에서 김제시 금구면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道典 1:46) 3월 무장 기포
3월 20일에 무장(茂長)에서 기포(起包)한 동학 농민군은 백산으로 본진을 옮기고 전명숙을 동도대장(東徒大將)으로 추대한 뒤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의 깃발을 올리니라. 이에 전라도 감영의 관군이 동학군 본진을 향해 진군하매 황토현(黃土峴)에서 양 진영이 맞닥뜨려 대치하니, 이 때 태인 강삼리(江三里)에 사는 열여섯 살 소년 문남용(文湳瀧)과 정읍 대흥리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차경석(車京石)이, 각기 접주인 중형(仲兄) 문선명(文善明)과 아버지 차치구(車致九)를 따라 이 전투에 참가하니라.
문남용(文湳瀧) 과 차경석(車京石) : 두 사람은 집안의 영향으로 동학을 신앙하여 이후에 각각 동학 지역회장과 전북총대 등 최고 간부를 역임하게 되며 정미(道紀 37, 1907)년에 상제님 도문에 들어와 핵심 성도가 된다. 문남용의 도명(道名)은 문공신(文公信)이다.
道典 1:47) 문남용(道名: 문공신)과 전설의 인물 ‘오세동(五歲童)’의 운명적 만남
1 문남용이 황토현 전투에 참여한 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디선가 “생불(生佛)이 들어온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거늘
2 남용이 보니 키가 큰 장정 하나가 어린아이를 업고 들어와 자리에 내려놓더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으니라.
3 이 때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를 “신인(神人)이라, 오세동(五歲童)이라.” 하는데 남용이 그 체구를 보니 일곱 살 정도이더라.
4 동학 간부들이 오세동 앞에 과자를 놓고 “드십시오.” 하며 예를 다하여 모시되 오세동은 아무 말이 없거늘
5 누군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산부처라더니 벙어리를 데려왔나 보다.” 하니라.
6 얼마 후 오세동이 자신을 업고 온 장정에게 묻기를 “진중에 총 든 군사가 몇이냐?” 하니 그 사람이 대장에게 물어 오세동에게 그대로 전하거늘
7 오세동이 좌중을 향해 호령하기를 “총 든 군사는 모두 모이라!” 하고 “지필을 들이라.” 하더니 남용을 가리켜 먹을 갈게 하니라.
8 이에 오세동이 총 든 군사의 숫자대로 손바닥만 한 종이에 ‘푸를 청(靑)’ 자 비슷한 글을 써서 그 군사들에게 각기 나누어 주며 말하기를
9 “이것을 잃어버리면 너는 죽는다.” 하더니 얼마 후 다시 말하기를 “하나는 할 수 없이 죽겠구나.” 하니라.
10 이어 오세동이 이것저것을 일일이 지시하니 동학군이 그 명에 따라 산을 둘러가며 잔솔가지에 이불보와 치마를 뜯어 중간 중간에 쳐 놓고
11 밤새 간간이 관군을 향해 총을 쏘며 신경전을 벌이매 관군이 이불보를 동학군으로 오인하여 총을 쏘아대거늘
12 그 틈에 동학군이 관군 진영을 기습하여 동이 틀 무렵에 대승을 거두니라.
13 이후 남용이 노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진격하는 동학군의 머리 위로 백로(白鷺)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더라.’ 하니라.
※ 당시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였던 홍계훈(洪啓薰, 1842년 ~ 1895)이 동학군의 귀화를 회유하도록 각 읍에 보낸 공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부적을 붙이고 있으면 칼날이 들어오지 못한다고도 하였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아이를 신인(神人)이라 부르며 모든 폐단을 제거해 준다고 꾸며서 악독한 무리가 함부로 날뛰게 하여 시끄럽게 만들었다.” 동학혁명 당시 가장 신비한 전설로 내려오던 오세동이에 대한 이야기는 천도교 교령사에도 일부 나오지만 오세동(五歲童)의 신원이라든지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오세동(五歲童)이에 대해서 매천 황현(黃玹,1855~ 1910) 선생이 지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 함평에서의 전투에서 신동(神童)이라 불리는 어린아이를 목말에 태우고, 어린아이의 깃발이 지시하는 것을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매천 황현(黃玹,1855~ 1910) 선생이 지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도 함평에서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들이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신동(神童)이라 불리는 어린아이를 목말에 태우고, 어린아이의 깃발이 지시하는 것을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동학농민군의 의복은 붉은색을 띤 옥자색의 마포였으며, 어깨에 화승총을 메고 허리에는 탄약통과 화승을 차고 있었다. 또 어깨에는 ‘궁을(弓乙)’이라는 두 글자를 써 붙여 호신부(護身符)로 삼았고, 몸에는 ‘동심의맹(同心義盟)’이라는 네 글자를 간직했다. 황현이 지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동학농민군의 행진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평민이 선두에서 나이 십사오 세쯤 된 아이 한 명을 업고 (업고 다닐 정도의 아이면 오세동(五歲童)이 가족들 증언대로 4,5세가 맞음)진(陣) 앞에 나섰는데, 아이는 푸른색 홀기(笏旗)를 쥐고서 마치 지휘하는 것과 같았고 그 뒤를 뭇 동학농민군들이 뒤따라 왔다.
앞에서는 태평소를 불고 그다음에 ‘인(仁)’.‘의(義)’ 자를 새긴 깃발 한 쌍이, 다음으로 ‘예(禮)’.‘지(智)’ 자를 새긴 한 쌍이, 그 다음에는 흰색 깃발 두 개가 뒤따랐는데, 그중 하나는 ‘보제(普濟)’라 썼고, 다른 하나에는 ‘안민창덕(安民昌德)’이라 썼는데 모두 전서체로 쓰였다. 다음의 황색기 하나에는 해서(楷書)로 ‘보제중생(普濟衆生)’이라 쓰여 있었고, 나머지 깃발에는 각 고을 이름이 쓰여 있었다.
다음은 갑옷에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검무를 추는 자가 한 명, 그다음에는 칼을 가지고 걷는 자 네다섯 명, 다음에는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며 붉은 관복을 입은 자 두 명, 다음에는 두 명이 또 태평소를 불고, 다음의 한 명은 벼슬아치의 관모를 쓰고 우산을 가지고 도인의 복장을 하고 나귀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소매가 좁은 옷을 입고 관모를 쓰고 우산을 가진 대여섯 명이 나귀를 타고 있는 사람의 주위를 에워싸고 따랐으며, 그다음에는 두 줄로 만여 명의 총수(銃手)가 뒤따르는데, 모두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은 다섯 가지 색깔로 색이 각기 달랐으며, 총을 가진 사람들 뒤에는 죽창을 가진 자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걸으면서 휘어지고 꺾이면서 혹은 ‘지(之)’자를 또는 ‘구(口)’자를 만들기도 하면서 진세(陣勢)를 배열하였는데 모두들 어린아이가 잡고 있는 푸른색 기가 지시하는 것을 쳐다보았다. 황현은 함평에서의 동학농민군의 모습이라고 했는데, 동학농민군들의 행진에는 신동(神童)이라고 불리는 어린아이를 목말에 태우고(목말을 태웠다는 것은 14,5세가 아니라, 오세동이 가족들이 증언하듯 4,5세가 맞다.) 어린아이의 깃발이 지시하는 것을 따랐다.
신순철, 이진형이 지은 <실록 동학농민혁명사>에 보면 관군의 자료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맨 아래 함평에서의 자료는 어린아이의 지휘를 받는 동학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오고 있다. 동학 농민군이 함평에 있을 때의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道典 1:48) 때는 언제입니까
전투가 끝나자 오세동(五歲童)이 자신을 업고 왔던 장정에게 말하기를 “십 세가 안 된 아이가 전쟁은 불가하다.”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자!” 하니라. 이 때 동학군들이 무릎을 퍽 꿇고 오세동을 붙잡으며 “때는 언제입니까?” 하고 묻거늘, 오세동이 한시 두 구절을 써 주는데 남용이 앞 구절만을 기억하니 이러하니라.
花老太童禾處子
화로태동화처자
남용이 글을 보고 대강의 뜻을 짐작하여 ‘동학군도 아직 때가 아니다.’ 하며 동학군의 대열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거늘, 신이한 오세동(五歲童)의 지혜와 기상에 크게 충격을 받은 남용은 이로부터 ‘나도 도를 닦아야겠다.’는 구도의 의지가 가슴 속에 요동치니라.
신순철, 이진형이 지은 <실록 동학농민혁명사>에 보면 관군의 자료에서 발췌한 것으로 보이는 맨 아래 함평에서의 자료는 어린아이의 지휘를 받는 동학군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오고 있다. 다음은 동학 농민군이 함평에 있을 때의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평민 한명이 14~15세쯤 되는 아이를 (어깨에) 올려놓고 군대 앞에 섰다. 아이가 작은 남색 깃발을 쥐고 마치 지휘하듯 하니, 모든 적(농민군)이 그 뒤를 따랐다.
※ 신순철, 이진형이 지은 <실록 동학농민혁명사> 책에서는 14,5세쯤 되는 아이를 어른 어깨에 올려놓았다고 했는데, 오세동이 백복남 가족들은 당시 4,5세였다고 말한다. 어른 어께에 올려 놓았다는 것은 14,5세가 아니라 가족들 말대로 4,5세가 맞는 것으로 생각 된다.
앞에 피리를 부는 자가 섰고 다음은 인의(仁義)자를 쓴 깃발 한 쌍, 다음은 예지(禮智)자 깃발 한 쌍, 백기 두 개가 뒤따랐는데, 하나는 보제(菩提) 하나는 안민창덕(安民創德)이라고 썼다. 황색기에 보제중생(菩提衆生)이라고 썼고 나머지 깃발에는 각각 읍명을 표시했다. 그 다음에는 갑옷 입고 말을 타고 칼춤을 추는 자가 따르고
그 뒤를 칼을 잡고 걷는자 4~5쌍, 큰 나팔을 불고 붉은 단령을 입은 자 두명, 피리를 부는 자 두명이 뒤따랐다. 다음에 한 사람이 절풍모를 쓰고 우산을 들고 나귀를 타고 가는데 이 사람 주위에 같은 모습을 한 여섯명이 말을 타고 뒤따랐다. 그 다음에는 만 여명의 총 가진 자가 두 줄로 가는데 제각기 다섯가지 색깔의 두건을 둘렀다. 총 가진 자의 뒤를 죽창을 쥔 자가 따랐다. … 이들은 모두 아이의 남색 깃발이 가리키는대로 하였다.<출처: 실록 동학농민혁명사>
道典 1:72) 오세동(五歲童)이 백복남의 영기(靈氣)를 눌러 주심
1 이 때 백복남이 증산 상제님을 모시면서 가끔 집을 오가거늘 하루는 상제님께서 앞날을 걱정하시어 백복남의 영(靈) 기운을 눌러 주시니라.
2 이후로 복남이 세상을 보니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신도(神道)가 보일 듯 말 듯하거늘 답답하여 눈물을 흘리며 상제님께 하소연하니
3 상제님께서 “너는 귀먹고 벙어리여야 산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남이 욕하고 뭣 해도 너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하시니라.
아버지라 부르게 하심
4 증산 상제님께서 천하를 유력하실 때 어린 복남이 자주 봇짐을 지고 따르거늘 복남이 힘들다 하면 업어 주시더니
5 하루는 복남이 “다리가 아파요, 선생님.” 하거늘 상제님께서 복남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너 앞으로는 선생님이라 하지 말고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하시니라.
그것도 못 들고 다니냐
6 상제님께서 복남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실 때면 복남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따라다니니
7 복남이 종종 심통을 부리느라 보따리를 집어 던지며 “무거워서 못 들어.” 하면
8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아, 그것도 못 들고 다니냐?” 하시고 대신 들어 주시니라.
道典 1:75)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더라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복남을 데리고 어디를 가시는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머리카락 한 올을 복남에게 주시고
2 수백 명이 모인 번잡한 곳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기 사람이 많으니 이것으로 비춰 봐라.” 하시니라.
3 이에 복남이 말씀을 좇아 눈에 머리카락을 갖다 대고 사람들을 비춰 보니
4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이고 그중에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더라.
5 이윽고 상제님께서 “다 봤냐?” 하시더니 머리카락을 도로 뺏으시어 불태우시니라.
복남을 고향으로 보내심
6 신축(辛丑 : 道紀 31, 1901)년에 이르러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집에 얼마 동안 다녀오라.” 하시거늘
7 복남이 집으로 돌아가 홀어머니의 뜻에 따라 열네 살에 장가들었으나 신부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으니라.
8 복남이 고향에 머물면서도 행여나 상제님께서 말없이 길을 떠나시기라도 할까 염려하여 예닐곱 달 만에 객망리로 돌아오니라.
道典 1:49) 객망리를 범치 못함
동학군이 황토현에서 멀지 않은 도마다리 야산(道橋山)에 진을 치니, 인근 객망리 사람들이 동학군과 관군의 격돌로 인한 폐해를 염려하나, 성부께서 워낙 힘이 센 장사로 알려져 있는 데다 증산 상제님의 신이하심을 두려워하여 관군과 동학군 모두 황토마루 너머 객망리 부근은 근접치 못하더라.
청국과 일본의 개입
4월 7일 새벽에 동학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 기세를 몰아 정읍·흥덕·고창·무장·영광·함평을 차례로 점령해 나아가니 그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더라. 이어 23일에 동학군이 장성 황룡촌(長城 黃龍村) 전투에서 초토사(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이 이끄는 관군을 대파하고 북으로 전주를 향해 진격하니, 홍계훈이 관군만으로는 동학군을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청국군 차병(借兵)을 조정에 요청하니라.
이 때 청국과 일본은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니 당시 일본의 총리대신은 이등박문(伊藤博文)이라. 동학군이 27일에 전주를 점령하니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마침내 청(淸)에 차병을 요청하거늘,
5월 초순에 청국군 3천여 명이 아산(牙山)으로 들어오니, 때를 엿보던 일본군 또한 곧이어 4천여 병력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하매 삼천리 강토에 짙은 전운(戰雲)이 감돌더라.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이후 대치하던 관군과 동학군은 잇단 외세의 개입을 경계하여 화약(和約)을 맺으니 이로써 동학군이 일단 해산하니라. 이에 조정에서는 양국에 동시 철병을 요청하고 청 또한 일본에 동시 철군을 제의하였으나, 일본은 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과 조선의 내정개혁을 구실로 이를 거부하니라.
이등박문(伊藤博文, 1841∼1909): 이토 히로부미. 1905년에 설치된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 한국 병탄(倂呑)의 기초 공작을 수행했다.
道典 1:50) 광구천하의 큰 뜻을 품으심
1 증산 상제님께서 천하가 날로 그릇되어 감을 깊이 근심하시고 이 해에 의연히 광구창생(匡救蒼生)의 큰 뜻을 품으시니라.
2 이 해 5월 어느 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찾아와 천지 현기(玄機)와 세계 대세를 비밀히 논하니라.
道典 1:51) 동학군의 패망을 예고하심
1 그 해 7월 어느 날 밤에 불을 밝히지 않고 홀로 앉으시어 깊은 명상에 잠기시니라.
2 이 때 조화로 충만한 천지의 원신(元神)을 열고 삼매에 드시어 동학군의 운명을 예시하는 옛 시 한 수를 읽으시니 이러하니라.
3 月黑雁飛高하니 單于夜遁逃라
월흑안비고선우야둔도
欲將輕騎逐할새 大雪滿弓刀라
욕장경기축대설만궁도
어두운 달밤에 기러기 높이 나니
선우가 밤을 타서 도망하는구나.
경기병 이끌고 뒤쫓으려 할 적에
큰 눈 내려 활과 칼에 가득하도다.
4 이 글로써 사람들에게 동학군이 겨울에 이르러 패망할 것을 일러 주시며 “동학에 들지 말라.”고 권유하시더니
5 과연 겨울에 동학군이 관군에게 패멸되매 이 말씀을 순종한 사람은 무사히 화를 면했으나 듣지 않고 종군한 자는 모두 죽음을 당하니라.
6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사람들이 모두 상제님을 일컬어 말하기를 “신인(神人)이라.” 하고 “공부 않고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라.” 하니라.
道典 1:52) 동학군의 9월 재기포
전주화약(全州和約) 이후 동학군의 요구대로 폐정개혁안이 시행되고 호남 전역에 집강소(執綱所)가 설치되어 동학군이 치안과 민정을 맡아 잠시 안정되는가 하였으나, 일본군의 대궐 침범과 패륜적인 내정 간섭으로 조선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망국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기회만 노리던 일본군이 드디어 아산만 풍도(楓島) 앞바다에서 전단(戰端)을 열고 청군에 포격을 개시하니 이로써 청일전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니라.
이후 청일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일본은 평양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의 내정에 더욱 깊이 개입하며 본격적으로 동학군 토벌에 나서거늘, 이에 외세에 기울어 가는 국운을 통탄한 동학군의 수뇌들이 9월에 전주 삼례에서 회동하여 화전(和戰) 양론의 대립 끝에 다시 기병을 결정하니, 마침내 동학군은 전명숙을 대장으로 하여 손화중(孫華仲)은 무장에서, 김개남(金開南)은 남원에서, 김덕명(金德明)은 금구 원평에서, 차치구와 손여옥은 정읍에서, 최경선은 태인에서, 정일서는 고부에서, 류한필은 함열에서, 오동호는 순창에서, 기우선은 장성에서, 손천민과 이용구(李容九)는 청주에서 일어나 삼남의 강산과 전국을 뒤흔드니라.
호남 전역에 집강소(執綱所)가 설치되어, 집강소: 동학군이 설치한 민정기관으로 총 53군에 두어 지방의 치안과 재정을 맡아보았다. 지방자치의 효시다.
기회만 노리던 일본군이 드디어 아산만 풍도(楓島) 앞바다에서 전단(戰端)을 열고 청군에 포격을 개시하니 이로써 청일전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니라. 풍도: 조선시대 말까지 ‘단풍나무 풍(楓)’자를 써서 풍도(楓島)로 표기했으나, 섬에 농토가 없고 근해 어장에 어획물이 부족하여 1906년 이후 ‘풍년 풍(豊)’ 자로 바꾸어 풍도(豊島)가 됨.
청일전쟁(1894∼1895): 동학혁명 때 청국이 출병하자 천진조약(1885)을 빌미로 출병한 일본이 1894년 7월 23일 아산의 풍도 앞바다에서 전단을 열고 8월 1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천하의 난을 동하게 한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
전명숙은 진실로 만고명장이라. 백의한사(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느니라.” 천하를 움직였느니라: 전명숙 장군이 일으킨 동학혁명은 조선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 대가로 요동반도를 차지하였으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삼국이 이의 반환을 요구하였다. 이후 남하하는 러시아와, 조선을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 사이에 일러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道典 4:48) 천지개벽도 신명(神明)이 들어야
1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2 그때 그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
경위는 천하가 같다
3 경위(經緯)는 천하가 같으니라.
4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
조상신명을 박대하는 서교의 운명
5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6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7 구천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우주의 봄여름은 생장(生長), 분열,발달의 과정인 선천(先天)은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우주법도가 삼양이음(三陽二陰)이므로 인사(人事)가 주체가 되지만, 우주의 가을, 수렴,통일의 후천(後天)은 남북극 빙하가 대량으로 녹아내리는 극점에서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이 바로잡혀 우주의 가을이 되므로 삼음이양(三陰二陽)인 음 세상이 되므로 신명(神明)이 주체가 된다.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서교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서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 교리의 핵심은 ‘유일신 신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神 이외의 모든 신을 부정한다. 여기서 전쟁 역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 갈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 서양은 근대에 이르러 합리적 이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는 기계론적 유물론이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과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을 부정하여, 자연과 동양 문명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정복하게 되었다.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구천(九天)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구천: 천상의 신도문명(神道文明)은 종적(차별계)으로는 9천, 횡적(평등계)으로는 33천이 벌여진 입체적 구조이다.
道典 5:405) 오선위기(五仙圍碁) 세계질서의 대세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발에 물을 떠 오라 명하시어 손가락으로 물을 튕기시며 “서양은 어족이라 ‘시~시~’ 소리가 나면 한 손가락을 튕기지 않아도 쉬이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신 뒤에 “동래울산(東萊蔚山)이 흐느적흐느적 사국(四國) 강산이 콩 튀듯 한다.” 하고 노래 부르시니라.
장차 일청전쟁이 두 번 일어나리니 첫 번째에는 청국이 패하고 말 것이요, 첫 번째: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關東軍)의 의도적 도발로 시작된 중국 동북 지방에 대한 침략전쟁이다. 일명 만주사변. 일본은 만주국을 세워 만주를 식민지화하였으며 이로부터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일어나는 싸움이 10년을 가리니, 10년을 가리니: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의 노구교(蘆溝橋)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으로부터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발발한 태평양전쟁, 그리고 1945년 일본의 원폭 패망으로 막을 내리는 전쟁 도수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 끝에 일본은 패하여 쫓겨 들어가고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호병이 침노: 중공군의 한국전쟁 6.25참전.
호병(胡兵)이 침노하리라. 그러나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6.25때 50만 중공군은 소련 공군의 지원 하에 파죽지세로 남하했고 미군은 서울을 내주고 안성∼평택 방어선까지 무기력하게 후퇴했다. 그러나 병사들에게 정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팽덕회(彭德懷)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공군은 한강 선에서 진격을 멈췄고, 북한군은 단독으로 남진, 남한강 이북인 원주까지 밀고 내려왔으나 미군의 저항을 받고 퇴각하였다.
한강 이남은 범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발에 물을 떠 오라 명하시어 손가락으로 물을 튕기시며 “서양은 어족이라 ‘시~시~’ 소리가 나면 한 손가락을 튕기지 않아도 쉬이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시∼시∼: 여기서 ‘시’는 시천주의 ‘시(侍)’ 자의 의미로, 물고기를 몰 때 ‘시∼시∼’ 소리를 내듯 미군도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道典 5:6) 지구촌 세계 신질서의 큰 기틀을 짜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回文山)에 들어가노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다만 손님 대접만 맡았나니
연사(年事)에 큰 흠이 없어 손님 받는 예(禮)만 빠지지 아니하면 주인의 책임은 다한 것이니라. 바둑을 마치고 판이 헤치면 판과 바둑은 주인에게 돌아가리니, 옛날 한 고조(漢高祖)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였으나 우리는 좌상(坐上)에서 득천하하리라.” 하시니라.
현하대세를 오선위기(五仙圍碁)의 기령(氣靈)으로 돌리나니, 오선위기의 기령으로: 우주의 통치자요 주재자이신 상제님께서는 조선을 중심으로 4대 강국이 바둑 두는 형국으로 돌아가도록 세운(世運)의 틀을 짜놓으셨다. 상제님께서는 오선위기의 전개 과정을 씨름판인 난장판에 비유하셨다. 난장판은 본래 ‘애기판-총각판-상씨름판’으로 전개된다.
道典 5:7)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1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2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3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4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5 세속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6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현하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애기판: 조선을 두고 일러전쟁을 붙여(영국·프랑스가 훈수)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신 공사(公事)이다. 이 공사에 의해 조화정부(造化政府)의 제1차 발현인 국제연맹이 1920년에 창설되었다.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총각판: 일본과 중국이 주역이 되고, 독일과 소련이 훈수한 중일전쟁(1937)으로 총각판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하고 국제연합(1945)이 발족되었다.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상씨름: 남조선 도수에 의해 전개되는 남북한 대결 구도를 말한다. 남북한의 상씨름은 인류사의 상극의 모든 문제를 가름하는 최후·최상의 대결구도라는 의미와 역사성을 갖는다. 인류사의 총체적인 문제가 남조선 도수에 얽혀 있다.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소가 나가면: 1998년 6월 16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1,501마리의 소가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세계 상씨름의 무대인 삼팔선에 소가 나간 것은 상씨름판을 걷게 될 최후의 대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세속에 가구(假九)라는 노름판이 있어서 열다섯 수(數)가 차면 판몰이를 하는 것이 곧 후천에 이루어질 비밀을 세간에 누설(漏泄)한 것이니
내가 천지공사에 이것을 취하여 쓰노라.” 하시니라. 열다섯 수가 차면: 우주1년을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천지조화의 본원은 중앙 ‘5·10土’이다. 음양 ‘5·10土’의 5수와 10수가 변화를 일으킬 가장 큰 수는 50(5와 10의 곱)이다. 즉, 열다섯 수가 찬다는 것은 그 도수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가장 큰 수인 50이 되면 판몰이 곧, 도세를 만회한다는 뜻이다.
道典 5:415) 오선위기(五仙圍碁) 도수(度數)의 총결론
1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상씨름으로 종어간(終於艮)이니라.
2 전쟁으로 세상 끝을 맺나니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하시니라.
상씨름 대전(大戰)의 대세
3 또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세상이 꽉 찼다 하더라도 oo에서 넘어와야 끝판이 난다.
4 난의 시작은 삼팔선에 있으나 큰 전쟁은 중국에서 일어나리니 중국은 세계의 오고 가는 발길에 채여 녹으리라.” 하시고
5 “장차 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동시에 터지느니라.
6 전쟁이 일어나면서 바로 병이 온다. 전쟁은 병이라야 막아 내느니라.
7 그 때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이기고 ...
道典 2:31)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3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4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道典 2:31)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3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4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전명숙(전봉준)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道典 5:4)
■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道典] 5:166)
■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전란戰亂을 일으키게 하였나니([道典] 5:25:1)
道典 2:31)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전명숙(전봉준)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道典 5:166)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道典 3:228) 백남신의 친산(親山,부모의 산소) 도적을 잡아 주심
무신년(1908년) 6월에 김병욱이 상제님께 사람을 보내어 ‘백남신의 친산(親山)에 도둑이 들어 무덤을 파헤치고 두골을 훔쳐 갔다.’는 사실을 아뢰니, 상제님께서 마치 상가(喪家)처럼 등불을 밝혀 사흘 밤을 지새우신 뒤에 남신에게 말씀을 전하시기를, “두골을 찾으려 힘쓰지 말고 조용한 곳에서 거처하며 외인과의 교제를 끊으라. 처서절(處暑節)에는 도적이 스스로 두골을 가져오게 하리라.” ...
공사(公事)와 사사(私事)를 함께 끌러 주심
이튿날 아침에 상제님께서 용머리고개에 있는 주막에 가시니 병욱이 와서 두골 찾은 일을 아뢰거늘, “묘 도적은 어떻게 하였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찰서로 보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잘 타일러 돌려보냄이 옳거늘 어찌 그리하였느냐?” 하시고, 검은 옷 한 벌을 지어 오게 하시어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징역(懲役)에나 처하게 하리라.” 하시니 과연 그 사람이 징역에 처해지니라.
성도들이 정확히 처서절에 찾게 된 까닭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비록 사사로운 일일지라도 천지공사(天地公事)의 도수(度數)에 붙여 두기만 하면 그 도수에 이르러 공사(公事)와 사사(私事)가 다 함께 끌러지느니라.” 하시니라.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서양 제국주의의 본질을 지적하신 말씀이다. 이는 16세기에 시작된 흑인 노예 무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道典 5:50) 일본을 서양 세력을 몰아내는 큰 일꾼으로 세우심
이 때 상제님께서 병욱에게 물으시기를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의 허약함을 틈타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데, 조정에서는 당파가 나뉘어 누구는 일본과 친선하려 하고 누구는 러시아와 결탁하려 하니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하시니
병욱이 대답하기를 “인종의 차별과 동서양의 구별이 있으니 일본과 친선하고 러시아를 멀리함이 옳겠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으니라. 이제 만일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지 않으면 동양은 영원히 서양에 짓밟히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양 세력을 물리치고 동양을 붙잡음이 옳으니 이제 일본 사람을 천지의 큰 일꾼으로 내세우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화액을 끄르기 위하여 일러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려 하노라.” 하시니, 성도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서로 이르기를 “한 사람의 액을 끄르기 위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붙인다 함도 그렇거니와, 약소한 일본을 도와 천하에 막강한 러시아를 물리친다 하심은 더욱 터무니없는 말씀이라.” 하더라.
道典 5:53) 49일 동남풍 공사
1 상제님께서 전주에 계실 때 천지대신문을 열고 날마다 공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2 “제갈량의 전무후무한 재주라 함은 남병산(南屛山)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 동남풍을 빌어 적벽화전(赤壁火戰)에 성공함을 말함이 아니더냐.
3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하시고
4 성도 서너 명을 거느리고 남고산성(南固山城)으로 가시어 만경대(萬景臺)에서 49일 동남풍 공사를 행하시니라.
5 이 때 장대에 종이를 달아 세우시고 글을 써서 읽으신 뒤에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서 있게 하시고
6 말씀하시기를 “제갈량이 제단을 쌓고 7일 동안 밤낮으로 공을 들여 동남풍을 불렸다 하니 이는 우스운 일이니라. 공들이는 동안에 일이 그릇되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라.
7 이어 상제님께서 “너희들은 바람이 불거든 오라.” 하시고 남고사(南固寺)로 들어가시매
8 과연 조금 후에 동남풍이 크게 부는지라 성도들이 들어가 아뢰니
9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차길피흉(此吉彼凶)이로다.” 하시고 산성을 내려오시니라.
한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니
10 그 후 상제님께서 49일을 한 도수로 계속하여 동남풍을 불리실 때
11 미처 기한이 다 차기도 전에 먼 곳에서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십사 애걸하거늘
12 상제님께서 공사에 전심하고 계시므로 병욱이 상제님께 아뢰지 못하고 돌려보내니
13 그 여인이 한을 품고 돌아가매 갑자기 동남풍이 그치는지라
14 상제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급히 그 여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공사에 전심하심으로 인해 미처 대답지 못한 사실을 말하여 안심하게 하시고
15 곧 자식의 병을 고쳐 주시니 즉시 바람이 다시 일어나거늘
16 “한 사람의 원한이 능히 천지 기운을 막는다.” 하시니라.
17 그 뒤로 과연 일러전쟁이 일어나더니 일본 군사가 승세를 타고 해륙전에서 연속하여 러시아를 물리치니라.
※ 1904년 5월 일본은 러시아가 주둔한 중국 요동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작전을 시작했다. 러시아도 이곳에 진지를 만들어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병력은 일본이 많았지만 러시아군은 요새가 있었기에 유리한 입장이었다.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자 날씨가 요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공격에 맞춰 돌풍과 폭우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자 안개가 전투 지역을 덮었다. 일본군은 폭풍우를 뚫고 돌격했고 성안의 러시아군은 갑자기 닥친 일본군에게 패해 도망쳤다. 출처:뉴스메이커 2003. 4. 10 기상예보 기술이 전쟁 승패 갈라)
이제 49일 동안 동남풍을 빌어 와야 하리라. 이 동남풍으로 밀려드는 서양의 기세를 물리쳐야 동양을 구할 수 있으리라, 49일 동남풍 공사: 러일전쟁은 근대 이후 서양과 동양이 맞붙은 최초의 큰 전쟁이었다. 동시에 서양세력이 처음으로 동양세력에 의해 패배를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러일전쟁 당시 해전의 주역이었던 일본군 아끼야마(秋山) 중장은 세 번이나 꿈에서 발틱 함대가 대한해협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며, 해전 당일 동남풍이 강하게 불어 승리를 도왔다고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상제님 공사 내용을 모르는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자기들의 민족신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남고사(南固寺): 남고산성 내에 있으며 신라 문무왕 8년(668)에 보덕대사의 상수제자인 명덕화상이 창건하였다. 전주 사고사찰(四固寺刹 ;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의 하나다.
※ 1905년 5월 27일∼28일에 발생한 쓰시마 해전해전은 러일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결전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날의 승리로 세계적으로 그 지위를 격상시켰다.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남하정책(南下政策)의 꿈이 좌절된 러시아는 팽창의 방향을 서쪽으로 터키와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로 돌리게 되어 후일 서양세력들끼리 충돌하는 1차 세계대전(以西制西)의 불씨를 뿌리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 네루(Jawaharlal Nehru,1889~1964): 19세기는 매우 흥미있는 시기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 나온 기계문명이 급속히 발달한 시대였다... 유럽은 전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지위에 올라 있었다. 아시아는 유럽의 공격에 저항을 했지만 유럽의 군대가 갖고있는 새로운 무기의 위력과 성능 앞에서는 절망어린 탄식과 함께 무릎을 굻고 말았다.
아시아 여러나라에서는 군사적으로나 산업기술면에서 유럽에 완전히 뒤떨어진 것을 깨닫고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20세기초 아시아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러시아제국이 일본에게 패배한 일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일본이 유럽 최강국중의 하나를 이겼다는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이것은 기쁘고 신기한 일이었다. 일본은 서양의 침략과 맞서 싸울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떠올라 한동안은 동양의 큰 인기를 모았다.
아시아의 작은 일본이 유럽 최강국중의 하나를 이겼다는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이것은 기쁘고 신기한 일이었다. 일본은 서양의 침략과 맞서 싸울 아시아의 챔피언으로 떠올라 한동안은 동양의 큰 인기를 모았다.(Jawaharlal Nehru,1889~1964)
※ 1900년 1월 1일 유럽 지도자들의 눈에는 세상이 그런데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유럽 대륙에는 30년 동안이나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고 생활수준의 향상과 강대국간의 복잡한 동맹관계에 힘입어 앞으로도 평화는 지속될 듯이 보였다. 더우기 유럽은 세계의 확고 부동한 지배자였다.
힘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지평선상에는 변화의 징조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었다. 20세기를 접어들 무렵 유럽 국가가 아닌 2개의 국가가 세계적 강국으로 급속히 떠올랐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이었다. 출처: 20세기 대사건들)
조선이 서양에 넘어가면 다시 올 날 없다
1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전주 용머리고개에서 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2 “조선 강토가 서양으로 둥둥 떠 넘어가는구나.” 하시고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하시니
3 김공선(金公先)이 아뢰기를 “운세(運勢)가 부득이하면 일본에 의탁하는 것이 좋은 방편일 듯하옵니다.” 하거늘
4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지역별로 동양에 붙여 두면 다시 올 날이 있으리라.
5 그러나 만약 서양으로 가면 다시 올 날이 없으리라.” 하시니라.(道典 5:164)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道典 5:166)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道典 5:166)
조선의 대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심
1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3월에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행하시며 말씀하시기를
2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3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4 선천의 악폐(惡弊)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5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하시니라.
성(聖)과 웅(雄)이 하나가 되어야
6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하라.
7 개벽의 운수는 크게 개혁하고 크게 건설하는 것이니 성(聖)과 웅(雄)이 하나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성인의 바탕과 영웅의 도략. 선천 세계의 모든 성자, 석가·공자·예수 등은 성(聖)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기틀을 바로잡고 묵은 천지기운을 개혁할 수 있는, 곧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자유자재로 집행할 수 있는 대웅(大雄)을 겸비한 성은 아니었다. 이제는 하늘과 땅이 크게 병든 우주 개벽기를 맞이하여 성과 웅을 겸비한 개벽장으로서의 큰 인격이 나와야 하는 때다. 성이 아닌 웅은 진정한 웅이 아니고, 웅을 겸비하지 못한 성은 참된 성이 아니다.
道典 5:23)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 대역사를 시키심
계묘년 3월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적에는 동서양 교통이 없었으므로 천지신명들이 서로 넘나들지 못하였으나 이제 기차와 윤선으로 수출입하는 화물의 물표를 따라 서로 통하게 되었나니,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역사(役事)케 하리라.”
이에 한 성도가 “조선 신명에게 서양을 맡기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조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천지에 전쟁을 붙이는 일꾼으로 쓰려 하노라.” 하시고, 이어서 “이제 재주(財主)를 얻어 길을 틔워야 할지니 재주를 천거하라.” 하시거늘, 이 때 마침 김병욱(金秉旭)이 전주 부호 백남신(白南信)을 천거하니라.(道典 5:23)
백남신(白南信, 1858∼1920): 본관 수원(水原). 족보명은 낙신(樂信). 완주군 관두면 관철리에서 태어나 생부의 종제인 백현수의 양자로 들어갔다. 고종의 칙명으로 동학란을 평정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동학란이 진정된 후에 고종이 ‘삼남(三南)을 믿고 맡길 신하’라 하여 ‘남신’이란 이름을 하사하였다.
조선의 이름난 갑부로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天地公事,1901~1909)시에 재정적으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이땅에 오신 상제님께서는 이세상 돌아가는 프로그램, 9년 천지공사를 1909년에 마치시고 1909년 39세에 돌아가셨다.
세계 대전쟁 공사의 녹줄을 끄르심
그 후에 상제님께서 남신을 대하여 물으시기를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 하시니 남신이 “삼십만 냥은 됩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이십만 냥으로 그대의 생활이 넉넉하겠느냐?” 하시매 남신이 “그러합니다.” 하고 아뢰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제 쓸 곳이 있으니 돈 십만 냥을 들이겠느냐?” 하시니, 남신이 한참 생각하다가 여쭈기를 “칠만 냥을 드리면 어떠하겠습니까?”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불가하니라. 반드시 십만 냥이 있어야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남신이 아뢰기를 “십만 냥을 채우려면 서울 집까지 팔아야 하겠습니다. 현재는 가진 돈이 없사오니 곧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열흘 내로 들이게 하라. 어음으로 하여도 무방하리라.” 하시니, 남신이 열흘 내에 어음 십만 냥을 상제님께 바치겠다는 증서를 써서 올리니라. 상제님께서 그 증서를 받아 병욱에게 맡기시니 병욱이 “두 분 다 희세의 대량(大量)이로다!” 하고 탄복하더라.(道典 5:23)
신도神道차원에서 지구촌의 역사 질서를 개편하는 주역은 증산 상제님의 천명을 받고 움직이는 조선의 대신명들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도神道의 역사를 현상의 인류사에 합일시켜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김병욱(金秉旭, 1874∼1938): 본관 김해. 서원규와 친하여 계묘년에 서원규의 약방에 가 있던 중 상제님을 뵙고 따르게 되었다. 이후 자신의 상관이었던 백남신 성도의 친가 막내동생에게 자신의 딸을 출가시켰다.
백남신(白南信, 1858∼1920): 본관 수원. 갑진 7월에 육군 참령으로 전주진위대 대장에 임명되어 육군 부령(副領, 지금의 중령)까지 진급하였고 종2품 가의(嘉義)에 올랐으며 정미년 군대 해산 때 해직되었다. 해마다 부채 3만 자루(당시 5만 냥에 상당)를 수십 마리의 말에 실어 왕궁에 상납하던 전주 토호로서 한말의 한지 대왕(韓紙大王)이었다.
道典 5:401) 관운장의 서양 대전쟁 공사
전주 김준찬의 집에 계실 때 김덕찬과 김낙범 등이 모시니라. 하루는 낙범에게 물으시기를 “관왕묘에 치성이 있느냐?” 하시니 낙범이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거늘, 말씀하시기를 “관운장이 지금 이 지방에 있지 않고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하시니라.(道典 5:401)
※ 쿠오바디스,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P197쪽)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세르비아의 19세 청년 가블릴로 프린시스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저격할 때의 심경
"쏴야 할것인가, 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지만 어떤 이상한 감정이 나를 황태자로 다가서게. 심지어 내가 서 있던 보도에서 내려서게 만들었어요.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내가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도, 심지어 내가 누군가에게 총을 쏘앗는지, 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쿠오바디스,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P197쪽
※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재무상이었으며 후일 영국 수상(1916~1922)을 지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8월 4일 밤 참전 결정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갑자기 악마의 손에 의해 궤도에서 떨어져 나와 미지의 공간으로 내동댕이 처진채 팽이처럼 미친듯 돌아가고 있는 혹성에 서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 영국의 에드워드 7세 왕의 장례식에서 왕의 친구이자 자문관이었던 에서경은; 이와같은 붕괴는 일찌기 없었다. 우리삶의 수로(水路)를 표시해온 낡은 부표(浮標)들이 모두 휩쓸려가버린 느낌이다.(구질서의 붕괴)
道典 4:15) 신도(神道)의 병마대권자 관성제군
관운장(關雲長)은 병마대권(兵馬大權)을 맡아 성제군(聖帝君)의 열(列)에 서게 되었나니, 운장이 오늘과 같이 된 것은 재주와 지략 때문이 아니요 오직 의리 때문이니라.
천지에서 으뜸가는 보배, 의로움
천지간에 의로움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은 없느니라. 하늘이 하지 못할 바가 없지마는 오직 의로운 사람에게만은 못 하는 바가 있느니라. 사람이 의로운 말을 하고 의로운 행동을 하면 천지도 감동하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모든 보배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으나 의로움을 가장 으뜸가는 보배로 삼느니라. 나는 추상 같은 절개와 태양같이 뜨거운 충의(忠義)를 사랑하노라.(道典 4:15)
1차 세계 대전과 2차 대전을 천상에서 주도한 세력이 조선의 대신명들이다. 상제님께서는 조선의 천지신명들을 서양으로 보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키는 일꾼으로 사역하게 하였다. 이세상은 귀신노름
道典 4:115) 귀신을 뜻대로 부리는 조화
1 무신년 여름에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 때 종이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2 姜太公이 用七十二候하여 使鬼神如奴之하고
강태공 용칠십이후 사귀신여노지
張子房이 用三十六計하여 使鬼神如友之하고
장자방 용삼십육계 사귀신여우지
諸葛亮은 用八陣圖하여 使鬼神如師之하니라
제갈량 용팔진도 사귀신여사지
강태공은 칠십이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고
장자방은 삼십육계를 써서 귀신을 친구처럼 부렸으며
제갈량은 팔진도를 써서 귀신을 군사처럼 부렸느니라.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쥔다
3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귀신이 사람의 법을 쥐고 있으나 앞세상에는 사람이 귀신의 법을 쥐게 되느니라.
4 그러니 어서 부지런히 닦으라.” 하시니라.
팔진도(八陣圖):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갈량이 창안한 여덟 가지 진형(陣形) 그림. ‘팔진(八陣)’ 또는 ‘팔진법(八陣法)’이라고도 한다.
道典 4:5) 모든 일을 신도로 다스리심
1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2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3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이제는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시대
4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5 이제는 모사는 재천이요 성사는 재인이니라.
성(聖)과 웅(雄)을 합해 천하를 다스리는 때
6 이전에는 판이 좁아서 성(聖)으로만 천하를 다스리기도 하고 웅(雄)으로만 다스리기도 하였으나
7 이제는 판이 넓어서 성과 웅을 합하여 쓰지 않으면 능히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느니라.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무위이화: 애써 힘들이지 않은 듯하여도 조화가 작용하여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상제님께서 다스리시는 우주세계의 통치원리와 방법론에 대한 대국적인 근본 성격을 말씀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신도(神道)의 조화(造化)로 천지와 인간세계를 다스리시므로 인간의 이성과 세속적 지혜로는 그 변화세계의 실상을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조화정부: 천지의 변화정신과 무궁한 신도의 조화로 역사의 변화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천상 신명세계의 통일정부.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우주 문명개벽의 사령탑이다.
모든 법을 합하여 쓰심
1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 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2 진묵(震黙)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3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4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5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6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道典 4:7)
송구봉(宋龜峯, 1534~1599): 본관은 여산(礪山). 본명은 익필(翼弼), 호는 구봉, 현승(玄繩). 자는 운장(雲長). 학식이 뛰어나 율곡(栗谷), 우계(牛溪) 등과 교유하였고 사계(沙溪), 신독재(愼獨齋) 등의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냈으며 당대 8문장가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었으므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道典 2:21)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1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2 이 세상은 신명조화(神明造化)가 아니고서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3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 신통한 재주만 있으면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거니와
4 이제는 판이 워낙 크고 복잡한 시대를 당하여 신통변화와 천지조화가 아니고서는 능히 난국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5 이제 병든 하늘과 땅을 바로잡으려면 모든 법을 합하여 써야 하느니라.
道典 4:67)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천지신명과 더불어 판단하심
1 5월에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귀신(鬼神)은 천리(天理)의 지극함이니, 공사를 행할 때에는 반드시 귀신과 더불어 판단하노라.” 하시니라
부(符)는 귀신의 길
3 상제님께서 밤에 혼자 계실 때도 자주 문명을 써서 불사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는데 아침이 되면 그 재를 형렬에게 치우도록 하시니라.
4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글이나 부적을 쓰시어 공사를 행하신 후에는 모두 불살라 버리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5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나타남(現)으로 알고 귀신은 불사름(燒)으로 아느니라.
6 내가 옥황상제로서 천지공사를 행하는 고로 반드시 불살라야 하느니라.
7 부(符)는 귀신의 길이니라.” 하시니라.
대신명들이 들어설 때
8 상제님께서 부를 그리실 때 형렬이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신(天神)들이 정연하게 자리 잡고 봉명(奉命)을 준비하고 있더라.
9 상제님께서 대신명(大神明)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들어 머리 위로 올려 예(禮)를 표하시니라.
道典 2:59) 사람이 사랑스러운 세상이 온다
1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2 앞으로 세상이 거꾸로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살리니 무를 거꾸로 먹는 이치니라.
3 두고 보라! 아침에 본 것, 저녁에 본 것이 다르고 날마다 해마다 달라지리니, 이제 세상이 다 가르치느니라.
4 구름도 가고 바람도 그치는 때가 돌아오면 사람 보는 것이 즐겁고 누구나 기룹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느니라.
5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도수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라.
6 밥도 다 되었는지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그냥 다니는 줄 알아도 세상일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느니라.
7 내가 세상을 뒤집는 것은 손바닥 안팎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8 이 세상일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따라 모두 그렇게 되느니라.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양도를 오게 하느니라: 세계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지구촌 문화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천 상극의 원한 서린 어두운 세상(陰道)을 보내고 대광명의 새 세상(陽道)을 오게 하신다는 뜻이다.
道典 8:103) 천하사의 대의(大義)
1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2 誓者는 元天地之約이니
서자 원천지지약
有其誓하고 背天地之約하면
유기서 배천지지약
則雖元物이나 其物이 難成이니라
즉수원물 기물 난성
맹세한다는 것은 원원한 천지에 대한 으뜸가는 서약이니
그런 맹세를 하고서도 천지와의 약속을 저버리면
비록 그 하고자 하는 일이 아무리 바르고 큰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니라.
3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를 가려 손을 꼽는데, 만일 배신하는 행위가 있어 꼽혔던 손이 펴지는 때에는 살아남지 못하리로다.
4 귀신도 정문(精門)이 막히면 죽는 법이니 사람도 언약을 어기면 못쓰는 것이니라.
5 ‘도지근원(道之根源) 안다 해도 행(行)할 길이 최난(最難)이라.’ 하였나니
6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지 꿰지 못하면 보배가 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64) 한탄한들 무엇하리
1 만인경(萬人鏡)에 비추어 보면 제 지은 죄를 제가 알게 되니 한탄한들 무엇하리.
2 48장(將) 늘여 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 때는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라.
3 사십팔장(四十八將)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 上淸靈寶天尊 太淸道德天尊
萬法敎主 東華敎主 大法天師 神功妙濟許眞君
弘濟丘天師 許靜張天師 旌陽許眞君 海瓊白眞人
洛陽薩眞人 主雷鄧天君 判府辛天君 飛捷張天君
月孛朱天君 洞玄敎主辛祖師
淸微敎主祖元君 淸微敎主魏元君
洞玄傳敎馬元君 混元敎主路眞君 混元敎主葛眞君
神霄傳敎鐘呂眞仙 火德謝天君 玉府劉天君
寗任二大天君 雷門苟元帥 雷門畢元帥
靈官馬元帥 都督趙元帥 虎丘王高二元帥
混元龐元帥 仁聖康元帥 太歲殷元帥 先鋒李元帥
猛烈鐵元帥 風輪周元帥 地?楊元帥 朗靈關元帥
忠翊張元帥 洞神劉元帥 豁落王元帥 神雷石元帥
監生高元帥 素車白馬大將軍
마음을 잘 닦아 새 세상을 맞으라
4 사람마다 각기 주도신(晝睹神), 야도신(夜睹神)을 하나씩 붙여 밤낮으로 그 일거일동을 치부(置簿)케 하리니
5 신명들이 공심판(公審判), 사심판(私審判)을 할 때에 무슨 수로 거짓 증언을 하리오.
6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
7 시속에 ‘병신이 육갑(六甲)한다.’ 하나니 서투른 글자나 안다고 손가락을 곱작거리며 아는 체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道典 5:25) 조선은 주인 없는 빈집
1 이 때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지방을 지키는 모든 신명을 서양으로 보내어 큰 전란(戰亂)을 일으키게 하였나니
2 이 뒤로는 외국 사람들이 주인 없는 빈집 드나들 듯하리라.
3 그러나 그 신명들이 일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 제 집 일은 제가 다시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道典 5:25)
조선에 들어와 사역하는 일본 신명들
1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일본 사람으로 하여금 조선에 와서 천고역신(千古逆神)을 거느려 역사케 하느니라.
2 조선 개국 후로 벼슬하는 자들이 모두 정씨(鄭氏)를 사모하였나니 이는 곧 두 마음이라.
3 남의 신하로서 두 마음을 두면 이는 곧 적신(賊臣)이니, 그러므로 모든 역신(逆神)들이 그들에게 이르되
4 ‘너희들도 두 마음을 품었으면서 어찌 역신을 그다지 학대하느냐.’ 하니
5 이로 인하여 저들이 일본 사람을 대하면 죄지은 자와 같이 두려워서 벌벌 떠느니라.” 하시니라.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6 또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뭐 한다고 해도 조선 사람 가운데 조조 간신이 있어서 그놈들이 좌지우지하지, 일본 사람이 이 조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7 조선놈이 다 시켜서 그러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들어서 죽고 산다.” 하시니라.(道典 5:52)
천고역신. 역사상 실존했던 혁명가의 신명들. 일본은 7세기(670년)에 비로소 나라를 세웠으므로 1,300년의 역사다. 따라서 만고역신이 아닌 천고역신이다.
조선을 잠시 일본에 넘겨주어야
1 상제님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여러 말씀을 하시는데 성도들이 들으니 그 말씀의 뜻을 알 수 없고 조선말이 아닌 것 같더라.
2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4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5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6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7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8 만일 어질 인(仁)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9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10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11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12 이어서 양지에
天下是非神淳昌運回
천하시비신순창운회
13 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道典 5:177)
조선과 일본의 갈등은 신도(神道)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서구열강 제국주의의 밥이 되려 하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또 한 번의 난리를 치러야 하는 조선과 동양 민족의 운명을 읽어 주신 것이다.
조선은 일본의 선생국이었나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은 원래 일본을 지도하던 선생국이었나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은 신도(神道)에서 허락하지 않으므로, 저희들에게 일시의 영유(領有)는 될지언정 영원히 영유하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일본은 배사율로 망한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서양 사람에게서 재주를 배워 다시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배은망덕줄에 걸리나니, 이제 판밖에서 남에게 의뢰함이 없이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노라.” 하시고,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하시니라.(道典 5:119)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장광은 나가사끼(長崎)와 히로시마(廣島)를 말한다.
일본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부터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선생국인 조선을 수시로 침략하였을 뿐 아니라, 메이지유신 이후 미국으로부터 근대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국가로 발돋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진주만을 침략하였다. 또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영국과도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전쟁을 했다. 때문에 일본은 배사율에 걸려 참혹히 망하게 되는 것이다.
道典5:120] 해복혈(蟹伏穴) 기운을 일본 국운에 붙이심
병오(1906)년에 하루는 공사를 보시며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충청도 대흥(大興)에 해복혈(蟹伏穴)이 있으니 그 기운을 걷어 일본 국운에 붙이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게(蟹)들이 구멍 밖으로 나와 각기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니다가는 사람에게 짓밟히거나 잡혀 죽기 쉽고
게가 나온 빈 구멍을 막으면 게는 하릴없이 돌아들지 못하고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나니 게의 집은 헛구멍이 되느니라." 하시며 계속하여 공사를 행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매양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내 일을 해 주는 일꾼이나 물러갈 때는 떨어진 신발만 양손에 들고 돌아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 게 구멍: 1945년 일본군은 대부분 본토에서 빠져 나와, 만주와 남태평양 등 여러 전선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이 마치 욱일기(旭日旗)와 흡사하여, 게가 자기 집에서 나와 사방으로 뻗어 있는 형상이었다. 이 성구는 일본이 패망하는 상황을 천지공사(天地公事)로 처결하신 내용이다.
일본이 성공치 못하는 이유
道典 5편295) 일본의 강렬한 땅기운을 제어해 주심
상제님께서 하루는 저녁 어스름 무렵이 다 되어 성도들을 데리고 태인(泰仁) 신방죽(神濠) 쇠부리깐에 가시니라. 상제님께서 한 성도에게 부를 그려 주시며 명하시기를 “불무간에서 불을 붙여다가 한 방향으로 사르라.” 하시거늘 그 성도가 명하신 대로 하였더니 상제님께서 “천기를 보라.”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하늘을 보니 산마루에 불빛이 반짝반짝하며 동쪽으로 돌아가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신의 조화가 빠르긴 빠르도다!” 하시니라.
며칠 후에 상제님께서 “소식이 이렇게 둔해서야 쓰겠느냐.” 하시고 갑칠에게 명하시어 “전주 김병욱에게 가서 세상 소문을 들어 오라.” 하시므로 갑칠이 병욱의 집에 이르니 때마침 ‘일본 신호(神戶)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피해가 많다.’ 하거늘, 갑칠이 돌아와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너무 강렬한 지기(地氣)가 모여 있어 그 민족성이 사납고 탐욕이 많으며 침략열이 강한지라
조선이 예로부터 그들의 침노(侵擄)를 받아 편한 날이 적었나니 그 지기를 뽑아 버려야 조선도 장차 편할 것이요 저희들도 또한 뒷날 안전을 누리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 지기를 뽑아 버리기 위해 전날 신방죽 공사를 본 것인데 신방죽과 어음(語音)이 같은 신호에서 화재가 일어난 것은 장래에 그 지기가 크게 뽑혀질 징조니라.” 하시니라. 참조: 고베 [神戶(신호)]
道典 5:339) 동서양의 창업군주와 만고명장을 받드는 공사
1 하루는 성도들에게 명하시어 “과거의 모든 명장(名將)을 써 들이라.” 하시니
2 경석이 여쭈기를 “창업군주(創業君主)도 명장의 열에 들겠나이까?” 하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3 경석이 자고이래 모든 창업군주와 명장들을 차례로 기록하고 맨 끝에 전명숙(全明淑)을 써서 올리니
4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왜 전명숙을 맨 끝에 썼느냐?” 하시거늘
5 경석이 아뢰기를 “왼편으로부터 보시면 전명숙이 첫머리가 됩니다.” 하니라.
6 이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전명숙은 진실로 만고명장이라.
7 백의한사(白衣寒士)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31)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2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3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4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5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6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7 김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