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의 배경 외 1편
김나연
남쪽 끝 섬에 와서야 알았네
당신이 내 배경인 줄
오동도에는 붉은 동백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을 꺾어 뛰어내리며
화려한 꽃물을 들이고 있었네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동백꽃과
지상의 동백꽃이 어우러져 섬은 불타고
바닷바람은 먼 데서 오는 봄소식을 실어 날랐네
사랑나무는 마음을 기대듯 서로 몸을 포개고 있었지
동백이 미련을 버린 자리에 윤기 나는
검푸른 잎사귀 반짝였네
나는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있어 내가 있는 줄 알겠네
동백꽃이 미련 없이 뛰어내린 건
사시사철 푸른 배경이 되어 주는
잎사귀가 있었기 때문
내게도 배경이 되어 주는 당신이 있어
내가 빛날 수 있음을 이제야 알겠네
돌아가시다
큰길 버스에서 내려
야트막한 고갯길 모퉁이를 돌면
산자락에 안긴 새 둥지 같은 고향 마을이 있었다
순자네 돌담을 돌아가면 마을
뒷길이었다
천지분간 못하던 어릴 적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그 돌담길을 돌아가듯
빙 돌아간다는 말로 알았다
계절이 돌아와 소쩍새 울고
하얀 찔레꽃 다시 돌아와 향기를 날려도
산모퉁이를 돌아갔는지
돌담길을 돌아갔는지
한번 돌아간 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시에티카〉 2023년 상반기
김나연 시인
대전 출생
2018년 『시에』 로 등단
[출처] 동백의 배경 외 1편 / 김나연|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