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명리[名利]에 무심한데다, 꿈꾸는 몽상가인지라
어제 하루의 사연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샤먼이 탄 경북 영주 행 시외버스가 떠난 다음에, 하숙집으로 향했다.
하숙집은 아침과 저녁의 식사만 제공하였다.
어두운 하늘 아래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약초거간꾼들은 인근의 골짜기와 산마을에서
채취한 약초들을 헐하게 구입하거나, 다른 도시에서
가져온 약초들을 약령시장 시세를 살피며 내놓거나 하였다.
뜨내기 월부책장수들도 보름 단위로 머물렀다 떠나기도 하였다.
노가다 일거리에 따라 흘러들어온 무리들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 탓으로 하숙집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숙집 마당에 들어서니 갑자기 ‘커피 한 잔 마누라’가
왔다며 왁자지껄 흥겨운 농담들이 쏟아졌다.
그 화순 사내가 떠벌린 전언[傳言]으로 이미 소문이 요란한 모양이었다.
하숙집 과부는 이 선비가 늘 일일이식만 하는 줄 알기에,
슬그머니 부엌에 들어가 밥상을 차려 내오기도 하였다.
과부는 궁금한 것이 많았는지, 곁에 앉아 생선가시도 발라주고
아욱국을 다시 떠오기도 하면서 자꾸 말을 걸었다.
과부의 표현을 빌리면, 꿈꾸는 사랑이란 너절한 콩깍지일 뿐이라고
야박하게 평가절하 하여 은근히 불편하였다.
길 위에서 내일이란 얼마나 막연한 비현실이던가.
그러노라니 내일과 먼 내일을 위한 계획 따위는 아예 세우지 않았다.
샤먼과 작야[昨夜]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는 하였다.
신당[神堂]과 사당[私堂]이란 형식으로 두 채의 집[방]을 알아보라고
하였고, 위치가 마음에 들면 계약을 하라고 하였다.
전라도 화순사내는 그 숙녀가 샤먼이라는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였다.
화순에서 평범하게 살던 그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까닭이라면,
전업주부로 두 남매와 시어른을 모시던 얌전한 안식구가
보험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옷차림에서 화장까지 남다르게 변모하더니.......사라져 버렸다.
보험회사와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알아보았더니
충북 제천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길을 떠난 것이었다.
그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도움이 된다면 한 번 물어보겠노라고 하였다.
길 위를 떠도는 나그네들은 모두들 개개인 마음속에는,
구절양장의 가슴시린 신파조들이 쌓여있기 마련이었다.
이 선비인들 어찌 사연이 없었으랴.
1980년 봄, 광주 금남로에서의 충격으로 이승살이 미련을 버리고 말았다.
제야권에서도 아예 멀어져 덧없는 유랑자로 떠돌게 되었다.
인근의 복덕방들을 쏘다니는데, 화순 사내도 동행이 되었다.
신당[神堂]을 차릴 집과 살림을 하는 집을 따로 얻어야 했다.
시가지에서 약간 비켜선 곳이면서, 왕래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약간 까다로운 옵션이 있었기에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다.
집주인이 예배당을 다니는 경우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기도 하였다.
시외전화로 하숙집에 연락이 오면,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길어졌다.
하숙집 안방에 전화기가 놓여 있기에, 곁에는 늘 과부가 있었다.
과부의 표정은 복잡 미묘하면서도 호기심에 귀를 바짝 세웠다.
경북 영주와 충북 제천이라는 지리적 거리감은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해바라기가 되어 그리움이 넘실거렸다.
샤먼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간절한 음성으로
“하루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져 답답하........”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여기저기 복덕방을 다니며 무수한 발품을 팔아, 드디어
이 선비의 관점에 잘 어울리는 곳으로 가계약을 맺었다.
신접살림을 차리려는 마음으로 전자대리점 아이쇼핑도 하였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며 나날이 더워지니 에어컨 가격도 알아보았다.
세탁기며 전축 분위기의 음질이 좋은 커다란 음향기기도 살펴보았다.
상식의 규범이란 때에 따라 얼마나 허망한 생각이었던가.
나중에 이 쇼핑하였던 생각을 하면, 참 어이없기도 하였다.
신당이 있는 기와집과 살림집은 골목을 사이로 가까웠다.
목월보살은 의외로 영주신당의 계약문제로 인하여
거의 보름 정도가 소요된 다음에야 제천으로 올 수 있었다.
살림살이가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허술하였다.
신당에 쓰이는 비품이 많았고, 나머지는 옷가지였을 따름이었다.
가계약한 신당과 살림집도 “이 정도면 되었네.” 하면서
무난하게 입주가 시작되었다. 부엌살림은 아예 없었다.
나중에야 그 사연을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좀 어리둥절하였다.
샤먼의 세계를 잠시 알아놓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샤먼’이란 용어가 전 세계 무속용어로 알려진 것은
폴란드 민속학자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를
돌아다니며 무속에 관한 연구를 천작하여 쓴 논문으로 알려졌다.
‘샤먼’은 만주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쓰던 용어였다.
국내의 무속은 세습무[世習巫]와 강신무[降神巫]로 구분된다.
세습무는 무형문화재로 보호되는 문화유산이기도 하였다.
세습무는 무가[巫家]로 대대손손 이어졌기에 그들의 형식미는 참 아름다웠다.
세습무는 지금도 동해안 일대에 귀하게 보존되어 전통을 살리기도 하였다.
강신무는 글자 그대로 느닷없이 신이 몸에 실리는데, 그 때부터
이 강신무의 몸에는 신이 실리고 사람들의 길흉화복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강신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공수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일종의 무병[巫病]으로 지칭되어, 현대의학으로는 규명되지 않는
형이상 세계의 낯선 분야이기에 미신으로 천대받기도 하는 것이다.
무속인들 끼리도 서열이 있는데
모시는 신의 위세에 따라 엄격하게 층하가 지는 것이다.
이 선비의 관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무속의 세계를 종교로 생각하지는 않으나.........
무속에 의지하고 믿는 사람들을 신도라고 하고, 그들은
집안의 대소사를 절대적으로 샤먼에 의지하고 있었다.
이 선비는 단 한 번도 복채를 내고 점을 보거나, 사주를
풀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을 맡기기는 싫었다.
그렇지만 기존 종교가 만들어내는 사후의 세계와 무관하게,
무속의 세계가 펼치는 환상적인 신비함이 아름답게 느끼지는 것이다.
산신령, 옥황상제, 동자보살.....이 환타지를 어디서 느끼겠는가?
그들은 실제로 샤먼의 세계와 생계를 유지하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갖거나 보람을 느끼지는 않았다.
팔자소관이라며 운명에 순응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따금 신기[神氣]가 흐릿해져, 찾아온 손님에게
엉뚱한 점괘를 함부로 내뱉거나 비싼 굿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였다.
샤먼의 본질에서 벗어난 이익을 탐하느라 벌어진 고단한 인간사였다.
이런 부류로 인하여 모든 샤먼들이 덤으로 사이비 소리를 듣기도 한다.
첫댓글 흥미있게 즐독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 기대 기대합니다~^^
무속인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궁금할 때가 있었지요.
정성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두 시리즈 잘 보구 있습니다.
늘 좋은글 올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초겨울날씨 밤이슬 맞지
마시구 뜨뜻하게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재미있게 읽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기다립니다.
고마워요.
ㅁ가을 동화속을 거닐다 깨어나니
복잡한 인간사, 아 ~ 권태 롭구나.
인간이 사냥이나 해서 굴 속에 들앉아 고기나 뜯고 살았다면
하늘이고 땅에 빌어 댈것이 없을 터인데
지능이 발달해지고 농사를 지어 먹고 집을 지어 들어가
살면서 농사 잘 되라고 하늘에 빌고 땅에 빌어 대던 신앙이
무속신앙에서 샤머니즘의 세계로의 발전
그 세계가 오묘하고 흥미로워 젊은 날엔 기웃거려 봤지만
나완 영 정서적으로 안 맞아서 ..
여튼 특이한 문체로 흥미로운 주제까지 알려 주셔서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