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5/25/2001052570273.html
北, 석유 생산...98년부터 年30만t씩
평남 숙천군 앞바다서
이교관기자
입력 2001.05.25 19:21
북한이 지난 99년부터 연간 30만t(22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98년 중반 평안남도 숙천군
앞바다에 위치한 유전에서 원유 시험생산에 성공한 뒤 매년 이 유전에서
30만t의 원유를 생산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
해부터 원유 30만t을 특정 품목의 연간 국가 총생산량을 가리키는
국가지표로 잡아오고 있다고 이들 관계자는 밝혔다.
현재 북한은 숙천군 유전에서 나오는 원유의 절반을 전쟁물자로 비축하고
나머지는 인민군에 공급하고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작년 말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숙천군 유전의 매장량은 그 일대가 그동안 원유 매장 가능성이 높은
퇴적분지로 꼽혀온 안주분지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최소
수십억 배럴 가량 될 것으로 북한측은 추정하고 있으며, 숙천군 인근
덕천에서도 최근 유전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원유 생산에 성공한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극비에 부쳐왔다. 북한
당국은 숙천군 유전의 생산량 증대와 함께 다른 유전도 개발, 원유
부족으로 인한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원유 생산
사실을 대내외에 공표,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숙천군 유전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남포 앞 서한만 분지
내에서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는데 드는 막대한 재원을 해결하기 위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국 기업들과의 공동 개발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7066
집념 40년만에 산유국 꿈 이뤘다
승인 2001.05.24
◇ 북한이 자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원유 시추탐사선 '유성호' 모습.
북한은 평남 숙천군 앞바다 유전에서 지난 99년부터 연간 30만의 원유를 생산하는데 성공하면서 지난 약 40년에 걸친 숙원인 산유국 입국의 꿈을 달성했다.
그러나 연간 원유 30만t은 북한이 한 해 해외에서 도입하는 원유량의 절반 수준이지만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1t을 7.33배럴로 환산할 경우 이 정도의 생산량은 남한의 하루 소비량인 220만 배럴에 불과하다. 러시아와 중국 등이 지난 90년대 들어 원유 거래에서 경화 결제를 요구하면서 북한의 원유 도입량은 지난 91년 189만t에서 지난 98년에 이르러서는 60만9000t으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숙천군 유전의 원유매장량이 최소한 수십억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이 유전에 시추공을 늘릴 경우 “몇년 안에 원유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원유부족으로 인한 에너지난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0년 뒤엔 해외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수립해 놓고 있다. 숙천군은 그동안 남포 앞 서해유전지대로 통칭되어 온 서한만 분지와 더불어 북한에서 원유 매장 가능성이 가장 많은 퇴적분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평남 안주분지에 속해 있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 안주분지 일대로 숙천군 인근에 위치한 덕천지역에서도 시베리아 유전 개발에 참여했던 러시아 기술자들과 설비를 들여와 유전 개발에 착수했다.
문제는 북한이 막대한 시추 비용을 감당할 경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 곳 앞바다는 수심이 낮아 시추공 한개를 뚫는데 드는 비용이 통상수준의 절반정도인 400만~500만달러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도 확률상 시추공 20개 당 1~2개 정도가 성공한다고 볼 때 북한 당국으로선 시추 비용을 부담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에 서울에서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한 공동개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실제 우리 정부는 경제 부처들을 중심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로 남한 기업들이 북한과 공동으로 북한 유전개발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연간 원유 30만t을 특정 품목의 연간 국가 총생산량을 가리키는 국가지표로 잡아놓고 있으나 이 같은 사실을 대외비로 해 왔다. 북한은 향후 몇년 안에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원유가 생산될 때 이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파악한다. 그 때 가서야 지난 98년 8월 31일 ‘광명성 1호’(대포동 1호) 발사 성공에 이어 원유 생산 성공으로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첫 발을 힘차게 내디뎠다고 발표할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지난 98년 숙천군 유전에서 원유 시험생산에 성공하자 인민무력부로 하여금 이 곳 주변에 주민들의 접근을 금지시키는 등 철통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원유 생산 시설은 원유가 나오는 해저 유정으로부터 커다란 파이프 라인을 연결, 숙천군 바닷가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7개 퇴적분지 중 숙천군 유전에 이어 원유가 생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곳은 서한만 분지이다.
북 유전개발, 홍성남 총리가 진두지휘
숙천군 유전개발 등 북한 원유개발은 홍성남 총리가 총지휘를 하고 있다. 지난 98년 중반 숙천군 유전의 시험생산 성공도 그가 주도했다.
홍 총리 지휘하에 유전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은 원유공업총국(총국장 고정식 전 정무원 원유공업부장)과 그 산하 조선석유개발회사(Korea Oil Exploration Co.)이다.
숙천군 유전개발의 숨은 주역들은 구소련과 동구 출신 석유개발 기술자들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68년 숙천군에 원유탐사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한 뒤 각종 탐사를 통해 원유 매장을 확인하자 지난 90년대 들어 생활고를 겪던 구 소련·동독·불가리아 기술자들을 초빙, 원유 생산에 성공한 것이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
출처: https://blog.daum.net/bmss4050/1187
북한, 中·日·泰·佛에 석유 수출한다
북한은 작년 한해 동안 최소한 1000만달러 이상의 석유를 중국 일본 태국 등지에 수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3일 발표한 「2000년 북한대외무역동향」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일본에 중유를, 중국ㆍ태국ㆍ프랑스에는 가공유와 정제유를 수출했다.
◇ 북한 원유탐사대원들이 '육탄' '자폭'이란 표어가 붙은 시추선에서 원유를 시추하는 모습.
북한이 일본에 수출한 중유는 대일 수출품목 중 수산물, 의류, 전자제품, 철강에 이어 5위를 차지했으나 정확한 액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중국에 수출한 가공유는 대중국 수출품목 중 원목, 철강, 게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약 340만달러 규모였으며, 태국에는 749만달러어치의 정제유를 팔았다. 프랑스에 판 정제유 규모는 3만 달러 어치에 불과했다.
KOTRA는 북한이 중국과 태국에 수출한 정제유는 수입 원유를 임가공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일본에 수출한 중유에 대해선 그 같은 추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KOTRA의 이 같은 추정은 북한의 원유생산 사실(본지 5월 26일자 보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분석한 것으로, KOTRA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원유 생산이 사실일 경우 이 추정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대상국 | 2000년 실적 |
중국 | 340만달러어치의 광산 수출품 중 정제유가 대부분을 차지. 대중 수출 품목 중 5위. |
일본 | 중유를 수출. 수산물·의류·전자제품·송이버섯·철강에 이어 대일 수출품 중 5위. |
태국 | 749만달러어치의 정제유 수출. 1952만달러의 대태국 수출액의 약 3분의 1규모 |
북한의 석유 수출이 자체 원유 생산에 따른 것임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뒷받침된다. 우선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지난해 말까지 3억4200만달러) 등 외화 수입 증가로 지난해 전체 수입은 대폭 늘리면서도 정작 시급한 원유 도입은 99년의 31만7000t에서 소폭 증가한 38만9000t에 그쳤다. 북한이 한 해 필요한 원유는 최소한 150만t이며, 숙천에서 원유가 생산되기 이전인 98년에는 60만9000t을 수입했다.
북한이 최소 필요량의 4분의 1도 안 되는 원유를 수입해 놓고 이 중 상당량을 임가공으로 수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95년의 경우 110만t의 원유를 도입해 180만달러어치의 광물성 생산품(대부분이 정제유)을 중국에 수출했다. 그러나 작년 경우 불과 약 39만t의 원유를 수입하고도 중국에만 340만달러어치의 정제유를 수출했다. 수입량이 약 5분의 1로 줄었는데도 수출은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 처음 태국에 수출한 정제유는 749만 달러를 기록했다. 대 태국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정제유 내역을 보면 역청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청유는 유전(油田)에서 막 뽑아 올려 모래와 타르가 뒤섞인 점액질이 강한 기름으로 북한의 원유 생산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일본에 중유를 수출한 사실은 이번에 처음 파악됐다. 이 중유도 평남 숙천 유전에서 생산된 것일 개연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 중유가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제공하는 연간 50만t의 일부일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으나 중유 비용을 부담하는 미국이 묵인할 리 없다는 점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한 전문가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북한이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사실은 자체 원유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 유전개발 문제를 다뤄 온 정부 내 전문가들에게 북한 석유 문제는 예민한 사안인 만큼 이 문제와 관련한 인터뷰·기고·자료 제공 등 일체의 언론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북한 당국도 97년 도쿄에서 열린 북한 유전 설명회의 주관을 위임하는 등 유전개발 관련 투자 유치 임무를 맡겨 온 호주교포 최동룡 박사에게도 함구령를 내렸다. 최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교관기자 haedang@chosun.com
불과 일주일전에도 아래 링크가 살아 있었는데 무슨이유인지 지금은 자료가 없다고
나오네요^^^^
북한 원유 개발 역사
기사승인 2001.05.29
70년대부터 개발 착수...“성공하면 동해바다에 금동상 세워준다”
나는 1978년부터 6년간 함흥수리대학(咸興水利大學, 나중에 함흥수리동력대학으로 개칭) 항만 및 수로학과를 다녔다
. 당시 대학에서 해상 원유개발 시설에 대해 공부할 기회가 있어 유전개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북한에서 원유개발을 위한 기관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 중반쯤이다.
해상 원유탐사를 위해 "대동강탐사단", 지상탐사를 위해 "두만강탐사단"이 조직됐다.
내가 북한에 있었던 90년까지 "대동강탐사단"은 남포시 항구구역에, "두만강탐사단"은
이번에 석유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진 평안남도 숙천군에 있었다.
북한이 원유탐사에서 간헐적인 성과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반부터였다.
84년 졸업실습으로 남포에 갔을 때 한 교수는 “1~2년 전 평남 숙천에서 원유 시료가 채취됐으나
고형분(파라핀)이 많아 식으면 응고되어 채취에 어려움이 있을 뿐더러 매장량도 적다”고 했다.
80년대 말부터는 해상에서 대규모 원유 유정이 발견됐다는 얘기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내가 다녔던 대학의 교수들도 원유가 시추공을 통해 발견됐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86년 내가 3대혁명소조 활동을 마칠 무렵 남포 앞바다 북쪽에서 원유가 발견됐다고 했다.
나의 고향 친구중에 화학공대 고분자학부 졸업생으로 평북 봉화화학공장
(의주 소재)에 3대혁명소조로 나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직접 해상에서 시료로 채취된 원유의 성분분석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해 주었다.
분석 결과 고형분이나 유황화합물은 적었는데 매장량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87년 남포에 갔을 때 남포에서는 남포시당 조직비서가 3대혁명소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원유발견 사실을 거론했으나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89년과 92년에도 남포 앞바다 원유발견설이 있었다.
92년에는 필자가 일하던 러시아 벌목장에 날아온 남포시 어느 한 공장 간부의 편지에
“300년은 쓰고도 남을 원유가 발견되어 앞으로 경제회복은 시간문제”라고 적혀 있었다.
지상이나 해상 유전은 지질 구조상 보통 지하 2500m이하까지 시추기로 파내려가야 한다.
김정일의 지시로 함흥 용성기계연합기업소에서 88년에 3000m급 "자력갱생"(주체) 시추기를 자체 제작했다.
하지만 이 "자력갱생"호는 기술력이 부족해 일정 깊이에 들어가면 휘어져 다른 곳의 지상을 뚫고 나오곤 했다.
"대동강탐사단" 건물 복도에 "원유를 개발하는 사람에게는
동해바다에 금동상을 세워주겠다"는 김일성 주석의 글이 걸려있다는데
이번에 그 주인공이 나왔는지 궁금하다.
/김승철·북한연구소 연구원·94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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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천 원유 어디서 정유하나
기사승인 2001.06.01
봉화화학공장 유력, 평북 피현군 소재, 76년 착공
북한이 99년부터 평남 숙천군 앞바다에서 본격 생산에 들어간 원유는 어디에서 정유할까.
현재 북한에서 정유시설을 갖춘 공장으로는 라선시 선봉군에 있는 승리화학공장과
평북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 두 군데밖에 없다.
승리화학공장은 소련의 지원으로 69년 착공, 73년 9월 1단계 공사를 완료한 데 이어
79년 말 2단계 공사까지 마쳐 연간 200만t 정유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과거 이 곳에서는 주로 소련으로부터 들여온 원유를 처리해 왔으며,
소련 붕괴 후 원유공급이 끊겨 한동안 공장가동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94년 10월 제네바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연간 50만t씩 북한에 공급하는 중유가 이 공장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연간 200만t 규모 처리능력
봉화화학공장은 중국의 지원으로 76년 착공해 78년 9월 1단계 공사로
연간 100만t의 원유처리 시설을 완공했으며,
80년 9월 2단계 공사를 완료해 연간 200만t의 원유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 공장에서 처리하는 원유는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데
직경 8인치의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화학공업 사정에 밝은 한 탈북인은 숙천 앞바다에서 생산한 원유라면
봉화화학공장에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승리화학공장은 일단 거리상으로 너무 멀고 수송에도 많은 애로가 따르므로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봉화화학공장에서 정유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숙천 앞바다에서 생산한 원유는 같은 황해에서 뽑은 중국산과
유질(油質)이 비슷할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봉화화학공장에서 주로 중국산 원유를 처리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이 탈북인은 그러나 북한이 본격적인 원유생산에 돌입하면서
제3의 원유처리 시설을 갖췄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 이 경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평남 안주의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
정유시설을 설치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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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sisa-1/dqMu/42836
출처: http://m.ilyoweek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17
중국의 원유중단 가능성…그 이면에 가려진 실상은
소정현 편집인 / 기사승인 : 2017-05-26 13:41:58
<스폐셜> 북한에는 진정 석유 자원이 매장되어 있을까
턱없이 부족한 수요량에도 정제유 수출 대모순
석유매장 베일은 개혁개방의 후폭풍 사태 우려
미국의 경제제재가 석유 메이저들의 발을 묶어
북한의 석유자원 개발은 한세기 이상인 1965년
1993년 원유탐사총국 ‘원유공업부’로 승격 조치
1990년대 후반까지 호주 스웨덴 일본 탐사활동
2004년부터 영국 업체와 포괄적 탐사계약 체결
중국 서조선만에 천문학적 원유매장 최초 시인
해저유전 중국과 북한 공동개발 가능성 높아져
희천발전소 완공, 석유 정제능력 급속성장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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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석유를 충당하고 있는지 자구책은 전혀 없는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일요주간 = 소정현기자] 현재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원유 공급 중단을 공언하고 있어 북한 당국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4월 태양절(김일성 생일) 기념 행사 등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외신들은 평양 시내의 휘발유 공급이 제한돼 유가가 급등하고 영업을 중단하는 주유소가 있다고 보도한다. 이에 북한의 추가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압박 강도를 높여 온 중국이 대북 원유를 이미 차단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렇다면 북한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석유를 충당하고 있는지 자구책은 전혀 없는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실상의 이면을 심층 해부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편집자주)
●1976년 1월 개통된 북-중 송유관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2003년 12월 ‘조·중우호송유관’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북경발 기사로 보도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송유관’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정보가 알려지게 되었다. ‘조·중우호송유관’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유전에서 북한 안주(安州) 부근까지를 연결하고 있으며, 랴오닝성 무순(撫順) 과 단둥(丹東)에서도 북한으로 이어진다.
1972년 중국과 북한은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해 1974년 2월 착공하여 1976년 1월에 개통되었다. 이들 송유관은 보안과 도난방지를 위해 땅속에 매설되어 있으며 압록강은 강바닥을 통과해 매설되었다. 6.25때 압록강 다리가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경험 때문에 압록강 구간을 강바닥 밑으로 부설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송유관을 통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원유가 수송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1990년대 중반에는 연간 80만~100만 톤이었다가 1999년에는 31만톤까지 줄었으나 2000년부터는 다소 회복된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북한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까
북한의 석유자원 개발 이야기는 최근 일이 아니다.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도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 석유 매장설에 대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외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 특유의 과장이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현 북핵 위기 국면에서는 중국을 위시하여 서방 어느 나라도 비공식 공식적인 노출과 협력이 매우 힘들게 되었다.
북한이 석유 부존국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통계가 있어 관심을 끈다. 2001년 한국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북한 대외무역동향 보고서에서 북 독재정권이 2000년 일본에 중유를 수출하고 중국과 태국, 프랑스에는 가공유와 정제유를 수출했다고 발표한바 있다. 수출 금액은 최소 1,000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북한이 2010년 태국에 첫 수출한 정제유는 749만 달러를 기록했다. 태국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문제는 이 정제유 내역을 보면 역청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청유는 유전(油田)에서 막 뽑아 올려 모래와 타르가 뒤섞인 점액질이 강한 기름으로 북한의 원유 생산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석유 제품 수출 비중이 급속히 높아진 것이 서방의 수입 통계로도 계속 확인되었다. EU의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Eurostat)가 발표한 ‘2010년 대 북한 교역통계’에 따르면 북한과 EU 내 27개국 간 교역액은 1억7천700만 유로로 2009년의 1억2천300만 유로보다 43% 증가했다. 북한은 2010년 상반기에는 네덜란드에 5천500만유로 이상의 휘발유·경유·역청유를 수출했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와 KOTRA는 북측이 중국서 매년 약 5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해서 그중 일부를 정제유로 만들어 수출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의 년간 석유 수요량이 최소 150만t 이상인 반면, 원유 도입이 1999년 31만7,000t, 2000년 38만9,000t에 그쳤다며, 수요량의 4분의 1도 안 되는 원유를 수입해 놓고 1,000만 달러 이상을 다시 가공해 수출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북한에 원유가 산출되고 있다는 신빙성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2010년 경우 불과 약 39만t의 원유를 수입하고도 중국에만 340만달러어치의 정제유를 수출했다. 수입량이 약 5분의 1로 줄었는데도 수출은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북한이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사실은 자체 원유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02년 기준으로 평북 희천에 소재한 봉화 석유화학공장은 연간 1100만 배럴, 함북 선봉에 소재한 승리화학정유소는 연간 1500여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북한은 원유 시추, 생산과 정제를 통해 보다 높은 가격을 받으려고 수출 항목에 석유류를 포함시킨 것은 절대 허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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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우호송유관’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유전에서 북한 안주(安州) 부근까지를 연결하고 있으며, 랴오닝성 무순(撫順) 과 단둥(丹東)에서도 북한으로 이어진다. |
●북한의 석유 시추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석유가 북조선에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근거를 실증할 수 있을까? 북의 독재정권은 주민들을 먹여 살릴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의 탐욕을 충족시킬 목적으로 석유탐사를 시작했다. 북한의 석유자원 개발 역사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상으로는 1965년 8월에 ‘연료자원지질탐사국’을 신설하여 최초로 석유자원 개발을 위한 지질학적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1968년 9월에는 ‘석유조사소’가 평양근교에 설립되었으며, 1978년 7월에는 기존의 ‘석유조사소’를 확대하여 ‘연료탐사국’이 설립되며, 14,000톤급 시추선인 ‘유성호’를 도입하여 서해안 지역의 시추작업에 투입한다. 1983년 10월에 ‘원유탐사총국’이 신설되고, 1993년 7월에는 정무원 ‘원유공업부’로 승격된다. 1998년 9월에는 ‘원유공업총국’으로 축소되었다가 2003년 12월 31일 ‘원유공업성’으로 승격의 변천과정을 거쳐 왔다.
지질학자 최동룡 박사는 1980년대에 노르웨이 지질탐사회사인 개코(GECO)사의 의뢰를 받아 북한 서해안 지역의 지질탐사 결과를 분석하고, 1990년대 초부터 동경 주재 외국회사의 기술자문으로 북한 석유산업부가 제공하는 북한의 퇴적구조 관련자료 및 관련 재료의 분석을 수행한 결과로 원유 부존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히고 있다.
1990년에는 구소련과 합동으로 원산지역의 해안과 인근 해역에 대한 지질학적 조사를 벌이고, 동해안 지역에 대한 지질학적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은 1993년 원유탐사총국을 ‘원유공업부’로 승격시키고 외자 및 기술유치에 적극 나서게 된다. 이러한 법, 제도의 정비와 당국의 정책의지 표명에 의해 북한의 석유개발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1997년 6월 남포 앞바다에서 450배럴의 석유를 최초로 생산함으로써 석유개발을 위한 서방기업과의 합작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북한 당국은 보다 활발한 서방기업의 진출을 유도하기 시직한다. 1997년 10월에는 일본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호주 스웨덴, 영국 업체들이 주로 활동하였다. 각국의 석유메이저와 유전개발전문회사들이 참여했으나 경제성 등을 이유로 현재는 발길을 돌린 상태이다.
스웨덴의 타우루스 페트롤리엄사는 서해의 두개 블록에 대한 탐사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1997년 6월에 시행한 초기 지진탐사에서 원유 부존이 가능한 지질학적 구조를 확인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영국의 소코(Soco)사도 서해의 한 개 블록에 대한 탐사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호주의 비치 피트롤리엄(Beach Petroleum)사도 동해안 지역의 한 블록에 대한 계약을 맺고 활동한바 있다.
일본에 있는 페트릭스와 싱가포르의 소버린벤처 등도 북한의 석유개발에 나선 바 있다. 북한 원유공업총국의 해외업무 대행업체로 알려진 페트릭스는 서한만 분지에서 2005년까지 지질조사와 경제성 확인 등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버린벤처는 2001년 9월 첫 육상지역인 함북 지역 6천k㎡에 걸쳐 조광권을 획득한 바 있다. 이어 2002년 소버린벤처사는 단천-나진 지역에 최초의 육상 원유 탐사를 실시해 해당 지역에 최소한 283억m3 천연가스와 5,000만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하였다.
한국석유공사가 2002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안주분지, 서한만분지, 동한만분지 등 해상 3곳과 육상의 함경북도 라진일대 등 모두 북한 내 4개 지역의 석유탐사에 5개 외국기업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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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조선만 대륙붕에 66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있다는 놀라운 정보는 중국 최대의 연해 석유생산업체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hina National Offshore Oil Corporation)가 처음으로 공개했다. |
●‘본격 궤도’ 영국업체와 포괄적 탐사계약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북한 당국은 다시 한 번 원유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획기적 조치를 단행한다. 2003년 12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원유공업총국’을 ‘원유공업성’으로 개편하는 한편 기존 5개 외국 업체와의 계약을 만료시키고 영국 업체와 포괄적인 탐사계약을 체결한다.
현재는 영국계 아미넥스(Aminex)가 유일하게 북한에서 유전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미넥스사는 북한에서의 석유개발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미넥스사의 ‘브라이언 홀’ 최고경영자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에서 북에서 채굴 가능한 원유 매장량은 40억~50억 배럴이라고 밝힌바 있다. 이는 매장량 세계 20위인 인도네시아와 맞먹는 규모이며, 중국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원유 매장 규모이다.
오마이뉴스는 2005년 2월초 런던에 본사가 있는 아미넥스사의 브라이언 홀 CEO를 직접 만나 북한의 석유부존자원 가능성 전망을 들어본 적이 있다. 미국, 러시아, 인도, 탄자니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해온 아미넥스는 당시 북한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북한 정부와 육해상 석유탐사 독점 계약을 맺었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미넥스사 브라이언 홀 사장은 “지질 탐사와 사전 조사 단계라며 북한의 석유 매장 가능성과 석유 사업에 대해 상당히 낙관한다”면서 “북한에 석유가 매장됐다면 국제적 수준으로 상당량이 될 것이다. 서해안, 동해안, 평양 내륙지역 가운데 지형상으로는 서해는 매우 가능성 높은 지역이다.”고 말했다.
‘석유 매장설이 외자 유치를 위한 북한의 과장’이라는 외부 비판에 대해 홀 사장은 “국제 석유회사들은 모두 탐사 이전에 자체 조사를 하고 가능성이 있을 때 투자를 한다”고 일축했다. 이어 홀 사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북한은 예비 산유국으로 거론되어 왔지만 제대로 탐사된 적은 없다. 대부분의 개발사들은 정해진 구역을 시추한 다음에 결과가 좋지 못해서 떠났을 거라고 생각된다. 우리 경우는 북한 전 지역에 걸쳐 탐사할 권리를 갖고 있어서 이전의 다른 회사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사업자들 가운데 북한에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을 의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결국 2004년 9월, 영국의 아미넥스사는 생산에서의 결정적인 발언권을 보유하면서 잠재적으로 원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모든 영토를 탐사, 개발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북한 정부와 매듭지은 것으로 전언된다. 생산성이 충분히 입증될 경우에 로열티 수령권, 가장 생산성 있는 구역의 귀속문제 등이 타결된 협상은 아미넥스의 사장 브라이언 홀이 주도하고 영국 대사가 입회한 가운데 평양에서 비밀리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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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후반까지는 호주 스웨덴, 영국 업체들이 주로 활동하였다. 각국의 석유메이저와 유전개발전문회사들이 참여했으나 경제성 등을 이유로 현재는 발길을 돌린 상태이다. |
●중국과 북한의 ‘석유 공동시추’ 플랜개요
서조선만 대륙붕에 66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있다는 놀라운 정보는 중국 최대의 연해 석유생산업체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hina National Offshore Oil Corporation)가 처음으로 공개하였다. 중국 지질조사국은 5만1,000㎢에 이르는 방대한 서조선만 분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동경 124도에서 동쪽에 있는 바다 밑 평평한 대륙붕 지대를 북측에서 가장 풍부한 원유매장지로 지목하였다.
1990년대에 북측으로부터 탐사권을 얻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석유탐사회사 메리디언(Meridian)이 서조선만 분지에 시추정을 뚫고 원유를 하루에 230-440 배럴씩 시험적으로 뽑아냈던 위치는 북측 해안으로부터 130km 떨어진 해역인데, 2004년 10월에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확인한 서조선만 분지의 원유매장지는 북측 해안으로부터 약 100km 떨어진 해역에 있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는 2004년 10월 자체적으로 서한만 유전의 매장량을 확인한 끝에 2005년 10월, 서한만 분지에 약 600억 배럴 규모의 원유가 매장된 사실을 실토하였다. 중국이 이 사실을 쉬쉬했던 이유는 발해만 대륙붕에 연결된 서한만 분지 유전지대가 바로 북측 수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한만 유전지대는 남포는 물론 평양까지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2005년 10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보하이(渤海) 해역에서 새로운 석유층을 발견했다고 밝힌 점이다. CNOOC는 중국 사상 처음으로 발견된 보하이 해상유전에서 이미 1994년 1천만㎥의 석유와 가스를 생산했으며 이 해역에는 모두 660억 배럴 규모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보하이만의 대륙붕은 북한 서한만까지 뻗어 있어 이곳에도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대륙붕으로 연결된 이 지역의 해저 유전을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개발해 생산하게 된다면 북한도 산유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에너지정보국(EIA)도 북한의 원유 매장 가능성에 대해 중국의 보하이만과 지리적으로 확장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서한만에 탄화수소가 부존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서한만분지는 해상 석유가 풍부하게 묻혀 있는 중국 보하이만과 연결돼 있으며, 이곳에 최소 40억 배럴 이상의 원유가 묻혀 있다는 북한의 입장은 단지 주장만으로 치부하게 어렵게 된 셈이다. 북측에는 얼마나 많은 원유가 묻혀있을까? 원유매장량과 관련하여 북측과 비교할 만한 나라는 브라질이다. 2008년 4월 브라질은 자국 해안에서 273km 떨어진 수심 2km의 대서양 심해에서 대형유전을 발견하였다. 블룸버그(Bloomberg) 통신의 2008년 4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그 해저유전 매장량은 330억 배럴이다. 까리오까(Carioca)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 해저유전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매장량이 많은 대형 유전이다.
830억 배럴이 묻혀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와르(Ghawar) 유전과 720억 배럴이 묻혀있는 쿠웨이트의 부르간(Burgan) 유전 다음으로 브라질의 까리오까 해저유전을 손꼽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유전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북측 서조선만 분지의 원유 매장량은 330억 배럴의 두 배인 660억 배럴이나 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북측은 브라질을 앞질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매장량이 많은 초대형 유전을 보유한 잠재적 석유부국일 수 있다.
2005년 12월 24일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측과 중국은 ‘조중 정부 간 해상 원유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 서한만지역 등에 대한 공동개발 원칙을 마련하였는데, 북측에서 로두철 부총리가, 중국에서 쩡페이옌(曾培炎) 부총리가 협정에 서명하였다.
원유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은 어떻게 추진되었을까. 이 문제를 파악하려면, 중국의 유전개발사업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중국의 3대 석유기업 가운데 하나가 그 거대한 국유기업은 중국해양석유총공사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자회사가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해양석유유한공사(CNOOC Ltd.)다. 또한 중국해양석유유한공사의 자회사가 중국유전복무유한공사(China Oilfield Services Ltd.)인데, 이 회사의 본사도 홍콩에 있다.
중국유전복무유한공사는 유전탐사와 원유채굴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실제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서아프리카, 중동, 카스피 해 등 세계 각지에서 유전을 탐사하고 원유를 채굴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해양석유유한공사와 중국유전복무유한공사의 본사가 모두 홍콩에 있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2011년 1월 21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북측 경제개발계획에 1,000억 달러 자금을 조달할 중심축인 합영투자위원회 산하에 13개 국(局)이 설치되었는데, 그 가운데 5국이 홍콩을 전담하는 국이다. 5국이 홍콩을 전담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합영투자위원회 산하 5국이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해양석유유한공사와 중국유전복무유한공사를 상대하면서 ‘조중 정부간 해상 원유 공동개발에 관한 협정’을 실행에 옮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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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6월 남포 앞바다에서 450배럴의 석유를 최초로 생산함으로써 석유개발을 위한 서방기업과의 합작이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다. |
●동조선만 해저에도 원유가 묻혀있다.
서조선만 분지만이 아니라, 동조선만 해저에도 원유가 묻혀있다. 중앙일보 2003년 2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은 함경북도 최북단 종성과 삼봉에서도 유징을 발견하였다. 그 지역에서 시추한 원유는 물처럼 맑은 고품질 원유(superlight crude oil)였다.
실례로 고 정주영 회장이 북측의 유전 정보를 확인하고, 2004년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국장위원장에게 북측 유전 개발과 파이프라인 개설을 요청했던 사실이 있다. 당시 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이 거대한 유전지대에 둥둥 떠 있다고 표현하며, 고 정주영 회장의 서해 유전 공동개발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이런 회담 사실을 정주영회장이 언론에 공표하자, 국내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정주영회장의 단순한 립 서비스이거나, 북한 유전 개발은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2007년 고 노무현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과 유전 탐사, 시추, 개발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도 했다. 이명박정권의 출범과 함께 극단적인 남북대결 국면의 조성과 한미 군사합동의 강화로 북측과의 서해 유전 공동 개발은 물 건너간다.
‘한국경제신문’이 2011년 4월 13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하여 “중국의 석유탐사 전문가 10여명이 북한을 방문하여 안주분지에서 원유탐사를 위한 사전조사를 진행 중이다”는 소식을 전한다.
북한은 2010년 안주분지에서 20만t, 나선시에서 10만t의 원유 채굴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주분지는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100여㎞ 떨어져 있는 평안남도 숙천군의 내륙 유전이다. 북측은 안주 유전에서 직접 원유를 채굴, 각종 석유제품을 정제까지 하는 일괄 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유럽 등지에 수출되는 북측의 정제 석유 제품들은 바로 안주분지 유전에서 채굴한 원유를 안주 석유, 화학단지에서 정제하여 수출한 것들이며, 물류 복합단지인 나진, 선봉 경제 특구 지역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역에 경성만 유전이 위치하고 있으며, 나선특별시 인근에서 원유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30일, 대북 사업가인 김영일 효원물산 회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북한과 중국이 최근 남포 앞바다 서한만 유전 공동개발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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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지질조사국은 5만1,000㎢에 이르는 방대한 서조선만 분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동경 124도에서 동쪽에 있는 바다 밑 평평한 대륙붕 지대를 북측에서 가장 풍부한 원유매장지로 지목했다. |
당시 김 회장은 “북·중 접경지역 위화도, 황금평, 나진·선봉 지역 일대 개발과 남포 앞바다 서한만 유전지대 개발과 관련, 북한이 중국과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고 전한다. 그는 “북·중간 유전 공동개발 합의가 이뤄진 것은 2010년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벌써 7년 전의 이야기이다.
또 김 회장은 “서한만과 연결된 중국 보하이(渤海)만 대륙붕 유전지대(발해만과 연결된 서한만 유전지대가 정확한 표현이다.)에는 200억여t에 해당하는 원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채취 가능량을 매장량의 3분의 1 수준인 70억∼80억t으로 잡는다면, 대략 중국이 30년가량 소비할 수 있는 규모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1년에 소비하는 석유량은 약 2억5000만t이다.
발해만과 연결된 남포 앞바다 서한만 유전지대에서 발견된 200억톤 규모의 석유 매장량은 어느 정도 규모일까? 세계 에너지회의(WEC)의 환산 계수를 적용하면, 200억톤 규모의 석유는 약 1470억 배럴에 해당된다. 남한의 경우 1년 석유 소비량이 약 8억 배럴 정도면, 약 62년가량을 소비할 수 있는 규모이다.
‘연합뉴스’ 2011년 1월 15일 보도기사에서 한국기업은행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의 ‘북한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북측은 원유 2,000만t을 정제하는 대담한 목표를 세웠다. 원유 2,000만t은 1억4,700만 배럴이다. 북측이 2020년까지 원유 2,000만t을 정제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원유 2,000만t을 정제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조선만 대륙붕에 있는 유전에서 중국과 공동 개발한 원유를 정제한다는 현실적 의미이다.
현재 북측의 연간 정유능력은 450만t인데, 서부에 있는 봉화화학공장 정유능력이 250만t, 동북부에 있는 승리화학련합기업소 정유능력이 200만t이다. ‘내일신문’ 2011년 1월 6일 보도에 따르면, 북측 합영투자위원회와 중국 상무부가 투자규모 35억 달러의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는데, 그 가운데 위의 승리화학련합기업소 정유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대규모 석유 정제시설은 어디에 세우게 될 것인가? 현재 완공한 자강도 희천발전소와 인접한 안주분지의 석유, 화학단지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국내 언론은 30만 킬로 와트급 희천 수력발전소가 평양의 전력난 해소목적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희천발전소 완공은 곧장 평남 안주 석유, 화학단지에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고, 북측의 석유 정제능력을 급속 성장시킬 것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5월 28일 자강도 희천발전소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바 있다. 당시 중국 시찰 대장정을 마치자마자, 김정은 부국방위원장(대장)과 함께 희천발전소로 달려간 이유가 있었다. 희천발전소의 완공은 북측의 석유에너지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핵보유 강성대국으로서 경제적 야심을 가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희천발전소(熙川發電所)는 수력발전소인데, 북한 자강도 용림군의 장자강 유역과 희천시의 청천강 유역에 건설된 희천1·2호 발전소를 가리킨다. 2001년에 착공하였으나 경제난 등을 이유로 방치하였다가 2009년 3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여 2012년 4월 5일 완공식을 열었다.
2001년 3월 착공됐지만 2009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설현장을 처음 찾아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까지 완공하라’고 지시한 이후 공사속도가 빨라졌다. 김 위원장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모두 8차례나 건설현장을 찾았다.
2010년에는 새해 첫 공개 활동으로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시찰했고 2011년 5월과 8월에는 중국방문을 마치고 귀환 길에 들르기도 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에는 ‘유훈사업’으로 간주해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4월15일) 이전 완공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에 매진해왔다.
1호 발전소는 장자강 상류를 용림댐으로 막고 30㎞의 수로터널을 통하여 낙차가 큰 청천강 상류로 떨어뜨려 전기를 생산하는 전형적인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이다. 발전능력은 15만kW이다. 2호 발전소는 용림댐에서 내려오는 물과 청천강의 물을 합류시켜 희천댐에 저수하여 그 수량을 이용하는 일반적인 수력발전소이다. 발전능력은 15만kW이다.
북한은 각각 3기의 발전기를 보유한 희천 1·2호 발전소를 완공하여 총 30만kW의 발전능력을 확보함으로써 평양시의 전기공급 부족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댐 건설로 청천강 주변의 농경지와 주거지를 홍수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며, 희천지구와 남흥지구의 공장기지들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발전소는 일반적으로 약 10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공사이나, 해발 800m가 넘는 고지대의 지형 조건에서 3년 만에 완공하여 눈길을 끌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희천 속도'라고 이름 붙여 대외적으로 과시한다.
북의 석유 매장이 베일에 가려진 것은 당시 독재자 김정일의 공포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석유를 탐내는 남한 및 서구의 자본이 북에 유입되어 결국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두려워해 지질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 상당양의 석유가 매장됐다면 그 동안 국제 석유 개발업자들이 북한에 뛰어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석유 메이저들의 발을 묶어 놨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 대부분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민감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과 협정을 맺으면서까지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미뤄 경제성 등에 대한 검토를 실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북한 지역에 석유가 있다면 북한은 중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이를 개발하여 이익을 분배하는 쪽으로 공동개발을 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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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석유 매장이 베일에 가려진 것은 당시 독재자 김정일의 공포감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두려워해 지질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
출처: http://m.jajusibo.com/a.html?uid=54705&page=1&sc=&s_k=&s_t=
[자주시보] [개벽예감 434] 원유채굴선은 왜 중국으로 돌아갔을까?
[개벽예감 434] 원유채굴선은 왜 중국으로 돌아갔을까?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21-03-08
<차례>
1.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가 자행되다
2.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
3.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4. 서조선만 유전에 들어간 중국의 원유채굴선
1.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가 자행되다
2006년 1718호
2009년 1874호
2013년 2087호, 2094호
2016년 2270호, 2321호
2017년 2356호, 2371호, 2375호, 2397호
위에 열거한 것은 유엔안전보장리사회가 조선의 핵무기개발문제를 걸고 들면서 채택한 일련의 제재결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인 미국, 영국, 프랑스, 로씨야, 중국은 아무런 제재나 비난을 받지 않고 핵시험을 마음대로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마음대로 하면서 핵무력을 끊임없이 증강해왔다. 그런데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은 세계 최대 핵강국인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위적 핵무력을 보유한 조선을 ‘범죄국가’로 몰아가면서 유엔안보리의 이름으로 역사상 가장 혹독한 제재를 결의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거느리는 지배수단인 핵무기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강대국의 지배를 거부하는 약소국은 절대로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조선은 핵무기를 갖지 말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위협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유엔안보리의 주장은 조선을 비롯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평등권과 자위권을 인정한 유엔헌장을 부정하는 희대미문의 망발이다. 조선인민군의 핵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조선을 굴복시키려던 유엔안보리의 횡포는 19세기 말 조선군을 강제로 해산하고 조선을 식민지로 강탈한 일제의 만행을 연상시킨다.
유엔안보리 상임리사국들 가운데 중국과 로씨야는 조선을 굴복시키려고 광분하는 미국의 제재횡포에 잠시 부화뢰동하다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태도를 바꾸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련합나라들과 함께 미국의 재재횡포에 계속 맞장구를 치고 있으며,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가세했다. 악의와 모순과 폭력이 난무하는 제국주의지배체제에 굴종하기를 거부한 자주독립국가들이 제국주의국가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핵억제력을 보유하는 것은 자위권을 실현하는 정의의 행동으로 공인되어야 마땅하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조선을 상대로 저지른 수많은 제재횡포 가운데 가장 악랄한 것은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2397호다.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연간 400만 배럴(barrel)로 제한하는 것이다.
해설 --- 배럴은 부피를 계량하는 단위이고, 톤(tonne)은 무게를 계량하는 단위이다. 원유 400만 배럴을 환산하면 544,000톤이다. 원유 400만 배럴을 정제하면, 휘발유(gasoline) 35,600톤, 등유(kerosene) 132,200톤, 경유(diesel) 132,200톤, 중유(fuel oil) 193,200톤이 나온다.
2)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정제유를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는 것이다.
해설 --- 정제유 50만 배럴을 휘발유로 환산하면 59,000톤이고, 등유로 환산하면 64,000톤이고, 경유로 환산하면 66,000톤이고, 중유로 환산하면 335,000톤이다. 조선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수입한 석유제품(petroleum) 수입비률은 휘발유 34.1%, 등유 27.6%, 경유 25.6%, 중유 5.3%이므로, 이 글에서는 정제유의 범위를 휘발유, 등유, 경유로 한정하고, 휘발유, 등유, 경유 50만 배럴의 평균값을 63,000톤으로 산정한다.
3) 조선이 콘덴세이트(condensate)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해설 ---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 섞여 나오는 경질 휘발성 액체탄화수소다.
4) 조선이 광물, 수산물, 의류, 섬유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5) 조선의 기업체가 다른 나라 기업체와 설립한 합작기업을 폐쇄하고, 새로 합작기업을 설립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다.
6) 조선의 무역은행이 다른 나라에 설치한 지점 또는 사무소를 폐쇄하고, 새로운 지점 또는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다.
7) 조선으로 들어가거나 조선에서 나오는 화물이 육로, 해로, 항로로 다른 나라를 통과하는 경우 그 화물을 전부 조사하는 것이다. <사진 1>
▲ <사진 1> 이 사진은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전보장리사회 회의에서 당시 유엔주재미국대사였던 니끼 헤일리가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에 거수로 찬의를 표시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오른쪽에서 거수로 찬의를 표시한 사람은 당시 유엔주재 영국대사다. 그날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는 조선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위협 아래서 살아가야 한다는 언어도단의 망발을 유엔안보리의 이름으로 공식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미국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조선의 자위적 핵무력 보유를 '범죄'로 몰아감으로써 조선을 비롯한 모든 유엔회원국들의 평등권과 자위권을인정한 유엔헌장을 부정한 희대미문의 망동이요 횡포였다. 그런 점에서 2017년 12월23일은 유엔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치욕과 암흑의 날이었다. |
위에 열거한 일곱 가지 제재조항 가운데서 1번부터 3번까지 조항은 조선의 석유제품수입을 차단한 것이고, 4번부터 6번까지 조항은 조선의 외화소득을 차단한 것이다.
조선이 외부에서 수입하는 원유를 연간 54만톤으로 제한하고, 정제유를 연간 63,000톤으로 제한하면, 조선의 경제가 무너질 것으로 유엔안보리는 어리석게 타산했다. 조선의 원유수요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면, 그들이 그렇게 타산할 만도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은 2014년을 기준으로 약 81만톤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은 100만톤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100만톤의 원유를 가져야 살아갈 수 있는 조선의 원유수입량을 54만톤으로 제한한 것이야말로 조선의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교살행위로 보인다. 원유수입이 갑자기 2분의 1로 격감하면, 국가경제가 질식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의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하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상황을 너무도 오판했다. 그들은 조선의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을 차단하여 국가경제의 숨통을 1~2년 동안 계속 조이면, 조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여 핵포기의 길로 끌려나올 것으로 타산하면서, 조선의 경제가 질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타산을 완전히 뒤집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조선의 국가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제재횡포를 3년 동안 계속 자행했는데도,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지기는커녕 저들의 제재횡포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경제발전을 꿋꿋이 추진했다. 자본주의경제론리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2021년 2월 22일 <자주시보>에 발표한, ‘억측과 오해 너머 보이는 조선의 경제실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객관적인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조선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기간에 달성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3.5% 수준이었다고 추산한 바 있다. 유엔안보리의 악의적인 제재횡포에 의해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이 차단당한 조선이 GDP 성장률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조선이 제재횡포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기는커녕 GDP 성장률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사회주의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근본요인이 일심단결과 자력갱생에 있다는 현실을 알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요즈음 조선이 식량부족과 에너지부족으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을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이 경제난으로 망하기를 바라는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퍼뜨리는 악의적 허위선전에 불과하다.
2.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
조선의 원유수입사정을 파악하려면 비교관념이 요구된다. 조선과 인구수가 거의 같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유를 얼마나 많이 수입하는지를 살펴보면, 조선의 원유수입사정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의 인구는 2,566만명이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2,575만명이다. 아래 도표에 나온 수치는 미국에너지정보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이 작성한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수록된 1일 원유수입량이며, 단위는 배럴이다.
연도
| 조선 | 오스트레일리아 |
1995
| 4,400 | 37,600 |
1996
| 2,300 | 40,600 |
1997
| 2,400 | 42,100 |
1998
| 3,800 | 44,500 |
1999
| 4,400 | 48,500 |
2000
| 5,500 | 40,700 |
2001
| 1,200 | 44,000 |
2002
| 1,200 | 44,200 |
2003
| 1,100 | 41,100 |
2004
| 1,100 | 41,600 |
2005
| 1,000 | 40,000 |
2006
| 730 | 40,500 |
2007
| 850 | 44,600 |
2008
| 900 | 39,800 |
2009
| 690 | 41,000 |
2010
| 1,100 | 48,700 |
2011
| 1,100 | 50,100 |
2012
| 1,100 | 51,200 |
위의 도표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첫째, 조선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구수가 거의 같은데, 조선의 원유수입량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이다.
둘째, 2001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조선의 적은 원유수입마저 급감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에 조선의 원유수입은 2000년에 비해 78.18%나 급감했다. 조선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었던 1996년과 1997년에 원유수입이 가장 적었는데, 원유수입이 전년에 비해 78.18%나 급감한 2001년부터는 ‘고난의 행군’ 시기의 원유수입에 비해서도 절반 이하로 감소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1년 이후 조선은 오스트레일리아에 비해 원유를 50분의 1밖에 수입하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선은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원유수입을 크게 줄여야 했고, 그로써 국가경제가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었다. 그런데 2001년 이후 조선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해 원유를 절반 이하만 수입하였는데도, ‘고난의 행군’ 시기의 경제난에서 벗어나는 회복기를 거쳐 지속적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의 도표에서 드러난 또 다른 사실은 조선의 원유수입이 2012년까지만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위의 도표는 미국 에너지정보청의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인데,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조선의 원유수입을 2012년까지만 기록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은 2013년까지만 원유를 수입했고, 2014년부터는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다. 2016년 1월 21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14년 1월부터 조선에 원유를 수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시기 조선이 수입한 원유는 거의 중국산 원유이므로, 중국에서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유수입을 중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은 2014년 1월부터 소량의 정제유만 중국 또는 로씨야에서 수입하고 있다.
2017년 11월 24일 <미국의소리> 보도에 따르면, 조선이 보유한 22척의 유조선들이 2017년 9월부터 해외운항을 거의 중지했다고 한다. 원유수입을 중단하고 소량의 정제유만 수입하기 때문에 조선의 유조선은 출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이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데도, 유엔안보리는 2016년 12월에 조선의 원유수입을 제한하는 제재요 뭐요 하면서 소동을 피웠으니 우스꽝스러운 헛발질을 한 것이다.
그런데 원유수입을 중단한 조선에서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2015년 11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평양-원산 고속도로구간, 평양-개성 고속도로구간, 평양-신의주 도로구간에 연유판매소(주유소)들이 “줄줄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평양과 지방도시들에서 자동차 운행이 더 많아졌고, 조선인민군의 군용차량 운행도 더 많아졌으며, 협동농장에서 각종 영농기재의 운행도 더 많아졌다. 이것은 조선에서 휘발유 소비와 경유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을 말해주는 현상이다. 원유수입을 중단했는데도, 휘발유와 경유를 이전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20년 9월 3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2016년에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정제공장)에서는 원유를 정제할 때 사용하는 접촉분해설비(catalytic cracking unit)를 새로 설치하여 정제유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으며, 중유 생산을 줄이는 대신 차량과 발동기에 사용되는 휘발유와 경유를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중유는 제철소, 제련소, 화력발전소를 비롯하여 산업용 보일러를 사용하는 공장과 기업소에서 보일러 착화유로 널리 사용되었는데, 요즈음 조선의 공장과 기업소에는 석탄가스화기술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어 착화유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조선의 중유수요량이 급감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원유수입이 중단되었는데, 봉화화학공장은 어디에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하여 휘발유와 경유를 이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일까?
3.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조선의 원유수급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선이 원유수입을 중단한 이후 정제유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억측을 늘어놓았다.
1) 중국이 조중우의송유관을 통해 조선에 연간 약 50만톤의 원유를 은밀히 수출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 억측이다. 1975년에 완공된 조중우의송유관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에 있는 중국 제1유전인 다칭(大慶)유전에서 중국 동북지방(만주) 전역으로 원유를 수송하는 총연장 2,471km의 송유관에 딸린 지선이다. 압록강 하저를 지나는 조중우의송유관의 길이는 중국 단둥(丹東) 인근에 있는 삐산(八山)원유저장소에서 평안북도 피현군에 있는 봉화화학공장까지 약 30km에 이른다.
그러나 다칭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에는 석랍탄화수소(paraffin alkane) 함량이 많아서 중국 동북지방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쉽게 응고된다. 더욱이 압록강 물속을 지나는 구간에 부설된 하저송유관은 강물의 냉기를 직접 받게 되므로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응고된다. 송유관으로 보내는 원유는 물처럼 맑고 비중이 낮은 액체가 아니라 끈적끈적하고 비중이 높은 액체이므로 강한 압력으로 밀어 보내야 먼 거리까지 갈 수 있는데, 그런 강한 압력을 받고 밀려가는 원유가 응고되는 경우 송유관 이음새가 터져 원유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는 대형유출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중국은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원유를 송유관으로 보낼 때 응고를 방지하기 위해 섭씨 90정도로 열을 가한다. 그런 가열처리는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의 가격을 끌어올린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기 조선은 다칭유전에서 생산된 중국산 원유를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원유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수입해야 했었다. 조선이 조중우의송유관을 폐쇄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더욱이 부설된지 40년이 지난 조중우의송유관은 너무 낡아서 파렬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용할 수도 없다. 2013년 6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조중우의송유관을 통해 조선에 원유를 보내던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중단했다고 한다. <사진 2>
▲ <사진 2> 위의 도표는 미국 노틸러스연구소(Nautilus Institute)가 2020년 9월 2일에발표한 조선의 석유수급상황에 관한 논문에 실린 것이다.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는것처럼, 조선은 2014년 1월부터 원유를 수입하지 않았고, 2018년부터는 정제유 수입도 대폭 축소했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은 조선의 원유수입과 외화소득을 차단하여 국가경제의 숨통을 1~2년 동안 계속 조이면, 조선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여 핵포기의 길로 끌려나올 것으로 타산했다. 그러나 조선의 국가경제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뿐아니라, 국내총생산을 연평균 3.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발전을 이룩했다. 이런현상은 자본주의경제론리로는 설명하지 못한다. 조선의 경제현실 속에서 일심단결과자력갱생의 힘이 작동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
2) 유엔안보리 산하 대조선제재위원회는 조선의 유조선이 중국의 유조선과 공해 상에서 접근하여 해상환적방식으로 은밀히 원유를 수입하고 있을 것이라는 억측을 늘어놓았다. 실제로 그들은 공해 상에서 두 나라 유조선이 접근하여 해상환적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몇 차례 공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유조선들이 조선 선적 유조선이라는 저들의 주장을 입증할 근거는 없고, 의심과 추정만 난무한 것뿐이다. 미국이 유엔안보리 산하 대조선제재위원회에서 조선과 중국의 해상환적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중국과 로씨야는 미국의 그런 의심과 추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혹 조선의 몇몇 유조선들이 해상환적으로 중국산 원유를 수입하였다고 가정해도, 조선의 연간 원유수요량에 해당하는 100만톤을 해상환적으로 수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조선이 원유수입을 중단한 2013년 말 이후 정제유는 얼마나 수입하고 있을까? 2017년 12월 유엔안보리는 대조선제재결의 2397호에서 조선이 연간 정제유 수입을 63,000톤으로 제한했는데, 조선은 2018년에 38,000톤의 정제유를 수입했고, 2019년에는 46,000톤의 정제유를 수입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20년에는 조선의 정제유 수입이 18,000톤으로 급감했다. 유엔안보리가 정제유 수입을 제한하는 제재횡포를 부렸지만, 조선은 그런 제재횡포를 비웃으며 정제유 수입제한량의 약 30%밖에 수입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이 2020년 한 해 동안 정제유를 수입한 양은 2019년 수입량의 31.8%밖에 되지 않으며, 2020년 10월부터는 로씨야에서 정제유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다.
아마도 올해 2021년에는 그나마 소량으로 유지되던 조선의 정제유 수입이 더 줄어들 것이며, 앞으로 2~3년 뒤에 조선은 원유는 물론 정제유도 수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정제유까지 수입을 대폭 줄이면 당연히 유류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지금 조선에서는 유류난이 일어나기는커녕 되레 정제유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조선이 원유를 자체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만 설명될 수 있다.
시선을 남포항으로 돌려보자. 남포항은 원유하역과 원유저장이 집중되는 유류거점이므로, 남포항의 동향은 원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2016년 10월 남포항을 촬영한 민간위성사진을 분석한 <자유아시아방송> 2017년 3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남포항에서 원유하역시설 1개를 증설하는 공사가 2015년 10월부터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원유하역시설은 이미 완공되었다.
2021년 2월 1일 <미국의소리> 보도는 남포항을 촬영한 민간위성사진을 분석한 흥미로운 내용을 실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년 동안 남포항에 지름이 약 30m인 대형 유류저장고 6개가 새로 건설되었고, 2020년 10월부터 대형 유류저장고 5개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유류저장고는 지름이 18m인데, 새로 건설되는 유류저장고 4개는 지름이 32m이고, 나머지 1개는 지름이 25m라고 한다.
원유를 수입하지 않는 조선이 원유하역시설을 증설하고, 대형 유류저장고를 계속 증설하는 것은 조선에서 원유가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조선은 산유국이다.
4. 서조선만 유전에 들어간 중국의 원유채굴선
유전탐사부문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재미동포 박부섭 박사는 1995년에 조선에서 유전탐사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는 기존 유전탐사기술인 탄성파 탐사기법보다 정확도가 10배 더 높다는 마이크로렙톤(Micro-lepton) 탐사기법을 사용하여 탐사했다. 그가 탐사한 곳은 남포 앞바다에 있는 초도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대륙붕분지다. 그곳을 서조선만 분지라고 부른다. 서해는 평균수심이 45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얕은 바다인데, 그 얕은 바다의 대륙붕에서 25년 전에 본격적인 유전탐사작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서조선만 분지를 탐사한 박부섭 박사는 그곳에 5억8,00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6년 중국지질조사국은 서조선만의 석유-가스매장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했는데, 그 평가에 근거하여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서조선만 분지에 81억60,0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다. 5억8,000만톤과 81억6,000만톤은 엄청난 차이지만,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추산이 현실에 더 근접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중국해양석유총공사가 추산한 대로, 서조선만 분지의 원유매장량이 80억톤을 넘는다면, 그것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매장량과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면적이 500㎢에 이르는 광활한 서조선만 분지에 그처럼 엄청난 원유가 묻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곳은 중국, 미국, 로씨야, 영국을 비롯한 원유개발국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서조선만 유전으로 변모되었고, 세계 원유개발기업체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았다.
25년 전 박부섭 박사는 서조선만 유전에서 5개의 광구를 찾아냈는데, 그가 추산한 광구별 매량량은 다음과 같다. 아래에 열거한 5개의 광구들은 박부섭 박사가 탐사한, 일부 유전에 지나지 않는다.
제1광구 - 884만톤
제2광구 - 680만톤
제3광구 - 680만톤
제4광구 - 408만톤
제5광구 - 136만톤
총계 - 2,788만톤
서조선만 유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서조선만과 베이황하이(北黃海)는 조중해상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붙어있다. 서조선만은 조선의 영해이고, 베이황하이는 중국의 영해다. 1962년 김일성 주석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체결한 조중변경조약에 따르면, 두 나라의 해상경계선은 압록강 하구의 동경 124도 10분 6초를 기산점으로 하여 서해 남쪽 공해(동중국해 북쪽 해상)까지 일직선으로 그어진다. 서조선만과 베이황하이는 동경 124도를 해상경계선으로 하여 동서로 나뉜 것이다. 서조선만 유전이 바로 그 해상경계선에 가까이 있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중국은 그 유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산둥(山東)성 둥잉(東營) 인근에 성리(勝利)유전이 있다. 이 유전은 중국 헤이룽장성에 있는 다칭유전 다음으로 규모가 큰 중국의 제2유전이다. 성리유전의 원래 위치는 베이황하이 연안 해저였는데, 중국은 그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엔타이(煙臺)와 웨이하이(威海) 사이로 흐르는 황하(黃河)의 물줄기를 둥잉 쪽으로 돌려놓아 해저유전이 있는 바다를 육지로 만들었고, 그로써 성리유전은 해저유전에서 해안유전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중국은 성리유전의 원유매장량 가운데 20% 정도만 채굴했을 뿐이고, 80%가 남아있다.
그런데 서조선만 유전의 유맥이 성리유전의 유맥과 통한다. 서조선만 유전에서 원유를 뽑아 올리면 성리유전에 매장된 원유가 서조선만 유전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해저지형을 보면, 서조선만 유전이 성리유전보다 더 낮은 위치에 있으므로, 성리유전에 매장된 원유는 유맥을 타고 서조선만 유전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중국 제2유전의 유맥이 조선의 서조선만 유전으로 통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중국은 조선과 공동으로 서조선만 유전을 개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이 서조선만 유전개발에 시동을 건 때는 2005년이다. 2005년 12월 24일 조선과 중국은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베이징을 방문한 로두철 조선 부총리가 쩡페이옌(曾培炎) 중국 부총리와 함께 서명한 그 협정에는 “조선과 중국은 조선 령토에 묻혀있는 원유에 대한 리권을 중국의 기술과 자원을 활용한 조중공동개발로 공유한다”고 명시되었다. 2006년 6월 6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출입기자단에게 “조선과 중국은 평등하고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보하이만(渤海灣)에서 원유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으며, 앞으로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담은 합의서를 마련해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원유공동개발지역을 보하이만이라고 지적한 것은 착오로 보인다. 보하이만이 아니라 서조선만이라고 해야 옳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따르면, 조선과 중국은 서조선만 유전에 매장된 원유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한 이후 구체적인 원유개발계획을 담은 후속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 발언이 나온 뒤로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조선과 중국이 원유개발계획을 공동으로 작성하고, 후속합의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유개발계획을 공동으로 작성하는 작업이 워낙 복잡하고 힘든 일이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이 체결된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10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으므로,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과 중국이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조용히 파기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지만, 조선과 중국이 그 협정을 파기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 10월 31일 미국의 언론매체 <NK 뉴스>는 조선과 중국이 2005년 12월 24일에 체결한 해양원유공동개발협정을 마침내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소식을 전해준 것이다. 그 보도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진 3>
▲ <사진 3> 위쪽 사진은 2016년 6월 초 조선의 서조선만 유전에 나타난 중국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의 모습이다. 아래쪽 사진은 당시 중요우하이 17호가 원유채굴작업을 진행했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Rig라는 글씨가 원유채굴작업현장의 위치를 가리킨다. 그 주위로 보이는, 일련번호가 붙은 여러 개의 노란 표시들은 탐사정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섬이 초도다. 조선은 서조선만 유전에서 연간 6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조선은 자력갱생의 산유국이다. |
1) 2016년 5월 22일 중국의 국영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중국 랴오둥(遼東)반도 다롄(大連)항에서 14,000톤급 원유채굴선(jack-up rig) 중요우하이(中油海) 17호를 출항시켰는데, 그 특수선박은 6일 뒤에 조선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해설 --- 서해는 워낙 비좁은 바다라서 배타적경제수역이 존재할 수 없는데, 중국의 원유채굴선이 조선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착오였다. 서해에는 동경 124도를 해상경계선으로 하는 조선의 영해와 중국의 영해만 존재한다.
2) 당시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가 채굴작업을 한 곳은, 조선 영해 안으로 약 3km 들어가고, 조선 서해안에서 약 90km 떨어진 서조선만 분지라는 것이다.
해설 --- 중요우하이 17호는 2016년 초 중국 다롄조선소에서 건조된, 길이가 70m이고 폭이 76m인 원유채굴선이다. 중국은 건조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형 원유채굴선을 서조선만 유전에 보낸 것이다.
3)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가 채굴작업을 진행한 곳은 지난 시기 시추작업이 벌어졌던 제609호 탐사정(探査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제609호 탐사정에서는 하루에 원유 476톤을 채굴했었다는 것이다.
해설 --- 위의 정황은 그 탐사정에서 연간 17만3,700톤의 원유를 채굴했음을 말해준다. 서조선만 유전에는 그런 탐사정이 16개나 있다. 16개의 탐사정을 유정(油井)으로 개발하여 원유를 본격적으로 채굴하면, 연간 100만톤의 원유를 뽑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원유채굴선 중요우하이 17호는 2018년 1월 초 원유채굴을 갑자기 중단하고 중국 보하이만 유전으로 돌아갔다. 왜 그랬을까? 2017년 12월 23일 유엔안보리가 대조선제재 2397호를 결의하여 조선과 중국의 공동원유개발사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서조선만 유전에서 모처럼 본격적으로 진행된 대규모 원유채굴은 1년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원유개발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조선이 자력갱생의 힘으로 추진하는 독자적인 원유개발은 중국과의 공동개발사업이 중단된 이후에도 이전과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조선은 1980년대 후반 싱가폴에서 도입한 14,000톤급 원유채굴선 1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로 만든 소형 채굴장비들도 보유하고 있다. 외부에 알려진 유성호가 그런 소형 채굴장비들 가운데 하나다. 조선의 14,000톤급 원유채굴선은 수심이 깊은 서조선만 유전에 나가 원유를 채굴하고 있고, 소형 채굴장비들은 수심이 얕은 숙천군 연안유전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지금 조선은 유전지대에서 연간 5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의 집요한 제재횡포로 서조선만분지 유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원유채굴이 중단되고, 중국 원유채굴선이 보하이만 유전으로 돌아가자, 조선은 채굴조건이 해저유전보다 유리한 지상유전에서 원유를 증산하기 위해 힘썼다. 조선의 지상유전들 가운데서 원유를 가장 많이 채굴하는 곳이 바로 안주유전이다. 이 유전은 조선의 지상유전들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크다. 안주유전은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평안남도 숙천군 안주분지에 있다.
2002년 8월 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2002년 7월 초 평안남도 숙천군 장동리를 방문한 중국 석유탐사단은 그 지역에 설치된 원유채굴장비(sucker rod) 4대가 하루에 약 54톤의 원유를 채굴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안주유전에 속한 장동리 원유채굴장에서 연간 20,000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주유전에는 장동리 이외에도 원유채굴장이 여러 곳 있다. 2001년 5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안주유전에서 1999년부터 연간 3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4월 13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2010년에 안주유전에서 원유 20만톤을 채굴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안주유전에서 연간 30만톤의 원유가 채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주분지 유전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의 제2지상유전은 온성유전이다. 온성유전은 함경북도 온성군에 있다. 2001년 9월 싱가폴에 있는 원유탐사회사 쏘브린 벤처스(Sovereign Ventures Pte. Ltd.)는 두만강 하류에 있는 조선과 로씨야의 국경지대인 온성군에서 길이가 약 8km이고, 면적인 약 15,500㎢인 유전을 발견했는데, 2,040만톤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했다. 2003년 2월 1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로동자구와 삼봉로동자구에서 각각 원유를 뽑아 올렸는데, 삼봉로동자구에서 뽑아 올린 원유는 샘물처럼 투명한 초경량원유(super light crude oil)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품질 원유가 온성유전에 엄청나게 묻혀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2011년 4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유전에서 연간 10만톤의 원유를 채굴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실들을 종합하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조선은 서조선만 유전에서 연간 5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안주유전에서 연간 30만톤의 원유를 채굴하고, 온성유전에서 연간 10만톤의 원유를 채굴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는 원유채굴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채굴량이 연간 100톤으로 늘었을 것이다. 조선은 연간 100만톤의 원유로 자급자족하는 산유국이다.
미국과 그 추종국들이 악의적인 제재횡포에 매달릴수록 조선은 그에 대응하여 자기의 완성된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으며, 자본주의경제론리로 설명하지 못하는 일심단결과 자력갱생의 힘으로 제재장벽을 돌파하고 있다. 조선은 제재장벽돌파전에서 원유증산과 자급자족을 실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제재횡포를 받은 사회주의나라가 이루어낸 놀라운 ‘기적’이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의 다른기사보기
출처: https://irenk.net/?menuno=78
조회 결과 : 북중간 무역, 2021년 04월개요북중무역 2021년 1~4월까지 수출입 누계액은 4,815만 4,844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81% 감소 북한의 수출 누계액은 639만 2,906 달러, 수입 누계액은 4,176만 1,938 달러[북중간 전체무역]
첫댓글 소설하나 써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나옵니다.
1991년 소련이 분열되어 해체가됩니다.
중국의 등소평은 백묘흑묘론을 펴면서 영국과 모종의 협상을 하고 1999년 홍콩의 은행의 주식의 51%를 중국이 보유하고 영국은 49%를 보유하는것으로 협정을 맺고 51%의 주식을 자신의 아들한테 넘깁니다.
등소평의 아들은 문화혁명때 홍의병의 의해 건물밖으로 내동댕이쳐서 다리를 못쓰게됩니다.
등소평은 모주석에게 아들을 치료해달라 애원했지만 거절 당합니다.
실권을 장악한 등소평은 자신의 아들한테 홍콩의 은행을 장악하게 하고 중국의 하나의 군관구를 총괄하게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중국 국가주석은 5년 두번밖에 못하게 못을 박습니다.
강택민은 등소평이 죽은 후 미제와 협상을 하고 석유이권을 받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 하기 위해 미제와 힘을 합해 북조선을 침략하기로 약속을 하면서 그 시기를 1998년으로 잡고 약 40여만명의 인민해방군을 압룩강에 집결 시킵니다.
그리고 중국의 핵기지에 수소폭발이 일어나고 조선에서 광명성 1호가 창공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북은 1997년 까지 대부분의 석유를 구소련하고 중국한테 제공받았는데 구소련이 분열되고 중국의 배신으로 석유가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고난의 강행군은 시작이 바로 에너지 부족으로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미제와 중국의 오판이 시작됩니다.
석유가 없으면 군 장비는 무용지물이 되지만 핵미사일은 아니란겁니다.
이점을 나중에 미국이 알고뒤로 자빠집니다.
북은 1998년 식량난이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석유의 문제가 남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이란한테 합니다.
걸프전후 이란은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이라크와의 전쟁때 구소련의 도움으로 승전을 하였지만 구소련이 와해된 후 도움받을 곳이 사라졌습니다.
@하이고 그때 북의 광명성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미제가 절절 멜때 조선의 제의가 들어오자 반신반의한 이란은 조선에 특사를 파견합니다.
조선은 이란의 특사를 최첨단 지하기지로 안내합니다.
각종 미사일 핵무기 핵잠수함 전투기등등이 계열별로 생산하는 기지를 보고 입이 딱!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란의 특사는 돌아가고 테헤란 공항에서 기자와 몇마디 대화를합니다.
기자 : 어디를 다녀 오셨습니까?
특사 : 신의기지를 다녀왔습니다.
기자 : ...
이란의 특사는 신의기지를 <알카이드>라고 합니다.
<알카이드>는 북두칠성의 하나의 별이름으로 신들의 식량이나 전쟁물품들을 배비하는 별로 알려진곳입니다.
동양에서는 <파군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란은 북을 <알카이드>라고 하는데 이것이 미제의 감시망에 걸리고 미제는 악의 축이라고 조선. 이란. 이라크? 를 지명합니다.
그리고 <알카이다>를 급조하고 911사태를 조작합니다.
<알카이다>는 사우디의 왕족으로 수십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고 그 가족은 미제나 사우디 정부의 보호를 받고 호의호식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알카이다>가 죽었을까요?
ㅎ~
이상 소설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이고 믿거나에 한표...
출처: https://m.blog.naver.com/bhjang3/140207474215
놀라운 북한의 원유(석유)매장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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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딱다구리
2014. 2. 25. 15:45
북측이 그 설명회에서 공개한 것은 1996년 여름에 작성한 유전개발에 관한 영문보고서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현재 1만3천 평방km에 이르는 서조선만 분지에 원유시추공 13개를 뚫었고, 2천 평방km에 이르는 안주 분지에는 원유시추공 세 개를 뚫었으며, 3천500 평방km에 이르는 동조선만 분지에는 원유시추공 두 개를 뚫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북측이 원유매장량을 최소 588억2천400만 배럴에서 최대 735억3천만 배럴로 추정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1997년 1월 2일) 1997년 9월 캐나다 캔텍(Kantech)사는 서조선만 분지에 400억-500억 배럴의 원유가 묻혀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원유도 중요한 자원이지만, 희유 광물자원이 더 큰 보물이지요....
출처: http://www.jajusibo.com/28230
북 희토류 20억t 매장 추정, 세계 1위에 올라설 양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6-17
▲ 세계 주요 희토류 매장량, 북의 희토류 원석 매장을 10억톤으로 보았을 때 추출가능한 희토류가 4800만톤이었다. 최근 20억톤으로 그 매장량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자주시보
국내 연구진이 북한 지역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으로 추정한 북 희토류 매장량이 20억톤으로 밝혔다.
17일 연합뉴스는 같은 날 한반도 광물자원개발(DMR) 융합연구단이 북 지역에는 철(무산), 금(운산·대유동), 동(혜산·허천), 연-아연(검덕), 마그네사이트(대흥·쌍룡·룡양), 희토류(정주) 등 광물이 분포돼 있다며 이중 활용가치가 높은 희토류는 20억t 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분석 발표했다고 전했다.
20억톤이라면 북이 희토류매장량 세계1위국가로 등극할 수도 있는 막대한 양이다. 사용가능한 희토류는 매장된 원석에 들어있는 희토류 산화물을 추출해내야 하는데 그 희토류 산화물 양을 이전 희토류 원석을 10억톤 정도로 보았을 때 4800만톤이었다. 이 양도 세계 2위였다. 20억톤면 추출할 수 있는 희토류 산화물이 9600만톤 즉, 1억톤에 육박하게 된다. 세계 1위 중국이 8900만톤으로 알려져 있다.
북은 이렇듯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북의 4대 광산에 집중되어 있어 채굴 비용이 적게 들며, 원석에 함유된 희토류 양이 중국의 4배나 되어 매우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seadjk/221278678870
북한의 희토류매장량에 대하여.
프로필
seadjk
2018. 5. 18. 13:25
북한의 희토류 광산 분포도와 전 세계 매장량 (출처 중앙일보)
북한은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루토늄, 우라늄, 석유, 마그네사이트, 갈탄 등 우리나라에서 생성되지 않는 자원을 비롯하여 철광석. 무연탄, 텅스텐 등 다양한 자원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북한의 가장 큰 무기는 지하자원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며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남한의 기술이 만나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76628
中 무역전쟁 신무기 '희토류'···매장량은 북한이 세계 1위?
중앙일보
입력 2019.05.23 05:00수정 2019.05.23 12:16
미 지질조사국(USGS)이 올 2월 발표한 최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희토류 글로벌 생산량은 17만t이다. 전년도(13만2000t)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다. 1위 생산국은 단연 중국이다. 12만t으로 전체 생산량의 70.6%를 차지한다. 호주(2만t), 미국(1만5000t), 미얀마(5000t), 러시아(2600t) 등이 뒤를 잇는다.
현재까지 파악된 매장량 역시 중국이 가장 많다. 4400만t으로 전체(1억2000만t)의 3분의 1 이상을 보유 중이다. 중국 경제개방을 이끈 덩샤오핑 전 주석이 1992년 연설에서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북한의 희토류 매장 규모는 글로벌 공식 집계에 잡히지 않는다.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북한 정부가 매장량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발표한 적이 없어서다. 전문가들의 추정치는 다소 큰 편차를 두고 엇갈린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0만~ 4800만t가량이 북한에 매장돼있다고 발표했다. 최대치가 맞는다면 북한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희토류 보유국이다. 최소치 역시 세계 4위로 작지 않은 규모다.
미확인 매장량 곳곳에…경제성 여부가 관건
일각에서는 북한 희토류 매장량이 현 글로벌 수준을 10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 광물자원개발(DMR) 융합연구단은 2016년 6월 북한 함경남도, 평안북도, 황해도 일대에 희토류가 20억t가량 매장돼 있다고 발표했다. 무려 USGS가 발표한 글로벌 매장량 총합(1억2000만)의 16배가 넘는 양이다.
출처: http://www.jajusibo.com/36838
북, 엄청난 비축유에 중국 원유제재 무용지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1-27
본지 소식통이 중국의 원유 제한조치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핵심 근거는 비축유였다. 북은 오펙과 미국이 갈등을 하거나 베네수엘라, 러시아 등 제3세계 반미국들의 원유수출에 타격을 주기 위해 가혹할 정도로 유가를 낮추었을 때 북은 엄청난 양의 원유를 비축했다는 것이다. 그 원유를 지금 안주지구의 남흥화학공장에서 정제하여 필요한 각종 연료들을 정제 생산하고 있을 것으로 진단하였다.
또한 그는 북 자체로 일정양의 원유를 생산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그 양을 더욱 확대해가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정제공장이 있는 안주지구의 안주분지에는 많은 양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출처: http://www.shinmoongo.net/76631
한호석 소장은 해당 기고글을 통해 북한의 항공기 산업을 분석한 후 “2015년 1월 현재 북한은 13개월째 중국산 원유를 한 방울도 수입하지 않았다. 북한의 원유수입선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어서 그렇지 않겠는가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 북한이 수입한 러시아산 원유는 약 4만5,000t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원유수입량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에 252만t, 2010년에 52만t이었는데, 2014년에는 4만5,000t으로 급감했다.”면서, “1990년에는 북한에서 원유가 생산되지 않았으므로, 당시 원유수입량 252만t은 원유수요량과 맞먹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2014년도 원유수요량은 1990년에 비해 크게 늘어 300만t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했다.
한 소장은 이와 함께 <한국경제> 2011년 4월 13일 보도를 빌려 “평안남도 안주분지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연간 20만t이고, 함경북도 라선지역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연간 10만t”이라면서, “그 두 유전의 원유생산량을 합해봐야 연간 30만t밖에 되지 않으니, 나머지 270만t 정도의 원유가 쏟아져 나오는 거대유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거대유전은 서해안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서조선만 대륙붕분지에 있는 해저유전”이라고 분석했다.
한 소장은 또한 “서조선만 해저유전의 원유매장량은 53억3,000만t”이라면서, “수심이 50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얕은 바다속 뻘밭에 있다"면서 경제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출처: https://www.opinet.co.kr/user/ofunit/getOfunitProductSelect.do
원유 1톤=7.33배럴
300만톤=약2,200만배럴
100만톤=약733만배럴
원유 1,470억 배럴(서한만 매장량)
배럴→톤(0.136)
=1470억*0.136= 약 200억톤
2017년 기준으로 이란(1584억 배럴)
:4위(원유 매장량)
북한 서한만 원유 매장량만(원유 1,470억 배럴)
계산했을때 5위로 추정
늘 좋은 정보 고맙게 보고잇읍니다.......핵융합 기술이 잠잠 하군요......
신형 핵잠함이 올 연말 혹은 내년초로 군사평론가들이 예상하는데 그쯤에서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감사합니다......북미가 짜고하는 것 같군요.....
출처: http://www.jajusibo.com/40962
그렇다면 북한은 석유를 개발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석유개발의 시작은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던 1950년부터다.
당시 북한은 경흥, 길주, 명천 등 육상지역에 15개의 시추공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시추는 모두 실패하였다.
이후 1968년 숙천지역에서 유징(원유 매장의 징후)을 발견하여 탐사를 시도했다.
이때도 역시 원유를 뽑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해상 석유 탐사로 눈을 돌렸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서한만 탐사였다.
북한은 서한만 탐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탐사기법을 사용했다.
1965~1980년 중국과 합작으로 서한만에 있는 초도 북부 지역에 대한 공중 자력 탐사 작업을 벌였다. (공중자력탐사작업이란 공중에서 암석에 포함된 자기성 광물을 찾거나 자기장의 세기나 방향을 통해 지질조사를 하는 탐사법이다.)
같은 기간 북한 단독으로 중력 탐사도 진행했다. (중력에 의한 가속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 지하 암석의 밀도차에 의한 지구 중력장의 변화를 측정)
또 1976~1980년에는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
도 진행했다. (지하매질을 전파해온 탄성파의 도달시간을 측정하여 지하매질의 탄성파 속도 분포를 파악하는 탐사법)
그만큼 신중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원유 탐사 작업을 한 것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북한 영해에 속하는 지역을 3개 광구로 나눠 노르웨이·러시아·호주·스웨덴·영국 등 해외 유수의 석유 회사와 공동 탐사를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탐사한 결과로 북한은 1977년부터 시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안주 분지에 2개, 온천 분지에 1개, 서한만 분지에 7개의 시추공을 굴착, 두 유정에서 석유가 나왔고 나머지에서도 석유와 가스 징후가 나타났다.
이미 1970년대부터 북한은 석유를 뽑아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718848
북한 석유개발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1998.11.02 00:00
북한은 지난 80년대부터 자체기술로 남포앞바다의 서한만 (서조선만) 분지, 원산앞바다의 동한만분지, 안주분지등 3개 지역에서 원유 탐사작업을 벌여왔다.
분지규모가 가장 넓은 서한만 지역의 경우 모두 13개의 시추공으로 뚫어 탐사를 벌인 결과 지난 85년 1개 시추정에서 하루 4백50배럴을 생산하는 유전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석유개발에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 '조선유전개발 투자설명회' 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설명회에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참석치 않았고 유개공.LG.현대등 한국측 관계자만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PRINT/240922.html
2007. 10. 5.
서한만 분지에서는 지금까지 13개 공을 시추해 1985년 한 곳에서 소량이기는 하나 하루 450배럴의 원유가 시험 생산된 바 있다. 석유공사 탐사사업처 관계자는 “이는 석유 생산이 가능한 퇴적분지가 존재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의 원유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남한에 공급하겠다고 한 것도 서한만 분지를 두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안주 분지도 70년대에 하루 70배럴 규모의 석유를 퍼올린 적이 있지만 대규모 개발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동한만 분지는 가스전 매장 징후만 발견된 상태다.
서한만 일대의 석유 매장량에 대해서는 아직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북쪽은 50억∼430억배럴, 또는 250억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매장량은 아시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 50억배럴보다 큰 규모다.
출처: https://m.blog.naver.com/bhjang3/140207474215
한호석님 글을 오랜만에 보았는데 아래 내용이
눈에 띠네요
원유시추선이 보통 14000톤급인데 1970년도에
석유시추기를 분해하여 역설계했고 개량했다는
내용으로 보아 자체 원유 시추선을 수없이 많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네요.
북(조선)이 동유럽 최대 산유국인 루마니아에서 원유시추기를 수입한 해는 1970년이다. 북측은 미사일을 독자적으로 개발할 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루마니아제 원유시추기를 분해하고 역설계하여 자체 기술로 원유탐사선 '유성호'를 만들었다. 1975년에 '유성호'는 안주 분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제303호 광구를 비롯한 세 개 광구에서 땅밑 2천500m까지 파 내려가 원유를 찾아냈고 하루 70배럴씩 시험생산에 성공한 바 있다. 유황성분이 적은 질 좋은 원유였다.
1998년 5월 영국의 석유기업 소코 인터내셔널(Soco International)은 북(조선)과 유전탐사계약을 맺고 북(조선)이 보유한 원유시추기 성능을 개량하기 위하여 기술을 지원하고 부품을 공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