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은 불교에서 깨달음의 상징이며 깨달은 자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인간은 불교에서 말하는 낙원인 정토세계 안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속과 정토를 연결해 주는 연꽃은 연못에서 자라나지요. 즉 연못은 이러한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가문은 연못을 탄생신화로 삼고 있습니다. 왜 굳이 연못을 성으로 삼았을까요.
여기에서 연씨가문이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는 아니한지 의문이 듭니다.
사실 기록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평양천도후 급성장한 낙랑왕씨가문출신으로서 재상을
지낸 왕고덕 또한 불교에 많은 관심을 보인 인물입니다.
따라서 평양을 기반으로 성장한 귀족들이 불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어쨌든 연씨 가문이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연개소문과 연정토의
이름을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의문점은 연개소문은 불교를 핍박했던 점입니다. 물론 정치적
정황이 있었지만요...불교와 친밀했던 연씨가문의 연개소문이 굳이 그토록 불교를 탄압해야
했었을까라는 의문점과 연개소문의 이름이 또한 개금으로도 불렸음을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개소문의 한자의미를 풀어보니...
개 : 일반적으로 덮다라는 의미이나, 불교법회에서 사용하는 덮개를 의미하기도 하며
특히 '번뇌'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답니다.
소 : 깨우치다.
문 : 글
--> 굳이 해석하자면 "번뇌가 있다. 글을 깨우치다"정도로 일단 두겠습니다.
다음 개금의 한자의미를 풀어보니...
개 : 숭상하다. (삼국사기와 유사의 한자가 다르더군요. 그러나 풀초변 하나 차이로서
형성문자이니만큼 덮다라는 의미를 강하게 할 뿐-덕분에 숭상하다란 의미가 뒤로 밀렸지만-
큰 차이는 없는듯 합니다.)
금 : 쇠
-->쇠를 숭상하다.
이쯤 생각하니 퍼뜩 떠오르는 것이, 연개소문 집안의 내력이었습니다. 연자유와 태조는
쇠를 잘 다룬다고 했지요. 결국 쇠를 숭상한다는 의미가 연씨집안 내력과 어느정도
부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까지 소결로써 생각한 것이, 혹시 개소문의 본명은 개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개소문은 사후에 후대 사람들, 특히 불교세력에 의해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였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개소문의 의미가 '번뇌가 있다'로 봤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선
죄가 많은 사람은 번뇌가 있다고 합니다. 불교계 입장에서는 불제자를 핍박한 연개소문은
죄가 많아 번뇌도 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명은 집에서 지어준 개금이었으며, 개소문은 개소문에 대한 기록을
남겼던 불교계에서 비난의 의미와 계도적 의미를 겸하여 지어준 이름이 아닐까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즉 "죄를 많이 지어 번뇌가 많은 것이다"라는 비난의
의미와 "번뇌를 깨우쳐야 한다?" 또는 "번뇌가 많기 때문에 글을 깨우쳐야 한다?"라는
계도적 의미, 이중적 의미 말입니다.
물론 연개소문이 불교계 입장에선 큰 죄를 지었지만 불교는 또한 자비를 善으로 삼기 때문에
그리고 일반적으로도 불교계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계도적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한 이름을
지어주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의문이 생기더군요.
형은 쇠를 숭상한다는 무인적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고, 동생은 불교의 낙원인 정토를
이름으로 지어준 까닭이 무엇일까...
옛날엔 부모님이 이름을 지어주실 때에 자식이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그와 관련된
의미를 부여한 이름을 지어주시곤 합니다. 그러다보면 형제가 다른 성향의 이름을 가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연개소문에게는 가업을 계승하라는 의미에서 개금을, 연정토에게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불교계에 귀의하여 가문을 위해 덕을 쌓으라는 의미로 불교색채가 뚜렸한
정토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전에는 이름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명치호태왕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여기까지 왔는데요...
사실 가늘디 가는 지푸라기만을 잡으며 온만큼 스스로도 억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전호태교수님 벽화책을 보며 연씨가문의 연못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차에
호태왕님과의 대화를 통해 개소문의 이름이 불교적 색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느껴서
같이 생각해본 것들을 글로 써봤습니다.
특히 연개소문의 이름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저도 억측이라고 자인한만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시면 상처받을겁니다.
한단인님이 제기하신 의문이...연개소문의 연씨와 연못을 연계시킨 것에 대한 것인지,
연못과 연꽃과의 연계에 대한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군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연못과 연꽃의 관계를 위와 같이 당연시 여깁니다. 그래서인지
불교적 의미로서 연못을 그린 그림에서는 대개 연꽃도 동시에 그려지는 것으로 압니다.
한단인님이 제기하신 문제점처럼...개소문이 사후에 기록된 것이라면 가수미에 대한
설명이 힘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당시 정황을 설명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해결될 수 있을듯 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도 제 이름에 부족한게 있다고 하셔서 스님께서 다시 지어주신 이름으로
개명했습니다. 스님중에서는 주역이나 성명학에 밝으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예를 들어
어떤 스님이 한 집앞을 지나다 아이의 관상을 보고 액을 면하게 해주는 의미로 이름을
지어주엇다는둥 이야기도 있듯이...
연씨집안이 평소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면 - 그랬기 때문에 동생 이름을 정토라
지었다고도 보이며 - 스님이 연개소문의 운명을 예측해 보고 개소문이란 이름을
붙여준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볼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아명은 개금이고, 개소문은 성장해서부터 사용한 이름이겠지요.
3월 9일 새로이 추가...
명치호태왕님 도움을 받아서 일본서기내용에 대해 더 자세히 분석해 봤습니다.
연개소문 정변 이후 첫번째 접촉에서의 기록입니다.
고구려 사신이 난파에 왔다. 여러 대부를 난파군에 보내 고구려국에서 올린 금은 등 아울러
그 헌상한 물건을 점덤하게 하였다. 사신은 헌상하는 것을 끝마치고 "지난해 6월에 제왕자
(弟王子- 대양왕, 보장태왕의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가을 9월 대신 이리가수미가 대왕
(영류태왕)을 시하여 ㅇ아울러 이리거세사 등 180여인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왕자(대양왕)
의 아들을 왕(보장태왕)으로 하였습니다. 동족인 도수류금류를 대신으로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다음은 두번째 기록입니다.
"신라의 춘추는 내신 개금(연개소문)에게 뜻한 바를 얻지 못하고...
마지막 기록...
이달 고구려 대신 개금이 , 그 나라에서 죽었다.
처음의 기록에선 가수미로, 두번째와 세번째에서는 개금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걸은 더 나아가, 처음의 기록은 연개소문의 첫번째 접촉에서의 기록이며 첫대면인만큼
상당히 상대방에서도 격식을 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세번째 기록은 친분을
어느정도 쌓았다라고나 할까...아무튼 처음보다는 상호간의 벽이 어느정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설정이 가능할듯 싶습니다.
즉 개소문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격식을 차리는 자리에서는 당연히
개소문이란 이름으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반면 친분이 두터운 사이에서는 종종 상대방의 아명을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매우 친분이 두터워야 겠지만요...
어쨌든 일본서기에서의 가수미와 개금의 용례를 굳이 분석하자면, 개금은 아명정도로
볼 수 있을것 같고, 개소문은 성장하여 공식적으로 사용한 이름으로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연개소문의...(내용추가 + 다시 추가)
돌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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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0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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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개소문 집안은 철기방을 기반으로 성장한 집안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불교는 그리 중요한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한 가업때문에 개금이란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연못을 성으로 사용한 것을 보아 혹시 집안이 불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불교가 고구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벽화에서도 불교와 곤련있는 연꽃이나 연못이 많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내세관입니다. 이것은 장례의 독특한 관습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이며 더 나아가 결혼풍습에도 어느정도 관련성이 보입니다. 이러한 내세관은 삶과 죽음에 대한 개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강한 정신력,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장례식은 유교적 관습에 따라 진중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반면, 고구려의 장례식은 일종의 축제와도 같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고구려인들은 죽으면 정토세계에 다시 태어나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의 불교관과 아주 작으면서도 큰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여하튼 불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다고 봅니다.
본문에 나와있듯이 연정토의 정토(淨土)도 불국정토(佛國淨土)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단순히 글자만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고구려는 분명 후기에 들어서 한자식(혹은 불교식)이름을 지양하였습니다.
돌부처님. 이름 분석의 접근 방법은 괜찮다고 생각되는데 그렇게 볼 경우 연개금이라는 이름 분석과 이리가수미라는 이름 분석은 어떻게 해결하실런지요? 또한 연못이 연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아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