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산토끼 발상지에서
일요일 오후 우포 생태촌 유스호스텔로 모여든 동기들을 일곱 가족이었다. 작년 봄 아내를 멀리 보낸 친구는 얼굴이 보이질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숙소에 여장을 풀어놓고 읍내 외곽 오리구이 식당으로 옮겨 저녁을 먹고 왔다. 숙소로 돌아와 연장전으로 통영 친구가 준비한 생굴과 홍합을 쪄 안주로 삼았다. 함양에서 온 친구는 그곳 특산 곶감을 꺼내 밤참을 겸한 간식이 되었다.
나는 초저녁 일찍 잠드는 습관에 따라 먼저 잠들어 한 시간도 채 자질 않고 일어나 두 친구만 남은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지켰다. 즐기던 술을 끊어 친구의 잔이 비면 연방 채워주고 주제가 점차 뒤섞여가는 토론에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나는 생수병만 안고 간간이 잔에 따라 한 모금씩 마시다가 두 시가 넘어 낭자한 술상과 방바닥을 정리하고 잠을 청해도 잠이 들지 않아 뒤척거렸다.
날이 밝아와 숙소 바깥 제방과 숲길로 산책을 나서 보려다 마음을 거두었다. 이제는 나이도 있는지라 지난날처럼 너무 이른 새벽부터 움직임은 좋지 않을 듯했다.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보내는 시조로 어제 우포에서 본 저어새를 글감 삼아 한 수 남겼다. 호실을 달리했던 여성분들은 해장이 될 황탯국과 묵나물 밑반찬으로 훌륭한 아침상을 차려내 수저를 들기 황송할 정도였다.
아침 식후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다가 오전 일정을 같이 했다. 남지로 옮겨 개비리길을 걷자는 안은 후일로 미루고 우포에서 머물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숙소에서 우포 생태촌을 지나 제대 제방으로 오르니 광활한 우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제 내가 걸어서 지나온 우포 생태관안내소와 전망대가 아스라했다. 목포와 쪽지벌 방향이 아닌 사지포 방향 숲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처가와 골프 일정이 잡혔던 한 동기 내외는 식전 진주로 먼저 떠나고 나머지 여섯 가족이 남았다. 통영의 동기는 중년에 교직에서 먼저 나와 자영업을 하는데 아내는 다른 일정과 겹쳐 동행하지 않아 나처럼 혼자였다. 퇴직 후 의령으로 귀촌한 친구는 가을에 캔 고구마를 나누어 고마웠다. 대구에서 아직 현직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기는 설 쇠고 따님 혼사가 있다는 청첩장을 돌렸다.
진주로 먼저 떠난 친구는 새벽녘 나에게 약재를 달여 식혀 담은 생수병을 안겨 주어 배낭이 묵직했다. 그는 올겨울 가리비를 택배로 보내주어 잘 먹었는데 이번엔 당귀를 달여 먹는다면서 나에게도 한 병 나눔을 했다. 일행은 점심을 들기 위해 찾아낸 식당으로 이동했는데 내가 어제 읍내에서 먹었던 차림인 수구레국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이방면 옥야였다.
창녕 이방은 외부로 ‘산토끼’ 동요 발상지로 알려진 고장이다. 한때 초등교사를 지낸 이일래가 해방 전 이방에 근무할 적 노랫말을 짓고 곡을 붙였다고 한다. 면 소재지에 산토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고 했으나 월요일은 휴관이라 들리지 않고 점심을 들 식당으로 바로 갔다. 나는 오래전 창녕합천보를 거쳐 현풍 곽재우 묘역을 찾아가던 길 지나친 시골 장터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일행이 찾아간 식당은 수구레국밥으로 알려진 맛집인 듯했다. 우리가 식사 중일 때 바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다. 여성분은 살점 고기가 거북했는지 선짓국밥을 시켰고 동기들은 수구레국밥으로 맑은 술안주로 삼기도 해 잔을 채워주었다. 식당을 나와서는 어제와 역순으로 각자 집으로 귀했는데 나는 의령으로 가는 동기의 차에 동승 적교를 거처 신반으로 갔다.
신반은 의령 동부로 대구와 창녕을 접했고 마산으로 가는 교통편이 있었다. 시골 버스 정류소에서 남지행 버스를 타고 박진교를 건너 남지에 이르기까지 승객은 나 혼자 타고 갔다. 도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와 통화를 나누어도 심심했을 기사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였다. 남지 터미널에서 마산 합성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창원으로 와 집 근처 카페에서 꽃대감을 만나고 왔다. 2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