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당구대 앞에 다시 섰을 때는 공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8강전에서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는 세트스코어 0-2로 패배 직전에 놓였을 때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카이는 지난 27일 강원도 정선군의 하이원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 여자 프로당구 시즌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LPBA 챔피언십' 8강전에서 한지은(에스와이)에게 세트스코어 0-2로 지고 있었다.
8강전에서 첫 방송 경기를 하다 보니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1세트와 2세트를 너무 쉽게 내주면서 순식간에 탈락 위기에 놓였다. 2세트까지 경기 시간은 31분. 같은 페이스로 3세트도 패하면 불과 1시간도 안 돼서 경기를 마칠 판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무조건 반전을 일으켜야 하는 선수는 다음 세트에서 단시간에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손바닥 뒤집듯이 돌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인데, 신기하게도 이런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가 간혹 일어난다.
나락에 빠졌다가 어떻게 일어설 수 있는지 사실 본인도 잘 알기 어렵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쌓아온 훈련량이 이럴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 당시 완전히 코너에 몰려 있던 사카이도 몹시 힘겨운 순간을 딛고 일어나야 했다.
경기가 끝나고서 당시 상황에 대해 사카이는 "불안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마음은 평온했다"라고 말했다. 불안해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했던 것이 어찌 보면 대역전극의 첫 단추였던 셈이다. 사카이는 "한지은 선수가 너무 잘해서 내가 여러 가지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사카이는 3세트에서 5이닝까지 단 1점에 그치며 여전히 힘겨운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런데 6이닝에서 사카이이가 옆돌리기를 성공시키면서 마침내 반격에 나섰다. 제1적구를 두껍게 끌어야 하는 공이었는데, 정확한 두께와 회전으로 사카이는 이 공격을 득점한 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앞돌리기와 뒤돌리기로 2점을 더 득점하고 이번 경기에서 처음 점수를 앞섰다. 한지은의 다음 공격도 좋아서 4:5로 금방 역전되기는 했지만, 손맛을 본 사카이의 폼이 살아나면서 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사카이는 "3세트에서는 다행히 경기장 분위기가 익숙해졌고, 시간이 좀 지나서 집중할 수 있었다"며 그 순간에 "앉아 있으니 가족 얼굴이 떠올랐다. 그게 힘이 됐고, 당구대 앞에 다시 서면 공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다음 7이닝 타석에서 사카이는 수구가 쿠션에 거의 붙어 있어서 돌아 나오는 각이 애매했던 스리뱅크 되돌리기를 성공하는 등 4득점에 성공하며 8:5까지 리드했다. 그리고 8이닝에서 남아 있던 3점을 모두 득점하고 11:5로 3세트를 승리하며 1-2로 겨우 한숨을 돌렸다.
4세트에서 사카이는 5이닝까지 한지은이 2점에 묶여 있는 사이에 3점, 5점, 3점으로 11점을 득점하고 11:2로 승리, 2-2 동점을 만들어 5세트로 승부를 연장했다.
결국, 한 번 살아난 사카이는 끝까지 흐름을 유지하고 8이닝 만에 9:3으로 5세트도 따내며 3-2로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4차 투어 '에스와이 챔피언십' 64강전에서 사카이는 한지은과 21이닝 동안 23:23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이런도 4점씩 같아서 두 번째 하이런이 3점이었던 사카이가 32강에 진출했다. 사카이는 이 고비를 넘기고 이 대회 결승까지 올라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사카이의 역전승은 계속됐다. 당시 16강에서 사카이는 임정숙(크라운해태)에게 1세트를 내준 뒤 2, 3세트를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고, 8강에서는 김보미(NH농협카드)에게 이번처럼 0-2에서 3-2로 대역전승을 거두면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언더독' 박다솜에게 0-1에서 3-1로 승리한 사카이는 결승에서 김민아(NH농협카드) 역시 1-2로 지고 있다가 4세트부터 3연승을 거두며 4-2로 역전 우승을 일궜다.
이번 투어도 그때처럼 한지은과의 어려운 승부에서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남은 사카이는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노리게 됐다.
28일 오후 4시 30분에 벌어지는 이번 준결승에서는 김세연(휴온스)과 대결한다. 두 선수의 최근 대결은 2021-22시즌 월드챔피언십 32강전이었다.
당시 경기에서 사카이는 김세연에게 0-2로 패했다. 또한, 그 시즌 개막전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 8강전에서도 김세연에게 1-2로 져 통산 전적에서 2패로 지고 있다.
사카이는 준결승전에 대해 "매우 강한 선수이기 때문에 오늘도 어려운 경기가 예상된다"며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본 선수 최초 LPBA 투어 2승까지 얼마 남지 않은 사카이가 과연 난적 김세연을 넘고 결승에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정선/이용휘 기자)
출처 : 더빌리어즈 https://www.thebilliards.kr/news/articleView.html?idxno=23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