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글날이었다. 공휴일에서 빠져버린 이후로 그 빛이 더 바래버린 한글날이었다. 이른바 세계화란 명목으로 국어교육과 한글은
뒷전으로 밀리고 영어가 더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대학 도서관에도 전공서적을 보는 학생보다 영어책을 보는 학생이 더 많아졌고,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우리말보다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는 세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우리의 말, 우리의 한글교육이 21세기를 맞아
최대의 위기를 맞은 듯한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미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이젠 영어를 못하면 사람구실도
못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어제 한글날을 맞이하여 글 한편을 쓰려 했으나 조선일보 칼럼에 아주 훌륭한 글이 올라왔고, 독자마당에도, 이 곳에도
그와 관련한 글들이 올라왔기에 중복을 피하고자해서 그만두었다.
다만 그 동안 이 곳과 독자마당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들 중 자주
틀리는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하기로 했다. 글자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작성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오타가 나는 경우가 있다. shift키를 누르지
못해 생기는 오타도 그런 예일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이 잘못된 맞춤법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경우에는 단순 오타로 보기는 어렵다.
단순 오타로 보이는 것들은 제외하고 반복되는 것들을 위주로 잘못 쓴 사례 몇 가지를 나열하겠다.
* '유례(類例)'와
'유래(由來)'를 혼동하는 경우 이번 테러사건은 사상 유래가 없는 참사입니다. -> 이를 '유래'라고 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유례'라고 써야한다 '아차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유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를 '유례'로 쓰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유래'라고 써야한다.
* '궤변(詭辯)'을 틀리게 쓰는 경우 당신은 괘변(?)론자다. 소피스트들의
괴변(?)은 유명하다. -> 둘 다 '궤변'이라고 써야 옳다.
* '게시판(揭示板)'을 '계시판(?)'이라고 쓰는
경우 계시판에서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있다. -> 신의 계시(啓示)를 적은 계시판(啓示板)인가? 모세의 10계(十戒)를 적은
목판인가? 거기에 육두문자가? '게시판'이라고 써야 옳다.
* '벌레'를 '벌래'로 쓰는 경우 난 바퀴벌래를 비롯하여 모든
벌래를 무서워한다. -> '벌레'가 맞는 말이며 '버러지'도 벌레로 써야 바른 표현이다.
* '가르치다(敎)'를
'가리키다(指)'로 쓰는 경우 선생님이 가리켜 주셨다. 선생님이 가르켜 주셨다. -> 모두 '가르쳐 주셨다'로 써야 바른
표현이다. 그리고 '아르켜 주셨다', '아리켜 주셨다'라는 표현도 종종 보는데 아마 '알다' + '가르치다'를 짬뽕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헉...짬뽕... 두 단어의 이상한 합성쯤 되는 정체불명의 표현이다. 모두 '가르쳐 주셨다'라고 해야 한다.
* '역할(役割)'을
'역활(?)'로 쓰는 경우 어업협상에 있어 그의 역활은 매우 중요했다. -> '역할'은 사전적 의미로 '대상이 어떤 일에
있어서 가지는 자격이나 의무나 기능. 구실'로 정의된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역활'이라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굳이 '역활' 의미를
만들자면 '役活'로 '일을 맡아 혹은 일을 하여 생활하는 것' 정도의 말이 될 것이다.
* 시대유감 필진이신 '촌닥'을
'촌닭'으로 쓰는 경우 ->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잘못 쓰는 것을 보았다. 사실 국어사전에는 없는 '촌닥'보다야 '촌닭'이 더 구수한
말이지만 '촌닥'이란 촌닥님 스스로 밝히셨 듯 시골을 의미하는 '촌'과 '닥터'의 합성어다. 즉 '시골의사'이다.
* '가게'를
'가계'로 쓰는 경우 생선가계에 들러 고등어를 샀다. -> 사실 오타로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의 글에서 3번이나
'가계'라고 쓰기에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리스트에 넣게 되었다. 당연히 가게가 맞는 말이다.
* '술래잡기'를
'술레잡기'로 쓰는 경우 다방구, 술레잡기 놀이를 하며 놀았습니다. -> '술래잡기'가 바른 표현이다.
*
'화폐(貨幣)'를 '화패'로 쓰는 경우 화패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습니다. -> 역시 오타로 보고 싶었다. 그러나
'화패'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조개패(貝)도 재물의 의미가 있으므로 '화패(貨貝)'라고 알고 써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지금도 대평양 군도 어느 원주민들은 아직 조개를 화폐로 쓰기도 한다니 과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나 적어도 국내외 경제 문제를 언급할
때는 '화폐'라고 해야 한다.
* '찌개'를 '찌게'로 쓰는 경우와 '육개장'을 '육계장'이라고 쓰는 경우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찌꺼기로 만든 것이 부대찌게이다. -> 생선찌게, 순두부찌게, 김치찌게 모두 '-- 찌개'라고 써야 바른 표현이다.
또한 '육개장'을 종종 '육계장'이라고 쓰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육개장이 정확한 표현이다. 쇠고기를 마치 개고기를 삶듯 푹 끓여 만든
것이라는 의미로 육개장이라고 했다는 유래가 있다.
끝으로 여담한마디. '설농탕'과 '설렁탕'은 혼용되어 쓰이고 있는데 그 원조,
유래가 있다. 조선조에 임금도 참여하는 선농제(先農祭)라는 농경제사가 있었다. 이 선농제에서 소를 잡아 큰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아 그 고기와
국물을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후에 선농제의 그 湯을 재현하여 저자거리 음식으로 만든 것이 바로 '선농탕(先農湯)'이었다. 이 것의 이름이
바뀌어 오늘날 설농탕, 설렁탕이 된 것이다. 따라서 설농탕이 맞느냐 설렁탕이 맞는지 모호하지만 설렁탕이 더 발음하기에 용이하므로 사실상 표준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들어 인터넷과 채팅에서 우리말이 오염된 현실을 반성하고 다시금 우리말을 정화하자는 자성의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말 바르게 쓰기' 어찌보면 맞춤법을 따지는 것이 좀스러워 보이고 중요하지도 않을 듯 보이지만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말을 바르고 정확하게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쩌다 영어식 표현 몇 군데가 틀리면 참지 못하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잘못된 한글표현에는 매우 관대한 것 같다. 영어야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서 지켜주겠지만 우리의 말은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줄 사람이 없다. 항상 바르고 고우며, 정확한 표현을 쓰도록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으면 한다.
<
p.s >
경계선님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두산 세계대백과 사전에 의하면
-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强羌水越來'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 ·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 '巡邏(순라)'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주위의 뜻인
'강'이 둘 겹친 것은 특히 주위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술래'가 '수월래'로 들리며, 그렇게 기록되기 쉬운 것은,
진양조(晋陽調 또는 진양)로 길게 뽑을 때 '수월래'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므로 표기는 '강강술래'라고 하는 것이 옳다.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엠파스에서 '강강수월래'로 검색해보니 약 580여 페이지가 검색되었고 '강강술래'로 검색하니 1770여 페이지가
검색 결과로 나왔습니다. 두산백과 사전이나 검색결과를 토대로 보면 일단 '강강술래'의 우세승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두 표현 모두 그럴 듯 해서
어느쪽이 맞다고 100% 확신하기는 조금 어려운 듯 합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올려 혼란을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