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국戰國을 통일한 진(秦 : BCE 221 전국통일 ~ BCE 207 멸망)나라가 15년 만에 망하고 난 후, 한 고조 유방(劉邦)과 초패왕 항우(項羽)가 6년 동안 아주 피가 터지도록 싸운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 : 전한 BCE 206~CE 8)제국을 열게 되는데, 그 7대 임금이 무제(武帝 : BCE 141~ BCE 87)다.
오늘의 사가들은 북쪽의 흉노를 굴복시킨 한 무제가 자신감을 얻어 동북방의 고조선을 쳐들어왔다, 그리하여 준왕(準王)을 몰아내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자리에 식민지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한다.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番朝鮮)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또한 진조선(辰朝鮮)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화란 속에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시대가 마감(BCE 238년)된 것은, 찬적 위만(衛滿)이 번조선을 점거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BCE 194년) 44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BCE 722~ BCE 403, 전국시대 BCE 403~ BCE 221)의 혼란기에 처해 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단군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러면 식민주의 사관에 물든 역사학계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위만조선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위만(재위 BCE 194~BCE 180?)은 본래 중국 한족 출신으로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죽마고우였던 노관의 부하이다. 중원을 평정한 한 고조는 여태후와 더불어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 때 연나라 왕 노관은 흉노로 달아나고, 위만은 조선인으로 변장한 뒤 부하 1천 명과 함께 왕검성에 와서 번조선의 준왕에게 거짓 투항을 했다. 이에 준왕은 덕으로써 그를 받아주고 서쪽 변경을 지키는 수비대 책임자로 임명까지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한족 망명 집단을 이끌고 몰래 세력을 기른 위만은 이듬해 준왕을 배반하고 왕검성을 쳤다. 그리고 나라 이름은 그대로 둔 채 스스로 왕이 되었다(BCE 194). 『삼국유사』에서 말한 위만조선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서쪽 영토였던 번조선의 한 모퉁이를 잠깐 강탈하여 지배했던 위만정권에 불과하다. 그런데 현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준왕을 잡아먹은 위만 같은 배은망덕한 자가 고조선의 정통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燕人]이라고 기록했을 뿐 아니라,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는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라 했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은 ‘위만은 한 명의 강도에 불과하다[乃一强盜]’고 하였다. 이처럼 위만은 중국 한족의 인물로서, 한마디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떠돌이 도적인 것이다.
위만정권은 손자 우거왕 때에 이르러 밖으로는 한 무제의 침입과 안으로는 지도층의 분열로 인해 결국 망하게 된다.(BCE 194~BCE 108). 한 무제는 그 여세를 몰아 고조선의 뒤를 이은 북부여로 쳐들어온다. 그런데 당시 북부여의 4대 고우루(高于婁) 단군은 워낙 심성이 유약하여 제대로 맞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조선 민족이 다 넘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고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 고두막한(高豆莫汗)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한 무제의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다.
고두막한은 기원전 108년, 졸본(卒本)에서 나라 이름을 ‘북부여’에서 동방의 대광명이라는 뜻의 ‘동명(東明 : 동명부여, 또는 졸본부여)’이라 바꾸고 동명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기원전 87년에는 북부여를 계승하여 조선 역사 부활의 푯대를 다시 세우니, 이분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동명성왕(東明聖王)이다. 지금은 식민사학자들이 우리역사를 왜곡시켜 주몽이 동명성왕이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이 때 본래 북부여 4대 단군의 승계자인 해부루(解夫婁)가 동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 땅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동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으로 동부여(東夫餘)라 했다. 해부루는 북부여 4대 단군의 동생이다. 그리하여 고두막한이 북부여의 5대 고두막 단군이 되는데, 그때부터 북부여의 후기시대[後北夫餘]라고 한다.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解慕漱) 단군으로부터 6대 만인 고무서(高無胥) 단군 때에 막을 내린다.
6대 고무서 단군은 딸만 셋이었다. 그 둘째딸이 소서노(召西弩)인데, 고주몽과 혼인을 시켜 사위로 삼아 주몽으로 하여금 북부여를 계승토록 한다. 그리하여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이 되었으며, 그 후 기원전 37년에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로 변경하여 고구려 700년 역사의 창업 시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고조선(단군조선)이 멸망한 후 열국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이다.
북부여가 고조선(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북부여가 고조선(단군조선)을 계승하였다. 이것이 한민족 고대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역사에서는 북부여 역사라는 게 완전 말살됐다. 그 역사의 원형이 『환단고기』 「삼성기」상, 하 두 편과 「단군세기」에 나온다. 「단군세기」에는 47대 단군 역사가 나오고 「북부여기」상, 하에는 북부여의 역사가 나온다.
「북부여기」상에 해모수 단군서부터 역대 단군들이 나오는데, 5대 단군 고두막한이 바로 동명성왕이다. 고두막한은 중국 한족의 침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할 위기에 놓인 우리 동방 조선의 역사를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런데 중국 한 무제가 고두막한을 죽이려고 덤벼들었다가 참패를 당했다. 한 무제가 패퇴한 대사건, 이것은 중국 역사상 최대의 수치였다.
중국 5천년 역사에서 당태종이 안시성에 와서 양만춘 장군한테 화살을 맞아 눈 빠진 것보다 더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래서 중국의 역사가들과 국내 사대주의자들, 그리고 지금의 식민사학자들이 북부여 180년 역사를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민족 역사의 맥, 사통의 허리가 잘려버렸다. 그래서 북부여사는 온데간데 없고, 한고조漢高祖의 숙청으로 인해 도망나온 중국 연燕나라 사람 위만 같은 자가 고조선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식민지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 북부여 시조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부인데, 고주몽의 아버지로 만들어 버렸다. 즉 ‘해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 고주몽이 태어나 고구려를 열었다’고 해모수와 주몽을 부자지간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왜곡은 180여 년에 걸친 북부여 6대 단군의 역사를 완전히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저런 터무니없는 왜곡과 날조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역사를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이렇게 꿰매면 이런 작품이 나오고, 저렇게 꿰매면 저런 작품이 나오고, 전부 애꾸눈이처럼 찌그러져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예전에 방영하였던 드라마 주몽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는 고주몽이 해모수의 아들로 나온다. 해모수와 주몽은 무려 120여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해모수는 북부여의 초대 단군이고 주몽은 6대 마지막 단군 고무서의 사위인데, 어떻게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란 말인가!
북부여는 고조선(단군조선)과 고구려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열국시대의 역사의 맥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부여사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한민족을 제대로 알려면, 한민족 정신의 뿌리를 알려면 부여사를 알아야 한다.
첫째, 초대 단군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이 부여(夫餘)다. 첫째인 태자가 부루(夫婁 : 2세 단군, 재위 BCE 2,240~BCE 2,182), 둘째가 부소(夫蘇 : 구려(원시 고구려, 고리국)에 봉해짐), 셋째가 부우(夫虞 : 진번국(요동의 제후국)에 봉해짐), 막내인 넷째가 부여(夫餘)이다. 단군성조는 막내왕자 부여를 도읍인 아사달의 서쪽인 녹산(鹿山 : 백악산 아사달, 지금의 길림성 장춘)의 제후로 봉한다. 이것이 원시부여, 부여라는 나라 이름의 기원이다.
둘째, 그런데 그 부여의 문화, 부여의 정신, 부여의 역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감동을 줬는지, 44대 구물 단군 때 우화충의 반역사건(BCE 426)을 진압하고 나서 국력이 급속도로 쇠약해지자 나라이름을 바꾸게 된다.
나라를 운영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극적으로 모든 걸 일신하기 위해서 나라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조선의 고종임금이 그랬고, 그 때 고조선도 그랬다. 그래서 진조선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꾼다.
셋째, 해모수(解慕漱)가 그 대부여의 중심지인 만주 땅에 세운 나라가 북부여(北夫餘)다. 즉 삼조선(三朝鮮)의 중앙 북쪽만 차지하여 국통을 계승을 했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에서 대(大)자를 빼고 북부여라고 한 것이다.
넷째, 고주몽이 어릴 때 자라던 나라, 동부여(가섭원부여)가 있다. 사실 북부여와 동부여의 역사는 4대 단군의 차이가 난다. 앞에서 말했듯이 북부여 4대 단군의 계승자였던 해부루가 피난을 가서 세운 나라가 동부여다. 그 역사만 해도 벌써 한 5, 60년 두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이 밖에도 고두막한이 졸본 땅에 세운 동명부여(졸본부여)가 있고, 또 동부여 멸망 후 마지막 3대 대소왕의 동생이 압록곡 부근에 건국한 갈사(曷思)부여, 대소왕의 종제(從弟)가 고구려에 투항한 후 왕으로 봉해진 연나부(椽那部)부여가 있다. 또 백제 26대 성왕(CE 253~554)이 538년에 도읍을 웅진(곰나루)에서 사비성으로 천도한 후 ‘남부여(南夫餘)’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역사 인식이 전혀 안 되고 있다.
한때 일본에게 먹히고, 전쟁으로 남북이 갈리고, 지금 대한민국이 좌우가 극도로 분열이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라의 국운(國運)을 다시 일으키려면 역사와 역사속에 흐르는 혼(魂,정신)을 알고, 나라의 국통國統을 바로 세우는데 있다.
嗚呼痛矣라
아, 슬프구나!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若其時之制先하야 以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부여夫餘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중국(한漢)인들이 부여에 쳐들어 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 왔다.
만약 그 전에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중국 한漢나라 사람들은 자기나라로 쫓겨 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들은 몽골로 쫓겨갔을 것이다.
嗚呼痛矣라.
아, 통탄스럽도다!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魂夜行하야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과거에 고려의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간신배들이 떠들어 댄 사악한 말들이 나라를 소란스럽게하고, 고구려의 반역자 남생男生과 고구려를 배반한 발기發岐와 서로 합세하였는데, 어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나라가 망해가는 때에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간들로 가득하단 말인가!
오잠吳潛 : 고려 충렬왕 때의 간신. 항상 임금 부자父子를 모함으로 이간질하였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여 원성이 높았다. 고려를 없애고 원나라의 속국으로 남짜고 청하였다.
류청신柳淸臣(? ~ 1329) : 고려 중기의 간신. 1316년에 정조사正朝使로, 1321년에는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다. 이때 조적 등과 밀통하여 왕위를 노리는 심양왕 고(瀋陽王暠)에게 붙어 충선왕을 모함하려 하였으며, 오잠과 함께 고려에 원나라의 관청,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설치할 것을 원나라에 청하는 등 반역 행위를 하다 발각되어 귀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죽었다.
남생男生 : 연개소문의 장자. 연개소문을 이어 최고 관직인 대막리지가 되었다. 전국의성을 순시하러 나간 사이에 아우 남건이 대막리지 자리를 탈취하자 당나라에 항복하고, 이세적과 함께 당군을 이끌고 와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 후 우위대장군, 변국공에 처해졌다.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人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신시(神市)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이 있어(神市開天), 나라는 이 국통國統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기쁜 마음으로 이글을 써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 12년(1363년) 계묘 10월 3일에, 흥행촌수紅杏村叟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노라.
국통國統 : ‘민족의 역사 정신의 맥脈과 법통法統’을 말한다. 한민족사의 국통은 환국 - 배달국 - 고조선 - 북부여(원시 고구려) - 고구려(백제, 전신라, 가야) - 남북국 시대(대진국(발해), 후신라) - 고려 - 조선 - 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9천 년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인류의 정통 장자국(종주국)의 대통이다.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62~69>
단군세기 서문 檀君世紀 序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법도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岐矣니라.
역사의 중요성
盖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 自我所先所重者也라.
나 자신의 자아 인식의 중요성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 我者인댄 自何而始乎아.
우주의 삼신三神과 인간의 탄생 원리
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精하니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사람의 본성(性)과 목숨(命)의 존재 원리
성性 명命과 신神 기氣의 상호 관계
夫性者는 神之根也니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본성性과 목숨命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에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니라.
성명정性命精을 통해 천지와 역사를 보라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
신교(神敎)의 수행 원리 : 내가 우주와 하나 되는 길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故로 定心不變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此 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故로 性命精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與宇宙萬物로 渾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고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구국求國의 길, 국통國統을 바로 세움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若其時之制先하야 以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魂夜行하야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慈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어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人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단군세기 서문 檀君世紀 序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법도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岐矣니라.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역사교육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역사교육이 바르지 못하면(왜곡되게 가르치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의 중요성
盖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 自我所先所重者也라.
대개 역사학을 하는 방법이란 잘못된 것은 비판하고(可貶者貶), 기릴 것은 찬양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의 모습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닌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의 삶은 참으로 유구하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질서와 법도를 세운 내용(創世條序) 또한 분명히 밝혀져 있어, 나라와 역사가 함께 존재하며 사람과 정치가 함께 거론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 史, 人, 政), 이 네 가지는 모두 우리 스스로가 우선시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로다.
자신의 자아(自我) 인식의 중요성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 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 我者인댄 自何而始乎아.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와 같으니, 그릇이 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을 잃고서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와 그릇을 함께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 데 있다. 그렇다면 나를 알려고 할진데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우주의 삼신三神과 인간의 탄생 원리
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 之神은 降爲我精하니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대저 삼신일체(삼신과 하나됨)의 도道는 ‘무한히 크고 원융무애하며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이 삼신일체의 조화로부터 인간이 화생되어 나올 때 그 생성 원리는 이러하다.
조화신(造化神)이 내 몸에 내려와 나의 본성(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 몸에 내려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려 나의 정기(精)가 되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다.
삼신三神 : 삼신에는 4가지 뜻이 있다.
첫째, 우주의 창조 정신을 뜻한다. 이때 삼신은 조화造化, 교화敎化, 치화治化라는 ‘3가지 창조성을 지닌 조화정신(三神)’으로서 만물을 낳고 길러 내며 다스리는 ‘우주의 순수한 창조 정신’이다. 여기에 있는 '우주의 광명 빛을 桓환'이라 한다. 우주의 광명, 빛속에는 세분의 자연삼신 망량신魍魎神이 계시는데 그분들을 '본체 삼신''이라 한다.
자연삼신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열어 놓으신, 자연의 이법의 근원이 되는 '본체이기에 조물주 삼신'이라고도 한다. 삼신의 중심에 태허령太虛靈님이 계신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렸고 그에 따라 시간을 다스리는 주신主神이신 태광령太光靈님과, 공간을 다스리는 주신主神이신 태성령太聖靈님이 계신다.
둘째, 천상의 궁궐에서 사람 모습을 하고 ‘우주 역사를 통치(주재)하시는 인격신’을 말한다. 이때의 삼신하느님은 더 우주원리적인 표현이다. 우주의 삼신 정신을 주재하여 천지인 삼계三界를 다스리는 실제적인 하느님이 삼신 상제님이다.
셋째, 한민족사의 뿌리 시대를 열어주신 국조삼신으로 환인(환국) - 환웅(배달국) - 단군(조선) 삼성조를 일컫는다.
넷째, 자손 줄을 태워주는 신, 보통 조상신을 말한다. 바로 이 ‘삼신의 우주관’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역사학자, 종교와 철학자가 제 민족의 뿌리 정신을 철저히 망각한 것이다.
대원일大圓一 : 우주와 역사를 주관, 섭리하시는 삼신三神의 창조 정신을 간단히 정의한 말이다. 만물과 우주의 존재 근원이 되는 삼신의 이러한 창조 정신은 광대무변(大)하고 원융무애(圓)하며 대광명으로 삼계가 합일(一)되어 있다. 우주 삼신의 대원일한 창조 정신을 순 우리말로 ‘거발환居發桓(신시 배달의 시조인 환웅천황)’이라 부르는데, 거발환은 크고, 조화롭고, 광명으로 합일된 존재라는 뜻이다.
성性 : 인간의 본래 타고난 본성.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법성法性, 불성佛性과 같은 경계이다. 문맥에 따라 성, 본성, 성품으로 번역했다.
명命 : 천지의 무궁한 생명 또는 목숨. 천지의 주재자인 삼신상제님의 천명을 뜻한다.
사람의 본성(性)과 목숨(命)의 존재 원리
성性 명命과 신神 기氣의 상호 관계
夫性者는 神之根也니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대저 성(性)이란 신神(신명)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원이다. 신神이 성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性이 곧 신神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는 것이 곧 참된 본성(性)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吾身之神)이 기氣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성(吾身之性, 조화신)과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 교화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神 : 여기서 신神은 인간 몸속의 신神이다. 대우주의 조물주 삼신은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일기一氣를 타고, 기氣는 신神의 숨결과 하나 되어 만물을 생성한다. 만물을 빚어낸 천상의 조화삼신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작용할 때는 머리의 중심과 가슴에서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즉 원신元神과 식신識神으로 나뉘어 작용한다. 여기서는 사물을 인식하는 신(識神)으로, 즉 모든 사람의 몸 속에서 개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신神, 곧 개별화된 신명(神明)을 말한다.
내 몸 속의 신명神明이 기氣와 더불어 합해진 후, 즉 내 몸의 현실적인 존재가 성립된 후에 내 몸 속에서 기氣가 밝아지면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볼 수 있다. 결론은 기氣가 맑아져야 한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본성(性)과 목숨(命)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에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니라.
본성(性)은 저마다 타고난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화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命)도 본성(性)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본성性이 목숨(命)과 결합된 뒤라랴 내 몸에 신화神化하기 이전의 본성性과 기화氣化하기 이전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신화神化 : 인간의 본성은 우주가 열린 삼신의 광명 자체이다. 이것이 실제 우리 몸에서 작용할 때는 하나의 개별적인 신명(神明)의 광명으로 작용한다. 신화神化란 우주의 삼신이 인격신으로서 우리 몸의 ‘개별화된 신명으로 열리는 경계’를 말한다.
기화氣化 :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몸 속에서 작용할 때 기氣로 변화 작용하는 그 경계를 기화氣化라고 한다.
성명정性命精을 통해 하늘땅, 천지와 역사를 보라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靈覺)의 무궁한 조화능력은 하늘의 신(天神=三神)과 그 근원이 같고, 삼신의 영원한 생명 자체인 인간의 본래 목숨(命)은 자연의 산천과 그 기氣가 같고, 인간의 정기(精)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가는 과업(業)을 창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영각靈覺 : 삼신의 성신을 받아 사물을 대할 때 그 내면의 모습을 그림 보듯 환히 보고 실상을 깨닫는 직
관直觀의 경지를 말한다. 또한 성性의 본성인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의 준말로 볼 수 있다. 우주의 조화 성령은 과거 - 현재 - 미래를 관통하여 만물을 거울에 비추듯 환히 비춰준다. 인간은 신도神道로 깨쳐야 사물과 진리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된다.
신교(神敎)의 수행 원리 : 나와 우주와 하나 되는 길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故로 定心不變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此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故로 性命精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與宇宙萬物로 渾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고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바로 하나에는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執一含三),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會三歸一)가 그것이다. 하나(一神)속에 셋(조화造化 성性, 교화敎化 명命, 치화治化 정精)이 있고 셋은 그 근본이 하나(一神)의 조화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一神의 조화에 머물러 마음을 바르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진아眞我(참된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하나님)’이라 하니, 진아眞我는 우주의 일신이 거처하는 궁궐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 : 우주 근원의 조화 세계(一神)에 세 신성(三神)이 담겨있고 이 삼신 원리를 일체로 보면 본래의 한 조화신(一神)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33세 감물단군 서고문).
회삼귀일會三歸一 : 우주가 생겨나는 조화정신, 본체에는 3가지의 창조와 변화 원리(작용, 用)가 함축되어 있다. 이 본체(體), 즉 일신一神, 즉 일기一氣와 현실적인 창조 변화 작용(用)의 원리를 완전히 체득하여야만 본서 ‘신교神敎의 도道가 역사관’의 핵심정신인 ‘삼신 사상’의 전체구조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참됨의 근원을 알고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삼신)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天人相與之際), 진실로 삼신의 계율(참전계)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하고(三神戒盟) 진리를 공부를 시작해야만 능히 이 하나됨의 경지 一者(一神)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러서 본성과 목숨과 정기(性命精)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三神一體)이신 상제님(三神一體上帝)이시다.
천인상여지제天人相與之際 : 하늘과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관계(天人合一), 하늘과 사람이 서로 화합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삼신계맹三神戒盟 : 여기서 계戒는 태고 시절에 삼신상제님이 인류에게 내려 주신 깨달음의 글이다. 모든 인간이 완전한,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계율, 전계佺戒로서 곧 천경신고天經神誥(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경)를 말한다.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 : 삼신과 한 몸으로 계시며, 삼신 자체가 되셔서 삼신의 뜻과 생명을 현상 세계에 열어주시는 분이 바로 상제님이시다. 상제님을 통해 삼신의 도가 인간 문화 속에 선포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몸이 되시어, 마음과 기운과 몸(心氣身)으로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 그리고 느낌과 호흡과 촉감(感息觸)이 혼연일체의 경지에 계신 분이 인류의 시조되시는 환인주조님이시다.
환인주조桓因主祖님은 세계만방에 한결같이 덕화를 베풀고 함께 즐거움을 누리시며, 하늘 땅 인간 삼계와 더불어 함이 없이 저절로 조화를 이루신다. 이러하므로 가르침(敎)을 세우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아自我를 확립해야 하고, 자신의 형체를 바꾸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무형의 정신을 뜯어고쳐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나를 알아 자립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인 것이다.
환인주조桓因主祖 :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삼신일체의 도를 받아 내려 신교의 영원 불멸의 생명의 문을 인류 문화사상 처음으로 완전히 드러내신 분이다. 신교 원형 선仙의 원 주장자, 대조상(主祖)이 되시는 분이다.
나라의 국운(國運)을 다시 일으키려면 역사를 바르게 알고, 나라의 국통國統을 바로 세우는데 있다.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若其時之制先하야 以夫餘에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魂夜行하야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慈甚하야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如我大臣者가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求之爲言이나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어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神市開天이 自有其統하야 國人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紅杏村叟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아, 슬프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가 없어진 후에 漢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 전에 부여에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 가고,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갔을 것이다.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吳潛⑮과 류청신柳淸臣⑯ 같은 간신배들이 떠들어 댄 사악한 말들이 백귀와 더불어 야행하여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男生⑰과 발기發岐⑱의 역심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어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금일에 외인(몽골인)들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하여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은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로다.위대한 신하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할 것을 스스로 기약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를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시神市에 나라를 연 이후로 국통이 있어(神市開天), 나라는 이 국통國統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기쁜 마음으로 이글을 써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공민왕 12년(1363년) 계묘 10월 3일에, 흥행촌수紅杏村叟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