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이것은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을 성취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선지자’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1-11).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환전)을 쫓아내십니다. 이스라엘 밖에 멀리서 사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 km나 짐승을 데리고 와서 제사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성전에서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또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는 로마의 왕이 그려져 있는 로마의 화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화폐로 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장사하고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장사꾼들의 자릿세로 뒷주머니를 챙기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장사하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내쫓으십니다. 성전은 그러한 형식을 지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만민이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 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 안에서 만민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성전으로서 옛 성전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 때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그들을 고쳐 주십니다. 이런 모습을 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아이들의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예수님께서 따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시편 8편 2절을 성취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2-16).
한편, 예수님은 성전에서 나가셔서 베다니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실 때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길 가에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셨는데 잎사귀 밖에 없는 것을 보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앞으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 대해 분노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후에 다시 성전으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로 상징되는 무화과나무의 열매 없음을 보고 저주하신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도 반응이 없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도 백성을 심판하고 복음의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심판의 말씀을 전할 것이고, 그들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 응답해 주심으로 그들의 영적인 권위가 입증될 것입니다(17-22).
예수님은 다시 성전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십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는지 물어봅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는지, 사람으로부터 왔는지 되묻습니다. 답은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인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권위가 실추될까 염려하여 모른다고 답합니다. 이에 예수님도 무슨 권위로 이런 가르침을 하는 지 말해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대답만 하고 행하지 않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아니라 요한의 말을 듣고 믿고 뉘우친 세리와 창녀라고 하십니다. 또 악한 농부 비유(이스라엘을 가리킴)를 통해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특권을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시험하는 돌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돌이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정확히 이해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하지만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그렇게 못합니다(23-46).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경고에 회개로 반응 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예수님을 믿을 것과 이미 믿는 자들은 믿음의 열매,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열매가 없는 나무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맺어야 할 열매와 구원에 합당한 반응은 무엇일지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