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대강 발원지를 문화재청에서 국가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첫 삽을 떴다.
모든 강의 시원은 작은 물방울이다. 그 물방울들이 모여 샘을 이루고, 소나 연못을 이루면 그제야 그 물줄기를 발원지라 부른다.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이며,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의 황지연못이고, 금강의 발원지는 전북 장수의 뜬봉샘, 섬진강의 발원지는 전북 진안 백운면의 데미샘이며 영산강이 발원지는 담양 가마골이 용소다.
강의 발원지와 강기슭의 아름답고 역사가 서린 곳들을 국가 명승으로 지정하기 위해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명승분과, 장철호 과장, 주충효 사무관, 김태우 주무관, 신현실 문화재위원, 김치년 문화재 전문위원과, 필자인 신정일 문화재위원과 자치단체 관계자들이 답사를 했다.
강의 발원지가 명승이 되고, 그 강의 곳곳이 국가 명승으로 된 길을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걸으면서 강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다면 그 맑고 푸른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상초막골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유입되는 강이다. 길이가 212.3 km이고, 유역면적이 4,896.5 ㎢인 이 강은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길고 남한에서는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본래 모래가람, , , 기문화, 두치강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가 많기로 소문난 이 강은 1358년인 우왕 11년 ㄱ여 왜구가 섬진강을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부터 두꺼비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섬진강이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는 이렇게 실려 있다.
“광양(光陽)의 섬진강(蟾津江)은 근원이 진안(鎭安)의 중대(中臺) 마이산(馬耳山)에서 나와서 합하여 임실(任實)의 오원천(烏原川)이 되고, 서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 운암(雲巖) 가단(可端)을 지나서 태인(泰仁)의 운주산(雲住山) 물과 합하여 순창(淳昌)의 적성진(赤城津)이 되는데 이것을 「화연」(花淵)이라고도 한다. 이 물은 또 저탄(猪灘)이 되고, 또 동쪽으로 흘러서 남원(南原)의 연탄(淵灘)이 되며, 또 순자진(鶉子津)이 된다. 다시 옥과(玉果)에 이르러 방제천(方悌川)이 되며, 곡성(谷城)에 들어가서 압록진(鴨綠津)이 되고, 구례(求禮)에 이르러 잔수진(潺水津)과 합하였다. 잔수진은 근원이 동복(同福) 서석(瑞石) 동쪽에서 나와 현(縣) 남쪽 달천(達川)이되고, 남쪽으로 흘러 보성(寶城) 북쪽에 이르러서 죽천(竹川)이 되는데, 이것을 또 「정자천」(亭子川)이라고도 한다. 다시 동북으로 흘러 순천(順天)의 낙수진(洛水津)이 되며, 잔수진에 이르러 순자강과 합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화개(花開) 소쪽 경계에 이르러 용왕연(龍王淵)이 되는데, 여기는 조수(潮水)가 들어오는 곳이다. 또 광양(光陽) 남쪽 60리에 이르러 섬진강이 되는데, 그 동쪽 언덕은 곧 하동(河東)의 악양(岳陽)으로서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고려 때에는 이 물이 배류(輩流)한 삼대강(三大江)의 하나라 하였고, 이름을 「두치강」(斗峙江)이라 하였다”
다른 강과 달리 섬진강과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숙명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을 안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천리 길, 금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신들이 춤을 춘다는 뜻을 지닌 신무산 밑에 뜬봉샘이라고 새겨진 바위 표지판이 서 있고, 잘 정비된 뜬봉샘은 제법 많은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뜬봉샘이라고 부르는 이 샘을 하천 연구가 이형석 선생은 밥내샘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고개 너머에 식천리가 있고 수분리에서 식천(食川)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밥이 타는 냄새가 난다는 의미를 지난 밥내고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산 정상이 바로 위쪽임에도 불구하고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솟아난다는 저 물길은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에는 “뜸봉, 수분 서쪽에 있는 산, 장군대좨혈의 명당이 있는데, 역적이 날까 두려워 숯불을 놓고 불을 질러 그 명당자리를 팠다 함”이라고 실려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 이 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군데 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불을 올렸다고도 한다. 그러나 얼마 전에 세운 표지판에는 태조 이성계가 백일 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았다는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전설과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장수문화원의 협조로 만들었다는 표시판의 내용(뜬봉)과 한글학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뜸봉)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더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리라.
금강의 발원지인 뜸봉샘의 물이 가장 근접한 골짜기 강태등골을 흘러 장수천으로 흘러갈 것이다. 좌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고 수분리에 이르러 가야할 사람은 가고 남는 사람은 남는다. 한 걸음 한걸음 하구를 향해 따라가야 할 금강은 어떠한 강인가. 나라 안에서 여섯 번째이며 남한에서는 낙동강, 한강에 이어 세 번 째로 길며 총 유역 면적만 해도 9천8백86㎢에 이르는 금강을 역사의 기록인《당서 唐書》에서는 웅진강(熊津江)이라고 기록하였다. 금(錦)은 원어 ‘곰’의 사음(寫音)이다. 곰이라는 말은 아직도 공주의 곰나루()라는 명칭이 남아있다. 일명 호강(湖江)이라고도 부르는 금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수분현(水分峴) : 현의 남쪽 25리에 있다. 골짜기의 물이 하나는 남원으로 향하고 한줄기는 본현으로 본현으로 들어와 남천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남천은 북으로 흘러 용담현 경계로 흘러간다.」고 기록되어 있는 금강은 여러 가지로 불리우고 있다. 즉 상류에서부터 적등진강(赤登津江), 차탄강(車灘江), 화인진강(化仁津江), 말흥탄강(末訖灘江), 형각진강(荊角津江)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되어있다. 현대 문헌으로「한국지명사전」에서는 육십령과 천마청산,「한국지명요람」과「큰사전」(한글학회),「새한글사전」에는 전북 장수군,「국어대사전」(현문사)과「세계대백과사전」(학원사)에는 소백~노령산맥 사이,「한국지명총람」에는 신무산 수분이 고개로 표기되어 있다. 동아 세계대백과사전에는 장수군 소백산맥 서사면에서 발원한다고 지명에도 없는 부분을 명시하고 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수분이 고개에 있는 김세호씨 집의 남쪽 처마로 떨어지는 빗물은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북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새로 집이 지어져 그렇지가 못하다. 수분리 남쪽에 있는 고개인 수분재는 해발 600m쯤 되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이 섬진강이 되고 북쪽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금강이 되기 때문에 물이 나뉜다는 뜻의 수분이 고개라고 하였다.
영산강의 발원지 용소
현재는 용소, 용연 제 1․2폭포 등 관광명소가 있으며 추월산․담양호 등과 함께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용추봉(584m) 자락에 자리잡은 용추사는 백양사의 말사로서 백제 성왕 1년인 523년에 혜총과 혜증이 창건하였으며 642년인 무왕 25년에 원광스님이 원당으로 삼아 중창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630년(인조 8) 태능이 중창하였으나 1949년에 공비들이 이 절을 점거하자 국군이 이 절을 전략상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그 뒤 1961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새로 지은 대웅전과 요사채 그리고 춘당, 월파당, 소요당 등의 부도 6기가 남아 있다.
용추사 아래자락에 50여 마지기 정도 되는 농경지가 나오고 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폭포 2개가 나타난다. 용연 제1폭포는 높이가 10m쯤 되며 400m쯤 되면 내려가면 극락강의 본류인 가마골 천에 이른다. 청소년 야영장 관리사무소 동북쪽 치재산 동남쪽에서 발원한 가마골 천의 영산강 시원지라는 비가 서있는 용소에 이른다. 지금 20여 m의 새파랗게 물이 고인 소에 물이 떨어지는 물길바위는 용이 등천하는 모양이다. 옛날 여기에 사당이 있어 봄․가을로 제사지냈으며 가물었을 때 제를 올리면 이 소에서 올라간 용이 비를 내려주었다고 최남선의〈대동지명사전〉에 나와 있다.
“강을 보라,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 근원인 바다로 들어가지 않는가“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한국의 오대강을 한발 한 발 걷고 싶지 않은가?
2022년 6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