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
서울의 봄을 만든 김성수 감독님의 작품으로 1997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개봉한지 27년 된 영화 후기를 왜 지금 쓰느냐, 사실 이 리뷰는 개인적인 헌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트가 제가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라는건 아니지만, 가장 많이 본 영화인건 확실하거든요. 20살의 어느날, 친구랑 별 생각없이 찾은 극장에서 비트를 보고, 둘 다 미친듯이 이 영화에 빠져들어서 100번은 넘게 봤을겁니다. 20살의 저를 그렇게 미친듯이 빠져들게 만들었던 비트를, 지금 다시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넷플릭스에서 보이길래 별 생각없이 눌러봤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보고 후기 한번 적어봅니다.
비쥬얼은 지금 봐도 때깔이 좋습니다. 젊은 정우성, 고소영 이라는 비쥬얼 적으로 뛰어난 배우들이기도 하고, 원래 김성수 감독이 비쥬얼 쪽으로 칭찬이 많았던 감독이였죠. 다만 당시 한국영화계를 뒤흔들었던 왕가위의 복제라는 비판은 피할수가 없을겁니다. 홀리데이 인 서울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텝프린팅, 핸드헬드를 활용한 흔들리는 화면 같은 연출들은 왕가위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 할 정도의 촬영이기는 하거든요. 근데 또 비트라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주된 정서가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청년들의 불안함, 혼란이라고 생각하면, 그 왕가위 스타일의 촬영이 찰떡처럼 잘 어울리긴 합니다.
왕가위 스타일의 카피라는 점도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건 뭐 딱히 저작권이 있는건 아니죠. 근데 진짜 문제가 되었던건 음악이였습니다. 무려 비틀즈의 let it be를 무단 사용했다가 이후 영화에서 다 날린걸로 알고 있고, 제 기억이 맞다면 마릴린 맨슨의 스위트 드림도 무단 사용했다가 영화에서 삭제되었을겁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ㅋ 그리고 저는 원래 음악으로 100번을 본 사람이라서(비디오테잎 버전은 원래 음악이였거든요), 해당 음악이 변경된 버전을 볼때마다 계속 아쉽습니다. 돈이 좀 들더라도 사후 합의라도 봐서 원 bgm을 살리지.... 이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네요.
다만 다시 보면서 새삼 느낀건, 사실 원작만화 비트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어린(젊은) 시절 싸움질, 불량함에 대한 로망을 깨부시는 작품에 가깝다는 겁니다. 정우성은 학창시절 남자애들이 생각하는 완벽한 남자에 가깝습니다. 싸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고 친구들 사이에 의리 있고 인성도 좋습니다. 친한 친구는 잘나가는 조폭이고, 타고다니는 오토바이는 CBR입니다. 영화에서는 표현이 안되지만 원작만화를 보면 친구그룹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기도 했고요. 말그대로 만화주인공 같이 완벽한 인물이 정우성이 연기한 이민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건 겉만 그런거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우성은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같은 존재입니다. 공부가 목적인 학교에 머무르지도 못했고, 자기 장사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싸움은 잘하지만 폭력에 익숙해 지지 못했고, 자기를 보듬어줄 가정에 소속되지도 못한 정우성은 말 그대로 모든 곳에서 주변인입니다. 당장 뿌리 내릴 토양도, 꿈이라는 목표도, 자기를 잡아줄 소속도 없는 정우성은 결국 친구에게 기댈수 밖에 없었고,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로미를 버리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자살을 선택합니다. 정우성이 죽어가며 화양연화로 떠올리는건, 화려했던 겉모습이 아니라 친구와 연인과 함께 밝게 웃던 순간이지만, 허망하게 스러질 뿐이죠. 영화는 이걸 보여주고자 했어요 분명히.
근데 어지간히 멋있어야죠...ㅋ 적당히 멋있어야지 화려한 생활의 허무함 뭐 이런걸 생각하지, 24살의 정우성이 렛잇비 들으면서 R카를 땡기는데 영화 내용이 기억이 나겠어요? 영화 끝나자고 극장 나오자마자 다들 말보로 레드 사기 바빴습니다ㅋ 필터 뜯어내고 피는 담배, 지포라이터 장난질, 손놓고 오토바이 타기, 뭐 그런 겉멋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청소년-청년들이 거기에 뻑이 가서 정신 못차리는 영화가 되어버렸죠ㅋㅋ
그렇게보면 아주 잘 만든 영화는 아닐겁니다. 일단 감독 의도랑은 반대로 관객들이 반응 했으니깐요ㅋ 다만 뭐 메세지를 숨겨놓은것도 아니고 대놓고 정우성이 배신당하고 맞아죽는데도 그런건 생각 안날만큼, 아주 강렬하게 청소년-청년기의 정서를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흥행을 했던걸로 알고 있고, 당시 청소년-청년의 불안한 시기를 보내던 분들은 거의 컬처적으로 열광하기도 했었습니다. 바로 저처럼, 말이죠ㅋ
지금봐도 크게 촌스럽지 않고 꽤 재미있는 영화인거 같아서 27년 늦은 후기를 작성해봤습니다. 또 서울의봄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낸 김성수 감독이 젊은 시절 만들어낸, 비트-태양은 없다 같은 청춘 영화들을 보는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것 같고요. 마침 넷플릭스에 같이 올라온거 같더라고요.
첫댓글 오 저도 어제 마눌님이랑 넷플에서 비트봤는데 추억돋더라구요ㅎㅎ 근데 격투신은 보정들어갔어도 어지러워서 못보겠더라구요;; 그리고 지금보니 유오성 임창정말고 나머지 연기력이ㅎㅎ 윤문식등 유명해진 조연들이 나온지도 이번에 알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