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들녘으로 나가
밤늦은 시각부터 강수가 예보된 일월 셋째 수요일이다. 날이 밝아오는 동녘 하늘엔 엷은 구름이 끼어 붉은 놀이 살짝 비치다 걷혔다. 아침 식후 산책 동선을 본포 강가로 정해 길을 나섰다. 비가 오고 나면 땅은 질어지고 한파라도 닥치면 지표는 서릿발이 서고 얼게 될 테다. 한겨울이지만 내가 기상 정보에 민감함은 노지에 절로 자란 냉이를 채집해 오는데 지장을 받을까 봐서였다.
강변 어디쯤 가서 수로 언저리나 농로 가장자리에서 따뜻한 겨울 날씨에 웃자라 있을 냉이를 캐 왔으면 싶었다. 어제는 북면 승산 들녘을 지나면서 볕 바른 자리 냉이를 몇 줌 캤다. 집으로 가져오질 않고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에게 건넸는데 양이 적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도 냉이로 국이나 나물무침으로 밥상에 올려 먹고 싶으나 조리를 감당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
오늘도 냉이를 더 캔다면 꽃대감이나 지기에게 보낼 요량이다. 내가 자연에서 산야초 채집함은 일상의 취미요 낙이다. 특히 봄날 산자락을 누비며 뜯는 산나물이나 초여름 강가에서 꺾는 죽순은 우리 집은 물론 이웃으로 보내어 잘 먹는다. 초목이 모두 시든 겨울은 고작 냉이를 캠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나 마찬가지다. 어느 계절이든 자연과 더불어 현장 학습을 함에는 변함이 없다.
아침 식후 빈 배낭에 호미를 챙겨 현관을 나섰다. 원이대로로 나가 본포를 둘러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기다렸다. 근래 원이대로는 대중교통 운행 체계 개편을 위한 노선 공사로 일부 차선 통행을 막아 출퇴근 시간대는 교통 체증이 심각했다. 더 좋아질 운행 여건을 위해 당분간 불편은 감수해야겠지만 당국에서는 시민 안전과 불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듯하다.
출발 기점으로부터 평소보다 10여 분 늦게 닿은 버스를 타고 충혼탑과 홈플러스를 돌아 명곡교차에서 다시 공사 현장과 겹쳐 거북이 운행이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나 외곽 도로에서 기사는 속도를 내어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마금산 온천장 종점에 닿아 차를 돌려 올 배차 시간에 쫓기는 듯했다. 승객이 몇 타고 내리질 않는 버스를 타고 가다 본포 마을회관 앞에서 내렸다.
마을회관 앞에서 강둑으로 오르니 본포교 교각 밑을 통과한 강물이 유장하게 흘렀다. 본포 수변공원엔 한때 장기 텐트족이 있었는데 그간 계도가 되어 모두 떠났다. 둔치의 물억새와 갈대는 색이 바랜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4대강 사업 때 친환경 조경수로 심은 느릅나무와 수양버들은 세월 따라 높이 자라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강둑에서 60번 지방도를 따라 활천마을을 지났다.
활천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조부가 살았던 마을로 부친이 태어난 곳이다. 조수미의 외가는 본포에서 가까운 가곡으로 조부와 외조부는 일제 강점기 면장과 수리조합장을 지낸 지역 유지였다. 내가 언젠가 논픽션 글에서 읽기로 두 바깥사돈은 어두운 새벽 마을 어귀에서 개똥을 줍다가 이마가 부딪혀 얼굴을 들어보니 사돈 간이더라 했다. 그때는 흔한 개똥을 두엄으로 요긴하게 썼다.
옥정 교차로를 지난 들녘 논에 지은 연근 농사는 굴삭기를 동원 뿌리를 캤다. 김해 한림으로 새로 뚫린 차도 곁에는 아기 묘목을 심어둔 감나무밭이 나왔다. 캐려던 냉이는 거기에 많았는데 따뜻한 겨울 날씨에 꽃대가 솟아 자잘한 꽃을 피웠다. 감나무가 어려 토양에 잔류할 농약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냉이를 캐기는 수월해도 뿌리에 붙은 흙을 터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배낭을 추슬러 갈전을 지난 삼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들녘을 걸었다. 드넓게 펼쳐진 비닐하우스단지 송등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탔더니 기사가 여성이었다. 짧게 나눈 대화에서 1번 마을버스가 6대이고 기사는 18명이라 했다. 그 가운에 여성 기사는 2명이라고 했다. 나는 평생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아 기사를 우러러본다고 했다. 배낭의 냉이는 지기에게 모두 건네고 왔다. 24.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