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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웜(Blueworm)-03
5.
“Can I get Dr. Kim?”
“This is Dr. Kim and who’s calling,please?”
“아하~ 제대로시간을 맞추었군. 김지영 박사! 나 윌이요. 월 케일러 from Toronto.”
“아~ 윌 교수님!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지영은 무척 반가웠으나 한편 덜컥 겁이났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어서 전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과 염려가 앞서서이다. 역시 교수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교수님. 갑자기 웬일이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그의 한숨같은 신중함이 베어 나왔다. 지영은 걱정되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생각하였다.
“김 박사. 전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인가?”
“긴 말씀이시면,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실은 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거든요. 곧 옷입고 책상 앞에 앉을께요.”
그렇게 무심코 말한 후, 지영은 혼자서 피식 웃었다. 박사 학위논문을 쓰다 잠든 U of T 기숙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닥터 김의 리포트를 읽었어요. 블루웜이라 명했다고? 한국에는 몇 케이스가 발생했어요?"
"교수님. 한국에는 몇 케이스라뇨? 그러면 다른 나라에도 유사한 케이스가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무슨 일이예요? 다 말해 주세요. 교수님."
일단은 제출한 보고서에 관한 잘 잘못이 아님을 생각하고 안심하자 지영의 목소리는 저절로 반가움과 함께 부드러워졌다. 지영의 애교섞인 요구에 윌교수는 당할 수가 없음을 다시 느꼈다.
"알았어요. 당분간은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하는 극비사항이니 off-record 할 것을 맹세해요."
"박사님. 지금 농담하시는 것 아니지요? 약속했어요. 말씀해 주세요."
"김 박사."
지영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자 곧 녹음버튼을 눌렀다.
"3달 전부터 일본과 중국 월남 인도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정체불명의 웜에 의하여 내장파열과 멜트(melting.녹음)로 사망한 환자가 늘고 있다는 보고가 학회에 들어오고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의 원인균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전문가들의 보고가 많아요. 아직 한국에서 들어 온 보고는 없어서 이상하다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방금 받은 김 박사의 보고서를 읽고 전화했습니다. 김 박사가 명명한 블루웜을 이번 조사계획의 타이틀로 할 것입니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심각해요. 이 지구에 살고있는 사람 생명의 반을 멸절시키는 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 정체불명의 원인균은 전혀 의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아니 지구상에서는 없는 U.M.O.( Unidentified Moving Object)같습니다. 다른 행성에서 온..."
"박사님! 그런데 어떻게해서 아시아쪽에서만 발생하지요?"
"아- 좋은 질문입니다. 그 동안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러시아에서 김 박사가 명명한 그 블루웜이라고 추정하는 박테리아에 의하여 사망한 환자가 한 두명 있어요. 그 사망환자 모두가 에시아에서 이민 온 에시안입니다. 그들 모두 돼지고기 바비큐를 좋아했답니다. 뭐 감 잡은 것 있어요?"
"제가 따로 조사해 둔 것은 있어요. 그것은 미쳐 정리가 되지않았고 너무 엄청난 사안 같아서 망설이다 보고서에는 포함하지 않았어요. 곧 새로운 보고서를 제출할께요. 됐죠? 교수님! 그런데, 먼저 전화하셨잖아요. 저가 보고싶어 전화한거예요? 지금 원하시는게 뭔데요?"
"아- 중요한 걸 놓칠뻔 했군요. 글로벌 특이 미생물학회에서는 지금 당신, 닥터 김이 정식으로 참여해서 조사해 주길 바랍니다. 가능하면 3일내에, 즉 금요일 도착하여 월요일 학회 조사분과 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주길 바랍니다. 승낙하면 WHO를 통하여 한국정부에 협조 요청 할것입니다. 그리고 닥터 김이 보고싶어서..."
"이그~ 제가 두번째네요 ㅎㅎㅎ. 교수님, 그렇게 중대한 사안인가요? 무서워서 어쩌죠. 30분만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전화드릴께요."
김지영 박사는 전화체팅이 끝나자 머리속이 어지러워 그대로 침대에 벌렁누웠다. 그녀는 지난달부터 동해의 아시아대학병원, 서울의 현삼종합병원을 포함한 2곳, 영동의 한국센터병원 그리고 경기도와 충청도 등 전국 각 병원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미생물에 의한 환자 내장일부의멜트로 인하여 사망한 입원환자들의 정보를 입수하여 어제와 오늘 그녀가 직접 수술한 환자의 체내에서 착출한 블루웜과 비교분석한 제2차 보고서가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온 몸이 부르르 떨리며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불길한 전율을느꼈다. 글로벌 특이 미생물연구학회가 저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조사하고 있었던 임상 사례와 글로벌 특이 미생물학회의 움직임이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는데, 윌 교수마져 대화중에 특별히 에시안들 에게서만 발병하는 그 무엇이라고 한 말이 뇌전광 같이 번쩍하며 두려운 정신을 더욱 혼란하게 하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랩탑컴퓨터를 부팅시켰다. 부팅이 되는 잠깐사이 그녀는 팬티만 달랑 입은채 였음을 발견하였지만 대수롭잖게 넘겼다. 그녀는 10년 이상을 그렇게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였다. 그렇다고 절제없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 그녀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하여는 자신하였다. 그녀는 녹음해둔 윌 박사와의 대화를 다시 들으며 곧 진행될 상황들에 대한 준비를 하였다. 컴퓨터에서 몇 개의 출장요청서와 2차 보고서를 프린트 아웃하였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였다. 그런 중대한 일에 두서없이 뇌화부동하여 빠질 김지영은 아니었다. 문제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였다. 그 2차 보고서는 한국 미생물학회 보고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책상위에 놓아 둔 휴대폰을 들었다.
6.
“엄마. 놀라지말고 잘 들으세요.”
“왜에~ 무슨일인데 그러니? 지영아~”
“이번 주 금요일 토론토로 갈거예요. 글로벌 특이 미생물학회에서 저를 꼭 필요로 해서 가기로 하였어요. 아마 한 일주일쯤 걸릴 것 같아요. 그 동안 엄마 혼자 잘 계실 수 있죠? 오늘 저녁 집으로 갈께요. 더 상세한 이야기는 그 때 할께요. 수제비 먹고 싶어요.”
“그래. 알았다. 준비해 놓을께. 조심해서 와. 알았지? 지영아~”
두 사람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대학생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맑고 청아하고 고왔다. 김지영 박사는다시 책상위의 상아색 전화기를 들고 단축 버튼을 눌렀다.
“정인영입니다.”
“마침 계셨군요.저 김지영이예요. 부탁 좀 들어주시겠어요?”
“아~ 닥터 김. 뭔가 중요한 부탁인가 보군요. 제가 계속 아름다운 김 박사님을 뵙자면 거절해서는 안되겠지요. 뭡니까?”
“부탁하는 사람 미안하게 서론이 기세요. 일단 부탁 들어주는 것으로 하고 말씀드릴께요. 내일 오전까지 3달 전부터 오늘까지 일간신문을 다 뒤져서 슈퍼박테리아 혹은 특이 미생물 혹은 원인불명의 미생물에 의한 내장멜트로 사망한 환자 정보를 다 입수해서 제 사무실로 가져다 주세요. 저는 금요일 토론토로 떠날 예정이예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영은무리한 부탁이었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헛기침과 함께 정인영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알았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부탁해 주신 것으로 감사히 일을 하겠습니다. 내일 오전 11시에 닥터 김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됐습니까?”
“ㅎㅎㅎ 예. 고마워요. 빠짐없이 찾아서 담당의사의 진료소견까지 놓치지 말고 첨부해 주세요. 사용된 USB비용은 제가 부담합니다.”
‘어휴~ 저 김지영은 틀림없이 북극의 흰눈여우야. 내가 당할 수가 없어...’ 정인영은그렇게 중얼거리며 즐거운 기분으로 독신자 아파트에 있는 자기 방으로 왔다. 방문을 열자 정면 벽에 걸린하얀 벽시계가 8시를 알리는 전자음을 소리했다. 윗도리를벗고 걸고 바지를 벗으며 8시 뉴스를 보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티비를 켠 정인수는 놀랐다. 티비화면에서는 얕으막한 산자락 아래 대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고 그 앞으로 평평한 농지가 보이고 그 둘레를 유자철선(有刺鐵線, barbed wire가시가 돋친 철선) 철조망을 둘러친 2-3에이커 정도의 넓은 돼지사육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곧 돼지들을 폐사 시키는 잔인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고 울먹이면서 호소하는 사육장주의 처절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카메라가 방향을 바꾸자 곧 또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장면이 비쳐졌다. 중국의 작은 마을들이었다. 엥커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국 곳 곳 지역의 양돈장이 사육돼지들의 구제역 살처분(求諸疫 殺處分)에 의하여 붕괴되는 모습을 비추며 설명하고 있었다.
또 다른 장면은 도시의 병원 응급실로, 들것에 환자가 실려 들어가는 장면이 나타나고 돼지고기를 먹은후 배가 터질듯 아프다며 하혈을 하는 증상을 호소하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울먹이고 있었다. 현장 리포터는 돈육습식에 의하여 사망한 가족들의 울부짓음과 모여든 사람들의 우왕자왕으로 혼잡스러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정인구는 김지영 박사가 명명한 블루웜을 머리속에 그리며 사태의 엄청난 심각성에 몸서리쳤다. 그 재앙을 연약한 김지영 박사가 파헤치려 하는 것이다. 정인구는 몸을 추스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더 정보를 찾아야 했다. 그는 김지영 박사를 돕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구하기 위한 노력에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 할 수 있길 바라며 가슴속에 끓는 뭔가 아지못할 사명감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햐-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데, 김지영 박사가 제대로 일하려는가 보군' 정인영은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하였으므로 긴장된 마음을 달래기도 할 겸 샤워를 한 후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커피 한잔과 계란과 베이컨과 슬라이스된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양상치로 가득 채운 쎈드위치 두개를 만들어 책상 위 손가기 좋은 좌측편에 올려놓고 컴퓨터앞 의자에 앉아 바로 부팅되어 있는컴퓨터로 한국의사협회의 웹페이지에 들어가 ‘환자의내과적 상세 소식’검색을 시작했다. 그는 의료사고를 포함한 병원에서 내과적 사망 환자 보고서를 찾아 읽으며 놀랐다. 김지영 박사의 예리한 판단에 대하여서도 놀라며 자기도 몰래 감탄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는 정확하게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특이 미생물에 의한 사망이 가장 최근에 10건이 있음을 발견하고 의사 소견과 참고 증언들을 망라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정인영은 두번째 쎈드위치를 한입 가득넣어 씹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이쁜 북극 눈여우 김 박사님. 지금 어디신가요-"
"으이그- 닥터 정님. 더 길게 묘사해주세요. 네. 지금 바쁘셔야 할텐데 전화주셔서 몹시 걱정되네요. 저는 집 앞이예요. 사랑하는 어머니와 저녁 같이 하려고. 근데, 왠 일이세요?"
정인영은 김지영의 음성을 들으며 취해서 허우적거렸다. 언제나 듣고 또 들어도 계속 듣고싶은 목소리였다.
"아- 그렇군요. 두 분이서 모녀간의 사랑 많이 쌓으십시요. 실은, 너무 놀라운 사실들을 직접 읽고나니 이 기분과 느낌을 식기 전에 꼭 전해주고 싶어서 전화 했습니다. 찾아낸 10건의 사망사건을 정리해 보니 놀라운 것들을 알수 있습니다."
지영은 망설였다. 닥터 정의 조사를 당장 다 듣고 싶고,한편으로는 빨리 아파트 문을 열고 몇 달보지 못한 어머니 얼굴도 보고 싶었다.
"정 선생님. 제가 지금 아파트 문 앞에 있어요. 문 만 열면 어머니를 만나거든요. 그러니 그 점 이해해주셔서 요점만 말씀하시고 내일 나머지 듣기로 하면 좋겠어요."
"알았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사망환자 모두 내장기 일부분 즉 충수돌기가 녹았으며 그것이 사망원인입니다.또한 모든 원인균을 슈퍼박테리아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닥터 정의 느낌이라는 것은 또 뭐예요?"
역시 지영은 예리하였다. 그 와중에도 찾고 읽고 분석한 정인영의 느낌을 놓치지 않았다. 정인영은 숨을 가다듬었다.
"예. 그 느낌은... 형체가 없다는것입니다. 다들 슈퍼박테리아라곤 하는데, 이미 발견된 변종박테리아와는 질과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그럼에도 특별한 미생물을 슈퍼박테리아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지영은 놀랐다. 정인영의 비교분석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까지 슈퍼박테리아로 인식하고 있는 미생물학의 현주소를 다시금 듣게되어 놀랐다. 적어도 다른 소견이있을거라 희망해 왔는데...
"예. 정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이 큰 도움을 줄 것 같아요. 더 잘 정리하셔서내일 만나도록 해요. 다시 수고해 주세요. 사랑해요. 정 선생님-"
으아- 이게 무슨 얄굿은 메이플시럽 빠져 나오는 소린가. 정인영은 앗찔하였다. 엉급결에 되받았다.
"저도 닥터 김, 사랑합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랑 그 단어가 전혀 먹혀들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에게서 듣다니. 빈 말이라도 좋았다. 그렇게 가슴 두근거리게 할 줄 몰랐다. 하늘을 붕 붕 떠 다니는 느낌이었다. 햐~ 사랑의 힘이 이렇게 엄청나다니... 정인영은 다시 놀랐다. 김지영의 그 마지막 한마디가 엄청난 영혼의 파장으로 자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에...
"엄마~ 제가 돌아올 때까지 별 사고나 문제없이 잘 계셔야 해요. 아셨죠?"
지영은 수제비 두쪽을 스푼에 국물과 같이 넘치게 담아서 입으로 가져가려다 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머니 김선애를 바라보며 심각하게말했다.
"애는~ 이 엄마가 뭐 애기니. 너 잠시 없다고 막 돌아 다니며 어지럽히기나 하는..."
김선애는 딸 지영이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오랫동안 캐나다에서 공부하느라 제대로 친구들과 맘껏 놀지도 못하고 이렇게 서른이 가까워져 가는 이쁘고 아름다운 딸을 마주보며 모녀간의 사랑을 맘껏 느꼈다.
"참, 지영아~"
"응. 엄마. 왜?"
"토론토에 간다고 했지?"
"응. 맞아요. 엄마. 토론토에 있을거예요. 왜요?"
지영이, 엄마가 묻는 말이 생뚱맞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 보며 말했다.
"그래~ 너가 공부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 때문에 간다니 걱정되어서 그러는데..."
"왜? 엄마. 무슨 말씀하려고 그렇게 주저하세요. 엄마 딸 김지영이 무슨 말이든지 사랑하는 어머니말씀에 다 복종하겠습니다. 명령하세요."
엄마는 아직도 지영이를 애기 취급하고 계시는구나 짐작하고 생글 웃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너가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면 한사람이 마중 나와 있을거다. 중년의 남자다. 키는 아마도 186cm에서 좀 넘을거고 검은색 덕다운 점퍼와 청바지를 입고 검은색 부츠를 신고 있을거다. 이름은 제임스. 제임스 리 이다. 그 사람이 너를 보호하고 너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절대 너를 불편하게 하거나 해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 지영아. 엄마 대하듯 그 분을 만나면 돼. 알겠니?"
지영은 뒷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아니. 나몰래 엄마에게 남자가 있었단 말이야? 그렇다면 두 사람을 위하여 나와 선을 보라는 의미이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그 짧은 시간에 지영의 머리속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지영의 당혹스러움을 짐작한 엄마가 다시 말했다.
"지영아.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말고 엄마를 믿어.응. 이 엄마가 하나 뿐인 사랑하는 자식을 다시 멀리 보내며 허투르게 판단하여 말하는 것은아니다."
"잠깐. 엄마. 아직 그 분에게 연락한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좀 전에 말했듯이 여러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극히 중대한 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도움이 되고자 가는 거예요. 그 분을 만나고 이야기할 여유가 없어요. 이번 여행은 사적인 것이 아니예요. 엄마. 김지영 어머니. 그 말씀은 없었던 걸로 해주세요. 네. 어머니!"
"지영아. 이미 너의 모습을 다 알려주었다. 이 엄마와 친한 사이야."
지영은 다시 어머니 김선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내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엄마가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고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 나마 다행인 것은 도착 비행기편을 묻지 않은 것이다. 그 분 혼자서 공항에서 헤매라 하지머.' 그런 생각이 들자 미소가 절로 입가에 번졌다.
"엄마~ 나 혼자서 잘 할 수 있어요. 괜히 수고끼치지 마세요. 절 만날 수도 없어요."
"그래. 알았다. 그래도 그 분은 너를 금방 찾을거다. 너도 금방 좋아하게 될거야."
"어머니~"
지영은 심각해졌다. 그냥 물러설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었다. 지영은 묻고 싶었다.
"어머니~ 김지영 엄마!"
"왜에~ 김지영 엄마. 어디 안가고 여기있어. 왜?"
김선애도 지영이 얼굴을 찬찬히 보며 긴장한채 대답했다. 지영이, 얼굴을 김선애에게 더 가까이하여 눈을 보며 심각하게 물었다. 김선애 눈이나 김지영 눈이나 크고 까맣고 맑은 것은 똑같았다.
"엄마~ 엄마는 왜 그렇게 눈이 크고 까맣고 맑아요?"
긴장했던 김선애는 그만 피식웃고 말았다.
"너, 김지영 닮아서 그렇지."
"엄마는... 딸 닮은 엄마가 어딧어요."
"네 앞에 있잖니."
"참, 엄마는... 그런데, 엄마. 그 분 좋아해요?"
기여코 묻고야 말았다. '기여코 때가 오고야 말았구나' 김선애는생각했다.